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살아온 집을 예술인 위한 공간으로”

  • 동아일보

■ 원로시인 김남조씨, 효창동 자택 기증 뒤늦게 밝혀져

남편인 김세중 조각가가 타계한 이듬해인 1987년 사재를 털어 ‘김세중기념사업회’를 설립한 김남조 시인(왼쪽). 그는 “예술계 발전을 위해 썼으면 한다”며 57년간 살았던 서울 용산구 효창동 자택을 사업회에 기증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남편인 김세중 조각가가 타계한 이듬해인 1987년 사재를 털어 ‘김세중기념사업회’를 설립한 김남조 시인(왼쪽). 그는 “예술계 발전을 위해 썼으면 한다”며 57년간 살았던 서울 용산구 효창동 자택을 사업회에 기증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57년 동안 살았던 우리 집을 기증합니다. 예술인을 위한 공간으로 써주세요.”

조각가 김세중(1928∼1986)의 부인인 원로 시인 김남조 씨(85)가 서울 용산구 효창동 자택을 예술계 발전을 위해 기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층짜리 양옥집인 이 건물은 대지 560m²(약 170평), 건평 330m²(약 100평)으로 현재 시세는 약 30억 원이다.

김세중은 서울 광화문 충무공이순신장군상,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애국상’ 등을 남긴 1960, 70년대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 부인 김 씨는 한국시인협회장을 거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맡고 있는 문단 원로다.

김 시인은 5년 전 재단법인 김세중기념사업회에 효창동 집을 기증했지만 그동안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아 왔다. 사업회는 조각예술 발전을 위해 김 시인이 사재를 털어 1987년 설립한 재단이다. 지난해 5월에는 충무공이순신장군상의 저작재산권을 서울시에 무상 양도하기도 했다. 남편의 대표작과 함께 집까지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김 시인은 기증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전화 통화에서 몇 마디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재단에서 해마다 ‘김세중조각상’을 시상하는데 매번 시상식 공간을 마련하는 게 힘들어요. 그런데 우리하고 비슷한 무용이나 연극, 음악단체들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지요. 모든 예술인, 단체들이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김 시인에게 효창동 집은 각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수십 년간 남편은 조각을 하고, 자신은 시를 지으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3남 1녀를 키운 정든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 시인은 집을 헐고 새 건물을 짓기로 했다. ‘타인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여러 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 강당도 짓고, 젊은 조각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려면 넓은 주차장도 필요하겠죠. 본디 살림집이라 이런 공간들을 마련하려면 새로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새 건물에 자신의 자료들을 모아놓은 보관실을 마련할 예정이다. 남편의 작품들과 충무공이순신장군상 등을 만들었던 작업실도 일부를 보존한다. 주물로 만든 충무공 두상 등을 여기에 보관할 생각이다.

“작업실이 20평밖에 안 돼요. 충무공상의 시야가 약간 아래를 보는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아마 (남편이) 좁은데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다 보니,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렇게 만든 것도 같네요.”

시인은 다른 지역에 소유한 땅을 팔아 건축비를 마련할 예정이었지만 땅이 팔리지 않아 몇 년째 공사가 늦춰지고 있다. “제가 죽기 전에 재단이 자립할 공간을 만들어 놓고 싶습니다. 예술인 전부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할 겁니다. 그러기에 건물 이름에 남편 이름도, 제 이름도 넣지 않을 생각입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예술인#김남조#김세중#조각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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