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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진, 연기, 냄새로 아직도 목이 아픕니다.” 18일 오후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공장 인근에 사는 이승길 씨(68)는 통증을 호소했다. 공장 화재 이후 퍼진 연기를 들이마셨다는 이 씨는 대화 도중 연신 ‘목이 아프다’며 생수를 들이켰다. 이어 “주차된 차들에 화산재 같은 분진이 내려앉아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화재 발생 31시간 만에 큰 불길은 잡혔지만, 매연과 분진이 광주 전역으로 퍼져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석탄보다 열에너지 많은 타이어, 31시간 만 진화 18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전 7시 11분경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2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주불이 약 31시간 40분 만인 이날 오후 2시 50분경 진화됐다. 국가소방동원령이 해제된 오후 3시 기준 진화율은 95% 수준이다. 소방 당국은 2공장 내부 생고무와 화학약품을 혼합하는 정련공정 라인의 예열장치(오븐)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 가운데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 전날 고무, 타이어 등 인화성 물질이 가득한 공장에 불이 붙자 커다란 불길과 검은 연기가 겹쳐 공장 일대는 한때 재난 지역을 방불케 했다. 화재 신고 5분 만인 17일 오전 7시 16분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 소방 당국은 오전 10시경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소방관 462명, 장비 168대를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공장에서 대피하던 20대 근로자 1명이 추락해 조선대병원 신경외과에서 척추 골절 수술을 받았다. 소방관 2명도 부상을 입었다. 인근 아파트 4개 단지 주민 212명이 대피했다. 1974년 설립된 이 공장은 타이어를 연간 1200만 개 생산하는 등 금호타이어 국내 생산의 약 45%를 차지한다. 공장엔 타이어 제작용 고무 20t과 각종 화학물질이 있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타이어는 같은 무게의 석탄보다도 더 많은 열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석탄 1kg은 2만7200kJ(킬로 줄·열량 단위)의 열에너지를, 타이어는 3만7600kJ의 열에너지를 가진다. 이에 따라 불이 붙은 타이어는 다량의 연기와 강한 열을 내며 화재 진압도 어렵다. 금호 공장 화재 주불 진화가 31시간 이상 걸린 이유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타이어 고무가 대량으로 있어 대형 화재로 번진 것”이라며 “타이어의 원재료인 고무 및 합성수지 등은 가연성이 높은 물질로, 연소 시 다량의 유독가스와 연기, 열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암-호흡기 손상 가능성도… “주민 모니터링 필요”화재와 동시에 뿜어져 나온 유해 물질과 매연에 일대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대피소의 주민 69명은 두통(35명), 목 통증(5명), 눈 통증(2명), 호흡곤란(2명), 근육통 등 기타(20명) 증세로 구호센터 의료지원반에서 치료를 받았다. 정신적 고통(트라우마)을 호소하며 심리 상담을 받은 이들도 61명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주민들의 호흡기 손상 등에 대한 추적 관찰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광주 아주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방진 마스크 등을 쓰고 외출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고 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연기를 마신 공장 근로자와 인근 주민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질환에 대해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건강 진단 등을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외 연구에서 타이어 연소 시 나오는 유해물질은 다양한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한창우 교수팀이 2023년 3월 12일 발생한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 화재 사건을 분석한 결과 주민들의 상기도 감염, 폐질환, 편두통, 두드러기 및 홍반 등의 피부질환 발생이 증가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 조사에 따르면 폐타이어 연소로 인한 대기 오염 물질이 암, 돌연변이, 선천적 기형, 유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편 이번 화재로 광주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되자 금호타이어는 재고를 상당량 비축해 뒀고 곡성공장 등으로 생산지를 재배분할 수 있어 공급에 당장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한종호 기자 hjh@donga.com}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그날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행사가 광주 도심 곳곳에서 펼쳐졌다. 시민들은 오월 광주가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으로부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며 ‘민주·평화·인권’의 5·18정신을 헌법에 수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묘지 참배객 30% 증가 12·3 불법 비상계엄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등의 영향으로 국립5·18민주묘지를 찾는 참배객이 지난해에 비해 30% 정도 늘었다. 18일 5·18민주묘지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올 1월 1일부터 이달 17일까지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은 13만828명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0만227명보다 30.5%가 늘어난 것이다. 5·18민주묘지관리사무소 관계자는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계기로 계엄군에 맞서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5·18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18일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일본의 시민운동가 80여 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후쿠오카에서 온 이우치 데쓰야 씨(64)는 “광주의 5·18 정신을 배우기 위해 3박 4일 일정으로 방문했다”며 ‘일본에서 5·18민주화운동을 부러워하고,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연구하는 일본인 모임 회원 32명은 기념식에 참석한 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실제 주인공인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사카에서 온 후카쓰 아쓰고 씨(71)는 “김길자 여사의 사연을 듣고 같은 어머니 입장에서 너무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금남로 전야제에 시민 2만여 명 몰려 17일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전야제가 진행된 광주 금남로는 군부 독재에 항거하며 외치던 그날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올해 전야제는 ‘아! 오월, 다시 만난 오월’을 주제로 한바탕 축제로 진행됐다. 금남로 일대에는 경찰 추산 2만여 명의 시민이 몰렸다. 금남로와 민주광장 일대에는 오월시민 난장 부스와 풍물패 공연 등 전야제 사전행사가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난장 부스에서는 체험과 공연·전시·주먹밥 나눔 등의 다양한 콘텐츠가 펼쳐졌다. 5·18 유가족들로 꾸려진 사단법인 오월어머니집이 금남로 거리 한복판에서 주먹밥을 나누며 전야제를 찾은 시민들을 반겼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주먹밥 나눔을 통해 오월 대동정신과 나눔과 연대의 정신을 실천했다. 오늘 5000인분을 준비했는데 금방 동났다. 여느 해보다 더 많은 분이 금남로를 찾아주셔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5·18민주광장 인근에 마련되던 전야제 무대는 금남공원 앞 사거리로 옮겨져 4면을 활용한 무대로 조성됐다. 뮤지컬 ‘봄의 겨울, 겨울의 봄’ 팀이 무대에 올라 지난해 12·3 계엄과 80년 5·18을 중첩적으로 보여 줬다. 무대 속 국회로 가는 지하철이 80년 5월의 광주로 변하면서 도청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국회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겹쳤다. 이를 본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시민들은 추운 겨울 광장에서 유일하게 기댔던 응원봉을 다시 꺼내 흔들며 45년 전의 역사를 되새겼다. 100여 개 부스가 설치돼 다양한 체험 행사가 펼쳐진 17일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가장 인기를 끈 소품은 택시였다. 5·18민주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택시 옆으로 긴 대기 줄이 늘어섰다.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에 등장한 택시가 광장 한복판에 나타나자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택시기사 의상을 입으며 차 안으로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던 시민들은 마치 영화 주인공 김사복 씨가 된 것처럼 여러 포즈를 취하며 즐거워했다. 시민 송모 씨(71·여)는 “광주 시민으로서 ‘택시운전사’를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는데 실제 촬영에 쓰인 택시를 보니 설레고 반가웠다”며 “친구들과 함께 포니 택시를 타고 사진을 찍으며 45년 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인근에서는 1980년대 시내버스의 모습을 복원해 만든 시민항쟁버스에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버스에는 ‘피로써 써진 자유, 이제는 우리가 지켜가자’ 등 당시 시민군의 투쟁 의지를 불태우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이를 본 아이들은 그 옆에 ‘전두환은 물러가라’ 등을 적으며 항쟁의 순간을 재연했다.● 학생들 기념전, 선거빵 등 행사 다채 광주시는 18일 오전 10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정부 기념식’을 도심 3곳에 설치된 시정 홍보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을 통해 실시간 송출했다. 시정 홍보 LED 전광판은 서구 금호동 빛고을 국악전수관 교차로 풍금사거리, 서구 빛고을대로와 무진대로가 만나는 계수 교차로, 광주도시철도 농성역 시민소통공간 등 3곳에 설치됐다. 5·18 기념식 생중계는 현장을 직접 찾지 못하는 시민과 방문객들이 기념식을 함께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광주시는 5·18 전야제, 5·18 기념식, 민주의 종 타종식 등 오월 주간 주요 행사를 518초 동안 소개하는 콘텐츠도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광주 예술중고교 학생들은 ‘오월 정신’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 전시와 기념 공연으로 눈길을 끌었다. 13일부터 23일까지를 ‘5·18민주화운동 기념 주간’으로 정한 학생들은 5·18 정신을 표현하고 감동을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미술 전공 학생들은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를 주제로 720X260cm 크기의 대형 걸개그림을 내걸었다. 작품에는 1980년대 이후 민중의 연대와 역사의 흐름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담았다. ‘민주·인권·평화전’을 열어 그림책과 평면 입체 작품을 전시하고 이를 활용한 키링·엽서·티셔츠·마우스패드·배지·액세서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음악 전공 학생들은 19일 피아노·바이올린·성악 협연곡 ‘상록수’와 ‘아름다운 나라’,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 합창곡 등을 공연한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중 하나인 궁전제과는 5·18 전야제가 열린 금남로에서 부스를 마련하고 ‘선거빵’을 선보였다. 표면에는 선거에 사용되는 기표 모양이 찍혀 있고 내용물은 단팥과 크림으로 채워졌다. 궁전제과 측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오월을 기념하고 ‘민주주의 꽃’인 주권자 선거를 독려하기 위해 선거빵을 선보였는데 2000여 개가 한 시간도 안 돼 다 팔렸다”고 설명했다. 궁전제과를 비롯한 지역 제과점 49곳은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7∼18일 광주를 찾는 이들에게 제품을 10% 할인 판매하는 ‘오월광주 나눔세일’을 펼쳤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분진, 연기, 냄새로 아직도 목이 아픕니다.”18일 오후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공장 인근에 사는 이승길 씨(68)는 기자에게 통증을 호소했다. 공장 화재 이후 퍼진 연기를 들이마셨다는 이 씨는 대화 도중 연신 ‘목이 아프다’며 생수를 들이켰다. 이어 “주차된 승용차들에 마치 화산재 같은 분진이 내려앉아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화재 발생 31시간 만에 큰 불길은 잡혔지만, 매연과 분진이 광주 전역으로 퍼져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 금호타이어 화재, 주민들 목-눈 등 통증 호소18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전 7시 11분경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2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주불이 약 31시간 40분 만인 오후 2시 50분경 진화됐다. 국가소방동원령이 해제된 오후 3시 기준 진화율은 95% 수준이다. 소방 당국은 2공장 내부 생고무와 화학약품을 혼합하는 정련공정 라인의 예열장치(오븐)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 가운데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전날 고무, 타이어 등 인화성 물질이 가득한 공장에 불이 붙자 커다란 불길과 검은 연기 더미가 겹쳐 공장 일대는 한때 재난 지역을 방불케 했다. 화재 신고 5분 만인 17일 오전 7시 16분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초기진화에 실패했다. 소방 당국은 오전 10시경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소방관 462명, 장비 168대를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공장에서 대피하던 20대 근로자 1명이 추락해 조선대병원 신경외과에서 척추 골절 수술을 받았다. 소방관 2명도 부상을 입었다. 인근 아파트 4개 단지 주민 212명이 대피했다.1974년 설립된 이 공장은 연간 1200만개 타이어를 생산하는 등 금호타이어 국내 생산의 약 45%를 차지한다. 공장 내부엔 타이어 제작용 고무 20t과 각종 화학물질이 놓여있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타이어의 원재료인 고무 및 합성수지 등은 가연성이 높은 물질로, 연소되면 유독 가스 등 연기와 열이 많이 발생해 진압이 어렵다”며 “타이어 고무가 대량으로 있어 대형 화재로 번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화재와 동시에 뿜어져 나온 유해 물질과 매연에 일대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대피소의 주민 중 53명은 구호센터 의료지원반에서 두통(27명), 목 통증(4명), 눈 통증(2명), 근육통 등 기타(20명) 등의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다. 박모 씨(88)는 “화재 직후 집으로 시커먼 연기가 엄청나게 밀려와 구토를 할 뻔했다. 두통이 심해져 약을 먹었다”고 말했다. ● 암-호흡기 손상 가능성도… “주민 모니터링 필요”전문가들은 주민들의 호흡기 손상 등에 대한 정부의 추적 관찰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광주 아주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배출된 유해 물질은) 장시간 노출 시 만성 기관지염이나 폐 손상에 의한 호흡 기능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며 “방진 마스크 등을 쓰고 외출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고 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연기를 마신 공장 근로자와 인근 주민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질환에 대해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건강 진단 등을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국내외 연구에서 타이어 연소 시 나오는 유해물질은 다양한 질환을 유발했다. 충남대의대 예방의학교실 한창우 교수팀이 2023년 3월 12일 발생한 한국타이어 대전 공장 화재 사건을 분석한 결과 주민들의 상기도 감염, 폐질환, 편두통, 두드러기 및 홍반 등의 피부질환 발생이 증가했다. 미국 보건학술지 ‘환경보건 전망’(EHP)은 타이어 공장 화재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등의 오염물질은 폐질환과 신경계 질환, 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조사에 따르면 폐타이어 연소로 인한 대기 오염 물질이 암, 돌연변이, 선천적 기형, 유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편 이번 화재로 광주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되자 금호타이어는 재고를 상당량 비축해 뒀고 곡성공장 등으로 생산지를 재배분할 수 있어 공급에 당장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한종호 기자 hjh@donga.com}
1980년 5월 당시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은 재일 한국 교포들과 함께 신군부의 폭력에 희생된 광주시민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들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45년 동안 다양한 문화 운동으로 5·18 광주시민들에 대한 지지를 보여줬다. 5·18이 발생한 지 45년이 흐른 현재 일본 사회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볼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 5·18민주화운동은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독재에 시달리는 동남아시아에 민주주의 나침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월지기 김용철 씨는 15일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한국 근대사에 애착이 큰 일본인 32명이 각자 경비를 내고 참석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연합군(미군정)에 의해 민주주의가 정착됐지만, 한국은 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이라고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혜원 5·18기념재단 글로컬센터 부장은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에서 5·18을 겪은 한국의 민주주의 사례를 배우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동남아 사람들은 한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12·3 불법 비상계엄이 일어난 것에 놀라고, 이를 빠르게 극복한 것에 또다시 놀라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5·18이 세계화된 것은 일본 시민운동가들과 재일교포들의 꾸준한 지지도 한몫했다. 일본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는 1980년 5월 기사로 광주 참상을 접하고 곧바로 판화를 새겼다. 도미야마는 1981년 2개월 동안 ‘오월의 바람’이라는 이름의 판화전을 열며 오월 광주와 함께했다. 그는 판화전을 통해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의 빈곤한 정신을 각성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판화는 달력으로도 제작돼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렸다.재일교포 시인들은 5·18 1주년을 맞아 1981년 5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한국어로 광주항쟁시선 ‘아아, 光州(광주)여 無等山(무등산)이여’를 발행했다. 책은 한국어로 작성된 5·18 연대시집이다. 시집에 “비록 몸은 해외에 있지만 그 뜻과 마음은 5·18 희생자들과 함께 있는 외침이다. 또 광주 학살자들에 대한 추상같은 고발장”이라고 적었다. 재일교포들의 5·18과 연대는 광주 연대시집 발간으로도 이어졌다. 일본 시인 미야바야시 히코키치(宮林彦吉)는 ‘광주만이 빛나고 있다’를 통해 5·18 피해자들을 기렸다. 재일교포 가수인 백룡은 자신의 두 번째 앨범인 ‘광주City’를 통해 5·18과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일본 시민사회단체 이외에 종교계에서도 5·18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1981년 5·18 관련 자료들을 모아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은밀하게 전달된 5·18의 기록을 일본어,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 또 일본 프로테스탄트협의회는 한국통신 책자를 발간해 한국 민주화운동 관련 정보를 모아 세계에 전했다. 일본 시민사회단체나 재일교포들이 빨리 5·18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유신독재 때부터 한국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했기 때문이다.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1924∼2022)는 1973년부터 1988년까지 ‘TK生(생)’이라는 필명으로 일본의 대표적 지성지 세카이(世界)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해 가혹한 군사통치와 민주화운동을 알렸다. 세카이는 5·18 당시의 실상을 적은 ‘어둠의 기록’ 기획 칼럼을 개재했다. 5·18항쟁 기간 초기인 1980년 5월 19, 20일경 일본 기자들은 광주 상황을 신속하게 알렸다. 아오이 가쓰오 전 아사히신문 사진기자(1934∼2017)도 5·18 당시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는 사진을 담아 일본 사회에 전했다. 18일 일본 도쿄에서 5·18민주화운동 제45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기념식은 김대중재단 일본위원회와 일본민주연합이 주관한다. 김상열 전 일본민주연합 대표(64)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직후 20, 30대 재일교포 청년들도 계엄을 반대하는 집회에 많이 참여했다”며 “5·18 기념식에 참석해 민주주의를 배운 영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사람들도 5·18을 민주주의 사회의 자랑이라고 높게 평가한다”며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각오로 5·18 정신을 계승하고 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45년 만에 생사를 함께했던 동지들을 만나 너무 행복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매일이 5·18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푸른 눈의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미국인 데이비드 돌린저(한국명 임대운·71) 씨는 15일 오후 6시 반 광주 서구의 한 식당에서 1980년 5월 옛 전남도청, 금남로를 함께 지켰던 시민군 20명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식당 안에는 ‘환영합니다. 시민군 임대운 5·18민중항쟁 시민군 일동’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심정보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상임부회장(72)이 돌린저 씨와 악수하며 “첫 명예 시민군으로 임명한다”고 하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심 부회장은 “돌린저 씨는 5·18 당시 전남도청과 금남로에 있던 외국인 중 한 명이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으로 웨스트체스터대를 졸업한 돌린저 씨는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전남 영암보건소에서 근무했다. 그는 5·18 당시 광주에 머물며 민주항쟁을 목격했다. 돌린저 씨는 1980년 5월 26일 시민군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에 들어가 계엄군 무전기를 감청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푸른 눈의 시민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자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고 윤상원 열사의 외신 기자회견 통역을 맡아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렸다. 돌린저 씨는 이후 1981년까지 미군 기지에서 강사로 근무하며 광주와 한국의 민주화운동 실상을 미국에 알리고 유엔인권위원회에 광주 목격담을 담은 인권 침해 보고서를 제출했다. 2022년 회고록 ‘나의 이름은 임대운’을 출간하고 인세 전액을 기금으로 조성해 5월 당사자와 유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돌린저 씨는 5·18 이후 40여 년 동안 의료기기 회사에 근무했다. 현재는 인도의 한 의료기기 회사 수석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5·18은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살 수 있는 가치를 심어 줬다”며 “광주 시민들은 현재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이어 “45년 전에 한 일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돌린저 씨는 14일 광주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원 김태훈 씨(63)는 “돌린저 씨는 45년 동안 5·18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갖고 성원을 해줬다. 돌린저 씨처럼 오월 광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45년 만에 생사를 함께 했던 동지들을 만나 너무 행복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매일이 5·18이다.”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푸른 눈의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미국인 데이비드 돌린저 씨(71·한국 이름 임대운)는 15일 오후 6시 반 광주 서구의 한 식당에서 1980년 5월 옛 전남도청, 금남로를 함께 지켰던 시민군 20명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식당 안에는 ‘환영합니다. 시민군 임대웅. 5·18민중항쟁 시민군 일동’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심정보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상임부회장(72)이 돌린저 씨와 악수하며 “명예 시민군으로 임명한다”고 하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심 부회장은 “돌린저 씨는 5·18 당시 전남도청과 금남로에 있던 외국인 중 한명이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미국 펜실베니아 출신으로 웨스트체스터대를 졸업한 돌린저 씨는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영암보건소에서 근무했다. 그는 5·18 당시 광주에 머물며 민주항쟁을 목격했다. 돌린저 씨는 1980년 5월 26일 시민군 최후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에 들어가 계엄군 무전기를 감청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푸른 눈의 시민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자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고 윤상원 열사의 외신 기자회견 통역을 맡아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렸다.돌린저 씨는 이후 1981년까지 미군 기지에서 강사로 근무하며 광주와 한국의 민주화 운동 실상을 미국에 알리고 유엔인권위원회에 광주 목격담을 담은 인권침해 보고서를 제출했다. 2022년 회고록 ‘나의 이름은 임대운’을 출간하고 인세 전액을 기금으로 조성해 5월 당사자와 유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돌린저 씨는 이후 40여년 동안 의료기기 회사에 근무했다. 현재는 인도의 한 의료기기 회사 수석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5·18은 내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살수 있는 가치를 심어줬다”며 “광주 시민들은 현재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이어 “45년 전에 한 일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돌린저 씨는 14일 광주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5·18 민주화 운동 부상자회 회원 김태훈 씨(63)는 “돌린저 씨는 45년 동안 5·18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갖고 성원을 해줬다. 돌린저 씨처럼 오월 광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980년 5월 당시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은 재일한국 교포들과 함께 신군부의 폭력에 희생된 광주 시민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45년 동안 다양한 문화 운동으로 5·18 광주 시민들에 대한 지지를 보여줬다. 5·18이 발생한 지 45년이 흐른 현재 일본 사회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제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볼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5·18 민주화운동은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사회는 물론 독재에 시달리는 동남아시아에 민주주의 나침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월지기 김용철 씨는 15일 “제 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한국 근대사에 애착이 큰 일본인 32명이 각자 경비를 내고 참석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일본의 경우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연합군(미군정)에 의해 민주주의가 정착됐지만, 한국은 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이라고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이혜원 5·18기념재단 글로컬센터 부장은 “미안마 등 동남아 국가에서 5·18을 겪은 한국의 민주주의 사례를 배우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동남아 사람들은 한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12·3 불법 비상계엄이 일어난 것에 놀라고, 이를 빠르게 극복한 것에 또 다시 놀라는 분위기”이라고 설명했다.5·18이 세계화 된 것은 일본 시민운동가들과 재일 교포들의 꾸준한 지지도 한몫했다.일본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는 1980년 5월 기사로 광주 참상을 접하고 곧바로 판화를 새겼다. 다에코는 1981년 ‘오월의 바람’이라 명칭을 붙여 2개월 동안 판화전을 열며 오월 광주와 함께 했다. 그는 판화전을 통해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의 빈곤한 정신을 각성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판화는 달력으로도 제작돼 5·18의 진실을 세계에 알렸다. 재일 교포 시인들은 5·18 1주년을 맞아 1981년 5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한국어로 광주항쟁시선 ‘아아, 光州(광주)여 無等山(무등산)이여’를 발행했다. 책은 한국어로 작성된 5·18 연대시집이다. 시집에 “비록 몸은 해외에 있지만 그 뜻과 마음은 5·18 희생자들과 함께 있는 외침이다. 또 광주 학살자들에 대한 추상같은 고발장”이라고 적혔다.재일 교포들의 5·18과 연대는 광주 연대시집 발간으로도 이어졌다. 일본 시인 미야바야시 히코키치( 宮林彦吉)는 ‘광주만이 빛나고 있다’를 통해 5·18 피해자들을 기렸다. 재일교포 가수인 백룡은 자신의 두 번째 앨범인 ‘광주City’를 통해 5·18과 광주 진실을 알렸다.일본 시민사회단체 이외에 종교계에서도 5·18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1981년 5·18관련 자료들을 모아 자료집으로 발간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은밀하게 전달된 5·18의 기록을 일본어,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 또 일본 프로테스탄트협의회는 한국통신 책자를 발간해 한국 민주화운동 관련 정보를 모아 세계에 전했다.일본 시민사회단체나 재일교포들이 빨리 5·18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유신독재부터 한국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했기 때문이다.고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1924~2022)는 1973년부터 1988년까지 ‘TK生(생)’이라는 필명으로 일본의 대표적 지성지 세카이(世界)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해 가혹한 군사통치와 민주화운동을 알렸다. 세카이는 5·18 당시의 실상을 적은 ‘어둠의 기록’ 기획칼럼을 개재했다.5·18항쟁 기간 초기인 1980년 5월 19, 20일경 일본 기자들은 광주상황을 신속하게 알렸다.고 아오이 가쓰오 전 아사히 신문 사진기자(1934∼2017)도 5·18당시 게엄군이 광주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는 사진을 담아 일본 사회에 전했다.18일 일본 도쿄에서 5·18민주화운동 제 45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기념식은 김대중재단 일본위원회와 일본 민주연합에 주관한다. 김상열 전 일본민주연합대표(64)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직후 20~30대 재일 교포 청년들도 계엄을 반대하는 집회에 많이 참여했다”며 “5·18기념식에서 참석해 민주주의를 배운 영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사람들도 5·18을 민주주의 사회의 자랑이라고 높게 평가한다”며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각오로 5·18정신을 계승하고 전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980년 5월 미국 신문과 뉴스는 광주 참상을 연일 보도했다. 미국에 사는 교포들은 광주에서 학살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접하고 울분을 터뜨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항쟁 기간이었던 1980년 5월 26일 미국 시카고에서는 오월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첫 집회가 열렸다. 유학생과 교포 600여 명은 이날 시카고 시내 올버니 공원에 모여 오월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전두환은 사임하라”는 첫 목소리를 냈다. 시카고가 한국보다 시차가 14시간 늦은 것을 감안하면 오월 진상 규명 첫 외침이 울려 퍼질 시각에 신군부는 시민 최후 항쟁지인 전남도청 유혈 진압을 강행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고재대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시카고 교포들이 5·18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첫 집회를 열고 고립무원 광주에 따뜻한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고 말했다. 광주의 참상이 미국에 빠르게 알려진 것은 언론, 종교, 봉사단체 등의 노력 덕분이었다. 5·18에 공헌한 광주 명예시민 9명 중 4명은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 이들 4명은 미국인 3명, 독일인 1명이다. 데이비드 돌린저 씨는 14일 9번째 5·18 관련 광주명예시민이 됐다. 그는 5·18 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전남 영암보건소에서 근무하며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활동했다. 5·18 시민군 대변인 고 윤상원 열사의 외신 기자회견 통역을 맡아 오월 진실을 세계에 알렸다. 또 다른 명예시민은 5·18 당시 수녀기도모임을 주도한 미국인 고 문말린 수녀다. 5·18을 세계 44개 대학에 알린 탐사보도 전문기자 미국인 팀 셔록과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기자도 명예시민이다. 광주 참상을 접한 재미 교포들은 5·18 직후 잇따라 신군부를 규탄하는 집회에 나섰다. 이때 오월 진실을 알리기 위해 결성된 단체가 호남향우회다. 200만 호남향우회 회원들은 5·18 세계화의 일등공신이다. 재미 교포 300여 명은 1980년 6월 1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아드모어 공원에 모여 5·18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교포들은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광주 학살 진상규명 성명서를 낭독하고 결의문을 썼다. 총궐기대회에서 재미교포 5만 명의 서명을 받아 카터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보내자는 행동강령도 채택됐다. 30여 개 교포단체 1000여 명도 1980년 6월 8일 범교포구국궐기대회를 열고 신군부를 규탄했다.이어 시카고에서는 1985년부터 2년 동안 5·18기념사업 및 위령탑 건립운동을 펼쳐 성금을 모금해 전달했다. 1986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시에서는 5월 10일을 광주의 날로 선포하고 선언문을 발표했다. 5·18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해외 동포들 상당수가 오월 진상 규명 운동에 참여했다. 동포들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취소하는 등 논란이 불거지자 적극 대응했다. 동포들은 2012년 세계 40여 곳에서 5·18기념식을 개최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2년부터 매년 5월 18일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제정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해외에서 기념일로 제정된 건 처음이다. 미국 교포들은 45년 동안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18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인단체들이 연합해 제45주년 5·18 기념식 4개를 개최한다. 김철웅 로스앤젤레스 5·18기념사업회 회장(68)은 5·18 정신 계승과 세계화에 힘쓰고 있다. 김 회장은 “전두환 정권과 윤석열 정권 때 위법한 비상계엄이 반복됐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오월 정신은 현재에도 필요한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항상 시민정신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5·18 기념식은 교포들이 참여한 가운데 세계 30여 곳에서 열린다. 미국에서는 5·18 기념식이 18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처럼 미국 교포들이 오월 정신을 계승하고 세계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정광일 재외국민유권자연대 공동대표는 “미국 사람들도 5·18을 세계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평가한다. 미얀마 등에서는 5·18을 민주주의 발전 모델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4일 새벽 전남 장흥에서 역주행 차량과의 충돌 사고로 ‘투잡’을 뛰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30대 가장이 숨졌다.전남 장흥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 57분쯤 장흥군 유치면 늑용리의 왕복 2차로 도로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1t 화물차가 정면 충돌한 채 멈춰 있는 것을 지나가던 운전자가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사고 당시 SUV는 장흥에서 영암 방향으로, 1t 화물차는 영암에서 장흥 방향으로 주행 중이었다.블랙박스 영상 확인 결과 SUV 차량은 사고 지점 약 2km 전부터 역주행을 하다 정상 방향으로 주행하던 1t 화물차와 충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로 SUV 운전자 나모 씨(59)와 1t 트럭 운전자 주모 씨(39)가 현장에서 숨졌다. 두 차량 모두 동승자는 없었다.가해 차량 운전자인 나 씨는 강진 해안가에서 낚시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 차량이 상당한 거리를 역주행한 것으로 확인돼 음주 여부 등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피해자인 주 씨는 7세와 6세 자녀, 아내와 함께 전남 목포에 거주하며 1인 가게를 운영해온 가장이다. 생계가 넉넉하지 않아 주 2회 물류 배송 일을 병행하며 가족을 부양해왔다. 그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영암·장흥·강진 지역 자영업체에 납품할 물품을 배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당일에도 평소처럼 오전 0시에서 1시 사이 나주의 한 물류업체에 도착해 약 2시간 동안 물품을 분류하고 트럭에 적재한 뒤, 오전 3시경 장흥으로 향하던 길에 변을 당했다.주 씨로부터 물품을 받아온 거래처 관계자는 “술도 거의 하지 않고 늘 성실하게 일하던 분이었다”며 “가게 운영과 배송을 병행하며 책임감 있게 살아왔는데, 이런 사고를 당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주 씨는 10여 년 전부터 목포를 비롯한 전남 지역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지인에 따르면 그는 봉사단체 임원을 맡아 바쁜 와중에도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데 힘써왔다. 지인은 “항상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주 씨의 빈소는 목포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경찰은 가해 차량 운전자에 대한 부검을 통해 음주 여부를 확인하는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980년 5월 미국 신문과 뉴스는 광주 참상을 연일 보도했다.미국에 사는 교포들은 광주에서 학살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접하고 울분을 터뜨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항쟁 기간이었던 1980년 5월 26일 미국 시카고에서는 오월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첫 집회가 열렸다. 유학생과 교포 600여명은 이날 시카고 시내 알바니 공원에 모여 오월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전두환은 사임하라”는 첫 목소리를 냈다.시카고가 한국보다 시차가 14시간 늦은 것은 감안하면 오월 진상 규명 첫 외침이 울려 퍼질 시각에 신군부는 시민 최후 항쟁지인 전남도청 유혈진압을 강행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고재대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시카고 교포들이 5·18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첫 집회를 열고 고립무원 광주에 따뜻한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고 말했다.광주의 참상이 미국에 빠르게 알려진 것은 언론, 종교, 봉사단체 등의 노력 덕분이었다. 5·18에 공헌한 광주 명예시민 9명 중 4명은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 이들 4명은 미국인 3명, 독일인 1명이다.데이비드 돌린저 씨는 14일 9번째 5·18관련 광주명예시민이 됐다. 그는 5·18당시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전남 영암보건소에서 근무하며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활동했다. 5·18시민군 대변인 고 윤상원 열사의 외신 기자회견 통역을 맡아 오월 진실을 세계에 알렸다. 또 다른 명예시민은 5·18 당시 수녀기도모임을 주도한 미국인 고 문말린 수녀다, 5·18을 세계 44개 대학에 알린 탐사보도 전문기자 미국인 팀 셔록과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기자도 명예시민이다.광주 참상을 신속한 접한 재미 교포들은 5·18직후 잇따라 신군부를 규탄하는 집회에 나섰다. 이때 오월 진실을 알리기 위해 결성된 단체가 호남향우회다. 200만 호남향우회 회원들은 5·18세계화의 일등공신이다.재미 교포 300여명은 1980년 6월 1일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아드모아 공원에 모여 5·18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교포들은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광주 학살 진상규명 성명서를 낭독하고 결의문을 썼다. 총궐기대회에서 재미교포 5만 명의 서명을 받아 카터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보내자는 행동강령도 채택됐다. 30여개 교포단체 1000여명도 1980년 6월 8일 범교포구국궐기대회를 열고 신군부를 규탄했다.이어 시카고에서는 1985년부터 2년 동안 5·18기념사업 및 위령탑 건립운동을 펼쳐 성금을 모금해 전달했다. 1986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시에서는 5월 10일을 광주의 날로 선포하고 선언문을 발표했다.5·18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해외 동포들 상당수가 오월 진상규명 운동에 참여했다. 동포들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취소하는 등 논란이 불거지자 적극 대응했다. 동포들은 2012년 세계 40여 곳에서 5·18기념식을 개최하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2년부터 매년 5월 18일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제정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해외에서 기념일로 제정된 건 첫 사례다. 미국 교포들은 45년 동안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18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인단체들이 연합해 제 45주년 5·18 기념식 4개를 개최한다. 김철웅 로스앤젤레스 5·18기념사업회 회장(68)은 5·18 정신계승과 세계화에 힘쓰고 있다.김 회장은 “전두환 정권과 윤석열 정권 때 위법한 비상계엄이 반복됐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오월 정신은 현재에도 필요한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항상 시민정신이 깨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올해 5·18기념식은 교포들이 참여한 가운데 세계 30여 곳에서 열린다. 미국에서는 5·18기념식이 18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처럼 미국 교포들이 오월 정신을 계승하고 세계화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정광일 재외국민유권자연대 공동대표는 “미국 사람들도 5·18을 세계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평가한다. 미얀마 등에서는 5·18을 민주주의 발전 모델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980년 5월 광주는 외로운 섬이었다. 신군부 폭력에 그해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시민 166명이 숨지고 2617명이 다쳤지만 진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시민 500명은 1981년 5월 18일 희생자들이 안장된 광주 북구 망월동 묘역에서 첫 추모식을 가졌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첫 추모식에서 5·18 진상 규명 성명서를 낭독하다 옥고 9개월을 치렀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립된 광주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학살 중단, 신군부 퇴진을 외쳤던 해외 교포들이 있었다. 5·18 당시 독일, 미국, 일본 교포사회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정 전 회장은 13일 본보와 통화에서 “해외 교포들이 5·18 당시 한국의 민주주의를 바라는 집회를 가졌다는 것을 몰랐다. 광주는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5·18은 1987년 6월 항쟁과 2024년 12·3 비상계엄 상황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보루가 됐다. 해외 동포들은 5·18과 민주주의를 위한 따뜻한 연대를 45년째 이어가고 있다. 1980년 5월 22일 독일 제1공영방송은 광주에서 군인이 무자비하게 시민을 학살하는 비극을 처음 방영했다. 5·18 참상은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취재했다. 힌츠페터 기자는 독일 제1공영방송 ARD 산하 NDR의 일본 특파원이었다. 그는 신군부의 허락 없이 광주에 잠입해 신군부의 잔인한 시민 학살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에 알렸다. 신군부는 당시 언론을 통제해 국내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지 못했다. 독일 동포들은 신군부의 학살을 알고 분노하며 서로 연락해 정보를 교환했다. 교포들은 방송 1주일 후인 5월 28일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투쟁하는 조국의 애국시민을 위한 재베를린 한국인 모임’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같은 날 프랑크푸르트 니콜라이 교회에서도 교포들이 모여 단식투쟁에 돌입했다.교포 500명은 5월 30일 베를린 번화가인 쿠담에서 ‘투쟁하는 광주시민과 연대하는 데모와 학살성토대회’를 열었다. 교포들은 올리버 광장에서 비텐베르크 광장까지 시가행진을 하며 5·18의 진실을 알리는 전단지를 나눠 줬다. 5·18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교포들은 독일·한국인 부부, 파독 간호사·광부, 유학생들이었다. 파독 광부 출신인 교포 이종성 씨(82)는 5월 31일 본 베토벤 광장에서 개최된 광주학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에 절박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이 씨는 5·18 직후 5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열린 5·18 진상 규명 집회에 참여했다. 이 씨는 신군부에 의해 고 김대중 대통령이 사형당할 처지에 놓이자 동료 10여 명과 한 달 동안 총리 관저 앞에서 24시간 1인 시위를 벌였다. 또 독일 통일의 초석을 쌓은 서독 전 총리이자 사회민주당 당수인 빌리 브란트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씨는 “신군부가 김대중 대통령을 사형에 처하려고 하자 세계에서 이를 막으려는 구명운동이 활발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1980년대 초 신군부가 김 대통령의 사형 집행 직전에 빌리 브란트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회의에서 세계 정치인들의 연명을 받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며 압박한 것이 큰 효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파독 광부 출신인 교포 선경석 씨(77)도 본 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1970년 초 베트남 백마부대 29연대 작전과 사병으로 근무했는데 연대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전 전 대통령은 사단장 앞에서 지휘봉을 흔들고 인명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2인 이상 집결 금지 지시를 무시하고 단체구보를 뛰게 할 정도로 독선적이었다. 사병들 사이에서 전 전 대통령의 무리한 자신감의 배경은 군대 사조직(하나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는 상관인 전 전 대통령을 미워하지 않았다. 선 씨는 5·18 뉴스를 보고 상관이던 전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쓴 편지는 “전 전 대통령 당신은 이제 장군도, 상관도 아니다. 빨리 퇴임해 민주주의를 되살리라” 등의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선 씨는 “편지를 5·18 직후 한국 육군본부로 보냈는데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교포사회는 5·18 직후 한독친선 등을 결성해 현지 교회들과 연대 속에 5월 진상 규명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교포들은 5·18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신을 유엔 사무총장과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독일과 유럽 교포들은 5·18이 되면 오월민중제 등을 개최하며 45년째 추모하고 있다. 독일 교포들은 2, 3세대들이 5·18을 알 수 있도록 따뜻한 연대가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980년 5월 광주는 외로운 섬이었다. 신군부 폭력에 그해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시민 166명이 숨지고 2617명이 다쳤지만 진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시민 500명은 1981년 5월 18일 희생자들이 안장된 광주 북구 망월동 묘역에서 첫 추모식을 가졌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첫 추모식에서 5·18진상규명 성명서를 낭독하다 옥고 9개월을 치렀다.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립된 광주,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학살중단, 신군부 퇴진을 외쳤던 해외 교포들이 있었다. 5·18 당시 독일, 미국, 일본 교포사회에서 한국 민주주의 염원하는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정 전 회장은 13일 본보와 통화에서 “해외 교포들이 5·18 당시 한국의 민주주의를 바라는 집회를 가졌다는 것을 몰랐다. 광주는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5·18은 1987년 6월 항쟁은 2024년 12·3 비상계엄 상황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보루가 됐다. 해외 동포들은 5·18과 민주주의를 위한 따뜻한 연대를 45년째 이어가고 있다. 1980년 5월 22일 독일 제 1공영방송은 광주에서 군인이 무자비하게 시민을 학살하는 비극을 첫 방영했다. 5·18참상은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취재했다. 힌츠페터 기자는 독일 제 1공영방송 ARD산하 NDR의 일본 특파원이었다. 그는 신군부의 허락 없이 광주에 잠입해 신군부의 잔인한 시민학살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에 알렸다. 신군부는 당시 언론을 통제해 국내언론은 진실을 보도하지 못했다.독일 동포들은 신군부 학살을 알고 분노하며 서로 연락해 정보를 교환했다. 교포들은 방송 1주일 후인 5월 28일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투쟁하는 조국의 애국시민을 위한 재 베를린 한국인 모임’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같은 날 프랑크푸르트 니콜라이 교회에 모여 단식투쟁에 돌입했다.교포 500명은 5월 30일 베를린 번화가인 쿠담에서 ‘투쟁하는 광주시민과 연대하는 데모와 학살성토대회’를 열었다. 교포들은 올리버 광장에서 비텐베르그 광장까지 시가행진을 하며 5·18진실을 알리는 전단지를 나눠줬다. 5·18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교포들은 독일·한국인 부부, 파독 간호사·광부, 유학생들이었다.파독광부 출신인 교포 이종성 씨(82)는 5월 31일 본 베토벤 광장에서 개최된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에 절박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이 씨는 5·18직후 5개월 동안 한달에 한번씩 열린 5·18 진상규명 집회에 참여했다. 이 씨는 신군부에 의해 고 김대중 대통령이 사형을 당할 처지에 놓이자 동료 10여명과 한 달 동안 수상 관저 앞에서 24시간 1인 시위를 벌여다. 또 독일 통일의 초석을 쌓은 서독 전 총리이자 사회민주당 당수인 빌리 발란트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이 씨는 “신군부가 김대중 대통령을 사형에 처하려고 하자 세계에서 이를 막으려는 구명운동이 활발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1980년대 초 신군부가 김대중 대통령의 사형 집행 직전에 빌리 발란트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회의에서 세계 정치인들의 연명을 받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며 압박한 것이 큰 효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파독 광부 출신인 교포 선경석 씨(77)도 본 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1970년 초 월남 백마부대 29연대 작전과 사병으로 근무했는데 연대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전 전 대통령은 사단장 앞에서 지휘봉을 흔들고 인명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2인 이상 집결 금지 지시를 무시하고 단체구보를 뛰게 할 정도로 독선적이었다. 사병들 사이에서 전 전 대통령의 무리한 자신감의 배경은 군대 사조직(하나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는 상관인 전 전 대통령을 미워하지 않았다. 선 씨는 5·18 뉴스를 보고 상관이던 전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쓴 편지는 “전 전 대통령 당신은 이제 장군도, 상관도 아니다. 빨리 퇴임해 민주주의를 되살리라” 등의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선 씨는 “편지를 5·18 직후 한국 육군본부로 보냈는데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독일 교포사회는 5·18직후 한독친선 등을 결성해 현지 교회들과 연대 속에 5월 진상규명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교포들은 5·18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신을 유엔(UN) 사무총장과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독일과 유럽 교포들은 5·18이 되면 오월민중제 등을 개최하며 45년째 추모하고 있다. 독일 교포들은 2~3세대들이 5·18을 알 수 있도록 따뜻한 연대가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60대 남성이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집에서 고독사 한 채 발견됐다.12일 경찰 등에 따르면 9일 광주 북구 원룸에서 김재귀 씨(61·사진)가 숨져있는 것을 지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김 씨가 돌연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김 씨는 동일실업고 2학년 재학 중이던 1980년 당시 계엄군에 맞선 시민군으로 활동했다. 5월 26일 계엄군의 광주 진입 소식이 전해지자 5·18기동타격대에 자원했고, 수송 차량을 지키는 7조 대원으로 활동했다. 기동타격대는 10, 20대 청년 50명으로 구성돼 도심 방어를 맡았다.김 씨는 5월 28일 오전 6시경 계엄군이 시민군 최후 항쟁지인 전남도청을 진압했을 때 자수했다. 그 과정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왼쪽 손바닥 관통상을 입었다. 이후 상무대 영창에서 고문을 받고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뒤 1980년 10월 30일 내란 혐의로 장기 4년,단기 3년을 선고받았다. 형 집행은 면제됐지만 학교에서는 강제퇴학당했다. 이후 김 씨는 45년간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행방 불명자 수색 등에 힘썼다. 그의 장례는 기동타격대장 동지회장으로 치러진다. 유해는 14일 국립 5·18민주묘지 2묘역에 안장된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광주 서구는 지난해 11월 기초수급자 1만8578명, 장애인 1만3531명, 저소득 및 한부모 가정 4064명, 다문화 가정 2390명 등 소외계층을 돕는 ‘소설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하는 ‘아너스’를 만들었다. 아너스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000만 원에서 1억 원을 기부하는 주민들이 참여한다. 서구는 아너스 가입자가 73명이며, 모금액은 25억6000만 원이라고 7일 밝혔다. 아너스 가입자에는 박철홍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추경화 권동식 아벤티노재단 이사장, 최무진 나눔테크 대표, 김동원 미래와희망산부인과 대표원장 등이 있다. 아너스 가입자들이 마련한 기부금은 매달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에 쓰이고 있다. 1월에는 아너스 기부금으로 다문화 가정 15곳 52명에게 1인당 항공권 구입비와 체류비 50만 원을 지원했다. ‘엄마나라 외갓집 방문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이 사업은 2년 이상 모국 방문이 없는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생활 속 나의 삶 이야기’라는 수기 공모를 통해 지원자를 선정했다. 다문화여성 김모 씨는 “아너스의 도움으로 11년 만에 필리핀에 사는 친정 어머니를 만났는데 귀국 5일 만에 돌아가셨다”며 “어머니를 못 만났다면 평생 가슴에 묻고 큰 아픔으로 남았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2월에는 돌봄 청년 지원사업인 ‘함께하는 돌봄! 겨울 걷고 봄을 꿈꾸다’를 추진했다. 돌봄 청년은 아동복지시설 보호가 끝나 홀로 자립을 준비하거나 가족을 돌보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이다. 서구는 돌봄이 필요한 청년 30명에게 1인당 100만 원, 취업 희망 청년 80명에게는 1인당 50만 원을 각각 지원했다. 3월에는 아너스 기부금으로 산불 피해 지역 이재민을 돕는 데 힘을 보탰다. 서구는 당시 산불 피해 성금으로 4000만 원을 지원했으며, 이 가운데 1430만 원은 아너스에서 후원했다. 지난달 19일에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빛과 바람의 라이딩’ 행사를 열었다. 장애인 40명과 비장애인 100명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영산강 20km를 달렸다. 김이강 광주 서구청장은 행사를 위해 안대를 쓰고 장애인 시선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 등 철저히 연습했다. 시각장애인 이병하 씨(47)는 “함께 자전거를 탄 김 구청장이 풍경 하나하나를 설명해줘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에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장애인 부부 6쌍에게 예식과 혼수를 마련해주고, 신혼여행을 갈 수 있도록 도왔다. 장애인 김모 씨 부부는 “혼인신고 이후 40년 만에 결혼식을 올렸고, 오랜만에 친정 아버지를 만나 화해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달 24일에는 가정의 달을 맞아 저소득층 부부 200명을 초청해 ‘별빛 아래 가족극장’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행사는 가족과 부부가 함께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 구청장은 “도시 브랜드를 ‘착한도시 서구’로 선포한 지 1년을 맞아 아너스 회원 73명의 따뜻한 후원이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소외계층에 온정으로 다가섰다”며 “아너스는 지역 복지 공백을 메우는 착한 동행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광주시 서구는 지난해 11월, 기초수급자 1만 8578명, 장애인 1만 3531명, 저소득 및 한부모 가정 4064명, 다문화가정 2390명 등 소외계층을 돕는 ‘소설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하는 ‘아너스’를 만들었다. 아너스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000만 원에서 1억 원을 기부하는 주민들이 참여한다.서구는 아너스 가입자가 73명이며, 모금액은 25억 6000만 원이라고 7일 밝혔다. 아너스 가입자에는 박철홍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추경화·권동식 아벤티노 재단 이사장, 최무진 나눔테크 대표, 김동원 미래와희망산부인과 대표원장 등이 있다. 아너스 가입자들이 마련한 기부금은 매달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에 쓰이고 있다.1월에는 아너스 기부금으로 다문화가정 15곳 52명에게 1인당 항공권 구입비와 체류비 50만 원을 지원했다. ‘엄마나라 외갓집 방문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이 사업은 2년 이상 모국 방문이 없는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생활 속 나의 삶 이야기’라는 수기 공모를 통해 지원자를 선정했다. 다문화여성 김모 씨는 “아너스의 도움으로 11년 만에 친정인 필리핀에 사는 어머니를 만났는데 귀국 5일 만에 돌아가셨다”며 “어머니를 못 만났다면 평생 가슴에 묻고 큰 아픔으로 남았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2월에는 돌봄 청년 지원사업인 ‘함께하는 돌봄! 겨울 걷고 봄을 꿈꾸다’를 추진했다. 돌봄 청년은 아동복지시설 보호가 끝나 홀로 자립을 준비하거나 가족을 돌보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이다. 서구는 돌봄이 필요한 청년 30명에게 1인당 100만 원, 취업 희망 청년 80명에게는 1인당 50만 원을 각각 지원했다.3월에는 아너스 기부금으로 산불 피해 지역 이재민을 돕는 데 힘을 보탰다. 서구는 당시 산불 피해 성금으로 4000만 원을 지원했으며, 이 가운데 1430만 원은 아너스에서 후원했다.지난달 19일에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빛과 바람의 라이딩’ 행사를 열었다. 장애인 40명과 비장애인 100명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영산강 20㎞를 달렸다. 김이강 광주 서구청장은 행사를 위해 안대를 쓰고 장애인 시선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 등 철저히 연습했다. 시각장애인 이병하 씨(47)는 “함께 자전거를 탄 김 구청장이 풍경 하나하나를 설명해줘 좋았다”고 말했다.지난달 24일에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장애인 부부 6쌍에게 예식과 혼수를 마련해주고, 신혼여행을 갈 수 있도록 도왔다. 장애인 김모 씨 부부는 “혼인신고 이후 40년 만에 결혼식을 올렸고, 오랜만에 친정아버지를 만나 화해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이달 24일에는 가정의 달을 맞아 저소득층 부부 200명을 초청해 ‘별빛 아래 가족극장’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행사는 가족과 부부가 함께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김 구청장은 “도시 브랜드를 ‘착한도시 서구’로 선포한 지 1년을 맞아, 아너스 회원 73명의 따뜻한 후원이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소외계층에게 온정으로 다가섰다”며 “아너스는 지역 복지 공백을 메우는 착한 동행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세계 평화·인권 활동가들이 15일부터 사흘간 광주에서 모든 반평화적 상황에 맞서 누구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인권도시 연대 방안을 모색한다. 광주시는 15∼17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2025 세계인권도시포럼을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올해 포럼 주제는 ‘평화와 연대: 전쟁과 폭력에 저항하는 인권도시’다. 포럼은 개폐회식, 전체회의, 주제회의, 특별회의, 네트워크회의, 국제인권연수, 특별·부대행사 등 7개 분야, 27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개회 기조연설은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가 맡는다. 서 교수는 1974년 유학생 신분으로 서울대 재학 중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1974년 국제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선정한 세계의 양심수로 국제사회에 주목받았다. 개회식 직후 ‘평화를 향한 지구적 연대’를 주제로 한 전체회의가 열린다. 신형식 ㈔국민주권연구원장이 좌장을 맡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양심의 회복을 주제로 발표한다. 주제회의는 인권단체들이 모여 어린이·청소년, 장애, 이주, 마을, 여성, 사회적 경제, 지구촌 반폭력 문화 확산 등 7개 주제에 대해 논의한다. 박용수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장은 “많은 시민이 세계인권도시포럼에 참여해 평화의 가치를 함께 체험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세계 평화·인권 활동가들이 15일부터 사흘간 광주에서 모든 반평화적 상황에 맞서 누구나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인권도시 연대 방안을 모색한다.광주시는 15~17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2025 세계인권도시포럼을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올해 포럼 주제는 ‘평화와 연대: 전쟁과 폭력에 저항하는 인권도시’다. 포럼은 개폐회식, 전체회의, 주제회의, 특별회의, 네트워크회의, 국제인권연수, 특별·부대행사 등 7개 분야, 27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개회 기조연설은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가 맡는다. 서 교수는 1974년 유학생 신분으로 서울대 재학 중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1974년 국제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선정한 세계의 양심수로 국제사회에 주목받았다.개회식 직후 ‘평화를 향한 지구적 연대’를 주제로 한 전체회의가 열린다. 신형식 ㈔국민주권연구원장이 좌장을 맡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양심의 회복을 주제로 발표한다. 주제회의는 인권단체들이 모여 어린이·청소년, 장애, 이주, 마을, 여성, 사회적 경제, 지구촌 반폭력 문화확산 등 7개 주제에 대해 논의한다. 박용수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장은 “많은 시민이 세계인권도시포럼에 참여해 평화의 가치를 함께 체험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일 전남 완도의 한 리조트에서 투숙객 14명이 일산화탄소로 추정되는 가스에 중독돼 병원 치료를 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전남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56분경 완도군 완도읍의 한 리조트에서 숙박객들이 두통과 어지럼증 등 가스 중독 증세를 보여 119에 신고가 접수됐다. 중독 증상을 보인 투숙객은 총 14명으로, 이 중 어린이 5명을 포함한 대부분이 가족 단위 관광객이었다. 119구급대는 이들을 광주, 전남 순천, 완도 지역 병원 8곳으로 분산 이송했다. 이 가운데 50대 여성 등 4명은 입원 치료를 받았고,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나머지 10명은 간단한 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다. 사고가 발생한 리조트는 지하 2층∼지상 7층 규모로, 객실 수는 총 106개다. 당시 21개 객실에 69명이 투숙 중이었으며, 중독 환자 14명은 4층 4개 객실에서 11명, 3층 1개 객실에서 2명, 6층 1개 객실에서 1명이 발생했다. 나머지 투숙객들은 모두 건물 밖으로 대피했고 추가 환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해당 건물은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소방당국은 사고 발생 1시간 반 후인 이날 오전 8시 반경 리조트 4층에서 측정한 일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이었다고 밝혔다. 실내공기 기준 허용 농도 50ppm의 8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경찰과 소방, 가스안전공사는 이날 오후 합동감식을 통해 누출 지점과 원인 규명에 나섰다. 4층에 위치한 보일러실에서 가스가 누출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해당 리조트는 최근 개보수 공사를 거쳐 재개장한 곳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보일러실에 설치된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안전규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경위가 파악되는 대로 리조트 관계자들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올 1월에도 전남 보성의 한 해수욕장 주차장에서 60대 부부가 승합차 안에서 온수 보일러를 틀고 캠핑하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다. 같은 달 충남 서산의 한 캠핑장 텐트 안에서 부자지간인 50대와 10대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완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일 전남 완도의 한 리조트에서 투숙객 14명이 일산화탄소로 추정되는 가스에 중독돼 병원 치료를 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전남도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56분경 완도군 완도읍의 한 리조트에서 숙박객들이 두통과 어지럼증 등 가스 중독 증세를 보여 119에 신고가 접수됐다. 중독 증상을 보인 투숙객은 총 14명으로, 이 중 어린이 5명을 포함한 대부분이 가족 단위 관광객이었다. 119구급대는 이들을 광주, 전남 순천, 완도 지역 병원 8곳으로 분산 이송했다. 이 가운데 50대 여성 등 4명은 입원 치료를 받았고,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나머지 10명은 간단한 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다. 사고가 발생한 리조트는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객실 수는 총 106개다. 당시 21개 객실에 69명이 투숙 중이었으며, 중독 환자 14명은 4층 4개 객실에서 11명, 3층 1개 객실에서 2명, 6층 1개 객실에서 1명이 각각 발생했다. 나머지 투숙객들은 모두 건물 밖으로 대피했고 추가 환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해당 건물은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소방당국은 사고 발생 1시간 반 후인 이날 오전 8시 반경 리조트 4층에서 측정한 일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이었다고 밝혔다. 실내공기 기준 허용 농도 50ppm의 8배에 달하는 수치이다.경찰과 소방, 가스안전공사는 이날 오후 합동감식을 통해 누출 지점과 원인 규명에 나섰다. 4층에 위치한 보일러실에서 가스가 누출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해당 리조트는 최근 개보수 공사를 거쳐 재개장한 곳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보일러실에 설치된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안전규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경위가 파악되는 대로 리조트 관계자들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올 1월에도 전남 보성의 한 해수욕장 주차장에서 60대 부부가 승합차 안에서 온수 보일러를 틀고 캠핑하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다. 같은 달 충남 서산의 한 캠핑장 텐트 안에서 부자지간인 50대와 10대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새벽 시간 광주의 한 아파트 고층 난간에 매달렸던 70대 치매 노인이 시민들의 신속한 신고 덕분에 구조됐다.4일 광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전날 오전 5시 9분쯤 광주 북구 한 아파트에서 “난간에 할머니가 매달려 있다”는 119 신고가 7~8건 연달아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소방 구조대원 24명과 차량 7대, 경찰관 6명과 차량 2대가 출동했다. 구조대원들은 아파트 11층 난간에 매달린 할머니를 확인하고 해당 가구로 올라가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어 강제로 문을 열고 진입했다.집 안에 들어서니 발코니에 70대 여성이 상반신을 난간 밖으로 내밀고 있었다. 두 다리는 난간 틈에 끼어 있었고, 바로 아래 놓인 에어컨 실외기 덕에 간신히 추락하지 않은 상태였다. 구조대는 신고 접수 16분 만에 여성을 무사히 구조했다. 두 다리에 멍이 든 것을 제외하면 큰 외상은 없었다.구조 직후 소방관들이 여성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지만 여성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여성이 혼자 살며 경증 치매를 앓아오다 갑작스럽게 증상이 악화된 것으로 보고 광주의 한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사고 당시는 일출 전 어두운 새벽이라 인적이 드물고 주변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날 이 지역 일출 시간은 오전 5시 39분이었다. 소방 관계자는 “할머니가 혼자 사시다 보니 도울 사람도 없었는데 인근 공원에서 운동 중이던 시민들이 어디선가 들리는 비명을 지나치지 않고 신고해 준 것으로 보인다”며 “시민들의 빠른 신고가 한 생명을 살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자살 시도보다는 치매로 인한 안전사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하고 있다.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