[30代의 차례 百態]스키장서…위스키 올리기도

  • 입력 1997년 2월 9일 20시 13분


[허엽기자] 이번 설에도 고향을 다녀온 장낙한씨(33·서울대 연구원). 매번 맞이하는 성묘나 차례상 앞에서는 여전히 당황스럽다. 물론 웃어른을 따라서 눈치껏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차례상 차리기와 순서, 지방쓰는 법 등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이는 「문지방 세대」로 불리는 30대의 공통된 경험.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틈바구니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들이 전통을 이어가는데서도 「문턱」이 결코 낮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다. 박종필씨(39·SBS 홍보실) 일가의 설날 아침은 차례를 둘러싼 세대별 의식구조를 보여주었다. 엄격한 아버지(75)는 도포와 의관을 갖췄고 박씨는 양복에 두건만 썼다. 두건도 안쓴 어린 조카들은 차례에도 관심이 적은 듯했다. 박씨는 『기제사때 축문을 가끔 읽는데 운율이 안맞았는지 조카들이 웃더라』며 『그래도 어쨌든 전통의 하나로 계승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혼자 연습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30대 가운데는 차례나 제사를 전통문화로 이어가야 한다는데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 방식은 제각각이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것이라며 커피나 단술, 위스키 등을 올리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절충하는 모습도 보인다. 김호덕씨(34·서울대 종교학과 박사과정)는 이에 대해 『예법의 절차 하나하나에는 성리학적인 의미가 있으나 요즘은 조상에 대한 효의 실천행위가 강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효는 자기 생명의 근본에 대한 감사와 정성이며 따라서 생전에 좋아하는 음식을 놓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안태경씨(38·주부)의 집은 더 개방적이다. 안씨는 1,2년 사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요즘에는 굴비 적같은 전통적인 제사음식을 놓지 않고 갈비와 잡채 등 식구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차린다. 스키장 콘도에서 차례를 지냈다는 안씨는 『돌아가신 혼령이 이사간 집도 찾아오는데 스키장이라고 못 오시겠냐』고 말했다. 30대중에는 『전통적인 차례를 지내는 세대는 우리가 마지막이지 않겠느냐. 우리가 죽으면 자식들이 차례를 지내주기나 할까』라며 갈등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차례와 제사」의 저자 이영춘씨(46·국사편찬위원회 연구사)는 『차례 등을 이처럼 격식을 차리고 지내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며 『중간세대들이 이를 전통문화로 이어가는 새 기준을 조성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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