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성동기/눈치보는 軍

  • 입력 2001년 11월 28일 18시 22분


경기 파주시 부근 비무장지대(DMZ)에서 짧은 총격전이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28일.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상시처럼 평온했다. 군 관계자들은 “군사정전위 비서장급 접촉이 무산됐지만 항의의 뜻은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유엔사령부의 특별조사반이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북한군의 이번 총격은 ‘중대한 정전협정 위반’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우리측이 제의한 비서장급 접촉에 대해 북한이 접수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에 달리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우리 군당국의 반응이다.

군당국은 총격전 발생 직후 ‘단순 실수인지, 계획된 도발인지’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날은 총격전 발생 원인을 묻는 질문에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로 일관했다. 고의적인 도발로 결론을 내리면 국민정서상 강경 대응이 불가피하고,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북한이 실수했다’고 공식화하기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군 관계자들은 그러면서 “전방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 군도 과거에 오발한 적이 있었다.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면 북한을 도와주는 셈이 된다”는등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군 수뇌부가 북한의 총격이 실수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마저 군 내부에서 나돌고 있다.

총격전이 발생하면 경위를 불문하고 ‘도발’이라고 규탄해 온 과거와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군의 태도는 왠지 미덥지 못하다. 경의선 복원을 비롯해 남북한 군당국이 함께 진행해야 할 여러 가지 현안사업을 감안하면 군 당국이 전략적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발인지 실수인지 원인을 규명하기도 전에 전략적 고려에 따라 북한군을 배려해주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아무리 봐도 군의 정도(正道)가 아닌 것 같다. 햇볕정책도 그런건 아닐 것이다.

성동기<정치부>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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