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석 이사장 “통일字 빼라는 中情압력 버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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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문지 ‘통일한국’ 발행 30주년… 신영석 평화문제연구소 이사장

“30년 전만 해도 통일이라는 표현에 다들 부정적이었어요. 그런 표현이 들어간 이름을 쓰지 말라고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로부터 압력도 많이 받았던 시절이지요. ‘나도 내 나름의 국가관과 통일관이 있다’며 끝까지 버텼습니다.”

신영석 평화문제연구소 이사장(76·사진)은 1983년 연구소 창립과 월간지 ‘통일한국’ 발행을 추진하던 때를 이렇게 술회했다. 북한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지나 연구소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때였다. 그런 시기에 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자 연구소가 내는 월간 ‘통일한국’의 발행인으로 이 분야에 뛰어든 그는 이후 30년간의 남북관계 흐름과 현안들을 빠짐없이 챙기고 기록해온 산 증인 중 한 명이다. 1996년부터 17년간 연구소 이사장을 맡았던 현경대 전 의원이 5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후임 이사장직을 맡았다.

24일 발행 30주년을 맞는 통일한국은 이제 전통을 자랑하는 북한 전문 잡지로 자리매김했다. 신 이사장은 “발행부수가 1만여 부에 불과한 전문지를 계속 내기 위해 후원금을 내주는 회원들을 들들 볶고 몇 명 안 되는 직원들을 스파르타식으로 몰아친 적도 많았다”고 했다.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신 이사장이 갖고 있던 땅과 재산을 팔아 사재를 털어 넣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을 알리려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조선향토대백과’ 편찬 사업으로 이어졌다. 평화문제연구소가 2000∼2005년 북한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토대로 만든 20권의 대백과에는 북한의 인물 지리 풍습 등 정보가 총망라돼 있다. 북한이 30년간 관련 자료를 조사, 정리해 놓고도 출판비용을 감당 못해 파일로만 갖고 있던 자료들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런 자료를 모아 책으로 탄생시킨 것은 지금도 연구소 내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성과로 꼽힌다.

신 이사장은 이 밖에 30년간 계속해 온 연구소의 핵심 사업으로 해외에서 펼쳐 온 각종 학술행사와 글로벌 네트워킹을 들었다. 1980년대 초반 북한이 일본에서 총련계가 발행하는 ‘조선신보’를 해외의 한국 유학생들에게 뿌리며 대대적인 공작과 포섭활동에 나선 반면 한국은 이에 맞설 기본 자료조차 제대로 없었다는 것. 연구소는 미국 뉴욕과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에 지부 혹은 후원회를 만들고 ‘통일한국’ 잡지 등을 배포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신 이사장은 “북한 정권은 미워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분단국의 현실을 후대에까지 물려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이 아픔을 우리 세대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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