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건축/부석사 무량수전]미학의 극치 「배흘림기둥」

  • 입력 1996년 12월 21일 19시 52분


「글〓李光杓기자」 경북 영풍 부석사(浮石寺)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94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잘 지은 한국 건축물로 뽑힌 적이 있을 정도다. 자연과 인공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부석사의 가람배치, 직선 부재를 사용했으면서도 절제된 곡선미를 보여주는 무량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호), 그리고 그 앞에서 화려한 조각솜씨를 자랑하는 석등(국보 제17호) 등.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때인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무량수전은 고려 정종때인 1043년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은 건물이다. 이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1천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천년건축물이다. 부석사의 모든 길과 집들은 무량수전을 위해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다. 일주문 천왕문 요사채 범종각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보통의 절들은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직선으로 건물이 배치돼 있는데 부석사의 이같은 곡선상의 가람배치는 국내 유일의 것이다. 직선이라는 인공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아름다움을 더욱 뽐내고 있는 것이다. 곡선배치이기에 범종각 밑을 통과하면 우선 무량수전의 왼쪽 처마가 보이고 안양문을 통과해야만 무량수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량수전으로 가까이 갈수록 조금씩 무량수전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종의 「암시」효과를 발휘한다. 건축학에서는 이를 「공간전이(轉移)」라 부른다. 하나의 건축물이 사람의 눈에 한꺼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암시를 통해 서서히 대상 건축물로 접근하도록 배치한 독특하면서도 탁월한 배치이며 자연을 살리되 인간의 치밀한 계산과 완벽한 구조로 효과를 극대화한 가람배치인 것이다. 또한 범종각 안양루 무량수전을 각각의 기단 위에 배치, 자유로운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각 돌축대 기단은 불국사의 기단처럼 기둥을 세우지도 않았고 제멋대로 생긴 자연상태의 돌을 그대로 사용,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내고 나아가 조화의 차원을 넘어선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무량수전에 이르는 마지막 통로인 안양문 역시 봉황의 날갯짓 모습으로 무량수전과 하나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무량수전 앞에 이르면 소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량수전이 하나의 인공건축물이지만 인공을 넘어서 자연과의 합일을 이뤄낸 고도의 기법이다. 무량수전의 압권은 배흘림 기둥. 양끝이 약간 가늘고 몸통이 불룩한 목재를 사용함으로써 미학의 극치를 구현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 배흘림 기둥은 단순한 아름다움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기둥이 받는 힘이 기둥의 중간부분에 집중된다는 공학적 측면에서 볼 때 건축공학적으로도 완벽한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무량수전은 직선의 부재를 통해 곡선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각지붕으로 이뤄진 무량수전의 공포(拱包·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들)장치 역시 간결 견실하다. 건축가들은 이를 보고 어느 부재 하나도 빼거나 더할 수 없는 완벽한 건물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무량수전의 탁월함은 내부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천장을 막지 않고 모든 부재를 노출시킴으로써 기둥 대들보 서까래의 조화를 한눈에 보여주며 따라서 별로 커보이지 않는 건물인데도 안에 들어서면 그 웅장한 공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건축공학과 미학, 그리고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성취해낸 부석사 무량수전. 그러나 이 무량수전이 지금까지 천년건축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후대의 무분별한 보수공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건축가들의 분석은 매우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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