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건축/해인사 팔만대장경판전]

  • 입력 1996년 12월 25일 20시 18분


「글〓李光杓기자」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인 경남 합천 해인사. 법보종찰(法寶宗刹)로도 유명하지만 우리 정신문화의 정수인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이 자리한 곳이다. 팔만대장경을 완벽하게 보존해오고 있는 해인사의 목조건축물 팔만대장경판전(八萬大藏經板殿·국보 제52호)이야말로 「자연과의 합일로 자연을 극복」하는 우리 전통 건축의 「신비」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천년건축물」이다. 통일 신라 애장왕 때인 802년에 창건된 해인사는 조선 태조때인 1399년 강화도에 보관중이던 대장경을 옮겨와 지금까지 보관해오고 있다. 조선 성종때인 1481년 이후 해인사는 지금의 규모를 갖추었으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현재의 경판전(經板殿)은 1488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해인사로 가려면 우선 오르막길을 지나야 한다. 일주문에서 봉황문 해탈문까지의 조금씩 상승하는 길은 사람에게 긴장감과 탈속(脫俗)의 분위기를 제공한다. 그 긴장감은 해탈문에서 절정에 달하고 구광루 밑을 통과해 대적광전(大寂光殿) 앞의 넓은 마당에 이르면 상승 공간은 없어지고 평정을 되찾는다. 이러한 역동적인 공간 배치는 해인사 가람(伽藍)배치의 특징이면서 깨달음의 과정과도 통하는 것이다. 대적광전 뒤로 돌아가면 신라당시의 1천여년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고졸(古拙)한 멋을 보여주는 높은 석축 기단이 있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석축기단 위로 올라가 보안문(일명 보안당)을 지나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수다라장(修多羅藏)과 법보전(法寶殿)이 나타난다. 바로 해인사의 압권인 대장경판전. 서로 마주보는 두개의 긴 일자형 건물로 남쪽의 것이 수다라장(下板堂·하판당), 북쪽의 것이 법보전(上板堂·상판당)이다. 이 대장경판전이야말로 법보사찰인 해인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건물. 앞뒤벽에 서로 다른 크기의 붙박이살창(환기창)을 만들어 바람이 들어와 한바퀴 돌아나가게 했다. 겉으로는 그저 숭숭 뚫어놓은, 무심한 창인듯 싶지만 이 환기창의 통풍구조가 바로 경판전 신비의 비밀로 당시 건축기술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벽을 상하로 나누어 붙박이살창을 위아래로 배치했는데 그 크기가 각각 다르다. 수다라장 앞벽의 경우 상부창은 하부창의 4분의1 크기밖에 안되고(上小下大·상소하대) 뒷벽은 상부가 하부창의 두배 크기(上大下小·상대하소)다. 법보전 앞벽은 상부창이 하부창보다 작지만 앞뒷벽 하부창 모두 수다라장의 하부창보다 크게 설계돼 있다. 창의 크기가 모두 다른 것은 자연을 그대로 살리고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온습도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이같이 당대의 건축인들은 경험과 직관에 의해 환기창의 크기와 위치를 잘 고안, 건물 내에 합리적인 환기작용을 유도해냈고 그로 인해 팔만대장경은 지금까지 완벽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경판 보관 기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건물 내부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만들었으나 이 단순함이야말로 치밀하게 계산된, 그러면서도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염두에 둔 고도의 건축 기술인 셈이다. ―「千年건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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