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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채의 집, 석 대의 차, 넉 대의 TV를 필요로 하는 세대가 얼마나 많은가.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많은 소비자의 동기는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다.” 광고회사 오길비앤드매더의 분석가 피터 프란체스가 한 말이다. 뉴욕타임스에 경제와 문화인류학에 관한 칼럼을 쓰는 저자는 전적으로 이에 동의한다. 그는 ‘필요’가 구매의 가장 큰 요인이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필요’만을 고려한다면 한 번 입고 옷장에 넣어두는 그 많은 옷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사게 만드는 심리를 저자는 ‘욕망 코드(desire code)’라는 용어로 분석한다. 그는 ‘욕망 코드’가 만들어 내는 소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예를 든다. 2004년 갑자기 유행을 탔던 팔찌의 사례. ‘리브스트롱(LIVESTRONG)’이라는 글자가 찍힌 노란색 합성 실리콘 고무 팔찌가 그해 5월 미국 전역에서 판매됐다. 이 팔찌는 사이클 챔피언 랜스 암스트롱이 차던 것으로, 판매액의 70%는 자선단체인 랜스암스트롱재단에 들어갔다. 그해 여름 프랑스의 도로 사이클 경기인 투르 드 프랑스가 열리는 동안 팔찌 매출은 급증했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 데이비드 헤세키엘은 이를 두고 “온갖 아이템이 쏟아져 나와도 대부분의 아이템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노란 팔찌는 대중의 눈에 띄는 것이 됐고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됐다”고 말했다.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자선단체를 후원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의미’를 만드는 데 성공해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수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므로 광고에 휘둘리던 과거 소비자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최신 소비 트렌드에 대해 “소비자들은 광고의 메커니즘과 속임수가 내재된 세일즈 전략에 익숙해졌다. 이제는 더 비평적이고 자신의 중요성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고 요약했다. 이런 소비 트렌드에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저자는 한 가지 대응 방식으로 ‘머케팅(murket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모호한(murky)’과 ‘마케팅(marketing)’을 합쳐 저자가 만든 신조어다. 그는 ‘머케팅’을 “일상과 홍보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즉 전통적인 마케팅 대신 모호함을 강조하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설명하면서 에너지 드링크 ‘레드불’의 성공을 예로 들었다. 오스트리아 브랜드인 레드불이 미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7년이었다. 당시 미국 음료시장에는 ‘에너지 드링크’라는 개념이 없었다. 이 회사는 미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유명한 스포츠 스타를 광고에 기용한다든지 하는 진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 대신 눈에 띄지 않는 분야에서 이벤트를 실시했다. 마이애미 해변에서 쿠바까지 142km를 풍력 카이트보드를 타고 횡단하는 이벤트를 주최했고 브레이크댄스 대회를 후원했다. 전국의 레스토랑을 돌며 은근한 판촉 행사를 벌였다. 그러면서도 이런 행사들을 언론에 크게 노출시키지 않았다. 게다가 레드불이 어떤 음료인지, 누가 이것을 마셔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이런 ‘스텔스 계획’이 먹혀들며 레드불은 조금씩 소비자들을 파고들었고, 미국에 상륙한 지 몇 년 만에 ‘짝퉁’ 음료가 등장할 정도로 에너지 드링크 시장을 리드하게 됐다. 저자는 “똑똑하고 독창적인 젊은이들은 기존 브랜드에 동조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낸다. ‘머케팅’ 시대는 슬로건 따위를 추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광고의 문법과 구문을 꿰뚫어야 한다”고 말한다. 쏟아지는 정보를 가려내 최선의 선택을 하는 새로운 ‘컨슈머 이코노미쿠스(Consumer Economicus)’에게는 그에 걸맞은 대응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엔론은 망해서 기업감시법을 남겼다…세계 경제를 뒤바꾼 20가지 스캔들2001년 12월 미국의 거대 에너지회사인 엔론이 파산을 선언했다. 엔론은 에너지사업이라는 본업보다는 주식거래에 치중하며 낮은 수익률은 장부 조작으로 메우고 있었다. 엔론 스캔들은 결국 기업 경영진의 재무 상태 파악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미국 상원에서 통과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경제지 포천이 자신들의 잡지에 실렸던 경제 스캔들에 관한 기사 20가지를 선별해 엮은 책이다. 금광이 발견됐다고 속여 주식 차익을 챙긴 캐나다 회사 브리엑스, 내부 기밀 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에 몰두했던 월스트리트 금융인 데니스 레빈, 유령회사 설립과 문어발식 확장으로 주식 투자에 몰두해 결국 사기꾼으로 불리게 된 1920년대 스웨덴 기업인 이바르 크루거…. 이 책은 이 같은 스캔들이 결국 새로운 규제를 불러왔고 현대 비즈니스 지형을 형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개인 정체성-권력분배까지 흔드는 SNS…소셜 네트워크 e혁명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베보, 프렌즈터 등 수많은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사이트가 개인적인 교류, 조직이나 사회에서의 지위, 사회조직 간 위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했다. 각각 프랑스의 유명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의 수석연구원과 석좌교수인 저자들은 소셜네트워크의 힘이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개인, 조직, 소비자·시민 등의 부문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온다는 점에 주목한다. 개인이 타인과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소통하려면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데 소셜네트워크사이트가 개인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사회관계, 조직, 시장 및 정치제도 차원에서 소셜네트워크사이트가 권력의 분배와 행사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문학·예술 ◆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최성각 지음·동녘)=소설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저자가 쓴 서평을 묶었다. 저자는 헨리 조지의 ‘빈곤에서 벗어나는 길’ 이태준의 ‘밤길’을 통해 젊은 날을 버텼고 존 쿠시의 ‘동물로 산다는 것’,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 등을 통해 자연을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1만5000원. ◆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김도연 지음·문학과지성사)=소설가인 주인공은 간암으로 투병 중인 중학교 시절 선생님을 만나 왜 반성문을 내지 않느냐는 꾸지람을 듣는다. 중학교 2학년, 백일장에서 남의 글을 훔쳐 쓴 벌로 원고지 500장을 써 내기로 했던 것. 주인공은 선생님에게 연재하듯 글을 써 보내며 자신의 어린 시절과 선생님의 진짜 모습을 발견해간다. 9000원. ◆ 세상의 모든 풍경(전광식 지음·학고재)=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저자가 읽은 풍경화. 헤르만 헤세가 그린 ‘무차노 전망’에서 출발해 그의 작품세계를 탐구하고 폴 고갱의 그림에서 존재에 대한 물음을 끌어내기도 한다. 사계절로 나눠 각각 6개의 풍경화와 관련 그림을 소개했다. 1만8000원.○ 학술 ◆ 좌파들의 반항(로버트 미지크 지음·들녘)=21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등장한 신좌파의 물결을 자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일종의 증후군으로 보고 신좌파의 주역을 분석했다. 토니 네그리, 슬라보예 지제크 등 학자뿐만 아니라 마이클 무어 같은 영화감독과 팝가수 등도 포함했다. 1만2000원. ◆ 유교가부장제와 가족, 가산(박미해 지음·아카넷)=사회학자인 저자가 ‘미암일기’ ‘묵재일기’ ‘쇄미록’ 등의 원전 사료를 통해 유교가 양반가에 정착 구현되는 과정을 연구했다. 조선 사회의 가부장제를 ‘다소 유동적인 유교적 가부장제’로 파악하며 그 경제체제와 지배구조, 정신적인 면 등을 분석한다. 2만 원. ◆ 철학을 위한 선언(알랭 바디우 지음·도서출판길)=전통철학을 비판하며 철학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책. 저자는 존재가 일자(一者)가 아니라 다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진리가 생산되는 장소 역시 여러 곳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사상을 집약한 책으로 저자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학자가 번역해 재출간했다. 1만5000원.○ 인문·교양 ◆ 사이언스(애덤 하트 데이비스 등 엮음·북하우스)=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과학의 역사를 다뤘다. 화려한 사진과 입체적 구성으로 과학사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짚었고 증기기관, 전화 등 생활을 바꾼 발명품과 탄소 나노튜브, 지진파 측정 등 실생활 속 과학원리 등은 따로 묶어 설명했다. 5만8000원. ◆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답사기행-경상우도편(건국대 사학과 엮음·새문사)=교수와 대학원생, 대학생들이 함께 떠난 답사기행. 울산왜성, 곽재우 생가, 수로왕릉, 덕천서원 등 경남 일대의 유적지를 돌며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 오늘날과의 비교 등을 엮었다. 1만9000원. ◆ 일제강점기(박도 엮음·눈빛)=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사진과 엽서, 광고 등 800여 점의 시각자료를 통해 일제강점기 민족수난사와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년을 각 장으로 구성해 각 해의 주요 사건과 개관을 싣고 그 해에 해당하는 사진과 해설을 담았다. 2만9000원.○ 실용·기타 ◆ 처음 만나는 아시아(안진헌 글 사진·웅진지식하우스)=10여 년간 아시아를 여행해온 저자가 아시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풀어낸 여행기. 네팔 카트만두, 인도 다르질링 히말라야 철도, 베트남 호이안 고도시 등 8개국 24개 세계문화유산 이야기를 담았다. 1만4000원. ◆ 직장인들이여 이미지를 성형하라(김세미 지음·정일)=이미지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여러 방법을 제시한 책. 이미지 성형이 필요한 이유부터 좋은 인상을 만드는 법, 옷차림, 자세와 걸음걸이, 비즈니스 매너까지 실었다. 1만5000원. ◆ 대통령의 맛집(강대석 이춘성 최영기 지음·21세기 북스)=역대 대통령이 좋아했던 맛집을 소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 만찬주로 선정했다는 충북 단양 대강막걸리,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헬기로 제주도까지 공수해 먹을 정도로 즐겼다는 서울 하동관 곰탕 등 맛집 20곳에 얽힌 뒷이야기와 여행정보 등을 담았다. 1만3500원.}

“이 짧은 책에서 나는 ‘정치적 평등’이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21세기의 세계는 정치적 평등의 진작에 얼마나 호의적일 수 있을까?” 미국 정치철학자 로버트 달이 2006년 발표한 마지막 저서다. 출간 당시 91세였던 저자는 이후 집필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를 평생의 연구 주제로 삼아온 노학자는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정치적 평등이 과연 실현 가능한지를 묻고 있다. 대상으로 미국사회를 상정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 적용하더라도 어색함이 없다. 저자는 우선 “모든 인간은 평등한 본질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본질적 평등’을 전제한다. 효과적 참여, 투표의 평등, 계몽적 이해의 획득, 의제에 대한 최종적 통제 등은 이상적 민주주의, 즉 정치적 평등이 보장되는 정치제도의 조건이다. 그러나 정치적 평등이 이성적으로 합당한 목표라는 점 그 자체가 인간 행동을 추동할 수 있을까. 저자는 순수이성만을 인간 행동의 유일한 추동력으로 파악한 칸트를 비판하며 “이성이란 열정의 노예”라고 말했던 흄의 논의를 받아들인다. 지난 수백 년간 사람들이 정치적 평등을 위해 투쟁하도록 만든 힘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 예로 ‘불평등 혐오’를 들 수 있다. 시기심이나 질투심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감정은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기 자신에 대한 보상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데 대해 본능적으로 민감하게 느끼는 것을 뜻한다. 이 외에도 감정이입과 공감, 그리고 두려움이나 개인적 야심도 복합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수백 년간 지속적으로 증진돼 온 정치적 평등은, 다음 세기에도 그 성취를 계속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 두 가지 결론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정치적 평등이 축소될 것이라는 결론이다. 정치적 자원이나 지식, 기술의 불평등한 분배와 시장경제 아래에서의 불평등 심화 등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테러리즘과의 전쟁, 이로 인한 대통령의 권한 확대 역시 새로운 변수다. 더 큰 문제는 소비주의 문화다. 사람들은 이제 시기심이나 질투심, 감정이입과 같은 감정적 에너지를 소비에 투입한다. 정치적 평등은 더는 사람들의 목표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정치적 평등이 진작될 것이라는 희망 역시 버리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시장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동시에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충족시키는 자본주의가 행복이나 복지를 성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만약 이 같은 전환이 더욱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면 소비주의 대신 정치적 평등을 강력하게 추구하는 ‘시민권의 문화’가 우위에 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 가지 전망을 제시한 채 어느 쪽으로도 명확히 결론짓지 않는다. 다음 세대에 그 몫을 맡길 뿐이다. 이 책은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아직은 아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 소비주의 문화에 내재한 공허함을 자각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권의 문화가 가져오는 보상과 도전 의식의 가치를 깨닫게 될 때, 그들은 미국을 저 멀리 잘 잡히지 않는 목표에 훨씬 더 근접할 수 있도록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대학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다 방송출연과 무대공연을 시작해 현재 코미디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말하는 행복해지는 법. 저자는 행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본성에 가깝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 직접 행동에 나서기, 몰입하기 등이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각 장 말미에는 행복나침반 만들기, 쾌락측정기 만들기 같은 순서를 마련해 놀이하듯 저자가 말한 내용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사상의 고착’과 ‘사상의 종속’, 즉 사대주의란 아마도 조선인의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큰 특성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조선인이 조선반도에 사는 한 영원히 지속될 특성이라고 하겠다.”(다카하시 도루, ‘조선인’ 중) 일제는 식민지 시기 일선동조론, 민족개조론 등 왜곡된 역사관과 국가관을 심어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꺾으려 했다. 이 같은 일제의 왜곡된 조선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 2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동국대출판부)는 조선총독부 학무국 촉탁으로 조선의 구술문화유산 수집, 고도서의 정리와 해제를 담당했던 다카하시 도루(高橋亨·1878∼1967)의 1921년 저서 ‘조선인’을 번역한 책이다. 각론에서 다카하시는 사상의 고착, 사상의 종속, 형식주의, 당파심, 문약(文弱), 심미관념의 결핍, 공사(公私)의 혼동, 관용과 위엄, 순종, 낙천성을 조선인의 특징으로 들었다. 특히 다카하시는 1919년 3·1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옛날 조선인이 중국 사상에 종속돼 중국을 향해 사대주의를 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사상에 종속돼 미국을 향해 사대주의를 취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책을 번역한 구인모 고려대 HK연구교수는 해제에서 “다카하시는 일관되게 조선 중·후기의 특징적 국면만을 절대화해 조선조, 나아가 조선사 전체에 투영시켰다”고 설명했다.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북타임)은 1927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표한 같은 이름의 책을 번역한 것이다. 다카하시의 ‘조선인’에 담긴 내용을 상당 부분 인용한 책이기도 하다. 조선인의 성격, 조선의 사회적 경향, 정치 및 경제사상, 신앙사상 등으로 나눠 서술했다. 일종의 자료집 성격을 띤 이 책은 주로 조선인이나 일본 학자, 제3국 사람들의 글과 말을 인용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맨 앞장 ‘조선인의 자랑’에서는 조선의 신문 사설이나 당대 지도자들의 말을 인용해 조선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밝혔다. 그 다음 장은 ‘러시아인이 본 조선인’ ‘미국관광단의 조선인관’이다. 제3자의 시각을 배려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실은 “조선인은 나태한 민족” “점차 일본화해가는 상태는 일본 식민지 정책의 성공” 등의 문구가 등장하는 글뿐이다. ‘조선인의 건강’에서는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의 신장과 체중을 비교하는 표를 싣기도 했다. 이 책 역시 부화뇌동, 모방성, 무기력, 비겁함, 독립심 결핍, 문약함 등이 조선인의 특징이라고 왜곡해 소개해 놓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20세기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현대무용 두 편이 9월 무대에 연이어 오른다. 가림다댄스컴퍼니는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불타는 칼’에서 소재를 얻은 ‘검은 소나타’를 9월 3, 4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2005년 파블로 네루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초연했던 작품이다. 손관중 예술감독은 “창세기 신화를 담은 ‘불타는 칼’ 중에서 ‘시작과 끝은 이어져 있다’는 순환의 모티브를 무용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2005년 공연 때는 무용수가 8명 출연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23명이 출연한다. 그만큼 규모도 커졌고 무대장치도 한층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손 감독은 설명했다. 작품은 ‘생명의 불’ ‘춤추는 욕망’ ‘고독은 검은 세상’ 등 3장으로 나뉘며 강렬한 록 음악을 사용해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했다. 무대 앞과 뒤의 높이 차이가 2m에 달하는 경사무대도 설치한다. 1만5000∼5만 원. 02-2220-1338 9월 10∼12일에는 YJK댄스프로젝트가 ‘울프’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원작인 ‘파도’는 여섯 명의 등장인물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그린 작품으로, 소설에 시를 결합하는 등 파격성이 돋보인다. ‘울프’에서는 여성 무용수 두 명이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 자신과 그가 창조해낸 등장인물을 표현한다. 입술 모양의 소파와 무용수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울문이 등장하고, 무대 뒤쪽에는 울프가 창조해낸 인물들을 상징하는 드레스 여러 벌이 걸린다. 안무와 연출을 맡은 안무가 김윤정 씨는 “울프는 생전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울프의 작품 대부분에는 그런 작가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파도’는 작가의 내면이 가장 많이 투영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2만∼4만 원. 02-889-3561∼2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금수도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니/무궁화 세상은 이미 망해 버렸다네/가을 등불 아래서 책 덮고 회고해 보니/인간 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 우국지사 매천 황현(사진)이 1910년 9월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절명시의 한 구절이다. 지식인으로서 망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고뇌가 담겨 있다. 1864년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매천야록’으로도 유명한 매천의 전집 ‘매천집’이 처음 번역됐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약 3년에 걸쳐 번역한 ‘매천집’ 1∼3권을 24일 출간했다. ‘매천집’에 실린 시 약 800수가 담겨 있으며 전집 속 산문을 번역한 4권은 번역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올해 말 출간될 예정이다. ‘매천집’과 함께 퇴계 이황의 후손이자 경상도 양산군수였던 이만도의 ‘향산집’ 1권도 함께 나왔다. 이만도는 한일강제병합 소식을 듣고 24일 단식 끝에 순국한 인물이다. “…길 양쪽 유리 안엔 서양 등불이 들어 있고/공중을 가로지른 쇠줄에 전차가 빵빵대네/물 건너 바다 건너 온 세상이 모두 신식이고/우리 임금은 황제 칭호를 처음으로 가지셨네/우습다 기(杞) 땅 사람은 어리석음이 배에 가득/저 하늘이 어찌 갑자기 무너질 수 있으리오.” 전남 구례에 살던 매천이 서울을 방문해 지은 시의 일부분이다. ‘기 땅 사람’은 걱정이 많은 이를 빗대는 말로 매천 자신을 가리킨다.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서울 풍경과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매천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외에도 충무공 이순신의 전적지를 답사한 뒤 감상을 적은 시와 단발령이 시행된 뒤의 심정을 담은 시, 일제와 친일파를 늙은 여우에 비유한 시 ‘노호행(老狐行)’ 등도 있다. ‘매천집’은 중국에서 먼저 출간된 뒤 국내로 반입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일제의 감시로 국내 출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에 머물렀던 매천의 친구 김택영이 매천의 지인과 후배, 제자들에게 호소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책을 출간했다. 국내로 반입한 뒤 일제에 책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임정기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은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됐지만 당시 순국한 분들의 전집이 완역된 경우가 아직 없을 정도로 연구가 부족했다. ‘매천집’은 매천의 우국충정이 함축된 책으로 그의 독창적인 문장과 사상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의 문화계 대표인사가 참석하는 C20. 참석자 20명은 영화감독, 철학자, 요리사, 방송사 사장까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한다. 각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모두 각국 대사관의 추천을 받아 선정했다. 터키 대표인 의상 디자이너 제밀 이펙지 씨는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의상을 담당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2002년 미스 월드로 선정됐던 아즈라 아킨의 이브닝드레스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미국 대표인 도로시 칸 해밀턴 미국 인터내셔널 컬리너리 센터 대표는 1984년 뉴욕의 세계적인 요리학교 FCI(French Culinary Institute)를 설립한 인물이다. FCI는 한국인 출신의 세계적인 셰프인 데이비드 장의 모교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작곡가 예샤오강 씨는 중국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2010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피아니스트 랑랑 씨가 그의 곡을 연주했다. 중국의 루촨 감독은 최근 난징대학살을 다룬 영화 ‘난징! 난징!’을 발표했다. 엔리케 카바얄은 ‘세바스티안’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조각가다. 그는 경기 파주시 평화공원과 비무장지대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기증하기도 했다. 이 밖에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인 미소니 회장 비토리오 미소니, 프랑스의 석학이자 문화비평가인 기 소르망, 호주 국영 방송사 ABC의 해외 송출 방송인 오스트레일리아 네트워크 사장 브루스 도버 씨 등도 참석한다. 이들은 서울 노량진수산시장과 북촌한옥마을,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둘러본 뒤 폐막일인 9월 10일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한국문화에 관해 토론회를 갖는다. 폐막행사에서는 주최 측인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이 여는 칵테일공모전 ‘Sip C20 for G20’의 우승자가 발표된다. C20 참가자들이 선정하는 이 우승 칵테일은 G20 기간에 방한하는 취재기자단에게도 제공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내 작품의 소나무는 대부분 왕릉 주변의 소나무예요. 왕의 영혼을 지키고 하늘로 올려 보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얼마 전 독일 신문에서 이 작품을 두고 ‘나무를 성스럽게 표현했다’고 설명하더군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예술을 통해 한국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나 봅니다.” 나무, 돌, 물 등 한국의 풍광을 사진 속에 담아온 사진작가 배병우 씨(60). 특히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흑백의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그의 작품이 3차원(3D) 동영상으로 제작돼 9월 8∼10일 서울에서 열리는 C20(Culture 20) 폐막식 행사에서 상영된다. C20은 10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이 국가들의 문화계 대표들이 한국을 방문해 문화를 체험하고 토론하는 행사다.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배 씨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음악과 영상이 어우러져서 오감으로 한국을 체험할 기회”라며 “솔 향이 실제로 나지는 않지만 아마 정말 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동영상은 5분 30초 정도의 길이로 그의 사진을 입체화했다. 소나무 숲을 직접 헤치며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나무를 훑어 올라가며 소나무 껍질의 거친 결을 보여주기도 한다. ‘서편제’ ‘고래사냥’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김수철 씨가 배경음악 작곡과 영상 감독을 맡았다. 두 사람이 영상으로 만들 사진을 함께 골랐고, 50여 명이 동영상 제작과 음악 연주를 위해 약 2개월간 작업했다. 배 씨의 사진은 30일까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올해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메인 이미지로 선정돼 포스터와 관련 상품에 삽입되기도 했다. 그는 “예술가는 독자적인 것을 하지 않으면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면서 “굳이 한국적인 것을 따로 추구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것을 하려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의 자연과 전통을 에너지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C20에 한국 대표로도 참여한다. “어떤 행사가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재미로 치면 G20보다 훨씬 재밌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외교관, 정치인들이 하는 외교보다 요리사나 예술가가 하는 교류가 더 깊은 외교라고 생각합니다. 행사에 모인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통찰’ 한두 가지만 던져도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재미있는 행사가 될 겁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발레는 내 운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보면 신기해요. 전 매일매일 오늘을 끝으로 더는 발레를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거든요.” 7월 한국인 최초로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솔리스트가 된 발레리나 서희 씨(24·사진)의 말이다. 왜 그런지를 물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완벽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 정말 관두고 싶어요. 그래도 지금은 이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이게 내 일이구나, 그렇게 받아들여요.” 22일 오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그는 25일 예술의 전당, 27일 울산 울산문화예술회관, 28일 경북 포항 경북학생문화회관 무대에 오르는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을 위해 방한했다. 그는 ‘해적’과 ‘라 바야데르’의 2인무를 ABT 솔리스트 코리 스턴스와 공연한다. 그는 “코리는 발레단 입단 시기가 나와 비슷하고, 2009년 ‘로미오와 줄리엣’ 첫 주역 데뷔 때도 파트너였다. 부담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친구이자 파트너라 편안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그는 솔리스트로 승급한 소감을 묻자 “처음에는 무덤덤했다가 나중에서야 ‘내가 정말?’이라고 생각했다”며 “힘들었던 시간이 쌓여 이뤄진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 씨는 “발레단 입단 초기 군무에서 줄도 못 맞추던 시절 ‘백조의 호수’의 3인무로 처음 솔리스트 역할을 맡아 부담감과 주변의 질투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음악을 들으면 배가 살살 아파올 정도”라고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ABT의 프리마 발레리나들은 대부분 ABT에서 발레단 생활을 시작해 옮겨 다니지 않고 평생 춤을 춘 무용수들이에요. 그런 무용수가 주역을 할 때면 사람들이 ‘조명이 달라 보인다’고 말하거든요. 그런 말을 듣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최대 다수가 공유하는 것에는 최소한의 배려만이 주어질 뿐이다. 모두 공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 제한된 목초지에서 목동 두 명이 가축을 키우고 있다. 목초지에 가축을 많이 내보낼수록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목초지의 넓이와 풀의 양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목동 한 명이 과잉방목으로 이득을 얻으면 다른 한 명은 손해를 봐야 한다. 결국 두 사람은 더 많은 가축을 내보내기 위해,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다 목초지를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1968년 미국 생물학자 개릿 하딘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 ‘공유의 비극’에 등장하는 사례다. 합리적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면 할수록 공익을 저해하고 환경을 훼손한다는 이 역설은 오랫동안 경제학의 통념이자 난제로 꼽혔다. 이 논문이 지적한 ‘공유의 비극’은 자원고갈과 환경파괴가 심화되면서 더욱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은 두 가지였다. 공유자원을 국유화해 국가가 관리하거나, 사유화 즉 개인에게 소유권을 주는 것이다. 2009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자는 수상 당시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꼽히기도 한 이 책에서 위 두 가지 방법 모두를 비판한다. 국유화의 경우 국가가 늘 합리적 효과적으로 상황을 통제할지 보장할 수 없다. 태국, 네팔, 인도 등에서 국유화 이후 비리와 감시인력 부족으로 오히려 산림 파괴가 늘어난 것이 한 가지 예다. 사유화 역시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산림이나 어장, 지하수 등은 사유화 자체가 어렵다. 저자는 사유화나 국유화처럼 외부에서 강제된 해결책 대신 공유자원 사용자들이 공동체 차원에서 직접 나서 공유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공유자원을 직접 사용하는 이들이야말로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주인공들이다. 공유자원을 어떻게 활용 보존하느냐 여부에 자신들의 생계가 달려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공유자원을 오랫동안 활용해온 축적된 지식이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스위스 북부 발레스 주의 퇴르벨 마을은 15세기 무렵부터 마을 공동 목초지를 운영해왔다. 1517년 작성된 조례에는 “여름철 초지에 내보낼 수 있는 소의 수는 겨울철에 자신이 사육할 수 있는 소의 수만큼만 허용된다”고 적혀 있다. 마을 목초지에 내보낼 가축 수를 제한하고 이를 공동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규약은 마을 전원이 참석한 투표에서 결정된다. 이 규약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으며 환경파괴나 자원고갈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일본 산악지대 농촌 마을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집합 행동을 통해 공유지를 보존, 활용해 마을 전체의 공익을 증진시킨 사례를 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지하수 분지 관리 제도는 이 같은 지속 가능한 공유자원 관리 제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기고 정착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지하수 분지는 주변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땅 밑에 고인 일종의 지하 저수지로, 캘리포니아 주 같은 반건조성 지역에서는 중요한 수자원이 된다. 이 중 레이먼드 지하수 분지 위에는 패서디나 시, 앨햄브라 시 등 10여 개 도시가 있다. 1920년대까지 이 지하수 분지가 고갈되지 않도록 댐을 건설하고 수량을 보충하는 일은 패서디나 시가 전담했다. 패서디나 시는 1930년대 들어 모든 지하수 생산자들이 공동으로 지하수 사용량을 감축하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생산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은 공유자원 사용 환경에 변화를 예고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지하수 분지의 물 양수량은 안전 양수량을 매년 상당 부분 초과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법원이 전체 양수량을 감축할 것이 분명했다. 생산자들은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을 맞는 대신 스스로 협상에 나서 합의안을 작성하기로 했다. 6개월에 걸쳐 작성된 합의안은 양수량 감축에 합의하고 감축분을 각자 비례해 분담하도록 했다. 미래에 안전 양수량이 변하는 것까지 대비했다. 법원은 이 합의안에 기초해 판결을 내렸다. 이후 45년이 지났지만 이 합의가 위반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각 지역의 수자원 전문 기구는 각 생산자의 양수량을 세세히 기록한 보고서를 작성해 배포한다. 생산자들은 모두 자신이 합의를 위반할 경우 그 사실이 다른 생산자에게 알려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쉽게 합의를 위반할 수 없다. 위반한다 하더라도 물을 퍼 올릴 권리를 가진 다른 생산자가 법적 조치를 통해 즉각 제재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공유자원 관리 제도도 종종 실패의 위기를 맞는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 분석을 통해 공유자원 관리 제도가 성공할 수 있는 디자인 원칙 8가지를 도출해낸다. 공유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공유자원 자체의 경계가 명확해야 하며, 참여자들이 직접 규칙수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감시활동과 위반에 대한 제재가 뒤따라야 하는데 특히 반복해서 위반하거나 그 위반행위가 무거울수록 제재도 강력해져야 한다. 이 같은 제도를 디자인하는 사용자들의 자율적 권리가 정부 당국에 간섭받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 같은 저자의 논의는 ‘공유의 비극’과 같은 모델이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통찰을 바탕으로 한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좀 더 나은 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개인들의 역량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며 “실제 상황 속 개인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자본주의는 윤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우리가 윤리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제1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집필과 TV 출연, 대중강연으로 유명한 저자의 강연 내용을 담았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윤리적일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경제와 윤리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정치와 개인의 윤리성이라는 것이다. 강연 당시 청중과의 문답을 정리한 2부에서는 좌파와 우파 양측에 대한 비판, 윤리와 정치, 세계화와 노동 등에 대해 답한 내용을 수록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동북아역사재단, 국회서 자료전시회“지난날의 병합 인준은 강린(强隣·일본을 가리킴)이 역신(逆臣)의 무리(이완용 등을 가리킴)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요…오직 나를 유폐하고 나를 협제(脅制)하여 나로 하여금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것이 아니니….” 1926년 7월 8일 미국 교민들이 발행하는 신한민보에 보도된 순종의 유언이다. 유언이 작성된 것은 붕어 직전인 4월 26일. 한일강제병합이 강압으로 이뤄졌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일강제병합 100년 조약자료 전시회’를 마련한다. 사진자료 74점을 통해 한일강제병합이 불법적, 강제적으로 체결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1910년 8월 23일자 일본 도쿄아사히(東京朝日)신문 기사. 고종이 한일강제병합을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허위사실과 함께 22일 일본 임시추밀원회의가 열려 조만간 한일강제병합조약 체결 사실을 공표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조선 통감이었던 데라우치는 사후 기밀 보고서에서 22일 오전까지 순종 황제 동의 여부를 확신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런데도 이런 기사가 나왔다는 것은 조약 체결 자체가 이미 짜여진 각본이었다는 점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일본 측 한일강제병합조약 재가 문건과 한국 측 칙유문도 나란히 전시된다. 한국 측 문건에는 순종 황제의 서명이 빠져 있고 문건의 이름 역시 ‘조칙’ ‘조서’가 아니라 ‘칙유(勅諭)’로 바뀌어 있다. 일왕의 서명과 어새 날인을 모두 갖춘 일본 측 문건과 대비된다. 한국에서의 조약 체결이 강제적,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02-2012-6114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1950년 인쇄된 교통안전포스터. ‘보호하자 어린이, 살피자 보행자’라는 문구는 여느 교통안전 포스터와 같지만 아래쪽에 들어간 문구가 색다르다. ‘교통안전 강조 운동은 미군과 한국 정부가 공동으로 하고 있는 공익사업의 하나이다.’ 포스터에는 군용 트럭 앞에서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광복 직후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9월 13일까지 서울 중구 신당동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이벤트홀에서 ‘한국포스터디자인백년전’이 열린다. 19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포스터 140여 점을 통해 한국 포스터 디자인 변천사와 포스터에 담긴 시대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1870년대부터 국내에서도 포스터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제작된 고종황제 존영은 족자 위에 고종황제의 초상화를 그려 넣은 형태다. 본격적인 포스터가 제작되기 전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포스터는 주로 상품 판촉용이었다. 구상적 형태에 여성이 모델로 등장하며 위아래에 ‘쫄대’를 대 오랫동안 게시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이 시기 포스터 중에는 특히 운보 김기창이 직접 도안해 1937년 제작한 크리스마스실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팽이 치는 소년의 모습과 함께 크리스마스실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하는 문구도 들어가 있다. 광복 이후 포스터에는 주로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계몽적인 내용이 많았다. 1950년대 육군본부에서 제작한 포스터에는 ‘잊지 말자, 피에 젖은 6·25’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50년대 한미연합군 안전포스터에는 ‘우리는 전쟁에서 같이 싸왔으니 평화 시에도 같이 건설하자’고 적혀 있다. 총을 든 군인이 나란히 서 있고 배경에는 전투 장면과 건물 건설 장면을 함께 그려 넣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 성장과 함께 디자인 전문회사가 생기면서 포스터가 세련되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1969년 제작한 대한석유공사 유공스페샬 홍보포스터는 손으로 그리던 기존 포스터 제작방식에서 탈피해 유니폼 입은 여성의 사진을 전면에 내세웠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는 한국적 정체성에 주목해 탈이나 호랑이, 미륵반가사유상 등 한국 전통을 살린 포스터가 많이 제작됐다.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형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내용이 많아진다. 9월 6일 오후 4시에는 박암종 근현대디자인박물관장, 백금남 성균관대 교수 등이 강연자로 나서 ‘포스터, 시대를 그려내다’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다. 무료. 02-2266-7188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하루와 미투는 친구 사이다. 늘 마을광장에서 만나 함께 축구를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광장에 거대한 성벽이 생긴다. 이제 하루는 미투를 만나 축구를 할 수도 없고, 바깥으로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없다. 하루는 미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성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작은 마을, 하지만 하루의 그림이 널리 알려지며 성벽을 없애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진다. 과연 하루와 미투는 다시 만나 축구를 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 이야기를 이해하기 쉬운 동화로 표현했다.}
■ 연세대 국학연구원은 19, 20일 서울 연세대 학술정보관에서 ‘사회인문학의 시각으로 본 잡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기조강연에서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사회인문학과 비판적 잡지에 관한 몇 가지 생각’, 마크 셀던 코넬대 교수가 ‘책 이후: 전자출판과 공공지식인, 그리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한다. 02-2123-3501∼3■ 문화재청은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과 ‘지리산 한신계곡 일원’ ‘태백 검룡소’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名勝)으로 18일 지정했다. 죽방렴은 대나무 발 그물을 세워 물때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재래식 어항으로, 경남 남해군 지족해협에 현재 23곳이 설치돼 전통 어업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여름에도 몸에 한기를 느낀다’는 의미로 불리는 한신계곡은 오층폭포 한신폭포 등의 폭포와 영산봉 촛대봉 등 산봉우리가 계곡을 감싸고 있다. 강원 태백시 금대봉에 있는 검룡소는 석회암반을 뚫고 하루 2000t가량의 지하수가 나오는 냉천(冷泉)이다.}

“졸업하고 나서 학교를 찾은 적이 있어요. 선생님이 ‘재학생 중에 한국인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발레 역사 수업이었던가? 강의실에 가봤는데 안성수 씨가 먼발치에 앉아 있었죠.” “아, 그랬나요? 전혀 몰랐어요.” 두 사람이 마주앉자 학교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 씨와 현대무용 안무가 안성수 씨는 미국 뉴욕 줄리아드음악원 무용원 동문이다. 전 씨가 1985년 졸업, 안 씨가 1989년 입학해 함께 배운 시기는 없다. 두 사람은 27, 28일 경기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서울발레시어터 15주년 기념공연 ‘모던발레프로젝트 JOY’에 함께 작품을 올린다. 안 씨는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3번 ‘에로이카’를 음악으로 한 신작 ‘영웅’을 내놓는다. 전 씨는 1999년 초연한 ‘세레나데’를 일부 리메이크해 무대에 올린다.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음악으로 사용했다. 16일 오후 찾은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영웅’ 연습을 하는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 사이에 조용한 긴장감이 흘렀다. 음악의 모든 박자를 동작으로 표현하려는 듯한 빠르고 세밀한 움직임이 20여 분의 작품 안에 꽉 찼다. 넓은 무대에서 하는 연습이 처음이라 실수도 이어졌지만 안 씨는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베토벤의 음악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동작으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16명이 나오는데 이렇게 큰 규모의 작업도 오랜만이고요.” 이어 ‘세레나데’ 연습이 시작됐다. 특징은 남녀를 가리지 않은 흰색 치마. 긴 치맛자락을 손에 들고 무대를 가로지르는 무용수들의 몸짓으로 갈매기의 날갯짓을 표현했다. 무용수 중 몇 명이 치맛자락을 잘못 잡아 길이가 훌쩍 짧아지자 먼발치에서 보고 있던 전 씨는 “다리 다 보인다! 치마 똑바로 잡아야지!”라며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 때 경험은 두 사람의 작품세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현대무용과 모던발레로 장르는 다르지만 음악성이 강한 안무를 선보인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영웅’ 동작이 음 하나하나를 정확히 짚고 넘어간다면 ‘세레나데’의 동작은 음악을 타고 흐르듯 감성적이다. 전 씨는 “음악원과 무용원이 함께 있어 공짜 오케스트라 공연도 많았고 음악전공 학생들과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때 배운 게 지금까지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안 씨도 “학교 때 청음시험을 보던 게 기억난다. 안무에서 음악은 50% 이상의 역할을 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모던발레와 현대무용이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함께 공연을 올리는 이유 역시 ‘배운 것을 실천하기’에서 출발한다. “줄리아드를 다닐 때는 여러 선생님의 다양한 스타일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몸이 자유로워지고 안무에 대한 생각도 넓어졌죠. 우리 발레단 단원들도 같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전 씨) “무용수들이 새로운 움직임을 잘 받아들여 오히려 제가 배우고 있어요. 이런 작업에 참여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열심히 춤추는 무용수들이 곧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안 씨)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8월의 크리스마스.’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관객을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나라로 초대하는 신선한 무대였다. 크리스토퍼 스토웰이 이끄는 미국 오리건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첫 내한공연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5일 막을 올렸다. 이번 공연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한겨울의 축제를 ‘한여름 밤의 꿈’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호두까기’는 1892년 독일 작가 호프만의 동화를 원작으로 차이콥스키 음악, 이바노프와 프티파 안무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120여 년 동안 연말 발레 무대를 장식해 왔다. 국내에서도 12월이면 여러 발레단이 경쟁적으로 이 작품을 공연했다. 이번 무대는 무엇보다 조지 발란신이 안무한 ‘호두까기’가 미국 발레단에 의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첫 번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조지 발란신은 ‘미국 발레의 아버지’로 꼽힌다. 조지 발란신 버전의 ‘호두까기’는 특히 어린이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성인 무용수들이 주역을 맡는 다른 버전과 달리 50여 명의 어린이 무용수들이 출연해 다양한 배역과 극의 흐름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이번 발레의 두 번째 의미는 한국 최고의 ‘꼬마 발레 무용수’들이 출연했다는 것이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소속 발레 무용수 50명이 오리건발레단 성인 무용수 50명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어린 마리와 왕자(호두까기 인형) 역을 각각 맡은 이고은과 전준혁은 깜찍한 연기와 춤으로 사탕 요정 역의 캐시 마르투자와 호흡을 맞추며 극의 흐름을 훌륭히 이끌어 나갔다. 전체적으로 앙증맞은 꼬마 발레리나들의 몸짓이 눈에 띄는 무대였다. 미국 오리건발레단 무용수들은 정상급 스타는 아니었지만 한국 발레의 미래를 걸머진 샛별들을 ‘부모처럼’ 잘 이끌어주었다. 마법사의 마술에 의해 커지는 대형 트리와 환상적인 눈송이 장면 등 안무 못지않게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와 의상 디자인도 돋보였다. 그러나 ‘한여름 밤의 크리스마스’보다도 행복감을 준 것은 어린 무용수들이었다. 한국 발레의 미래를 짊어진 아이들이 한껏 기량을 뽐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저들 중에서 제2, 제3의 강수진, 서희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장선희 세종대 무용과 교수:i: 2만∼12만 원.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544-1681, www.thenutcracker.co.kr}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불법적인 한일강제병합조약을 발표했다. 당시 한국인에게 망국(亡國)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초유의 국치(國恥)였다. 이후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전반은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앞두고 그동안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한일강제병합의 의미를 성찰하는 학술대회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17일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한국 근현대 100년, 일상생활의 변화’ 학술회의가 열린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연구소와 한국사회사학회가 공동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하는 이 학술회의는 지난 100년을 각각 10년 단위로 일상사, 생활사를 중심으로 시대별 특징과 변천사를 짚어본다.》 1910년대-식민지배 암흑 적응기1910년대의 과제는 ‘식민지’라는 낯선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권보드래 동국대 교수는 ‘1910년대, 암흑에의 적응’에서 “편재한 폭력에 다치지 않을 법만 궁리하는 삶, 개별적 삶의 안락만을 계산하는 삶만이 허락됐다”고 설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물가와 땅값이 급등해 사회적 불만이 팽배했다. 조선인의 세계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는 조선 민족도 세계사에서 응분의 몫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이는 1919년 3·1운동과 1920년대 사회 전반의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1920년대-청년중심 변혁의지 드러나이기훈 목포대 교수는 1920년대를 다룬 발표문 ‘1920년대-청년, 사회를 바꾸려 하다’에서 1920년대를 ‘운동의 시대’로 규정했다. 민립대학설립운동, 물산장려운동, 임시정부 수립, 독립군 투쟁, 6·10만세운동, 신간회 결성 등이 이 시기에 일어났다. 이 운동을 이끈 것은 ‘청년’, 운동이 벌어진 공간은 ‘사회’였다. 1920년대를 마무리한 사건이 바로 1929년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이라는 점에서도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1930년대-민족 등 항일투쟁 본격화 1930년대는 미쓰비시 백화점 경성점 개점(1930년), 일제의 만주침략(1931년)과 함께 시작됐다.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는 발표문 ‘1930년대-저항의 시대, 소비의 시대, 그리고 전쟁’에서 ‘전쟁의 시대’였던 1930년대의 특징으로 저항의 다양화, 소비문화의 본격적 유입을 꼽았다. 그러나 1930년대의 저항과 소비는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그 힘을 잃는다. 독립운동 중심은 해외로 옮겨갔고 백화점은 상품 판매에 제한을 받으면서 중소상점화한다.1940년대-광복이후 좌우 대립 격화 1940년대는 이데올로기 과잉의 시대였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발표문 ‘사상 양극화와 강제된 선택: 친일-반일에서 남-북으로’에서 한글학자 이극로의 삶을 통해 당대 한국 사회의 중간지대가 몰락하고 어떻게 양극화했는지에 주목했다. 1950년대-제3세계서 이념 대안 찾아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1950년대-새로운 대안을 찾아서’를 통해 전쟁과 혼란의 시기가 아닌 대안 모색의 시기로 1950년대를 정의했다. 박 교수는 “사회민주주의를 대안으로 모색하거나 동남아시아, 중남미 정치, 경제 경험을 배우려는 시도가 일어나는 등 미국 외의 제3세계에서 경제, 정치의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던 역동적 시기”라고 설명했다.1960년대-경제개발 향한 질주 시작 1960년대는 과도기 혹은 전환의 시대였다. 윤충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은 ‘질주와 유예, 불안의 1960년대’에서 당시를 조국근대화를 향한 질주가 시작되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통일이나 민주주의, 분배 등의 가치는 유예된 시기로 봤다. 1970년대-한국적인 것에 눈뜬 시기 또한 김원 한중연 교수는 ‘한국적인 것과 혼종성의 문화정치학: 1970년대의 일상과 문화’를 발표한다. 1970년대는 국사교육을 강화하고 사학계에서 내재적 발전론을 제기하는 등 한국적인 것을 주목했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포크음악 같은 서구문화를 향유하는 청년문화가 확산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민주화, 자율화, 풍요의 1980년대’(홍성태 상지대 교수), ‘1990년대-자유와 소비의 시대, 그리고 냉소주의의 시작’(주은우 중앙대 교수), ‘불안, 개인화, 그리고 축소된 주체: 2000년대의 일상성’(정수남 안양대 강사)을 발표한다.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애국지사 현창 어떻게 할 것인가-역사의 경험에서 배운다’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역사적으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어떻게 현창했는지를 논의하는 자리. 동북아역사재단은 24∼26일 ‘일본의 한국강제병합 재조명-1910년 한국강제병합, 그 역사와 과제’를 주제로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27, 28일에는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국실행위원회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한일 과거사 청산과 동아시아평화’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식민주의의 피해, 청산 현황과 전망, 동아시아 평화의 방안 등에 대해 토론한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도 27, 28일 국제학술대회 ‘강제병합, 100년 전을 뒤돌아본다’가 열린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어린 시절 설탕통을 끄집어내어 ‘달고나’를 해 먹으려던 허수경 시인. 국자를 불에서 내리려던 순간 연탄불에서 유리조각이 튀어 올라 두 눈 사이에 박혔다. 아픔보다는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지러지게 울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실명의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고백한다. ‘숲이 커다란 눈동자 되어 그 눈동자 커다란 검은 호수가 되어’라는 인상적인 시구의 시 ‘눈동자’가 이 공포에서 비롯됐다. 계간 ‘시인세계’ 가을호는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킨 시인들의 특별한 경험을 엮은 기획 ‘내 인생 최고의 시적인 장면’을 선보였다. 시인 18명의 시에 담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올해 고희를 맞은 김종해 시인은 30대 초반에 목격한 교통사고를 잊지 못한다. 퇴근길에 탄 상계동행 막차버스가 한 사내를 친 것이었다. 시인은 돌아오지 않을 가장을 기다릴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생각에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 ‘이야기’에 놓인 서사다. ‘우리의 마지막 상계동행 만원 버스는/죽은 그 사나이 때문에/자꾸 뒤로뒤로 굴러가고/…/그 죽음의 덫을/여러분, 보신 적이 있나요’ 중학생이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 대한민국이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0-9로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대회가 열린 2002년 김광규 시인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볼을 골대에 차 넣는 것만이 승리라고 믿을 수 없는 나이에 이르렀음”을 깨닫는다. ‘월드컵 축구 중계에도 아랑곳없이/들판에서 온종일 땀 흘리는 보람으로/짙푸르게 우리의 여름이 익어갑니다/승리는 이렇게 조용히 옵니다’라는 시 ‘오뉴월’은 이 상념에서 나왔다. ‘햇빛이 바리움처럼 쏟아지는 한낮’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 ‘위험한 생애의 허공’에는 강은교 시인의 젊은 날이 들어 있다. ‘바리움’은 그가 죽으려고 작정하고 입에 털어 넣었던 약 이름이다. “나도 잊어버렸던 어떤 날들, 그러니까 나의 한 생애가 거기 있었던 것”이라고 시인은 고백한다. 서울 북한산에서 내려오다 너럭바위에 앉은 장석남 시인은 팥배나무 꽃잎들이 바위 위에 내려앉는 장면을 본다. 인간이 열 수 없는 바위의 속을 꽃잎이 훤하게 뚫어서 보여주고 있다고 시인은 느낀다. 이 ‘고요하고 하찮은’ 장면을 시 ‘길’은 이렇게 승화한다. ‘팥배나무와/바위/사이/꽃잎들이 내려온/길들을/다/걸어보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수의로 싸드리던 중 어머니가 쓴 ‘베개’라는 글자가 수의에서 나오자 그 글자가 수천 마리 흰 나비로 날아오르는 것 같은 환상에 빠졌다는 문정희 시인(시 ‘베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오토바이를 모는 배달 소년에게서 “세상이 무서워 스스로 무서운 아이가 될 수밖에 없음”을 포착한 이원 시인(시 ‘영웅’)…. 시인들의 ‘인생 최고의 시적인 장면’은 이렇듯 한 편의 시에 오롯이 응축된 한순간의 강렬한 기억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