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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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종교70%
문학/출판20%
문화 일반7%
인사일반3%
  • ‘AI 연구소’ 세우는 보일스님 “인간성 파괴 막을 윤리적 고민해야”

    “인공지능(AI)은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고민은 그릇 속 환경호르몬만큼도 안 해서….”18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조계사에서 만난 전 합천 해인사 승가대학장 보일 스님은 “불교계에서 왜 AI 연구소를 만들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서울대 철학박사이기도 한 스님은 20여 년 전 스마트폰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AI와 관련된 논문을 썼을 정도로 불교계에선 AI 전문가로 통한다. 현재 올 연말 설립을 목표로 AI 시대에 벌어질 윤리·철학적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AI 부디즘 연구소’를 준비하고 있다.―윤리적, 철학적 고민이 없는 AI 기술은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요.“예를 들면 지금은 북한, 인권, 동성애 등에 대한 입장으로 진보·보수를 판단하지만 AI 시대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만약 AI 칩을 몸에 이식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세상이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체의 내외부 조직을 기계로 대체하고 이를 이식한 AI로 움직인다면요. 그때는 AI 칩 이식에 대한 찬반이 진보·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일 겁니다. 아무 준비 없이 덜컥 그런날이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간간이 우려는 나오지만,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곳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기술적 발전이나 관련 회사의 주가에는 관심이 많지만, 발전된 AI 기술이 파생시킬 사회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떤 가치관이나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지는 고민하지 않아요. 아직은 로마 교황청 등 종교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지요. 그래서 이름은 ‘AI 부디즘 연구소’이지만, 실제 연구는 불교를 넘어 AI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다룰 계획입니다.”―AI 이용 패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요.“기존 이용률 1위는 검색과 자료 조사 등이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1위가 인생 상담으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특히 가족 갈등이 눈에 띄게 많아요. 부부나 자식, 고부간 문제 등을 AI와 의논하는 거죠.”―그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가족 문제는 남에게 털어놓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AI는 완벽하게 익명성이 보장되고, 말이 샐 걱정도 없지요. 그러다보니 사람에게 상담할 때보다 훨씬 더 직설적으로, 더 세세하게, 분노나 미움 같은 속마음까지 담아서 털어놔요. 생성형 AI는 그런 표현, 말투, 말의 뉘앙스까지 학습해서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파악해 답하니 고민, 인생 상담에 그 이상 좋은 상대가 없지요.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한 번 끌리면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AI는 오래 쓰면 쓸수록 사용자에 최적화해요. ‘맥락 인터페이스’라고, 사용자가 얼핏 진행 중인 대화와 관계없어 보이게 말해도 과거의 모든 정보나 상황, 행동 등을 바탕으로 맥락을 이해해 대화를 이어가는 거죠. 앞서 말한 것처럼 사용자가 듣고 싶어 하는 편향된 방향으로요. 웬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겠습니까? AI는 우리 인간성이 파괴될 수 있는 위험성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술적 발전에 못지않게 인문학적·윤리적인 성찰과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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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 요리학교에 한식 과정 개설, 그것이 진짜 세계화”

    “비빔밥 시식 행사 같은 한식·사찰음식 홍보는 노력에 비해 효과가 일시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더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해야죠.”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만난 양종집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교수(53·셰프)는 “사찰음식을 포함한 한식은 세계가 지향하는 ‘미래 음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며 “하지만 아쉽게도 한식·사찰음식의 세계화 노력은 투자에 비해 효율성이 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미 뉴욕주에 본교가 있는 CIA는 프랑스 르 코르동 블뢰, 일본 쓰지조리사전문학원과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곳. 아시아 음식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뉴욕 본교 교수진 120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19일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개최한 ‘사찰음식 국제학술 심포지움’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양 교수는 “CIA 학사 집중교육 과정에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식이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CIA는 준학사·학사·석사 과정으로 이뤄져 있고, 18개월의 준학사 과정을 마쳐야 3년 반의 학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이 학사 과정에는 각각 15주씩 배우는 유럽·동남아·아프리카·일본 등 4개의 집중교육 과정이 개설돼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조차 유럽 권역으로 묶어 가르치는데, 일식은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교육 과정이 있다. 양 교수는 “일식 집중교육 과정이 생긴 지는 4, 5년 정도 됐다”며 “하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일본은 정부는 물론이고 관련 기관, 심지어 음식업체까지 CIA 내에 교육 과정을 만들기 위해 기부, 행사 후원, 홍보 등의 노력을 부단히 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본 내 간장 1위 업체인 기코만 등 관련 기업들은 회장과 이사진이 해마다 CIA를 찾아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스킨십을 갖는다고 한다. 장학금 등 재정적 지원과 음식 재료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또 일식 집중과정을 듣는 학생 전원을 일본에 초청해 일식은 물론이고 일본 문화 전반을 경험하고 맛보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비용은 전부 일본 측 부담이다. 이런 노력으로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식이 CIA 학사 과정에 포함됐으며, 일식 과정을 배우는 학생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한식·사찰음식 시식 행사를 열면,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 감탄할 겁니다. 그리고 ‘참 맛있네’ 하며 뿔뿔이 흩어지겠죠. 반면 세계적인 요리학교에 한국 음식 교육 과정을 열면, 이곳이 세계적인 한식 셰프를 키워 내는 인큐베이터가 됩니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게 한식과 사찰음식의 진정한 세계화가 아니겠습니까.” 양 교수는 이어 “비빔밥이나 불고기, 된장찌개 같은 개별 음식을 홍보하는 차원을 넘어, 사찰음식을 포함한 한국의 ‘음식문화’ 전반을 알리려고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음식에는 단순한 요리와 요리법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민족의 정신과 문화, 역사와 전통, 철학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맛있는데, 건강에도 좋고 나아가 환경·생태 친화적인 음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바람입니다. 모든 생명에 대한 감사와 온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정신을 담고 있는 사찰음식과 한식은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사,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이런 추세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이죠.”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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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한식·사찰음식 세계화, 비빔밥 시식보다 요리학교를 공략해야”

    “비빔밥 시식 행사 같은 한식·사찰음식 홍보는 노력에 비해 효과가 일시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더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해야죠.”18일 서울 종로구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만난 양종집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교수(53·쉐프)는 “사찰음식을 포함한 한식은 세계가 지향하는 ‘미래 음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며 “하지만 아쉽게도 한식·사찰음식의 세계화 노력은 투자에 비해 효율성이 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미 뉴욕주에 본교가 있는 CIA는 프랑스 르코르동블루, 일본 츠치조리사전문학원과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곳. 아시아 음식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뉴욕 본교 교수진 120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19일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개최한 ‘사찰음식 국제학술 심포지움’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양 교수는 “CIA 학사 집중교육 과정에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식이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CIA는 준학사·학사·석사 과정으로 이뤄져 있고, 18개월의 준학사 과정을 마쳐야 3년 반의 학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이 학사 과정에는 각각 15주씩 배우는 유럽·동남아·아프리카·일본 등 4개의 집중교육 과정이 개설돼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조차 유럽 권역으로 묶어 가르치는데, 일식은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교육 과정이 있다.양 교수는 “일식 집중교육 과정이 생긴 지는 4, 5년 정도 됐다”라며 “하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일본은 정부는 물론이고 관련 기관, 심지어 음식업체까지 CIA 내에 교육 과정을 만들기 위해 기부, 행사 후원, 홍보 등의 노력을 부단히 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본 내 간장 1위 업체인 기꼬만 등 관련 기업들은 회장과 이사진이 해마다 CIA를 찾아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스킨십을 갖는다고 한다. 장학금 등 재정적 지원과 음식 재료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또 일식 집중과정을 듣는 학생 전원을 일본에 초청해 일식은 물론이고 일본 문화 전반을 경험하고 맛보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비용은 전부 일본 측 부담이다. 이런 노력으로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식이 CIA 학사 과정에 포함됐으며, 일식 과정을 배우는 학생들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한식·사찰음식 시식 행사를 열면,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 감탄할 겁니다. 그리고 ‘참 맛있네’하며 뿔뿔이 흩어지겠죠. 반면 세계적인 요리학교에 한국 음식 교육 과정을 열면, 이곳이 세계적인 한식 쉐프를 키워 내는 인큐베이터가 됩니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게 한식과 사찰음식의 진정한 세계화가 아니겠습니까.”양 교수는 이어 “비빔밥이나 불고기, 된장찌개 같은 개별 음식을 홍보하는 차원을 넘어, 사찰음식을 포함한 한국의 ‘음식문화’ 전반을 알리려고 노력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음식에는 단순한 요리와 요리법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민족의 정신과 문화, 역사와 전통, 철학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맛있는데, 건강에도 좋고 나아가 환경·생태 친화적인 음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바람입니다. 모든 생명에 대한 감사와 온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정신을 담고 있는 사찰음식과 한식은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사,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이런 추세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이죠.”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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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조선에선 청각장애인도 관직에 올랐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장님(시각장애인), 불구(지체장애인), 귀머거리(청각장애인) 등 장애인 비하 용어를 일상적으로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 복지, 대우도 열악했던 게 사실. 지금도 ‘장애인’이라고 하면 무시하거나, 불쌍한 사람들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은데 몇백 년 전에는 얼마나 더했을까. 하지만 저자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과거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살았을 거라는 통념을 깬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편견 없이 그들과 일상을 공유했다. 장애를 가진 실학자들도 많았는데 다른 실학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영조 때 좌참찬을 지낸 이덕수(1673∼1744)는 청각장애인이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목민심서’에서 장애인에게는 노역, 균역, 잡역 등 모든 국역을 면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장애인보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북학파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는 저서 ‘사소절(士小節)’에서 장애인 비하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이 혹 황급하고 노둔하여 보고 듣고 응대하고 일을 하고 걸음을 걷고 하는 데 있어 소략하고 민첩하지 못하더라도 소경이니, 귀머거리니, 벙어리니, 곰배팔이니, 절름발이니 하고 꾸짖지 말아야 한다.’(4장 ‘이용후생파의 선진적인 장애 사상’에서) 사소절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작은 예절을 담은 수양서. 250년 전에 이미 자신과 자기 집안부터 장애인 비하 용어를 쓰지 않게 한 것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이렇게 넓고 다양했는지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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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조선 찾은 日 선교사의 헌신, 한일 서로 더 아는 계기 되길”

    “내 이웃은 누구인가, 나는 저들에게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올해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선교사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1863∼1921)와 오다 나라지(織田楢次·한국명 전영복·1908∼1980)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감독 유진주)’이 최근 개봉됐다. 한국 개신교 140년 역사에서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등 서양 선교사는 많이 조명됐지만, 일본인 선교사의 활동은 정서적·역사적 이유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유 감독은 동아일보에 “영화를 준비하며 노리마쓰, 오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전북 고창 오산 교회를 세운 마스토미 야스자에몬, 한국 고아 3000명의 어머니 다우치 지즈코 등 이 땅에서 헌신한 많은 일본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양국 국민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이루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1896년 조선에 온 노리마쓰 선교사는 일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다. 유 감독은 “노리마쓰 선교사는 당시 일본에 망명 중이던 개화파 박영효로부터 명성황후 시해 사건(1895년)을 전해 듣고 죄책감을 느끼고 조선에 온 걸로 알려졌다”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일본인인 자신이 대신 속죄하고, 종교적 사랑을 통해 조선의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리마쓰 선교사가 경기 수원에서 초가 한 채로 시작한 교회가 바로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현 수원 동신교회다. 노리마쓰 선교사의 부인은 어려운 형편에도 조선인들을 구휼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아 식사를 장만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은 영양실조로 인한 폐결핵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 감독은 “자리는 옮겼지만 노리마쓰 선교사 추모비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며 “당시 일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철거됐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의 헌신이 얼마나 인정받고 존경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오다 선교사는 1937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강당에서 신사참배 반대를 설교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까지 받았던 인물. 조선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심을 받고 결국 2년 뒤 강제 추방됐다. 당시 설교에 감화돼 독립운동에 뛰어든 청년이 2021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교육자이자 목회자로 활동한 고 박중학 목사다. 추방된 오다 선교사는 일본에서도 조선인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심지어 일본 이름을 버리고 ‘전영복’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기도 했다. 이런 활동에 비해 두 선교사의 발자취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인이란 특수성 때문에 국내엔 기록이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질 않았다. 일본에서도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자체 연구가 거의 없었다. 유 감독은 “특히 노리마쓰 선교사는 복음만 남길 뿐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다”며 “그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의 자식들은 광복 뒤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아무 기록도 없어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자료 조사도 어려웠지만, 8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에서 일본인의 선행을 조명하는 시도는 여전히 난관이 적지 않았다. 그는 “제작 과정에서도 ‘왜 우리가 일본 선교사에 대해 알아야 하느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라며 “일본이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미래로 가자고 하기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라는 것도 결국 한 사람의 일본인과 한 사람의 한국인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가 모이고 쌓여 형성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로 잘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면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작은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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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가깝고도 먼 나라…“그들에게 우린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

    “내 이웃은 누구인가, 나는 저들에게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올해 광복 8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선교사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1863~1921)와 오다 나라지(織田楢次·1908~1980·한국명 전영복)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감독 유진주)’이 최근 개봉됐다. 한국 개신교 140년 역사에서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등 서양 선교사는 많이 조명됐지만, 일본인 선교사의 활동은 정서적·역사적 이유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유 감독은 동아일보에 “영화를 준비하며 노리마츠, 오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전북 고창 오산 교회를 세운 마스토미 야스자에몬, 한국 고아 3000명의 어머니 다우치 지즈코 등 이 땅에서 헌신한 많은 일본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라며 “양국 국민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이루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1896년 조선에 온 노리마츠 선교사는 일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다. 유 감독은 “노리마츠 선교사는 당시 일본에 망명 중이던 개화파 박영효로부터 명성황후 시해 사건(1895년)을 전해 듣고 죄책감을 느끼고 조선에 온 걸로 알려졌다”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일본인인 자신이 대신 속죄하고, 종교적 사랑을 통해 조선의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노리마츠 선교사가 경기 수원에서 초가 한 채로 시작한 교회가 바로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현 수원 동신교회다. 노리마츠 선교사의 부인은 어려운 형편에도 조선인들을 구휼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아 식사를 장만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은 영양실조로 인한 폐결핵으로 33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 감독은 “자리는 옮겼지만 노리마츠 선교사 추모비는 지금까지 남아있다”라며 “당시 일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철거됐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의 헌신이 얼마나 인정받고 존경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오다 선교사는 1937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강당에서 신사참배 반대를 설교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까지 받았던 인물. 조선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심을 받고 결국 2년 뒤 강제 추방됐다. 당시 설교에 감화돼 독립운동에 뛰어든 청년이 2021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교육자이자 목회자로 활동한 고 박중학 목사다. 추방된 오다 선교사는 일본에서도 조선인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심지어 일본 이름을 버리고 ‘전영복’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기도 했다.이런 활동에 비해 두 선교사의 발자취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인이란 특수성 때문에 국내엔 기록이나 자료가 거의 남아있질 않았다. 일본에서도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자체 연구가 거의 없었다. 유 감독은 “특히 노리마츠 선교사는 복음만 남길 뿐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다”라며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의 자식들은 광복 뒤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아무 기록도 없어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라고 전했다.자료 조사도 어려웠지만, 8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에서 일본인의 선행을 조명하는 시도는 여전히 난관이 적지 않았다. 그는 “제작 과정에서도 ‘왜 우리가 일본 선교사에 대해 알아야 하느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라며 “일본이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미래로 가자고 하기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라는 것도 결국 한 사람의 일본인과 한 사람의 한국인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가 모이고 쌓여 형성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로 잘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면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작은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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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내 지하종교, 이미 막기 힘들 정도로 퍼져있어”

    “북한 정권이 청년들을 겨냥한 종교 금지법까지 만들었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네까? 그만큼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라는 반증이지요.”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자유통일연구소(소장 손광주) 창립 세미나 ‘북한의 종교 및 한류 탄압 실태와 남북 인권 대화의 길을 찾아서’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북한 내 종교 활동 및 탄압 사례를 증언했던 탈북자 출신 주경배 목사(57)는 6일 동아일보와 만나 “북한 정권은 어떻게든 지하 종교 활동을 막으려고 하지만, 이미 막기 힘들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2008년 탈북한 그는 2020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탈북민들과 북한 내 선교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은 선전용 외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지 않습니까. “겉으로는 그렇지요. 그런데 2021년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젊은이들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는 ‘청년교양보장법’이란 걸 채택했어요. 김정은 정권의 대표적인 악법 중 하나인데, 제41조(청년들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 3항이 ‘종교와 미신 행위’예요. 이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별도로 법을 만들어 통제해야 할 정도로 종교가 젊은층에 많이 퍼진 상태라는 반증이죠.” ―어느 정도나 될까요.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탈북민 중에 북한에서 지하교회를 하다 보위부에 잡혀간 사람이 있었어요. 조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제일 윗사람 앞에 끌려갔는데, 재판에 안 넘기고 봐줬대요. 재판을 받으면 바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처지였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봐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간부였다고 해요. 그런 걸 보면….” ―구한말처럼 외부에서 목사나 선교사가 들어갈 순 없지 않습니까. “북한 내에서 전도하는 집단은 세 종류예요. 이미 분단 전부터 신앙을 가지고 대대로 이어온 ‘그루터기’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루터기로부터 지하교회 등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지요. 그리고 탈북했다가 신앙을 접하고, 전도하러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고요.” ―통제가 극심할 텐데 종교가 퍼진다니 이해가 잘 안 갑니다. “한국에선 늘 뉴스를 통해 북한을 보니까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북한 정권은 이중삼중의 감시망을 만들었지만, 주민들은 이웃이 신앙생활 하는 걸 알았다고 서로 다 신고하진 않아요. 주로 사이가 나쁘거나 미워하는 사람에게 그러지요. 한국 반공 영화에 나오듯 옆집 사람도 못 믿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걸렸다고 온 집안이 다 작살나는 것도 아니에요.” ―북한에서 종교 활동은 체제 전복 행위 아닌가요. “북한에는 ‘혁명적 군중 노선’이란 당 기본 노선이 있어요. 대중을 다 구원해서 혁명 승리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개념인데, 그러다 보니 일가족 수십 명이 걸려도 본보기로 몇 명만 크게 처벌하고 나머지는 살 수 있게 해줍니다. 집안을 전부 몰살하고 수용소에 보내면 누굴 통치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북한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아래에서는 종교가 퍼지고 있는 거지요. 종교가 퍼진다는 것은 김씨 왕조 신격화가 사실상 무너져 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선교도 통일을 이루는 데 굉장히 중요한 일인 거죠.”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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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경배 탈북목사 “북한 지하종교, 막기 힘들 정도로 퍼져”

    “북한 정권이 청년들을 겨냥한 종교 금지법까지 만들었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네까? 그만큼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라는 반증이지요.”최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는 자유통일연구소(소장 손광주) 창립 세미나 ‘북한의 종교 및 한류 탄압 실태와 남북 인권 대화의 길을 찾아서’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북한 내 종교 활동 및 탄압 사례를 증언했던 탈북자 출신 주경배 목사(57)는 6일 동아일보와 만나 “북한 정권은 어떻게든 지하 종교 활동을 막으려고 하지만, 이미 막기 힘들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라고 말했다. 2008년 탈북한 그는 2020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탈북민들과 북한 내 선교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북한은 선전용 외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지 않습니까.“겉으로는 그렇지요. 그런데 2021년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젊은이들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는 ‘청년교양보장법’이란 걸 채택했어요. 김정은 정권의 대표적인 악법 중 하나인데, 제41조(청년들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 3항이 ‘종교와 미신 행위’에요. 이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별도로 법을 만들어 통제해야 할 정도로 종교가 젊은 층에 많이 퍼진 상태라는 반증이죠.”―어느 정도나 될까요.“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탈북민 중에 북한에서 지하교회를 하다 보위부에 잡혀간 사람이 있었어요. 조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제일 윗사람 앞에 끌려갔는데, 재판에 안 넘기고 봐줬대요. 재판을 받으면 바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처지였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봐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간부였다고 해요. 그런 걸 보면….”―구한말처럼 외부에서 목사나 선교사가 들어갈 순 없지 않습니까.“북한 내에서 전도하는 집단은 세 종류에요. 이미 분단 전부터 신앙을 가지고 대대로 이어온 ‘그루터기’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루터기로부터 지하교회 등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지요. 그리고 탈북했다가 신앙을 접하고, 전도하러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고요.”―통제가 극심할 텐데 종교가 퍼진다니 이해가 잘 안 갑니다.“한국에선 늘 뉴스를 통해 북한을 보니까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북한 정권은 이중삼중의 감시망을 만들었지만, 주민들은 이웃이 신앙생활 하는 걸 알았다고 서로 다 신고하진 않아요. 주로 사이가 나쁘거나 미워하는 사람에게 그러지요. 한국 반공영화에 나오듯 옆집 사람도 못 믿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걸렸다고 온 집안이 다 작살나는 것도 아니에요.”―북한에서 종교 활동은 체제 전복 행위 아닌가요.“북한에는 ‘혁명적 군중 노선’이란 당 기본 노선이 있어요. 대중을 다 구원해서 혁명 승리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개념인데, 그러다 보니 일가족 수십 명이 걸려도 본보기로 몇 명만 크게 처벌하고 나머지는 살 수 있게 해줍니다. 집안을 전부 몰살하고 수용소에 보내면 누굴 통치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북한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아래에서는 종교가 퍼지고 있는 거지요. 종교가 퍼진다는 것은 김씨 왕조 신격화가 사실상 무너져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선교도 통일을 이루는데 굉장히 중요한 일인거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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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1984’ ‘동물농장’ 기획한 건 조지 오웰 아내였다

    프랑스의 여성 조각가인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은 ‘로댕의 연인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진 천재’로 불린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조수이자 제자, 모델로 로댕의 공방에 들어간 그는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등 대표적인 로댕의 작품에 참여하며 천재적인 기량을 펼쳤다. 하지만 클로델의 작품은 로댕의 아류 정도로 취급받았다. 심지어 로댕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클로델의 작품이 출품되는 것도 막았다고 한다. 그가 재조명된 것은 1984년 렌마리 파리가 자신의 고모할머니인 ‘카미유 클로델의 전기’를 쓰면서였다. 이 책은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의 첫 번째 부인인 아일린 오쇼네시(1905∼1945)에 대한 이야기다. 읽다 보면 클로델과 비슷해도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을까 싶다. 1949년 출판된 ‘1984’는 오웰이 현대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극단화해 미래를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그린 책이다. 하지만 ‘세기말, 1984(End of the Century, 1984)’라는 디스토피아적 시를 통해 텔레파시로 세뇌된 미래 세상을 오웰보다 먼저 그린 사람은 오쇼네시였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영문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그는 스페인 내전(1936∼1939년)에도 참여했고, 체포돼 처형될 위기에 처한 오웰과 동료들을 구출했던 여전사였다. 저자는 심지어 세계 문학사에서 풍자 우화 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오웰의 ‘동물농장’을 우화로 기획하고 함께 편집한 사람도 아일린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정보부 검열과에서 뉴스를 검열하고 삭제하는 일을 했는데, 당시 별명이 ‘돼지’였다고 한다. 오웰이 ‘1984’에서 “돼지들은 파일, 보고서, 의사록, 각서라고 불리는 수수께끼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데 매일 엄청난 노동력을 쏟아야 했다. 그것들은 커다란 종이였는데, 글로 빽빽하게 채워져야 했고, 그렇게 채워지자마자 불태워졌다”라고 쓴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저자는 여러 증언과 기록을 통해 70여 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오웰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한 작가 지망생 ‘에릭 블레어’가 ‘조지 오웰’이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창작을 뒷받침해 준 존재가 오쇼네시였다고 말한다. 그런 아일린을 오웰은 그저 ‘내 아내’라는 언급으로만 세상에 남겼다고 한다. 읽다 보면 ‘1984’에서 받았던 감동은 사라지고, 조강지처를 버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동물농장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욕구만을 위해 여성들을 전전한 ‘지질한’ 남자가 보여 씁쓸하다. ‘1984’처럼 굳이 어두운 미래를 그릴 필요도 없이, 자신이 살면서 부인에게 했던 행동이 바로 ‘디스토피아’라는 걸 오웰은 몰랐을까. 왠지 ‘동물농장’의 등장인물(혹은 동물) 중에 오웰도 있을 것 같아 씁쓸하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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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 오웰의 두얼굴…‘동물농장’ 기획자는 원래 아내였다 [책의 향기]

    프랑스의 여성 조각가인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은 ‘로댕의 연인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진 천재’로 불린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조수이자 제자, 모델로 로댕의 공방에 들어간 그는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등 대표적인 로댕의 작품에 참여하며 천재적인 기량을 펼쳤다.하지만 클로델의 작품은 로댕의 아류 정도로 취급받았다. 심지어 로댕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클로델의 작품이 출품되는 것도 막았다고 한다. 그가 재조명된 것은 1984년 렌마리 파리가 자신의 고모할머니인 ‘카미유 클로델의 전기’를 쓰면서였다.이 책은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의 첫 번째 부인인 아일린 오쇼네시(1905~1945)에 대한 이야기다. 읽다 보면 클로델과 비슷해도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을까 싶다.1949년 출판된 ‘1984’는 오웰이 현대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극단화해 미래를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그린 책이다. 하지만 ‘세기말, 1984(End of the Century, 1984)’라는 디스토피아적 시를 통해 텔레파시로 세뇌된 미래 세상을 오웰보다 먼저 그린 사람은 오쇼네시였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영문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그는 스페인 내전(1936~1939년)에도 참여했고, 체포돼 처형될 위기에 처한 오웰과 동료들을 구출했던 여전사였다.저자는 심지어 세계 문학사에서 풍자 우화 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오웰의 ‘동물농장’을 우화로 기획하고 함께 편집한 사람도 아일린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정보부 검열과에서 뉴스를 검열하고 삭제하는 일을 했는데, 당시 별명이 ‘돼지’였다고 한다. 오웰이 ‘1984’에서 “돼지들은 파일, 보고서, 의사록, 각서라고 불리는 수수께끼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데 매일 엄청난 노동력을 쏟아야 했다. 그것들은 커다란 종이였는데, 글로 빽빽하게 채워져야 했고, 그렇게 채워지자마자 불태워졌다”라고 쓴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저자는 여러 증언과 기록을 통해 70여 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오웰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한 작가 지망생 ‘에릭 블레어’가 ‘조지 오웰’이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창작을 뒷받침해 준 존재가 오쇼네시였다고 말한다. 그런 아일린을 오웰은 그저 ‘내 아내’라는 언급으로만 세상에 남겼다고 한다.읽다 보면 ‘1984’에서 받았던 감동은 사라지고, 조강지처를 버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동물농장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욕구만을 위해 여성들을 전전한 ‘지질한’ 남자가 보여 씁쓸하다. ‘1984’처럼 굳이 어두운 미래를 그릴 필요도 없이, 자신이 살면서 부인에게 했던 행동이 바로 ‘디스토피아’라는 걸 오웰은 몰랐을까. 왠지 ‘동물농장’의 등장인물(혹은 동물) 중에 오웰도 있을 것 같아 씁쓸하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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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 전통 ‘생전예수재’ 사라지게 할순 없어… 원형 그대로 복원”

    “천년 전통이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4일 서울 강서구 홍원사에서 만난 회주, 동주 원명 스님은 최근 천년 전통의 불교 의식인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표준화·체계화한 ‘생전예수생칠지재의’를 출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책은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어산어장(魚山魚丈)인 동주 원명 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10여 년의 연구 끝에 집대성했다. 생전예수재는 살아생전에 49일 동안 기도를 올리며 자신의 사후 명복을 비는 불교 의식이다. 어산은 불교 의식 음악인 범패(梵唄)를, 어장은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 불교의 재 의식을 총괄하고 가르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승려를 일컫는다. ―생전예수재는 지금도 많은 절에서 행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생전예수재는 원래 하나의 원형에서 출발했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마다, 지역마다, 절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졌어요. 그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생략한 부분들이 많이 생겼지요. 문맥이 뒤섞인 것도 있다 보니 집전자가 의식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고요. 지금 원형을 복원해 남겨놓지 않으면 천년 전통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과거에는 범패를 배우는 게 스님들의 필수 코스였다고요. “옛날에는 ‘범패를 배워야 중물이 든다’라고 했지요. 일제강점기 등 어려운 시절에는 중도 재(齋)를 지내야 먹고살 수 있으니, 범패는 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배우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다 보니 지금은 전수하려는 스님이 거의 없어서 안타깝지요.” ―어산이 범패인 걸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산은 범패, 범음(梵音)이라고도 하는데, 가곡, 판소리와 함께 한국 3대 성악으로 불릴 정도로 우리 전통음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중국 위무제(조조)의 아들 조식이 산동 지방 어산을 지나는데 하늘에서 기막힌 범패가 들렸다고 해요. 이 소리를 모방해 후세에 전하면서 어산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어산은 크게 서울을 중심으로 전해진 경산제(경제)와, 대구 팔공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제(팔공산제), 전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제로 나뉘지요.”(경제 어산은 동주 스님을 중심으로 맥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불교 전통 의례도 한글화해야 한다고 하셨더군요. “전통 소리는 문화재 전승을 위해서 그대로 보존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 특히 젊은이들은 한문을 모르지 않습니까? 범패를 한문으로 부르다 보니 들으면서도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지요. 뜻도 모르고 읊고 듣는 기도가 무슨 소용인지요. 그러니 전통 의례는 전승을 위해 보존하고, 실용적인 한글 의례를 따로 개발하자는 것이죠. 1980년대부터 얘기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의외로 전해오던 전통 그대로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아요. 안타깝지요. 한글화되지 않은 성경, 찬송가로 예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단순히 한문을 번역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한글로 번역하면 양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문장, 용어 등도 의식과 노래 등에 맞게 바꿔야 해요. 그래서 저 같은 어장뿐만 아니라 국문학자, 시인, 작곡가, 심지어 소설가 등 전문가들이 총동원돼야 가능한 일이지요. 10여 년 전에 시도했다가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라 흐지부지됐는데…, 꼭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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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 60년대보다 훨씬 늘어난 우리 산림… 경제와 환경 함께 회복할 수 있다는 증거”

    “우리 스스로 ‘한국은 자연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다’란 편견이 있어요.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팔도 동물 열전’(다른)을 출간한 곽재식 교수는 1일 인터뷰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가 산림과 숲 면적”이라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개국 중 4위 정도로 최상위권”이라고 말했다.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인 그는 특유의 재담으로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해 ‘과학하고 앉아 있네’ 등 인기 과학 유튜브 채널의 섭외 1순위 인물.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등 40여 편의 과학 및 공상과학(SF) 소설을 출간한 다작(多作) 작가이기도 하다. “그동안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환경 파괴적 모습을 부각하다 보니 관심을 환기하는 데는 성공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우리 자연환경은 다 파괴되고 제대로 남은 게 없다는 오해도 생긴 게 사실입니다.” 곽 교수는 “또 하나의 오해는 경제,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환경은 그만큼 오염되고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라며 “1950, 6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이 양적·질적으로 늘어난 우리 산림은,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술 및 경제 발전과 함께 환경도 회복되고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높은 인구밀도와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에도 멧돼지가 민가에 내려오고, 고속도로를 건너는 고라니를 심심치 않게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곽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종의 유해 동물로 취급되는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 단계 취약 등급으로 보호하는 동물. 세계적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에만 있는데, 1만 마리 정도인 중국에 비해 기이하게 한국에는 수십만 마리가 있다. 올해 한반도를 덮친 폭염 등 지구적 기후변화는 그에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 곽 교수는 “자칫 오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기후변화를 극단적·종말론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우리가 주변에서 현실적으로 개선하고 노력할 수 있는 식으로 접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북극, 남극의 얼음이 다 녹으면 홍수가 나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종말을 막을 대책이 있으면 성공이고 없으면 실패라는 단순화된 관점도 생겼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이미 ‘기후변화 적응 기술(Climate Change adaptation)’이 국내에 소개된 지 10년이 넘는데도, 자극적이지 않아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기후변화 적응 기술이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부정적 영향에 대응하는 기술. 도시 녹지 확대, 홍수 대비 시설 구축, 빗물 저장 및 활용, 스마트 농업 도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곽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점점 더 커질 테고, 이를 극복하는 기술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굉장히 오랜 시간을 버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그런데 속된 말로 흔히 보는 것, ‘쇼킹’하지 않다는 이유로 관심을 못 받아 안타깝다”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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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발전으로 환경 파괴?…우리 산림·숲 면적은 OECD 최상위권”

    “우리 스스로 ‘한국은 자연이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다’라는 편견이 있어요.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최근 ‘팔도 동물 열전(다른)’을 출간한 곽재식 교수는 1일 인터뷰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가 산림과 숲 면적”이라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개 국가 중 4위 정도로 최상위권”이라고 말했다.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인 그는 특유의 재담으로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해 ‘과학하고 앉아 있네’ 등 인기 과학 유튜브 채널의 섭외 1순위 인물.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등 40여 편의 과학 및 공상과학(SF) 소설을 출간한 다작(多作) 작가이기도 하다. “그동안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환경 파괴적 모습을 부각하다 보니 관심을 환기하는 데는 성공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우리 자연환경은 다 파괴되고 제대로 남은 게 없다는 오해도 생긴 게 사실입니다.”곽 교수는 “또 하나의 오해는 경제,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환경은 그만큼 오염되고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라며 “1950~6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이 양적·질적으로 늘어난 우리 산림은,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술과 경제 발전과 함께 환경도 회복되고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높은 인구밀도와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에도 멧돼지가 민가에 내려오고, 고속도로를 건너는 고라니를 심심치 않게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곽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종의 유해 동물로 취급되는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 단계 취약 등급으로 보호하는 동물. 세계적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에만 있는데, 1만 마리 정도인 중국에 비해 기이하게 한국은 약 수십만 마리가 넘는다.올해 한반도를 덮친 폭염 등 지구적 기후변화는 그에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 곽 교수는 “자칫 오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기후변화를 극단적·종말론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우리가 주변에서 현실적으로 개선하고 노력할 수 있는 식으로 접근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북극, 남극의 얼음이 다 녹으면 홍수가 나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종말을 막을 대책이 있으면 성공이고 없으면 실패라는 단순화된 관점도 생겼다는 얘기다.그러다 보니 이미 ‘기후변화적응 기술(Climate Change adaptation)’이 국내에 소개된 지 10년이 넘는데도, 자극적이지 않아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기후변화적응 기술이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부정적 영향에 대응하는 기술. 도시 녹지 확대, 홍수 대비 시설 구축, 빗물 저장 및 활용, 스마트 농업 도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곽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점점 더 커질 테고, 이를 극복하는 기술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굉장히 오랜 시간을 버틸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며 “그런데 속된 말로 흔히 보는 것, ‘쇼킹’ 하지 않다는 이유로 관심을 못 받아 안타깝다”라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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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청년은 새 세상 징표, 2년뒤 서울서 만나자”

    “갈등이 무기가 아닌 대화로 해결되는 박애와 우정의 세상, 여러분(청년)은 그런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징표다.” 레오 14세 교황이 3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토르베르가타 지구에서 열린 ‘2025년 젊은이의 희년’ 폐막 미사에서 청년들을 향해 이같이 밝혔다. 세계 평화를 위한 청년들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과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교황은 “우리는 다른 사람에 의해 야기된 가장 심각한 악으로 고통받고 있는 젊은이들과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있다”며 “가자지구, 우크라이나의 젊은이들, 전쟁으로 피범벅이 된 이 땅의 모든 이들과 함께하자”고 덧붙였다. 희년은 가톨릭에서 25년 또는 50년마다 선포하는 은총의 기간이다. 이번 희년은 지난해 12월 24일부터 2026년 1월 6일까지다. 특히 지난달 28일부터 3일까지는 18∼35세 신자를 위한 ‘젊은이의 희년’ 주간으로 지정됐다. 교황은 선한 일을 하기 위한 과감한 선택과 용기를 강조했다. 2일 철야기도에서 교황은 “우정이야말로 세상을 진짜 바꿀 수 있고 평화로 가는 길”이라며 “세상에 정의와 평화의 증인인 복음 전도사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5월 즉위한 레오 14세가 처음 대규모 청년들과 만나는 자리란 점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바티칸은 전 세계에서 10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했다. 교황은 지난달 29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개막 미사에서 지붕 없는 전용 행사 차량 ‘포프모빌’을 타고 깜짝 등장해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참석자들은 기도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음악 공연을 즐기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번 대회가 2000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가톨릭 우드스톡’이라고 불렸던 세계청년대회장 같았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교황은 2027년 8월 3∼8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WYD)’ 본대회 일정을 직접 언급하며 방한을 예고했다. WYD는 교황이 참가하는 세계 가톨릭 청년들의 최대 축제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창설했으며, 2∼4년 간격으로 대륙을 순회하며 열리고 있다. 2027 서울 WYD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 교구에서 5일간 열리는 교구 대회(사전 행사)와 서울에서 6일간 열리는 본대회로 나뉜다. 본대회에서는 개막 미사를 시작으로 각국 주교들의 교리 교육, 박람회, 교황과의 밤샘 기도 및 차기 개최국 발표 등이 진행된다.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는 50만∼70만 명이 대회에 참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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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두 살 아기도 타인의 마음을 신경쓴다

    인간이란 참 설명하기 힘든 존재다. 자기 생일 잔치에서 아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이런 모순적인 행동이 한 사람에게서 일어나기도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과연 무엇일까?’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로 발달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가 이 가볍지 않은 물음에 답을 찾아 나섰다. 저자는 생후 수개월밖에 안된 아기들의 행동에 대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인간의 도덕관과 종교성, 예술적 판단, 본질주의적 사고 등은 후천적으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것들은 오랜 진화를 통해 인간에게 내장됐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리고 이 독특한 심리 구조가 어떻게 윤리와 사회적 연대, 문화로 확장되는지를 그려낸다.“아이들은 만 2세 정도가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고 그들의 기분이 좋아지도록 행동한다. 또한 아기들은 공감적 분노도 드러냈다.”(4장 ‘선과 악’ 중)인간이라는 참 독특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생물의 여러 특징을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 한편으로는 인간성이 타고나는 건지, 만들어지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를 안들 작금에 하루가 멀다고 비인간적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막고, 치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슨 쓸모가 있을지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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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한국어 안내…차승원 목소리로 듣는다

    교황청이 1일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한국어 음성 안내(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한다.천주교 서울대교구(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31일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과 협력해 베드로 대성전 안내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제작하고, 29일(현지 시간) 교황청에 전달했다”라고 밝혔다. 오디오 가이드는 성 베드로 대성전 내 전시 및 안내 콘텐츠 개편에 맞춰 기획됐다. 배우 차승원이 목소리를 재능 기부했으며, 한국인 방문객과 순례자들이 베드로 대성전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바티칸 박물관에서는 제공됐지만, 대성전에서 제공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전달식에는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바티칸시국 총대리)을 비롯해 서울대교구 이경상·최광희 주교,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장 정연정 몬시뇰, 이정우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대리 등이 참석했다. 감베티 추기경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한국인 신자와 순례자들이 성 베드로 대성전을 더욱 풍부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상 주교는 “희년을 맞아 로마를 방문하는 많은 한국 순례자와 관광객이 성 베드로 대성전을 이해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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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국적 넘어 韓불교 세계화 이바지하고파”

    “불심(佛心)도 더위도, 한국이 인도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요. 하하하.” 지난해 9월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경기 양주 회암사 주지에 인도 출신 인공(印空) 스님이 임명됐다. 임명 당시 32세라는 나이도 파격적이었지만, 조계종 역사상 공찰(公刹·종단 소유 사찰) 주지에 외국인이 임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부탄과의 접경 지역인 인도 타왕 지역 출신인 그는 1998년 6세 때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로 출가한 뒤, 2010년 18세의 나이로 한국에서 재출가했다. 현재 제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가 겔룩파 출신이다. 28일 회암사에서 만난 인공 스님은 “2009년 인도로 유학 온 범하 스님을 만나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범하 스님이 견문도 넓힐 겸 한국에서 한번 공부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하셨어요. 괜찮겠다 싶어서 5년만 공부하고 돌아가려고 이듬해 바로 한국에 왔지요. 그런데 인연이 닿아서인지, 인도에서 산 것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살게 됐네요.” 그는 “원래 계획은 행자 생활 1년, 통도사 강원(講院·사찰에 설치된 교육기관) 4년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며 “좀 더 공부하고 싶어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는데, 숙소이던 서울 은평구 수국사에서 주지 호산 스님을 만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를 좋게 본 호산 스님이 2023년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경기 양주 봉선사 주지에 임명되면서 그를 봉선사 말사인 회암사 부주지로 데려간 것. 그리고 1년여간의 주지 직무대행을 거쳐 지난해 9월 정식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됐다. 회암사는 고려 말 인도 승려 지공 선사(?∼1363)가 터를 지목하며 창건된 사찰이다. 지공 선사는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부터 2년여간 고려에 머물며 불교를 전파했다. 그의 제자인 나옹 선사(1320∼1376)가 도량을 열었고, 나옹의 제자 무학 대사(1327∼1405)가 중창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고 정종, 세종, 세조 등 역대 왕과 왕후의 후원을 받았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인공 스님은 외국인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인도 출신인 지공 선사와의 인연이 있던 곳인 만큼, 나이와 국적을 넘어 좀 더 젊고 개방적인 불교를 만들어 달라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신자는 물론이고 출가자까지 급감하는 시대에 불교가 과감하게 변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본다는 것. 이런 기대 때문인지 회암사에 상주하는 승려 8명 중 6명이 인도, 스리랑카 등 외국 출신이고 그중 인공 스님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20대다. 인공 스님은 올해 종교인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됐다. 인도는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기에 인도 국적은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것이 연(緣)으로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면, 다음 연은 외국인 출신 주지로서 무탈하게 소임을 마치는 것으로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불교가 외국인 출신 스님에게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인공 스님은 “외국인 출신 주지다 보니 아무래도 외국인 스님들이 절을 많이 찾는다”며 “회암사를 외국인 스님의 출가 도량으로 키워낸다면 이것이 곧 한국 불교를 세계화하는 데 이바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양주=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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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심(佛心)도 더위도, 한국이 인도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요”

    “불심(佛心)도 더위도, 한국이 인도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요. 하하하.”지난해 9월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경기 양주 회암사 주지에 인도 출신 인공(印空) 스님이 임명됐다. 임명 당시 32세라는 나이도 파격적이었지만, 조계종 역사상 공찰(公刹·종단 소유 사찰) 주지에 외국인이 임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부탄과의 접경 지역인 인도 타왕 지역 출신인 그는 1998년 6살 때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로 출가한 뒤, 2010년 18세의 나이로 한국에서 재출가했다. 현재 제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가초가 겔룩파 출신이다. 28일 회암사에서 만난 인공 스님은 “2009년 인도로 유학 온 범하 스님을 만나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라고 회고했다.“범하 스님이 견문도 넓힐 겸 한국에서 한번 공부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하셨어요. 괜찮겠다 싶어서 5년만 공부하고 돌아가려고 이듬해 바로 한국에 왔지요. 그런데 인연이 닿아서인지, 인도에서 산 것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살고 있네요.”그는 “원래 계획은 행자 생활 1년, 통도사 강원(講院·사찰에 설치된 교육기관) 4년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라며 “좀 더 공부하고 싶어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는데, 숙소이던 서울 은평구 수국사에서 주지 호산 스님을 만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그를 좋게 본 호산 스님이 2023년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경기 양주 봉선사 주지에 임명되면서 그를 봉선사 말사인 회암사 부주지로 데려간 것. 그리고 1년여 간의 주지 직무대행을 거쳐 지난해 9월 정식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됐다.회암사는 고려 말 인도 승려 지공 선사(?~1363)가 터를 지목하며 창건된 사찰이다. 지공 선사는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부터 2년여 간 고려에 머물며 불교를 전파했다. 그의 제자인 나옹 선사(1320~1376)가 도량을 열었고, 나옹의 제자 무학대사(1327~1405)가 중창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고 정종, 세종, 세조 등 역대 왕과 왕후의 후원을 받았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인공 스님은 외국인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인도 출신인 지공 선사와의 인연이 있던 곳인 만큼, 나이와 국적을 넘어 좀 더 젊고 개방적인 불교를 만들어 달라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했다. 신자는 물론이고 출가자까지 급감하는 시대에 불교가 과감하게 변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본다는 것. 이런 기대 때문인지 회암사에 상주하는 승려 8명 중 6명이 인도, 스리랑카 등 외국 출신이고 그 중 인공 스님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20대다.인공 스님은 올해 종교인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됐다. 인도는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기에 인도 국적은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것이 연(緣)으로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면, 다음 연은 외국인 출신 주지로서 무탈하게 소임을 마치는 것으로 이어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국 불교가 외국인 출신 스님에게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인공 스님은 “외국인 출신 주지다 보니 아무래도 외국인 스님들이 절을 많이 찾는다”라며 “회암사를 외국인 스님의 출가 도량으로 키워낸다면 이것이 곧 한국 불교를 세계화하는 데 이바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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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단·교파 초월…140년 한국 기독교 역사 한자리에

    한국 개신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다음 달 12일 서울 은평구에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이사장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 목사)이 문을 연다.연 면적 1341㎡ 규모의 기독교역사문화관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한국기독교 문화와 역사전체를 아울렀다. 상설전시관에선 선교 초기부터 2000년대 초까지 기독교가 펼쳤던 다양한 사회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 ‘신앙이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개최된다. 구한말, 일제 강점기, 독립과 6·25 전쟁 시기, 산업·민주화 시기, 민주화 이행기로 구분해 전시했다. 내년 2월까지 열리는 기획전 ‘to 조선, from 한국’과 ‘아주 보통의 주말’에선 초기 선교사들의 다양한 복음 전파 활동을 만날 수 있다. 한국 개신교 선교의 문을 연 호러스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 집안이 대를 이어 모아온 ‘코리아 미션 필드’도 선보인다. 선교사들이 한국 상황을 본국에 알리기 위해 교파를 초월해 만든 영문 잡지다. 1905~1941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 밖에도 한국 기독교 140년 역사를 알리는 사진 및 자료 1000여 점 등이 전시된다. 이영훈 이사장은 “전시는 물론이고 프로그램과 심포지엄 등을 통해 기독교역사문화관을 누구에게나 열린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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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평온한 들판이, 수천명 학살 현장이라니…

    논두렁 사이로 한가로이 핀 들꽃들. 고즈넉하게 펼쳐진 너른 들판 위에는 아지랑이만 아른거렸다. 더위에 지쳤는지 느리게 우는 매미 소리 사이로 이따금 울리는 이름 모를 새소리가 정겹다. 이런 곳이 무려 100여 년에 걸쳐 수천 명이 순교한 참혹한 학살의 현장이라니…. 2020년 11월 교황청이 승인한, 국내 유일의 국제 성지인 충남 서산시 해미국제성지를 14일 찾았다. 기록적인 극한 호우로 안타까운 수해를 당하기 며칠 전이었다. 성지는 신자들이 빈번히 순례하는 거룩한 장소. 가톨릭에는 교구장이 승인하는 교구 성지, 주교회의가 승인하는 국가 성지, 교황청이 승인하는 국제 성지가 있다. 아시아에서 국제 성지는 필리핀 마닐라 안티폴로 대성당, 인도 첸나이 성 토마스 대성당에 이어 세 번째다. 해미 지역에선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1871년) 등을 거치며 100여 년 동안 수천 명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132명. 특히 병인박해 시기에는 관헌들이 교수형과 참수 등으로 한 명씩 처형하는 데 지쳐 아예 물웅덩이와 구덩이에 수십 명씩 몰아넣고 생매장하는 행위를 수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경내 노천성당 옆에 상당한 깊이와 너비를 가진 ‘진둠벙’이란 이름의 웅덩이가 있는데, 팔을 묶고 끌고 가던 신자들을 거꾸로 떨어뜨려 죽게 한 곳이다. 국제 성지는 대부분 유명한 성인이나 특별한 기적 등과 연관이 있는 곳이다. 인도의 국제 성지인 성 토마스 대성당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사도 토마스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다. 반면 해미국제성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순교자 대부분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무명 순교자들의 땅. 하지만 교황청에서는 오히려 이런 ‘특별하지 않음’을 더 가치 있는 신앙의 모범으로 여겼다. 국제 성지가 되기 전인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특별 방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6년 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미성지를 국제 성지로 선포했다. 국제 성지답게 경내 대성당에서는 매일 오전 11시 미사가 열린다. 이날 미사를 맡은 인도 출신의 하비에르 신부는 “방문객이 많은 날은 성지와 관련된 내용으로, 적은 날은 일상적인 내용으로 미사를 본다”며 “오늘은 폭염으로 사람이 적어 일상적인 내용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6일에는 휴가차 방한한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을 맡고 있는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했다. 유 추기경은 대전교구장 시절 해미성지의 국제 성지 추진을 주도한 바 있다. 그늘에 앉아 잠시 흐르는 땀을 닦는데 ‘여숫골’이라 쓰인 커다란 돌덩이가 보였다. 이 지역의 다른 이름이다. 당시 형장으로 끌려가거나, 산 채로 매장당하던 신자들이 한결같이 ‘예수, 마리아’를 절규했다. 이 소리가 멀리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여수, 머리’로 들렸다는 것. 이 말이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변했다고 한다. 기독교 전통이 깊은 나라도 아니었는데, 목숨을 버려서까지 자신이 택한 길을 간 이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종교를 떠나, 그 무엇으로든 자신의 삶을 진실함으로 채우려 했던 옛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였다.서산=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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