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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4일 “월북한 남측 국민 6명을 25일 오후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내겠다”고 통보했다. 북한에 억류된 이들에 대한 정부의 잇단 신원 파악 요구에도 침묵하던 북한 당국이 돌연 ‘송환 카드’를 먼저 꺼내든 배경과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이날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개성공단 현장 시찰을 허용하겠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판문점을 통해 조선적십자중앙위원장 명의의 전통문을 보내 억류 중인 한국 국민 6명의 송환 계획을 통지했다. 북측이 명단에서 밝힌 귀환 예정자는 윤모 씨(67) 이모 씨(65) 황모 씨(56) 김모 씨(44) 정모 씨(43) 송모 씨(27) 등 20∼60대 남성 6명이다. 이들은 중국에 머물다가 북한으로 들어간 ‘월북자’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신원이나 입북 경위, 목적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 중에는 2010년 2월 북한에 들어간 4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2010년 2월 26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우리 공화국에 불법 입국한 남조선 주민 4명을 단속해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은 이후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풀어달라는 정부의 요청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 北, 유화 제스처? ‘南 입북자 방치’ 부각? ▼북한은 3년이 넘게 지난 올해 6월 5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에서 “지금 공화국에는 불법으로 입국했다가 단속된 남한 주민이 여러 명 있다. 이에 대해 남조선 당국이 팽개쳐 두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의 존재를 다시 부각시켰다. 이어 이날 6명의 송환 계획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이들 6명 중 납북자나 국군포로, 재입북한 탈북자 같은 특별한 인사는 없고 전원 자진입북자인 것으로 안다”며 “25일 송환되는 대로 입북 이유와 경위, 국가보안법 등 현행법 위반 여부 등을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북한이 갑자기 이들을 돌려보내겠다고 밝힌 의도와 목적을 분석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달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불과 나흘 앞두고 무산시킨 뒤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인도주의적 사안을 앞세워 이를 무마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소위 ‘남남갈등’을 부추겨 남한 내부의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려는 전술적인 의도가 있다는 해석도 있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정부가 그동안 집요하게 송환 요청을 하지 않고 사실상 손놓고 있었던 문제를 북한이 먼저 풀겠다고 나선 것 아니냐”며 “이들을 풀어주겠다는 것이 남한을 향한 유화적 제스처가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송환 노력 부족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켜 박근혜 정부를 압박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이 국회 외통위 의원들의 개성공단 방문을 허용한 데에도 유사한 의도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정부의 대북정책을 놓고 민주당의 비판 목소리가 큰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이에 맞서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감 기간에 개성공단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대규모 현장 시찰이 이뤄지는 것은 처음이다. 방문 신청자는 안홍준 외통위원장과 여야 간사 등 외통위원 24명, 보좌진, 전문위원 등 모두 57명이다. 지난해 2월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와 외교통상통일위 소속 여야 의원 8명이 개성공단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당시는 국감 기간이 아니었다. 예상을 뒤집는 북한의 이번 결정에 대해 “북한이 남한과의 전반적인 관계 개선을 다시 시도하겠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북한이 최근 경제특구와 개발구 신설 계획을 잇달아 밝히며 외자 유치에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남한의 협력과 지원은 필수라는 것이다. 북한은 앞서 23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사무처의 운영 및 관리에 관한 부속합의서에 서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의 움직임에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메시지들이 혼재돼 있다”며 “북한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살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Initiative·계획 또는 발의)’ 구상을 실현하는 핵심 방안으로 ‘러시아를 통한 대북(對北) 우회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연결된 러시아 하산∼북한 나진 간 54km 구간의 철도를 활용한 남-북-러의 삼각 물류 협력이 그 핵심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전해졌다. 24일 정부 당국자 및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부는 다음 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남북한과 러시아를 이어 유럽까지 관통하는 이른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비롯한 유라시아 구상과 이를 위한 한-러 협력의 구체적 방안을 집중 검토하고 있다. 그 연결의 핵심 고리이자 경색된 남북관계 때문에 걸림돌로 남아 있는 북한 구간을 잇기 위해 우선 나진∼하산 연결철도 및 북한의 나진항을 이용하는 물류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9월 개통된 나진∼하산 구간과 이에 인접한 북한의 나진항 3호 부두는 러시아가 사용권을 확보하고 화물터미널 공사와 개보수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쪽에서 가져온 지하자원을 북한의 나진항까지 운송한 뒤 배를 이용해 부산항이나 다른 해외 지역까지 옮기는 식의 물류 사업에 한국이 동참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북한을 삼각 경제협력의 구도에 끌어들이면 장기적으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비롯한 안보협력의 고리에도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나진항의 개발 및 이를 위한 남북한과의 협력에 러시아 정부도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젝트의 1차 걸림돌은 한국의 포괄적 대북제재인 ‘5·24 조치’이다. 이 조치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북한에 직접 투자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에 한국이 투자하고 러시아가 다시 북한에 투자하는 ‘우회 투자’ 형식이 되면 이 조치를 피해갈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이 투자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이에 참여할 업체로는 대기업 P사 등이 거론된다. 그동안 논의돼 온 남-북-러 가스관 연결은 현실성이 부족하고 투자 위험도가 너무 크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논의가 지지부진해지자 정부는 결국 철도 쪽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나진항 프로젝트 등) 한국의 대(對)러시아 투자가 늘어나면 북한을 끌어안는 효과도 있다”며 “다만 이런 사업의 확대추진 여부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다 퍼뜨리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즉각 삭제하라’는 논평을 내고 강력 항의했다. 일본 외무성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에 관한 동영상’(사진)이라는 일본어 제목으로 1분 27초짜리 동영상(http://www.youtube.com/watch?v=TXg-NGVKuWI)을 이달 16일 유튜브에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여러분, 다케시마를 아십니까”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동영상은 일본 측에 유리한 문서를 증거처럼 보여주며 일본 영유권을 주장했다. 일본은 “17세기에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확립하고 이를 1905년 각료회의 결정을 통해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1951년 패전국 일본이 전승국 미국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한 섬에 다케시마가 들어 있지 않았던 점도 부각했다. 외교부 조태영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독도 영유권 훼손을 기도하려는 데 대해 일본 정부에 강력히 항의한다. 영상을 즉각 삭제할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날 구라이 다카시(倉井高志)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하고 정부의 유감과 항의를 담은 외교 문서를 전달했다. 그러나 일본 외무성은 23일 한국 정부의 강한 항의에도 인터넷과 동영상을 활용한 독도 영유권 홍보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또 ‘일본해’로 칭하는 동해 표기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입장을 담은 동영상을 만들어 연말까지 공개할 예정이라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이정은 기자 lovesong@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28일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해 온 20대 북한 지도자의 첫 정상회담 상대로 몽골 대통령이 나선 배경에는 △북-몽골 간 양자 교류 강화뿐만 아니라 △북-일 교섭의 중재자 역할을 하려는 몽골의 외교 전략 등도 깔려 있다는 관측이다. 22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28일 북한을 공식 방문해 김정은과 회담하고 양국 간 이슈와 지역 문제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우호관계를 지속해 온 몽골로부터 경제 개발을 위한 지원을 끌어내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몽골은 북한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750여 명의 노동자를 파견한 국가다. 북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몽골의 건설 현장에 투입돼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양국 간 고위급 교류도 강화되는 추세다. 몽골은 7월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의 대외정책고문 일행에 이어 9월에는 정부 경제무역대표단을 평양에 보냈다. 이들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강석주 내각부총리 등과 만나 양국 간 협력 방안 의정서까지 체결했다. 8월에는 북한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이 몽골을 방문해 대통령 및 사법상과 회담했다. 몽골은 북-일 교섭의 중재자 역할을 통해 외교적 이익을 얻으려는 노력도 해 왔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일본이 북한과 납치피해자 문제를 논의하는 ‘제3국 장소’로 활용돼 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납치문제담당상이 3월과 7월에 각각 몽골을 방문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과 몽골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일본을 포함한 삼자 관계도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이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 전거리교화소에 수감 중이던 원명화는 비품을 훔쳤다는 이유로 담당 보안원 김철수에게 심하게 구타당해 사망. 가해 혐의자는 함경북도 회령시 인민보안부 소속으로 교화소 8반 담당인 김창수. 1978년 10월생.’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최근 내놓은 ‘북한 인권 사건 리포트’의 일부다. 고문과 처형, 정치범수용소 구금 등 유형별로 정리된 북한 내 인권 침해 범죄 기록에는 가해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소속 등이 함께 적혀 있다. 북한 인권 침해 관련 가해(혐의)자의 구체적인 신상 정보들이 명시된 자료가 책자 형태로 일반 대중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북한 내 가해(혐의)자의 구체적인 신상을 이런 형태로 공개한 것은 이들 개인은 물론 김정은 지도부를 향해 ‘인권 침해 책임자의 신상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반드시 단죄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목적이다. 북한의 책임자들이 향후 처벌 가능성을 두려워해 인권 침해 수위를 낮추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센터 측은 설명했다. 이는 8월 활동을 시작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가능성을 열어 놓고 범죄를 입증할 자료를 모으는 활동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독일의 경우 통일 이전 서독은 동독의 인권 침해 사건들을 철저히 기록하고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 ‘잘츠기터 중앙문서기록보관소’에 보관했다. 당시 축적해 놓은 4만3000여 건의 자료는 이후 동독의 인권 침해를 단죄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은 “북한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인권 유린 행위들은 반드시 그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며 “북한 당국은 각종 폭행과 고문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해자의 정보들은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탈북자들을 상대로 면담 조사를 한 자료를 토대로 센터 내 검증위원회에서 여러 확인 작업을 거친 것이다. 이 리포트에 따르면 2007년 함북 청진시 나남구역 보안서의 구류장에 수감 중이던 이복희(여)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자는 당시 22세의 계호원 조광철이다. 이를 증언한 탈북자는 “이복희가 발가벗겨진 채 반죽음이 될 때까지 맞다가 새벽 3시경 숨졌다”고 증언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30년 전만 해도 통일이라는 표현에 다들 부정적이었어요. 그런 표현이 들어간 이름을 쓰지 말라고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로부터 압력도 많이 받았던 시절이지요. ‘나도 내 나름의 국가관과 통일관이 있다’며 끝까지 버텼습니다.” 신영석 평화문제연구소 이사장(76·사진)은 1983년 연구소 창립과 월간지 ‘통일한국’ 발행을 추진하던 때를 이렇게 술회했다. 북한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지나 연구소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때였다. 그런 시기에 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자 연구소가 내는 월간 ‘통일한국’의 발행인으로 이 분야에 뛰어든 그는 이후 30년간의 남북관계 흐름과 현안들을 빠짐없이 챙기고 기록해온 산 증인 중 한 명이다. 1996년부터 17년간 연구소 이사장을 맡았던 현경대 전 의원이 5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후임 이사장직을 맡았다. 24일 발행 30주년을 맞는 통일한국은 이제 전통을 자랑하는 북한 전문 잡지로 자리매김했다. 신 이사장은 “발행부수가 1만여 부에 불과한 전문지를 계속 내기 위해 후원금을 내주는 회원들을 들들 볶고 몇 명 안 되는 직원들을 스파르타식으로 몰아친 적도 많았다”고 했다.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신 이사장이 갖고 있던 땅과 재산을 팔아 사재를 털어 넣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을 알리려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조선향토대백과’ 편찬 사업으로 이어졌다. 평화문제연구소가 2000∼2005년 북한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토대로 만든 20권의 대백과에는 북한의 인물 지리 풍습 등 정보가 총망라돼 있다. 북한이 30년간 관련 자료를 조사, 정리해 놓고도 출판비용을 감당 못해 파일로만 갖고 있던 자료들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런 자료를 모아 책으로 탄생시킨 것은 지금도 연구소 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성과로 꼽힌다. 신 이사장은 이 밖에 30년간 계속해 온 연구소의 핵심 사업으로 해외에서 펼쳐 온 각종 학술행사와 글로벌 네트워킹을 들었다. 1980년대 초반 북한이 일본에서 총련계가 발행하는 ‘조선신보’를 해외의 한국 유학생들에게 뿌리며 대대적인 공작과 포섭활동에 나선 반면 한국은 이에 맞설 기본 자료조차 제대로 없었다는 것. 연구소는 미국 뉴욕과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에 지부 혹은 후원회를 만들고 ‘통일한국’ 잡지 등을 배포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신 이사장은 “북한 정권은 미워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분단국의 현실을 후대에까지 물려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이 아픔을 우리 세대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민간단체 국군포로송환위원회(위원장 김현 변호사)는 3년여 전 탈북했다가 중국에서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된 국군포로 정모 할아버지가 현재 북한의 교화소에서 복역 중인 것과 관련해 “정부가 하루빨리 정 할아버지를 한국으로 모셔 와야 한다”고 17일 촉구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도 요청했다. 이 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 시대의 영웅인 국군포로 어르신을 그 끔찍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게 할 수는 없다”며 “정부가 나서서 프라이카우프 방식으로라도 어르신과 그 가족을 모셔 올 것을 엄중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프라이카우프는 과거 서독이 동독에서 정치범을 데려올 때 그 대가로 돈을 지급한 방식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내가 청와대 깃대에 공화국 깃발을 꽂겠다”며 인민군 관계자들에게 무력통일 의지를 호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대북소식통이 입수한 북한 군 내부문건에 따르면 김정은은 군을 상대로 무력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발언했다. 김정은은 또 “적들과 총결사전을 벌여야 하며 통일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빈틈없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김정은의 정확한 발언 시점, 문건의 작성 시점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올 2∼5월 남북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기간에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8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김정은이 ‘3년 내 무력통일’을 수시로 호언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은 무력통일 야심을 갖고 있으며 또다시 3년 내로 통일한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게 북한군 관계자들의 얘기”라고 전했다. 정부는 김정은의 이런 호전적인 언행이 북한의 대남 정책과 군사 전략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호전적 언사를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도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 군부는 자기들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김정은 개인이 특별히 호전적인 행동을 하려는 조짐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은 최근 김정은이 평양의 물놀이장과 승마클럽을 비롯한 위락시설을 잇달아 방문하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 향상과 경제개발에 주력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3년여 전 탈북을 시도했다가 강제 북송된 80대 국군포로 할아버지가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북한의 교화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은 확인됐지만 현재 극심한 영양실조 등으로 건강 상태가 크게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16일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2010년 탈북 과정에서 중국에 억류돼 있다가 북송된 국군포로 정모 할아버지(85·사진)가 현재 함경북도 전거리교화소에 수감돼 있다. 정 할아버지는 탈북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5년형을 선고받고 3년째 복역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함께 복역하던 지인이 최근 형기를 마치고 교화소에서 나와 남측에 있는 대북소식통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정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한국군 5군단 3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1952년 인민군에 포로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오지탄광에서 노역을 하던 그는 2009년 8월 가족과 함께 탈북을 시도했으나 중국에서 공안에게 체포됐다. 중국 당국은 그와 가족을 6개월간 억류하고 있다가 끝내 북송시켜 버렸다. 당시 국군포로를 지원해온 국내 민간단체들은 물론이고 국회 등에서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 관련 부처들의 안일한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그의 탈북을 도왔던 한 대북소식통은 “정 씨가 2010년 중국에 있을 때도 이미 삐쩍 마르고 얼굴 한쪽이 마비돼 있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며 “교화소에서 건강이 훨씬 더 악화됐을 텐데 이대로 사망하지 않도록 어떻게든 도와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2015년까지 형을 살아야 하는데 현재의 건강 상태로는 버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전거리교화소는 ‘제2의 요덕수용소’로 불릴 만큼 수감자들에 대한 가혹한 처우로 악명 높은 곳이다. 수감자들은 벌목과 광산 노동 같은 강도 높은 노역에 동원되고 식사량도 충분치 않아 쥐나 뱀을 잡아먹는 경우도 흔하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그러나 북한이 국군포로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는 데다 최근 남북관계가 냉각되고 이산가족 상봉마저 무산된 상황에서 정부가 손을 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운영하는 (사)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은 “정부가 이미 3년 전에도 정 할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쳤다”며 “이번에는 ‘프라이카우프’ 방식을 적용해서라도 그를 빨리 국내로 송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라이카우프는 서독이 동독에 수감된 정치범들을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고 데려온 방식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전날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이산가족과 국군포로, 납북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프라이카우프를 비롯한 여러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해외에 설립된 국내 대기업의 현지 법인 직원을 포섭해 해당 기업의 국내 본사 전산망에까지 접속하는 ‘사이버 침투’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한의 정부기관이나 언론사 전산망, 국가기간망이 아닌 민간 대기업의 해외법인을 상대로 북한이 해킹을 시도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16일 검찰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의 대남 공작 부서인 225국(옛 대외연락부)은 지난해 중국에서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업체(SI)인 S사의 전산망에 접속할 수 있는 ID와 패스워드를 확보한 뒤 1년여 동안 S사의 전산망에 200여 차례 접속했다. 225국은 중국 내에 북한의 위장 무역업체 ‘북성무역’을 설립하고 공작원 채모 씨를 대표로 앉혀 이런 대남 사이버 침투를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채 씨는 S사 현지 법인의 중국인 여직원 위모 씨의 남편이 북성무역 직원으로 채용된 것을 계기로 위 씨에 대한 본격적인 포섭 작업에 들어갔고 결국 위 씨에게서 S사의 지사 및 본사 전산망에 접속할 수 있는 ID와 패스워드를 받아냈다. 위 씨는 업무용 PC의 외부 상시 반출 반입 권한을 갖고 있어 이 PC들을 채 씨에게 넘기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 당국은 위 씨의 PC에 저장돼 있던 자료들도 일부 북한 측에 넘어갔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핵과 경제개발의 병진을 선언하고 경제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시점임을 고려할 때 국내 대기업의 제품 생산 기술과 특허 등은 물론이고 비즈니스 전략 등을 노렸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최종적으로 정부 전산망 침투를 노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S사는 청와대와 국방부의 전산 시스템 구축에 참여한 업체다. 따라서 북한이 해킹한 자료는 이 회사가 구축해 운영하는 국가기간시설 전산망을 공격하는 분석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 당국은 남한을 상대로 한 북한의 사이버 침투 시도가 정부에 이어 민간을 대상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북한은 2011년 농협 서버와 청와대, 국회 등 주요 기관 사이트에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을 감행했다. 지난해와 올해에도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방식으로 언론사와 금융사 등의 전산장비를 파괴했다. 유동열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상대적으로 보안이 허술한 해외 법인의 직원을 포섭해 전산망에 침투하는 방식은 외부에서 시스템 방어망을 뚫는 기술적 해킹보다 훨씬 용이하게 서버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사이버 침투라는 것이다. 그는 “국가 기관이라면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대응할 수 있지만 사기업은 보안 점검을 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사건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피의자도 외국 국적일 경우 국내 수사 당국에 공소권이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검찰 관계자는 “8월에 국정원이 첩보를 제공해 왔으나 중국 현지 법인에서 현지인이 저지른 일이어서 우리에게는 공소권이 없다고 결론 내리고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보 당국은 위 씨 부부에 관한 범죄 자료를 중국 공안에 넘겨 수사토록 할 방침이다. S사 측은 “국정원이 조사를 벌인 것은 맞지만 뚜렷한 피해 사실이 확인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S사의 서버 해킹을 통해 정부 전산망에 접근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술적으로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반박했다.이정은·조건희·정호재 기자 lightee@donga.com}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이행 방안이 15일 통일부 국정감사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위해 추진 중이던 공동 투자설명회(31일 예정)가 이날 결국 무산된 것을 놓고 여야 의원들의 집중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감에서 “북한이 오전에 개성공단 사무처를 통해 ‘지금 같은 때에 투자설명회를 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앞서 11일 정부의 연기 통보에 대한 북측의 공식 답변이다. 류 장관은 “외국 기업들에 개성공단 투자를 하라고 하려면 3통(통신 통행 통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며 “상황 때문에 설명회를 좀 미룬 것은 속도 조절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조치”라는 지적이 나왔다. 새누리당 심윤조 의원은 “결국 외국 기업들을 초청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날짜만 잡아놓고는 설명회를 관둔 것 아니냐”며 “(그런 식의 진행은) 긴 호흡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보겠다는 장관의 말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의 정문헌 의원은 “정부가 너무 원칙만 고수하고 북한의 변화만 기다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며 “유연성이 떨어지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추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정부가 이달 31일 개성공단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남북한 공동 투자설명회를 열지 않겠다고 북측에 통보했다. 개성공단 내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던 투자설명회가 무산됨에 따라 개성공단의 국제화 논의도 당분간 진행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일부 김의도 대변인은 14일 “최근 남북 간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 협의가 지연되는 상황과 이에 따른 외국 기업의 반응 등을 고려할 때 현시점에서는 당초 남북 간에 합의한 설명회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투자설명회의 무기 연기를 밝혔다. 김 대변인은 “3통 문제 협의 등 추후 여건을 봐 가면서 북측과 설명회 일정을 다시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8월 개성공단 재가동과 함께 전자출입체계(RFID) 구축과 인터넷, 휴대전화 연결 등을 논의하기 위한 ‘3통 분과위원회’ 운영에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9월 25일)를 불과 나흘 앞두고 이를 무산시킨 이후 3통 분과위원회도 아무런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연기를 통보했다. 정부는 지난주 3통 분과위원회 재개를 다시 촉구했으나 북측은 묵묵부답 상태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태도에 대해 “개성공단 재가동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이후 약속했던 시스템 개선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른바 ‘먹튀(먹고 튀었다)’라는 지적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이 재가동된 이후 박근혜 대통령 실명 비난을 비롯한 거친 대남 비방을 연일 쏟아 내고 있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개성공단 공동 투자설명회의 무산은 개성공단 국제화 추진의 차질로 이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개성공단의 국제화는 정부가 북한의 일방적인 가동 중단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추진해 온 핵심 사안이다. 박 대통령도 국제화를 거듭 강조하면서 엔리코 레타 이탈리아 총리에게 직접 투자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공동 투자설명회는 해외 기업들을 상대로 개성공단의 투자 이점을 설명하고 투자 의사를 타진하는 ‘개성공단 국제화의 첫 단추’로 기대를 모았던 행사다. 한편 정부의 이런 결정에 대해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된 정부의 대응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도 정부 안팎에서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3통 관련 시스템 개선의 지연 문제가 본격 제기된 지난주 초까지 “진도가 안 나간다고 보는 것은 정확지 않다. 기술적인 사안들이 많고 대부분 우리가 준비해 줘야 할 우리 몫”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10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제를 언급하며 남측 인사들의 방북 시 발언도 공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을 놓고 “회의록의 녹음(음원)파일 공개를 막으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육성이 공개되면 북한은 이를 이른바 ‘최고존엄 모독’으로 받아들일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된 6월에 이미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방북 시) 행적과 발언들을 전부 공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10일 비슷한 경고를 내놨다. A4 용지 2장 분량에 “초보적인 대화 예의와 원칙도 모르는 천하 불한당”이라는 식의 일방적 비난과 훈계를 담았다. 회의록에 담긴 김정일의 발언 내용이 이미 공개됐는데도 북한이 이처럼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이미 사망한 그의 육성이 남한에서 공개돼 미디어를 통해 방송되는 상황을 매우 예민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본다. 김정일은 대중 앞에서 공개연설을 한 게 1992년 딱 한 차례였을 정도로 목소리 공개를 꺼렸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이 김정일의 신비감을 강조하면서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그의 육성을 북한 주민들에게 들려준 적이 거의 없다”며 “내용을 떠나서 김정일 육성이 공개된다는 것만으로도 북한이 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도 “김정일이 남한 대통령에게 내놓은 솔직한 발언들이 육성으로 적나라하게 공개되면 북한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최고존엄 모독’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이정은·황승택 기자 lightee@donga.com}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정국에 갇혀 속수무책으로 맞고 있는 민주당이 10일 회의록을 둘러싼 정쟁 종식을 제안하면서 탈출구 모색에 나섰다. 여권의 회의록 공세를 ‘소모적 정쟁’으로 몰아세우면서 수세 국면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이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24시 비상국회 운영본부 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이 없었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정치권에서 정쟁을 할 이유가 없다”며 “정쟁을 종결하자”고 촉구했다. 전 원내대표는 “‘NLL을 수호하라’는 노 전 대통령의 원칙이 확인되고 있고, 회의록도 국가정보원과 ‘봉하 이지원’(e知園·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에 있는 만큼 새누리당은 수사를 검찰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정쟁을 유도하는 일이 없도록 조용히 수사해 결과를 밝히면 될 문제”라고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 “노무현 정부가 연산군도 하지 않은 ‘사초(史草) 폐기’를 했다” 등 여당의 집요한 공세에 일일이 맞대응하다가는 회의록 정국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봉하 이지원과 국정원에 보관돼 있는 회의록 초안과 수정본을 대조하자” 등의 주장을 펴고 있는 문재인 의원 등 친노(친노무현) 진영에 대해서도 자제를 요청한 것이란 관측도 있다. NLL 정국이 계속될 경우 14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실정(失政)을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이 꼬일 수밖에 없다. 비공개로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새누리당은 NLL 정국으로 정기국회를 덮어버리겠다는 생각이다. 일일이 맞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길 대표가 ‘국회 복귀’ 일성으로 “민주당은 대안적 비판자가 되겠다”고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문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검찰은 정치를 하지 말고 수사를 하라. 짜맞추기 식 수사의 들러리로 죄 없는 실무자들을 소환하지 말고 나를 소환하라”며 검찰 수사를 정면 비판했다. “검찰의 최근 남북정상회담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2009년 ‘정치 검찰’의 행태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고도 했다. 검찰이 밝힌 정상회담 회의록 ‘초안 삭제’에 대해서는 “문서 보고 후 대통령의 수정 지시나 보완 지시가 있으면 그 문서는 결재가 끝나지 않은 문서다. 종이 문서로 치면 반려된 문서”라며 “보완 지시에 따라 수정 보고가 되거나 될 예정이면 앞의 결재가 끝나지 않은 문서는 이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완결된 문서’ ‘이관해야 할 문서’라고 주장하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한 당직자는 “지도부의 속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왜 자꾸 NLL 정쟁에 불을 지피느냐는 것이다. 새누리당 강은희 원내대변인은 “문 의원은 지금이라도 자진출두해서 쌓인 의혹들에 대해 당당하게 밝히라”고 비판했다. 한편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검찰 수사와 관련해 “최고 존엄에 대한 우롱”이라며 반발했다. 조평통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북남 수뇌분들의 담화록이 대결광신자들에 의해 모독당하고 있는 현 사태를 절대로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담화록(회의록)을 공개할 내기(를) 한다면 우리 역시 남조선 위정자들과 특사들이 우리에게 와서 발라(비위) 맞추는 소리를 한 것을 전면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북한의 이 같은 반응은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2002년 5월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및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다. 조평통은 국정원에 보관돼 있던 회담록이 공개된 6월 26일에도 “역대 괴뢰 당국자치고 평양을 방문했던 그 누구도 (저자세 논란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민동용·이정은 기자 mindy@donga.com}

‘아이가 낮이든 밤이든 집 안이나 밖에서 하루에 먹은 모든 것에 표시해 주십시오. 죽 빵 밥 국수 등 곡물 식품/감자 및 감자로 된 식품/콩 완두 견과류 또는 씨로 만든 식품/후추 파슬리 간장 마늘 생선가루 같은 양념….’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과 세계식량기구(WFP),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말 북한 영유아 및 임산부를 대상으로 영양실태 합동조사를 하면서 사용한 설문지 내용의 일부다. 22종류로 세분된 식품군이 구체적인 예시와 함께 제시돼 있다. 야채도 황색채소와 녹색채소로, 유제품도 우유와 치즈 등으로 일일이 구분돼 있어 시험을 치듯 꼼꼼하게 적어야 한다. 국제기구들은 북한의 ‘히든 헝거(Hidden Hunger·숨겨진 굶주림)’를 찾아내기 위해 이처럼 세심한 모니터링을 통한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외 전문가들은 “영유아 등 취약 계층의 빈곤과 필수영양소 결핍 같은 히든 헝거를 해소하려면 그 대상에 맞는 ‘맞춤형 지원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노 액세스 노 푸드’ 원칙 세워나가야 유니세프는 8월 한국 정부가 집행을 의결한 604만 달러의 대북 지원금으로 북한에 영양치료식과 의약품 등을 전달하기 위한 절차에 최근 착수했다. WHO도 정부가 지난달 26일 의결한 680만 달러의 자금 집행을 곧 시작할 예정이다. 국제기구들은 이 과정에서 엄격한 모니터링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No Access No food(접근할 수 없는 곳에는 지원하지 않는다)’의 원칙을 입버릇처럼 언급한다. 평양에 상주하는 디르크 슈테겐 WFP 북한사무소장은 “7명의 WFP 인원이 1년 내내 북한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모니터링을 한다”며 “예전에는 우리 직원들이 북한말을 잘 몰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문제는 한국 교포나 3세를 채용하는 것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WFP가 제공하는 고영양 식량은 보관 박스뿐만 아니라 내용물에도 선명한 로고가 찍혀 있기 때문에 장마당(북한의 시장 격) 등으로 빼돌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WFP는 최근 대북 지원의 명칭을 ‘대규모 식량 지원’에서 ‘푸드 어시스턴트’로 바꿨다. 북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영양식을 북한 내부의 공장에서 직접 생산해 지원하는 방식이라는 뜻을 앞세워 식량의 전용(轉用) 우려를 불식하려는 의도다. 유니세프의 크리스토퍼 드 보노 아시아지역본부 홍보담당 본부장은 “북한에 들어가 있는 유니세프 팀 전체가 ‘노 액세스 노 푸드’의 원칙에 따라 매우 집중적이고 엄격한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세프는 영양식 지원 대상인 탁아소나 보육원에 제대로 전달됐는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어린이들의 키와 몸무게, 팔뚝 굵기를 정기적으로 체크한다. 가정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설문조사하는 방식도 병행한다.○‘히든 헝거’에 맞는 맞춤형 지원 모델 필요 국제기구들은 짧은 기간에 수시로 진행하는 모니터링 외에 정기적으로 북한식량 실태와 영유아 등 취약계층의 영양 상태 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한다. 매년 식량실태 보고서를 내온 WFP와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27일부터 2013년도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기후와 작황은 물론이고 곡물 수입량, 환율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각종 통계 및 분석, 수치를 동원해 완성하는 보고서는 언뜻 보면 난해한 수학 논문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상세하다. 이들이 북한의 산간지역 등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본 뒤 작성하는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대북 식량지원 예산을 배정하는 주요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의 외교부와 통일부 당국자들도 열독하는 자료다. 그러나 국제기구들이 철저하다고 자부하는 실태조사와 모니터링 결과조차 때론 정확도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통제가 심한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결국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취약계층별 맞춤형 지원 모델을 만들어서 강화해 나가는 것이 ‘히든 헝거’ 해결의 핵심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통일연구원 이금순 연구원은 “대북 지원에 있어서 타깃을 좁혀야 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 어린이도 3세 이하인지, 5세 이하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선택하고 집중해야 현실적인 대응 방안도 나오고 그 효과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은 “2년 주기로 지원품목과 수량, 시기를 예고해 집행하되 북한이 협조하지 않으면 중단하는 식의 ‘인도적 대북지원 사전 예고제’도 히든 헝거 해결을 위한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단계별 맞춤형 안보 전략을 짜듯이, 히든 헝거에 대해서도 계층별, 지역별, 수준별 맞춤 정책을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윤지현 교수는 “곡물 같은 탄수화물 섭취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고 해도 뇌를 비롯한 신체발달에 필수적인 미량영양소 공급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이런 부분까지 적극적으로 챙겨야 통일 후 남북어린이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정은·김철중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에 단 한 명의 존엄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5000만의 존엄이 있다. 개개인이 모두 존엄인 우리 국민을 위협하는 언사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 통일부는 8일 이 같은 내용의 ‘북한의 대남 비방중상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북한이 “모든 군부대에 작전 동원태세를 지시했다”고 밝힌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를 내보낸 지 3시간 반 만의 대응이다. 통일부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확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들어 정부가 통일부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는 성명이나 공식 입장은 빈도가 잦아졌고 대응 속도도 빨라졌다. 북측이 내놓는 주장과 논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거나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내용도 길어지고 있다. 북한의 거친 대남 비방을 더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난과 관련해 ‘최고 존엄’이라는 북한의 상투적 표현을 역(逆)으로 활용해 맞받아치고 있다. 북한에서 ‘최고 존엄’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및 그 직계 가족을 지칭하는 표현.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의 추문 의혹을 담은 보도에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고 발끈하면서 박 대통령에 대해서 “격(格)에 맞게 입을 놀리라”거나 “함부로 내뱉는 악설이 불소나기를 자초할 것”이라는 식으로 위협 혹은 훈계하는 식이다. 정부는 이를 고스란히 차용해 “대한민국에는 5000만의 존엄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하는 상황을 더이상은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제대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며 “잘못된 남북관계 대응 방식을 바로잡겠다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추가 논평이나 대변인 발언 형식으로 재반박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9일 또다시 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진실로 ‘국가원수 지칭’ 문제의 해결을 바란다면 우리에 대한 비방중상 놀음을 중지하는 실천적 행동을 먼저 보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부인 이설주가 24일 만에 공개 석상에 나타났다. 조선중앙TV는 9일 이설주가 김정은과 함께 김일성종합대 교육자 살림집(주택) 준공식에 참석해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을 보도했다. 이설주의 추문과 관련해 단원들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은하수관현악단의 노래도 내보냈다. 이설주는 지난달 15일 김정은과 함께 국제역도선수권대회를 관람한 뒤 공개 석상에서 자취를 감춰 은하수관현악단 추문 사건과 관련된 신병 이상설이 돌았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8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은하수관현악단 일부 단원이 추문으로 처벌됐지만 이설주의 연루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 북한 평양 시내에 택시가 늘어나고 밤거리엔 불빛도 많아졌다고 최근 방북한 인사들이 전했다. 그러나 영·유아 등 취약계층의 소리 없는 굶주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필수 영양소 결핍 문제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런 북녘의 ‘히든 헝거(Hidden Hunger·숨겨진 굶주림)’의 실태와 그것을 찾아 개선하려는 국내외 단체들의 노력, 그리고 근본 해법에 대한 고민 등을 3회 시리즈로 연재한다. 5월 30, 31일자의 ‘굶주리는 북녘’ 상하 시리즈의 2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다. 》 “이 아이들이 몇 살로 보이나요?” 지난달 중순 태국의 수도 방콕에 위치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아시아지역본부 사무실. 오시다리 겐로 아시아지역본부장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담겨 있는 몇 장의 북한 어린이 사진을 보여줬다. “예닐곱 살?”이라는 기자의 말에 오시다리 본부장은 고개를 저으며 “열 살”이라고 말했다. “열 살의 한국 아이들은 사진 속 아이들보다 키도 훨씬 크고 건강하지 않습니까?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지 못한 북한 어린이들은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정신도 건강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극명한 (남북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WFP의 존재이유 중 하나입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의 아시아 허브’라고 불리는 방콕에서 북한의 이런 히든 헝거를 찾아서 해소하려는 오시다리 본부장 같은 국제기구 관계자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북한의 외형적 호전 속에 ‘감춰진 굶주림’ 5월 방북했던 오시다리 본부장은 “주민들이 과거보다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듯 보였다”며 “홍수 태풍 같은 외부 충격이 올해는 줄어든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제기준에 비춰 북한의 영양공급 상태는 여전히 크게 열악하다고 WFP 측은 설명했다. 올해 3월 발표된 ‘2012 북한 영양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5세 이하의 어린이 6만8000여 명은 급성영양실조를 겪고 있고 이 중 1만 명은 생명이 위급한 위험 수위에 놓여 있다. 지역별 편차도 커서 양강도나 자강도의 급성영양실조 비율은 평양(2.3%)의 3배에 육박하는 6% 수준이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의 크리스토퍼 드 보노 아시아담당 대변인도 “북한의 식량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고는 해도 외부의 충격이나 변수에 크게 취약하다”며 “국제기구의 지원이 조금만 줄어도 식량과 백신 공급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WFP는 ‘긴급구호-회복-개발’의 3단계 중 북한에서 현재 2단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연간 4000t 분량의 어린이용 영양 비스킷,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강한 식품, 슈퍼시리얼 등을 북한 내 7개 공장에서 직접 생산해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왔다. 북한 내에 20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며 관련 업무를 챙기고 있다. 유니세프의 경우 급성영양실조 등 상태가 심각한 아동을 중심으로 ‘영양치료식’ 제공 같은 긴급구호에 집중하고 있다. 유니세프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생산한 뒤 직접 북한으로 운송하는 이 치료식은 아이들이 먹기 편하게 걸쭉한 잼 형태로 만들어진 가공식품이다. 달짝지근한 땅콩버터 맛이 나는 이 치료식의 봉지포장 1개는 500kcal에 이른다.○ 북한 어린이의 숨겨진 빈곤=영양소 결핍 북한에서는 쌀밥이나 옥수수죽 등으로 탄수화물 섭취를 어느 정도 하는 어린이들의 경우에도 비타민과 미네랄, 철, 요오드 같은 미량원소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 언론에 공개되는 북한 탁아소나 학교의 급식 장면에도 국과 밥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다른 반찬은 찾아보기 어렵다. 식품군의 종류가 극히 한정돼 있다 보니 성장에 필수적인 단백질은 물론이고 미량원소들도 만성 부족인 경우가 많다.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이를 “히든 헝거 속의 히든 헝거”라고 부른다. 소외계층인 영·유아들이 식량 배급 등에서 소외되면서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이중, 삼중의 굶주림을 겪는다는 설명이다. 유니세프 관계자는 “특히 생후 6∼59개월 아동들의 경우 비타민A를 보충하는 것이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필수 영양소의 경우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충분히 공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임신부 지원에도 집중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트리엔 구스 WFP 아시아지역 영양 어드바이저도 “초기의 발육 부진은 어린이들의 향후 성장에 되돌릴 수 없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북한에서 2세 미만의 영·유아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니세프는 조그만 개별 사탕봉지 크기로 포장된 복합미량 영양보충제 가루를 만들어 북한 어린이들에게 제공해 왔다. 크리스 히라바야시 유니세프 도쿄사무소장은 “소량만이라도 제때 제공하면 아이들의 뇌 발달과 면역력 증진, 균형 잡힌 신체 성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지원 재개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의 전반적인 대북지원 사업은 최근 후원금 감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올해 2월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유럽을 비롯한 ‘큰손’ 후원국들의 지원 규모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WFP는 원료를 구매할 자금이 부족해 5월에 7개 영양 비스킷 공장 중 6개가 문을 닫기도 했다. 클라우디아 폰 로엘 WFP 공여국장은 “당시 60만 명의 아이들에게 비스킷 공급을 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달에 대출을 받아서 다시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방콕=손영일 기자·김철중 기자 scud2007@donga.com}
북한 황해북도 평산 지역의 학생들은 요즘 결석하는 경우가 잦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대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식(主食)은 시래기에 ‘콩또래(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섞어 끓인 것. 쌀은 물론이고 옥수수 같은 곡식조차 밥상에 오를 때가 거의 없다. 하루 두 끼 식사를 하면 잘 먹은 날이다. 이 지역에 사는 북한 주민 A 씨(49)는 최근 한국에 사는 탈북 지인들과의 통화에서 이런 상황을 전했다. A 씨는 “어른인 나도 배가 고픈데 어린아이들은 오죽하겠느냐”면서 “북한의 식량 사정이 나아졌다는 얘기를 우리 동네에서는 실감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해온 국내외의 구호 단체와 기구들이 북한의 이런 ‘히든 헝거(Hidden Hunger·숨겨진 굶주림)’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히든 헝거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에서 △탄수화물 위주의 구호품이 빚은 다른 영양소 결핍 △구호 손길이 잘 닿지 않는 빈곤국가 내 취약계층이나 취약지역의 굶주림 등을 일컫는 용어이다. 최근 북한의 식량 사정은 통계적으로는 다소 개선되는 추세이지만 지역 간, 계층 간 편차는 여전히 극심하다는 것이 국내외 기구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WFP의 디르크 슈테겐 북한사무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북한의 5세 이하 170만 명 중 47만6000명(28%)이 발육 부진을 겪고 있는 데다 영양소의 불균형 상태도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는 북한의 심각한 ‘히든 헝거’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WFP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27일부터 2013년도 북한의 식량 사정 조사를 시작했다. 합동조사팀이 북한 전역을 돌면서 식량 실태를 파악하고 식량 수급 상황과 올해 작황 등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다음 달에 나오는 보고서 초안은 국제기구들의 향후 대북 지원 방향 및 규모를 결정하는 바탕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08년 170만 t까지 치솟았던 북한의 곡물 부족량은 지난해 50만 t 규모까지 줄어든 상태다. 올해는 풍년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곡물의 고른 배분이 이뤄지지 않는 데다 채소와 육류 같은 다른 식량은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든 헝거(Hidden Hunger)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에서 빈곤 국가 안에서 지원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영·유아 등 취약 계층과 시골 같은 취약 지역의 굶주림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쓴다. 영·유아 및 어린이가 탄수화물 위주의 구호품만을 지원받는 바람에 미네랄 비타민 등 다른 필수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신체 및 뇌 발달에 손상을 입는 현상도 일컫는다.이정은 기자·방콕=손영일 기자 lightee@donga.com}

막 두만강을 건너 전달된 종이 박스의 모서리는 축축했고 군데군데 흙이 묻어 있었다. 겉면에 중국산 오디오 그림이 붙어 있는 가로 60cm, 세로 40cm 크기의 박스를 열어젖히자 흰색 무명천으로 싼 유골이 나왔다. 두개골과 대퇴부, 척추 등 30여 개의 크고 작은 뼈들은 검게 변색돼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난달 11일 북한에서 반출된 국군포로 손동식 씨의 유해를 가장 처음 접한 동아일보 고기정 베이징특파원이 전해 온 장면은 참담했다. 고 특파원이 만난 ‘브로커’는 “삼엄한 국경 경비를 피해 접경지역의 강 옆 수풀에 몇 시간 숨어 있다가 간신히 (유해) 박스를 갖고 나왔다”고 말했다. 기자가 한 대북 소식통에게서 ‘국군포로 유해를 사상 처음으로 민간 차원에서 온전히 반출하려는 시도’를 우연히 듣게 된 것은 9월 초. 그러나 첫 보도(9월 11일자 A1면)는 유해가 북한 국경을 건너 중국 모처에 안전하게 보관된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지면에 실렸다. 하지만 유해가 조국 땅을 밟기까지에는 여전히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는 유해 반출을 시도한 손 씨의 딸 명화 씨의 요청으로 3차례 관계 부처 대책회의를 열고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해결책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유골의 유전자(DNA)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원과 예우의 범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딸 명화 씨와 정부 관계자들 사이의 물밑 논의 과정에서 거친 언사가 오가기도 했다. 정부가 손 씨의 유해를 최대한 예우키로 최종 결정한 것은 이달 3일 오후. 하지만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파악한 기자에게 “안전하게 귀국할 때까지 보도를 연기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호소했다. 고민 끝에 다시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국방부는 4일 오전 유해 봉환 시점까지 비보도(엠바고)를 전제로 관련 내용을 출입기자들에게 사전 브리핑했다. 기자로서는 눈 뜨고 단독보도를 날려 버린 셈이다. 6·25전쟁 이후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는 1만9000여 명이고 현재 북한에 생존 중인 국군포로는 50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북한에 묻혀 있는 국군포로는 1만8000여 명이나 된다. 손 씨의 경우처럼 어렵고 비밀스러운 봉환 시도가 재연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정식으로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하고 당당하게 모셔 올 수 있어야 한다. 알고도 쓰지 못하는 기자의 안타까운 기다림과 침묵도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이정은 정치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