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전미영씨 '김일성의 말, 그 대중설득 전략' 펴내

  • 입력 2001년 6월 5일 18시 36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무소불위의 정치권력을 휘둘렀던 것은 단순히 무력적 억압 때문이 아니라 치밀한 언어 사용 기법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춘천교대 강사인 전미영씨(정치학박사·37)는 최근 출간한 ‘김일성의 말, 그 대중설득의 전략’(책세상)에서 “대중에 대한 설득작업이 없이는 그 어떤 권력도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면서 그 설득작업은 다름 아닌 ‘언어정책’이라고 주장했다. 1948년부터 1994년까지 47년에 걸친 김일성 체제의 구축과 유지과정을 숙청과 감시, 위협 등 강제적 요인을 중심으로 설명하려했던 지금까지의 북한 연구와 대조적이다.

전씨는 김 주석이 언어를 ‘혁명과 건설의 힘있는 무기’로 규정해 ‘언어적 혁명성’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김 주석이 정권수립 초기에 실시한 ‘문맹퇴치 운동’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 해방 직후 북한에는 문맹자가 230만 명에 달했으나 1948년 200만 명 이상의 문맹자를 퇴치해 언어를 통한 이데올로기의 전파가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기반 위에 김일성은 권력의 절대화를 공고히 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김일성 저작의 ‘인용’. 북한의 모든 문헌들은 김일성의 ‘교시’를 인용하고 있으며 이는 아무도 의심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 진리의 구실을 한다. 이는 북한의 사전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철학사전’에 실린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항목을 살펴보면 “김일성 동지께서는 ‘맑스-레닌주의는 로동계급과 피압박 근로 대중의 세계관이며 해방의 무기’라고 교시하시었다”고 정의하고 있다. 스탈린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유일한 해석자를 자처함으로써 사상을 독점했듯이 김 주석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절대 권력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김 주석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유일한 해석자일 뿐 아니라 스스로를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자처함으로써 사상가로서의 지위를 격상시켰다는 점이다. 수령을 유일사상의 창시자로 만들어 수령에게 있을 수 있는 모든 도전을 봉쇄해버린 것이다.

그의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주체사상의 유일한 해석자로서 등장시켜 자연스런 권력 승계를 유도해내는 과정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전씨의 설명이다.

철저히 통속적이고 선정적인 단어들을 반복 사용함으로써 대중에 대한 호소력을 배가시키는 것도 김 주석의 설득전략 가운데 하나다.

“혁명하는 나라 인민들이 함께 달라붙어, 미제가 침략의 마수를 뻗치고 있는 모든 곳에서 그의 왼팔과 바른팔을 뜯어내고 왼다리와 바른다리를 뜯어내며 나중에는 머리를 잘라버려야 한다”(김일성 저작선집 5권)고 설명하는 대목은 감정적인 호소로 대중을 선동하는 전형적인 예다. 대중성, 명료성, 간결성의 원칙을 따르는 김일성의 언어구사방법은 북한사회에서 ‘수령의 문풍(文風)’이라 불리며 언어 사용의 최고의 본보기로 추앙받고 있다.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며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았다는 전씨는 지난해 6.15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면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남한 사회에서 북한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남북한의 관계 개선은 한국 사회의 대변혁이에요. 그런데도 정작 우리는 북한에 대해 너무도 아는 게 없어요. 이 책이 북한을 이해하고 남북한 간의 정서적 격차를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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