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가 카를 융은 ‘상승정지 증후군’이란 용어로 중년 남성의 변화를 설명한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매진하다가 어느덧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음을 깨닫게 된 중년 남성들이 ‘인생의 정오(noon of life)’에서 바로 ‘제2의 사춘기’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중년 남성 심리 전문 연구자들은 “성공한 중년 남성일수록 ‘사추기’라는 남성의 갱년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는 경향이 있다”며 “잔글씨가 안 보이고 근육의 힘이 떨어지는 등 현격한 육체적 변화가 이젠 인생에서 더 이상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불안 심리까지 가져온다”고 말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45)는 “20, 30대 남성들이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외향적이 되는 반면 중년 남성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 내성적 경향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여전히 돈벌기를 강요하고 끊임없이 가정사에 도움을 요구하는 아내와 달리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다른 여성에 푹 빠져 쉽게 이혼을 결정하는 중년 남성들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중년 남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가깝게 느낍니다. 인생에서 그동안 잘못된 것을 지금이라도 돌이키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 마지막 기회마저 놓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충동적으로 인생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시간의 여유를 갖고 ‘균형 심리’를 찾아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중년 남성을 존중, 위로, 칭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미르비뇨기과 오경준 원장(43)은 중년 남성이 일반적으로 겪는 육체적 변화에 대해 남성 스스로 보다 관대해질 것을 권한다.
“40대 이후 중년 남성은 성적 능력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나약함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꼭 음경이 발기돼야만 성생활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의약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요. 정력에 치중하기보다는 몸 전체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긍정적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중년 남성이 멋있게 나이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국 롱아일랜드대 문학창작과 교수이며 시사주간지 타임에 기고하고 있는 로저 로젠블라트는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Rules for Aging: A Wry and Witty Guide to Life)’이라는 책에서 각종 법칙들을 제시한다.
‘적(敵)은 무시하라. 아니면 확실하게 죽여버려라’, ‘친구를 비방하는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되지 말라’, ‘먼저 사과하라, 화해하라, 도움을 주라’,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외로움이 낫다’, ‘자기 반성은 적당하게 해야 오래 산다’ ….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김주환 교수(39)는 중년 남성의 멋에 대해 ‘몰입’과 ‘열정’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놀이 문화가 부재한 한국사회에서 중년 남성들은 대부분 승진, 출세 등 정형화된 코드에 따라 살아왔어요. 그러나 중년은 외면과 내면 모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아는 분 중에 주말마다 스케이팅을 즐기는 50대 남성이 있어요. 중년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내면적 외면적 한계를 만들지 않고 스포츠나 문화예술 등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모습이 멋있게 보입니다.”
홍익대 미대 겸임교수인 전 LG패션 고문 신홍순씨(61)도 “지나치게 점잖은 데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중년이 멋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적극적인 생활이란 전통 문화와 대중 문화를 폭넓게 이해하고, 국제적 감각과 매너를 갖추며, 정서적 취미 생활을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
“세계치과의사연맹 회장인 윤흥렬씨는 종종 연극평론을 하죠.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은 미술과 음악에 특히 조예가 깊어요. 지휘자 금난새씨, 전 주미대사 현홍주씨, 이홍구씨 등에게서는 세련된 국제 감각을 느낄 수 있어요. 이들의 공통점은 활동적이고, 젊게 산다는 점이죠.”
패션전문 홍보대행사 룩커뮤니케이션 김향숙 이사(39)는 여자가 본 중년 남성의 멋을 이렇게 말한다.
“중년 남성에게서는 그가 살아온 인생, 성격, 품성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멋있는 중년 남성은 튀는 색상에 대한 두려움이 적고, 감성에 맞게 스타일을 연출하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중년남성의 멋이 채워지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약자를 도와주고, 언제나 예의바른 내면의 멋이죠.”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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