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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빚어내는 화음은 프랑스 본토의 그 어떠한 오케스트라보다 화사하고 감미롭고 아름다웠다. 4월 유럽 최고의 명문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DG)과 5년 장기 계약을 해 화제를 뿌렸던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과 서울시향 콤비가 연주한 레코드 제1집이 15일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음원을 미리 입수해 들어보았다. 앨범의 레퍼토리는 드뷔시와 라벨의 관현악. 프랑스 음악의 대가인 정 예술감독이 선호해 평소 즐겨 프로그램에 올리는 작품들로 지난해 5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녹음했다. 라벨의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정 예술감독이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을 지휘한 2004년 레코딩(DG)이 있지만, 올해 8월 독일 브레멘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에서 공연할 예정인 본 앨범의 수록곡은 정 예술감독으로서도 음반 형태로는 처음 선보이는 것들이라 더 의미가 있다. 어느 곡 하나 할 것 없이 연주의 완성도가 높다. 첫 곡인 드뷔시 교향시 ‘바다’에서 지휘자는 5년 동안 파트너십을 맞춰온 서울시향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고 있다. 현 파트는 질감이 곱고 보들보들하며, 관 파트는 향긋하니 싱그러운 내음을 자아낸다. 지휘자의 세심한 셈여림 조절력과 동물적인 색채 감각에 힘입어 오케스트라는 눈부시도록 찬란한 한낮 대양의 풍광과 그늘이 드리운 저녁 해변가 모습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파(描破)한다. 모든 소절의 단위 하나하나까지 살아 숨쉬는 생명감을 부여받은 이 연주를 듣다 보면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기자기한 판타지의 세계를 그려낸 작품인 두 번째 곡 라벨 ‘어미거위’ 모음곡은 또 어떤가. 소리가 따끈한 우유처럼 데워져 있어 목 넘김이 부드럽다. 세 번째 수록곡 라벨 ‘라 발스’도 아주 빼어나다. 정 예술감독과 서울시향은 춤추는 듯 우아한 리듬감과 감칠맛 나는 절묘한 뉘앙스를 연주 내내 유지하면서 가속과 감속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거듭될수록 점증하는 음악의 흥분도를 극적인 수법으로 살려내고 있다. 확 부풀어 오르며 시원하게 폭발하는 순간이 짜릿하기 이를 데 없다. 곡이 끝난 뒤 실연을 들은 청중들이 외치는 환호에 음반의 감상자인 당신도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의 명반 리스트 제일 위쪽에 올려놓기에 부족함 없는 열연이다. 독일 현지에서 제작한 인터내셔널 버전 앨범으로는 사상 최초로 음반 해설지에 한국어가 병기되어 있다. 정 예술감독과 서울시향은 올 하반기 시즌에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녹음할 계획이다.이영진 음악 칼럼니스트}

지난해 ‘LG와 함께하는 제6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성악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바리톤 이응광 씨(30·독일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 석사·사진)가 19일 오후 7시 반 대전 서구 만년동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 무대로 한국 성악팬들을 다시 찾아온다. 지난달 1일 피아니스트 김규연 씨의 리사이틀에 이은 ‘2011 국제음악콩쿠르 입상자 초청시리즈’ 두 번째 무대다. 이 씨는 2008년 터키 레일라 겐제르 국제 성악콩쿠르 3위, 같은 해 이탈리아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 성악콩쿠르와 2010년 스위스 에른스트 해플리거 국제 성악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며 널리 실력을 공인받은 바리톤. 폭발적인 가창력뿐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도 갖췄다는 게 여러 콩쿠르 심사위원들의 공통적인 평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모두들 눈을 떠 보시오’와 말러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전곡 등 10여 곡을 부른다. 1만∼2만 원. 1544-1556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상화가 없었으면 나는 죽었을 겁니다. 제 작품은 아내와의 합작이고, 아내 없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은 시인(78)이 아내 이상화 교수(64·중앙대 영문과)에게 바치는 연시집(戀詩集) ‘상화 시편’과 시집 ‘내 변방은 어디 갔나’(이상 창비)를 나란히 냈다. 지난해 4월 연작시 ‘만인보’를 완간한 지 1년 3개월 만에 발표한 신작들이다. 특히 아내의 이름을 제목에 붙인 ‘상화 시편’은 문단 활동 53년 만에, 160여 편의 시집을 내고서 처음 선보이는 연시집이다. “대개 사랑 노래라고 하면 꿈을 노래하거나 잃어버린 사랑을 얘기한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은 나날이 진행되는 현재고 일상이다. 사랑은 내 당분이고 탄수화물이고, 내뱉는 질소다.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감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1983년 5월 5일 결혼한 이들은 결혼 29년차 부부다. 하지만 시인의 아내 사랑은 한창 연애 중인 연인들처럼 열정적이고, 대범하고, 닭살 돋는다. 6일 만난 고은 시인은 “이 시집을 세상에 내보이는 만용을 나는 용기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자고 나자/나는 나의 아내였다/나의 눈은/아내의 눈이었다//유토피아 여기’(‘상화 시편’ 중 ‘변신’ 전문) ‘상화 시편’에는 아내와의 소소한 일상의 기쁨, 그리고 사랑과 존경의 감정이 가득하다. 시인은 ‘아내는 나에게 정신의 삶을 만들어주고 내 후반의 영감을 이끌어주는 영감의 화산’이라고 토로한다. 아내는 몇 년 전부터 남편의 시집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도 돕고 있다. 반려자이자 동업자인 셈이다. 왜 이제야 고마움을 표현할까. “사실 1980년대 후반 (연시집을) 쓰고 싶었는데 아내가 말렸지요. 당시에 사랑을 노래하면 위화감이 생긴다고요. 그때 책이 나왔으면 지금처럼 생활시가 아니라 ‘오, 태양이여’라는 식의 몽환적인 시가 나왔을 거야. 그러면 도종환(‘접시꽃 당신’을 쓴 시인)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하하.” 고은 시인은 아내가 지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를 몰래 시집에 실었다. 아내의 시도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어느 별에서 왔느냐고/불쑥 묻지 말아요/어느 별에서 왔기에/우리의 사랑 이리도 끝없고 바닥도 없는 것이냐고/다그치며 묻지 말아요/…’ 고은 시인은 아내가 정년퇴임을 하면 내후년께 시베리아로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젊은 세대를 향해 “교훈을 주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사랑보다는 서로 존경하며 살았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근 몇 년 동안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10월이 오면 고은 시인은 주위의 수상 기대감에 홍역을 치렀다. 그는 올해 수상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못 받은 걸로 하겠다”며 잘라 말했다. “발표 날에는 (경기 안성 집을 떠나) 강원 정선이나 영월 어디쯤 가 있을 것 같은데 정확히는 말 안 해주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지난달 3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폐막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 5명이 상위권에 입상한 것을 계기로 ‘금호 영재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 남자 성악 부문 1위인 박종민 씨(25)를 제외한 여자 성악 1위 서선영(27), 피아노 2위 손열음(25)과 3위 조성진(17), 바이올린 3위 이지혜 씨(25) 등 4명이 모두 금호 영재 출신이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1998년부터 클래식 영재를 발굴하고 키워내기 위해 연간 20억 원을 들여 ‘금호 영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3년간 이곳을 거쳐 간 클래식 영재는 1000명이 넘는다.》○ “레슨으로 더 배울 것 없으면 무대로” 음악 교육의 두 축은 레슨과 콘서트 무대다. 손열음 씨를 가르친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어느 순간부터는 레슨을 통해 더 배울 것이 없어지는 시기가 온다. 그 후로는 무대를 통해 관객과 호흡하며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밖에 없다”며 무대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어린 연주자의 경우 연주 기회를 잡기 힘들뿐더러 직접 무대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독주회 무대로 주로 사용되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의 경우 1회 공연에 대관료를 포함해 약 1000만 원이 들기 때문에 부모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하지만 금호 영재로 발탁되면 무료로 독주회를 열 수 있다. 금호 영재 대부분은 이를 통해 생애 첫 독주회를 갖는다. 올해 10월 독일 하노버 음대에 입학하는 김정은 양(17·서울예고 1년 중퇴)은 2003년 금호 영재에 발탁돼 이듬해 첫 독주회를 가졌다. 이어 2009년 9월 금호재단의 후원으로 치러진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콩쿠르’에서 27명의 참가자 가운데 대상을 받아 큰 기회를 얻었다. 지난해 교향악축제에서 대전시향과 함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것이다. 16세로 그해 최연소 교향악축제 협연자였다. 김 양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라는 큰 무대에 서는 게 무척 영광스러웠고 많은 관객과 교감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며 “국내에선 학생들에게 큰 무대 연주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금호 영재가 돼 공연에 서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차이콥스키 성악 여자 1위인 서선영 씨의 어머니 황동숙 씨(54)는 “선영이가 고교 때부터 여러 대회에서 입상해 상금을 받았지만 정작 독주회를 처음 열어준 것은 금호재단”이라면서 “평범한 부모로서 자식의 독주회를 열어주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매년 5, 11월 두 차례 오디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매년 5월과 11월 두 차례 금호영재콘서트(중학생 이하), 금호영아티스트콘서트와 금호영체임버콘서트(고교생∼26세 이하)에 설 음악 영재를 뽑기 위해 오디션을 실시한다. 올 5월 치러진 오디션의 경우 영재콘서트에서는 응시자 81명 중 15명이 합격해 5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영아티스트에는 108명이 지원해 24명이 뽑혔고, 영체임버콘서트엔 6팀이 지원해 3팀이 합격했다. 교수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참가자들의 음악성과 장래성, 1시간 이상의 독주회 가능 여부 등을 살펴 선발한다. 합격이 되면 매주 토요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금호영재콘서트’ 등의 무대에 선다. 이후에도 재단은 국제콩쿠르 입상 시 홍보를 대행해주거나 추가 협연 기회를 제공하는 등 꾸준히 영재들을 관리한다. 1993년부터 과르네리(바이올린), 마치니(첼로) 등 세계적인 명품 고악기를 구입해 무료로 빌려주는 악기은행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총 22점의 악기가 등록돼 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신현수 박지윤, 첼리스트 이상은 원민지 씨 등이 악기를 빌려 사용하고 있다. 금호 영재가 돼 지원받는 혜택은 적지 않지만 수혜 대상과 폭이 충분치 않다는 아쉬움의 소리도 있다. 신수정 서울대 교수는 “금호 영재 오디션에 가면 합격자가 한정돼 있어 재주 있는 학생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고 아쉬워했다. 조영미 연세대 교수는 “유럽의 도이체방크 등 유수의 은행이나 미국의 스트라디바리소사이어티 처럼 구미에선 고가의 악기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동시에 다양한 연주 기회도 제공하는 기업과 단체가 많다. 한국에서도 영재들에게 좀 더 많은 경험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호 영재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김남윤 한예종 교수는 “금호 영재의 경우 가능성이 있는 새싹을 발굴해 키운다기보다는 이미 실력을 갖춘 영재들을 선발해 연주 기회를 준다는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음대 교수는 “몇 번의 연주 기회를 주고 ‘음악가를 키웠다’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금호 영재 프로그램 같은 기회가 필요하고 여러 가지 바람직한 기능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좋은 음악가를 탄생시키는 요인은 체계적인 레슨을 동반한 꾸준한 교육”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접시꽃 당신’이 사랑받는 이유는 작품의 진정성도 있겠지만 죽음과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공감할 수 있게 다룬 까닭인 것 같습니다. 세대를 넘어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합니다.” 도종환 시인(57)의 밀리언셀러 시집 ‘접시꽃 당신’이 출간 25주년을 맞았다.》 1986년 발표된 ‘접시꽃 당신’은 1996년 100만 부를 돌파했고 이후 매년 5000부 넘게 판매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지난달엔 25주년 기념 한정판 3000부도 나왔다.‘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중략)옥수숫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시 ‘접시꽃 당신’에서) 시인은 병으로 잃은 아내를 추억하며 시집을 냈다. 시인의 사연은 많은 이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시집은 박철수 감독의 동명 영화로 만들어졌다. ‘접시꽃 당신’은 지고지순한 사랑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시인에게서 조심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글쎄요.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뭐든지 깊이 있게 그리고 길게 봐라봤으면 좋겠어요.” 도 시인은 최근 에세이집 ‘도종환의 삶 이야기’와 ‘도종환의 교육 이야기’를 냈다.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1998년)와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2000년)을 개정한 것이다. “개정판을 내면 (마치 신간이 나온 것처럼) 독자들을 속이는 것 같다는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 시기하고는 좀 안 맞는 얘기들이 있어서 그런 것들은 뺐고 전체적으로 문맥들도 다듬어 새로 냈습니다.” 올해 등단 28년째인 시인은 이달 말 시집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창비)를 선보인다. 1985년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이후 꼭 열 번째 시집이다. “어느 날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하루 시간으로 바꾸면 어디쯤일까’를 생각했어요. 시간으로 따진다면 아마 오후 5시경 와 있는 것 같았죠. 이제 곧 저물 일만 남았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에 감사해야죠.” 그의 시는 여전히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 시에서 한 시 사이도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중략)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중략)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지금은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시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서)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 사내가 있다. 이름은 프랑수아 베송. 전직 교사로서 현재는 무직이다. 번잡한 도시에 사는 그가 12일 동안의 방황을 더듬은 것이 이 작품의 골자다. 그가 번잡한 도시를 거닐고, 여러 사람들과 스치는 과정들을 덤덤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살인과 자살, 자해 등이 벌어지지만 오히려 작품은 시종일관 섬뜩하리만큼 차분하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소비하며 스스로 인식도 못하는 사이 자신과 사회의 죽음을 앞당기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베송이 택한 살인과 자해 등은 삶의 능동적 주체가 되려는 발악처럼 보인다. 작가는 말미에 밝힌다. ‘당신들은 죽음을 모르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상상하기도 전에 유골이자 사체’라고. 200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저자의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 완역됐다. 이렇게 음울하고도 세기말적인 작품을 저자가 10대 때 구상했다는 것이 놀랍다. 다만 난해한 산문시와 같은 내용들이 열거되는 초반 70여 쪽은 읽기에 벅차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친애하는 아멜리 노통브, 나는 미군 이등병입니다. 이름은 멜빈 매플, 그냥 멜이라고 불러주세요.’ 아멜리 노통브가 어느 날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사에게서 받은 한 통의 편지로 이 작품은 시작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초판 22만 부를 찍으며 화제를 일으킨 이 작품은 인기 작가의 실제 사생활을 엿보는 듯한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가 세계 여러 독자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내용이 논픽션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 속 ‘노통브’는 어디까지나 ‘허구 인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작품 속에서 인기 작가인 노통브는 미군 병사인 매플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에게 흥미를 느낀다. 매플은 미국 볼티모어에서 백수로 지내다가 1999년 먹고살기 위해 군대에 지원했으며 2003년 이라크로 파병돼 조지 W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 최전선에 서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매플이 편지에 쓰는 상세한 이야기들은 더 충격적이다. ‘로켓포, 탱크, 바로 옆에서 터지는 시체, 내 손으로 죽인 사람들, 나는 처음으로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 우리가 쇼크 상태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얼이 빠진 채, 겁에 질려 전투에서 돌아와서는 바지를 갈아입은 다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먹을 것에 달려드는 것입니다.’ 맥주, 햄버거, 감자튀김, 땅콩버터, 사과파이, 아이스크림. 살아 돌아온 미군 병사들은 전투 후 공포와 공허감을 잊기 위해 배가 터지고 토할 만큼 음식을 ‘흡입’한다는 것. 그래서 입대 당시 키 180cm에 50kg으로 말랐던 매플은 이라크에서 6년을 보내며 180kg으로 늘어난다. 작품의 기발한 상상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몸에 100kg 이상의 살이 새로 붙은 것에 대해 매플이 이를 ‘자신이 얼굴도 모른 채 죽였던 이라크 여성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온 것’으로 여긴다든가, 실의에 빠진 그가 노통브의 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불어나는 자신의 몸 상태를 기록하고 사진을 찍어 ‘반전(反戰) 행위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것 등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편지로 만나 서로를 알아간다는 서술 방식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작가는 여러 가지 반전과 호흡 조절을 통해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단 노통브가 편지에 대한 자신의 관심이나 사랑을 표현하는 ‘편지 예찬’ 식의 내용들이 두서없이 끼어드는 것은 작품의 흐름을 깬다. 소설 후반부에 매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노통브와 매플이 진짜 친구가 되는 말미는 마음을 살짝 짠하게 만든다. 프랑스 인기 작가이자 한국을 포함한 35개국에 자신의 책을 선보인 작가의 대중적 필력을 엿볼 수 있다. “2009년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사이에서 급속히 비만증이 퍼지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전쟁과 비만 사이의 상관성을 찾아보기 위해 고민하다 작품을 쓰게 됐다”고 작가는 말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디자이너 딘 카멘은 한 쇼핑몰에서 휠체어를 탄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보도의 턱을 올라가지 못하거나 선반 위 물건을 집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카멘은 생각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보도를 넘거나 일어서서 물건을 집을 수 없는 걸까?’ 카멘은 연구를 거듭해 대형 바퀴 4개가 달려 보도의 턱을 넘을 수 있고, 의자의 높이를 올릴 수 있는 전동 휠체어를 개발했다. 저자는 기존 상식을 깬 카멘의 ‘바보 같은 질문’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말한다. ‘글리머(Glimmer)’는 ‘희미한 가능성’ 등을 뜻하는데 이런 가능성에 불을 밝히고 성장과 변화를 이끄는 힘은 디자인이라고 책은 말한다. 디자이너들의 혁신적인 사고를 배워 자신과 기업의 잠재성을 끌어올리자는 제언이다. ‘바보 같은 질문하기’를 비롯해 ‘장애물 뛰어넘기’ ‘파고들기’ 등 8가지 디자인적 사고와 행동 방법을 소개했다. 직역이 많고 배경 설명이 부족한 게 흠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 젊은 연주가 5명이 ‘모스크바의 별’로 떴다.지난달 3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폐막한 제14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의 차세대 음악가들이 성악 부문 남녀 동반 1위, 피아노 부문 2, 3위, 바이올린부문 3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대회 역사상 한국인 최다 수상 기록이다.성악 부문에서는 남자 부문 베이스 박종민 씨(25·독일 함부르크극장 솔리스트)와 여자 부문 소프라노 서선영 씨(27·독일 뒤셀도르프 슈만국립음대)가 동반 우승했다. 1990년 1위를 차지했던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후 21년 만에 우승자가 나온 데다 남녀 동반 우승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두 사람 모두 한예종 출신으로 최 교수를 사사했다. 박 씨는 인문계 고교 2년 때 성악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라스칼라극장 아카데미를 거쳐 지난해 10월부터 독일 함부르크극장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스페인 빌바오 국제성악콩쿠르, 2009년 스텔라마리스 국제콩쿠르에서 연달아 1위를 차지했다. 그는 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인 2명에게 모두 (1위를)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정말 믿을 수가 없다”며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음악을 펼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여자 부문 1위인 서 씨는 창원 KBS어린이합창단에 들어가면서 노래와 인연을 맺었고 인문계 중고교를 거쳐 2009년 한예종 전문사 과정을 마쳤다.이후 독일 뒤셀도르프 슈만국립음대에서 수학한 뒤 2009년 독일 뮌헨 ARD 라디오방송 국제콩쿠르 2위에 올랐다. 지난해 세계 정상급 성악콩쿠르인 바르셀로나 비얀사 국제콩쿠르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비얀사 콩쿠르가 더 권위 있는 대회여서 ‘이번에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부담감이 더 컸다. 힘들 때 (조)성진이가 나눠준 홍삼을 먹은 것이 도움이 됐다”며 웃었다. 피아노 부문에서는 손열음 씨(25·독일 하노버음대 재학)가 2위, 조성진 군(17·서울예고 2년)이 3위를 차지했다. 1위는 러시아의 다니엘 트리포노프 씨가 수상했다.손 씨는 세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한예종 음악원을 졸업했으며 김대진, 아리 바르디 교수를 사사했다. 1997년 러시아 청소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2위, 1999년 미국 오벌린 국제콩쿠르 1위, 독일 에틀링겐 국제피아노 콩쿠르 1위, 2009년 미국 밴클라이번 콩쿠르 2위에 올랐고 2004년 로린 마젤 지휘의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그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콩쿠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많이 성장한 느낌이 들어 만족한다”고 소감을 말했다.3위에 오른 조 군은 여섯 살 때 피아노에 입문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피아노 수업을 받았고 신수정 박숙련 교수를 사사했다. 2008년 러시아 쇼팽 주니어 콩쿠르 1위, 2009년 일본 하마마쓰 국제콩쿠르에서 1위와 특별상을 받았다. 지난해 동아일보가 선정한 ‘2020년을 빛낼 100인’에 최연소로 선정되기도 했다.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이지혜 씨(25·미국 뉴잉글랜드 콘서버토리 재학)가 3위에 입상했다. 이 씨는 한예종 음악원을 졸업했으며 김남윤, 미리암 프리드 교수를 사사했다. 국내 음악계는 “한국 연주가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에 이견을 달 수 없게 됐다”며 젊은 연주가들이 전해온 낭보를 반겼다. 최현수 교수는 “이번 결과는 국내 클래식계가 세대교체 됐음을 보여준다, 실력 있는 학생들에게 많은 교육과 공연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이 없이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손열음 씨를 가르친 김대진 한예종 교수는 “국제콩쿠르 우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승 이후”라면서 “한국 대중가요가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기까지는 가수 개인의 기량뿐 아니라 무대를 만드는 기획과 홍보력의 덕이 컸다. 클래식에서도 우수한 젊은 연주가들이 국제무대에 더 많이 설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차이콥스키 콩쿠르 ::냉전시대 공산주의권의 문화적 자존심의 상징으로 195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창설됐다.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폴란드 쇼팽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린다. 4년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남녀성악 부문을 동시 개최한다. 1974년 정명훈 예술감독이 미국 국적으로 이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1994년 백혜선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가 한국 국적으로 3위를 차지했다. }
3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폐막한 제14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한국의 손열음 씨(25·독일 하노버음대 재학)가 2위, 조성진 군(17·서울예고 2년)이 3위에 나란히 입상했다. 1위는 러시아의 다니엘 트리포노프가 수상했다. 손 씨는 세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졸업했으며 김대진, 아리 바르디 교수를 사사했다. 1997년 러시아 청소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2위, 1999년 미국 오벌린 국제콩쿠르 1위, 독일 에틀링겐 국제피아노 콩쿠르 1위, 2009년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 2위 등에 올랐으며 2004년 로린 마젤 지휘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조 군은 여섯 살 때 피아노에 입문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피아노 수업을 받았으며 신수정, 박숙련 교수를 사사했다. 2008년 러시아 쇼팽 주니어 콩쿠르 1위, 2009년 일본 하마마쓰 국제콩쿠르에서 1위와 특별상을 받았다. 2010년 동아일보가 선정한 '2020년을 빛낼 100인'에 최연소 선정(16세)되기도 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958년 창설됐고 냉전 시대 공산주의권의 문화적 자존심을 상징하며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폴란드 쇼팽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려왔다. 1974년 정명훈 예술감독이 미국 국적으로 이 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2위를, 1994년 백혜선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가 한국 국적으로 3위를 차지했다. 1990년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성악부문에서 1등상을 받은 바 있다. 한편 이번 콩쿠르 바이올린부문에서는 이지혜 씨(25·미국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재학)가 3위에 입상했다. 이 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졸업했으며 김남윤, 미리암 프리드 교수를 사사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문학번역원이 해외에서 번역 출간된 우수 문학 작품에 대해 시상하는 한국문학번역상이 올해로 10회를 맞았다. 격년으로 시상하는 이 상은 1993년 한국문예진흥원(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으로 시작해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이 맡으면서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출간된 작품뿐 아니라 대산문화재단을 비롯한 민간 기관, 해외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출간한 작품까지 모두 심사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 상의 심사 대상과 수상자를 살펴보면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최근 불고 있는 ‘문학 한류’의 현재를 알 수 있다. 올해 심사 대상은 2009∼2010년 출간된 21개 언어권 175종. 이 가운데 소설가 황석영 씨의 ‘심청’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최미경, 장노엘 주테 씨가 번역 대상을 받았다. 번역상은 김영하 씨의 ‘검은꽃’을 독일어로 풀어낸 양한주 씨와 하이너 펠드호프 씨, ‘한국현대단편선’을 영어로 번역한 존 홀스타인 씨가 받았다. 지정 작품을 정하고 투고를 받아 뽑은 신인상에는 모두 257건이 접수돼 박민규 씨의 ‘아침의 문’을 번역한 김제인 씨 등 8명이 받았다.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는 올해 수상자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수년째 번역 활동을 해온 전문 번역가부터 신인까지 모여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 활성화를 논하는 자리였다. ‘한국현대단편선’을 영어로 옮겨 번역상을 받은 미국인 홀스타인 씨는 “번역할 때 유머를 전달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그 웃음의 사회적 배경을 모르는 현지 독자에게 설명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아침의 문’을 영어로 번역해 신인상을 받은 지예구 씨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아는 쪽은 한국 번역가이지만 해외 독자를 이해하기에는 한계도 있다. 한국과 외국 번역가의 공동 작업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를 부탁해’의 해외 진출 성공에 이어 한국 문학이 프랑스에서도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프랑스 쥘마출판사를 통해 1995년부터 황석영 씨의 주요 작품을 번역해 오다 이번에 번역 대상을 받은 최미경 씨는 “김훈의 ‘칼의 노래’, 오정희의 ‘새’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세계문학전집 갈리마르에 포함되는 등 프랑스에서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황 씨의 ‘심청’ 또한 지난해 1월 출간 이후 8000부가 팔리며 프랑스 문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문학 번역은 황무지와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졌고, 10회를 맞은 번역상은 번역가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상으로서의 권위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번역원은 내년부터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김 원장은 “원고지 1200장 분량의 소설 한 편을 번역하는 데 보통 2년이 걸린다. 하지만 지원금은 1600만 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며 “내년엔 지원금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문학평론가가 국악 사설(辭說)을 집대성한 책을 펴냈다. 출판사 휴먼앤북스 대표이기도 한 하응백 씨(50·사진)가 이 출판사에서 출간한 ‘창악집성(唱樂集成)’. 판소리를 제외한 잡가 시조창 경·서도민요 남도민요 동부민요 등 350여 편의 국악 사설을 모으고 이를 풀이한 1116쪽 분량의 책으로 ‘국악 사설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하 씨는 “기존의 국악 사설집은 현장의 사설을 옮기는 것에만 주안점을 두어 문학적 전문성이 결여되거나 해석이 부정확했다”면서 “이 때문에 정확한 사설의 내용을 모르고 부르는 경우가 허다했고 청중도 가사의 뜻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 씨는 5년 동안 사설을 모으고 고문헌과 방언과 전설 등을 참조해 사설을 정리했다. 이를테면 서도민요인 ‘연평도 난봉가’에는 ‘긴작시 강변에 아가씨나무, 바람만 불어도 다 쓰러진다네’란 부분이 있는데 일부에서는 ‘긴작시’를 ‘긴낙시’로도 부르기도 한다. ‘아가씨나무’의 뜻도 불분명했다. 하 씨는 연평도 북쪽 해안에 ‘긴작시’라는 지명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고, 연평도에 전해 내려오는 임경업 장군 전설에서 ‘가시나무로 낚시를 했다’는 부분에 착안해 아가씨나무는 가시나무가 변해서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 씨는 “고문헌 등의 자료를 찾고 해석했지만 이것으로도 부족해 직접 소리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 얘기를 들었다. 정확도를 높인 사설집이 나오니 ‘속이 시원하다’고들 하신다”며 웃음지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서도소리(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의 민요와 잡가)를 보존하기 위해 사단법인 서도소리진흥회를 출범시키고 이사장을 맡았다. “서도소리는 북한에서 소리의 명맥을 잇지 못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남도소리에 비해 사장돼 있습니다. 중요한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단체를 만들었죠. 책을 쓰면서 거둔 또 하나의 수확입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내달 13일 가야금 콘서트 여는 황병기 명인“아무 장식도 없고 둥글고 하얗게 돼 있는데 보고 있으면 순수하면서 넉넉한 기분이 들어요. 내가 추구하는 음악세계의 본질이 조선 백자 ‘달 항아리’ 하고 같은 것 같아.” 가야금 황병기 명인(75)이 다음 달 13일 LG아트센터에서 가야금 콘서트를 연다. 올해 국악 활동 61년, 작곡가로 활동한 지 50년을 맞은 그가 펼치는 이번 공연의 주제는 ‘달 항아리’다. “달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텅 빈 기분이 들어요. 사람들이 ‘마음을 비우고 살라’고들 하는데 딱 그 느낌이 드는 거지. 제가 추구하고 싶은 음악세계와도 같고 해서 주제로 잡아봤습니다.” ‘밤의 소리’로 시작한 창작곡은 ‘소엽산방’ ‘하마단’ ‘추천사’를 거쳐 그의 아방가르드 대표작인 ‘미궁’에서 정점을 찍는다. ‘미궁’은 1975년 초연 당시 기괴하고 음침한 음향에 관객들이 경악했고 심지어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소문까지 돌았던 작품. 공연은 ‘침향무’로 이어져 막을 내린다. “‘미궁’으로 끝내면 아무래도 좀 분위기가 뭐 하니까, ‘침향무’를 마지막에 넣었지요. 많이 사랑받는 곡이기도 하고….” 뮤지컬과 콘서트가 주로 열리는 LG아트센터에서 가야금 공연이 열리는 것도 이례적이다. 황 명인은 몇 해 전 그 극장에서 피나 바우슈의 무용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극장이 괜찮아서 한번 공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황 명인은 ‘미궁’과 ‘침향무’를 직접 연주한다. ‘소엽산방’은 정대석(거문고), 김웅식 씨(장구)가 연주하는 등 후배 국악인들도 참여한다. 2006년 임기 3년의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에 올라 2009년 연임한 황 명인은 12월 31일 임기를 끝으로 물러날 생각이다. “그동안 썼던 곡 연주하느라 너무 바빴는데 이제 작곡을 좀 해야지. 노인의 경지에서 바라본 생각들을 담은 곡을 쓸 생각이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아버지와 딸이 오페라와 뮤지컬에 동반 출연한다. 오페라 속의 딸은 남자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압박하고 뮤지컬 속의 딸은 실제 아버지 앞에서 가슴을 드러낸다. ‘딸 바보’ 소리가 싫지 않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걸어간 길을 따라 걸으며 효심이 더 돈독해져가는 딸을 함께 만났다.》●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서도 부녀역 맡은 김관동 - 지현 씨사랑의 힘으로 아버지 움직인 딸“사랑하는 아버지여, 그이는 잘생겼어요. 함께 반지를 사러 갈 거예요. 허락을 안 해주시면 강물에 몸을 던질 거예요….” 푸치니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 나오는 아리아 ‘사랑하는 아버지여’다. 성악가인 딸이 실제의 아버지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오페라 무대가 펼쳐진다. 7월 6∼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리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잔니 스키키’. 바리톤 김관동 연세대 교수(59)는 꾀 많은 아버지인 ‘잔니’로, 딸인 소프라노 지현 씨(28)는 사랑에 눈먼 딸 ‘라우레타’로 출연한다. 현실과 무대를 오가며 부녀지간인 두 사람을 27일 만났다. “가사에 전해지는 느낌이 아무래도 남다르지요. 하지만 우선 연기자 본분에 충실하려고 해요. 무대에선 딸로 보기보다는 ‘상대역인 소프라노’라고 자기암시를 하죠.”(김 교수) “다른 선생님들과 무대에 설 때보다 의지가 되고 편안하지만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적지 않아요.”(지현 씨) 두 사람은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의 제안으로 출연하게 됐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는데 제가 시니어이다 보니까 ‘언제 또 딸과 무대에 서겠나’란 생각이 들어 수락했다”는 게 김 교수의 말. 두 사람은 2005년 ‘마술피리’에서 주역인 ‘파파게노’와 단역인 ‘동자’로 한무대에 선 일이 있지만 나란히 주역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잔니 스키키’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사는 부자(富者)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의 유산을 둘러싼 친척들의 다툼을 코믹하게 그린 작품. 라우레타가 연인과의 결혼을 허락해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아버지를 압박하는 아리아 ‘사랑하는 아버지여’가 유명하다. 실제는 어떨까. “남자친구를 아버지께 소개해 드린 적도 없는 걸요. 그렇게까지 깊이 사귄 남자친구도 아직 없어요.” 딸은 아버지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지인들에게서 “공연을 꼭 보러 가겠다”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는 부녀는 연습에도 열심이다. 연습실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그 장면 한번 해보자”며 생각날 때마다 노래와 동선을 맞춰본다고. 이들은 연세대에서 교수와 학생 사이로 지내기도 했다. 사실 아버지는 딸이 성악하는 것을 반대했단다. “성악은 사람이 ‘하나의 악기’가 돼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죠. 아내(소프라노 석금숙 씨)도 성악을 하는데 외동딸까지 음악을 시키기는 싫었어요. 하지만 자식 고집을 꺾을 수 있습니까.” 지현 씨는 연세대 성악과, 미국 신시내티대 음대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 음대 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훌쩍 자란 딸은 이제 아버지에게 배려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고음 처리를 할 때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 빨개지면 혈압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된다”는 것. “딸이 이번 연습 중에 저에게 ‘어떤 사람은 파워풀하게 하는데 아버지는 연륜이 느껴진다’고 하데요. 이제 제 소리에 힘이 떨어졌다는 것을 돌려서 말하며 응원해준 것이지요. 가슴 짠하기도 했습니다. 어, 이거 딸 앞에서 처음 말하는 건데….”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송영창 - 상은 씨강심장 딸에 갈채보낸 아버지외모만 보고도 부녀 사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토니상 8관왕에 빛나는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함께 출연 중인 송영창(53) 송상은 씨(20)다. 이 라이선스 뮤지컬은 19세기 독일을 무대로 교조적인 기성세대에 구속되고 억압된 10대 청소년들의 울분을 표출한 작품. 아버지는 국내 초연(2009년)에 이어 이번 재연무대에서도 성인남자 역을 맡았다. 딸은 그 성인들에게 희생당하는 청순한 여주인공 벤들라 역을 맡아 이번 무대에서 처음 데뷔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연기과 3학년 휴학 중)인 그는 지난해 6인조 록그룹 ‘못 노는 애들’의 리드싱어로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동상을 수상했다. KT의 ‘두 두 두 올레(do do do olleh)’ 캠페인 CM송 목소리로 친숙한 만능재주꾼이기도 하다. 두 부녀의 ‘스프링 어웨이크닝’ 동반출연은 공연계에서 작은 화제가 됐다. 성에 눈뜨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1막 마지막과 2막 첫 장면에서 벤들라의 가슴이 노출된다. “상은이가 오디션에 최종 합격하자 아내(성우 유남희)도 ‘당신이 빠져’라고 했어요. 저도 빠질까 생각했지만 흥행 부진 속에서 6개월간 초연무대를 지켜온 제가 작품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행했어요.” “초연 때 작품을 보고 홀딱 반해서 오디션에 응시해 덜컥 뽑혔는데 아버지도 출연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노심초사했죠. 하지만 막상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 보니 부끄럽고 어색한 게 없어졌어요.” 연기자로 대선배인 아버지는 “내 데뷔작이 1986년 TV드라마와 영화로 동시 제작됐던 ‘비극은 없다’였는데 거기서도 홀딱 벗고 정사신을 했다”면서 “상은이가 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연기를 펼치는 것을 보고 ‘아, 진짜 연기자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외모는 똑 닮았지만 두 사람의 연기 스타일은 정반대다. 아버지는 지금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 긴장하고 무대 위에서 전력을 다해 파김치가 돼야 만족하는 완벽주의자다. 딸은 연기 베테랑인 아버지도 아직 올라가 보지 못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벌써 두 차례나 올랐는데 한 번도 떤 적 없다는 낙천주의자다. 딸은 아버지가 한 번도 화내는 모습을 못 봐서 스크린에서 비열한 악역을 주로 맡은 아버지의 모습이 소름이 끼칠 정도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는 말이 있는데 상은이는 후자”라고 말했다. 이 부녀의 꿈은 언젠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함께 출연하는 것. 1998년 아버지가 이 뮤지컬에 출연했을 때 일곱 살이던 딸이 작품에 폭 빠져서 전체 노래는 물론이고 대사까지 다 외웠는데 지금까지 다 외우고 있단다. 너무 닮았지만 또 너무도 다른 부녀는 ‘스프링 어웨이크닝’ 속 배역의 이미지와 180도 달랐다. 그래서 천생 배우인가 보다. 9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3만∼6만 원. 02-744-4334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자매이자 음악 동료로서 고국의 음악제에서 힘을 합쳐 일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기쁨입니다.” 제8회 대관령국제음악제 공동 예술감독을 맡은 정명화(67·첼리스트), 경화(63·바이올리니스트) 자매는 마주 보고 활짝 웃었다. 28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음악제 간담회에서 이들은 예술감독을 맡아 여는 첫 음악제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번 음악제는 7월 24일∼8월 13일 강원 대관령 알펜시아를 비롯한 도내 일원에서 열린다. 국내외 50여 명의 음악가가 참여해 ‘저명 연주가 시리즈’ ‘음악가와의 대화’ 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두 사람은 7년간 이 음악제를 이끌었던 강효 줄리아드음악원 교수에 이어 예술감독을 맡게 됐다. 언니 명화 씨는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과 음악을 하는 헌신적인 후배들을 위해 우리가 쌓은 경험과 지식, 지혜를 아낌없이 활용하고 싶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실내악 축제로 가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고 말했다. 동생 경화 씨는 “처음 시도하는 새로운 도전에 마음이 설렌다. 매년 경치 좋은 대관령에서 여러 음악가, 학생들과 음악 교류를 한다니 더 기대된다. 특히 언니와 함께한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며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은 지난달 어머니인 이원숙 씨가 세상을 뜨는 아픔을 겪었다. “우리가 예술감독 하는 것을 보셨으면 매우 좋아하셨을 것 같다. 대관령 경치도 보시고, 음악도 즐기셨더라면 좋았을 텐데….”(명화 씨) 이 음악제의 책임을 맡은 후로 국내에 있는 명화 씨와 미국 뉴욕에 사는 경화 씨는 매일 통화를 하면서 의견을 조율했다. 명화 씨는 “가끔 의견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결국 좋은 음악을 하려는 생각은 같으니 자연스레 조율이 됐다”고 했다. 자매는 함께 직접 연주에도 나선다. 다음 달 29일 오후 7시 반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미국의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 씨와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 1번 B장조 작품 8번’을 연주한다. 경화 씨는 “평생 트리오는 동생 명훈이랑만 했는데 이번에는 케너 씨와 하게 돼 낯설지만, 높은 수준의 실내악 연주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명화 씨는 “경화와 한무대에 선 것도 5년이 넘은 것 같아 매우 반갑다”고 했다. 경화 씨는 2005년 9월 손가락 부상을 입어 한동안 공연을 쉬었다. 지난해 연주활동을 재개한 그는 “일반인으로 살며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많다. 내가 연주자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예술 문학분야 최고 훈장… 러 키신 등과 함께 수상▼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씨(사진)가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는다. 프랑스 정부는 28일 정명훈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을 ‘문화예술공로훈장 코망되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코망되르 훈장은 프랑스 정부가 음악과 미술, 영화 등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최고 등급의 훈장이다.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음악감독 외에 서울시향 예술감독도 겸임하는 정 씨는 내년부터 독일 관현악단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할 예정이다. 프랑스 문화부는 정 씨 외에 러시아의 거장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 등 3명에게도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시상식은 29일 낮 프랑스 문화부에서 열린다.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 한국문학번역원은 30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제10회 한국문학번역상 및 한국문학번역신인상 시상식을 연다. 번역 대상은 소설가 황석영 씨의 ‘심청’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최미경, 장노엘 주테 씨가 받는다. 신인상은 박민규의 ‘아침의 문’을 영어로 번역한 김제인 씨를 포함해 8명에게 돌아간다. ■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 ‘아, 흥남’이 25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첫 촬영에 들어갔다. 이날은 워싱턴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6·25 61주년 기념식 장면을 촬영했다. 흥남철수작전은 1950년 12월 함경남도 흥남항에서 중공군을 피해 피란민과 군인 등 20여만 명을 배 193척에 실어 대피시킨 작전이다. 맘미디어가 2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제작하는 이 영화는 내년 가을 개봉 예정.}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사냥꾼은 동물을 사냥하며 생계를 잇는 포수의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하지만 이들 사냥꾼은 조선시대 국난(國難)이 발생했을 때 전투의 최선봉에서 싸운 정부 산하 최정예 대원들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강사 김동진 씨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19세기 한국 호랑이를 바라보는 세 시각: 호랑이, 조선인, 서구인의 눈으로 그린 모습’을 28일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와 문화사학회가 주최하는 ‘문화네트워크: 불통(不通), 상통(相通), 개통(改通)’ 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호랑이 사냥을 전담하는 군대인 착호군(捉虎軍)은 조선 건국 초부터 중앙과 지방에서 포호(捕虎)정책을 수행했다. 착호군은 현종 15년(1674년) 때 5000명, 숙종 22년(1696년)에는 1만1000명까지 늘어났다. 17세기 들어 산의 외진 곳까지 개간하며 생활한 화전민이 늘어나고 수렵이 활성화되자 갈 곳을 잃은 호랑이들이 민가의 가축이나 인명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착호군이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전투에 나서 탁월한 전과를 올렸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전시에 소집될 의무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과는 특히 19세기 제국주의 열강과의 싸움에서 두드러졌다. 19세기 미국의 동양학자인 윌리엄 그리피스는 조선의 착호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서구의 근대적인 함선과 총포로 무장한 군대를 물리쳤다고 ‘한국, 은둔의 국가’(1907년)에 상세히 기술했다. 병인양요에서 프랑스군에 맞선 주력은 관동과 경기지방에서 모인 포수 370여 명이었다. 신미양요가 발발하자 포수를 중심으로 한 별초군 3060명이 상경해 미군에 대항했고 고종 13년(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할 때는 포수 4818명이 상경해 대응하기도 했다. 착호군의 위상은 개항 이후에도 상당 기간 유지됐다는 게 김 씨의 분석이다. 갑신정변 이후 흥선대원군이 새로 단장한 경복궁으로 이어(移御)할 때도 범사냥꾼들은 행렬 맨 앞에서 화승총과 갑주로 중무장하고 기수단을 호위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한반도에서 호랑이 개체 수가 급감하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대다수 범사냥꾼은 만주로 이동해 의병활동에 가담하게 된다. 김 씨는 “청산리전투에서 전과를 올린 홍범도 장군도 착호군 출신이었다”며 “일부에서는 호랑이사냥꾼을 단순히 생계형 포수나 취미로 사냥을 하는 사람들로 인식해왔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음악치료에서 한국은 아시아 정상입니다. 아시아에서 음악치료를 더욱 발전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최병철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 교수(54)가 7월 5∼9일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리는 제13회 세계음악치료학술대회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음악치료연맹(WFMT) 회장직에 오른다. 임기는 3년. 최 교수는 “그동안 음악치료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앞으로는 아시아의 전통 문화와 음악을 토대로 한 음악치료를 개발해 보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WFMT는 1985년 결성됐으며 50여 개국의 음악치료사들이 소속돼 있다. 3년마다 대륙을 돌며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학술대회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45개국 음악치료사 1200여 명이 참석해 음악치료에 관한 발표와 토론을 하는 대규모 행사다. 최 교수는 “사회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외로움은 깊어지고 스트레스도 심해진다. 이런 정신적 육체적 문제들을 음악으로 치료하는 수요는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그는 미국 유학 도중 음악치료로 진로를 바꿔 일리노이주립대, 캔자스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1996년 귀국해 ‘국내 음악치료사 1호’가 됐다. “구석방에서 몇 시간이고 바이올린을 홀로 연습하기가 버거웠어요. 계속 연주가로 살 수 있을까 고민이 됐죠. 그러던 어느 날 강의실 창문을 통해 장애 아이들이 음악교육을 받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행복해하더라고요. 그 순간이 제 인생을 바꿔놓게 됐죠.” 음악치료를 받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적장애나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이다. 이들은 언어보다 음악을 통한 대화 시도에 더 반응한다.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 가사를 짚어가며 속 깊은 대화를 끌어내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오해를 하는 점은 클래식만 음악치료에 사용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활동성을 키우려고 최신 댄스 음악을 이용하기도 하고 가사가 감미로운 발라드로 인생 얘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모든 음악이 치료의 도구가 되는 것이죠.” 최 교수는 음악치료가 신체 호르몬 분비에 좋은 영향을 주는 등 실증적 개선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것도 치료 효과가 있을까.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통한 것이 아니니 치료라고 하기는 힘들고, ‘건강한 음악 생활’ 정도가 되겠네요. 사실 노래하고 싶다는 것도 어떤 욕구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을 풀어주는 게 좋아요. 뜻 모른 채 흥얼거리는 것도 음악치료 관점에서 보면 좋은 습관입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마오쩌둥의 사상과 위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중국 내에서 ‘5금(禁) 조치’(출판·홍보·게재·비평·각색 금지)를 당했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2005년), 중국의 에이즈와 매혈 문제를 짚은 ‘딩씨 마을의 꿈’(2006년) 등 중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소설을 주로 써온 저자가 내놓은 에세이다. 1960년대 중국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자신의 유년 시절과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던 아버지와 삼촌들의 고단한 삶을 담담한 어조로 회고했다. 빛바랜 흑백 영상을 연상시키는 담백하고 간결한 이야기들이 잔잔한 울림을 이끌어낸다. 1960년대 중국은 ‘3년 대기근’으로 3000만 명 이상이 죽고 문화대혁명이 촉발된 극심한 혼란기였다. 하지만 작은 농촌 마을 사람들의 문제는 미래의 혁명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생존이었다. 아버지와 그 형제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면서 인생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인생은 쌀과 땔감, 기름과 소금을 얻기 위해 온갖 고생과 즐거움, 생로와 병사 속에서 몸부림친 고통이었다.” 30대에 천식에 걸렸지만 변변한 처방조차 받지 못하고 병을 키웠던 아버지의 관심사는 한 톨의 양식이라도 더 일궈내고 번듯한 기와집을 자녀들에게 지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해가 뜨면 밭으로 나가 어둠이 내릴 때까지 고된 노동을 멈추지 않는다. 국가에 귀속되지 않은 자투리땅을 3년에 걸쳐 개간해 고구마 농사를 지었지만 하루아침에 정부에 뺏긴 뒤 아버지는 집을 나간다. “어둠이 내려앉을 쯤에야 아버지는 힘이 다 빠진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손에는 한 무더기의 고구마 줄기가 들려 있었고 줄기 아래쪽에는 붉고 커다란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마지막 수확을 하고 온 아버지 앞에서 가족은 말문을 잃었다. 양말을 짜는 기계를 들고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던 큰아버지, 한평생 시멘트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넷째 삼촌의 인생사도 잔잔히 펼쳐진다. 문화대혁명의 격동이 서민에게 미친 영향도 상세히 그려냈다. 넷째 삼촌은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느라 손까지 다쳤지만 수리가 지연돼 인민에게 손해를 입혔다며 월급 절반이 깎인다. 초등학교 시절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던 저자는 한순간에 필기시험이 폐지되면서 공허를 느낀다. 고교 중퇴 후 군대에 들어가 25년을 보낸 뒤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는다. 책은 억지 감동을 유도하지 않고 차분한 묘사와 정제된 어법으로 일관한다. 척박한 삶 속에서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을 희생한 아버지들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뭉클하다. 단지 ‘아버지의 병세’ 등의 내용이 반복해서 등장하거나 가난을 키워드로 한 에피소드가 병렬식으로 이어져 다소 지루한 느낌도 준다. “중국에는 세 가지 현실이 존재합니다. 최근 급속히 번영하고 있는 중국의 현재, 그리고 ‘3년 대기근’ 등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있는 ‘은폐된 진실’, 마지막으로 어렵게 생활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잊혀져 버린 현실’입니다.” ‘은폐되고 잊혀져 버린 중국의 과거’를 젊은층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