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원 씨 ‘박완서와 네 남자들’이라는 건물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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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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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평도서관 뒤편 ‘박완서 자료관’ 설계 자문역 맡은 건축가 김원 씨

‘박완서 자료관’의 설계 자문역을 맡은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고인의 인간적인 크기에 맞고 최대한 예우를 갖춘 건물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박완서 자료관’의 설계 자문역을 맡은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는 “고인의 인간적인 크기에 맞고 최대한 예우를 갖춘 건물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2일은 소설가 박완서 선생(1931∼2011년)의 1주기였다. 고인이 남긴 마지막 소설집인 ‘기나긴 하루’(문학동네)가 출간되고 22권으로 새로 구성한 전집(세계사)도 나오는 등 고인의 문학적 발자취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와 달리 고인을 기리는 재단 설립이나 문학상 제정, 기념관 건립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고인은 생전 “책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남겼고, 유족이 그 뜻을 이어받아 기념물 건립 등을 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리시는 지난해 고인이 살던 집이 있는 경기 구리시 아천동 일대(아치울 마을)를 ‘박완서 마을’로 바꾸려던 계획도 접어야 했다.

그러나 ‘박완서 자료관’은 새로 지어진다. 구리시 인창동 인창도서관 안에 있는 66m² 규모의 ‘박완서 자료실’이 고인의 타계 이후 방문객이 늘어 좁아지자 구리시는 2015년 준공을 목표로 구리시 토평동 토평도서관 뒤쪽에 자료관을 짓기로 했다. 유족도 세상을 떠난 작가가 ‘책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는 데 도움을 줄 이 계획만큼은 허락했다. 고인의 장녀인 수필가 호원숙 씨는 “어머니가 생전에 자료실 건립을 허락하신 데다 애착도 많으셨다. 집에 있는 자료들도 추가로 (자료관에) 넣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꽃처럼 환하게 웃던 고인과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을 형상화할 건물은 어떻게 지어질까. 박완서 자료관의 설계 자문역을 맡은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69)를 설 연휴 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독립기념관, 국립국악당을 설계한 김 대표는 전북 고창군 미당시문학관(2001년 개관), 전남 보성군 태백산맥문학관(2008년 개관), 서울 관악구 미당 서정주의 집 복원(2011년 개관)에 참여하는 등 한국 문학계에 관련된 건축물과 인연이 깊다.

“지난해 9월 구리시에서 처음 제안을 받고 용지부터 둘러봤는데 옹색했죠. (토평)도서관 뒤에 주차장이 있는데 그곳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자료관을 짓겠다는 거였어요. 용지도 한 100평 될까.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김 대표의 건의에 따라 용지는 약 2000m²(600여 평)로 넓어졌다. “고인이 본인을 드러내는 일을 싫어하실 거라는 것을 저도 압니다. 하지만 고인을 기리고 재평가하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죠. 그분의 인간적인 크기만 하더라도 길이 잘 모셔야 할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지은 ‘문학관’들에서 방문객들은 작가를 만나고 작품과 소통한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시 ‘자화상’)라던 미당의 시문학관에는 높이 18.35m의 전망대가 섰다. 그 위에선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을 온전히 맞을 수 있다. 태백산맥문학관은 산줄기를 끊어 땅을 파고 들어가 앉아 있다. 민족의 아픈 역사를 오롯이 써내려간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반추하는 공간이 높고 화려한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완서 자료관’ 예정지인 경기 구리시 토평동 토평도서관 뒤편. 2015년 준공을 목표로 내년 말 착공에 들어간다. 구리시 제공
‘박완서 자료관’ 예정지인 경기 구리시 토평동 토평도서관 뒤편. 2015년 준공을 목표로 내년 말 착공에 들어간다. 구리시 제공
“박완서 선생님의 경우 기념관이 아니고 자료관이란 사실에 집중할 겁니다. 기념관은 고인을 추모하고 느끼게 하는 감각적인 접근 방법을 써야 하지만, 자료관은 자료 보관과 이용에 집중한 기능적인 건물이 돼야죠.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여성 문학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공간이 될 것입니다.”

생전에 고인을 몇 차례 만났다는 김 대표는 “굉장히 여성적이고 따뜻한 분이셨다. 함께 식사하는 내내 웃고 계신 게 인상적이었다”고 추억했다. 그는 고인의 아픔에도 주목했다. 고인은 아버지와 오빠, 남편과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고 이런 상실은 그의 문학 속에 승화됐다. “‘박완서와 네 남자들’로 자료관의 콘셉트를 생각 중인데, 더 고민해야 한다”며 김 대표는 말을 아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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