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번역으로 버무려낸 진기한 ‘문화사 상차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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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에 바벨 피시/데이비드 벨로스 지음/정해영 이은경 옮김/488쪽·1만8000원·메멘토

가수 백지영이 ‘내 귀에 캔디’를 외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귀란 참 민감한 신체 부위임을. 사탕은커녕 귀지만 가득해도 말이다. 그런데 뭔 생선을 넣자고? 여기서 말하는 ‘바벨 피시’는 사실 한 영국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차용한 것이다. 작고 노란 물고기인데 귀에 넣으면 어떤 언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통역기다.

미국 프린스턴대 ‘번역과 문화 간 의사소통’ 과정의 책임교수인 저자는 바벨 피시가 상징하는 ‘번역’의 세계를 다뤘다. 재미없겠다 싶지만 꽤 쉽고 재밌다.

예를 들면 번역계(?)에는 ‘번역본이 원작을 대신할 수 없다’라는 격언이 있다. 물론이다. 어찌 진품을 이긴단 말인가. 그런데 창작물인데도 굳이 번역서로 행세한 작품이 꽤 존재한다. 1669년 프랑스어로 출간된 ‘포르투갈 수녀의 편지’는 당연히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것으로 소개됐다. 독일시인 릴케는 이 작품에 감명 받아 독일어로도 옮겼다. 그런데 1954년 사실은 한 프랑스인의 창작품이었음이 드러났다.

놀랍다. 번역이 이리도 흥미진진할 줄이야. 저자는 학술적 정의나 ‘번역 잘하는 법’ 따위의 스킬에 매달리지 않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번역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인류학적 이야기를 버무려냈다. “번역에 관한 책을 가장한 대단히 독창적인 문화사”(영국 이코노미스트)란 상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랫동안 번역에 힘써왔다는데, 저자의 다음 ‘창작물’이 기다려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내 귀에 바벨 피시#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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