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김영진/美-러의 밀월 주목하라

  • 입력 2001년 12월 5일 18시 32분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만큼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나이. 미국과 협력하여 세계를 더욱 평화롭게 만드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는 사나이.’

▼한반도 주변환경 급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1월 중순 정상회담을 위해 백악관과 텍사스주의 부시 대통령 농장을 방문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묘사한 말이다. 최근 양국 관계의 추세, 특히 양 지도자간의 신뢰관계를 상징하는 말이다.

지난 몇 개월간, 특히 9월11일 이후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에는 참으로 놀라운 진전이 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콘돌리자 라이스 특보는 미-러 관계가 “혁명적인 전환기에 있다”고 말했고 이번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러시아는 우리의 우방”이라고 불렀다.

양국간의 오랜 갈등요인이었던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 문제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탄도탄요격미사일(ABM)조약 테두리 안에서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 러시아는 조약의 개정이나 해석변경을 하고, 미국은 조약 탈퇴를 하지 않고 내년 봄에 예정된 실험을 가능케 하는 타협이 성립될 것이라고 한다.

또 회담시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10년에 걸쳐 전략핵을 지금의 약 3분의 1 수준으로 삭감할 것이라고 통고하였고, 잠시 후 푸틴 대통령도 현재 러시아 보유핵의 약 3분의 2를 삭감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양측이 ‘합의된 일방적 조치’를 선포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대미 대유럽 협조노선은 러시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관계조정 과정에도 역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정한 분야에서 러시아가 NATO 회원국과 동등한 자격으로 협의 및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검토되고 있고, 이는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반대해온 NATO의 확대문제도 NATO의 기본 성격의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것이다.

2년 전 강력한 러시아의 재건을 외치며 등장한 푸틴 대통령. 미국에 의한 일국패권적 지배를 견제하는 대항세력으로 동방을 지향하는 것 같았던 그가 과거 러시아제국의 표트르 대제를 능가하는 서방지향적 인물로 ‘변신’한 것이다.

미국의 반테러 대응에 러시아는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였다. 이어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에 관련해서도 정보공유 및 미국의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 기지 사용에 대한 협력 등 긴요한 공헌을 했다.

러시아가 미국으로부터 기대하는 대상은 안보 측면의 협력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촉진, 미-러 기업의 공동경제 개발사업, 대미 채무면제 등 러시아 경제재건을 위한 미국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유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우방관계를 정립하려는 대담하고도 원대한 구상이다. 국내 반대세력을 생각할 때 위험부담이 크다.

미-러 간의 협력관계의 확대는 한반도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첫째, 러시아는 대한반도 정책에서, 특히 북-미간의 대립돼 있는 문제에 대해 미국의 입장과 미-러 관계에 끼칠 영향에 더욱 민감해질 것이다.

둘째, 중국의 대미정책 재평가를 가져올 것이다. 7월 중-러 정상회담시의 중-러 대미 공동인식과 기본자세의 재검토를 필요로 할 것이다. 9·11테러사건 이후 현저하게 나타난 중국의 대미관계개선 노력이 더욱 경주될 것이다.

▼햇볕정책 수정 불가피▼

셋째, 중국은 대북정책에서도 미국의 입장에 더욱 민감해질 것이다. 7월 중-러 정상회담시 발표된 핵, 미사일, 생화학무기 문제에 대한 중-러의 기본적 입장은 북한의 이익에 모순된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넷째, 북한은 자기들의 외교·안보 환경이 악화되는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북의 미국과 남한에 대한 부정적인 자세가 한층 더 심해질 것이다. 북한이 현실적으로 국제정세에 대응하는 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가까운 장래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격동하는 국내외 조류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일관성’이란 미명 아래 ‘한국호’는 독특한 햇볕정책의 실천 원칙에 자승자박해 방향감각 없이 표류할 것 같다. 항로 변경이나 항행법을 수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북의 향도성을 지향한 항행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정책이 국가 이익, ‘외교 과제’의 전부는 아닌데도.

김영진(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 겸 일본 게이오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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