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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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5-11-14~2025-12-14
종교57%
문학/출판27%
문화 일반7%
사회일반3%
정치일반3%
인사일반3%
  • [책의 향기]둥글납작 얼굴에 외꺼풀… 근대 미인상은 만들어졌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트 여자 싱글. 한국의 김연아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의 대결을 앞두고 언론은 두 선수를 ‘세기의 라이벌’이라 부르며 요모조모 비교했다. 경기력이나 수상 경력 및 필살기는 물론이고, 키가 1cm 차이란 걸 짚은 보도도 있었다. 1990년생 동갑내기로 생일이 20일 차이라는 것조차 주목받았다. 그런데 소셜미디어 등에선 지금 생각하면 낯부끄러운 투덕거림도 적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외모를 따지는 게 옳지 않다는 인식이 부족했던 탓이었겠으나, 두 운동선수를 두고 누가 낫다는 둥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미의 기준’이란 사람마다 지역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건만, 서로가 옳다고 우기는 촌극은 꽤나 격렬했다. 이 책은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가 ‘미인’이라는 여성상이 시대적 가치관과 미의식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산해 왔는지를 고찰했다. 대중매체의 등장과 함께 미인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부터 1940년대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공유된 미인에 대한 개념을 서술했는데, 저자는 ‘미인은 당대의 전형적 이데올로기를 몸에 새긴 여성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변화는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의 물산 장려 운동을 계기로 가속화했다. … 조선 제품의 광고 속 여성 이미지는 일본 도상을 차용하지 않고 조선이 여성을 모델로 한 사실적인 미인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복 차림에 둥글고 납작한 얼굴과 붉게 상기된 두 볼, 외꺼풀의 눈매는 기존의 일본 미인 도안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상으로…”(3장 미인 제조 ‘일본 미인상의 조선적 변용’에서)일제강점기 식민 치하에서 일본 제국을 선망하던 분위기는 일본 여성과 일본의 미의식을 동경하는 식민주의적 미의식을 형성했다. 하지만 독립과 반일 감정이 확산하면서 이런 의식이 여성의 외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의식 형성은 일제강점기 근대 조선에서 세 차례 개최된 미인 대회를 통해 서구적 미의식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여성의 신체를 키와 몸무게 등으로 수치화하는 서구적 미의 기준은 외모 지상주의와 여성의 상품화를 불러온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또 다른 맥락도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 막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던 초기, 미인임을 공적으로 알리는 것은 여성의 사회적 자기표현 수단이 됐다는 점에서 지금의 미인 대회와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는 분석이다. 2018년 미스 이탈리아 대회에선 수영복 심사에 의족을 착용한 18세 참가자(키아라 보르디)가 등장했다. 어릴 때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그는 의족을 드러내며 멋진 경쟁을 펼쳤고, 3위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뤄냈다. 보르디의 용기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감동과 영향을 끼쳤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미인 만들기’가 시대적, 사회적 가치와 이념과 연관돼 형성된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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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세-성공 등 입에 맞는 설교로 복음 훼손… ‘직업 목사’ 너무 많은 탓에 한국 교회 위기”

    “복음에 물 타고, 입맛에 맞춘 설교만 하는 ‘직업 목사’가 너무 많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22일 대전 서구에 있는 온누리교회에서 만난 김상수 담당 목사(사진)는 “한국 교회의 위기가 무엇 때문이라고 보느냐”란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 교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 ‘하마터면 직업 목사로 살 뻔했다’(샘솟는 기쁨)를 출간한 그는 저서에서 자기반성과 함께 기득권에 안주해 본질을 잃어버린 목회자들과 교회의 행태를 지적하며 자성을 촉구했다. ―‘직업 목사’란 말이 눈에 띕니다.“최근 한국 교회에 생계와 교회 운영을 위해 쿠팡 배달, 일용직 노동자 등을 겸하는 이중직 목회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목사가 목회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저는 소명만 잃지 않는다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반면 저처럼 상대적으로 편안한 제도권, 대형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사명을 잃어버렸다면 참된 목사라 할 수는 없겠지요. ‘직업 목사’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배달을 하는 목사가 아니라, 안락한 환경에 안주해 세속적·외형적인 것에 몰두하는 ‘본질을 잃어버린’ 목사를 말합니다.” ―복음에 물을 타고, 입맛에 맞춘 설교란 게 무엇인지요.“순수한 복음을 전하기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출세와 성공, 기복주의, 번영주의를 설교에 섞는 거죠. 쉽게 말해 ‘예수 믿으면 다 잘된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 또 성공한, 출세한 사람을 간증자로 세워요. 예수 믿어서 이렇게 됐다는 식이죠. 인간의 성공, 출세를 영적인 축복이라고 가르친 건데… 남 얘기할 것도 없이, 부끄럽지만 제가 그랬습니다. 책 제목이 ‘하마터면…’인 것도 그런 까닭이지요.” ―그게 꼭 나쁘다고만 하긴 어렵지 않습니까.“목사가 신자들에게 출세와 성공을 달콤하게 가르치면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 낙오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교회에서 소외됩니다. 교회가 가장 품어야 할 사람이 그들인데, 그분들은 어디로 가나요. 신자들도 ‘우리 교회 누구, 누구 나온다’ ‘OOO가 주차 봉사하더라’라는 말을 쉽게, 자랑스럽게 합니다. 알게 모르게 교회와 성공을 일치시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 ―‘목사는 많은데 목사가 없다’고도 하셨더군요.“한 대형 교회에서 목사 공개모집을 했는데, 지원자는 많았지만 결국 뽑지 못했어요. 면접관들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스펙은 최상위권이고 화려한데, 교회 표현으로 영성(靈性)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뽑히고 싶어서 스펙을 속였다가 들킨 사람도 있고요. 어떻게 목사가…. 소명보다 ‘대형 교회 목사’라는 타이틀을 더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교회가 일반 사회보다 뒤처진 면도 많은 것 같습니다.“부끄러운 얘기지만 요즘 세상에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교회도 정직해야 합니다. 노회나 총회에 회비를 낼 때는 세례 교인 수로 내면서, 교세를 말할 때는 크게 보이고 싶어 거의 나오지 않는 등록 교인까지 다 포함해 수만 명이라고 해요. 지금 한국 교회의 위기를 이겨내는 길은 거창한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진정성, 순수함, 정직 등 초기 한국 교회가 가졌던 마음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대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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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교회 위기는 입맛 맞춘 설교만 하는 ‘직업 목사’ 많은 탓”

    “복음에 물 타고, 입맛에 맞춘 설교만 하는 ‘직업 목사’가 너무 많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22일 대전 서구에 있는 온누리교회에서 만난 김상수 담당 목사는 “한국 교회의 위기가 무엇 때문이라고 보느냐”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 교계에서 화제를 모으는 책 ‘하마터면 직업 목사로 살 뻔했다’(샘솟는 기쁨)를 출간한 그는 저서에서 자기반성과 함께 기득권에 안주해 본질을 잃어버린 목회자들과 교회의 행태를 지적하며 자성을 촉구했다.―‘직업 목사’란 말이 눈에 띕니다.“최근 한국 교회에 생계와 교회 운영을 위해 쿠팡 배달, 일용직 노동자 등을 겸하는 이중직 목회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목사가 목회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저는 소명만 잃지 않는다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반면 저처럼 상대적으로 편안한 제도권, 대형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사명을 잃어버렸다면 참된 목사라 할 수는 없겠지요. ‘직업 목사’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배달을 하는 목사가 아니라, 안락한 환경에 안주해 세속적·외형적인 것에 몰두하는 ‘본질을 잃어버린’ 목사를 말합니다.”―복음에 물을 타고, 입맛에 맞춘 설교란 게 무엇인지요.“순수한 복음을 전하기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출세와 성공, 기복주의, 번영주의를 설교에 섞는 거죠. 쉽게 말해 ‘예수 믿으면 다 잘된다’라는 겁니다. 그렇게 보이기 위해 또 성공한, 출세한 사람을 간증자로 세워요. 예수 믿어서 이렇게 됐다는 식이죠. 인간의 성공, 출세를 영적인 축복이라고 가르친 건데… 남 얘기할 것도 없이, 부끄럽지만 제가 그랬습니다. 책 제목이 ‘하마터면…’인 것도 그런 까닭이지요.”―그게 꼭 나쁘다고만 하긴 어렵지 않습니까.“목사가 신자들에게 출세와 성공을 달콤하게 가르치면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 낙오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교회에서 소외됩니다. 교회가 가장 품어야 할 사람이 그들인데, 그분들은 어디로 가나요. 신자들도 ‘우리 교회 누구, 누구 나온다’ ‘OOO가 주차 봉사하더라’라는 말을 쉽게, 자랑스럽게 합니다. 알게 모르게 교회와 성공을 일치시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목사는 많은데 목사가 없다’고도 하셨더군요.“한 대형 교회에서 목사 공개모집을 했는데, 지원자는 많았지만 결국 뽑지 못했어요. 면접관들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스펙은 최상위권이고 화려한데, 교회 표현으로 영성(靈性)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뽑히고 싶어서 스펙을 속였다가 들킨 사람도 있고요. 어떻게 목사가…. 소명보다 ‘대형 교회 목사’라는 타이틀을 더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교회가 일반 사회보다 뒤쳐진 면도 많은 것 같습니다.“부끄러운 얘기지만, 요즘 세상에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교회도 정직해야합니다. 노회나 총회에 회비를 낼 때는 세례 교인 수로 내면서, 교세를 말할 때는 크게 보이고 싶어 거의 나오지 않는 등록 교인까지 다 포함해 수만 명이라고 해요. 지금 한국 교회의 위기를 이겨내는 길은 거창한 데 있는게 아닙니다. 진정성, 순수함, 정직 등 초기 한국 교회가 가졌던 마음으로 돌아가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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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즈넉한 들판, 그 길… 번뇌에 쉼표 찍는다

    온전히 자신의 걸음에 의지해 그저 묵묵히 걷는 순례길. 종교가 없어도 상관없다. 고즈넉하게 펼쳐진 들판 사이를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동안, 온갖 번뇌로 들끓던 마음이 어느새 부드럽게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으니.22일 ‘한국의 산티아고’라 불리는 충남 당진 ‘버그내 순례길’을 걸었다. 버그내 순례길은 당진 솔뫼성지부터 합덕성당, 신리성지를 잇는 약 13.2km의 천주교 순례길. 버그내는 합덕 장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뤘기 때문에 서양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와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선교사와 신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순례자의 길이 형성됐다.‘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란 뜻의 솔뫼성지는 1821년 8월 21일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가 탄생한 곳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김대건 신부 집안은 증조부 김진후,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부친 김제준, 당고모 김데레사, 김대건 신부 등 4대에 걸쳐 10명이 넘는 순교자를 배출했다. 이 때문에 솔뫼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지가 됐다. 2014년 8월 방한한 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해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서 기도를 드렸는데, 이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한 동상이 생가 앞에 세워져 있다.1890년 예산 양촌성당으로 출발한 합덕성당은 충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다. 1899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합덕성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1929년 페랭 신부가 벽돌로 장엄한 고딕풍의 성당으로 신축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 ‘헉헉’거리며 성당 앞 계단을 오르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의 광채가 온통 눈을 감쌌다. 작열하는 태양이 정확하게 성당 뒤에 숨어 마치 광배(光背)와 같은 효과를 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고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힘든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성당에 오는 것만으로도 천국에 온 듯한 느낌을 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아름다운 건물이라 드라마, 영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수상한 파트너’ ‘정년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내포 평지 한가운데 있는 신리성지는 ‘조선의 카타콤바’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카타콤바는 로마 시대 박해를 피해 숨어서 예배를 드린 지하 묘지를 뜻한다. 1860년대부터 교우촌이 형성된 신리 지역도 워낙 박해가 심해 숨어서 신앙을 이어가던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 등을 거치며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이름이 밝혀진 내포 지역 순교자 중 10%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순교해 성인이 된 사람만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1818∼1866),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1837∼1866), 성 위앵 루카 신부(1836∼1866), 성 황석두 루카(1813∼1866), 성 손자선 토마스(?∼1866) 등 5명에 이른다. 인근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46기의 무명 순교자 묘지도 있다. 실제 순교자는 이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녁 무렵인데도 땅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태양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걷던 길이어서일까. 종교를 떠나 자신의 삶을 진실함으로 채우려 했던 옛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였다.당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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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끝마다 묻어나는 진실의 삶…‘한국의 산티아고’ 버그네순례길을 걷다

    온전히 자신의 걸음에 의지해 그저 묵묵히 걷는 순례길. 종교가 없어도 상관없다. 고즈넉하게 펼쳐진 들판 사이를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동안, 온갖 번뇌로 들끓던 마음이 어느새 부드럽게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으니.22일 ‘한국의 산티아고’라 불리는 충남 당진 ‘버그네 순례길’을 걸었다. 버그네 순례길은 당진 솔뫼성지부터 합덕성당, 신리성지를 잇는 약 13.2km의 천주교 순례길. 버그네는 합덕 장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룬 탓에 서양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와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선교사와 신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순례자의 길이 형성됐다.‘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란 뜻의 솔뫼성지는 1821년 8월 21일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가 탄생한 곳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김대건 신부 집안은 증조부 김진후,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부친 김제준, 당고모 김데레사, 김대건 신부 등 4대에 걸쳐 10명이 넘는 순교자를 배출했다. 때문에 솔뫼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지가 됐다. 2014년 8월 방한한 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해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서 기도를 드렸는데, 이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한 동상이 생가 앞에 세워져 있다.1890년 예산 양촌성당으로 출발한 합덕성당은 충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다. 1899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합덕성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1929년 페랭 신부가 벽돌로 장엄한 고딕풍의 성당으로 신축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헉헉’거리며 성당 앞 계단을 오르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의 광채가 온통 눈을 감쌌다. 작열하는 태양이 정확하게 성당 뒤에 숨어 마치 광배(光背)와 같은 효과를 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고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힘든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성당에 오는 것만으로도 천국에 온 듯한 느낌을 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아름다운 건물이라 드라마, 영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수상한 파트너’ ‘정년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내포 평지 한가운데 있는 신리성지는 ‘조선의 카타콤바’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카타콤바는 로마 시대 박해를 피해 숨어서 예배를 드린 지하 묘지를 뜻한다. 1860년대부터 교우촌이 형성된 신리 지역도 워낙 박해가 심해 숨어서 신앙을 이어가던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 등을 거치며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이름이 밝혀진 내포 지역 순교자 중 10%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순교해 성인이 된 사람만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1818~1866),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1837~1866), 성 위앵 루카 신부(1836~1866), 성 황석두 루카(1813~1866), 성 손자선 토마스(?~1866) 등 5명이 이른다. 인근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46기의 무명 순교자 묘지도 있다. 실제 순교자는 이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저녁 무렵인데도 땅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태양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걷던 길이어서일까. 종교를 떠나 자신의 삶을 진실함으로 채우려 했던 옛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였다.당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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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주단옥→다마코→올가 송… 기억해야 할 ‘사할린의 아픔’

    1995년 광복 50주년 3·1절 기념 문화축제에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공식적으로 발표됐을 때 ‘철거 대신 다른 곳으로 옮겨 보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테고 철거의 이유도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던 역사도 잊지 않기 위해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복궁을 가리는 그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고, 어딘가 상징적인 곳으로 옮겨 힘 없는 나라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묵언의 징표로 삼는다면 그 또한 훌륭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이들을 문학으로 조명해 온 작가가 일제강점기 말기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 사할린으로 끌려간 사할린 한인 1세대의 삶과 아픔을 담담한 필치로 담았다. 주인공은 주단옥에서 야케모토 다마코, 다시 주단옥, 올가 송까지 수십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름과 국적이 몇 번이나 바뀐다. 그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통해 국가란 과연 무엇인지,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만큼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조선인들은 소련 정부가 곧 일본에서 해방된 자신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줄 거라고 믿었다. … 조선인들은 자신들이 귀환선을 탈 수 없다는 걸 배가 와서야 알았다. … 대다수 조선인들은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항구 근처에서 지내며 귀국선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실성하거나 자살하는 사람도 생겼다.”(1부 ‘행렬’에서) 지금 우리는 ‘역사’를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로 접하지만 당대를 살았던 누군가에게 역사는 징용과 이산, 눈물과 피로 얼룩진 현실이었다. 원치 않게 왔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있는 사할린을 떠나고 싶지 않은 단옥. 사할린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살고 싶은 단옥의 동생.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사할린에 남은 단옥의 친구 유키에. ‘슬픔의 틈새’ 외에 그들 모두를 관통하는 말이 또 있을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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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리적 고민없는 AI, 인간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줘 위험”

    “인공지능(AI)은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고민은 그릇 속 환경호르몬만큼도 안 해서….” 18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조계사에서 만난 전 합천 해인사 승가대학장 보일 스님은 “불교계에서 왜 AI 연구소를 만들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서울대 철학박사이기도 한 스님은 20여 년 전 스마트폰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AI와 관련된 논문을 썼을 정도로 불교계에선 AI 전문가로 통한다. 현재 올해 말 설립을 목표로 AI 시대에 벌어질 윤리·철학적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AI 부디즘 연구소’를 준비하고 있다. ―윤리적, 철학적 고민이 없는 AI 기술은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요. “예를 들면 지금은 북한, 인권, 동성애 등에 대한 입장으로 진보·보수를 판단하지만 AI 시대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만약 AI 칩을 몸에 이식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세상이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체의 내외부 조직을 기계로 대체하고 이를 이식한 AI로 움직인다면요. 그때는 AI 칩 이식에 대한 찬반이 진보·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일 겁니다. 아무 준비 없이 덜컥 그런 날이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간간이 우려는 나오지만,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곳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기술적 발전이나 관련 회사의 주가에는 관심이 많지만, 발전된 AI 기술이 파생시킬 사회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떤 가치관이나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지는 고민하지 않아요. 아직은 로마 교황청 등 종교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지요. 그래서 이름은 ‘AI 부디즘 연구소’이지만, 실제 연구는 불교를 넘어 AI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다룰 계획입니다.” ―AI 이용 패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요. “기존 이용률 1위는 검색과 자료 조사 등이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1위가 인생 상담으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특히 가족 갈등이 눈에 띄게 많아요. 부부나 자식, 고부간 문제 등을 AI와 의논하는 거죠.”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 문제는 남에게 털어놓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AI는 완벽하게 익명성이 보장되고, 말이 샐 걱정도 없지요. 그러다 보니 사람에게 상담할 때보다 훨씬 더 직설적으로, 더 세세하게, 분노나 미움 같은 속마음까지 담아서 털어놔요. 생성형 AI는 그런 표현, 말투, 말의 뉘앙스까지 학습해서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파악해 답하니 고민, 인생 상담에 그 이상 좋은 상대가 없지요.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한번 끌리면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AI는 오래 쓰면 쓸수록 사용자에게 최적화해요. ‘맥락 인터페이스’라고, 사용자가 얼핏 진행 중인 대화와 관계없어 보이게 말해도 과거의 모든 정보나 상황, 행동 등을 바탕으로 맥락을 이해해 대화를 이어가는 거죠. 앞서 말한 것처럼 사용자가 듣고 싶어 하는 편향된 방향으로요. 웬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겠습니까? AI는 우리 인간성이 파괴될 수 있는 위험성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술적 발전에 못지않게 인문학적·윤리적 성찰과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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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연구소’ 세우는 보일스님 “인간성 파괴 막을 윤리적 고민해야”

    “인공지능(AI)은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고민은 그릇 속 환경호르몬만큼도 안 해서….”18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조계사에서 만난 전 합천 해인사 승가대학장 보일 스님은 “불교계에서 왜 AI 연구소를 만들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서울대 철학박사이기도 한 스님은 20여 년 전 스마트폰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AI와 관련된 논문을 썼을 정도로 불교계에선 AI 전문가로 통한다. 현재 올 연말 설립을 목표로 AI 시대에 벌어질 윤리·철학적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AI 부디즘 연구소’를 준비하고 있다.―윤리적, 철학적 고민이 없는 AI 기술은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요.“예를 들면 지금은 북한, 인권, 동성애 등에 대한 입장으로 진보·보수를 판단하지만 AI 시대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만약 AI 칩을 몸에 이식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세상이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체의 내외부 조직을 기계로 대체하고 이를 이식한 AI로 움직인다면요. 그때는 AI 칩 이식에 대한 찬반이 진보·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일 겁니다. 아무 준비 없이 덜컥 그런날이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간간이 우려는 나오지만,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곳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기술적 발전이나 관련 회사의 주가에는 관심이 많지만, 발전된 AI 기술이 파생시킬 사회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떤 가치관이나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지는 고민하지 않아요. 아직은 로마 교황청 등 종교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지요. 그래서 이름은 ‘AI 부디즘 연구소’이지만, 실제 연구는 불교를 넘어 AI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다룰 계획입니다.”―AI 이용 패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요.“기존 이용률 1위는 검색과 자료 조사 등이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1위가 인생 상담으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특히 가족 갈등이 눈에 띄게 많아요. 부부나 자식, 고부간 문제 등을 AI와 의논하는 거죠.”―그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가족 문제는 남에게 털어놓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AI는 완벽하게 익명성이 보장되고, 말이 샐 걱정도 없지요. 그러다보니 사람에게 상담할 때보다 훨씬 더 직설적으로, 더 세세하게, 분노나 미움 같은 속마음까지 담아서 털어놔요. 생성형 AI는 그런 표현, 말투, 말의 뉘앙스까지 학습해서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파악해 답하니 고민, 인생 상담에 그 이상 좋은 상대가 없지요.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한 번 끌리면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AI는 오래 쓰면 쓸수록 사용자에 최적화해요. ‘맥락 인터페이스’라고, 사용자가 얼핏 진행 중인 대화와 관계없어 보이게 말해도 과거의 모든 정보나 상황, 행동 등을 바탕으로 맥락을 이해해 대화를 이어가는 거죠. 앞서 말한 것처럼 사용자가 듣고 싶어 하는 편향된 방향으로요. 웬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겠습니까? AI는 우리 인간성이 파괴될 수 있는 위험성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술적 발전에 못지않게 인문학적·윤리적인 성찰과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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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 요리학교에 한식 과정 개설, 그것이 진짜 세계화”

    “비빔밥 시식 행사 같은 한식·사찰음식 홍보는 노력에 비해 효과가 일시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더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해야죠.”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만난 양종집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교수(53·셰프)는 “사찰음식을 포함한 한식은 세계가 지향하는 ‘미래 음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며 “하지만 아쉽게도 한식·사찰음식의 세계화 노력은 투자에 비해 효율성이 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미 뉴욕주에 본교가 있는 CIA는 프랑스 르 코르동 블뢰, 일본 쓰지조리사전문학원과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곳. 아시아 음식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뉴욕 본교 교수진 120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19일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개최한 ‘사찰음식 국제학술 심포지움’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양 교수는 “CIA 학사 집중교육 과정에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식이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CIA는 준학사·학사·석사 과정으로 이뤄져 있고, 18개월의 준학사 과정을 마쳐야 3년 반의 학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이 학사 과정에는 각각 15주씩 배우는 유럽·동남아·아프리카·일본 등 4개의 집중교육 과정이 개설돼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조차 유럽 권역으로 묶어 가르치는데, 일식은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교육 과정이 있다. 양 교수는 “일식 집중교육 과정이 생긴 지는 4, 5년 정도 됐다”며 “하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일본은 정부는 물론이고 관련 기관, 심지어 음식업체까지 CIA 내에 교육 과정을 만들기 위해 기부, 행사 후원, 홍보 등의 노력을 부단히 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본 내 간장 1위 업체인 기코만 등 관련 기업들은 회장과 이사진이 해마다 CIA를 찾아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스킨십을 갖는다고 한다. 장학금 등 재정적 지원과 음식 재료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또 일식 집중과정을 듣는 학생 전원을 일본에 초청해 일식은 물론이고 일본 문화 전반을 경험하고 맛보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비용은 전부 일본 측 부담이다. 이런 노력으로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식이 CIA 학사 과정에 포함됐으며, 일식 과정을 배우는 학생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한식·사찰음식 시식 행사를 열면,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 감탄할 겁니다. 그리고 ‘참 맛있네’ 하며 뿔뿔이 흩어지겠죠. 반면 세계적인 요리학교에 한국 음식 교육 과정을 열면, 이곳이 세계적인 한식 셰프를 키워 내는 인큐베이터가 됩니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게 한식과 사찰음식의 진정한 세계화가 아니겠습니까.” 양 교수는 이어 “비빔밥이나 불고기, 된장찌개 같은 개별 음식을 홍보하는 차원을 넘어, 사찰음식을 포함한 한국의 ‘음식문화’ 전반을 알리려고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음식에는 단순한 요리와 요리법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민족의 정신과 문화, 역사와 전통, 철학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맛있는데, 건강에도 좋고 나아가 환경·생태 친화적인 음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바람입니다. 모든 생명에 대한 감사와 온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정신을 담고 있는 사찰음식과 한식은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사,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이런 추세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이죠.”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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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한식·사찰음식 세계화, 비빔밥 시식보다 요리학교를 공략해야”

    “비빔밥 시식 행사 같은 한식·사찰음식 홍보는 노력에 비해 효과가 일시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더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해야죠.”18일 서울 종로구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만난 양종집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교수(53·쉐프)는 “사찰음식을 포함한 한식은 세계가 지향하는 ‘미래 음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며 “하지만 아쉽게도 한식·사찰음식의 세계화 노력은 투자에 비해 효율성이 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미 뉴욕주에 본교가 있는 CIA는 프랑스 르코르동블루, 일본 츠치조리사전문학원과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곳. 아시아 음식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뉴욕 본교 교수진 120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19일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개최한 ‘사찰음식 국제학술 심포지움’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양 교수는 “CIA 학사 집중교육 과정에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식이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CIA는 준학사·학사·석사 과정으로 이뤄져 있고, 18개월의 준학사 과정을 마쳐야 3년 반의 학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이 학사 과정에는 각각 15주씩 배우는 유럽·동남아·아프리카·일본 등 4개의 집중교육 과정이 개설돼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조차 유럽 권역으로 묶어 가르치는데, 일식은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교육 과정이 있다.양 교수는 “일식 집중교육 과정이 생긴 지는 4, 5년 정도 됐다”라며 “하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일본은 정부는 물론이고 관련 기관, 심지어 음식업체까지 CIA 내에 교육 과정을 만들기 위해 기부, 행사 후원, 홍보 등의 노력을 부단히 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본 내 간장 1위 업체인 기꼬만 등 관련 기업들은 회장과 이사진이 해마다 CIA를 찾아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스킨십을 갖는다고 한다. 장학금 등 재정적 지원과 음식 재료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또 일식 집중과정을 듣는 학생 전원을 일본에 초청해 일식은 물론이고 일본 문화 전반을 경험하고 맛보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비용은 전부 일본 측 부담이다. 이런 노력으로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식이 CIA 학사 과정에 포함됐으며, 일식 과정을 배우는 학생들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한식·사찰음식 시식 행사를 열면,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 감탄할 겁니다. 그리고 ‘참 맛있네’하며 뿔뿔이 흩어지겠죠. 반면 세계적인 요리학교에 한국 음식 교육 과정을 열면, 이곳이 세계적인 한식 쉐프를 키워 내는 인큐베이터가 됩니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게 한식과 사찰음식의 진정한 세계화가 아니겠습니까.”양 교수는 이어 “비빔밥이나 불고기, 된장찌개 같은 개별 음식을 홍보하는 차원을 넘어, 사찰음식을 포함한 한국의 ‘음식문화’ 전반을 알리려고 노력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음식에는 단순한 요리와 요리법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민족의 정신과 문화, 역사와 전통, 철학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맛있는데, 건강에도 좋고 나아가 환경·생태 친화적인 음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바람입니다. 모든 생명에 대한 감사와 온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정신을 담고 있는 사찰음식과 한식은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사,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이런 추세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이죠.”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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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조선에선 청각장애인도 관직에 올랐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장님(시각장애인), 불구(지체장애인), 귀머거리(청각장애인) 등 장애인 비하 용어를 일상적으로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 복지, 대우도 열악했던 게 사실. 지금도 ‘장애인’이라고 하면 무시하거나, 불쌍한 사람들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은데 몇백 년 전에는 얼마나 더했을까. 하지만 저자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과거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살았을 거라는 통념을 깬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편견 없이 그들과 일상을 공유했다. 장애를 가진 실학자들도 많았는데 다른 실학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영조 때 좌참찬을 지낸 이덕수(1673∼1744)는 청각장애인이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목민심서’에서 장애인에게는 노역, 균역, 잡역 등 모든 국역을 면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장애인보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북학파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는 저서 ‘사소절(士小節)’에서 장애인 비하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이 혹 황급하고 노둔하여 보고 듣고 응대하고 일을 하고 걸음을 걷고 하는 데 있어 소략하고 민첩하지 못하더라도 소경이니, 귀머거리니, 벙어리니, 곰배팔이니, 절름발이니 하고 꾸짖지 말아야 한다.’(4장 ‘이용후생파의 선진적인 장애 사상’에서) 사소절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작은 예절을 담은 수양서. 250년 전에 이미 자신과 자기 집안부터 장애인 비하 용어를 쓰지 않게 한 것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이렇게 넓고 다양했는지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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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조선 찾은 日 선교사의 헌신, 한일 서로 더 아는 계기 되길”

    “내 이웃은 누구인가, 나는 저들에게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올해 광복 80주년과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선교사 노리마쓰 마사야스(乘松雅休·1863∼1921)와 오다 나라지(織田楢次·한국명 전영복·1908∼1980)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감독 유진주)’이 최근 개봉됐다. 한국 개신교 140년 역사에서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등 서양 선교사는 많이 조명됐지만, 일본인 선교사의 활동은 정서적·역사적 이유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유 감독은 동아일보에 “영화를 준비하며 노리마쓰, 오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전북 고창 오산 교회를 세운 마스토미 야스자에몬, 한국 고아 3000명의 어머니 다우치 지즈코 등 이 땅에서 헌신한 많은 일본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양국 국민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이루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1896년 조선에 온 노리마쓰 선교사는 일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다. 유 감독은 “노리마쓰 선교사는 당시 일본에 망명 중이던 개화파 박영효로부터 명성황후 시해 사건(1895년)을 전해 듣고 죄책감을 느끼고 조선에 온 걸로 알려졌다”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일본인인 자신이 대신 속죄하고, 종교적 사랑을 통해 조선의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리마쓰 선교사가 경기 수원에서 초가 한 채로 시작한 교회가 바로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현 수원 동신교회다. 노리마쓰 선교사의 부인은 어려운 형편에도 조선인들을 구휼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아 식사를 장만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은 영양실조로 인한 폐결핵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 감독은 “자리는 옮겼지만 노리마쓰 선교사 추모비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며 “당시 일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철거됐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의 헌신이 얼마나 인정받고 존경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오다 선교사는 1937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강당에서 신사참배 반대를 설교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까지 받았던 인물. 조선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심을 받고 결국 2년 뒤 강제 추방됐다. 당시 설교에 감화돼 독립운동에 뛰어든 청년이 2021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교육자이자 목회자로 활동한 고 박중학 목사다. 추방된 오다 선교사는 일본에서도 조선인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심지어 일본 이름을 버리고 ‘전영복’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기도 했다. 이런 활동에 비해 두 선교사의 발자취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인이란 특수성 때문에 국내엔 기록이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질 않았다. 일본에서도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자체 연구가 거의 없었다. 유 감독은 “특히 노리마쓰 선교사는 복음만 남길 뿐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다”며 “그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의 자식들은 광복 뒤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아무 기록도 없어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자료 조사도 어려웠지만, 8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에서 일본인의 선행을 조명하는 시도는 여전히 난관이 적지 않았다. 그는 “제작 과정에서도 ‘왜 우리가 일본 선교사에 대해 알아야 하느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라며 “일본이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미래로 가자고 하기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라는 것도 결국 한 사람의 일본인과 한 사람의 한국인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가 모이고 쌓여 형성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로 잘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면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작은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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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가깝고도 먼 나라…“그들에게 우린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

    “내 이웃은 누구인가, 나는 저들에게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올해 광복 8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선교사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1863~1921)와 오다 나라지(織田楢次·1908~1980·한국명 전영복)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감독 유진주)’이 최근 개봉됐다. 한국 개신교 140년 역사에서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등 서양 선교사는 많이 조명됐지만, 일본인 선교사의 활동은 정서적·역사적 이유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유 감독은 동아일보에 “영화를 준비하며 노리마츠, 오다 선교사뿐만 아니라 전북 고창 오산 교회를 세운 마스토미 야스자에몬, 한국 고아 3000명의 어머니 다우치 지즈코 등 이 땅에서 헌신한 많은 일본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라며 “양국 국민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이루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1896년 조선에 온 노리마츠 선교사는 일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다. 유 감독은 “노리마츠 선교사는 당시 일본에 망명 중이던 개화파 박영효로부터 명성황후 시해 사건(1895년)을 전해 듣고 죄책감을 느끼고 조선에 온 걸로 알려졌다”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일본인인 자신이 대신 속죄하고, 종교적 사랑을 통해 조선의 아픔을 치유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노리마츠 선교사가 경기 수원에서 초가 한 채로 시작한 교회가 바로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현 수원 동신교회다. 노리마츠 선교사의 부인은 어려운 형편에도 조선인들을 구휼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아 식사를 장만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은 영양실조로 인한 폐결핵으로 33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 감독은 “자리는 옮겼지만 노리마츠 선교사 추모비는 지금까지 남아있다”라며 “당시 일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철거됐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의 헌신이 얼마나 인정받고 존경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오다 선교사는 1937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강당에서 신사참배 반대를 설교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고문까지 받았던 인물. 조선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심을 받고 결국 2년 뒤 강제 추방됐다. 당시 설교에 감화돼 독립운동에 뛰어든 청년이 2021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교육자이자 목회자로 활동한 고 박중학 목사다. 추방된 오다 선교사는 일본에서도 조선인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심지어 일본 이름을 버리고 ‘전영복’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기도 했다.이런 활동에 비해 두 선교사의 발자취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인이란 특수성 때문에 국내엔 기록이나 자료가 거의 남아있질 않았다. 일본에서도 기독교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자체 연구가 거의 없었다. 유 감독은 “특히 노리마츠 선교사는 복음만 남길 뿐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다”라며 “때문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의 자식들은 광복 뒤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아무 기록도 없어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라고 전했다.자료 조사도 어려웠지만, 8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에서 일본인의 선행을 조명하는 시도는 여전히 난관이 적지 않았다. 그는 “제작 과정에서도 ‘왜 우리가 일본 선교사에 대해 알아야 하느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라며 “일본이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조건 미래로 가자고 하기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라는 것도 결국 한 사람의 일본인과 한 사람의 한국인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가 모이고 쌓여 형성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로 잘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면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작은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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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내 지하종교, 이미 막기 힘들 정도로 퍼져있어”

    “북한 정권이 청년들을 겨냥한 종교 금지법까지 만들었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네까? 그만큼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라는 반증이지요.”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자유통일연구소(소장 손광주) 창립 세미나 ‘북한의 종교 및 한류 탄압 실태와 남북 인권 대화의 길을 찾아서’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북한 내 종교 활동 및 탄압 사례를 증언했던 탈북자 출신 주경배 목사(57)는 6일 동아일보와 만나 “북한 정권은 어떻게든 지하 종교 활동을 막으려고 하지만, 이미 막기 힘들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2008년 탈북한 그는 2020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탈북민들과 북한 내 선교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은 선전용 외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지 않습니까. “겉으로는 그렇지요. 그런데 2021년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젊은이들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는 ‘청년교양보장법’이란 걸 채택했어요. 김정은 정권의 대표적인 악법 중 하나인데, 제41조(청년들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 3항이 ‘종교와 미신 행위’예요. 이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별도로 법을 만들어 통제해야 할 정도로 종교가 젊은층에 많이 퍼진 상태라는 반증이죠.” ―어느 정도나 될까요.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탈북민 중에 북한에서 지하교회를 하다 보위부에 잡혀간 사람이 있었어요. 조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제일 윗사람 앞에 끌려갔는데, 재판에 안 넘기고 봐줬대요. 재판을 받으면 바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처지였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봐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간부였다고 해요. 그런 걸 보면….” ―구한말처럼 외부에서 목사나 선교사가 들어갈 순 없지 않습니까. “북한 내에서 전도하는 집단은 세 종류예요. 이미 분단 전부터 신앙을 가지고 대대로 이어온 ‘그루터기’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루터기로부터 지하교회 등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지요. 그리고 탈북했다가 신앙을 접하고, 전도하러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고요.” ―통제가 극심할 텐데 종교가 퍼진다니 이해가 잘 안 갑니다. “한국에선 늘 뉴스를 통해 북한을 보니까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북한 정권은 이중삼중의 감시망을 만들었지만, 주민들은 이웃이 신앙생활 하는 걸 알았다고 서로 다 신고하진 않아요. 주로 사이가 나쁘거나 미워하는 사람에게 그러지요. 한국 반공 영화에 나오듯 옆집 사람도 못 믿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걸렸다고 온 집안이 다 작살나는 것도 아니에요.” ―북한에서 종교 활동은 체제 전복 행위 아닌가요. “북한에는 ‘혁명적 군중 노선’이란 당 기본 노선이 있어요. 대중을 다 구원해서 혁명 승리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개념인데, 그러다 보니 일가족 수십 명이 걸려도 본보기로 몇 명만 크게 처벌하고 나머지는 살 수 있게 해줍니다. 집안을 전부 몰살하고 수용소에 보내면 누굴 통치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북한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아래에서는 종교가 퍼지고 있는 거지요. 종교가 퍼진다는 것은 김씨 왕조 신격화가 사실상 무너져 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선교도 통일을 이루는 데 굉장히 중요한 일인 거죠.”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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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경배 탈북목사 “북한 지하종교, 막기 힘들 정도로 퍼져”

    “북한 정권이 청년들을 겨냥한 종교 금지법까지 만들었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네까? 그만큼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라는 반증이지요.”최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는 자유통일연구소(소장 손광주) 창립 세미나 ‘북한의 종교 및 한류 탄압 실태와 남북 인권 대화의 길을 찾아서’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북한 내 종교 활동 및 탄압 사례를 증언했던 탈북자 출신 주경배 목사(57)는 6일 동아일보와 만나 “북한 정권은 어떻게든 지하 종교 활동을 막으려고 하지만, 이미 막기 힘들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라고 말했다. 2008년 탈북한 그는 2020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탈북민들과 북한 내 선교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북한은 선전용 외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지 않습니까.“겉으로는 그렇지요. 그런데 2021년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젊은이들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는 ‘청년교양보장법’이란 걸 채택했어요. 김정은 정권의 대표적인 악법 중 하나인데, 제41조(청년들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 3항이 ‘종교와 미신 행위’에요. 이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별도로 법을 만들어 통제해야 할 정도로 종교가 젊은 층에 많이 퍼진 상태라는 반증이죠.”―어느 정도나 될까요.“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탈북민 중에 북한에서 지하교회를 하다 보위부에 잡혀간 사람이 있었어요. 조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제일 윗사람 앞에 끌려갔는데, 재판에 안 넘기고 봐줬대요. 재판을 받으면 바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처지였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봐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간부였다고 해요. 그런 걸 보면….”―구한말처럼 외부에서 목사나 선교사가 들어갈 순 없지 않습니까.“북한 내에서 전도하는 집단은 세 종류에요. 이미 분단 전부터 신앙을 가지고 대대로 이어온 ‘그루터기’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루터기로부터 지하교회 등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지요. 그리고 탈북했다가 신앙을 접하고, 전도하러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고요.”―통제가 극심할 텐데 종교가 퍼진다니 이해가 잘 안 갑니다.“한국에선 늘 뉴스를 통해 북한을 보니까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북한 정권은 이중삼중의 감시망을 만들었지만, 주민들은 이웃이 신앙생활 하는 걸 알았다고 서로 다 신고하진 않아요. 주로 사이가 나쁘거나 미워하는 사람에게 그러지요. 한국 반공영화에 나오듯 옆집 사람도 못 믿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걸렸다고 온 집안이 다 작살나는 것도 아니에요.”―북한에서 종교 활동은 체제 전복 행위 아닌가요.“북한에는 ‘혁명적 군중 노선’이란 당 기본 노선이 있어요. 대중을 다 구원해서 혁명 승리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개념인데, 그러다 보니 일가족 수십 명이 걸려도 본보기로 몇 명만 크게 처벌하고 나머지는 살 수 있게 해줍니다. 집안을 전부 몰살하고 수용소에 보내면 누굴 통치하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북한 정권의 의도와는 달리 아래에서는 종교가 퍼지고 있는 거지요. 종교가 퍼진다는 것은 김씨 왕조 신격화가 사실상 무너져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선교도 통일을 이루는데 굉장히 중요한 일인거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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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1984’ ‘동물농장’ 기획한 건 조지 오웰 아내였다

    프랑스의 여성 조각가인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은 ‘로댕의 연인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진 천재’로 불린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조수이자 제자, 모델로 로댕의 공방에 들어간 그는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등 대표적인 로댕의 작품에 참여하며 천재적인 기량을 펼쳤다. 하지만 클로델의 작품은 로댕의 아류 정도로 취급받았다. 심지어 로댕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클로델의 작품이 출품되는 것도 막았다고 한다. 그가 재조명된 것은 1984년 렌마리 파리가 자신의 고모할머니인 ‘카미유 클로델의 전기’를 쓰면서였다. 이 책은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의 첫 번째 부인인 아일린 오쇼네시(1905∼1945)에 대한 이야기다. 읽다 보면 클로델과 비슷해도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을까 싶다. 1949년 출판된 ‘1984’는 오웰이 현대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극단화해 미래를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그린 책이다. 하지만 ‘세기말, 1984(End of the Century, 1984)’라는 디스토피아적 시를 통해 텔레파시로 세뇌된 미래 세상을 오웰보다 먼저 그린 사람은 오쇼네시였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영문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그는 스페인 내전(1936∼1939년)에도 참여했고, 체포돼 처형될 위기에 처한 오웰과 동료들을 구출했던 여전사였다. 저자는 심지어 세계 문학사에서 풍자 우화 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오웰의 ‘동물농장’을 우화로 기획하고 함께 편집한 사람도 아일린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정보부 검열과에서 뉴스를 검열하고 삭제하는 일을 했는데, 당시 별명이 ‘돼지’였다고 한다. 오웰이 ‘1984’에서 “돼지들은 파일, 보고서, 의사록, 각서라고 불리는 수수께끼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데 매일 엄청난 노동력을 쏟아야 했다. 그것들은 커다란 종이였는데, 글로 빽빽하게 채워져야 했고, 그렇게 채워지자마자 불태워졌다”라고 쓴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 저자는 여러 증언과 기록을 통해 70여 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오웰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한 작가 지망생 ‘에릭 블레어’가 ‘조지 오웰’이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창작을 뒷받침해 준 존재가 오쇼네시였다고 말한다. 그런 아일린을 오웰은 그저 ‘내 아내’라는 언급으로만 세상에 남겼다고 한다. 읽다 보면 ‘1984’에서 받았던 감동은 사라지고, 조강지처를 버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동물농장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욕구만을 위해 여성들을 전전한 ‘지질한’ 남자가 보여 씁쓸하다. ‘1984’처럼 굳이 어두운 미래를 그릴 필요도 없이, 자신이 살면서 부인에게 했던 행동이 바로 ‘디스토피아’라는 걸 오웰은 몰랐을까. 왠지 ‘동물농장’의 등장인물(혹은 동물) 중에 오웰도 있을 것 같아 씁쓸하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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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 오웰의 두얼굴…‘동물농장’ 기획자는 원래 아내였다 [책의 향기]

    프랑스의 여성 조각가인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은 ‘로댕의 연인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진 천재’로 불린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조수이자 제자, 모델로 로댕의 공방에 들어간 그는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등 대표적인 로댕의 작품에 참여하며 천재적인 기량을 펼쳤다.하지만 클로델의 작품은 로댕의 아류 정도로 취급받았다. 심지어 로댕은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클로델의 작품이 출품되는 것도 막았다고 한다. 그가 재조명된 것은 1984년 렌마리 파리가 자신의 고모할머니인 ‘카미유 클로델의 전기’를 쓰면서였다.이 책은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의 첫 번째 부인인 아일린 오쇼네시(1905~1945)에 대한 이야기다. 읽다 보면 클로델과 비슷해도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을까 싶다.1949년 출판된 ‘1984’는 오웰이 현대 사회의 부정적 측면을 극단화해 미래를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그린 책이다. 하지만 ‘세기말, 1984(End of the Century, 1984)’라는 디스토피아적 시를 통해 텔레파시로 세뇌된 미래 세상을 오웰보다 먼저 그린 사람은 오쇼네시였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의 영문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그는 스페인 내전(1936~1939년)에도 참여했고, 체포돼 처형될 위기에 처한 오웰과 동료들을 구출했던 여전사였다.저자는 심지어 세계 문학사에서 풍자 우화 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오웰의 ‘동물농장’을 우화로 기획하고 함께 편집한 사람도 아일린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정보부 검열과에서 뉴스를 검열하고 삭제하는 일을 했는데, 당시 별명이 ‘돼지’였다고 한다. 오웰이 ‘1984’에서 “돼지들은 파일, 보고서, 의사록, 각서라고 불리는 수수께끼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데 매일 엄청난 노동력을 쏟아야 했다. 그것들은 커다란 종이였는데, 글로 빽빽하게 채워져야 했고, 그렇게 채워지자마자 불태워졌다”라고 쓴 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였을까.저자는 여러 증언과 기록을 통해 70여 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오웰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난한 작가 지망생 ‘에릭 블레어’가 ‘조지 오웰’이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창작을 뒷받침해 준 존재가 오쇼네시였다고 말한다. 그런 아일린을 오웰은 그저 ‘내 아내’라는 언급으로만 세상에 남겼다고 한다.읽다 보면 ‘1984’에서 받았던 감동은 사라지고, 조강지처를 버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동물농장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욕구만을 위해 여성들을 전전한 ‘지질한’ 남자가 보여 씁쓸하다. ‘1984’처럼 굳이 어두운 미래를 그릴 필요도 없이, 자신이 살면서 부인에게 했던 행동이 바로 ‘디스토피아’라는 걸 오웰은 몰랐을까. 왠지 ‘동물농장’의 등장인물(혹은 동물) 중에 오웰도 있을 것 같아 씁쓸하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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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 전통 ‘생전예수재’ 사라지게 할순 없어… 원형 그대로 복원”

    “천년 전통이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4일 서울 강서구 홍원사에서 만난 회주, 동주 원명 스님은 최근 천년 전통의 불교 의식인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표준화·체계화한 ‘생전예수생칠지재의’를 출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책은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어산어장(魚山魚丈)인 동주 원명 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10여 년의 연구 끝에 집대성했다. 생전예수재는 살아생전에 49일 동안 기도를 올리며 자신의 사후 명복을 비는 불교 의식이다. 어산은 불교 의식 음악인 범패(梵唄)를, 어장은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 불교의 재 의식을 총괄하고 가르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승려를 일컫는다. ―생전예수재는 지금도 많은 절에서 행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생전예수재는 원래 하나의 원형에서 출발했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마다, 지역마다, 절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졌어요. 그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생략한 부분들이 많이 생겼지요. 문맥이 뒤섞인 것도 있다 보니 집전자가 의식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고요. 지금 원형을 복원해 남겨놓지 않으면 천년 전통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과거에는 범패를 배우는 게 스님들의 필수 코스였다고요. “옛날에는 ‘범패를 배워야 중물이 든다’라고 했지요. 일제강점기 등 어려운 시절에는 중도 재(齋)를 지내야 먹고살 수 있으니, 범패는 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배우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다 보니 지금은 전수하려는 스님이 거의 없어서 안타깝지요.” ―어산이 범패인 걸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산은 범패, 범음(梵音)이라고도 하는데, 가곡, 판소리와 함께 한국 3대 성악으로 불릴 정도로 우리 전통음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중국 위무제(조조)의 아들 조식이 산동 지방 어산을 지나는데 하늘에서 기막힌 범패가 들렸다고 해요. 이 소리를 모방해 후세에 전하면서 어산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어산은 크게 서울을 중심으로 전해진 경산제(경제)와, 대구 팔공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제(팔공산제), 전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제로 나뉘지요.”(경제 어산은 동주 스님을 중심으로 맥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불교 전통 의례도 한글화해야 한다고 하셨더군요. “전통 소리는 문화재 전승을 위해서 그대로 보존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 특히 젊은이들은 한문을 모르지 않습니까? 범패를 한문으로 부르다 보니 들으면서도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지요. 뜻도 모르고 읊고 듣는 기도가 무슨 소용인지요. 그러니 전통 의례는 전승을 위해 보존하고, 실용적인 한글 의례를 따로 개발하자는 것이죠. 1980년대부터 얘기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의외로 전해오던 전통 그대로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아요. 안타깝지요. 한글화되지 않은 성경, 찬송가로 예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단순히 한문을 번역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한글로 번역하면 양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문장, 용어 등도 의식과 노래 등에 맞게 바꿔야 해요. 그래서 저 같은 어장뿐만 아니라 국문학자, 시인, 작곡가, 심지어 소설가 등 전문가들이 총동원돼야 가능한 일이지요. 10여 년 전에 시도했다가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라 흐지부지됐는데…, 꼭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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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 60년대보다 훨씬 늘어난 우리 산림… 경제와 환경 함께 회복할 수 있다는 증거”

    “우리 스스로 ‘한국은 자연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다’란 편견이 있어요.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팔도 동물 열전’(다른)을 출간한 곽재식 교수는 1일 인터뷰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가 산림과 숲 면적”이라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개국 중 4위 정도로 최상위권”이라고 말했다.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인 그는 특유의 재담으로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해 ‘과학하고 앉아 있네’ 등 인기 과학 유튜브 채널의 섭외 1순위 인물.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등 40여 편의 과학 및 공상과학(SF) 소설을 출간한 다작(多作) 작가이기도 하다. “그동안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환경 파괴적 모습을 부각하다 보니 관심을 환기하는 데는 성공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우리 자연환경은 다 파괴되고 제대로 남은 게 없다는 오해도 생긴 게 사실입니다.” 곽 교수는 “또 하나의 오해는 경제,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환경은 그만큼 오염되고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라며 “1950, 6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이 양적·질적으로 늘어난 우리 산림은,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술 및 경제 발전과 함께 환경도 회복되고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높은 인구밀도와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에도 멧돼지가 민가에 내려오고, 고속도로를 건너는 고라니를 심심치 않게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곽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종의 유해 동물로 취급되는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 단계 취약 등급으로 보호하는 동물. 세계적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에만 있는데, 1만 마리 정도인 중국에 비해 기이하게 한국에는 수십만 마리가 있다. 올해 한반도를 덮친 폭염 등 지구적 기후변화는 그에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 곽 교수는 “자칫 오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기후변화를 극단적·종말론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우리가 주변에서 현실적으로 개선하고 노력할 수 있는 식으로 접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북극, 남극의 얼음이 다 녹으면 홍수가 나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종말을 막을 대책이 있으면 성공이고 없으면 실패라는 단순화된 관점도 생겼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이미 ‘기후변화 적응 기술(Climate Change adaptation)’이 국내에 소개된 지 10년이 넘는데도, 자극적이지 않아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기후변화 적응 기술이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부정적 영향에 대응하는 기술. 도시 녹지 확대, 홍수 대비 시설 구축, 빗물 저장 및 활용, 스마트 농업 도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곽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점점 더 커질 테고, 이를 극복하는 기술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굉장히 오랜 시간을 버틸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그런데 속된 말로 흔히 보는 것, ‘쇼킹’하지 않다는 이유로 관심을 못 받아 안타깝다”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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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발전으로 환경 파괴?…우리 산림·숲 면적은 OECD 최상위권”

    “우리 스스로 ‘한국은 자연이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다’라는 편견이 있어요.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최근 ‘팔도 동물 열전(다른)’을 출간한 곽재식 교수는 1일 인터뷰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가 산림과 숲 면적”이라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개 국가 중 4위 정도로 최상위권”이라고 말했다.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인 그는 특유의 재담으로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해 ‘과학하고 앉아 있네’ 등 인기 과학 유튜브 채널의 섭외 1순위 인물.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등 40여 편의 과학 및 공상과학(SF) 소설을 출간한 다작(多作) 작가이기도 하다. “그동안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환경 파괴적 모습을 부각하다 보니 관심을 환기하는 데는 성공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우리 자연환경은 다 파괴되고 제대로 남은 게 없다는 오해도 생긴 게 사실입니다.”곽 교수는 “또 하나의 오해는 경제,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환경은 그만큼 오염되고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라며 “1950~6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이 양적·질적으로 늘어난 우리 산림은,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술과 경제 발전과 함께 환경도 회복되고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높은 인구밀도와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에도 멧돼지가 민가에 내려오고, 고속도로를 건너는 고라니를 심심치 않게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곽 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종의 유해 동물로 취급되는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 단계 취약 등급으로 보호하는 동물. 세계적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에만 있는데, 1만 마리 정도인 중국에 비해 기이하게 한국은 약 수십만 마리가 넘는다.올해 한반도를 덮친 폭염 등 지구적 기후변화는 그에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 곽 교수는 “자칫 오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기후변화를 극단적·종말론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우리가 주변에서 현실적으로 개선하고 노력할 수 있는 식으로 접근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북극, 남극의 얼음이 다 녹으면 홍수가 나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종말을 막을 대책이 있으면 성공이고 없으면 실패라는 단순화된 관점도 생겼다는 얘기다.그러다 보니 이미 ‘기후변화적응 기술(Climate Change adaptation)’이 국내에 소개된 지 10년이 넘는데도, 자극적이지 않아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기후변화적응 기술이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부정적 영향에 대응하는 기술. 도시 녹지 확대, 홍수 대비 시설 구축, 빗물 저장 및 활용, 스마트 농업 도입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곽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점점 더 커질 테고, 이를 극복하는 기술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굉장히 오랜 시간을 버틸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며 “그런데 속된 말로 흔히 보는 것, ‘쇼킹’ 하지 않다는 이유로 관심을 못 받아 안타깝다”라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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