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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21세기까지 역사적 현장을 발로 뛰며 카메라에 담은 사진집 ‘시대의 기억’(사진예술사·사진)이 출간됐다. 1978년부터 23년간 동아일보에서 사진기자로 활약했던 김녕만 사진작가(65)가 40년 넘게 찍은 사진 가운데 271점을 추렸다. 다섯 가지 주제 ‘고향 그리고 새마을운동’과 ‘서울’ ‘민주화로 가는 길’ ‘대통령’ ‘통일을 향하여’로 정리한 사진집은 소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찰나를 모았다. 사진평론가인 김승곤 순천대 석좌교수는 “사진 밑바닥에 예술적으로 과장하지 않은 한국인 고유의 정감이 흐르고 있다”고 평했다. 흑백사진으로만 구성된 사진집은 왠지 모를 처연함이 묻어난다. ‘맞아, 그땐 그랬지’라는 뭉클한 추억과 ‘왜 그런 아픔까지 겪었던가’ 하는 비릿한 회한이 뒤섞여 솟구친다. 특히 첫머리를 장식하는 우리네 고향 정경들과 한창 개발바람이 불었던 1970, 80년대 서울의 뒤안길은 넘기는 페이지마다 손끝을 찡하게 달군다. 작가는 끝자락 작업노트에서 “내 기억은 모호할지라도 카메라의 기억은 오차가 없다”고 말했다. 그 기억이 전달하는 상념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같은 땅 같은 세월을 살아낸 이들이 품은 공감대는 닮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 사실을 사진은 말없이 가리키고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해 4회를 맞는 공장미술제는 독특한 역사를 지녔다. 1999년 경기 이천시의 한 공장에서 첫 행사가 열리면서 이런 이름이 달렸는데 이듬해 2회를 치른 뒤 맥이 끊겼다. 강산이 한 번 바뀌고 2012년 제3회로 부활해 오늘에 이르렀다. ‘공장’이라는 명칭에서 풍기는 산업화나 기계화 느낌과 달리 35세 이하 청년작가들의 참신한 예술적 실험을 소개하려는 취지를 담았다.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는 올해 미술제에는 모두 91명이 출품한 5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중국과 일본 태국 호주 작가 13명도 참여해 저변을 넓혔다. 재밌는 것은 국내외 할 것 없이 영상물이건 사진이건 작가가 직접 등장하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이다. 미술제를 주관한 ‘대안공간 루프’의 문두성 큐레이터는 “최근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 육체를 통해 예술성을 표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품들에는 국가마다 묘하게 다른 메시지가 깃들어 있다. 한국은 소통 부재나 상실감에 대한 반항이 짙게 깔린 작품이 많은 반면, 일본은 ‘1인 가구’를 떠올리게 하는 고독한 느낌과 자조적 유머 코드가 주를 이뤘다. 중국은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소외감이 강렬하고, 태국은 밝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이 많았다. 24일까지. 02-3407-350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가재도구의 변천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요즘 ‘옹기’ 보기가 참으로 힘들다. 집집마다 장독대를 채웠던 옹기들은 도시화와 아파트 범람에 휩쓸려 사라져갔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보유한 옹기 419점도 원 소장자들이 상당수 ‘놔둘 데가 없어’ 기증한 유물이다. 하지만 옹기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삶과 이어진 유구한 전통을 지녔다. 게다가 흔히 떠올리는 ‘잿물을 바른 갈색 독’은 옹기의 강도와 통기성을 탁월하게 높인 18세기 조선 선조들의 지혜가 배인 독창적인 문화유산이다. 천 관장은 “한민족의 발효음식 문화와 과학이 만든 놀라운 산물”이라고 평했다. 민속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소장유물 자료집 ‘옹기’에는 이처럼 너무 익숙해 모르고 지나친 옹기의 이면들이 오롯이 담겼다. 옹기 하면 일반적으로 항아리가 떠오르지만 의외로 쓰임새와 모양새가 다양했다. 물론 민속박물관 소장 옹기도 항아리가 약 27%로 가장 많다. 하지만 벌통이나 미꾸라지 통발처럼 ‘이런 것도 옹기야?’ 싶은 게 꽤 된다. 박물관이 X선을 투과시켜 봤더니, 앞뒤로 입구가 있는 벌통은 내부에 구멍이 여럿 뚫린 이중구조로 만들어져 벌들이 꿀을 저장하도록 돼 있다. 통발은 미꾸라지가 들어가긴 쉬우나 빠져나오기 어려운 형태를 지녔다. 옹기는 단지 저장 목적 외에도 조선시대 여러 생활에 녹아들어 사용됐다. 옹기에 새겨진 문양들도 인상적이다. 옹기 문양은 크게 ‘수화문(手畵紋)’과 ‘도구문’으로 나뉜다. 말 그대로 직접 손으로 그리거나 조각 도구를 이용한 것이다. 수화문은 주로 파상문(波狀紋·물결무늬)이 많고, ‘술테’나 ‘근개’라 부르는 도구를 쓸 땐 횡선문(橫線紋·가로줄무늬)을 새겼다. 이경효 학예연구사는 “예술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지녔다고는 볼 수 없으나, 질박하나 편안한 무늬는 옛 장인들의 자연스러운 깊이가 묻어난다”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가수 백지영이 ‘내 귀에 캔디’를 외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귀란 참 민감한 신체 부위임을. 사탕은커녕 귀지만 가득해도 말이다. 그런데 뭔 생선을 넣자고? 여기서 말하는 ‘바벨 피시’는 사실 한 영국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차용한 것이다. 작고 노란 물고기인데 귀에 넣으면 어떤 언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통역기다. 미국 프린스턴대 ‘번역과 문화 간 의사소통’ 과정의 책임교수인 저자는 바벨 피시가 상징하는 ‘번역’의 세계를 다뤘다. 재미없겠다 싶지만 꽤 쉽고 재밌다. 예를 들면 번역계(?)에는 ‘번역본이 원작을 대신할 수 없다’라는 격언이 있다. 물론이다. 어찌 진품을 이긴단 말인가. 그런데 창작물인데도 굳이 번역서로 행세한 작품이 꽤 존재한다. 1669년 프랑스어로 출간된 ‘포르투갈 수녀의 편지’는 당연히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것으로 소개됐다. 독일시인 릴케는 이 작품에 감명 받아 독일어로도 옮겼다. 그런데 1954년 사실은 한 프랑스인의 창작품이었음이 드러났다. 놀랍다. 번역이 이리도 흥미진진할 줄이야. 저자는 학술적 정의나 ‘번역 잘하는 법’ 따위의 스킬에 매달리지 않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번역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인류학적 이야기를 버무려냈다. “번역에 관한 책을 가장한 대단히 독창적인 문화사”(영국 이코노미스트)란 상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랫동안 번역에 힘써왔다는데, 저자의 다음 ‘창작물’이 기다려진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혹시 최근에 집 주변을 둘러본 적 있는가.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서점이나 철물상을 찾기 힘들다. 어디 그뿐인가. 만화방 오디오가게 양품점…. 10여 년 전이면 어디에나 있던 점포들이 깡그리 씨가 말랐다. 그리고 그곳은 편의점(혹은 커피체인점)이 꿰차고 앉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편의점당 인구는 2075명. 발원한 미국이나 번영한 일본을 제치고 인구 대비 편의점 수 ‘세계 1위’를 차지했다. 1989년 당시 미국계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서울에 처음 들어온 걸 고려하면 성장 속도도 세계 최고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보기에 한국의 ‘편의점 천하’는 다양한 함의를 갖는다. 물론 밤새 영업하고 접근성이 높아 ‘편리한 가게’가 느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이런 과도한 현상에는 분명 시대적 함의를 읽을 수 있는 흐름이 존재한다. 실제로 편의점의 사회적 이미지는 20여 년 동안 크게 두 번 바뀌었다. 초기 편의점은 깔끔한 디스플레이와 영업으로 세련된 문화의 첨병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1990년대 트렌드 드라마에는 젊은 남녀가 자연스레 연애하는 장소로 자주 등장했다. 그리고 21세기 편의점은 전국 어디서나 모든 상점을 흡수 통합한 ‘만능 곳간’으로 변신한다. 요즘은 우편 업무와 세금 대납은 물론 주민 문화공간의 역할까지 한다. 최근 편의점은 다소 복합적이다. 여전히 위세를 떨치나 경기불황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 투영된다. 고객은 높은 물가에 벌벌 떨며 홀로 끼니를 때우고, 점원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대우를 받는다. 점주도 본사에 휘둘리는 ‘을’이긴 마찬가지. 편의점들의 담배 판매 확충이 대기업 이익과 지자체 세수 증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란 지적도 새겨 볼 만하다. ‘촛불시위’ 때 대박 나는 도심 편의점들이 대부분 대기업 소유라는 아이러니는 또 어떤가. 그렇다고 편의점을 ‘악의 축’으로 매조질 필요는 없다. 이게 어디 그들만의 문제일까. 성마른 세계화와 가파른 양극화는 사회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삶의 질 향상과 도시공동체 재건을 위해 (편의점을) 선용해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내놓는데 다소 김이 빠진다. 이미 술이 사람을 마시기 시작한 것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화재위원회가 지난해 6월 정부와 울산시가 합의한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주변 ‘가변형 투명 물막이(카이네틱 댐·사진)’ 설치 허가를 16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김동욱 건축문화재분과 위원장은 “이날 심의에서 물막이가 ‘임시’로 설치되는 것을 확실히 하고, 나중에 해체할 때 반구대 주변이 다치지 않도록 안전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라”고 말했다. 아울러 건축분과는 설치될 댐과 흡사한 축소모형 테스트도 요청했다. 위원회는 보완사항이 마련되면 관련 분과와 함께 합동 심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혀 재심의는 앞으로 3, 4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 13일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문화재 관계자들은 앞서 11일 ‘샹그릴라’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중국 윈난 성 두커쭝(獨克宗) 고성에서 200채가 넘는 목조건축물이 불에 탄 참사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안동시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예산 10억여 원을 들여 최신 방재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회마을의 화재 취약성은 학계에선 일찌감치 지적됐다. 지난해 5월 한국건축역사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안동 하회마을 화재안전성에 관한 조사연구’를 통해서다. 일본 교토 시에 있는 리쓰메이칸(立命館)대 역사도시방재연구소의 김민숙 전문연구원(39)이 명지대 한국건축역사연구실, 정연상 안동대 건축공학과 연구팀과 함께 컴퓨터 가상작업 및 현지조사, 설문을 진행했다. 공동연구팀이 교토대 방재연구소가 고안한 ‘화재연소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하회마을은 최대 100여 동(전체 130동)의 가옥이 소실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 지역의 풍속이 비교적 강한 데다 주위에서 산불이 나면 대량으로 쏟아지는 불티에 그대로 노출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변수가 많아 시뮬레이션 결과가 그대로 나타난다고 할 순 없지만 그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시스템적으로는 화재경보기 보급 비율과 화재 진압용으로 배치된 소방차의 적절성 여부가 눈에 띄었다. 마을 건물마다 소화기는 100% 비치돼 있긴 하지만 화재경보기를 설치한 곳은 20%를 밑돌았다. 게다가 설문에 응한 주민 가운데 31.8%가 “소화기 사용법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소화용수를 공급하는 소화전은 24.6%만 어떻게 쓰는지 안다고 응답했다. 하회마을에 배치된 소방용 펌프차도 교체가 시급했다. 마을 입구에 있는 119지역대에는 1.4t의 펌프차가 있으나 전통마을의 좁은 도로 여건상 재빠른 이동이 쉽지 않다. 김 연구원은 “실제 조사기간에 (화재 신고로) 소방차가 출동한 걸 목격했는데 외부 도로로 한참 돌아가는 모습을 봤다”며 “산불 진화용으로 만들어진 0.8t 펌프차가 더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구성한 자위소방대에도 아쉬운 대목이 엿보였다. 마을에 애정이 높아 소방훈련에 적극 참여하고 방재 의식도 높았지만 구성원이 모두 60대 이상 노년층이었다. 상대적으로 신속한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보존회나 소방대 소속과 일반 주민의 화재에 대한 시각차가 큰 것도 우려스러웠다. 일반 주민들은 ‘소방훈련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급증하는 관광객 관리도 허투루 볼 수 없는 문제다. 이번 하회마을 화재 역시 외부인의 담뱃불이 원인으로 추정되며 샹그릴라 역시 관람객의 실수로 불이 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연구원 역시 “유입 인원이 늘어날수록 실화나 방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장소에 대한 방재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며 “마을에 입장하는 관람객에게 철저한 사전 교육을 시키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투구 앞뒤에는 용과 봉황이 금빛으로 새겨졌다. 붉은 털 머리 장식에는 푸른 보주(寶珠)와 화염무늬가 강인함을 드러냈다. 4개의 발톱을 가진 용 조각이 어깨에 올려진 융(絨)으로 짠 갑옷에는 당시 장수의 용맹한 기상이 생생하게 배어 있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를 보면 이 박물관은 조선 19세기 갑주(甲胄·갑옷과 투구 일체)를 12점이나 갖고 있다. 당대의 갑주는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30여 점 정도만 파악될 정도로 희귀한 유물이다. 박물관은 조선의 당시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국의 민속유물을 3000여 점도 소장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이 민속박물관이 어떻게 이만한 유물을 소장하게 된 걸까. 여기에는 ‘조선에서 벼슬을 한 최초의 서양인’이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1848∼1901)와의 인연이 숨겨져 있다. 고종의 정치·외교 고문을 지냈던 묄렌도르프는 다양한 정치 활동과 별개로 학술 방면에서도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 독일은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커 제3세계 민속자료 수집에 적극적이던 시기. 박물관 유물은 상당수가 당시 묄렌도르프가 직접 현장을 뛰며 모은 것이다. 묄렌도르프가 1883∼1884년 박물관과 교환한 서신들을 보면, 모두 15개 항목으로 나눠진 목록표가 등장한다. 항목에는 무기류나 필기구는 물론이고 주거용품 화장용품 주방기구 심지어 아이들 장난감도 올라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임소연 학예연구사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시장 좌판을 싹 쓸어가거나 아예 공방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유물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갑주 일체를 내의와 투구싸개, 보관함까지 ‘풀세트’로 갖춘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그 덕분에 그라시민속박물관 소장 유물 가운데는 현재 국내에선 찾을 길 없는 독특한 유물도 하나 있다. 19세기 서민이 발화도구로 썼던 인광노(引光奴)다. 기다랗고 얇게 자른 나무 끝에 백색 유황을 바른 성냥의 일종이다. 이익(1681∼1763)이 집필한 성호사설에는 “밤에 급하게 등불을 켤 때 즉시 불꽃이 일어나게 했다”며 인광노를 설명한 대목도 나온다. 일제강점기 공장제 성냥이 들어오며 자취를 감췄다. 이 박물관이 소장한 1950년대 북한 유물도 1000점가량 된다. 과거 동독이었을 때 북한 정부가 교류 차원에서 보내준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공산품이라 문화재적 가치는 떨어지지만, 당시 생활상을 가늠할 수 있는 사료들이다. 박물관의 디트마 그룬트만 동아시아 유물담당 큐레이터는 “다양한 한국 유물을 소장해왔으나 그간 기초 조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며 “문화재연구소와의 교류를 통해 의미 있는 학술연구가 이뤄진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 수묵채색 화단의 대표적 전위작가로 꼽히는 안상철(1927∼1993)의 그림 ‘전(田)’은 1956년 국전 문교부장관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초기 성향을 잘 보여주는 걸작. 줄곧 행방이 묘연했는데, 1990년대 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던 정준모 미술평론가(57)가 수소문 끝에 한 개인 소장자가 둘둘 말아 보관하던 걸 찾아냈다. 한참을 설득해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옮겨졌지만, 자칫했으면 세상에서 영영 잊혀질 뻔했다. 정 평론가가 최근 펴낸 ‘한국 근대 미술을 빛낸 그림들’(컬처북스·사진)은 이처럼 일반인에겐 생경하지만 한국 근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대표작 108점을 소개했다. 이번 작업은 2002년 정 평론가가 주도한 국립현대미술관의 특별전 ‘한국 근대회화 100선, 1900∼1960’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전시는 도록을 한글·영문판 1000권씩 찍었으나 일주일 만에 동이 났다. 이를 바탕으로 10년 동안 작업을 정리한 결과물이 책으로 나온 것. 정 평론가는 “최근 한국 미술계가 시장 중심으로 굴러간다는 비난을 받지만,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들이 우리 곁에 존재함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화재청은 13일 원효 대사(617∼686)가 화엄경을 설법한 곳으로 유명한 경남 창녕군 관룡사의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사진)를 비롯해 불교 문화재 7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 관음보살 벽화는 인도 남쪽 바다에 떠 있다는 상상의 산인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에서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에게 법을 청하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관음이 유희좌(遊戱座·한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다른 다리는 가부좌로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조선 18세기 불화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 △경북 청도군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 △서울 보타사 금동보살좌상 △서울 봉은사 목조여래삼존불좌상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서울 청룡사 석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서울 화계사 목조지정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이 함께 목록에 올랐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왠지 개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별밤에 지친 두꺼비가 울음을 멈추면, 타박타박 호리병을 품에 찬 술벗이 찾아올까.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조환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56)의 개인전은 묵향(墨香)을 흩뿌리는 한 편의 동양화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송림과 연꽃, 매화 그리고 굵은 산줄기. 하지만 한 걸음 다가서면 작품 22점은 관객에게 새로운 질감을 선사한다. 잎사귀 하나하나 산세 고개고개를 그려 내는 것은 먹이 아니라 조각조각 붙여 놓은 쇳조각이다. 작가는 6, 7년 전부터 붓과 벼루를 버리고 쇳조각을 집어 들었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철의 차고 드센 성질이 달빛 같은 조명을 받으니 은은하고 따스하게 살아난다. 백미는 반야심경 260자를 쇠로 다듬은 작품 ‘무제’(2013년). 행초체(行草體·행서와 초서가 섞인 글씨체)로 휘갈긴 글씨가 물안개 틈을 부유하는 것처럼 벽과 바닥을 수놓았다. 그 곁을 푸른 기운을 머금고 흘러가는 나룻배. “어지러운 세상을 넘어 극락정토로 갈 때 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는 장소 선택이 탁월했다. 한옥의 나무 서까래와 들보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이 작품들과 근사한 앙상블을 빚어 냈다. 가을날 고택 사랑방에 앉아 바깥 소리에 귀를 세웠더니, 은근슬쩍 창호 문살에 비치는 화초의 그림자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탁한 막걸리보단 감칠맛 도는 청주 한잔이 그리워졌다. 뭣보다 현대미술에 익숙지 않아도, 구석구석 놓인 한자가 생경해도 개운하게 감상할 수 있다. 다음 달 9일까지. 02-720-1524∼6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하버드대가 한국 문화재 전문가 5명의 연구 성과를 모은 영문서 ‘한국 고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신라에서 고려까지(New Perspectives on Early Korean Art·사진)’를 최근 발간했다. 이번 하버드대의 학술총서에는 정우택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와 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김연미 미 예일대 미술사학과 교수, 장남원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주경미 서강대 연구교수가 집필에 참여했다. 불교회화와 불탑, 고려청자, 신라 공예품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담았다. 정우택 교수는 세계 최고인 ‘고려불화’가 지닌 도상학과 표현기법을 다뤘고, 이주형 교수는 국보 제81, 82호인 경북 경주시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을 통해 불상의 형식과 의미를 정리했다. 주경미 교수는 신라 장신구의 남북방 문화 영향을, 김연미 교수는 7세기 불교문화의 성격을 소개했다. 장남원 교수는 10세기 고려청자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기획은 하버드대가 2011년 한국 문화재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해당 학자들을 직접 초빙해 강의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다섯 교수의 하버드 강의가 좋은 반응을 얻자 이 내용을 보완 확장해 엮은 것이 이번 결과물이다. 하버드대는 향후 최신 한국 문화재 관련 연구 현황을 담은 출판물을 지속적으로 펴낼 예정이다. 이주형 교수는 “이번 출간을 계기로 국내 연구 성과를 국제적으로 더 많이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추기경(樞機卿·Cardinalis)은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을 보좌하는 최측근이자 최고위 성직자다. 라틴어 명칭은 ‘Sacrae Romanae Ecclesiae Cardinalis’로 정확하게 말하면 “로마 교회의 추기경”이다. 이 용어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540?∼604) 때 교회법 공식 용어로 채택됐다. 추기경이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가톨릭은 “사제 서품을 받은 이 가운데 신심과 학식, 품행을 갖추고 업무 처리 역량이 특출한 이를 교황이 자유로이 선발한다”고 밝혔다. 교황의 뜻에 따라 대주교나 주교가 아닌 일반 신부도 임명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교황이 후보자를 거명하면 추기경단이 토론하고 동의하는 절차가 있었으나, 현재는 형식적 절차로 남아 있다. 실질적으로 교황에게 전권이 부여돼 있다. 추기경의 신분상 직위는 종신직이나 80세가 되면 법률상 모든 실질 직무는 종료된다. 추기경의 가장 큰 권한은 교황 선출이다. 추기경 중에서 80세 미만의 추기경이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콘클라베(conclave)를 통해 새로운 교황을 뽑게 된다. 현재 전체 추기경은 199명. 이 가운데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107명이다. 이번에 새로 발표된 19명 중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16명으로 다음 달 서임되면 교황 선출권이 있는 추기경은 123명으로 늘어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인간의 운명은 죽음으로 귀착된다. 내게 닥칠 일이 통상적이며 내 운명이 다른 사람들의 운명과 같다면 무엇 때문에 슬퍼해야 한단 말인가.”(중국 도교서 ‘열자’ 중에서) “나는 작품 덕분에 불멸에 도달할 마음이라고는 없습니다. 그저 죽지 않음으로써 불멸에 도달하고 싶을 따름이라고요.”(미국 영화감독 우디 앨런) 죽음은 참 애매하다. 잘났건 못났건, 잘살건 못살건 누구에게나 공평하나 막상 자신이나 주위에 다가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기야 현실에서 ‘정말’ 모두 죽음 앞에 평등한가도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어쨌든 대놓고 영원을 욕망하기도 멋쩍지만 선각자처럼 덤덤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짐짓 모른 체하다가도 가끔은 스멀스멀 불안이 피어오른다. 그런데 저자들은 스윽 회피하며 살던 고개를 부여잡고 정면을 응시하라고 눈을 부라린다. 캐나다 퀘백대 생화학과 교수와 분자의학연구소 종양과 연구원인 두 학자는 “인간은 무지 때문에 죽음에 대한 절망과 두려움이 생겨난다. 죽음의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호언장담하는 이들치고 사기꾼이 많은데. 마음 한구석 답답함을 풀 수 있다니 속는 셈치고 따라가 보자. 근데 이 양반들, 뭔가 위로나 안식을 주는 말은 하나도 없다. 그냥 말 그대로 죽음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늙거나 병들어 죽고,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독이 퍼져 죽고, 자살 혹은 처형당해 죽는 여러 죽음의 방식을 하나하나 짚어간다. 심지어 벼락사까지 거론한다. 끝내는 사망한 뒤 인간의 육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부패하는지도 덧붙였다. 뭐야, ‘여러분은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죽습니다’. 죽음 백과사전이라도 쓸 기세다. 그런데 이 담담한 과학적 탐구 속에서 묘한 메시지가 아지랑이처럼 가슴을 휘감는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이 세포 번식을 통해 진화해왔다는 건 누구나 알 터. 한데 만약 최초의 세포가 자신의 에너지를 번식 능력이 아니라 본인 생명 연장에 몽땅 써버렸다면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생물의 삶이 이어진 건 초기세포가 자손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을 일구는 밑거름이었다. 죽음 인지능력이 생물적 본능이란 대목도 흥미롭다. 돌고래나 침팬지, 코끼리는 숨진 동료 곁을 며칠씩 지키며 ‘애도 기간’을 갖는다. 이런 본능이 최상위 동물인 인간에게 사후세계를 고민하게 했고, 결국 종교의 탄생을 이끌었다는 것. 터키에 있는 인류 최초의 사원 ‘괴베클리 테페’가 인류의 첫 도읍보다 1만2000여 년 앞서 세워졌다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쩌면 인류는 삶보다 죽음을 먼저 지각했을지도 모른다. 암에 대한 시각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사실 암은 각기 다른 200여 종의 질병을 뭉뚱그려 부르는 명칭. 이들은 모두 세포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공통점을 지녔다. 흔히 암을 ‘싸워 무찔러야 할 질병’으로 표현하지만 암세포 입장에선 원초적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인체 시스템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어쩌면 환자가 암을 의지로 극복했다는 식의 미담은 실체적 본질은 놓친 채 인간의 정신을 너무 과하게 상찬하는 부조리를 낳고 있는 게 아닐까. 죽음과 관련한 소소한 상식들도 알차다. 요즘 보톡스로 각광받는 ‘보툴리누스균’은 생명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이라 함부로 즐길 게 아니다. 목을 매달면 폐로 주입되는 공기가 차단되는 게 아니라 뇌와 다른 신체를 잇는 혈관에 치명적 손상을 입어 목숨을 잃는다. 또 암 질환 가운데 약 15%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시작된단다. 물론 저자들처럼 죽음 만물박사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 여정을 걷다 보면 죽음을 혐오나 기피 대상으로 여기던 선입견이 차츰 옅어진다. 하긴 삶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죽음인 것을. 저자들이 마지막 장을 ‘죽음과 유머’로 채워 넣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음을 제대로 바라봐야 삶의 어떤 순간도 낭비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닫는다.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는 죽음이 아니라 삶”(프랑스 소설가 앙리 밀롱 드 몽테를랑)이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반구대 암각화는 지난해 정부 차원에서 카이네틱 댐(투명 차단막)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 딱히 대안도 없이 뭔가를 바꿀 상황은 아니에요. 일단은 합의안대로 추진해야죠. 다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여러 의견을 수렴해 해결하겠습니다.” 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한 나선화 문화재청장(65)은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다 함께 상의해서”와 “합리적으로”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울산에 있는 국보 제285호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3월 변영섭 전 청장이 첫 간담회에서 반구대 사진이 새겨진 명함을 돌렸던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나 청장은 “모든 문화재 보존의 원칙은 자연 상태에서 백년 가는 문화유산을 지혜를 모아 300, 400년 가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며 “기상학자든 누구든 다양한 전문가와 소통해 효율적인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숭례문을 비롯한 문화재 관리 지적에 대한 대응도 서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나 청장은 “현재 문화재청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일부 사안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지금 입장을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말을 아꼈다. 나 청장은 이화여대 박물관 학예실장을 30년 넘게 지냈다. 도자사(陶瓷史) 권위자로 손꼽힌다. 변 전 청장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청장이다. “어제 정진석 추기경을 뵈었는데 학교에 있던 사람이 행정을 어떻게 이끌지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행정 없이는 안 돌아간다’고 말씀드렸어요. 지금까지 여러 일을 해왔지만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진정성을 갖고 마음을 열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나 청장은 그런 뜻에서 문화재청 안팎 문화재 관계자들의 ‘사기 진작’을 가장 신경 써야 할 대목으로 꼽았다. 그는 “문화를 다루는 사람들이 밝고 건강해야 결과물도 좋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나 청장이 처음으로 문화재청 직원들에게 한 얘기가 ‘나는 여러분을 믿는다’였다”고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름다웠다. 바람이 휘감은 구름을 닮은 천의(天衣)가 나뭇결을 따라 하늘거릴 줄이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목조각가 허길량 씨(61)의 두 번째 개인전 ‘소나무 비천이 되어’는 수는 많지 않으나 작품마다 쉬이 지나칠 수 없는 기운이 서려 있다. 불교 도리천 서른셋의 하늘에 맞춰 33점을 조각한 비천상들은 모두 지름 80cm 이상의 통소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2002년 통은행나무를 깎은 관음상 33점을 선보였던 첫 개인전과 닮은 듯 다르다. 허 씨는 “소나무는 송진이 많고 성질이 급해 훨씬 다루기 힘들었다”며 “두께 3mm의 옷자락까지 칼로 다듬어 표현하느라 개인전 준비가 10년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사실 허 씨는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제108호)으로 지정됐다가 송사에 휘말리며 2003년 인정 해제되는 굴곡을 겪었다. 그런 탓일까. “조각상 하나마다 대화를 나누며 불심(佛心)을 닦았다”는 작품은 왠지 모를 애잔함도 묻어난다. 배경을 몰랐다면 비천상의 미소를 편안하다 느꼈을까. 감상은 보는 이의 몫이다. 16일까지. 무료. 02-580-130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00% 한국의 자본과 기술로 라오스의 11세기 유적을 되살린다.’ 무너진 외국의 문화유산을 우리 힘으로 되세우는 기념비적인 복원사업이 다음 달 첫 삽을 뜬다. ‘한국 문화재 ODA(공적해외원조)의 복원 제1호’로 선정된 유적은 라오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참파삭 문화지역의 홍낭시다 사원(사진)이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7일 “라오스 정부와 3년간의 준비 작업을 마치고 홍낭시다 사원 복원 사업을 위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다”며 “최근 현장사무소가 완공됐으며 다음 달 초 발굴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현장 실측조사를 해왔던 양국은 지난해 11월 추말리 사야손 라오스 대통령이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복원 준비에 속도를 냈다. 한국은 2008년 문화재청과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이 베트남 후에 황성을 3차원(3D) 디지털로 복원한 적은 있으나 실물 복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다 공주의 방’이란 뜻의 홍낭시다 사원은 11세기 크메르 왕국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라오스 남부 참파삭 주의 주도(팍세) 인근 왓푸 사원에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으로 이어지는 ‘고대길(Ancient Road)’의 출발점에 자리해 역사·문화적 가치가 크다. 한국 정부는 홍낭시다 사원 복원에 5년간 60억 원 이상 투입할 계획이다.비엔티안·팍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은 올해 라오스의 홍낭시다 유적을 시작으로 해외 유적 복원사업에 역사적 첫발을 내딛는다. 서구 선진국들은 1970년대부터 추진한 것을 고려하면 뒤늦은 출발이다. 한국은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는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해외문화유산복원 원조를 하지 않은 국가였다. 이웃 일본만 해도 1991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복원에 나서며 일찍이 유적 복원에 뛰어들었다. 라오스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왓푸 사원 주신전 배수로 복원과 박물관 건립을 진행했다. 김광희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국제교류팀장은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동남아가 입은 피해를 보상한다며 적극 나서 현지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홍낭시다 사원이 있는 참파삭 문화경관지역에서도 이미 여러 나라가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왓푸 사원의 주신전 아래에 위치한 남궁전은 2001년 프랑스, 북궁전은 2009년부터 인도가 복원 중이다. 주신전의 회랑 옆 ‘난디홀(Nandi Hall)’은 정확한 용도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탈리아가 복원하다 중단된 상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공주의 방’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원이지만 (붕괴 뒤) 손댈 엄두도 못 냈습니다. 현지에서 기술력으로 명성 높은 한국이 나서줘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비엥케오 숙사바티 라오스 문화유산국 부국장) 지난해 12월 29일 라오스 남부 참파삭 주의 주도 팍세 인근 홍낭시다 사원 앞. 현지 문화재관리 총책임을 맡은 비엥케오 부국장은 함께 사원을 둘러보며 연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으로 치면 문화재청장인 그가 수도에서 남동쪽으로 500km 이상 떨어진 지역(자동차로 12시간 이상 소요)까지 동행한 것부터 이를 입증했다. 》 팍세에서 2시간가량 차를 달려 도착한 사원은 쾌청한 날씨와 달리 최악의 상태였다. 기단과 기둥 몇 개를 제외하면 그냥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듯 보였다. 15세기 이후 대지진으로 무너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2009년 태풍으로 쓰러진 거목까지 덮쳐 손상을 입혔다. 분랍 컨캉나 참파삭세계유산관리사무소 부소장은 “명확한 설계도면이 전해지지 않아 돌 하나까지 정확하게 발굴 연구해야 복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장 복원을 맡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자신 있다는 표정이었다. 한국의 해외복원유물 제1호인 만큼 3년 동안 준비를 착실히 해왔기 때문이다. 김광희 재단 국제교류팀장은 “현장사무소 건립조차 라오스 정부와 유네스코가 세세하고 상의해 명확한 규정 아래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지 관계자들은 ‘한국이 너무 꼼꼼한 거 아니냐’는 불만 아닌 불만을 전할 정도였다. 이날 마지막 현장점검은 더욱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재단은 그간의 실측조사를 놓고 수정 및 변동사항을 일일이 되짚었다. 사원 바닥이 경주 감은사 금당지처럼 지표면과 떨어져 있는데, 오랜 세월 그 틈으로 토양이 어떤 식으로 퇴적됐는지를 놓고 라오스 측과 한참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백경환 재단 연구원은 “홍낭시다 사원은 라오스 유적이기도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 ‘대충’ 복원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장 담당자들의 안전 문제도 필수 체크 사항이었다. 현재는 건기라 다소 덜했지만 우기에는 밀림에서 해충이나 야생동물의 출현이 잦다. 방문했던 날에도 발목까지 자란 수풀 속에서 뱀이 여럿 튀어나왔다. 지뢰나 불발탄도 위험요소다. 기자가 사진을 찍으려 왔다 갔다 하자 관리소 직원들이 아연실색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라오스는 1968∼72년 인도차이나전쟁 때 300만 t의 폭발물이 쏟아져 아직도 미확인 폭발물이 8000만 개 정도 남은 것으로 추산된다. 다행히 초기부터 문화재청과 협력해온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은 팔을 걷고 나섰다. 김수권 대사는 “지속적으로 라오스 정부와 협의해 폭발물 제거 활동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 현장 문화재담당자들에게 준외교관 신분을 보장해주는 것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새벽부터 시작한 현장점검은 해가 뉘엿뉘엿 기울자 마무리됐다. 다음 달 초 착수할 본격적 복원사업은 △보존과학조사 및 고증연구 △해체조사 △건축설계 및 시공 순으로 진행된다. 관리사무소의 또 다른 부소장 우돔시 커삭시는 “일요일에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벌써부터 왓푸 사원의 주신전 복원도 (한국이) 맡아주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종진 재단 이사장은 “그만큼 신뢰관계가 형성됐다는 의미에서 고마운 말”이라면서도 “첫술에 배부르기보단 한 계단씩 차분하고 확실하게 밟아나가겠다”고 말했다.팍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라오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솜팍(Sompak)’이란 요리가 있습니다. 배추를 발효시킨 음식인데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김치와 상당히 비슷해요. ‘배려와 나눔의 문화’가 배어 있는 양국의 문화적 동질감이 이번 복원을 성공으로 이끌 겁니다.” 지난해 12월 27일 만난 보생캄 봉다라 라오스 정보문화관광부 장관은 뜬금없이 김치 이야기를 꺼내는가 싶더니 이를 복원사업으로 연결지었다. 한국문화에 박식하단 걸 보여주며 은근히 서로를 함께 높이는 화술. 괜히 타박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한국은 해외문화재 복원이 처음인데 걱정이 되지 않느냐”고 떠봤다. “문화재 분야는 그렇지만 라오스에 대한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는 처음이 아닙니다. 대형건설사업도 수차례 진행했죠. 그때마다 한국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었어요. 뭣보다 근면성실한 자세로 귀감이 됐죠. 이번 복원에 국민들이 큰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지에서 한국의 홍낭시다 복원은 대단한 화젯거리다. 지난달 라오스 유력 신문 ‘참파마이’가 1면 톱으로 대서특필했다. 현지 방송사들도 2001년부터 여러 차례 보도했다. 물론 여기에는 관광산업이 살아나길 바라는 속내도 담겼다. “그걸 기대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홍낭시다 사원을 비롯한 참파삭 유적은 세계적 문화유산입니다. 이를 방치하는 건 세계적 손실 아닐까요.” 보생캄 장관은 제반 지원 창구를 문화유산국으로 통일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으로선 세부사항마다 일일이 지자체나 관계당국을 상대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는 “양국 대통령이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라오스에서는 이번 복원사업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비엔티안=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