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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고려문화인협의회(대표 최석)가 사단법인 이병주기념사업회(공동대표 김윤식 정구영)가 주최하는 제4회 이병주국제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1000만 원. 시상식은 30일 오후 5시 반 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병주문학관에서 열린다.}

“프랑스에선 이제 한국 문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한국에서 문학작품을 직접 골라 완역한 뒤 현지 출판사에 출판 비용까지 주면서 ‘떠맡기는’ 번역 지원이 앞으로도 유효할까요?” 프랑스에서 13년 동안 한국 문학을 번역해 알려온 번역가 임영희 씨는 현재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주연)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이같이 꼬집었다. 국내의 한 출판 에이전시 대표도 “번역원이 그동안 해외 출간 자체에 의미를 둬 실제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임 씨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번역원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22, 23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5회 세계번역가대회를 연다. 임 씨를 비롯한 발표자들의 발표문을 미리 보면 해외 출판계에서 보는 한국 문학, 그리고 번역원에 대한 ‘애정 어린 쓴소리’가 가득하다. 번역원은 지금까지 28개 언어권, 486건의 작품을 번역 지원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 등 해외에서 성과를 거둔 작품들은 대개 민간 에이전시와 해외출판사가 직접 협력해 만든 성과물들이다. 이유가 뭘까.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독일 남서부방송2(SWR2)의 문학담당 기자 카타리나 보르하르트 씨의 말에서 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무조건 ‘가능한 모든 것’을 내놓는 식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런 책들은 도서관과 학자들의 사무실 책장을 장식하겠지만 이를 ‘우연히 읽는’ 독자는 별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번역원은 2001년 한국문학번역금고와 문예진흥원 산하 한국문학 해외소개사업과 통합해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다. 해외에 한국 문학이 생소하던 시절에는 국내 작품을 해외에 출간하는 것 자체로 의미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이문열 씨의 단편 ‘익명의 섬’이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뉴요커’에 실리는 등 한국 문학의 해외 위상이 높아진 지금 번역원의 역할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 해 60억여 원의 예산으로 운영하는 번역원이 한국의 순수 문학을 번역 지원할 필요성은 여전하다. 하지만 지원 장르를 다양화하고, 해외 독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마케팅에도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출판계의 목소리가 높다. “작품의 원작과 번역의 완성도가 아무리 높아도 해외 독자와 서평가의 손에 들려지도록 적극 노력하지 않으면 상업적으로 성공 못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브루스 풀턴 교수가 번역원에 보내는 따끔한 충고다.황인찬 문화부 hic@donga.com}

《비릿한 바닷바람이 제방을 넘어 날아와 코끝을 찔렀다. 짙은 남색 바다 위에 점점이 박힌 하얀 고깃배 위로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쏟아진다. 전남 목포항의 평화로운 한낮 풍경.》 1970, 80년대 문단의 독보적 평론가였던 김현(1942∼1990·사진)은 이곳 부둣가를 뛰어다니며 초·중학교를 보냈고, ‘청년 김현’은 수산시장 옆 목포 오거리의 한 허름한 다방에서 김승옥 최하림과 의기투합해 1962년 동인지 ‘산문시대’를 발행했다. 목포는 김현 문학의 고향이다. 목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남 목포시 용해동의 목포문학관. 고인의 21주기를 맞아 이곳에 그의 업적을 기린 ‘김현관’이 30일 문을 연다. 고인의 전시관이 마련된 것은 처음이다. 개관에 앞서 18일 목포에서 3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허형만 시인(목포대 교수)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목포 오면 너밖에 없다’며 저를 불러내셨던 선생님 모습이 아직 생생합니다. 1980년대 중반 황동규 선생과 함께 내려오셔서는 (목포) 오거리에서 늦도록 소주잔을 주고받고, 서로 껴안고 했지요. 허허.” 허 시인은 고인을 “따뜻한 인품과 치열한 문학정신을 동시에 가졌던 분”이라고 떠올렸다. “그 정도 이름을 날렸으면 오만해지기 쉬운데 선생에게선 전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고 추억했다. ‘김현관’은 178.5m²(54평) 공간에 유품 300여 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연보와 주요 저서 등을 전시한 ‘김현의 밖’, 책상 타자기 친필 메모와 그림 등으로 꾸민 ‘김현의 안’ 2개의 공간으로 구성했다. 고인이 문우들과 함께 만들었던 동인지 ‘산문시대’(1962년)와 ‘68문학’(1968년), 그리고 ‘문학과지성사’의 계간지 1호(1970년) 등이 전시돼 있다. 고인은 한자 또는 식민지 글자가 아닌, 한글로 사유하고 활동한 4·19세대의 선두 주자였다.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김현체’로 따로 불릴 정도로 미려한 문장을 구사한 고인은 비평을 문학의 한 장르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속에는 ‘거장 비평가’의 인간적인 체취가 가득하다. 특히 1974, 75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유학 시절 보낸 편지에서는 문우를 향한 각별한 애정이 엿보인다. ‘병익에게, 대학 강의는 거의 듣지 않고 매일 도서관에 나가서 일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내가 서울에서 너무도 공부하지 않고 놀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가지 사치벽이 생겼다. 돈 안 드는 것으로는 산보고, 돈 드는 것으로는 음악이다./…/ 병익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성실성이지, 기교가 아닌 것이다.’(1974년 11월 10일 김병익에게 보낸 편지) ‘청준에게, 하도 시끌시끌하고 그러니 너에게밖에 편지할 놈이 없다./…/여기서 보니까, 너하고 최인훈만이 고통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열심히 글 쓰거라. 불행의 사진을 그리지 말거라.’(1975년 2월 17일 이청준에게 보낸 편지) 고인은 마흔여덟 이른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떴다. 전시관의 벽면에 새겨진 고인의 글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죽는다.’(1988년 2월 20일 일기) 30일 개관식에는 김병익 김치수 황동규 황지우 정과리 씨 등 선후배 문인 30여 명이 목포를 찾을 예정이다. 두 번 죽기에는 고인을 추억하고 그리는 사람이 아직 너무나 많다.목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황순원(1915∼2000·사진)의 미공개 초기작 67편이 한꺼번에 발굴됐다. 경희대 국문과 김종회 교수는 “황순원의 동요와 시, 단편소설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초기 작품을 최근 대거 찾아냈다”고 20일 밝혔다. 김 교수가 발굴을 완료한 황순원의 작품은 동요와 시 65편, 단편소설 1편, 수필 3편, 서평과 설문 각 1편 등 모두 71편이다. 이에 앞서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열린 황 작가의 10주기 추도식에서 발굴한 작품 4편을 공개했으며, 이번에 미공개 작품 67편을 새롭게 찾아냈다. 새로 발굴된 작품은 황순원의 등단 직후인 1930년대 전반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작가의 문학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6·25전쟁 이후 작품도 일부 포함돼 있다. 김 교수는 “습작기의 초기 작품들은 서정적 감성과 따뜻한 인간애를 잘 보여준다. 서정성과 사실성, 낭만주의와 현실주의를 모두 포괄하는 작가의 문학세계가 어떻게 발아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경기 양평군 서종면 황순원문학촌 문학관 내에 들어설 황순원문학연구센터의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들 작품을 발굴했다. 발굴 작품 71편은 23일부터 황순원문학촌에서 열리는 ‘제8회 황순원문학제’ 문학세미나에서 공개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제11회 미당·황순원문학상 수상자로 19일 시인 이영광 씨(46), 소설가 윤성희 씨(38)가 각각 선정됐다. 수상작은 이 씨의 ‘저녁은 모든 희망을’과 윤 씨의 단편 ‘부메랑’. 상금은 미당문학상 3000만 원, 황순원문학상 5000만 원이다.}

그늘지고 눅눅하다. 토악질이 날 만큼 역겨운 냄새가 지면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듯하다. 이 책은 문명과 사회에서 한 발짝 벗어나 음습한 개인만의 공간과 욕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괴한 분위기로 그린다. 단편 ‘뱀’에서 스물다섯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한 헌책방 여주인은 헌책 속에서 작은 반지를 발견한다. 그 책을 팔았던 남자가 반지를 찾으러 왔지만 남자에게 관심이 있던 여자는 반지를 숨긴다. 하지만 어느 날 여자가 키우던 뱀은 반지를 삼키고, 허물을 벗은 뒤 도망간다. 애타게 반지와 뱀을 찾던 여자는 자신의 성기 속에서 뱀을 찾는다. 반지는 ‘사랑’으로, 뱀은 ‘욕망’으로 변주돼 점점 여자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몸속으로 들어간다. 절망감은 더 깊어진다. 단편 ‘악취’는 문명화된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길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여성은 지독한 악취를 맡는 것을 즐긴다. 고기를 사서 냉장고에 넣지 않고 방치해 그 썩어가는 냄새를 맡을 정도다. “가식적”이라며 현대화된 냄새인 향수를 거부한 여성은 “쉽게 볼 수 없는 폐허 같다”며 악취를 더욱 병적으로 쫓는다. 저자는 성기 속에 뱀이 똬리를 틀거나 집을 시궁창처럼 만들어 악취를 즐기는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기존 사회 질서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시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로테스크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은 소설가 편혜영 씨의 ‘사육장 속으로’를 떠올리게 만든다. 비현실적인 단편들에 비해 중편 ‘바실리 사원’과 ‘살풀이 춤’은 고뇌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끄집어낸다. ‘바실리 사원’은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마이미스트들을 통해 ‘언어가 지워진 자리에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내는’ 마임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살풀이 춤’은 고된 삶 속에서 춤을 완성하는 예술가를 그린다. 단편 다섯 편, 중편 두 편을 묶은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문학평론가 이경재 씨는 “사회라는 거대한 상징적 체계의 틀로 수렴되지 않는 개인의 고유한 충동이나 욕망을 집요하게 추구했다”고 평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문학 초키(존 윈덤 지음·북폴리오)=평범한 소년이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을 만난 뒤 다재다능한 ‘슈퍼 소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유쾌한 터치로 그린 SF 소설. 1만2000원. 금지된 정열(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지음·문학동네)=우루과이 출신인 저자가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 서민들의 빈곤과 좌절,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20여 편의 단편에 실어 전한다. 1만 원. 라스트 차일드(존 하트 지음·랜덤하우스)=지난해 미국 에드거상, 배리상 최우수소설 수상작. 납치된 쌍둥이 여동생을 찾아다니는 열세 살 남자 아이의 시각으로 유괴 사건을 그린 추리물. 1만4800원. ○ 학술 플라톤 서설(에릭 A 해블록 지음·글항아리)=대화로 소통하던 문화에서 읽고 쓰기를 중심으로 하는 문자 문화로 바뀌는 고대 그리스의 미디어 변화가 플라톤의 철학에 미친 영향을 살핀다. 2만2000원. 동서양 정치사상사 1(김영두, 지기영 지음·법영사)=동서양 정치사상의 변화를 비교 분석했다. 1959년 출간된 고 김영두 교수의 ‘동서정치사상사’를 제자들이 보완해 새로 펴냈다. 3만 원. 동양론과 식민지 조선문학(정종현 지음·창비)=이태준 이기영 김남천 김내성 최재서 김중한 등 문인들의 활동을 통해 1940년대 문학사를 재조명했다. 3만 원. ○ 인문 교양 중국사 강의(조관희 지음·궁리)=고대 신화에서부터 신해혁명까지 중국사를 개괄한 책. 중국 역사의 단순한 소개를 넘어 개별 사건이 가진 현재적 의미를 짚어냈다. 2만5000원. 시나리오 이렇게 쓰지 마라!(윌리엄 에이커스 지음·서해문집)=훌륭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100가지를 정리했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 이름을 비슷하게 해서는 안 된다. 1만8000원. 12종 문학 교과서 작품 풀어 읽기 시리즈(김태철 외 지음·해냄)=전국 28명의 국어 교사가 새로운 교육과정의 12종 문학 교과서에서 꼭 읽어야 할 작품들을 선별해 정리했다. 총 7권 8만2000원(각 권 1만1000∼1만3000원). 학교 혁신, 정답입니다(최영란 지음·이매진)=새내기 교사들의 좌충우돌 학교 보고서. 다양하면서도 솔직한 현장 이야기를 통해 학교를 학교답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한다. 1만3800원. 절, 그 속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우리 문화재들(박종두 지음·생각나눔)=국내 사찰과 그 안의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설명한 책. 절에서 문화재를 볼 때 그 의미를 몰라 답답했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1만5000원.○ 실용 기타 아프간 블루스(홍윤오 지음·큰곰)=한국 언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전쟁 후 아프간의 모습을 특종 보도한 저자의 회고록. 아프간 진입에 성공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현지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담았다. 1만2000원. 주니어 로스쿨(이재만 지음·동아일보사)=법조인을 꿈꾸는 어린이 및 청소년에게 법적 사고력을 키워주기 위해 기획한 책. 생활 속 법적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어른이 보기에도 손색없다. 1만3000원. 관능의 맛, 파리(민혜련 지음·21세기북스)=문화와 역사, 인생이 담긴 파리 미식 여행기. 각종 음식에 얽힌 사연을 정리했다. ‘혀끝의 축복’이라 불리는 프랑스 요리를 눈으로만 맛봐야 하는 점이 아쉽다. 1만5000원. 대한민국 대표 여행지 1000(유연태 외 지음·넥서스북스)=당일치기 여행부터 전국일주까지 국내 여행정보를 총정리했다. 지역별로 구분한 후 테마별로 정리해 여행 목적에 따라 쉽게 여행지를 고를 수 있도록 한다. 3만5000원. 위기관리 10계명(전성철 지음·웅진윙스)=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돌발적 상황에서 회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정리한 책. 올 초 발생한 농협 전산망 마비 등 국내 사례를 다양하게 수록했다. 1만5000원.}

바로크 미술은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과장된 양태를 보인다. ‘기괴함(grotesque)’이란 용어가 대명사가 될 정도로 고전적인 예술에 어긋나는 이질적인 미술로 취급됐다. 이런 과장되고 과장된 미술 사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16세기 종교개혁 후 가톨릭교회가 반종교개혁운동을 단행해 내부적인 반성에 들어갔고, 미술을 통한 ‘감동’으로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바로크 미술이 탄생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종교적이고 관념적 억압에서 탈출한 자유분방함의 분출이 바로크 미술을 이끌었다는 것. 서울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낸 저자는 바로크의 등장과 발전을 건축, 회화, 조각을 중심으로 문학, 연극, 음악까지 확장시켜 풀어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998년 3월 2일 오스트리아에서 열 살 소녀가 등굣길에 납치됐다.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지만 소녀의 행방은 오리무중. 시간이 흘러 실종 사건이 잊혀질 무렵인 2006년 8월 23일. 앙상한 몰골의 한 여성이 한 시골집 창문을 두들기며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경찰이 출동했고, 여성은 말한다. “제가 8년 전 실종됐던 바로 그 소녀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소설 같지만 이것은 엄연한 실화다. 2006년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했던 희대의 유괴 사건. 그 피해자가 털어놓은 사건의 전말을 담았다. 열 살 때 납치됐던 소녀는 8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3096일. 소녀가 유괴된 날부터 자유를 되찾기까지 걸린 악몽 같던 시간이다. 납치는 한순간이었다. 소녀가 길가에 주차된 하얀 배달차 옆을 지나던 순간 범인은 소녀의 허리를 감싸고 번쩍 들어올려 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마치 짐을 옮기듯이,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소리를 질렀는지, 반항을 했는지도 제대로 기억 못할 정도로 소녀는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였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컴컴한 지하실 안이었다. 5평(16.52m²) 남짓한 어둡고 습한 공간. ‘지하 감옥’은 한바퀴 도는 데 딱 스무 발짝이 걸릴 정도로 좁았다. “지하금고에 산 채로 매장당한 기분”이었다는 소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소녀는 일단 하룻밤을 침착하게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3096번의 밤을 이 방에 갇힌 채 보내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때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놓는다. 30대 중반의 독신 남성인 범인은 소녀가 실수를 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음식량을 줄이거나 전기를 끊거나 라디오, 비디오 등 여가용품의 사용을 제한하며 그를 학대한다. 이 에세이는 끔찍한 유괴사건의 경과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극한의 상황에 놓인 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생생하게 드러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범인은 소녀가 자라자 대범하게 함께 외출까지 했고, 소녀는 여러 번 탈출 기회를 잡았지만 심리적 공포감 때문에 스스로 주저앉아 독자를 안타깝게 만든다. 또한 범인에게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인간이기에 때론 그에게 의지했다는 점에서 사회생활이 단절된 인간이 느끼는 극심한 외로움을 읽을 수 있다. 탈출 후 저자는 자유를 얻었지만 “새로운 감옥에 다시 빠져든 것 같다”고 느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대중과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희대의 유괴 사건 희생자’에 대한 의혹과 질시의 시선도 많았다는 것. “피해자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기만”이라고까지 말하는 저자는 여전히 피해자로 남아있는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는 현상)’으로 자신을 쉽게 규정하는 대중에 대한 반박도 곱씹을 만하다. “범인을 어두운 면뿐 아니라 밝은 면도 가진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 또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월간지 ‘샘터’가 10월호로 지령 500호를 맞았다. 1970년 4월 창간호를 낸 지 41년 만으로, 일반 교양 월간지로는 국내 최장수 기록이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88·샘터 고문)이 샘터를 창간하며 내세운 키워드는 ‘행복’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란 캐치프레이즈 아래 ‘샘터’는 40년 넘게 이웃들의 작지만 따뜻하고 가슴 찡한 사연들을 소개하며 일상 속 행복의 의미를 재조명해 폭넓은 공감을 얻어왔다. ‘샘터’의 지면을 장식했던 우리 시대 대표적인 문사들의 글도 큰 관심을 끌었다. 소설가 최인호 씨의 연작소설 ‘가족’은 1975년부터 2009년까지 35년간 연재돼 국내 잡지 사상 가장 긴 연재물이 됐다. 수필가였던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도 ‘샘터’에 연재했던 칼럼을 ‘내 생애 단 한 번’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등 두 권의 책으로 묶어 큰 호응을 얻었다. 법정 스님은 생전 ‘고산순례’ ‘산방한담’ 등을 연재하며 대중과 만났고, 이해인 수녀도 ‘두레박’ ‘꽃삽’ 등 다양한 칼럼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일깨웠다. 샘터의 편집장과 주간을 지낸 동화작가 고 정채봉 씨도 생전 ‘생각하는 동화’ ‘이솝의 생각’ 등 연재물로 독자와 만났다. 500호 특집에는 ‘행복을 주는 사람’이란 주제로 이해인 수녀, ‘시골의사’ 박경철 씨, 박재동 화백, 성우 배한성 씨의 ‘행복론’을 실었다. ‘인생 2막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한 강지원 변호사, 김영란 전 대법관 부부의 인터뷰에서는 은퇴 후 시작하는 나눔의 삶에 대해 전한다. 김 전 국회의장의 아들인 김성구 샘터 발행인은 “세상의 물이 되고자, 샘물이 되고자 시작했던 샘터가 어느새 지령 500호를 맞아 감개무량하다. 앞으로 더 진하고 맑은 감동의 샘물을 건져 올리겠다”고 500호를 맞은 소감을 밝혔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청소년소설’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선입견을 버려도 좋다. 물론 중학생들이 나오고 학교와 집이 주요 배경이다.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 등 청소년소설의 단골 주제도 등장한다. 하지만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은 정확히 말하면 ‘청소년의 눈으로 본 비판적 세상읽기’로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상당히 우화적이며 비유적이다. 바닷가의 한 지방 도시에 사는 여중생인 ‘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우스웠다. 왜냐하면 서울을 흉내 내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울 자동차에서 차를 사고 서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안경은 서울 안경원에서 사고 여행은 서울 여행사를 통해서 갔다. 우스워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서울로 갔다.” 중학교 같은 반 학생인 ‘나’와 ‘b’는 아이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 ‘나’는 먼저 당했고, ‘b’는 ‘나’가 학교를 나오지 않자 ‘대체재’가 된다. 불치병에 걸린 동생 때문에 집안이 어려워진 ‘b’는 이렇게 처지를 비관한다. “나한테 십억만 있으면 동생은 안 죽고 엄마는 공장에 안 나가고 나는 의사가 될 수 있는데, 하지만 나에겐 천 원밖에 없으니까 동생은 죽을 거고 엄마는 계속 공장에 나갈 거고 앞으로 나는 쓰레기가 되어야지.” 학교에서 노는 아이들에게서 폭력과 성추행을 당해 상처 입은 ‘나’와 ‘b’는 하루 종일 책만 읽는 정체불명의 남자 ‘책’을 만나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나b책’의 대안공간은 그렇게 완성되지만 그 안온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2005년 ‘영이’로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는 ‘미나’ ‘풀이 눕는다’ 등을 통해 10대들의 그늘지고 불투명한 삶을 꾸준히 조명해왔다.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어 내뱉는 단문들로 표현한 폭력의 현장들은 그 무미건조한 문체 때문에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다만 개성 강한 문체로 독특한 시공간을 창출해낸 것에 비해 결말은 너무 ‘정석적’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창턱에 앉아 ‘문 리버’를 부르거나 티파니 보석상점 앞에서 무심하게 페이스트리를 먹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세기의 연인’의 탄생을 목도했다. 하지만 실제 헵번이 맡았던 역할은 원작 소설에선 ‘콜걸’이었다. 특히 영화가 나왔던 1950년대 미국 사회는 영화 속 헵번처럼 혼자 사는 여성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저자는 헵번이 이 영화를 통해 최초의 ‘모던 싱글 걸’ 캐릭터를 완성했다고 말한다. 헵번의 앙증맞은 마스크와 제스처, 그리고 고급스러운 패션이 싱글녀를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것. 원래는 헵번보다 메릴린 먼로의 캐스팅 가능성이 높았다는 등 영화 뒷얘기도 전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990년대 학번은 ‘낀 세대’다. 불같이 타오르던 1980년대의 집단적 문화에도 온전히 끼지 못하고,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불어온 개인주의 문화에도 속하지 못한 세대. ‘세시봉’을 찾으면 왠지 늙다리 같고,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리면 철없어 보이는 게 이들이다. 작가는 90년대 학번의 사랑과 추억을 재생하기 위해 1993년 이상은이 발표한 ‘언젠가는’을 택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작품의 전체적인 정서는 이 노래로 함축된다. 최루탄 냄새가 가시지 않은 캠퍼스가 배경이지만 혼란했던 사회상은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는 역할에 그친다. ‘그때 내 나이 스무 살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랑뿐이었지’라고 서두에서 밑밥을 깐 대로 소설은 90년대 초반 학번들의 ‘사랑법’을 충실히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나(차현)’는 90학번 신입생으로 대학에 들어와 3학년 여학생 선배 미림에게 빠지며 몰래 데이트를 하지만 미림은 늠름한 3학년 학군장교(ROTC)에게로 떠난다. 나는 얼굴도 성격도 그냥 그렇지만 나에게 잘해주는(혹은 나에게 만만한) 동기생 은희에게 끌려 캠퍼스 커플이 된다. 사실 스토리 라인은 평범하고 때론 진부하다. 차현이 실연의 상실감에 은희와 술에 취해 뽀뽀하고, 그러다 보니 친해지고, 섹스를 하고 싶은데 ‘은희랑 자고 싶은 건지, 그냥 여자랑 그러고 싶은 건지’ 고민하는 등의 그저 그런 연애 얘기들. 그러나 이런 평범한 연애사가 90년대 사회 문화적 배경과 맞물리면서 되살아나니 새롭다 못해 ‘낯설게’ 변화한다. 이들은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장군의 아들’ 등을 보려고 ‘4회 1관’의 스탬프가 찍힌 초록색 표를 끊어 극장에 들어선다. 길거리 리어카의 복제 테이프에서는 신해철이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라며 목청을 높인다. 강의를 땡땡이 치고 훌쩍 경춘선에 올라 기차 맨 끄트머리에서 분위기를 잡는 등 90년대 연애방식이 일기장을 펼치듯 넘어간다. 지금은 모두 낯설어진 풍경이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이다. 장난같이 시작한 사랑은 ‘나’가 군대에 가고 은희가 졸업을 하며 한풀 식는다. 이들은 그렇게 순수했던, 온전히 사랑만 바라봤던 순도 100%의 사랑이 인생에 다시 찾아오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읊조린다. “사랑이란 이러한 것임을. 한때 특별했던 무엇이 어느 순간부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 않게 변해가는 과정의 일부임을.”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옛날 신문과 노래들을 들춰보며 정작 그 시절에는 미처 모르거나 무심코 스쳐 갔던 것들을 새롭게 만났다고 했다. 어느새 30, 40대가 된 90년대 학번들에게 이 작품은 20대 때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추억의 거울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재일교포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 씨(43)가 2003년 출간한 장편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일본과 한국에서 나란히 영화화됐다. 배우 이준기가 출연한 영화로 국내에 알려진 이 작품은 사실 작가의 ‘더 좀비스 시리즈’ 두 번째 편이다. 가네시로 씨는 이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인 ‘레벌루션 No.3’로 1998년 등단했다. 2000년 재일교포의 차별을 다룬 ‘GO’로 나오키상을 받으며 한일 양국에서 주목받았다.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작가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레벌루션 NO.3’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 이어 2005년 ‘더 좀비스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인 ‘스피드’를 냈고 최근 시리즈의 최종편인 ‘레벌루션 No.0’를 출간하며 13년간 이어진 ‘더 좀비스 시리즈’에 마침표를 찍었다. ‘공부는 꼴등이지만 우정만은 일등’인 남자 고교생들의 일탈과 반항, 희망 찾기를 간결하고 유쾌한 터치로 그린 이 시리즈는 국내에서 50만 부 넘게 판매됐다. 10년 넘게 이어진 시리즈를 마친 작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얼굴을 밝히지 않는 ‘신비주의 작가’ 중 하나로 알려진 가네시로 씨는 “독자가 갖고 있는 작품 이미지를 깨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의 사진을 싣지 말아달라고 했다. “10대는 ‘자유롭지 못하다’라는 특권을 향유할 수 있는 세대입니다. 학교나 교사, 부모라는 규율과 속박, 그리고 스트레스 속에서 발버둥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뛰어넘었을 때의 쾌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가져옵니다. 그 카타르시스가, 10년 넘게 지탱해온 제 이야기의 원동력입니다.” 가네시로 씨는 처음에는 시리즈를 생각하지 않았지만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 때문에 속편을 썼다고 한다. 20대 후반에 이 시리즈의 집필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도 40대 초반의 중견작가가 됐다. “처음에는 등장인물이 바로 나 자신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는데, 언젠가부터 등장인물을 아들 또래로 보게 되더군요.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이 시리즈는 흔히 보는 일본 성장소설과 다르다. 재일교포로서 자신이 받은 차별을 자전적 소설인 ‘GO’에서 풀어낸 것처럼 작가는 총련계 출신 박순신, 혼혈아인 아기날드를 통해 일본 사회의 마이너리티 인생을 끄집어낸다. 이들은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에 정면 대응한다. 최종편 ‘레벌루션 No.0’에서도 학교의 이익을 위해 학생들의 자퇴를 유도하는 교사들과 싸우는 기백이 여전하다. 작가는 10, 20대 독자들에게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상처입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여러 도전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더 좀비스 시리즈’는 끝나지만 시리즈에 등장했던 억세게 운 없는 고교생인 미나가타가 대학생이 돼 경험하는 일들로 새 시리즈를 선보일 계획이다. 첫 번째 책은 여대생 실종사건을 다룬다. “대학생 미나가타는 보다 더 심각한 ‘어른들의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제는 세상에 내재된 깊은 어둠에 발을 들여놓아서 상처를 입으면서도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 줄의 반짝이는 문장에 마음 설레는 사색의 계절. 지난달 발표된 시와 시집 가운데 문인들의 추천을 받아 매달 한 편의 시를 소개하는 ‘이달에 만나는 시’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달에는 손택수, 이건청, 이원, 장석주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한낮 태양의 열기는 한풀 꺾였고 아침저녁으로 부는 삽상한 바람은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린다. 고즈넉한 가을밤, 문득 발견한 마늘꿀절임 한 통. 형(形)과 질(質)이 사라진 채 마늘이 꿀이고, 꿀이 마늘이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우연히 유리병을 발견했고 뚜껑을 여는 순간 목이 메었죠. 한참을 멍하니 있었지요.” 보통 사람이면 변질된 마늘꿀절임을 쓰레기통에 넣었겠지만 시인은 곁에 두고 지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나 생각이 혼란스러울 때 한 숟가락씩 떠서 입에 넣었다. 곰곰이 그 맛을 느끼며 불교의 연기(緣起)를 떠올렸고, 세상 모든 것의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시인은 그 사유를 시에 담았다. 마늘꿀절임이 담겼던 유리병은 비었지만 시는 풍성해졌다. “일상을 살면서 시적 정황은 수도 없이 많지만 마늘꿀절임 같은 시적 순간은 쉰 번에 한 번 맞기도 어렵다”고 조용미 시인은 말한다. 4년 전 가을밤의 마늘꿀절임은 사라졌지만 시인은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 머물며 새로운 시적 순간을 만나려 노력하고 있다. “밤이면 풀벌레 소리가 들려요. 3년 전 가을도 여기서 보냈는데, 이곳의 가을이 참 마음에 드네요.” 시 ‘가을밤’은 지난달 출간된 시집 ‘기억의 행성’(문학과지성사)에 수록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1990년에 등단한 조 시인은 주변에서 흔히 스치고 지나가는 색깔과 소리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사유를 확장해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서정시를 선보이고 있다. 손택수 시인은 추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마늘과 꿀의 경계가 무너진 이 시간은 화학반응을 일으켜 내 안에 새로운 대상을 탄생케 하는데, 사랑은 가을밤을 전혀 다른 감각으로 경험케 한다.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 잔잔히 일렁이는 그 깊은 방에 잠시 앉아 있고 싶다. 가을에 잎을 떠나는 물소리 곁에서 중얼거리고 싶은 시다.” 이원 시인은 서늘한 서정시의 매력에 대해 언급했다. “서정시라고 하면 대개 따뜻한 서정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조용미의 시는 서늘한 서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흔치 않은 시적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장석주 시인은 “조용미 시인은 이미 ‘1급 시인’”이라고 짧게 평했다. 이건청 시인은 한영옥 시인의 시집 ‘다시 하얗게’, 이창수 시인의 ‘귓속에서 운다’를 추천했다. 한 시인에 대해서는 “일상적 세계와 사물을 보는 안목이 섬세하고 세밀하다”고, 이 시인에 대해서는 “시어에 대한 절제의 미학이 탁월하다”고 평했다. 조 시인은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보낸 시작(詩作) 메모에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 좋다는 마늘꿀절임을 담가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유리병을 발견하고 보니 담근 날짜와 그날로부터 두 달 후에 먹어야 한다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두 해가 훌쩍 지나 있었다. 마늘과 꿀은 스미고 스며들어 서로 까맣게 변해 있었다”라고 적었다. “그걸 들여다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던가. 시적 순간이란 문득 그렇게 찾아온다. 목이 메고, 마음이 사무치는 소소한 깨달음과 슬픔의 순간에.”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6일 제25회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의 탄생 120주년이 되는 올해는 교육, 산업기술, 인문사회문학, 자연과학, 공공봉사 등 5개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학교와 인사들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 4명씩이 참여해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 두 달 동안 진행됐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 ■ 교육 부문-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극심한 학벌주의 분위기 속에서도 직업인 양성이라는 교육목표를 꿋꿋이 지켜온 점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여성 직업교육의 산실로 꼽히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한상국 교장(75)은 85년간 ‘국내 최고 상업고’라는 명성을 유지한 비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서울여상은 가정형편 탓에 대학에 가지 못한 여성 수재들이 지원하는 명문고였다. 1970년대에는 전교 1∼2등, 1980년대에는 반에서 1∼2등 아니면 지원조차 불가능했다. 1990년대 이후로는 특목고는 물론이고 일반계고에 밀리면서 주춤했지만 2005년 금융 및 국제통상 분야를 특성화하면서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 최근 은행권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이 확대되고 정부도 학벌주의 철폐에 나서면서 서울여상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서울여상은 산업계의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도 전통과 역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 교장은 “많은 상고와 공고가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미디어고 인터넷고 정보고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전문계고가 ‘학벌주의’라는 시류에 휘둘려 본연의 설립 취지를 잃고 진학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할 때도 서울여상은 흔들리지 않고 실무 중심 교육을 강화했다. 전문계고 졸업생의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도 서울여상 졸업생의 70%가 취업을 선택하는 이유다. 이런 노력 덕에 서울여상은 100%에 육박하는 취업률로 국내 특성화고 중 부동의 1위를 지켰다. 지난해에는 취업 희망자 175명 중 172명이 대기업 등에 입사했다. 서울여상은 교육부로부터 2006년 금융교육 우수학교, 2009년 우수 특성화전문계고로 선정되는 등 우수학교 표창을 18차례 받았다. 또 산업자원부와 노동부의 지원사업 대상 학교로 15차례 선정됐다. 현재 1000명의 졸업생이 금융권에서 근무하는 중이다. 시중은행 여성 지점장 300명 가운데 108명이 이 학교 출신. 라근주 교감은 “금융계와 산업계에서 서울여상 출신은 능력과 인성을 갖춘 인재로 꼽힌다. 앞으로도 같은 평가를 듣도록 잘 가르치겠다”고 말했다.이경희 기자 sorimoa@donga.com ▼ 공적 ▼1926년 ‘경성여자상업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여성 실업계고등학교. 올해로 개교 85주년을 맞았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공부하는 인재를 배출한 여성 인재의 산실로, 특히 금융권에서 활약이 두드러진다. 현재 시중은행 여성 지점장 300명 중 108명(36%)이 서울여상 출신이다. 2005년 금융, 국제통상, e비즈니스 3개 분야를 특화했으며 가상은행창구 학습 등 실무 위주의 교육과정을 강화해 특성화고 성공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에서 18차례 표창을 받았고 노동부 등에서 사업비를 지원받고 있다. ■ 산업기술 부문- 정범식 씨 (호남석유화학 대표이사)“무척 영광스럽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쑥스럽기도 합니다. 석유화학이라는 게 워낙 거대한 사업이라 선후배들이 다 같이 한 일이니까요.” 정범식 호남석유화학 사장(63·사진)은 인촌상 수상의 공을 다른 이들에게 돌리며 “업계에 제일 오래 있었던 내가 대표로 상을 받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웃었다. 정 사장이 화학공학을 전공으로 택했던 1960년대 후반에는 석유화학이 지금의 반도체나 나노기술을 능가하는 첨단산업이었다. 그는 “당시 한 신문이 서울 명동을 걷고 있는 한 여성의 사진을 싣고 ‘석유화학이 갑자기 사라지면 (화학섬유로 만든 옷이 사라져) 부끄러운 모습이 될 것’이라며 석유화학의 중요성을 연재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정 사장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쓰이는 석유화학은 이론적으로는 단백질 합성을 통한 식량 생산도 가능할 만큼 아직도 중요한 산업이다”라고 강조했다. 40년간 석유화학 한 우물을 판 정 사장은 변변한 기술이 없던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우는 데 기여했다. 그는 “1970년대에는 해외에 엄청난 로열티를 주고 공장 운영 기술을 배워야 할 지경이었지만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힘입어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시설을 대형화해 우리 기술을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정 사장이 화학공장설계기술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할 만큼 이론과 현장에 모두 밝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에는 석유화학 분야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스트레스가 쌓일 겨를이 없다는 정 사장은 본격적인 글로벌 전략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 타이탄사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우즈베키스탄에 석유화학단지를 만들고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으로 수출 길을 넓혀 호남석유화학을 2018년 연매출 40조 원, 세계 10위의 석유화학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그는 “정밀화학과 첨단소재 투자를 늘려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고, 에너지 저장과 같은 신사업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덧붙였다.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공적 ▼1971년 한국종합화학에 입사해 석유화학 분야에 투신한 이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을 정상궤도에 올리는 데 기여했다.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의 국산화 개발을 이끌어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이 3대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정통 엔지니어이지만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해 호남석유화학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3년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된 이후 대산공장 증설, 말레이시아 타이탄사 인수 등에 성공했고, 고용 창출과 노사문화 선진화에도 앞장섰다. ■ 인문사회문학 부문- 김주영 씨 (소설가)“수상 소식을 듣고 상당히 긴장했습니다. 제가 받기에는 과분한 상이구나 싶었고, 제 자세를 많이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일 서울 중구 장충동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난 소설가 김주영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72·사진)은 “인촌기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역대 수상자들을 살펴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황순원, 박두진, 김성한, 박경리, 박재삼, 윤석중, 최일남, 피천득, 김종길 등 역대 수상자 명단을 열거한 뒤 “이분들은 문학의 본령을 추구하고 문학의 위상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일생 동안 애쓰신 분들”이라며 “수상자 면면만 봐도 인촌 선생의 정신과 상의 취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서라벌예대를 졸업한 뒤 1972년 ‘휴면기’로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객주’(1981년) ‘천둥소리’(1986년) ‘화척’(1995년) ‘홍어’(1997년) 등의 작품에서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함께 날카로운 시대 인식을 담아 문학이 갖는 일상적 삶의 진솔함과 가치를 탁월하게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 열정이 식고, 상상력이 감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예요. 젊은 시절에는 방에 엎드려서 하룻밤에 단편 하나를 썼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글자 한 자, 문장 한 줄을 다시 생각하는 느림의 미학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1989년 심신의 피로를 호소하며 절필했던 김 이사장은 1년여 뒤 동아일보에 ‘야정’을 연재하며 문단에 복귀했다. 그는 “당시 고미석 문학담당 기자(현 동아일보 전문기자)가 끈질기게 설득을 하고 부탁을 해서 복귀를 결심했다. 지나간 일이지만 내 문학의 열정에 다시 불을 댕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동아일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문학이 예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점차 그 위상을 다른 장르에 넘겨주는 것 같아 아쉽다”면서 “문학의 고고한 정신, 올곧은 정신을 지켜 나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공적 ▼1972년 등단해 40년 가까이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한국 문단의 거목. 장대한 스케일의 서사적 장편뿐 아니라 가족과 같은 내밀한 인간관계를 섬세하게 조명하는 데도 탁월해 중후한 서사와 깊은 서정을 모두 아우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객주’ ‘활빈도’ ‘화척’ ‘야정’ 등 대하역사소설, ‘홍어’ ‘멸치’ ‘빈집’ 등 가족소설을 냈다. 한국소설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김동리문학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으며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한국문학번역원 이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등으로 재직 중이다. ■ 자연과학 부문- 강현배 씨 (인하대 교수)“인촌상 수상 소식을 듣고 얼떨떨하면서도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껏 공부만 하던 사람에게 이런 큰 상을 준 것은 우리나라 과학계를 위해 앞으로 큰일을 해달라는 주문이라고 생각하니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강현배 인하대 수학과 교수(51·사진)는 ‘역문제(Inverse problem)와 이미징(Imaging)’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다. ‘역문제와 이미징’은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같은 의료장비 분석·개발과 연관된 분야다. 2008년 강 교수가 미국 유타대 그램 밀턴 교수와 함께 풀어냈던 60년간의 미해결 문제인 ‘포여-세괴 예측’과 ‘에셸비 예측’도 모두 종양 진단의 기본 이론인 ‘편극텐서’라는 수학적 개념과 관련된 문제다. 편극텐서는 물체를 나타내는 모양을 숫자로 바꿔놓은 행렬로, 편극텐서를 알면 물체의 모양을 추정할 수 있다. 강 교수의 연구는 종양의 형태를 더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 줌으로써 의료영상 장비의 오차율을 낮추고, 종양의 조기 진단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 교수는 수학자들은 연구실 내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소통이 적다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깨는 대표적인 수학자로 연구만큼이나 과학계 외부 활동도 열심이다. 수학계의 꿈이었던 국제수학자대회(ICM) 한국 유치위원으로 활동해 2014년 대회를 서울로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조직위원회의 집행위원과 학술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 교수는 “1948년 한국수물학회라는 것이 처음 생겨 등록된 수학자가 4명 정도밖에 안 됐던 것을 생각해보면 2014년 ICM 유치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 수학의 수준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가 최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는 의료영상, 광학 등 수학에 기초를 둔 첨단기술이 융합된 분야다. 강 교수는 “수학 연구에 대한 지평이 넓어지고 있는 만큼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연구로 한국 수학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유용하 동아사이언스 기자 edmondy@donga.com ▼ 공적 ▼서울대 수학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졸업한 뒤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교수, 고려대 교수, 서울대 교수를 거쳐 2008년부터 현재까지 인하대 정석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상위로 평가받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을 냈고, 미국 수학회와 독일 ‘스프링거’사를 통해 여러 권의 학술서를 내기도 했다. 2000년에는 대한수학회 ‘논문상’, 2006년에는 대한수학회 ‘학술상’, 2010년 ‘한국과학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우수연구성과 50선’에 선정됐다. ■ 공공봉사 부문- 김성수 씨 (푸르메재단 이사장·‘우리마을’ 촌장)“신부가 된 것도, 대학총장이 된 것도, 우리마을 촌장이 된 것도 모두 다른 분이 도와준 덕인데…. 사실은 제가 도움을 받고 살았습니다. 혼자 큰 상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김성수 푸르메재단 이사장이자 우리마을 촌장(81·사진)은 수상소감을 묻자 “부끄럽다”는 말로 대신했다. 되레 장인에게서 물려받은 40년 된 빛바랜 양복이 그의 ‘나눔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배재중(오늘날의 배재고) 재학 시절 그는 농구와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다. 건장하던 그가 어느 날 경기 중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폐결핵이었다. 변변한 약도 없을 때라 “아이가 죽을 것”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그를 살렸다. 10년 만의 완치. 덤으로 얻은 삶이라 생각했다. 봉사로 갚기로 했다. 넉넉한 형편을 죄스러워한 어머니, 걸인을 단 한 번도 내친 적이 없는 어머니…. 나눔의 철학은 어머니에게 배웠다. 늦깎이로 단국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성공회 보육원에 부임했고, 천직이라 여겼다. 주변에서는 그에게 신부가 어울릴 거라고 했다. 다시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1964년 성공회 신부로 품을 받았다. 1973년 ‘성 베드로 학교’를 설립했다. 지적장애 어린이를 위한 특수 기숙학교였다. 이곳에서 장애인을 위한 삶이 시작됐다. 장애아들이 성장한 후 갈 곳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졸업하는 날 아이와 부모들은 울먹였다.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이 필요했다. 1998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강화도 땅 6600m²(약 2000평)에 콩나물·버섯 재배 공장과 기숙사를 지었다. 지적장애인의 공동체 ‘우리마을’이 탄생한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건립비 20억 원을 지원했다. 지적장애인 50여 명이 오순도순 모여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성공회대 총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푸르메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강화도와 서울을 오가며 모금 행사를 벌였다. 이듬해 장애인을 위한 ‘푸르메나눔치과’ ‘푸르메한방어린이재활센터’를 건립했고, 요즘에는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에 매진하고 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공적 ▼47년간 장애인을 위해 헌신해 온 장애인들의 아버지다. 1961년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1964년 성공회 신부로 품을 받았다. 1973년 지적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성 베드로’ 특수학교를 세우고 10년간 교장으로 재직했다. 1998년 장애인 자립을 돕기 위해 작업장과 기숙사를 갖춘 생활공동체 ‘우리마을’을 세웠다. 여기서 50여 명의 지적장애인들이 함께 살며 자립을 준비한다. 현재는 푸르메재단 이사장으로 장애인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재활을 할 수 있도록 병원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공로로 1981년 대통령 표창, 200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 제25회 인촌상 심사위원▽교육 △위원장: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위원: 이택휘 한영외고 교장, 김헌규 동국대 명예교수, 권대봉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산업기술 △위원장: 금동화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위원: 박종용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이현순 전 현대자동차 부회장, 이계형 단국대 산학협력 부총장▽인문사회문학 △위원장: 진덕규 이화여대 학술원장 △위원: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이태수 인제대 석좌교수, 홍정선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자연과학 △위원장: 백성기 포스텍 총장 △위원: 국양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윤경병 서강대 화학과 교수, 배성한 KAIST 수학과 교수▽공공봉사 △위원장: 최성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위원: 양옥경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원장, 전광현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능후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언론출판 △위원장: 정진석 외국어대 명예교수 △위원: 이종석 위암장지연기념회 회장, 이기웅 도서출판 열화당 사장,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동생 고이치가 누나 아쓰미에게 말한다. “‘바나나피시’ 읽은 적 있어? 샐린저 거. 정확한 제목은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이었나.” “여름에 리조트 해안에서 시모어 글래스라는 남자가 우연히 시빌이라는 여자애를 만나게 되지. 그 애와 바나나피시라는 상상 속 물고기에 대해 이야기하게 돼. 시모어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런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시빌은 ‘방금 한 마리 봤어요’라고 말하지. 시모어는 ‘그럴 리가’ 하면서 깜짝 놀라. 호텔방으로 돌아온 뒤 시모어는 권총으로 자살해.” 말을 끝낸 동생은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며 말한다. “시모어는 시험해보고 싶어진 거야. 이게 정말 현실인지….” 동생은 방아쇠를 당긴다.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전개된다. 그 단초는 SC인터페이스라는 기계를 통해 혼수상태인 환자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신기술 ‘센싱’이다. ‘센싱’은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을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나게 한다. 이를테면 유년시절이나 과거 즐거웠던 순간, 그리고 자살 순간까지도. 아쓰미는 자살 미수에 그쳐 식물인간이 된 동생과 ‘센싱’을 하며 점차 동생의 자살 동기에 대해 접근해간다. ‘센싱’을 하며 아쓰미는 점차 현실감을 잃어버린다. 앞서 동생의 권총 자살을 목도했던 아쓰미가 ‘사실 이것은 센싱일 뿐이야’라면서 안도할 때 갑자기 시끄럽게 인터폰이 울려 깨는 것처럼. 실제는 한낮 꿈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현실, 센싱, 꿈을 오가며 아쓰미는 점점 더 혼란스럽다. ‘센싱’ 과정에 나오는 상상의 공간에는 제3자의 개입도 가능하게 돼 그 속에서 만난 동생이 진짜 동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유까지 확장되며 작품은 더욱 복잡하게 변한다. 이쯤이면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화자인 아쓰미도 아쓰미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싼 확고한 현실세계가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불명확한 세계로 바뀌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독자 또한 아쓰미처럼 눈앞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을 끊임 없이 의심하게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아쓰미의 뇌 속을 탐험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로 흥미롭다. 상상의 세계를 다뤘지만 역설적으로 작품은 매우 현실적이기도 하다. 놀랍도록 세밀하고 차분한 일상 묘사, 인물들의 간결한 대화는 군더더기 없이 정갈해 사실성을 높인다. 시원한 섬과 바다 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은 야자수 그늘에서 잠깐 졸았다 깬 듯한, 기분 좋은 백일몽을 경험하는 것 같다. 특히 집안에 갑자기 물이 가득 차고 한 사내아이를 등에 태운 거대한 수장룡의 몽환적인 유영은 비현실적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작품은 후반으로 갈수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흡입력을 높인다. 물론 가장 큰 반전은 마지막에 있다. 책장을 덮으면 가슴이 먹먹하다. ‘엔딩 또한 상상이 아닐까’ 싶다. 믿을 게 없다. 이미 책에 중독된 것 같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이문열 씨(63·사진)의 단편 ‘익명의 섬’이 미국 시사교양 주간지인 ‘뉴요커’ 12일자에 게재된다. 2006년에는 고은 시인의 시 4편이 이 잡지에 실렸으며 한국 작가의 소설이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12일자에 실리는 ‘익명의 섬’은 1982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발표됐다. 시골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동네 아낙들과 ‘깨칠이’란 남성의 은밀한 관계를 다룬 작품이다. 번역은 한국문학을 영어권에 소개하는 문예지 ‘진달래(AZALEA)’의 편집위원인 하인즈 인수 펜클 뉴욕주립대 교수가 맡았다. ‘뉴요커’는 판매 부수가 140만 부이며 오에 겐자부로, 오르한 파무크,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이 잡지에 실린 뒤 세계적 작가로 성장한 바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전국 수십 곳에 부동산이 있는 재력가 장우는 돈으로 사고파는 물질적 연애에 익숙한 남자. 그가 뜻하지 않게 동사무소 강당에서 열리는 촌스러운 결혼식에 참석한다. 가난한 부부, 저 싸구려 한복, 이 누추한 잔치지만 부부는 행복했고, 하객은 즐거웠다. ‘내겐 저런 것이 없다.’ 그는 깨닫는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소한 생활의 행복을, 진정한 사랑을 가질 수 없다는 것. 그는 억울했다. 그는 행복한 신부 수진에게 손을 뻗쳐,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한다. 지난해 발표한 소설 ‘그대를 잃은 날부터’에서 현대사회의 소비문화를 비판한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물질만능주의의 가공할 공세에 맥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자존감과 성(性)의식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장우는 돈으로 여자를 사고 사람을 부리며 제왕적 위치를 유지하고, 그의 처가 식구나 영업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아니 그의 부를 숭배한다. 물론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장우에게 넘어온 수진도 돈이 좋다. 하지만 수진은 장우에게 진정한 편안함을 느끼며, 그와 함께 진정한 사랑을 하려고 한다. 다른 여자들과 다른 수진의 태도에 장우는 호기심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다. 작품은 장우의 미묘한 감정선을 따라가며 결과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그는 ‘마치 아내 같았다’며 수진에게 편안함을 느끼지만 자신의 감정에 혼란을 느낀다. 그는 결국 깨닫는다. 꽃은 꽃밭에 있어야 예쁘지, 꺾어서 화병에 넣는 순간 빛이 바랜다는 것을. 각각 배우자가 있는 장우와 수진의 불륜이 줄기지만 곁가지가 무수하다. 아들을 잃은 장우 부인의 슬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회사 점거농성에 나서는 수진의 남편, 우연히 이들과 얽히게 되는 영화감독과 그의 애인의 얘기까지. 풍성한 읽을거리는 좋지만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이 떨어져 산만한 느낌이다. 특히 수진 남편의 노동운동 부분은 작품 내내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일본의 문학평론가인 구리야가와 하쿠손(廚川白村)이 낸 ‘근대의 연애’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성과 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 순결을 보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연애지상주의는 한일 양국에 연애 열풍을 몰고 왔다. 최근이 아니라 1920년대 초의 이야기다.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주제로 한국인의 의식과 풍습 변천사를 살폈다. 문학작품, 신문, 잡지 등을 통해 당대의 ‘사랑법’을 유추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