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하지만 소박한… 그래서 늘 가슴 따뜻한 그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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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화가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1. 초등학교 졸업이 그의 최종학력이다. 일제강점기 강원 양구에서 태어난 화가의 어린 시절, 아버지는 광산업에 실패했고 어머니가 유방암을 앓았다. 가세가 기울어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고 18세 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다. 남루했던 한국인의 삶을 온기 어린 시선으로 그렸던 화가는 평생 궁핍한 삶을 살다 51세에 세상을 떠났다.

#2. 시간이 흘러도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2007년 서울옥션에서 45억2000만 원에 낙찰된 ‘빨래터’(1950년대 말)는 근현대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지키고 있다. 2013년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 자료에선 호당 가격 1위 작가로 꼽혔다. 호당 평균 2억9917만 원. 불황에도 전년 대비 44% 상승한 금액이었다.     
      


가장 서민적이고 한국적인 화가 그리고 가장 그림값이 비싼 화가는 동일 인물이다. 그는 바로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1914∼1965·사진). 화강암에 새긴 듯한 질박한 화풍으로 아기 업은 소녀, 절구질하는 아낙네, 시장과 빨래터 풍경 등을 오롯이 되살린 작품을 남겼다.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가 데뷔작 ‘나목’을 통해 소개한, 6·25 때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그렸던 박수근의 얘기는 유명하다.

올해로 박수근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근대 화가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와 전시는 일제강점기부터 전쟁과 보릿고개까지 혼란과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박수근과 그의 세대’를 톺아보는 자리다.

○ 시대의 정직한 초상

가나아트의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선보일 유화 ‘빨래터’(1960년대 초). 화가 박수근은 고단한 시대를 살았던 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질감의 화면에 담아냈다. 가나아트 제공
가나아트의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선보일 유화 ‘빨래터’(1960년대 초). 화가 박수근은 고단한 시대를 살았던 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질감의 화면에 담아냈다. 가나아트 제공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으로 작품을 그려야 한다’고 확신한 박수근의 작품엔 우리의 소박한 일상, 시대의 정직한 초상이 담겨 있다. 서울 가나아트에선 한국인의 정서적 DNA를 고스란히 녹여낸 작품세계를 조명한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연다. 2010년 갤러리 현대가 작고 45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전시에 유화 45점을 선보인 데 이어 4년 만에 유화를 대거 접할 기회다.

이옥경 가나아트 대표는 “화가는 평생 350여 점의 유화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유화 100점을 선보인다는 목표 아래 수채화 드로잉까지 150여 점을 전시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17일부터 3월 16일까지 서울 관훈동 가나인사아트센터 전관. 6000∼1만 원.

그의 고향에 자리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 목판화 전작집’ 제작과 학술심포지엄 등을 준비했다. 화가의 발자취를 찾아 ‘문화유적 표지석’도 설치할 계획이다.

○ 한국인의 따뜻한 심성

박수근의 ‘나무와 여인’. 가나아트 제공
박수근의 ‘나무와 여인’. 가나아트 제공
화가의 맏아들 박성남 씨(67·화가)의 감회도 새롭다. “아버지 작품의 전시장에 가보면 아이부터 노인까지 한결같이 ‘따뜻하다’고 표현하더라. 화강암처럼 우툴두툴한 화면에 서민의 삶을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작품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가 담긴 것 같다.” 그는 “격변기 우리 삶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점에서 아버지는 그림 하는 사람으로서 애국한 거라고 생각한다”며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민족의 동질성을 보여준 아버지 예술이 남북을 잇는 디딤돌로 조명받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생전에 겸손하고 과묵했던 박수근은 성격과 그림이 일치한 작가다. 삶과 예술이 하나였던 그의 붓을 통해 한국인의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은 숭고한 경지에 올라섰다. 선한 시선과 진실한 마음이 일군 비범한 성취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오래도록 변치 않는 인간적 가치란 무엇인지, 우리가 잃어버린 정서는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박수근#빨래터#나무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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