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무용수 임혜경 씨 29일부터 고별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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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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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슬럼프 …출산 우울증 …‘니키아’가 일으켜줘

29일∼11월 5일 공연하는 ‘라 바야데르’에서 유니버설발레단에서의 17년을 뒤로하고 고별무대를 갖는 발레리나 임혜경 씨. 그는 “그냥 발레를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발레는 내게 신앙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9일∼11월 5일 공연하는 ‘라 바야데르’에서 유니버설발레단에서의 17년을 뒤로하고 고별무대를 갖는 발레리나 임혜경 씨. 그는 “그냥 발레를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발레는 내게 신앙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 발레 ‘라 바야데르’의 음악이 몇 번이나 멈췄다 다시 울렸다. 토슈즈가 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춤에 열중한 발레리나의 등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자잘한 근육이 문양처럼 새겨진 등, 7년 전 “아이를 낳으면 등이 뻣뻣해진다던데”라는 걱정을 들었던 바로 그 등이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임혜경 씨(39)가 29일∼11월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라 바야데르’에서 고별무대를 가진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1994년 입단해 17년 세월을 보내온 그를 앞으로 유니버설발레단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된다.

올해 초 ‘백조의 호수’에서 주역을 맡는 등 불혹의 나이에도 전성기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줬던 임 씨는 “이번이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고별무대를 갖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발레단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역사를 같이 만들어 왔으니까요. 최고의 작품으로 최고의 무대에서, 아직 좋은 춤을 보여드릴 수 있을 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어요.”

1999년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초연 무대에서 니키아 역할을 맡은 임씨. 오랜 부상에서 벗어난 뒤 맡은 첫 역할이다. 사진 제공 유니버설발레단
1999년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초연 무대에서 니키아 역할을 맡은 임씨. 오랜 부상에서 벗어난 뒤 맡은 첫 역할이다. 사진 제공 유니버설발레단
발레단도 이번 무대에 정성을 기울였다. 발레리나로는 비교적 장신인 임 씨에게 맞는 파트너를 찾아 상대역인 솔로르 역에 볼쇼이발레단 주역무용수인 루슬란 스크보르초프 씨를 초청했다.

임 씨는 스스로 “발레리나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겪어 봤다”고 했다. 발레단 입단 당시부터 이국적인 미모와 174cm의 큰 키, 뛰어난 표현력으로 주목받았고 군무부터 주역까지 수많은 작품과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심각한 부상도 여러 차례 겪었고, 발레리나에게 금기라고까지 말하는 임신과 출산도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맡은 ‘라 바야데르’의 무희 니키아 역할은 더욱 특별하다. 임 씨가 힘들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워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2년 동안 발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1999년 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초연에서 니키아를 연기하며 슬럼프를 털어버릴 수 있었죠. 2004년 아이를 출산한 뒤 몸이 마음을 따르지 못해 우울증으로 괴로웠을 때도 복귀작이 ‘라 바야데르’였어요. 2001년 학생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미국 링컨센터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죠.”

발레리나로서 겪어야 했던 고비를 그렇게 ‘라 바야데르’로 극복해 왔다. “슬럼프 때는 토슈즈에 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부상이 심했어요. 발레를 잠시 쉬어야겠단 생각까지 했죠. 그때 친구가 손수 만든 지갑을 선물해 줬는데 거기에 ‘발레리나 임혜경’이라고 수를 놓았더군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들었어요. ‘내 친구에게도 나는 발레리나구나. 내가 당당할 수 있는 이름은 바로 이거구나’ 하고요.”

2004년 ‘라 바야데르’ 무대에서 출산 5개월 만에 니키아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낸 임 씨. 사진 제공 유니버설발레단
2004년 ‘라 바야데르’ 무대에서 출산 5개월 만에 니키아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낸 임 씨. 사진 제공 유니버설발레단
그 뒤로는 ‘모든 일을 강물 흘려보내듯 하는 지혜와 대범함’이 생겼다고 했다. 후배 발레리나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이 같은 경험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요즘 후배들, 정말 잘해요. 존중하고, 존경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초조해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임 씨는 현재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 원장을 맡으며 대학에도 출강하고 있다. 올해 4월 ‘2010 현대춤작가 12인전’에는 자신이 안무한 작품 ‘For a while’을 올렸다. 9월에는 아카데미 학생 90여 명이 출연한 제14회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 발레축제를 기획했다. 내년 1월에는 일본 미쓰코 마치모토 발레단 공연에서 주역도 맡을 예정이다. 이미 고별무대 이후를 차곡차곡 준비해온 셈이다.

“왜 아쉽고 안타깝지 않겠어요. 더는 유니버설발레단 연습 스케줄이 없을 거라는 생각만 하면…. 그래도 이렇게 해야 해요. 좋은 모습으로,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그래야 앞으로 후배들도 그렇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떠나면서도 뒤에 남는 이들을 생각한다. 큰 눈을 또렷이 뜨며 “이제 시작이죠”라고 말하는 그의 등이 아름다운 이유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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