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백만장자

  • 입력 2002년 6월 19일 18시 25분


80년대 중반 자수성가한 미국의 한인들이 별 연고가 없는 동포 여행자들을 대접하는 이상한 유행이 번졌었다. 자동차 딜러 등의 사업으로 백만장자가 된 한인들이 온갖 인연을 동원해 고국에서 온 동포 가운데 비교적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극진한 대접을 하곤 했다. 이들이 값비싼 승용차로 고국 손님을 모시고 가는 곳은 대개 사슴이 뛰어 나온다는 경고 표시가 붙어 있는 수풀이 울창한 지역에 위치한 고급 주택가. 주인은 100만달러가 넘는 집을 보여주고 산해진미를 대접하며 큰 재산을 모으기까지 쌓인 고생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우연히 한 교민에게 ‘선택’돼 말로만 듣던 미국 백만장자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금도금이 된 욕조를 비롯해 모든 것이 영화에 나오는 부호들의 저택처럼 호사스러웠다. 한때 ‘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이라는 제목의 가요가 유행할 정도로 가난한 고국에서 태어났지만 맨주먹으로 외국에 나와 미국인들까지 부러워하는 백만장자가 되기까지 그의 노력은 대단했다. 그의 부유한 삶이 부러웠으나 한편으론 피와 땀으로 이룬 오늘의 성공을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으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집안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인생 역정을 모두 털어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년 말 현재 금융자산이 100만달러(약 12억5000만원)가 넘는 사람이 전 세계에 무려 71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백만장자가 됐다고 자랑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한국인 백만장자만 5만명이다.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이 유행하고 인터넷에 백만장자 신드롬이 일고 있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 한 대기업이 “재산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했더니 조사대상자 100명 중 25명이 “20억원 이상”이라고 대답해 백만장자가 이제 한국 대기업 샐러리맨들까지 노리는 목표가 됐음을 말해준다.

▷백만장자들의 삶도 제각각이다. 세계 최고 갑부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처럼 자선사업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한 부류. 그는 부인과 함께 240억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자선재단을 만들었고 지난해에만 14억4000만달러를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등 질병과 빈곤 퇴치를 위해 기부했다. 반면 우주여행 한번 하기 위해 2000만달러를 쓰는 부자들도 있다. 그들이 어떤 삶을 택하든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빈곤자가 12억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지지 않을까.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