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대신 쇳조각으로 그린 동양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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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갤러리 조환 개인전

반야심경을 소재로 한 조환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의 ‘무제’(2013년). 학고재갤러리 제공
반야심경을 소재로 한 조환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의 ‘무제’(2013년). 학고재갤러리 제공
왠지 개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별밤에 지친 두꺼비가 울음을 멈추면, 타박타박 호리병을 품에 찬 술벗이 찾아올까.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조환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56)의 개인전은 묵향(墨香)을 흩뿌리는 한 편의 동양화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송림과 연꽃, 매화 그리고 굵은 산줄기. 하지만 한 걸음 다가서면 작품 22점은 관객에게 새로운 질감을 선사한다. 잎사귀 하나하나 산세 고개고개를 그려 내는 것은 먹이 아니라 조각조각 붙여 놓은 쇳조각이다. 작가는 6, 7년 전부터 붓과 벼루를 버리고 쇳조각을 집어 들었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철의 차고 드센 성질이 달빛 같은 조명을 받으니 은은하고 따스하게 살아난다.

백미는 반야심경 260자를 쇠로 다듬은 작품 ‘무제’(2013년). 행초체(行草體·행서와 초서가 섞인 글씨체)로 휘갈긴 글씨가 물안개 틈을 부유하는 것처럼 벽과 바닥을 수놓았다. 그 곁을 푸른 기운을 머금고 흘러가는 나룻배. “어지러운 세상을 넘어 극락정토로 갈 때 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는 장소 선택이 탁월했다. 한옥의 나무 서까래와 들보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이 작품들과 근사한 앙상블을 빚어 냈다. 가을날 고택 사랑방에 앉아 바깥 소리에 귀를 세웠더니, 은근슬쩍 창호 문살에 비치는 화초의 그림자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탁한 막걸리보단 감칠맛 도는 청주 한잔이 그리워졌다. 뭣보다 현대미술에 익숙지 않아도, 구석구석 놓인 한자가 생경해도 개운하게 감상할 수 있다. 다음 달 9일까지. 02-720-1524∼6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환#동양화#무제#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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