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이래서 명작]카프카의 '변신'

  • 입력 2001년 1월 26일 14시 42분


변 신 Die Verwandlung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1883-1924)

실존주의와 초현실주의의 만남.

◇아, 아버지 당신은! - 미움보다 더한 사랑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병약했던 카프카에 비해 아버지는 강인했고, 카프카는 소극적이었으나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너무나 억센 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아버지의 가슴에 대고 불만을 터뜨리지도 못했고, 아버지 가슴에 기대고 마음껏 푸념하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카프카를 강한 남자로 키우고자 했다. 그러나 거칠고 위압적인 아버지의 지나친 질책은 카프카를 심한 자괴감에 빠뜨리곤 했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자기 정당화가 심한 다혈질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지키지 못하는 규칙을 아들에게 강요하곤 했다.

아버지는 식사시간에도 너무나 권위적이어서 이것저것 주문이 많았다. 가령 "차려 놓은 것은 모두 먹어라, 음식투정은 말아라. 컵을 입으로 빨지 말아라. 빵은 이렇게 썰어라,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먼저 먹어라. 빨리 먹어라. 더 빨리" 등. 그런데 정작 아버지는 음식이 형편없다고 투정했고, 음식부스러기는 그의 자리에 가장 많이 떨어져 있었다. 식탁에서는 먹는 데만 전념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던 아버지 자신은 손톱이나 연필을 깎고 있었고, 귀를 후비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카프카는 너무도 권위적이던 아버지가 그에게 강요했던 계율을 당신 자신은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척 괴로워했다.

역시 어린시절의 기억인데, 카프카는 어느날 밤 물이 먹고 싶다고 계속 울어댔다. 특별히 목이 마른 것은 아니었고, 단지 누군가를 화나게 하고 싶었고 자신의 기분을 달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심한 꾸지람을 들었지만, 그는 떼쓰기를 그치지 않았고, 아버지는 마침내 그를 마루로 끌어내 문을 닫고 속옷 차림으로 세워두었다. 그로 인해 카프카는 마음의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후 몇 년이 지나도록 그는 거인 같은 남자, 즉 아버지가 밤중에 나타나 그를 침대에서 마루로 끌어낼지도 모른다는 악몽에 시달려야했다.

카프카와 아버지의 관계는 애증이었다. 극심한 자신 불신에 시달린 카프카였지만, 그는 종종 아버지를 '자기편'이라고 말했다. 카프카는 아버지의 '따뜻한 속마음'만은 의심한 적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신과 자식을 혼동하는' 것처럼 자신의 아버지도 그런 애착에서 자신에게 그토록 가혹하게 대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방식이 카프카에게는 맞지 않았다.

◇인류의 속죄양, 고뇌하는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카프카는 체코어로 까마귀라는 뜻이다)는 1883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생활력이 강하고 아집이 세며, 이해심이 부족한 남자였다. 반면 학식이 높은 집안의 딸인 어머니는 다정다감하고, 선량한 여성이었다.

성공한 유대인 상인 집안인 카프카의 가족은 독일어를 사용했다. 카프카는 길지 않은 생애의 대부분을 프라하에서 살았다. 그는 독일어로 초, 중 교육을 마친 다음 프라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았지만, 법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 시절 그는 평생지기인 막스 브로트를 알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노동자 재해 보험국에서 근무했다. 막스 브로트의 권유로 단편 <관찰 Betrachtung>, <화부 Heizer>, <선고 Das Urteil> 등을 발표하고, 이어 <변신 Die Verwandlung>을 발표했다.

1917년 그는 폐결핵 진단을 받고 병세가 악화되어 요양생활에 들어갔다. 이 시기에 많은 단편을 썼다.

카프카는 펠리체 바우어와 두 번 약혼하지만 결국은 헤어졌고, 율리 보리체크와도 약혼했지만 다시 파혼한다. 카프카는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갈 때 밀레나 예젠스카 폴라크를 만났지만, 그 사랑도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1923년 카프카는 아버지의 가부장적 억압에서 벗어나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가 그곳에서 젊은 유대인 여성 도라 디아만트를 만나 삶의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해 겨울 건강이 악화되어 짧은 베를린 생활을 정리하고 프라하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도라 디아만트와 프라하에서 잠시 머물다가, 빈 교외의 요양원에서 1924년 죽었다.

◇평생의 친구, 막스 브로트

카프카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평생의 친구이던 막스 브로트 덕분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카프카는 막스 브로트를 프라하에 있는 독일 대학생들의 독서 및 연설모임에서 만나 평생 동안 우정을 나누었다. 브로트는 카프카의 창작 의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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