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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체벌이 어제부터 전면 금지됐다. 교사들은 “당장 첫날부터 수업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 고교 교사는 “떠들거나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더니 ‘오늘부터 체벌 안 되는 거 아시죠. 우리 휴대전화 있어요’ 하더라”고 전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올해 7월 체벌 금지 방침을 천명한 뒤로 학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은평구의 한 여교사는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다가 “벌도 못 줄 거면서 시끄럽기는…” 하는 핀잔을 듣고 황당했다고 토로했다. 이 교사가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지도 매뉴얼에 따라 해당 학부모와 면담하기 위해 전화를 하자 “왜 나한테 훈계를 하느냐. 당신이 우리 애 선생이지 내 선생이냐”는 항의가 돌아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접수된 ‘체벌 금지 이후 부작용’ 사례다. ‘사랑의 매’가 없이는 교육시키기 어려운 학생들이 우리 교실 안에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적절한 체벌을 이용해 이들을 교육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교육 포기’가 될 수 있다. 체벌 금지 조치에 따라 가뜩이나 무사안일에 익숙한 교사들이 아예 학생 지도를 기피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수업시간에 소란을 피우거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학생들을 방치하다 보면 다수 학생이 학습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2004년 대법원은 체벌에 대해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는 학생의 잘못을 교정하기 불가능한 경우,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을 만한 객관적 타당성의 방법과 정도’로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곽 교육감처럼 ‘교육적 목적의 체벌’까지 금지하는 것보다는 대법원 판례가 우리 교육환경과 문화에 적절한 수준이라고 본다. 곽 교육감에게 교실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체벌 금지를 강행할지 판단할 것을 권하고 싶다. 체벌 문제는 교육청이 일률적으로 하라 마라 지시할 사안이 아니다. 허용 가능한 체벌의 방법과 한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체벌 금지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자 교육적인 체벌의 근거와 기준, 대안을 담은 법령을 추진한다고 해놓고는 아직 소식이 없다. 서울시교육청의 비현실적 조치와 교과부의 천하태평 속에 한국 교육은 어렵고 복잡한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있는 것 같다.}

“2일 밤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지지 우세 주) 남자들은 얼굴이 레드가 될 것이다. 포르노를 보느라고.” 11·2 미국 중간선거의 야당(공화당) 승리를 예상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기사의 한 토막이다. 선거든 싸움이든, 승부에서 이긴 남자들은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이 치솟기 때문에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부터 접속한다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거다.한국에선 정권교체 여론 62% 선거는 시작도 안 했지만 세계는 민주당 패배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패배를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심경을 묻는 인터뷰를 지난달 일찌감치 실었다. 중간선거라는 게 여당 견제심리에 따라 집권당이 패하게 돼 있고, 경제가 나쁘면 더한 법이라고 보면 간단하긴 하다. 유럽에서 우파가 득세했듯이 ‘작은 정부’를 좋아하는 미국인의 보수 성향이 돌아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불과 2년 전, 참신하고 지적(知的)인 대통령의 탄생에 열광했던 미국이 차갑게 돌아선 모습은 변심한 애인을 보는 것처럼 섬뜩하다. “오바마는 2012년 대선에서 져야 마땅하다”는 유권자가 51%나 된다. 우파는 오바마가 너무 좌로 가서 이 꼴이 됐다고, 좌파는 그가 좌파정책을 똑바로 못해서라고 협공이다. 이념을 떠나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를 물려받았던 현실만 놓고 본다면 오바마는 억울할지 모른다. 친(親)시장 잡지인 이코노미스트조차 “경기부양책과 구제금융 등 오바마 경제정책은 명백한 성공”이라고 평했다. 당장 일자리가 늘지 않아 문제지, 공황은 막았다는 점에서다. 오바마 자신은 “정책에 신경 쓰느라 정치엔 소홀했다”고 분석했다. 우리도 6·2지방선거에서 패한 한나라당과 대통령한테서 비슷한 소리를 들은 바 있다. 일은 잘했는데 소통을 잘못했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실패한 정치인이 하는 소리다. ‘한나라당이 재집권했으면 좋겠느냐’는 한국정책과학연구원 조사에서 ‘바뀌는 게 좋다’가 61.6%나 됐다. 50%에 가까운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허상일 수 있다. 오바마도 지지도가 그 정도는 됐고 코미디채널에 출연할 만큼 소통에도 애썼다. 경제가 불같이 일어나 내 일자리가 생기고 내 봉급이 오르며 내 재산도 늘지 않는 한,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쉬울 리 없다. 반면 안 되게 하는 일은 쉽다. 사람에겐 상황이 나쁘면 출구를 찾는 ‘액션 바이어스’가 있어 변화를 외치는 야당 후보를 찍을 공산이 크다. “나쁠수록 좋다”는 레닌의 명언은 당 이념과 상관없이 유효하다. 오바마의 패배가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야당의 대선 필승법칙이 여기 숨어 있다. 나라가 잘되는 건 어떻게든 막는 것이다!4대강 실패에 민주당 목숨 거나 행동수칙 첫째는 발목잡기와 뒤집기다. 한국 제1야당 민주당이 집권 때 미국과 체결했던 자유무역협정(FTA)에 사실상 반대하는 것도 이 ‘악마의 법칙’에 대입해 보면 이해된다. 미국 시장이 활짝 열려 우리 경제가 탄력을 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미 공화당도 집권 시절 입안한 경기부양책을 대통령이 바뀌자 하원 전체가, 상원에선 세 명 빼고 몽땅 반대했다. 민주당이 4대강 사업의 발목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사업이 완성돼 국민 지지를 받으면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이 어려울 테니까 반대하는 것”이라고 명쾌히 설명했다. 민주당 주장대로 4대강 사업이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면 내년 완공 즉시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총선이나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필패할 텐데 바보가 아닌 이상 정부가 그런 일을 하겠느냐는 거다. 둘째 수칙은 거짓말과 왜곡이다. 역시 친시장 신문인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가 “공화당은 환자를 그냥 뒀으면 지금쯤 회복됐을 거라고 대중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을 정도다. 오바마가 중산층에 대해선 이미 감세를 했는데도 미국인들은 구제금융으로 기업과 금융만 잘살게 됐다고 믿는 게 한 예다. 한국의 민주당이 하도 “부자 감세 반대”를 외치기에 나도 부자들이 엄청난 감세 혜택을 누리는 줄 알았다. 실제론 부자 감세를 한 적도 없다. 중소기업과 영세상인에 대한 감세는 2008년에 진작 했고, 연소득 8800만 원을 초과하는 사람만 소득세율을 올해부터 35%에서 33%로 내리려 했다가 글로벌 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2012년까지 유예했는데 민주당은 교묘하게 국민을 속이는 형국이다. 1994년 다수당이 된 공화당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는 민주당 공격에 너무 나간 탓에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에 거꾸로 이바지했다. 우리의 민주당도 너무 나가면 정권탈환이 더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야당의 필승법칙에 진짜 나라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최강대국이므로 이러나저러나 살 수 있다. 우리는 인구 감소가 시작되는 2020년까지 선진국이 못 되면 기회가 없다. 국민이 정신 바짝 차리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1950년대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였다. 1949년 동남아국가 중 우리나라와 처음으로 수교했고, 1963년엔 필리핀 기술자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돔식 실내체육관인 서울의 장충체육관을 지어줬다. 6·25전쟁이 터지자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의원(1961∼1965년 대통령)은 필리핀 파병법안을 발의했다. 보병 1개 대대가 참전해 용감히 싸우다 112명의 전사자와 229명의 부상자를 냈다. ▷인연은 돌고 도는 모양이다. 휴전 50주년인 2003년부터 ‘6·25 참전용사에게 보내는 감사편지 쓰기’ 행사를 하고 있는 사단법인 H2O품앗이운동본부의 장문섭 사무총장이 올 7월 필리핀을 방문해 편지를 전달하자 그들은 감동했다. 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였던 필리핀 팜팡가 주 칸타바 시의 제리 펠라이요 시장은 “지금 필리핀에도 필요한 운동이 품앗이”라며 ‘품앗이 운동 MOU’를 체결했다. 22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2010 품앗이안 세계대회’에는 아로요 전 대통령이 참석해 “어려울 때 도움을 주고 또 이를 잊지 않고 갚는 Pumassi(품앗이)가 필리핀과 한국의 우정과 협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올해 이경재 의원(한나라당)이 H2O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 품앗이를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품앗이는 타산적으로 들리는 ‘Give & Take’와는 많이 다르다. 사랑과 정이 오간다는 의미도 아름답지만 마침 외국인이 발음하는 데도 어렵지 않다. 이 이사장은 16개 6·25 참전국가를 중심으로 세계 품앗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도움 받는 나라에서 도움 주는 나라로 발돋움한 ‘국격 있는 한국’의 참모습을 보일 계획이다. ▷6·25 참전 인연이 있는 나라 사람들은 지금도 한국에 우리가 놀랄 만한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유치할 만큼 발전한 것을 보며 자신들도 기여한 바 있다는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한국은 수십 년간 외국원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가난한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도 자부심을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의 품앗이운동이 지구촌 공영(共榮)의 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2008년 4·9 총선 직후 손학규 당시 통합민주당 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처리해 통합민주당이 신뢰받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일에는 야당으로서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는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지사 시절 해외투자 유치에 앞장섰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6년 대선 주자의 길을 닦기 위한 ‘민심 대장정’을 할 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FTA라는 어려운 결단을 한 것을 높이 평가해주고 더욱 힘 있게 추진하도록 격려해주자’고 자신의 블로그에 썼다.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한 직후에도 “국가 생존 차원에서 한미 FTA 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10·3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손 대표는 말을 바꾸었다. 전당대회 직전만 해도 “한미 FTA 재협상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는 최근 당내에서 한미 FTA 재협상 논란이 가열되자 ‘여론 수렴을 위한 당내 특위 구성’이란 우회로를 선택했다. 8일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당의 명백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압박하자 “피해 상황을 보완하는 것을 과제로 삼겠다”며 재협상 쪽으로 무게를 옮겼다. 야 4당과 무소속 의원 35명이 한미 FTA의 수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18일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발송했다. 이들은 “기업의 이해를 유권자의 이익보다 더 중시하는 FTA는 야합에 불과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주장했다. 2007년 4월 한미 FTA 타결 당시 집권 여당으로 박수를 쳤던 민주당 의원들이 이제 와서 FTA 재협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국제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경제에 대한 책임의식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손 대표를 이념에 경도되지 않은 소신의 정치인으로 기억하는 지지자가 적지 않다. 그는 2008년 7월 17대 국회를 마무리하면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17대 국회에서 한미 FTA 인준을 못한 것이 아쉽다”며 “내 리더십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당의 분위기를 인준하도록 바꿀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손 대표는 지금이라도 FTA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밝히고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신의 직장’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양극화 논란이 거셀 때마다 정부는 대기업 팔만 비틀더니 달콤한 열매는 엉뚱한 데서 따먹고 있었다. 올해 59개 공기업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4년 전보다 근 3배가 늘었다는 거다. 우리나라 전체에서 근로소득금액 1억 원을 넘는 고액 급여자가 봉급생활자의 0.76%인 10만6673명이다. 그런데 ‘지식경제부 산하 공기업 현황’에 따르면 여기서만 2.8%인 2979명이 1억 원 이상을 받고 있었다. 금융위원회에 속한 한국거래소는 더하다. 직원의 40%가 작년에 1억 원 넘는 연봉을 받았다. 무슨 특별한 일을 하기에 이렇게 돈을 많이 받나 했는데 김봉수 이사장의 인터뷰를 보면 그것도 아니다. 경쟁자가 없으므로 경쟁할 필요가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수수료 수입으로 배불리 먹고살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주인 없이 눈먼 돈으로 운영되는 땅 짚고 헤엄치기 조직이 공공기관이다. 경쟁 없고 망할 일 없으니 ‘칼퇴근’ 하면서도 복지혜택은 최상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공공개혁”을 외치고, 국정감사마다 공공기관에 “방만하다” 질책이 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또 충격을 받는 이유는 배가 아파서만이 아니다. 출범 전부터 유독 ‘작은 정부’를 주장했던 이 정부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다.민영화로 청년 고용 늘린다더니 공공개혁은 MB노믹스의 핵심이었다. 2008년 5월 초엔 305개인 공공기관 중 50∼60개를 민영화하면 철밥통이 깨져 일자리, 특히 청년층 고용이 늘어날 것이고, 민영화에서 생기는 60조 원의 수입으로 중소기업과 공교육을 살리겠다고 큰소리쳤다. 그 무렵 쇠고기 촛불시위가 격렬해지면서 공공개혁의 동력은 꺼졌다. 정부로선 불가항력 또는 운명의 장난이라고 가슴을 쳤을지 모른다. 공공개혁의 시퍼런 날은 ‘공공기관 선진화’로 연성화했다. 집권 절반이 지난 지금 공공기관은 285개이고 24개로 예정했던 공기업 민영화는 6개에 그쳤다. 그러면서 방만과 비효율이 이어지는 건 정부의 공모(共謀) 없이는 불가능하다. 첫째가 ‘낙하산 인사’다. 지난 정권에서 “공공기관 감사 자리가 전리품이냐”고 비판하던 사람들이 집권 후 질세라 똑같이 욕심내는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특히 한국거래소는 흥청망청 경영이 계속되자 2009년 초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받았지만 또 낙하산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선 “4월 선임된 김덕수 상임감사에게 이사장보다 더 큰 60평대 아파트가 제공된 건 청와대 출신 감사에 대한 과잉충성이냐, 김 감사의 요구냐”라는 질타가 있었다. ‘영포라인’ 인사개입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포항 출신이어서 영전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터져 나왔다.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 천명 전후인 8, 9월 교체된 10개 공공기관 상임감사 중 5명이 한나라당 경력이다. 둘째, 돈 버는 데는 관심 없고 쓸 줄만 아니 공공부채는 무섭게 늘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가 밝힌 공공기관 부채가 2009년 347조 원이다. “최악의 재정적자를 은폐하기 위해 국고사업을 공기업에 떠넘겨 공기업 부채가 MB 집권 2년 사이에 54.5%가 증가한 212조 원”이라는 민주당 주장보다 많다. 더 겁나는 건 공공부채 무서운 줄 모르는 정부 태도가 이를 더 키운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국제기준에선 공공부채가 국가채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4대강 살리기부터 임대주택 사업까지 공공기관이 빚내 벌이는 우리에겐 당연히 공공부채도 국가채무다. 그들이 펑펑 쓴 돈을 내가 낸 아까운 혈세로 메워야 할 판이다.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35.6%라는 정부의 말을 믿기 힘든 것도 그런 태도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공기업 부채 등을 포함해 소개한 ‘국제비교를 위한 국가채무’는 1717조6000억 원, 무려 130%다. 재정위기라며 대대적 긴축살림을 펴고 있는 영국이 71.3%인 것에 비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공기업 펑펑 쓰는 내 세금 아깝다 그런데도 정부는 14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청년고용정책을 발표하며 채용실적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같은 공공기관을 쾅고(Quango·Quasi-Autonomous Non-Governmental Organisation)라고 조롱기 섞어 부르는 영국에선 같은 날 192개의 쾅고를 없앤다고 발표했다. 쾅고는 유사자치 비정부기구라는 뜻이다. 지금처럼 방만하게 운영되는 공공기관에 청년들이 새로 고용되면 국민은 자칫 30년 이상 그들을 책임져야 할 판이다. 그럴 바엔 2년쯤 모신 뒤 다음 정권 때 또 바뀔 낙하산 감사가 나을 성싶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세계 금융위기의 교훈을 언급하며 ‘탐욕에 빠진 자본주의’를 지적했다. 그래도 자본주의는 시장의 견제를 받는다. 나는 탐욕에 빠진 공공기관이 더 무섭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중(韓中) 고위언론인 포럼에서 천안함 폭침에 대한 중국 기자들의 발언은 거의 ‘관보(官報)의 합창’이었다. 중국 기자들은 “현재까지 북한의 소행이라는 완벽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언론사의 한 간부는 “한국군이 냉전 시기에 설치한 기뢰를 꽃게잡이 어선들이 건드려 부유했고, 이 기뢰가 터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인터넷 괴담을 그대로 옮겼다. 중국 언론인들의 발언은 중국 정부의 방침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토론에 참석한 한국 언론인들은 사회주의 국영 언론의 한계를 절감했다. ▷마오쩌둥 비서 출신의 전 공산당 간부, 전 런민일보 사장, 전 신화통신 부사장 등 언론 관련 인사 23명이 마침내 언론출판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해외 인터넷에 올린 서한에서 “1982년 중국 헌법이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규정했지만 지난 28년간 시행된 바 없다”고 했다. 중국의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 씨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지식인들이 비록 소수지만 양심의 소리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가 최근 수차례 역설한 정치개혁 요구도 정부가 보도를 막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중국 권력층 내부에도 다른 의견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미국 프리덤하우스의 올해 언론자유 평가에서 중국은 196개국 중 181위로 ‘자유롭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꼴찌는 북한이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터졌을 때 정부 압력으로 중국 언론이 2주일 이상 보도를 못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국제사회의 비난 이후 조금 달라지는 듯했지만 올 초 인터넷 검열을 둘러싼 ‘구글 파동’에서 드러난 것처럼 중국의 언론통제는 여전하다. ▷언론통제 사회에선 창의적이고 비판적 사고가 불가능하다는 치명적 맹점이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이 짝퉁과 모방에는 강해도 혁신적 테크놀로지를 내놓기 힘들고, 따라서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을 정확히 보도하고 공론(公論)의 장을 펴는 언론자유는 민주사회의 바로미터다. 어느 나라에서건 언론 자유 없이는 민주주의도, 지속가능한 번영도 어렵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이 그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갖고 교원의 정치활동이 허용되도록 법 개정 청원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차기 총선 및 대선에서 이를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자를 돕는 선거운동에도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교총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불법적인 정치활동을 밀어붙이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는 데 대해 같은 교원단체로서 자극을 받은 듯하다. ‘교원의 노동조합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은 교원노조법 3조를 무시하고 정치활동을 일삼아 온 소수의 강성 조직이 전교조다. 전교조가 교사 본연의 자세를 잃을수록 교총은 학부모에게 신뢰감을 주는 건강한 교원단체로 위상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안 회장이 “정치 참여를 위해 전교조와도 연대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교총의 역사와 정체성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최대 교원단체로 한국 교육에 기여해온 교총이 전교조와 손잡는다면 학생들이 누구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지 당혹스럽다. 안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일부 교육감들이 체벌 금지, 전면 무상급식 강행 등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일선 교사와 학부모들은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학교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걱정하는데 “교육과학기술부는 묵묵부답과 외면으로 일관했다”는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가 거론한 대로 정부가 새로운 교육정책을 숨 돌릴 새 없이 쏟아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총이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면’ 정치 참여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04년 초중등 교사들의 정치활동을 제한한 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최근 전교조의 시국선언에 잇따라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교총이 뒤늦게 전교조의 위헌적 불법적 행위를 따라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안 회장의 ‘폭탄 선언’에 교과부는 ‘교원의 정치활동은 허용할 수 없다’는 원론적 태도만 표명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시국선언 등 불법 정치활동을 벌인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징계가 자꾸 미뤄지고 흐지부지 끝날 조짐을 보이니까 교총까지 정치판에 뛰어든다고 나서는 것 아닌가. 교육당국은 전교조든 교총이든 교원단체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단호하고 신속한 조치로 맞서야 한다.}
2008년 초 한 부부장검사가 친분이 있는 건설업자 김모 씨의 고소 사건을 담당한 후배 검사에게 ‘사건을 잘 검토해 달라’는 취지로 부탁을 했다. 후배 검사는 피고소인들을 기소했지만 모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피고소인들은 2009년 1월 부부장검사의 부인 명의로 구입된 그랜저 차 값을 김 씨 측이 대납한 것을 알고 알선뇌물수수 혐의로 부부장검사를 고발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피고소인들이 고발하기 전에 부부장검사가 차 값을 김 씨에게 모두 돌려줘 청탁 대가가 아니라 차용 관계라고 판단된다”며 무혐의 종결했다. 부부장검사가 건설업자로부터 돈을 받아 그랜저를 샀다가 나중에 차 값을 돌려준 것은 사실이지만 고발하기 전에 갚았으므로 대가성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부부장검사가 일반 공무원이었더라도 검찰이 같은 결론을 냈을지 의문이다. “의례적인 수준의 부탁을 했던 것”이라는 검찰 설명도 일반인의 상식과 어긋난다. 승용차 값이 오고가는 관계의 사람을 위해 후배 검사에게 한 청탁을 그냥 의례라고 볼 수 있는가. 검찰이 같은 식구를 대상으로 법을 집행할 때 더 엄정한 기준을 적용해야 국민 앞에 떳떳할 수 있다. 부부장검사가 후배 검사에게 사건을 잘 봐달라는 것이 ‘의례적’이라면 법 앞의 평등은 설 자리가 없다. 검사가 건설업자와 오랜 친분 관계를 갖고 거액의 금전거래를 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얼마 전 특검 대상이 된 ‘스폰서 검사’를 폭로한 사람도 지역 건설회사 대표였다. 특검은 전·현직 검사 4명을 포함한 9명을 기소했다. 검사들이 타 업종에 비해 약점이 많을 수 있는 건설회사 대표들과 술을 마시고 돈을 주고받는 것은 정상적인 관계라고 하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최근 특수부 검사가 고위 공무원을 잡아넣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전격 구속되면서 검찰총장 진퇴 문제까지 거론된다. 오사카지검 특수부 마에다 쓰네히코 검사는 후생노동성 국장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 압수한 플로피디스크의 업데이트 날짜를 조작했다. 최고검찰청은 마에다 검사를 체포하고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조치를 취했다. 검찰이 스스로 엄정하지 않으면 법치(法治)의 권위를 세울 수 없다. 검찰은 동료 검사의 사표를 받아 옷을 벗겼으니 변호사 개업이라도 하게 해주자는 동정심에서 관대한 처분을 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집단 이기주의에 젖은 안이한 자세로는 공익의 수호자가 될 수 없다.}
영국의 이언 덩컨 스미스 복지(일과 연금) 장관은 현재 복지급여 수혜자들을 10년 안에 ‘졸업’시키겠다는 획기적인 복지개혁안을 최근 발표했다. 핵심은 일을 통한 자립이다. 근로능력이 있으면 반드시 일해야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방만한 혜택 덕에 근로연령 성인 네 사람 중 한 명은 일 없이 노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일을 하는 것이 복지혜택 속에 사는 것보다 훨씬 낫게 해서 자력(自力)으로 가난의 덫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용과 복지 연계해 自力빈곤탈출 유도해야 영국의 ‘혁명적’ 복지개혁은 최근 선진국에서 진행되는 복지제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유럽 복지국가 전체의 화두는 ‘고용 연계형 복지(workfare)’다. 동아일보가 최근 3회에 걸쳐 소개한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5개국의 복지제도 역시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달성하는 사회투자형 복지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근로 무능력자가 아니면 직업훈련을 받아야만 생계비 보조를 받을 수 있다. 독일은 실업급여를 놓칠까 봐 재취업하지 않는 장기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2003년부터 실업급여와 기초생활급여를 통합했다. 이들 선진국은 복지를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차원에서 다루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성장과 복지가 대립하는 양상이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내년 복지예산은 총 86조3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5조1000억 원 늘었고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7.9%로 사상 최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 ‘따뜻한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실업이나 질병, 재난에 부닥쳤을 때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도 사회안전망 확충은 절실하다. 고용보험 미적용자가 취업자의 59%인 1300만여 명이다. 위기 때 가장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정부가 긴급 구조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분배 일변도의 소모적, 성장잠식형 복지제도는 수혜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와 납세자들의 부담만 키우면서 힘들게 축적한 ‘씻나락’까지 까먹을 우려가 있다. 21세기에 알맞은 성장형 복지제도를 위해서는 수요자 중심의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사회복지 급여 대상자의 자격과 이력 정보를 통합한 ‘사회복지통합관리망’ 운영을 시작했지만 사회복지 전달 체계가 비효율적이고, 복지와 고용지원이 따로 도는 탓에 현장에서 느끼는 복지 만족도가 낮다. 2005∼2008년 감사원 분석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사회복지 분야의 누수 예산은 2879억 원이나 됐다. 민관(民官) 제휴를 통해 복지서비스 제공에도 경쟁과 효율, 책임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고용연계형 복지 실현을 위해 복지부처와 고용부처를 통합 운영하는 구조적 개혁도 검토해야 한다. 복지병과 재정적자로 신음하는 유럽형 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21세기형 복지제도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다.}

“페이스북에서 당신을 찾는 친구가 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페이스북을 모르는 사람은 이런 e메일을 받으면 놀라서 지워버리곤 한다. 페이스북의 달인들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순식간에 친구가 된다. e메일을 등록하는 순간부터 이 ‘얼굴 없는 기술’은 저 혼자 끊임없이 계산해서 ‘모교’ 정보로 동창을 찾아주는 건 기본이고, 공통의 친구가 많은 사람을 찾아내 “서로 아는 사이지”라고 묻고는 친구로 사귀라고 권유한다. 너무나 친절하지만 그래서 부담스럽기도 한 페이스북의 두 얼굴이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마크 주커버그(26)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지난주 개봉하자마자 북미 흥행실적(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영화 속의 그는 하버드대 시절 선배들의 아이디어를 훔쳐 부자가 됐다. 천재적이지만 무자비한 인물이다. 실제의 그가 영화 개봉 직전인 지난달 24일 뉴저지 주 뉴어크 시 공교육 개혁을 위해 1억 달러를 기부한다고 밝혔다. 영화 시사회 시점과 맞춰 착한 척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주커버그 측은 물론 일축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소개한 페이스북 신화의 ‘진실’에 따르면, 주커버그가 소셜 네트워크 ‘하버드 커넥션’을 만드는 선배들의 작업을 위해 잠시 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커버그는 선배들의 작업이 끝나기 전에 독립해서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배신감을 느낀 선배들은 그가 아이디어를 훔쳤다며 소송을 걸었고, 주커버그는 수천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주고 해결했다. 당시는 이미 클럽 넥서스 같은 비슷한 서비스가 꽤 존재했다.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든 사람은 역시 주커버그였던 셈이다. ▷지금 미국의 인터넷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 페이스북이다. 주커버그의 자산도 지난해 2억 달러에서 69억 달러로 급증했다. 개인의 정돈된 정보, 즉 프로파일(profile)의 가치가 페이스북의 급성장 요인이다. 하지만 프라이버시 공개가 상황이 바뀌면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로 변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한 고교 연설에서 “한때 페이스북에 올린 정보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며 신중을 당부한 것도 그래서였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이젠 면역될 만도 한데 안 된다. 자녀문제가 걸리면 모두 신경이 곤두선다. 지난 주말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외교통상부의 고위층 자녀 특채 진상은 청년 백수뿐 아니라 자식 가진 부모까지 분노케 했다. 명절 때도 부모 볼 낯이 없어 고향에 못 온다던 무권무직(無權無職) 자식에게 이젠 ‘부모 잘못 만나게 한 죄’를 빌게 생겼다.공직에 자녀 특채는 부패행위다‘족벌주의(nepotism) 스캔들이 남한에 출몰했다’는 지난주 중국의 신화통신 영문판 기사를 보면 우리끼리는 다 아는 얘기여도 낯이 뜨거워진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딸 특채로 워낙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이 뿌리 깊은 이 나라에 파문이 번지고 있고, 여론조사마다 사회 공정성을 믿는다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 드라이브는 허구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외교 수장이 결국 나라를 망신시킨 셈이다. 한 달 전 ‘부정 특채’ 사실이 밝혀진 그의 딸은 ‘똥돼지’ 스캔들을 퍼뜨린 주인공이 됐다. 똥돼지란 부모 ‘빽’으로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대기업에 특혜 채용된 고위공직자 자녀를 말한다. 이런 특채가 너무 많아서 전담팀까지 둔 한 기업 인사팀에서 쓰는 은어라고 한다. ‘낙하산’ 같은 말은 차라리 소박해 보일 만큼 노골적 경멸과 반감이 배어난다. 그게 국민의 현재 감정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족벌주의는 인간 본성일 수 있다. 이지서베이가 최근 직장인 681명에게 물은 조사에서 직장인 넷 중 하나가 “낙하산과 근무 경험이 있다”고 밝혔듯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빽으로 입성한 사람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 세금으로 봉급 받는 공직은 다르다. 국가기관을 사유물로 여기고 제 자식을 통해 세금을 빼돌리는 일종의 부패행위다. 규정을 멋대로 어기고 자녀를 집어넣은 공직자 때문에 더 유능한 공복(公僕)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밀려났으니 국리민복에 해를 끼친 국정 농단이 아닐 수 없다. 구글 영문판으로 최근 족벌주의 기사를 검색하면 우리나라를 빼곤 거의 아프리카 파키스탄 이라크 같은 후진국이다. 나라 위신을 추락시킨 죄도 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용서하기 힘든 대목은 신분제를 부활시켜 이 땅의 보통 부모들에게 죄책감을 안긴 점이다. 헌법은 ‘사회적 특수 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했다. 유 전 장관처럼 딸이 받은 특혜가 특혜라는 개념도 없이 단지 능력이 있어 뽑혔다고 믿고, 심지어 잘못을 안 지금도 국정감사 불출석을 고집하는 건 전형적 특권층의 오만이다. 특채 비리, 더 철저히 감사해야 부모들이 낙담하면 젊은 세대라도 낙관적이면 좋으련만, 매사에 비판적인 그들은 한술 더 뜬다. 지방대 의대에 다니는 한 여대생은 “우리 학교에선 부모가 의사이면 성골, 친척이 의사이면 진골, 아는 사람 중 의사가 있으면 육두품, 비빌 언덕 없이 의대에 간 나 같은 사람은 천민”이라고 말해 자식 의대 보내놓고 뿌듯해하던 부모의 억장을 무너뜨렸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론 부모가 고위공직자이면 성골, 사회적 배려대상자이면 진골, 여야가 앞 다퉈 마련한 혜택을 받게 될 서민이면 육두품, 이도저도 아니면 천민으로 살아야 할 판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이 2012년 아닌 지금 터진 것을 고맙게 여길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똥돼지 현상을 뿌리 뽑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 회복은 어려울지 모른다. 자녀의 공직 특채는 공직자가 위장전입으로 아이들 좋은 학교 보내는 차원을 뛰어넘는 문제여서다. 똥돼지의 부모들은 자녀 뒷바라지의 영역을 대학 입학을 넘어 취업까지, 결혼시킨 뒤 심지어 사위까지 챙기는 특권층의 모델을 드러내 보통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위장전입과 달리 이건 모방도 할 수 없다. 대대손손 벼슬을 잇겠다는 신분 집착도 문제지만 공직을 발판 삼아 더 높은 신분으로 상승시키겠다는 배부른 태도는 국민 반감에 불을 지른다. 그런데도 행안부가 외교부만의 감사로 특채 문제를 끝내는 건 납득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특채한 공무원 수가 같은 기간 전체 공무원 채용의 40%다. 2005년 말 부처별 자율 특채가 가능해지면서 ‘관계자’가 아니면 언제 특채 공고가 난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판에, 온 나라를 들쑤신 똥돼지가 달랑 외교부에만 열 십(十)이라는 건 믿기 어렵다. 행안부가 지난 5년간 중앙부처 5급 특채에서 적발한 부적절 사례가 11건이라는 것도 신뢰를 떨어뜨린다. 외교부에서만 뒤늦게 드러난 비리가 10건인데 어떻게 감사했기에 고작 11건을 밝혀냈단 말인가. 김황식 총리는 한 달 전 감사원장 시절 중앙정부와 지자체 인사채용 특별 감사 계획을 밝힌 것을 기억할 것이다. 총리가 된 전 감사원장과 감사원의 명예를 위해서도 특채 감사는 철저히 실시되고, 국민 앞에 낱낱이 보고돼야 한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실력이 뒤처지는 교사들은 교실에 남아있어선 안 된다”며 교사 개혁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교원노조에 대해서도 “노조가 변화에 저항하는 기질이 있다”면서 교원 성과급에 앞장서는 차터스쿨(자율형 공립학교)을 소개하며 교육개혁 동참을 압박했다. 미국 민주당이 노조를 지지 세력으로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용기 있는 발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 두 딸이 공립학교에 다녔더라면 (지금 다니는) 사립학교와 같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고 공립학교의 수준 향상을 촉구했다. 우리나라에선 수준 높은 교육을 위해 자기 자식은 특목고에 보내거나 해외유학을 보내면서도 ‘특목고 목조이기’에 앞장서는 이중적 공직자가 많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아들이 외국어고에 다니는데도 유세 기간엔 “외국어고가 설립 취지에 어긋나게 입시교육에 치우친다면 퇴출시킬 계획”이라고 공언했다. 정부는 2013학년도 이전에 외고 정원을 대폭 줄이거나 국제고, 자율형 공사립고, 일반고로 전환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에선 공립학교의 교육을 질 좋은 사립학교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땀을 흘리는데, 우리나라는 잘 가르치는 학교를 하향 평준화시키기에 바쁘다. 어제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가 주최한 교육토론회에서 공교육살리기 학부모연대 이경자 상임대표는 “잘못 가르쳐도 정부에서 책임을 묻지 않고 학생들 채워주고 돈까지 주니 (학교와 교사는) 노력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행복한 학부모재단 강소연 학부모지원본부장도 “학생과 학부모들의 눈높이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와 있다”면서 “공교육이 이에 미치지 못해 어린아이와 엄마들을 외국으로 쫓아낸다”고 개탄했다. 정범모 한림대 명예석좌교수도 “여러 교육 실험이 밝혀낸 혁명적 사실은 학교 교육방법만 개선한다면, 그리고 교사가 능력과 열의만 가지고 있다면, 학생들 거의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잘 배우는 완학(完學)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한 사회’도 공교육 개혁과 교사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의 삶이 힘겨워도 자식은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도록 ‘사회계층 이동’이 활발한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 공교육 부실로 사교육이 과도하게 팽창하면서 계층 이동성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사교육과의 전쟁’ 대신 ‘무능 교사와의 전쟁’으로 교육개혁의 방향을 전면 수정함이 옳다.}

지난해 인기 드라마 SBS TV의 ‘찬란한 유산’에서 진성식품 할머니 회장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고은성(한효주 분)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장을 쓴다. 철없이 돈이나 써대는 며느리나 못 미더운 손자 손녀보다 착하고 곧은 은성이 자신의 유산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현실에선 유가족에게 땡전 한 푼 안 돌아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민법은 혈연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타인에게 전 재산을 준다고 유언해도 유족에게 유산의 일정액이 돌아가는 ‘유류분’을 남겨두도록 했다. 즉, 은성이 유산의 절반을, 유가족이 나머지 반을 상속받는다는 얘기다. ▷앞으로는 부모나 배우자, 자녀라 해도 일정 기간 이상 부양의무를 지지 않았으면 유산을 상속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법무부는 가족 관련 제도의 전면적 손질이 필요하다고 보고, 가족법개정 특별분과위원회를 구성해 내년 상반기까지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이 안대로 법률이 만들어지면 부모 부양을 회피했던 자녀가 부모가 남긴 재산을 물려받겠다거나, 자녀를 버렸던 부모가 뒤늦게 나타나 자녀 몫의 재산에 손대려 해도 법이 허락하지 않는다.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정범구 병장의 어머니는 “돌 때 (남편과) 헤어져 양육비도, 위자료라는 것도 모르고 맨몸으로 아이를 길렀는데, 자식이라고 취급조차 안 했던 아버지가 사망일시금을 받아갔다”고 지난달 아들의 미니 홈피에 글을 올렸다. 고 신선준 상사가 두 살일 때 이혼해 떠났던 친어머니도 사망보상금의 절반인 1억 원을 상속인 자격으로 받아갔다. 고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목숨과 바꾼 돈이라 한 푼도 헛되이 쓸 수 없다”며 법원에 상속 제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2008년 1월 호주제(戶主制)를 폐지하기 전까지는 동일한 호주에게 딸린 사람만 가족으로 쳤다. 개정민법이 시행되면서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는 물론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가 다 가족이 됐다. 부부와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간, 기타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 간에는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고 민법은 규정하고 있다. 혼인과 혈연으로 맺은 가족끼리라도 부양 없는 상속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상속에서도 무임승차가 사라진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잠깐 바람피우다가도 결국 가정으로 돌아오는 남편 같았다.” 스웨덴의 정치를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78년 동안 단 두 번 우파에 정권을 내줬을 뿐 65년간을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집권해온 것이 스웨덴 정치의 전통이었다. 세계 좌파들의 열반이었고,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자국민에겐 적잖은 부담이었던 ‘스웨덴 복지모델’을 확립한 것도 사민당이다. 복지보다 일자리 선택한 스웨덴 이번엔 진짜 사랑을 만난 모양이다. 19일 실시된 총선에서 현 우파정부의 첫 재집권이 확실시된다. 성장률 4%가 넘는 경제성과 덕이 크다. 극우파 스웨덴민주당이 막판 발목을 잡을지는 몰라도 세계의 주요 매체는 한결같이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죽음’을 예고했다. 선거기간에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총리(45)의 온건당이 이끄는 우파연정(聯政)과 야당 사민당의 노선경쟁 포인트는 일자리 대(對) 복지였다. 4년 전 중도우파인 온건당이야말로 ‘새로운 노동자의 당’이라며 감세와 경쟁, 덜 관대한 복지를 공약해 승리한 레인펠트 총리는 이번에도 감세와 일자리를 들고 나왔다. 과거 국내총생산(GDP)의 50% 이상이던 세수(稅收)는 그가 집권하는 동안 45%대로 내려갔고, 30만 명이 넘던 요양급여 대상자는 11만 명으로 줄었다. 연소득 20만 달러 이상(전체가구의 2.5%)에 부과했던 부유세도 2007년 폐지했다. 그 결과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빠른 극복과 유럽연합(EU) 평균보다 낮은 8.5%의 실업률, EU에서 가장 적은 재정적자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주기 위해선 더 많은 사람이 더 일할 수 있도록 세금을 낮춰야 한다는 우파 논리가 옳았음이 입증된 거다. 부패와 무능, 측근 중심 인사로 실권한 좌파 야당은 4년 내내 “부자 감세로 빈부격차가 커졌다”고 정부를 공격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같은 변화에 눈감은 채 비싼 세금, 관대한 복지로 요약되는 스웨덴 모델이 훼손돼선 안 된다며 “감세 이전에 복지!”를 외쳤다. 이로써 글로벌 위기 이후 우파가 설 자리를 잃게 됐다는 관측은 환상이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영국의 좌파신문인 가디언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처럼 영국도 좌파가 더 왼쪽으로 가면 필패”라고 25일 당대표 선거결과를 발표하는 노동당에 경고했다. 영국 보수정부는 더 센 좌파 대표가 나오면 국정 운영이 외려 편해질 거라며 야당 내부의 노선경쟁을 즐기는 것 같다고 우파신문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무능과 부패가 이념보다 무섭다 10월 3일 전당대회를 앞둔 우리의 민주당은 더 왼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민주당 비상대책위는 새 강령에서 ‘중도 개혁’이라는 용어를 빼고 진보노선을 분명히 했다. 당대표 후보들은 저마다 다양한 수식어를 붙여 진짜 진보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서민, 저소득층, 중소기업, 사회적 약자의 친구를 자처하고 오랜 좌파적 가치였던 ‘공정’까지 선점하자 민주당은 선명야당을 위한 급좌회전을 시도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지금 5000만 한국인에게 중요한 건 이념이 아닐지 모른다.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종북(從北)주의만 아니라면 원래 좌파였든 우파였든 ‘되는 정책’으로 국민을 잘살게 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살아있는 모델이다. 그는 좌파 노동자당 출신임에도 친서민 친시장 정책으로 빈곤을 줄이고 경제를 일으켜 재선됐다. 10월 3일 대선에선 노동자당의 재집권이 예상된다. 문제는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무능과 부패로 세금만 헛되이 쓰는 저질정치다. 잘난 것처럼 보이던 우파도 무능할 수 있고 도덕적이라고 알려졌던 좌파도 얼마든지 부패할 수 있음을 우리는 진작 알아버렸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편을 가르던 과거 정부 주장대로 우리나라가 극심한 양극화 사회라고 믿는 것부터가 무능 아니면 무지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팩트북 2010에 따르면 한국의 지니계수는 OECD 평균과 일치하는 0.31이다. 30개 회원국 중 17위다. 스웨덴(2위)보다는 빈부격차가 심해도 캐나다(18위)나 일본(20위)은 물론 영국(23위) 미국(27위) 멕시코(30위)보다 훨씬 덜하다. 그런데도 나라 전체가 죄 지은 양, 좌우 할 것 없이 정신적 만족감이야 주겠지만 세계적 추세와는 달리 가는 친서민 반(反)시장의 도덕적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념 아닌 능력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스웨덴 정부는 근로세 감세를, 영국 정부는 아동수당 축소를 계획 중이다. 그들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빠른 우리까지 보편적 복지 확대를 추구하다간 세금과 국가채무만 늘 공산이 크다. ‘서민 계급’ 복지도 좋지만 ‘납세자 서민’이 낸 돈이 여야 공직자의 무능과 부패로 줄줄 새는 게 더 아깝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미국이 테러 공격과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도 굳건한 지배력을 유지하는 분야가 대학이다. 어제 영국의 더 타임스가 발표한 ‘2010년 세계 대학평가’도 미국 대학이 휩쓸었다. 1위 하버드대를 비롯해 톱10 중 7곳, 톱50 중에서도 27곳이 미국 대학이다. 영국의 QS대학평가에서도 세계 200위 중 53곳으로 영국(30곳)보다 두 배쯤 많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저물고 있다는 경고 속에서도 미국이 자신감을 잃지 않는 이유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교수들과 대학교육의 경쟁력 때문이다. ▷더 타임스는 세계적 연구평가기관 톰슨-로이터사와 손잡은 올해 조사에선 사회적 평판 같은 주관적 평가를 줄였다. 그 대신 연구의 영향력을 보는 논문 인용을 32.5%, 연구와 교육을 각각 30%의 같은 비율로 평가했다. 포스텍(포항공대)이 세계 28위가 된 것은 평가 변경에 힘입은 바 크다. 국내 대학이 세계적 기관이 실시한 대학평가에서 30위 권 안에 진입한 건 처음이다. 더 타임스는 “재능은 수입할 수 없다”며 1986년 포스텍을 세울 당시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을 소개했다. ▷1인 연간 교육비 6370만 원. 포스텍의 교육투자는 국내 1위다. 등록금 540만 원의 10배 이상을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셈이다. 미국 대학의 경쟁력은 경쟁국보다 2배 많은 투자에서 나온다는 더 타임스의 분석대로 대학의 질도 상당 부분 돈에 달렸음을 포스텍이 보여준다. 스타 교수와 뒤떨어지는 교수의 연봉 격차가 50%다. 글로벌 스탠더드대로 성과연봉제를 두어서다. 국내 대학 아닌 미국의 캘리포니아공대(칼텍·더 타임스 랭킹 2위)나 매사추세츠공대(MIT·3위)와 견주기 위해 경쟁 기준을 세계의 앞선 대학에 맞췄다. ▷이번 평가에서 중국은 톱 200개 대학 중 6곳을 올려놓았다. 무섭게 성장하는 경제처럼 글로벌 고등교육에서도 급부상 중이다. 일본은 5곳이지만 역시 경제처럼 대학교육과 연구 성과도 지지부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 홍콩 대만과 함께 4개 대학이 들어갔다. 학생 선발이나 학교의 운영과 관련해 규제를 대폭 풀고 대학의 자율권을 대폭 늘려야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이 많이 나올 수 있다. 대학교육의 질은 미래 경쟁력의 바로미터다.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국가의 3대 요소가 주권 영토 국민이다. 국방이 튼튼하지 못하면 20세기 초 대한제국처럼 주권과 영토를 잃는 비극을 겪게 된다. 합계출산율 1.19명의 세계 최저 출산율이 계속되면 10년 뒤부터 국민의 수가 줄어든다. 군복무 가산점제나 저출산 문제 해결 대책은 대한민국의 보전과 지속적 발전 차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9년 위헌결정으로 군 가산점제가 폐지됐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 안보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됐고, 군 복무자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사회에 널리 확산되는 추세다. 젊은 날의 귀중한 2년을 국가안보에 바친 군필자(軍畢者)들이 병역의무 이행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배려해줄 사회적 환경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될 병역법 개정안은 가산점 비율을 자기 득점의 2.5%로 내리고, 가산점 합격자 상한선도 20%로 묶었다. 이 정도면 여성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 가는 남성들은 바로 어머니의 아들이고, 여성의 동료이며 애인이다. 기득권층의 병역 기피를 엄격히 다스려 병역 의무의 공정성을 지켜나가는 일도 중요하다. 어제 정부가 확정한 제2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안(2011∼2015년)은 내년부터 출생하는 둘째 자녀의 고교 무상(無償)교육, 보육비 교육비 지급 확대, 다자녀 공무원 정년 뒤 3년 재고용 보장 같은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당장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육아휴직 급여 확대, 근무시간 단축 확대 등 검증되지 않은 선심성 규제를 새로 만들거나 강화해 기업의 인력운용을 제약하고 고용창출 능력마저 저해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경제적 부담을 기업에 떠맡기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최소한 80조 원 이상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생산 가능한 인구가 줄어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세수(稅收), 복지재정에 병역자원까지 줄어드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출산 지원은 국가를 지키는 일이고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라는 인식전환을 할 때다. 미래 인력을 낳아 기르는 국가 대사에서 여성의 희생만 요구할 수는 없다. 군필자에 대한 보상처럼 출산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 전문가들이 실효성 있는 저출산 대책을 마련해 14일 공청회에 내놓기 바란다.}

“6·4사건이 뭔가요?” 2년 전 중국의 한 누리꾼이 중국의 대표적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에 이런 질문을 올렸다. 6·4사건이란 1989년 6월 4일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말한다. 그해 5월 100만 명이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중국에도 드디어 민주화의 봄이 온다고 기대하는 세계인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6월 3일 밤 탱크를 동원한 군이 유혈진압에 나섰다. 중국에서 지금까지 관련 단어는 금기어다. 6·4사건을 묻는 인터넷 질문에 한참 동안 “감히 답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네요”란 댓글이 붙어 있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6일 광둥 성 선전 시 ‘경제특구 지정 30주년 기념식’에서 “개혁개방 30년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정치체제 개혁과 민주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인민의 알 권리와 참정권, 표현의 자유와 감독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선 민주적 선거와 정책결정, 민주적 관리와 감독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2대 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이 드디어 정치적 민주화로 나아가려나? 기대감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후 주석 연설에서 강조한 것은 ‘사회주의 민주정치’다. 연설문을 들여다보면 ‘사회주의’ 단어가 29번,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9번 나온다. 후 주석이 주장한 건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개방 선언과 함께 공산당 일당 독재 아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이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후 주석이 2007년 17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때도 한 말이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는 올 초 보고서에서 “현재 감옥에 갇힌 중국 언론인이 28명”이라며 “중국 언론과 3억3800만 누리꾼은 국가의 자의적 검열 속에 있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서 나온 중국 공산당 관련 책 ‘당(黨)’은 “공산당은 생존을 위해 뭐든지 다 하지만 모든 것은 비밀로 돼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선 인민의 알 권리 역시 공산당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만, 그리고 공산당 내에서나 가능한 셈이다. 경제적으로 도약하는 중국이 언제까지 인민의 정치적 자유를 억누를 수 있을지, 공산당 관료들도 모를 것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외교통상부가 특별채용 공모에 지원한 유명환 장관의 딸을 합격시키려고 맞춤형 특혜를 제공한 사실이 어제 행정안전부 감사 결과 확인됐다. 외교부는 석사학위에 외교부 근무 경력과 텝스 시험성적만 있는 유 장관 딸에게 유리하도록 응모기준을 멋대로 바꿨다. 자유무역협정(FTA) 담당 공무원을 채용하면서 업무연관성이 높은 변호사 자격은 응시 요건에서 제외했다. 채점 기준도 모호해 5명 심사위원 중 외교부 직원 2명이 준 점수가 2등과 1등의 순위를 바꾸었다. 국제적 업무능력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사람을 찾았어야 하는데 과거 봉건시대의 음서(蔭敍) 같은 특채 쇼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황당한 특채는 외교부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김황식 감사원장은 “6·2지방선거 이후 지자체장들의 무리한 ‘사람 심기’ 수단으로 특채가 이용되지 않나 의구심이 있다”며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의 인사 비리까지 특별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선거 공신의 자제를 특채하거나 돈을 받고 기능직 직원을 채용한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이번 기회에 감사원이 현미경을 들이대고 지자체의 채용비리를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감사원은 ‘신의 직장’으로 알려진 공기업에서도 이 같은 구조적인 채용비리가 없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는 토지주택공사의 경우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노사모 회원이 대거 특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법관 출신인 김 감사원장이 “법과 원칙을 확립해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고 말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법과 원칙은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법과 원칙이 특권과 반칙을 이기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 김 감사원장은 공정한 사회의 세 요소로 ‘국민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자유롭게 경쟁해 승패를 가리며, 낙오했거나 경쟁에 참여할 수 없는 사정이 있던 사람들을 국가 사회가 배려하는 것’을 꼽았다. 외교부의 특채는 국민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지도 않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자유롭게 승패를 가리지도 않았다. 김 감사원장이 제시한 세 요소 중 두 요소가 특권과 반칙에 의해 허물어진 것이다. 공직사회가 과거의 타성에 젖은 채 국민에게만 ‘공정한 사회’를 요구한다면 1980년대의 ‘정의사회 구현’처럼 공허한 구호로 끝날 우려가 크다. 공직사회의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라가 마법에 빠진 것 같다. “이게 공정한 사회냐.” 한마디만 외치면 순식간에 불의가 바로잡힌다. 이대로 기득권의 반칙이 사라진다면 정부 여당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건 물론 선진국 진입도 금방일 듯하다. 한 가지 째깍거리는 미해결 뇌관이 있긴 해도 대통령은 이마저 날려버린 상태다. “내가 임명한 사람 중 왕씨는 없다. 이른바 실세 차관을 그렇게 부르는가 보던데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신임 장차관 모두 일 잘해서 실세가 돼 달라는 덕담이겠지만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로 의혹을 샀던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을 염두에 둔 말이기도 하다. 검찰이 중간 수사결과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총리실 직원 3명을 기소한 지 이틀 뒤, 대통령은 차관급(총리실 국무차장)이던 그를 차관으로 승진시키며 무한 신뢰를 보였다. 이에 따라 의혹사건은 사실상 종료된 것과 다름없게 됐다. 얼마나 일을 잘했기에 대통령이 공개 칭찬을 하는지 궁금해서 나는 지난 기사들을 꼼꼼히 읽어봤다. 과연 이 정부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거의 박 차관 손을 거쳤을 정도로 그는 많은 일을 한 사람이었다. 첫 내각 인선과 검증부터 초기 청와대 운영과 조직평가를 주관한 대통령실 기획조정비서관이 그였다. 2008년 6월 사표를 낸 것도 인사 파동과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터진 국정 난맥상에 대한 책임 때문이니 총리급 책임을 짊어졌던 셈이다. 이광재 안희정 부러울 것 없다 2009년 1월 국무차장으로 돌아올 때 그의 포부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내각 곳곳에 심는 역할을 하겠다”였다. 4대강도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따라다녀 ‘4대강 살리기’ 정책은 누구보다 잘 안다. 세종시 수정안이 살아있던 올해 초엔 “내가 대선 과정에서 조직을 챙겨서 그 지역 사람을 많이 안다”며 결국 수정안 찬성으로 갈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할 만큼 세종시 수정 문제에도 관여했다. 더 놀라운 건 한승수 전 총리와 이상득 의원 같은 거물급이 하는 자원외교를 맡았다는 사실이다. 지난 1년간 두 달 이상을 대통령 특사로 아프리카 등지를 누볐다. 정부조직법은 국무총리실의 역할을 ‘각 중앙행정기관 행정의 지휘·감독, 사회위험·갈등의 관리, 심사평가 및 규제개혁에 관해 국무총리를 보좌한다’고 했으나 그는 이를 뛰어넘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대통령은 “왜 여권엔 이광재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느냐”고 한탄했지만 두 사람 못지않은 인물이 바로 곁에 있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새로 총리를 찾느라 애쓸 게 아니라 박 차관을 총리로 발탁해야 한다고 믿게 됐다. 대통령의 후반기 국정운영 철학을 공유하고 이행할 인물로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 50세이니 세대교체도 된다. 국회의원 보좌관만 했지 의원은 안 한 덕에 여의도물이 덜 들었으니 정치문화 교체도 가능하다. 중량감이 약하다는 반대가 있겠지만 권력의 무게란 대통령의 신임에 달린 법이다. 더구나 대통령은 당장이라도 그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헌법대로 총리의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을 보장해주면 된다. 솔직히 성과는 나빴어도 인선과 검증은 그의 전문분야다. 드디어 우리도 실권과 직책이 들어맞는 명실상부하고 실용적이며 유능한 총리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야당도 반색할 것이 틀림없다. 소원대로 인사청문회에 앉힐 수 있게 돼서다. 숨죽었던 불법사찰 문제가 불거지겠지만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영포라인 인사개입 의혹이 보도된 7월 초 그는 불법사찰 건을 보름 전에야 인지했다며 “민간인 불법사찰은 잘못됐다. (당사자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대통령이 공직자의 거짓말을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핵심 측근이 거짓말 할 리 없다. 청문회를 통해 그의 연루 의혹이 해소되면 본인도 개운하고 정부도 더는 공정사회론에 발목 잡히는 일 없이 국정에 매진할 수 있어 좋다. 공정한 사회, 진실도 드러날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사찰 건이 2012년 총선 아니면 대선 이전에 다시 터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관련자료나 증언자가 나오든지, 이번처럼 그냥 넘어갈 걸로 만만히 보고 슬그머니 불법사찰이 재개될지 모른다. 국민세금을 쓰는 국가기관에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불법사찰이 벌어졌는데 지시한 윗선도, 보고받은 몸통도 없다는 것부터가 소가 웃을 일 아닌가. 정권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행정조직이 민간인과 정치인들을 사찰하는 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독재정권에서 주로 쓰던 이런 표현을 다시 쓴다는 것이, 쓰면서도 눈치 한번 보게 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참담하다. 하물며 지가 알고 하늘이 아는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나라는 공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지금 털고 넘어갈지, 2년 더 시한폭탄을 안고 갈 것인지 결정은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2005년 5월 순창 회문산에서 열린 ‘남녘 통일 애국열사 추모제’. 솜털 보송보송한 중학생 들이 “전쟁 위협하는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 “우리 편지 못 가게 하는 국가보안법 폐지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회문산은 6·25전쟁 때 남한 공산화를 위해 무장 게릴라 활동을 한 빨치산의 본거지다. 인솔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북지부 통일위원장인 전북 임실군 관촌중학교의 김형근 교사였다. 대한민국에 총을 겨눴던 빨치산을 애국열사로 가르친 전교조 교육에 자식 가진 부모들은 경악했다. ▷2월 전주지방법원 진현민 판사는 피고인 김 씨에게 “자유민주주의의 정통성을 해칠 만한 실질적 해악성이 없고, 이적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젊은 단독판사의 ‘튀는 판결’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이 판결 직후 이 사건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법관의 양심이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것이 돼선 곤란하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어제 부장판사와 2명의 배석판사가 함께 판결하는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왔다. ▷전주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김병수 부장판사)는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을 정도로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에 동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추모제에서는 빨치산을 통일애국열사로 호칭하고 그 뜻을 계승하자는 발언도 있었다. 학생들이 당장 국가안위에 해를 끼치는 활동에 나설 수는 없겠지만 이들에게 빨치산 이념을 심는 교사의 경우는 반국가단체(북한)의 활동에 호응 가세하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은 “교사가 사리판단이 미숙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생들을 빨치산 행사에 데려갔고, 학생들이 당장은 국가안위에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머리 속에 편향된 이념이 각인돼 장차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反)하는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판결에 의문을 제기했다. 학생들에게 빨치산 교육을 시켜도 무죄라면 이제 교단에서 김정일을 찬양 고무하는 학습을 시켜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대법원 최종심이 이 혼란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수호할 것인지, 아니면 빨치산 교육을 수호할 것인지.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