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욱

변영욱 기자

동아일보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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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변영욱 기자입니다.

cut@donga.com

취재분야

2025-06-16~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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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포용하며 성장하다

    나무가 철망과 한 몸인 양 자라났습니다. 장애물을 품어가며 성장한 나무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고 싶네요. ―서울 강동구 길동교회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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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심 산책하며 조각 작품 감상하세요

    25일 서울 종로구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에 ‘2025 조각도시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각품이 전시됐다. 노란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김태수 작가의 ‘설레임(ECOFLOW:Crush)’으로 스테인리스스틸을 소재로 생동감과 곡선, 자연의 리듬감을 표현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6월 19일까지 서울 주요 도심과 공원, 역사 유적 등 35곳에 323점의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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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세상은 반대에 끌린다

    도로 반사경 앞에 흑조와 백조가 한 쌍을 이루고 있네요. 때마침 흑과 백의 옷을 입은 남녀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갑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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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한마음으로 집짓기

    공사 중인 건물 한구석에 전선 파이프 세 개가 삐죽이 솟아 있습니다. 몸을 살짝 뒤로 젖히고 바닥이 잘 다져졌는지 가늠해 보려는 사람처럼 보이네요. ―대구 중앙로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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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재위험 감시’ 순찰 도는 로봇

    21일 서울 마포구 마포농수산물시장에서 로봇이 순찰을 돌고 있다. 이 로봇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화재 위험이 발견되면 경보를 울리고, 초기 진화와 119 신고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중구 남대문 전통시장에서도 하반기(7∼12월)부터 순찰 로봇을 운영할 계획이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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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무관심의 애환

    한 주택 방범창에 색 바랜 옥수수가 매달려 있네요. 폐쇄회로(CC)TV가 작동 중이라고 해서 아무도 손을 안 댄 것 같은데, 주인까지 까맣게 잊은 것 같습니다. ―서울 강동구 길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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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회의 진화: 포토제닉해지는 시민의 목소리 [청계천 옆 사진관]

    ● 옛날 운동단체 대표들의 기념사진이번 주 ‘백년 사진’에서는 사회운동을 보여주는 사진의 변화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100여 명의 중년 남성들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선후회의’라는 단체의 기념사진입니다. 앞줄 중국식 복장을 한 사람이 의장이고 나머지는 기타 대표들이라는 사진설명입니다. 1925년 3월 18일자 신문에 실린 사진입니다. 몇 명 되지 않아 보이지만 세어보니 100명이 넘습니다. 원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좌우에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잘려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추정합니다. 다음은 관련 기사입니다. 선후회의(善後會議) 연기 - 국민회의 조직법안 심사선후회의는 15일로써 법정상 만기가 되었는데 16일 회의를 열어 회기연장문제를 통의한 결과 다시 20일간 연기하기로 결정하고 동시에 우선 2주간 휴회하고 담화회를 개최하여 국민대표회의조직법안 심사를 완성하기로 하였다 (중국 베이징 16일 전송)1925년 3월 18일자 동아일보● 퍼포먼스가 준비되는 요즘 집회 옛날에 비해 요즘 사회운동에는 퍼포먼스가 많이 등장합니다. 지난 3월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비상행동’이 주최한 ‘정당 2천인 긴급 시국선언’ 집회 현장을 사진 찍기 위해 갔습니다. 민주당과 진보당 민주노총 등 각종 정당과 단체 대표들이 오후 2시에 광장에 모였습니다. 가로 세로줄을 곱해 보니 실제 2천명에 가까운 숫자였습니다. 사전에 ‘퍼포먼스’가 있다는 보도참고 자료를 받았던 터라 사진기자들은 광장 옆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건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8층 높이 옥상이었습니다. 집회의 전체 규모를 보여주는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퍼포먼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직선거리로 채 100미터가 되지 않는 저 아래 집회장의 스피커를 통해 주최측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렸습니다. “여러분, 역사박물관 옥상에서 카메라 기자들이 집회를 잘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습니다. 준비된 프래카드를 잘 펼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단체들의 깃발은 (광장 가운데 있지 말고) 오른쪽 가장자리로 가지런히 서 주십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천 명의 인파가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프래카드에는 “윤석열 즉각 파면 - 비상행동”이라고 큰 글씨가 써 있었습니다. 수십 개 단체들의 깃발도 한쪽으로 가지런히 정리된 상태라 사진은 ‘깔끔하게’ 나왔습니다. 비단 좌파 집회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니었습니다. 보수 기독교 단체 ‘SAVE KOREA’가 지난 3월 1일 토요일 여의도에서 주최한 집회를 유튜브 생중계로 보았습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의 헤어스타일과 안경, 훈장처럼 양복에 배지를 달고 있는 모습을 패러디한 연예인이 무대에 올라와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구호를 선창합니다. 이어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따라 합니다.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치인을 비아냥 거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앞에서는 랩과 율동을 하는 공연도 있었습니다. 표정과 액션이 늘어나면 사진 찍을 만한 순간이 많아지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우파 집회에서 이런 식의 프로그램이 들어간 것은 올 해 탄핵 정국이 분기점이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소한 집회 참가자들에게는 재미있는 시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파 집회는 포토제닉하지 않다는 편견에 균열이 오고 있습니다. 안전하면서도 재미있는 집회는 이제 좌우 모두의 준비물이 된 것입니다. 시위는 점점 더 조직화되고, 이미지 중심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포토제닉한 집회의 뒷모습2025년 탄핵 정국의 아스팔트를 걸어 다니면서 제가 느낀 점은, 우리나라의 집회는 이제 진보와 보수 모두 기술과 진행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했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내려와도 끄떡없는 철제 연단이 행사장 앞에 설치됩니다. 밑에 있는 시민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연단은 설치되어 있고, 대형 스피커와 유튜브 중계를 위한 시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거리 집회에 특화된 아나운서와 가수 그리고 개그맨들도 등장합니다. 시민들은 자신의 주장을 종이에 적어서 집회에 참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빨갛고 파란 원색의 두터운 A4 용지에는 정리된 구호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잘 준비한다는 의미입니다.하지만 체계화되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군대처럼 깔끔하게 오와 열을 맞춰가는 것을 보면서 이상함을 느낍니다. 포토제닉하지만 양극화로 가는 데 거리의 집회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깔끔한’ 사진을 찍는 제 마음은 그다지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시민이 거리로 나와야 하는 이 상황이 불편하기도 했고, 왼쪽 아니면 오른쪽 깃발을 들어야만 할 것 같은 양극화의 사회 분위기가 불편하기도 합니다. ●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현장의 에너지2025년 봄. 사진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좌우 집회 현장의 열기가 있습니다. 에너지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강하게 집결하고 있습니다. 개별 참가자들 에너지의 전체 합보다 더 큰 열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의 18년 전 논문이 딱 2025년 대한민국 광장에 대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거리의 집회는 단순한 정치적 표현을 넘어선다. 그것은 공동체가 함께하는 의례적 순간이며, 뒤르켐이 말한 ‘집합열광’의 현장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깃발을 흔들며 하나의 흐름 속으로 녹아드는 순간, 개별적인 존재들은 하나의 집단적 정체성으로 전환된다. 이때 느껴지는 에너지는 단순한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적 유대와 결속을 강화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박선웅, 2007. ‘의례와 사회운동- 6월 항쟁의 연행, 집단열광과 연대’)거리에서 결집한 시민의 에너지가 한 방향이 아니고 두 방향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무척 우려스럽습니다. 정치권이라는 완충구역 없이 시민들의 열광이 부딪힐 것만 같은 오늘입니다. 100년 전 신문에 실린 낯선 운동 단체 지도부의 기념사진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가까운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느껴지셨나요? 좋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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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두둥둥! 청춘의 함성

    숙명여대 신입생 환영식에서 연주자가 북을 치려고 두 팔을 펼쳤습니다. 그의 어깨 너머로 퍼지는 힘찬 북 울림에 신입생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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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경호처 차장과 본부장 구속심사 출석[청계천 옆 사진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 등을 받는 김성훈 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이 오늘(21일) 오전 구속 심사를 받고 있다. 10시 30분으로 예정된 구속 전 적부 심사에 앞서 두 사람은 일찌감치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 도착했다. 0950분쯤 먼저 도착한 이광우 본부장이 마스크를 쓴 채 들어갔다.10시 04분에 도착한 김성훈 차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이어가며 약 6분간 법원 정문 근처에 머물렀다.한편 이날 오전 서부지법에서는 경찰이 외부인을 차단했고 기자들의 출입도 제한해 질서를 유지했다.두 사람의 구속 여부는 오늘 오후 결정될 전망이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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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바람 노크… 고궁 문 활짝

    18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을 찾은 관광객들이 창문을 연 전각을 둘러보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23일까지 창덕궁 내 주요 전각의 창호를 여는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평소 내부를 쉽게 볼 수 없었던 궐내각사나 희정당 남행각 등의 실내 공간도 들여다볼 수 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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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볍고 탄탄해진 ‘렉서스 디 올뉴 LX700h’

    렉서스코리아가 17일 서울 성동구 앤더슨씨 성수에서 열린 ‘디 올뉴 LX700h’ 출시 행사를 열고 있다. 디 올뉴 LX700h는 플래그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렉서스 최초로 차체 강성이 강화되고 가벼워진 ‘GA-F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차량 가격은 트림에 따라 1억6797만∼1억9457만 원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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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새싹을 기다리는 시간

    일회용 종이컵에 흙이 담겼습니다. 올봄 이 작은 세상에서 어떤 모습의 싹이 올라올지 기대됩니다. ―정부서울청사 11층 복도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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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최초 민간 신문 여기자의 근무 모습[청계천 옆 사진관]

    ● 신입 여기자 인터뷰 사진책상 위에 마이크 또는 전화기로 보이는 물건이 놓여 있습니다(기사 내용상 마이크 보다는 전화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른쪽에는 원고 뭉치가 널려 있습니다. 정갈하게 옷을 입은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신문사 여기자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기자 생활을 6개월 정도 한 신입 기자인데 다른 회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큰 기사로 소개할 정도로 관심거리였었나 봅니다. 여기자를 부인(婦人)기자라고 불렀고,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기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개채용 시험이 아니고 누군가 추천을 하고, 그 추천을 며칠 동안 고민한 후에 신문사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는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그녀는 과연 기자생활을 잘 했을까요? 초심대로 훌륭한 기자로 살았을까요? 우선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원문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되 띄워쓰기와 약간의 표현만 요즘 말로 바꿨습니다. ◇ 기자의 생활 - 부인기자 최은희 양기자는 다시 부인 기자(婦人記者)로 계신 최은희(崔恩喜)(23) 양을 방문하였습니다. 언제나 바쁜 직업이기 때문에 전화로 미리 간다는 통지를 하고 지난 9일 오후에 신문사로 양을 찾아가서 바쁜 시간을 한 시간 얻어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양은 지금부터 7년 전 1919년 봄에 시내 여자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 봄은 누구든지 조금도 앞일을 헤아리지 않고 뜨거운 피에 날뛰던 때입니다. 양은 학교의 몇 동지들과 더불어 만세를 부르러 나아갈 때에 창과 칼에 상하는 이를 구호코자 붕대와 고약을 지니고 학교를 나와 종로에 나와선 일어나는 불길에 만세삼창을 부르고 곧이어 잡혀가게 되어 무수한 고초를 받다가 일주일 후에 감옥으로 넘어가서 24일 구류를 받은 후에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온 후 학교에서 주는 졸업장을 억지로 받아 가지고 고향 연백(延白)으로 내려간 양은 다시 그곳에서도 운동을 쉬지 않아 역시 출판법 위반으로 해주(海州)감옥에서 여섯달 동안 예심에서 쓰라리고도 적적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행한 그의 반생, 천하에 외로운 몸이러는 동안에 아버님은 일흔셋이신 높은 춘추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어린 딸을 면회코저 다니시던 중 너무나 심려하신 결과 불행히도 불치의 병으로 병석에 누우시게 되었습니다. 6개월의 철창 생활을 벗어난 양은 2년의 집행유예를 받아 가지고 불이나케 아버님을 뵈러 왔으나 아버님은 다정한 이야기 한마디 하실 사이 없이 혼미한 주에서 양이 출감한지 사흘 만에 사랑하던 자녀를 남기시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황천길을 떠나시었습니다. 불행한 운명에 기구한 신세가 되어 버린 양은 집행유예의 몸이 어디로 갈 수도 없어 얼마 지난 후 수원으로 평양으로 안주로 물 위에 뜬 부평초 같이 이곳저곳에서 교편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원 생활이 때때로 취미있는 때도 있었으나 다시 더 배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동경에 건너가서 여자 대학에서 2년 동안 형설의 공을 쌓다가 여름 방학이 되어 돌아오자 하나이던 남동생이 급성폐렴으로 죽게 되어 그의 마음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아픈 인이 박히게 되었습니다. 설상에 가상으로 동경에 지진까지 일어나게 되어 다시 더 공부를 계속지 못하고 고양산천에서 꽃피는 아침 달지는 저녁에 오직 고약한 운명에 부딪치는 자기의 외로운 신세를 늙으신 어머님께 의탁하고 일년 동안을 책보는 것을 소일 삼아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숙려 후에 입사 - 처음으로 사내 기자들 속에그러다가 작년 가을에 어떤 선생의 소개로 신문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양은 기왕부터 문학에 취미가 있었으며 지금 같은 그러한 생활을 한번 하여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 그 기별을 듣고 일주일 동안 깊이깊이 생각하여 본 후 기자가 되기로 승낙하였습니다. 처음 신문사에 들어갔을 때는 한번도 보지 못하던 이들이 늘어앉아 일하고 한편으로 쉬는 시간에 웃고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 언제나 혼자로서 또 처음되는 부인기자로서 항상 근신하는 것을 맘에 품고 바쁜 시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여유없는 생활 - 가정 방문과 기사 쓰기에매일 아침이면 일찍이 일어나서 밥도 뜨는 듯 마는 듯 마치고는 동으로 서으로 아는 집 모르는 집으로 장안이 좁다고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리하여 추운 날이던지 더운 날이던지 한결 같이 집에 앉아 있는 사이 없이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사회상(社會相)을 대할 때마다 각별한 느낌을 얻게 됩니다. 또 이렇게 분주히 찾아 다닐 때 혹 어떤 곳에는 찾아가면 만날 사람이 없고 혹 어떤 곳에서는 사양하며 보기 좋은 거절을 당하여 그저 돌아설 때에 그 마음 가운데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게 됩니다. 그것으로만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또 다른 기사 재료를 구하러 가지 않으면 아니 될 바쁜 몸입니다.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녀서 신문사에 정오에 들어가서 단촉한 시간에 기사를 쓰노라면 이마에 땀이 흐르고 마음껏 조급하여 펜을 놀리는 것이 마치 기계 돌아가듯이 바삐바삐 돌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바쁜 기사를 마치고 3시쯤 나오면 또 이곳저곳으로 기사 할 일로 또 쉴 새 없이 바쁘게 다닙니다.◇ 몸은 날로 허약 - 그래도 재미있는 직업이렇게 바쁜 생활이기 때문에 몸에는 큰 영향이 있어 건강에 많은 해를 받게 된답니다. 그 까닭은 제 시간대에 음식을 맞추어 먹지 못하고 이때저때 불규칙하게 먹게 되므로 자연히 몸이 쇠약하여집니다. 밤에는 여자 단체에서 모임이 있으면 집에 들어갔다가도 또다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 곳에 참석하여야 됩니다. 그런 여가에는 돌아다니는 몸임으로 옷은 잘 안 입더라도 정하게는 입어야 하겠으므로 집에 들어가면 바느질하기에 손톱만치도 쉴 여가가 없게 됩니다. 양은 현재 당주동(唐珠洞) 136번지에 혼자 객지 생활을 하고 있으며 어머님은 연백(延白)에서 형님과 함께 계시다는데 한식이 지나면 서울 올라오셔서 양과 함께 살림하실터이랍니다. 기자가 앞으로도 기자생활을 계속하실터입니까 하고 물은 즉 “네. 저도 기왕부터 취미르 가졌던 직업이므로 앞으로 될 수 있는데까지 열심히 이 직업에 종사하려고 합니다”하더이다.● 기자이자 사회 지도자로서의 삶이 기사는 우리나라 민간 신문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 선생(1904. 11.21 ~ 1984. 8. 16)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굳이 민간 신문 최초 여기자라고 하는 이유는,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서 1920년 7월 여기자(부인기자)를 모집했을 때 선발된 이각경 기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1921년 하반기 부터는 이각경 기자의 이름이 신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민간 신문 최초의 여기자는 최은희 선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신문편집인협회에서 1985년 펴낸 “신문백년인물사전”에 따르면, ‘최은희 기자는 우리나라 여기자 제 2호로서 1924년 10월 5일 조선일보사 입사 후, 외근도 하면서 재직 8년 동안 남자 기자에 못지 않은 능력을 과시하였다. (기자로 있으면서) 1927년~1930년 근우회 중앙위원 및 재무부장을 겸했다. 1920년대에 비행기 취재를 하는 등 당시 사회 분위기로서는 여자가 하기 힘든 활약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훌륭하게 기자 생활을 한 후 대한부인회 서울시부회장(1948), 한국학회 지도지원(1971), 3·1운동여성참가자봉사회장(1981) 등을 역임했습니다. 기자생활은 1931년까지 8년 정도 하셨고 별세하기 전 모든 재산을 정리한 후 신문사에 5천만원을 맡겨 ‘한국여기자상(償)’을 제정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매년 한국의 훌륭한 여기자를 뽑아 ‘최은희 여기자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자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지금은 흔하지만 예전에는 희소했던 직업신문 사진 속 여기자의 모습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은 여기자가 많아졌습니다. 방송 화면에 비치는 정치인들 옆에 여기자들이 마이크와 스마트폰을 들이대며 인터뷰를 요청하는 모습은 지금은 흔합니다. 그러나 제가 1990년대 후반 신문사에 들어올 때 동기 10명 중 단 1명이 여자였습니다. 현장에 나가도 여기자들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선거 즈음 국회 취재를 지원하러 갔을 때 신문과 방송을 통틀어 여기자가 딱 한 명 있어서 그야말로 홍일점으로 눈에 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홍일점은 기업 홍보실 임원을 거쳐 지금은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자들의 숫자가 부쩍 늘어난 것은 제가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5, 6년 쯤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였습니다. 요즘 언론사 입사 트렌드는 여기자들이 대세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 여기자들이 일하기 힘들었던 언론사 환경여기자들이 우리나라 언론에서 뿌리를 내리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습니다. 대학교 서클 여자 선배 얘기를 좀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신문사에 9년 먼저 입사해서 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흔하지 않은 여기자였던 셈인데 가끔 학교에 있는 후배들을 찾아와 술과 밥을 사며 세상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참 멋졌습니다.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선배는 제가 입사하기 직전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뉴욕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습니다. 여기자로 살고 싶었지만 신문사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유명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그 선배를 가끔 만나서 1990년대 신문사 문화 이야기를 합니다. 임신부가 있건 상관없이 신문사 실내에서 담배를 피고,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강요했던, 지금 생각하면 ‘야만(?)의 시대’ 였습니다. 물론 그 시절 저 역시 ‘문명인’으로 살았다고 자부할 순 없습니다.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선후배들과 술자리를 만드는데 적극적이었으니까요. 입사할 때 술을 못 배운 동기가 한명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말에 선배와 동기들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기자를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는 술을 차츰 배워 문화에 적응했고 지금은 시니어 언론인 모임의 총무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된, 6년 차 정도되는 남자 후배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아무도 그가 기자 생활을 하지 못할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대가 변한 것이죠. 지금은 신문사에서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별로 없습니다. 옛날처럼 마감 후 책상을 붙여 간이 침대를 만들어 놓고, 편집국 사환이 준비해 준 이불 위에서 잠을 자며 밤새 만일에 일어날 일에 대비하는 당직 근무도 지금은 없습니다. 아마 2000년대 여기자가 많아진 것도 이런 환경변화와 서로 연결될 것입니다.그래도 여전히 신문사 기자 생활은 쉽지 않을 겁니다. “몸은 날로 허약 - 그래도 재미있는 직업”이라는 100년 전 표현은 오늘 날 기자들의 탄식과 아주 비슷합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재미있는 직업이라는 투덜거림 같은 것 말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보이셨나요? 좋은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주세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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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왕실에선 어떤 옷을 입었을까

    12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의친왕가 복식’ 기획전시를 보고 있다. 의친왕가 복식은 고종의 아들이자 순종의 이복동생인 의친왕(1877∼1955)의 배우자 연안 김씨(1880∼1964)가 의친왕의 다섯째 딸 이해경에게 준 의복이다. 이번 전시는 5월 11일까지 진행된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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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뎌진 칼날, 속 시원하게 갈아드립니다

    서울 서초구 양재근린공원에 이동식 생활수리 서비스 ‘바퀴 달린 서초 우산·칼’ 트럭이 서 있다. 트럭은 3월 한 달간 서초구 전역을 돌며 구민들에게 우산 수리와 칼갈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4월부터는 사전 신청한 동네와 아파트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용료는 건당 1000원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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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의 대가

    프리저브드 플라워(보존 처리된 생화) 자판기입니다. 이 꽃들은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을 얻었지만, 기계에 갇힌 채 밖으로 나갈 날만 하염없이 기다립니다.―인천 부평역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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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수의 얼굴을 가려라 - 얼굴을 가린 채 포승줄에 묶인 남성들[청계천 옆 사진관]

    ● 법원으로 들어가는 피고인들의 머리에 씌워진 갓머리에 둥근 통 같은 기구를 쓴 네댓 명의 남성들이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습니다. 1925년 3월 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입니다. 네이버 옛날신문 보기로 확인하니 같은 날 조선일보에도 사진이 실렸습니다(아래 사진). 남성들 앞에서 찍은 사진이라 좀 더 분명합니다. 용수를 쓰고 있는 사람은 5명 정도 되는데 사진 설명은 3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 지금도 비슷하지만 재판을 받으러 가는 호송 과정에는 다른 건의 범죄 행위에 연루된 피고인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남성들이 쓰고 있는 기구는 ‘용수’ 입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죄수의 얼굴을 가리는 데 쓰던 갓. 죄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갈 때 죄수의 머리에 씌웠으며, 짚으로 만든다”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에도 “간수 두 명이 짐승 몰듯 몰고 나온 것은 용수를 쓰고 오랏줄에 엮은 네댓 명의 죄수였다”라는 표현이 나온다고 합니다. 항일운동 자료를 모아 둔 박물관이나 자료실 등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하지만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도구입니다.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사망한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도 대나무 재질의 용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 속 사람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요?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사진이 실린 3월 4일, 다음 날인 3월 5일 그리고 7월에 관련 기사가 있었습니다. ■적기단 사건 공판: 조직과 활동, 그리고 법정 심문지난 3월 4일, 경성지방법원 제7호 법정에서 적기단(赤旗團) 사건 공판이 열렸다. 피고는 이정호(31), 홍진의(31), 문재(30) 세 사람으로, 이날 재판은 궁본(宮本) 재판장, 산근(山根), 이집원(伊集院) 배석판사, 그리고 리견(里見) 검사의 주재 아래 진행되었다.이날 법정은 아침부터 많은 방청객이 몰려들어 법정이 가득 찼다. 재판이 시작되자 재판장은 피고들의 신상 정보를 확인한 후 사실 심문을 진행했다. 먼저 이정호에게 과거 전과 여부를 묻자 그는 “보안법 위반으로 한 차례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다”고 답했다.검사는 이정호가 중국 길림(吉林)에서 머무를 당시 적기단의 단장으로 알려진 이승(李承)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정호는 “이승이 적기단 간부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단원으로 가입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또 이승이 10년 전 함흥의 부호 고형선(高衡璿)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요구했으나, 고형선의 신고로 체포되어 5년 형을 선고받고 청진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탈옥한 사실이 있는지 추궁했다. 이에 이정호는 “그 사실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막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이정호는 작년 7월 박용하(朴鎔夏)로부터 이승이 고형선에게 협박장을 보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어떤 서면이 보내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협박장인지 여부는 몰랐다”고 답했다. 검사는 또 이승이 고형선을 두고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는 증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정호는 “고형선의 신고로 이승과 그의 친구가 징역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복수할 계획을 들은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이어 검사는 박용하가 두 사람의 갈등을 중재하려 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정호가 처음에는 10만 원을 요구했다가 점차 금액을 줄여 1만 5천 원을 요구한 사실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이정호는 “나는 금전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검사는 그가 실제로 5천 원을 받은 이유를 추궁했다. 이에 대해 이정호는 “지난해 7월 30일, 박용하를 만났을 때 고형선이 찾아와 먼저 인사를 나눈 후 5천 원을 건넸다. 그는 ‘총 1만 5천 원을 줄 테니 한 번에 지급하면 외부의 의심을 받을 수 있어 3개월에 걸쳐 5천 원씩 지급하겠다’며, 아울러 이승과의 갈등을 원만히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그는 “이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승에게 전달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검사는 5천 원을 받을 당시, “1만 5천 원 중 5천 원을 먼저 받았다”는 문구를 적고, ‘적기단 경리 이OO(가명)’이라는 서명을 한 사실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정호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기소된 홍진의와 문재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이날 재판은 일반의 안녕과 질서를 방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일부 심문 내용에 대해 방청을 금지한 채 진행되었으며, 오후 1시 10분경 심문이 종료되었다.■적기단 조직과 활동 내용, 그리고 검사의 구형다음 날인 3월 5일, 재판은 계속 진행되었으며, 적기단의 조직, 활동 목적 및 계획 등에 대한 심문은 방청객 없이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오후 6시 30분경 결심이 이루어졌으며, 변호인 측에서는 허헌(許憲), 김찬영(金瓚永), 김용무(金用茂) 세 변호사가 피고들을 변호하며 격렬한 변론을 펼쳤다. 하지만 검사는 이정호에게 징역 7년, 홍진의에게 징역 5년, 문재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재판장 궁본은 최종 판결을 3월 11일에 선고하겠다고 선언한 후 재판을 마무리했다.■예심 종료: 일부 피의자의 면소와 기소 결정7월 28일, 적기단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들에 대한 예심이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경성지방법원에서 장기간 조사를 받아온 신백우 원우관 이봉수 세 사람은 면소 처분을 받았으며, 정재달 이재복 두 사람은 유죄로 결정되어 대정 8년 (1919년) 제령(制令) 제 7조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 동아일보 1925년 3월 4일자, 3월 5일자, 7월 28일자 종합● 당사자인 피고인들에게 ‘얼굴이 가리워진다는 것’의 의미피고인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용수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왜 저런 형태의 갓을 씌워 호송했을까요? 서대문 형무소와 뤼순 감옥에 전시된 용수에는 죄인들의 눈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어 밖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에선 구멍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짚이나 대나무 재질의 특성상 완전 암흑은 아니고 밖의 빛이 들어오고 또 흐릿하게나마 밖을 볼 수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호송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죄수들이 이동 중에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숙제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면서도 밖에서는 그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가 용수입니다.당사자인 피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중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죄수들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게 된 상황을 다행이라고 생각할까요? 나중에 사회에 복귀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얼굴을 가리는 것이 나을까요?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좀 줄일 수는 있을까요? 얼굴은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이목구비는 살아 온 삶의 궤적과 마음에 품고 있는 이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용수를 이용해 죄인의 얼굴을 가리면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지워집니다. 중요한 사건의 피고인들이 용수를 쓴 채 공개 장소에 드러나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수치이지 않을까요? 특히 사상범과 정치범의 경우라면 얼굴을 온전히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까요?● 공권력 입장에서 용수의 효용성그런 점에서 용수라는 형벌 도구는 공권력의 입장에서는 힘을 과시하는 방법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상이 불손한 피고인들의 얼굴을 대중들에게 드러내지 않도록 하고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용수를 씌워서 호송하는 겁니다. 피고인의 얼굴에서 드러날 수 있는 결기와 감정을 차단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보는 사람들에게도 ‘범죄를 저지르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질서에 순응할 것을 강요하는 장치로 활용하는 것이죠.그런 점에서 과거에 있었던 용수는 단순한 형벌 도구를 넘어, 공권력이 질서유지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낸 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설령 흉악범이라도 사법기관이 함부로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지는 않는 현대 민주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방식이기도 하구요. 오늘은 100년 전 신문에 실린, 피고인들의 호송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보이셨나요? 좋은 댓글과 의견 부탁드립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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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카메라 활용법…그의 사진은 왜 강한 느낌일까 [청계천 옆 사진관]

    ●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트럼프 사진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이 연일 보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지난 달 28일 백악관으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초대한 후 기자들 앞에서 설전을 벌였다. 손가락질을 하고 인상을 쓰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우리가 이전에는 거의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두 정상의 환담장에는 미국 백악관의 풀(pool) 기자들과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온 취재진이 카메라를 들고 앉거나 서 있었다. 전세계로 생중계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두 정상이 싸우는 모습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크라이나의 언론 플레이도 만만치는 않다. 군복을 연상하게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검정 옷과 군화 스타일의 신발은 외교 관례상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대통령에게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한 우크라이나 외교부가 다음 날 자체 소셜미디어 계정에 ‘이것이 우리의 정장이다’라며 8장의 사진을 올린 것도 ‘비상한’ 대응이었다. 전쟁터의 잿더미 속에서 버티고 있는 우크라이나 소방관, 피가 흥건하게 묻은 가운을 입은 의사, 온 몸을 위장한 군복의 군인들 모습의 사진이었다. 개인적으로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보여주는 모습은 7단계 쯤 되는 마라탕을 먹는 느낌이다. 혀를 마비시킬 정도로 매운 맛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마라탕처럼 사진이, 그것도 외교 무대에서 나온 사진이 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강한 사진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점잖아 보이는 유럽 지도자 10명이 모인 이미지를 합쳐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매운 맛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 트럼프 사진의 특징트럼프의 이미지는 점점 강해지고 독해지고 있다. 동맹이건 뭐건 안중에 없고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정책 변화와 그에 따른 발언 수준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진의 역할도 만만치 않다. 한달여 지난 트럼프 2기의 사진 취재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사진기자를 고를 수 있는 구조로 변화 중 1. 트럼프는 미국 AP통신 등 전통 유력 매체들이 과점하고 있던 백악관 취재 형식에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선거 기간 동안 총탄을 맞은 채 성조기 아래에서 포효하던 트럼프의 모습을 포착해 트럼프의 영웅 이미지를 강화시켜줬던 AP 사진기자도 최근 백악관 취재에서 배제되었다. 대신 백악관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공동취재(pool) 방식으로 사진 취재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는 중이다. ● 밑에서 찍거나 아주 멀리서 찍는 전통2. 전통 유력 매체들의 과점을 변화시킨다고 해서 많은 사진기자들이 트럼프를 취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좁은 공간이라는 특성을 이유로 이전부터 해왔던 것처럼 소수의 사진기자와 영상기자들만이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기자들은 다른 카메라에 걸리지 않도록 바닥에 앉아 트럼프를 ‘우러러 보는’ 방식으로 촬영한다. 눈높이나 사다리 위에서 아래로 찍는 방식에 비해 주인공의 위세를 강화시키는 앵글이다. 백악관 오피스가 아니라 4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서 열린 첫 연설의 경우 의원들 뒤쪽 관중석에서 기자들이 대포 같은 초대형 망원렌즈를 사용해 대통령을 바라보게 된다. 배경은 아웃포커스 되고 주인공에만 초점이 맞는 방식이다. 주제가 부각되고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 ● 몸에 밴 연기 실력트럼프 대통령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손 동작이 크다. 얼굴만 찍는 것보다는 손 동작이 있는 인물 사진이 힘이 있는데 트럼프는 한 손도 아니고 두 팔을 움직인다. 쌍거풀과 함께 또렷한 이목구미도 사진에 힘을 보태는 요소이다. TV쇼 경력에 1기 행정부를 이미 경험했던 트럼프가 카메라를 다루는 솜씨는 수준에 올라 있을 수 밖에 없다. ● 얼마나 매운 사진이 앞으로 우리에게 올까자신을 찍는 사진기자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한편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미지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 같다. 자신의 지지자를 결속시키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교 무대에서 다른 나라 정상을 압박하는 사진은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이익과 관련된 사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점점 매워질지도 모르는 원맨 쇼가 앞으로 4년이나 이어진다는 사실과 함께 혹시 그런 사진들이 전세계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의 교범이 되는 건 아닐지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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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눈]모든 일의 시작은 정리

    각종 망치들이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정리돼 있습니다. 이 정도 실력이면 작품도 기대할 만하겠는데요. ―서울 중구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202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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