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명

박재명 기자

동아일보 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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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재명 기자입니다.

jmpark@donga.com

취재분야

2026-05-16~20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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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새 의혹’ 민홍규씨 이천공방 압수수색

    ‘국새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은 27일 4대 국새제작단장 민홍규 씨(56)의 경기 이천시 공방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 민 씨 소유 차량 등을 압수수색했다. 민 씨는 2007년 제작된 4대 국새를 전통방식으로 만들기로 계약한 후 실제로는 현대 기법으로 제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은 이날 민 씨 작업장에서 국새 제작방식 및 금장 로비 의혹과 관련된 자료를 집중적으로 찾았다. 민 씨와 함께 일했던 국새제작단 주물담당 이창수 씨(46)는 “국새 주물작업은 모두 내가 담당했으며 전통방식이 아닌 현대식으로 만들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경찰은 이날 민 씨의 공방에서 압수한 거푸집과 밀랍 등 7박스 분량의 물품을 토대로 보강수사를 벌인 뒤 다음 주 중반 민 씨를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경찰은 최양식 경주시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이 2007년 민 씨에게서 받았던 금도장을 입수해 관련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9일 행정안전부가 국새 수사를 의뢰하면서 당시 최 차관에게 전달됐던 금도장을 확보해 경찰에 제출했다”며 “해당 도장의 금이 국새 제작에 사용된 금과 같은 종류인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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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자 DNA은행’ 미제사건 47건 해결

    정모 씨(27)는 지난달 23일 광주시에서 귀가하던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구속됐다. 그런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감식센터가 정 씨의 유전자(DNA)를 감정한 결과, 정 씨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던 3건의 성폭행 사건 범인임을 뒤늦게 밝혀냈다. 올 7월 경기 남양주시에서 승용차를 훔쳐 구속된 손모 군(16)도 DNA 분석 결과 관련 사건 외에 4건의 절도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청은 흉악범 DNA를 채취해 DNA은행에 영구 보관하는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시행된 지 한 달 만에 미제 사건 47건을 해결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26일 DNA법 시행 이후 25일까지 살인, 강간·추행, 아동·청소년 성폭력, 강도 등 주요 11개 범죄를 저질러 구속된 피의자 1145명의 DNA를 채취했다. 이들 중 30명에게서 47건의 ‘숨은 범죄’를 찾아낸 것. 한편 경찰은 이날 국내 DNA 감식 효율성을 높이고 국제적인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인터폴 DNA 게이트웨이’에 가입한다고 밝혔다. 인터폴 DNA 게이트웨이는 54개국 경찰이 참여하고 있으며 각 나라에서 요청한 신원 불명의 DNA를 협조해 감정하는 곳이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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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한국인 강제징용 사망기록 첫 공식 확인

    일본에 강제 징용된 후 사망한 한국인 노무동원자 기록이 일본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지원위)는 최근 일본 외무성에서 한국인 노무동원자 5600여 명의 사망 기록이 담긴 4000여 쪽에 이르는 ‘매·화장(埋·火葬) 인허가증’을 전달받았다고 26일 밝혔다. 사망자 명단은 일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한국의 특별시나 광역시, 도에 해당) 중 10대 도도부현, 82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집한 것이다. 탄광이 많아 한국인 강제동원이 집중된 홋카이도(北海道)와 규슈(九州)지역 자료가 대부분으로, 193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에 사망한 사람들이 명단에 포함됐다. 매·화장 인허가증은 사망 신고 후 시신 매장이나 화장을 위해 해당 지자체에 신고하는 문서다. 여기에는 사망자의 이름과 본적, 생년월일 등의 기본 정보뿐 아니라 직업과 직장명, 사망원인 등 세부적인 상황까지 기록돼 있어 향후 희생자 유족 확인 및 위로금 지급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원위 관계자는 “이번 명단은 개인 보상 차원을 넘어 강제동원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일본의 어떤 지역, 어떤 작업장에서 많이 근무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료적 성격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매·화장 인허가증 전달은 10일 발표된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의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담화 이후 이뤄졌다. 간 총리는 당시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봉환 지원 등 인도적 협력을 성실히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원위는 2006년 한일유골협의 이후 지속적으로 관련 자료를 일본 정부에 요청했었다. 이번 명단에 기재된 희생자 유족들은 가족관계만 확인되면 별도 절차 없이 일제강점기 사망 피해자들에게 지원하는 2000만 원의 위로금을 받을 수 있다. 사망사실 자체를 일본 정부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상당수 미확인 희생자들도 구제받을 길이 열렸고, 명단 등재 확인은 자료 전산화가 끝나는 내년 상반기에 가능하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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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새제작 관리-감독 총체적 부실

    행정안전부는 26일 제4대 국새 제작과 관련한 감사 결과, 일부 공무원이 관리·감독 업무를 소홀히 한 사실이 드러나 엄중히 문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상인 행안부 대변인은 이날 중간 감사결과 발표를 통해 “담당 공무원들이 국새가 계약대로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국새 백서를 발간하는 과정에서도 국새 제작 방법에 이견이 제기됐지만 사실을 규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민홍규 국새제작단장의 ‘국새 제작 과업계획서’에는 금, 은, 구리, 아연, 주석 등 5가지 재료로 만든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주석이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담당 직원은 2007년 12월 ‘문제없다’며 준공처리했고 이듬해 국새 규정을 개정할 때는 새 국새에 주석이 포함됐다는 허위 내용을 기록했다. 이 공무원은 국새 납품 때도 크기와 무게, 함량 등이 수록된 과업결과 보고서를 아예 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를 받지 않아 실제 금 사용량이 얼마였는지, 빼돌린 금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게 된 것.납품 이후 백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도 허술한 관리감독이 이어졌다. 민 씨는 전통방식으로 제작했다고 주장했으나 주물 단원이던 이창수 씨는 현대식이라고 맞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국새 제작 방식이 국새 홍보물에는 전통식으로, 백서에는 현대식으로 다르게 표기됐다. 국새 제작 담당 공무원은 결재 라인과 후임자 등을 포함하면 모두 16명이나 됐지만 실제 업무를 주관한 공무원은 한 명뿐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이 공무원은 국새 제작뿐만 아니라 국가 의전과 관련된 업무까지 담당했다고 한다.행안부는 민 씨가 금도장을 만들어 공무원 등에게 돌렸다는 의혹에 대해 “현재까지 조사한 결과 금도장을 받은 공무원은 당시 행정자치부 차관이던 최양식 경주시장만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자체 조사와 경찰 수사가 마무리되면 관리 감독 소홀 책임이 있는 공무원을 엄중히 문책할 방침이다. 민 씨와 경남 산청군이 추진 중인 국새문화원 건립 공사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교부금 7억 원의 지원 방침도 철회됐다.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국새논란 남은 의혹들 ▼① 제조방식 정말 ‘전통방식’ 따랐나② 남은 金 800∼900g 과연 어디로③ 금도장 나머지 11개는 누구에게4대 국새(國璽)를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경찰은 민홍규 전 국새제작단장(56)이 실제 ‘전통 기술’로 국새를 만들었는지에 수사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로비 의혹’ ‘국새 금 횡령 의혹’ 등에도 누구 말이 맞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국새,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나 행정안전부는 2006년 말 민 씨를 국새제작단장으로 임명하며 ‘전통 방식’으로 국새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현대 주물 방식으로 만든 3대 국새가 1999년 첫 사용 후 7년 만에 금이 갔기 때문. 7년 동안 민 씨와 함께 일했던 주물담당 이창수 씨는 “실제 국새 주물 과정은 모두 내가 맡았으며 현대식으로 제조했다”고 폭로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황금 골프 퍼터 사업을 진행하다 사이가 틀어졌다. 민 씨는 “국새 제작 당시 이 씨는 보조역이었을 뿐 내가 만든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한편 민 씨가 주장하는 ‘전통 방식’ 자체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민 씨가 스승이라고 말한 고 석불 정기호 선생의 아들 정민조 씨가 “민 씨는 아버지 제자가 아니고 (국새 전통 제조방식)비전을 전수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민 씨는 이 씨와 틀어진 후에도 “이창수가 없으면 일할 수 없다. 이 씨를 설득해 보라”며 업체 사장에게 부탁한 사실이 알려지며 의혹이 더욱 커졌다.○ 국새용 금 빼돌렸나이 씨에 따르면 4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의 양은 800∼900g. 이 씨 측은 “민 씨가 해당 금으로 금장(金章·금도장)을 만들어 2007년 정관계 인사들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 경찰 조사에서는 금을 빼돌렸다는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민 씨가 2007년 총 16개의 금장을 만들기는 했지만 ‘국새용 금’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민 씨가 만든 금장은 2007년 초 12개, 2007년 말 4개다. 이 중 실제 횡령이 이루어졌다면 국새가 만들어진 2007년 말 이후의 4개가 ‘국새 금도장’이 된다. 민 씨 측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은 모두 제사 의식을 치르며 태워 없앴다”고 주장했다. ○ ‘금장 로비’ 어디까지 진행됐나민 씨에게서 금장을 받았다고 시인한 고위 인사는 민주당 정동영 의원과 최양식 전 행정자치부 차관(현 경주시장) 등이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도 금장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2006년 8월 지인이 도장을 만들어 왔지만 민 씨가 만든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일부 행자부 전직 고위 관료 등도 금장 전달 의혹을 받고 있지만 모두 부인했다. 민 씨가 2007년 말에 만든 금장 4개 중 한 개는 정 의원에게 전달됐고, 3개는 일반인에게 판매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2007년 초 만들어진 12개 금장 중 최 시장에게 간 1개를 제외한 나머지 11개의 행방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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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홍규씨 국새 제작능력 없었다?

    국새 금 횡령 의혹을 받고 있는 민홍규 전 국새제작단장(56)이 제작단에서 주물을 담당한 이창수 씨(46)와 결별한 이후에도 이 씨와 계속 작업하기를 원해 혼자서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제작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의혹이 더해지고 있다. 2007년 초부터 지난해까지 민 씨와 ‘황금 퍼터’ 사업을 추진한 G사 대표 박준서 씨는 “민 씨가 이번 사건을 처음 폭로한 이 씨와 결별한 2009년 이후에도 ‘이창수와 함께 해야 한다’며 제품 납기를 늦추다 결국 제품을 만들지 못했다”며 25일 관련 녹취록을 공개했다. 지난해 9월 통화한 이 녹취록에 따르면 민 씨는 제품 완성을 요구하는 박 씨에게 “내가 주물을 부을 때 누가 불 좀 때주면 좋겠는데…이창수는 안 한대?”라고 수차례 말했다. 그는 “한의사가 약을 조제하면 애들 보고 달이라는 것처럼 내가 (금속을) 제조하면 이창수가 만드는 것”이라며 “제자는 많은데 이창수는 정말 안 한대?”라고도 했다. 박 씨는 “민 씨가 결국 그해 11월로 예정된 중국 상하이 명품박람회에 나갈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며 “당시 민 씨가 제조 기술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결별했다”고 밝혔다. G사는 이후 이 씨와 손잡고 황금 퍼터를 만들고 있다. 한편 민 씨는 2008년 11월 ‘노블리제(Noblige)’라는 월간지에 금도장 판매 광고를 게재하면서 자신의 국새제작단장 직함을 활용했다. 해당 광고에는 금도장을 만드는 민 씨 사진 아래 ‘민홍규, 조선왕조 32대 옥새전각장’ ‘대한민국 국새제작단 단장’ 등의 소개가 적혀 있다. 또 국새 사진과 함께 ‘이것이 대한민국 국새다. 이제 귀하의 가문 및 기업의 영광의 상징으로 재현됩니다’라는 문구도 나온다. 당시 판매되던 금도장 가격은 개인용 도장이 개당 3000만 원, 기업용은 최대 2억∼3억 원까지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G사 대표 박 씨는 “민 씨가 당시에도 다른 장인을 시켜 금도장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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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前대통령 2명에 금도장’ 녹취록 조사

    제4대 국새(國璽) 제작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서울지방경찰청은 민홍규 국새제작단장(56)이 전직 대통령들에게도 선물용 금도장을 전달했다는 내용이 담긴 전화 녹취록을 입수해 조사하고 있다. 24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은 국새 제작에 주물장인으로 참여했다가 금 횡령 의혹을 제기한 이창수 씨(46)가 지인과의 통화에서 “(민 씨가) 전직 대통령들에게도 금 도장을 만들어 전달했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했다. 이 녹취록에서 이 씨는 2명의 전직 대통령 이름을 거론했다.경찰은 이르면 이번 주말 민 씨를 소환해 국새용 금을 횡령했는지, 남은 금으로 만들었다는 금도장을 유력 인사들에게 전달했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민 씨가 국새를 제작하기 이전부터 금도장을 만들어 유력 인사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국새용 금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매입한 금으로 도장을 만들어 나눠줬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씨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흥분한 상태에서 근거 없이 (전직 대통령에게 금도장을 줬다는) 말을 했다”며 “민 씨에게서 전직 대통령들에게 도장을 줬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은 없다”고 말을 바꿨다.경찰에 따르면 민 씨는 2007년 1년간 16개의 금도장을 만들었다. 2007년 초에 만든 12개는 최양식 경북 경주시장(당시 행정안전부 차관) 등에게 전달했다. 2007년 말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으로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4개의 금도장 중 1개는 정동영 민주당 의원에게 전달하고 나머지 3개는 일반인에게 판매했다. 한편 민 단장이 국새를 전통방식으로 제조했는지에 대한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경찰은 국새가 처음 계약처럼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민 씨가 계약과 다르게 전통방식으로 국새를 만들지 않았으며 국새 주물 과정은 모두 내가 담당해 현대식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통식’ 제조 기능을 보유했는지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새를 녹이거나 쪼개는 등의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민 씨에게 직접 주물 제작을 시연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민 씨가 경남 산청군의 ‘대왕가마’에서 전통방식으로 국새를 만드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관련 조사 후 민 씨의 금 횡령 여부와 금도장 로비 등도 조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동영상=조선왕조의 유일한 국새 발견}

    • 201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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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에 끌려가 사할린에 버려졌던 할아버지들 1만5000여 명

    “마지막까지 월급은 단 한 번도 손에 쥐어보지 못했소. 50년 동안 추운 섬에 버려두더니 이제 와서 성실한 지원이라니….” 20일 인천 연수구 연수동 ‘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만난 장병술 할아버지(84)는 광복되던 1945년 8월이 바로 어제였던 것처럼 목청을 높였다. 그는 지금도 분노하고 있다. 1945년 1월, 배를 타고 부산에서 사할린으로 끌려갔지만 그해 8월 뱃길이 끊기자 그곳에서 49년을 살았다. 우여곡절 끝에 1994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일본은 ‘여비’ 외에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장 할아버지는 “일본이 1950년대까지 일본인들은 모두 불러들였지만 조선 사람들은 찾지 않았다”며 “그 세월을 어떻게 보상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잊혀진 사람들 올해 한일 강제병합 100년과 광복 65주년을 맞아 다시 ‘사할린 할아버지’들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10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발표한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8·10 기념 담화 중에서 ‘사할린 한국인 지원’ 내용 때문. 간 총리는 이날 “지금까지 실시해 온 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봉환 지원이라는 인도적 협력은 앞으로도 성실히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총리의 담화에서 ‘사할린 한국인’을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그 ‘피해자’들은 간 총리 발언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1999년 영구 귀국한 장병기 할아버지(86)는 “그저 8월이 되면 항상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또 그렇게 잊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할린 한인은 그동안 한국과 일본 양측 모두에 ‘잊혀진 존재’였다. 광복 전 일본 영토였던 남부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조선인은 1만5000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 땅으로 바뀐 그곳에서 이들은 ‘국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일본은 사할린에 살던 마지막 한 명의 일본인까지 본국으로 송환했지만 조선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사할린 할아버지들의 영주귀국을 돕는 대한적십자사 강성문 과장은 “‘버리고 왔다’는 원죄 의식 때문에 일본이 사할린 한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日패망후 자국민들만 송환… 국적없이 반세기 살아최근 日서 먼저 보상문제 꺼내… 한국도 목소리 내야” 현재 일본은 사죄의 의미가 아니라 ‘인도적 차원’에서 귀국하는 사할린 동포의 항공료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원금마저 지난해 34억 원에서 올해는 19억 원으로 줄었다.○ 이제는 해결하자 지금이 오히려 사할린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좋은 기회라는 주장도 나온다. 장 할아버지는 “일본이 먼저 보상 문제를 끄집어냈으니 이제 한국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징용 당시 “귀국하면 주겠다”며 돌려주지 않은 월급부터 징용 피해 금액까지, 사할린 한인에 대한 한국 내 여론부터 일어야 한다는 뜻이다. 김상유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 관장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정리하지 못한 피해자는 원폭 피해자, 정신대 할머니, 그리고 사할린 징용자 등 세 부류가 있다”며 “이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일 간 진정한 ‘과거사 정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 시키려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고 갔으면 나올 때도 다 데리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갔던 영감도 결국 사할린 땅에 묻혔어. 사과 받는 날까지는 꼭 살 거야.” 1999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돌아온 이정희 할머니(81)의 목소리가 떨렸다.인천=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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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제복, 자랑스러워요”

    “하늘에 계신 아빠가 지금쯤 정말 좋아하고 계실 것 같아요.”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도서관 강당에서는 ‘특별한’ 장학금 전달식이 열렸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 전달식이 아니었다. 이날 모인 학생들은 모두 순직하거나 부상당한 소방관 경찰관 등 제복의 대원들(Men In Uniform·MIU)의 자녀들이었다. 20명의 MIU 자녀들은 이날 서울 성북구 삼선동 본교회에서 기부한 1000만 원을 장학금으로 받았다. 이번 행사는 동아일보가 올 4월 7일부터 28일까지 ‘MIU-제복이 존경받는 사회’ 기획기사를 보도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당시 본보 기사에 공감한 본교회 신도들은 헌금으로 1000만 원을 모아 4월 22일 동아일보에 전달했다. 본보는 이 돈을 사단법인 경찰소방공상자후원연합회에 전달해 순직하거나 부상당한 소방관과 경찰관 자녀들이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다. 이날 장학금 전달식은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의원, 김소남 의원이 공동 대회장을 맡은 ‘들무새 백일장 결선대회’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다. 2007년 과로로 쓰러진 후 뇌사 상태에 빠진 박제성 소방장의 아들 박근양 군(15)은 이날 씩씩하게 장학금 증서를 받았다. 박 군은 “많은 사람이 나라를 위해 일하다 다친 아빠를 지금도 잊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더 열심히 공부해 기회를 준 분들에게 보답할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박 군 외에도 2008년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중국 선원들의 공격을 받고 바다에 빠져 순직한 박경조 경위의 자녀와 2004년 강도 용의자를 잡다가 머리를 다쳐 식물인간이 된 수원 중부경찰서 장용석 경장의 자녀들도 이날 장학금을 받았다. 고 박 경위 부인 이선자 씨(47)는 “순직한 남편과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아프다”며 “이번 행사처럼 많은 분이 조금씩 빈자리를 채워줘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학금을 기탁한 본교회의 이주일 목사는 “교회가 낸 작은 정성이 20명의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쓰여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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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지통] 현직 판사를 지명수배하고 체포까지… ‘황당 경찰’

    서울 종암경찰서는 지난해 6월 초부터 한 절도범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성북구 보문동의 한 사무실에서 100여만 원어치의 가짜 명품가방 5개, 체크카드 1개 등이 사라진 도난 사건의 용의자였다. 피해자 권모 씨(39)는 조사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난 박모 씨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박 씨 나이와 출생지를 경찰에 알려줬다. 경찰 조회 결과, 서울 거주 시민 중 조건이 같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조회 결과를 토대로 박 씨로 추정되는 사람의 노원구 집을 찾아간 경찰은 그가 지난해 6월 중순 중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절도범이 중국에 자주 왕래했다”는 피해자의 증언과 일치했다. 경찰이 입수한 박 씨의 운전면허증 사진을 본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이 “절도범이 틀림없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지난달 4일 박 씨를 절도 혐의로 지명 수배했고 13일 입국하는 박 씨를 공항 입국대에서 체포했다. 황당한 상황에 처한 박 씨는 “나는 현직판사로 중국 해외연수를 나갔다가 귀국하는 길인데,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고 항의했다. 즉각 신분 조회에 들어간 경찰은 박 씨가 서울의 한 법원에 근무하는 현직 판사인 것을 확인하고 공항 현장에서 박 씨를 풀어줬다. 종암서 관계자는 “이름 나이 출생지 등 7가지 정도가 피해자 주장과 일치해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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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바게뜨-배스킨라빈스 특정종교 연루설로 피해”

    식품전문그룹 SPC 계열사인 파리크라상과 비알코리아는 식품 브랜드 파리바게뜨와 배스킨라빈스 등을 특정종교인 ○○교가 인수했다고 인터넷에 퍼뜨린 누리꾼 9명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고 18일 밝혔다. 피소된 누리꾼들은 ‘○○교가 파리바게뜨와 배스킨라빈스 등을 통해 젊은 층에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해당 브랜드와 ○○교의 관계를 단정적으로 적었다. SPC 측은 “특정 종교와의 연루설 때문에 단체 납품 등이 거부당하는 등 피해가 커 법적 대응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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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문학상 헤르타 뮐러씨…서울여대서 명예박사 학위

    서울여대는 18일 서울 노원구 화랑로 본교 학생누리관 소극장에서 200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헤르타 뮐러 씨(57·사진)에게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학교 측은 “뮐러 씨의 저항적 작가정신이 서울여대 설립이념 및 교육목적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 명예박사 취득자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 201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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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중화동 인질 살인사건 그 후… 어설픈 경찰 대응에 두 번 운 피해자 가족

    “저 ×이 제 엄마 죽인 ×이야.” 지난달 24일 오전 7시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 장례식장. 검은 상복을 입은 김모 씨(26·여)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죽음을 넘나드는 10시간의 악몽을 헤쳐 나온 그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것은 몇몇 친척의 싸늘한 눈빛이었다. ‘엄마, 제발 일어나.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말 좀 해줘.’ 김 씨는 차마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교제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흉기로 베어 숨지게 한 ‘서울 중화동 인질극’ 사건은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경찰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동아일보는 법무부가 설립한 범죄피해자복지센터(스마일센터)의 보호를 받고 있는 김 씨와 그 가족을 13일 만나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 “참극 막을 수도 있었는데…”김 씨가 박모 씨(25)를 만난 것은 지난해 9월. 친구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박 씨가 자상하고 배려심이 많아 보여 12월부터 교제를 시작했지만 이후 박 씨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 말다툼을 할 때면 물건을 집어던졌고, 김 씨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일일이 들춰보는 등 ‘편집증’을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초 김 씨가 이별 통보를 하자 박 씨는 김 씨 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김 씨 가족을 괴롭혔다. 2월엔 집 담장을 넘어 들어와 유리창을 깨뜨렸다. 김 씨 가족은 “당시 출동한 경찰관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했지만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보호해 주면 근무는 누가 하느냐’며 묵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 가족이 정식으로 신변보호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박 씨는 검찰에서 약식 기소돼 5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박 씨가 이전에도 상해 등 혐의로 4차례 벌금형을 받고 협박이나 폭력 혐의로 수차례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어 박 씨를 정식 재판에 넘겨 처벌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후 박 씨의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6월 말 김 씨는 박 씨를 피해 회사를 그만뒀다. 가족과 함께 중랑구 중화동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주소를 알아낸 박 씨는 7월부터 아파트 앞을 서성거렸다. 참극이 벌어진 지난달 23일은 박 씨를 상대로 경찰에 고소장을 낸 김 씨와 김 씨 어머니 송모 씨가 오후 7시 고소인 조사를 받으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경찰 몇 시에 철수했나김 씨 가족은 “사건 당일 경찰이 현관문 앞에서 철수하면 어머니를 내보내겠다는 박 씨의 말을 경찰이 듣지 않아 송 씨가 숨졌다”고 주장했다. 송 씨가 팔을 흉기에 베인 것은 오후 4시경. 20여 분 뒤 출동한 경찰 10여 명은 40∼50분간 15층 현관문 앞에 지키고 서서 김 씨 가족의 철수 요청에도 물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씨는 “아버지가 경찰들과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는 시각에도 인터폰 화면을 통해 경찰이 현관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고 밝혔다. 김 씨에 따르면 송 씨는 집 안에서 1시간 넘게 생존해 있었다. 경찰의 철수 결정이 조금만 빨랐어도 송 씨를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었다는 것. 경찰 관계자는 “박 씨 요청으로 경찰 병력이 모두 1층으로 철수했다”면서도 정확한 철수 시점을 밝히지는 않았다.경찰은 가해자인 박 씨와 피해자 김 씨를 같은 차에 태워 호송했고, 어머니를 잃은 김 씨는 경찰서에서도 3시간 넘게 아무 조사도 받지 않은 채 혼자 방치돼 있었다.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고 울면서 사정했지만 경찰들은 다른 조사실에서 기다리던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지 않았다고 김 씨는 전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피해자가 최대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해명했다. ○ 가해자 진술에만 의존한 브리핑‘결혼을 반대해서 죽였다’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겠다고 설득했다’ ‘함께 죽겠다며 자살 시도를 말렸다’ 등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알려진 내용들은 경찰이 박 씨 진술만 듣고 브리핑한 것이었다. 김 씨는 “결혼을 전제로 사귄 것이 아니었고, 남아있던 밥을 차려줬을 뿐”이라며 “차라리 내가 죽겠다며 엄마를 내보내 달라고 했지, 박 씨가 자살하면 나도 따라 죽겠다고 말한 적은 결코 없다”고 밝혔다. 결국 김 씨가 사건의 원인 제공자처럼 알려지면서 김 씨는 심각한 2차 피해를 당한 셈이다. 김 씨와 그의 아버지는 지난달 30일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가 운영하는 스마일센터에 함께 입소해 보호를 받고 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엄마를 죽였다’는 죄의식으로 입을 굳게 닫았던 김 씨는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의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받으며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동영상=프로파일러가 밝히는 강호순 검거과정}

    • 201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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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불법체류 외국인 폭행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불법 체류 혐의로 단속된 외국인을 때려 검찰에 고발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실에서 중국 국적 미등록 이주노동자 A 씨(46)를 때려 갈비뼈를 부러뜨린 관리사무소 단속차량 운전사 윤모 씨(51)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17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A 씨는 6월 9일 미등록 외국인 단속에 적발돼 일행 7명과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실에 들어갔다. 당시 사무실에 있던 운전사 윤 씨는 들어온 단속반 직원으로부터 “(A 씨 일행의) 저항이 너무 심해 맞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화가 나 곁에 있던 A 씨의 머리와 배를 주먹으로 때렸다. A 씨는 피를 토했고, 검사 결과 갈비뼈가 부러졌다. 폭행 당시 직원 여러 명이 지켜봤지만 아무도 윤 씨의 폭행을 말리지 않았다. 이어 윤 씨는 “피를 닦아 주겠다”며 A 씨를 화장실로 끌고 가 무릎을 꿇리고 빌게 하는 등 모욕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윤 씨는 이 사건이 문제가 되자 사직했다. 윤 씨는 미등록 외국인 단속 권한이 없는 기간제 근로자였지만 지난해 7월에도 단속 업무를 하다가 적발돼 인권위로부터 인권교육 수강 권고를 받았다. 인권위는 윤 씨를 검찰에 고발하는 외에 이 문제가 불거진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 소장에게 폭행이 일어날 당시의 단속팀장과 조사과장을 경고 조치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직원들의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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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거워지는 청문회 정국]경찰 내부 “조직분열로 비쳐선 안돼” 자제 분위기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문제 발언을 담은 동영상 유포자가 내부자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경찰 내부에서는 자제를 촉구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16일 경찰청 인터넷 내부 게시판에는 ‘서로 헐뜯고 물고 짓밟는 현실이 속 터진다’, ‘모래알 조직’ 등 경찰신분을 자조하는 글이 올라오는 가운데 ‘제2의 김석기 사태는 막아야 한다’며 자제를 주문하는 글도 많았다. 김석기 전 경찰청장은 지난해 2월 청장에 내정된 지 23일 만에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정자 신분으로 사퇴했다. 모강인 경찰청 차장은 이날 게시판에서 “(최근 조 내정자와 관련해) 내부 교육용 발언이 외부에 유출되고 근거없는 유언비어가 언론에 제보되고 있다”며 “조직이 사분오열하는 것으로 비치는 사례가 없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조 내정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고 한 발언은 유족 등이 고소를 하면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검찰이 통상 ‘공소권 없음(내사종결)’ 처분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확인을 하지 않지만 수사팀 관계자들이 “차명계좌 발견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힌 점을 감안하면 조 내정자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되면 2년 이하의 징역, 금고형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반면 ‘천안함 유족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는 조 내정자의 발언은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기는 힘들지만 모욕죄 적용은 가능하다는 해석이 있다. 모욕죄는 사실, 허위사실의 적시 여부와 관계없이 당사자가 인격적으로 멸시를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점만 입증되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천안함46용사유족협의회는 이날 조 내정자가 유족들을 동물에 비유한 발언과 관련해 직접 유족들을 찾아 공개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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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교육연구학회장 서태열 씨

    서태열 고려대 지리교육과 교수(49·사진)가 14일 제25대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날 서 교수는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열린 2010년 학회 연차학술대회에서 임기 2년의 회장으로 뽑혔다. 1962년 창설된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는 교과교육학회 중 역사가 가장 길다.}

    •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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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지통]올해 연고전 잠실벌서 못 열리는 까닭은?

    ‘전통의 라이벌’ 고려대와 연세대가 정기 연고전(올해 고려대 개최)을 한 달 앞두고 벌써부터 장외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설전(舌戰)의 주제는 ‘잠실주경기장’이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고려대가 다음 달 11일 열리는 연고전에서 전통적인 주경기장인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대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따라 올해 연고전 폐막 경기인 축구와 럭비는 목동경기장에서 열린다. 1985년 양교 정기전을 처음으로 잠실에서 개최한 이래 25년 만에 ‘잠실 폐막’ 전통이 깨진 셈이다. 고려대 관계자는 “잠실주경기장을 대여하려고 노력했으나 때마침 서울 디자인올림픽이 그날 열린다”며 “목동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연세대 측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고려대가 정기전 장소를 일부러 목동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연세대 관계자는 “지난해 축구경기에서 고려대가 심판을 매수한 사실을 연세대 응원단이 공격할 것 같으니 방송시설이 열악한 목동으로 경기 장소를 옮겼다”고 주장했다. 연세대는 지금이라도 일정을 바꿔 ‘잠실 폐막’ 전통을 잇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대 측은 “정기전에 대한 학내 관심도가 많이 떨어져 학기 초에 빨리 열고 끝내자는 학생이 많다”며 사실상 일정 변경을 거부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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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용 희생 할아버지, 늦었지만 고.미.사”

    “증조할아버지,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꼭 다시 올게요.”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한일 강제병합에 대해 ‘통절한 반성’을 이야기한 10일 한국 초중학생 20명이 일본 센다이(仙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나이도 다양했다. 사는 곳도 저마다 달랐다. 이들은 센다이에서 하루 머물고 11일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埼玉) 현 히다카(日高) 시에 있는 사찰 세이덴인(聖天院)으로 향했다. 이 절에 세워진 ‘재일한민족 무연고위령탑’ 앞에 선 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묵념한 후 미리 준비해 간 꽃을 제단에 바쳤다. 철모르는 사춘기 학생들이 광복절을 앞두고 이곳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 70년 만에 이뤄진 만남 “비록 뵌 적은 없지만 꽃까지 드리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네요.” 이날 학생 대표로 헌화한 이지훈 군(15·서울 성리산중 3학년)은 일본에 찾아온 감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곳에 모인 스무 명의 학생은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지원위원회(지원위)가 올해 처음 주최한 ‘일본지역 한국인 희생유적지 탐방대’다. 서울, 전남, 경북 등 사는 곳도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증조부가 일제의 강제징용 이후 머나먼 이국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탐방대원인 허준 군(15·경기 성남시 청솔중 3학년)은 “증조부께서 일제강점기에 태평양의 마리아나 제도로 징용을 갔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세이덴인 위령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조선인 강제징병·징용자를 위한 시설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연고가 없어 결국 한국에 가지 못한 무연고자를 위해 건립됐다. 이 절 주지 대리인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스님은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왔다 희생된 무연고 조선인을 위한 일본 내 유일한 위령탑”이라고 설명했다. ○ 포스코의 첫 공식 지원 학생들의 이번 일본 방문은 포스코가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를 처음 공식 지원하며 이뤄졌다. 포스코 전신인 포항제철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일본에서 받았던 자금 중 1억2370만 달러로 건립됐다. 하지만 당시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민간인이 일본 정부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길이 막혔다. 이후 국내 민간인의 일제강점기 당시 피해는 한국 정부가 보상하고 있다. 지원위는 “이번 행사가 포스코를 비롯해 KT나 한국도로공사 등 당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설립된 기업들이 강제동원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이번 방문과 포스코의 지원 내용 등은 2012년 부산 남구 대연동에 세워지는 ‘일제 강제동원 역사기념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탐사단장을 맡은 지원위원회 이재철 기획총괄과장은 “앞으로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후손들의 일본 희생유적지 방문을 매년 정례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이타마=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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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석]한국외대 몽골어과 학과장 어트겅체첵 담딘슈렌 교수

    《3일 발표된 한국외국어대 교원 인사가 대학가에 화제가 됐다. 이날 한국외국어대 학과장에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교수가 임명됐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 외국인 교수가 30대 초반의 여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사혁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6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학과사무실에서 만난 몽골 출신의 첫 외국인 학과장 어트겅체첵 담딘슈렌 교수(33·여)는 주위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덤덤했다. 그는 “한국을 아는 몽골 사람은 많지만 몽골을 잘 아는 한국인은 드물다”며 “이제 한국의 ‘몽골전문가’를 길러낸다는 사명감으로 더욱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말했다.》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는 2009년 첫 신입생 20명이 입학한 이후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교과서를 직접 만들고 학과 교육과정을 혼자서 짜온 30대 여교수는 학생들에게 체계적인 몽골어학과 몽골문학을 가르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내 몽골 연구의 틀을 새로 짜겠다는 담딘슈렌 교수의 청사진을 들어봤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한국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어 한국 학생들의 문법이 틀리면 바로잡아주기까지 한다. 담딘슈렌 교수는 몽골의 ‘외국어대’ 격인 몽골인문대에서 정교수로 근무했다 대학내 외국인 출신 첫 학과장 임명 ―이제 ‘유명 교수’가 됐다. 안정된 몽골의 교수직을 버리고 한국의 신설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유는…. “한국이 너무 좋아서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2003년 한국 정부의 초청장학생으로 한국에 들어와 2008년 서울대에서 한국어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5년 동안 한국에 체류할 때도 외국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어떤 계층, 어떤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도 ‘몽골에서 왔다’고 하면 ‘형제의 나라’, ‘같은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몽골로 돌아간 2008년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 교수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한국어를 전공하면서 한국을 사랑하게 됐고 지금은 한국의 팬이 됐다.” ―몽골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데 어느 정도인가. “몽골에서 한국은 낯선 나라가 아니다.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한류 열풍’이 몽골에도 퍼졌다. ‘겨울연가’의 배용준 씨나 최지우 씨는 몽골에서도 유명한 스타다. 문화적 친밀감은 언어 열풍으로 이어졌다. 3년 전 몽골국립방송이 대학생,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장 배우고 싶은 언어 1위가 영어, 2위가 한국어였다. 몽골의 주요 대학에는 한국어학과가 모두 개설돼 있다. 몽골 입장에서 주변국 중 중국이나 일본과는 껄끄러운 과거사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한국은 ‘형제’라는 생각에 친밀감이 더해져 한국어 학습 열풍이 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한국서 장학금 받고 공부해 보답할 차례 몽골도 한국을 ‘형제’로 친밀하게 여겨 한류와 달리 한국어 인기는 계속될 것” ―아시아에서 한때 떠들썩했던 ‘한류’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몽골은 어떤가. “한류 현상이 일시적일지 지속적일지는 개인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몽골에서 한국어의 경우 ‘학술적 언어’라기보다 사회적 필요성 때문에 더욱 널리 퍼졌다. 그래서 생명력도 더 길 것이다. 몽골은 전체 인구가 300만 명도 되지 않지만 그중 4만 명이 한국에 있다. 한국인들도 몽골에서 사업을 계속 벌이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에서 한국어를 세계화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몽골과 같은 국가를 잘 공략해야 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한국을 잘 아는 몽골인은 많은데 몽골을 잘 아는 한국인이 드물다는 것이다. 문화는 서로 흘러야 한다. 일방적으로 흐르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한국인들은 몽골인을 어떻게 본다고 생각하나. “몽골 사람들을 많이 접해본 한국인들은 ‘몽골인과 한국인이 서로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몽골인은 비교적 성격이 급해서 때로는 화를 잘 내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이 통하면 모든 것을 다 주는 사람들이라고 평하더라. 아직 유목민의 문화가 남아 있어 순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최근 한국에서는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늘고 있다. 캄보디아나 베트남 등에서는 한국 국제결혼 때문에 사회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몽골에서는 그런 일이 없는지. “몽골은 인구 증가를 가장 중요한 국가정책으로 삼고 있는 나라다. 아무래도 몽골에서 여성들이 아이를 많이 낳고 인구를 늘려주기를 바라는데 외부로 빠져나가면 좋지 않게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적을 버리는 등 고생하면서 한국으로 왔는데 성공적인 가정을 이루는 경우가 많지 않아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다. 결혼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데 지금의 국제결혼은 그렇지 않다. 또 몽골인과 한국인이 외모는 비슷해도 문화 차이는 크다. 같은 언어를 써도 싸우는 것이 부부인데 그런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몽골 출신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이 클 것이다. 앞으로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어떻게 정착하고 사는지도 양국 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교류 및 봉사사업을 계획하고 있는지.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가 안정된 후에 학생들과 함께 몽골계 다문화가정을 방문해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몽골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몽골계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한국어와 한국문화, 몽골어와 몽골문화 모두에 소홀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 학생들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 이 같은 자원봉사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국이 몽골어나 몽골문화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하고 있나. “아직 연구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 양국이 수교한 지도 20년밖에 되지 않았다. 서로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 우리 학과도 신설 학과다 보니 개인적으로 연구를 많이 못하더라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배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몽골어과에 입학한 학생들을 보면 대학입학 성적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온 학생은 거의 없다. 몽골어가 한국에서 새로운 언어이고 미래가 있다는 생각으로 들어온 학생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 몽골학을 정립하는 일 등은 우리 학과 학생들과 내가 함께 진행해야 할 일이다. 한국 내 몽골전문가를 길러내고 싶다.” ―신설 학과를 맡아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다.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는지. “교과서가 없었던 점이 가장 힘들었다. 한국인을 위한 몽골어 교과서는 시중에 몇 가지가 나와 있지만 대부분 일반 학습자를 위한 것이라 전공자를 위한 체계적인 교과서가 없었다. 몽골어 사전 역시 몽골국립대에서 만든 것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환자별로 다르게 처방을 해 주듯 언어라는 것은 배우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가르치는 방식도 달라진다. 전공자를 위한 새로운 교과서와 교과과정을 만드는 것이 힘들었다. 또 젊은 나이에 학과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솔직히 부담도 됐지만 지금은 우리 과를 잘 운영하는 것이 학교나 학생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생 때 5년, 교수가 되어 2년, 총 7년을 한국에서 살았다. 어떤 점이 힘들었나. “솔직히 사비로 유학생활을 했다면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한국 정부의 장학금으로 공부를 할 수 있어 아직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을 위해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다. 정부 초청장학생의 경우 학기 등록금은 물론이고 생활비까지 보조해 준다. 큰 어려움 없이 한국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게 해준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에 감사하고 있다. 이런 고마움을 한국의 대학에서 일하며 보답하고 싶다. ―한국외국어대의 첫 몽골어과 학과장이자 첫 외국인 학과장으로서의 포부는…. “한국과 몽골의 협력 관계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전문가는 없다.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를 한국 내 몽골 연구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가르쳤던 학생 모두가 취직도 잘되고 공부도 많이 해 ‘몽골어과에 오길 잘했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다. 더 높은 목표는 ‘전문가들의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과 몽골을 위해 일할 외교관, 사업가, 교수 등을 배출해 보람을 느끼고 싶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강의에 늦게가면 일일이 전화… 방학숙제도 한아름 내주세요”▼■ 학생들이 본 담딘슈렌 교수 “‘어트겅 교수님’은 꼭 고교 선생님처럼 숙제를 많이 내주세요.” 6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캠퍼스. 지난해 처음으로 개설된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 1, 2학년 학생들을 만나 어트겅체첵 담딘슈렌 교수에 대해 들어봤다. 이날 만난 몽골어과 학생들은 담딘슈렌 교수를 ‘어트겅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1년 가까이 겪어본 담딘슈렌 교수가 마치 ‘열정적인 고교 선생님’ 같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이 평소 접할 기회가 없는 몽골어를 가르치기 위해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숙제 등을 워낙 많이 내줬기 때문. 아예 문장 자체를 통째로 외우도록 해 처음에는 학생들이 곤욕을 치렀다. 심지어 1학년 학생들에게는 올여름에 50쪽가량의 문제집을 풀어오라는 방학숙제까지 내줬다. 2학기 개강을 하면 반드시 숙제검사를 하겠다는 엄명도 있었다. 전체 재학생이 1, 2학년을 합해 40명밖에 안 돼 담딘슈렌 교수는 수업시간에 늦는 학생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 정도로 열정적이다. 학생들은 담딘슈렌 교수가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거나 결석이 잦은 학생들을 학과장실로 따로 불러 보충수업을 해줄 정도라고 귀띔했다. 2학년인 과회장 이유나 씨(19·여)는 “교수님은 어떻게든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게끔 만드신다”며 “학생들에게 애정이 많다보니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 학생들은 담딘슈렌 교수에게 한 학기에 서너 과목의 수업을 듣는다. 1학년 정호진 씨(21)는 “매일 교수님께 수업을 듣다보니 학생 개인별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며 “워낙 노력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발음 교정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바로잡아준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담딘슈렌 교수가 사명감을 갖고 몽골과 한국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군 제대 후 몽골어과에 올해 입학한 박선우 씨(23)는 “교수님의 제안으로 서울 중구 광희동 ‘몽골타운’에도 함께 다녀온 적이 있다”며 “한국에 있는 몽골 학생도 많이 소개해주셔서 같이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어트겅체첵 담딘슈렌 교수::―1977년 몽골 출생(33세)―1999년 몽골국립대 국제관계 대학 한국어학과 졸업―2001년 몽골인문대 외국어대학 한국어교육학 석사―2003∼2008년 한국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으로 유학―2007∼2008년 서울대 중앙다문화교육센터 객원연구원―2008년 서울대 사범대학 한국어교육학 박사―2008년 몽골인문대 아시아 언어문화학부 한국학과 교수―2009년∼현재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 부교수}

    • 201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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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탤런트 김현주씨, 부친상 조의금 전액 국제구호단체 기부

    탤런트 김현주 씨(32·여·사진)가 지난달 7일 부친상(喪) 당시 받았던 조의금 전액을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에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굿네이버스는 “김 씨가 지난달 7일 부친상을 당한 이후 조의금 전액을 굿네이버스에 보내왔다”며 “이 돈은 김 씨의 요청에 따라 방글라데시 다카 빈민촌의 도서관 건립 자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5월부터 굿네이버스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김 씨는 부친상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지난달 22일 ‘지구촌 희망편지쓰기’ 시상식에 참여했다. 이후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방글라데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김 씨가 절친한 사이였던 탤런트 박용하 씨 사망 이후 부친상까지 당했지만 이전부터 아이들과 했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며 방글라데시 자원봉사를 떠났다”며 “현장에서 조의금까지 기부하는 등 희망을 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201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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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파일]보수단체, 유엔에 ‘천안함 서한’ 반박 의견서

    한국자유총연맹 등 5개 시민단체는 참여연대가 유엔에 보낸 천안함 의혹 관련 서한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프랑크 라 뤼 유엔안보리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등에게 발송했다고 8일 밝혔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참여연대가 유엔안보리 회원국에 한국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에 대한 문제제기 서한을 보낸 것은 표현의 자유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이들은 한국의 외교노력을 방해하기 위해 서한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또 “참여연대 보고서는 매우 주관적이며 한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일원으로 지켜야 할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1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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