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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27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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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건(辛建) 국가정보원장이 전날 국회에서 “북한이 92년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받기 전에 7∼22㎏의 플루토늄을 추출해 핵폭탄 1∼3개를 제조했을 가능성이 50% 이상”이라고 보고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TV로는 서울에 온 북한 경제시찰단의 모습을 보았다.
정부 당국자들은 “‘핵과 경협의 분리’란 바로 이런 것이야”라며 흐뭇해했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등 뒤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만드는데 정부는 퍼주기만 하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정부의 상황 인식에 심각한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시인한 이후 정부는 북한핵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맞는 얘기다. 핵무기는 그것이 어느 나라에 있건 국제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핵무기의 양(量)과 핵 억지력 사이의 불균형 때문이다. 우리가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 아래 사는 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93, 94년 핵 위기 때도 결국은 미국의 손을 빌려 위기를 넘겼다. 그 산물이 지난 8년간 한반도와 동북아 현상 유지의 틀로 기능해 온 제네바기본합의다.
이번 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상황 인식과 접근 방법이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열쇠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핵은 존재 여부가 논란이 되는 순간 곧바로 국제화된다. 국가나 민족의 차원을 떠난다. 한미 공조가 중요한 까닭은 거듭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한미공조를 행동으로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앞으로 북한을 움직이게 할 가장 유용한 정책수단의 하나가 경제제재 위협이다. 7000만 한민족과 3만7000명의 주한미군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북폭(北爆)이 대안일 수 없다면 대북(對北) 경제제재 위협 외에 다른 강력한 수단은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북측과 개성공단 착공에 합의하고 북한 경제시찰단까지 서울로 불러들였다. 공조의 한 파트너가 장차 쓰게 될지 모를 정책수단을 다른 한 파트너가 ‘훼손’하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적어도 정부는 그런 인상을 주고 있다.
미국의 섭섭함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4일 “한국은 북한의 핵개발 계획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북(對北)경협을 가속화함으로써 미국을 면박주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대북 핵 정책을 놓고 동맹간에 이견이 있다고 전했다.
핵과 경협의 분리 논리를 다시 들먹이지 않았으면 한다. 이 정부 들어 ‘분리’는 거의 신앙이 돼 있다. 정치와 경제가, 교전(交戰)과 경제지원이, 납북자와 이산가족이 모두 분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 분리되지 않는 사람은 냉전적 사고의 소유자다.
분리, 정확히 말하면 기능주의적 대북 접근은 “비정치적인 문제부터 풀고 정치적인 문제는 미뤄놓는다”는 것인데 상대방의 선의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실행 과정에서 완급과 강약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솔직히 임기를 4개월도 채 남겨 놓지 않은 정권이 왜 이처럼 서두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핵 위기가 심화돼 대북 경제제재안이 유엔안보리에 상정되기라도 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정권의 몫이다. 어쩌면 차기 정권은 햇볕이란 이름 하에 뿌려졌던 대북 경제지원의 숱한 낙과(落果)를 고통스럽게 주워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쯤해서 한 템포 늦출 수는 없는 것일까. 북한핵 문제가 몇 개월 안에 매듭지어질 것 같지 않고 보면 한미 공조나 튼튼히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누가 정권을 잡든 그것은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이재호 국제부장 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