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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쓸이 어업 중단하라.’ 올해 9월 26일 오전(현지 시간) 태평양 한가운데 피닉스제도 인근에서 참치 남획을 반대하는 한글 현수막이 펼쳐졌다. 국제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가 모는 고속보트 위에서 현수막을 든 사람은 한국인 송준권 씨(39)다. 이날 송 씨는 한국 국적 원양어선 주위를 맴돌며 ‘지속 가능한 어업 이행’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송 씨는 그린피스가 운항하는 에스페란자호를 타고 태평양 도서국 해역을 돌며 불법 어업을 감시하는 ‘그린피스 태평양 해양보호 캠페인 2011’에 참가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9월 출항한 배에는 20개국 활동가 32명이 승선했다. 동아일보는 태평양을 누비며 그린피스 활동가로 활약하는 송 씨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송 씨가 탄 고속보트는 어획량과 불법 어획물 유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원양어선으로부터 승선 허가까지 받았지만 어선 측은 태도를 바꿔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때 송 씨의 눈에 선박 뒤편에 걸린 상어지느러미(샤크스핀)가 들어왔다. 송 씨는 “참치 낚싯바늘에 상어가 걸리면 값나가는 지느러미만 잘라내고 산 채로 바다에 던져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참치 남획이 심각한 태평양에서 상어 돌고래 바다거북 바닷새까지 마구잡이로 잡히고 있다”고 했다. 송 씨는 그린피스가 한국 선박을 만났을 때 통역을 맡아 해양 보호의 중요성을 알린다. 송 씨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한국이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참치를 태평양에서 잡으면서 참치 보호는 소홀히 해왔기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과거 수차례 불법 어획을 하는 한국 어선을 적발하기도 했다. 송 씨는 “한국 일본이 무분별하게 참치를 남획해 태평양 수자원이 눈에 띄게 줄어 원주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한국도 해양 보호와 도서국가 주민의 권익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송 씨는 그린피스의 활동이 장기적으로 국내 참치업계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 유수의 참치 업체가 공정무역 흐름에 따라 무분별한 포획을 자제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참치 공급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여서 그린피스의 감시 활동을 통해 국내 업체들도 장기적인 생존 전략을 짜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송 씨는 “한국 어선이 무분별하게 참치를 잡아들이다간 시장에서도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송 씨는 긴급구호가에서 그린피스 활동가로 변신했다. 2005년부터 몽골 도미니카공화국 아이티 등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으로 활약했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때는 발생 다음 날 곧장 아비규환으로 변한 현장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송 씨는 “해외 구호활동을 하면서 가난이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환경보호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린피스와 함께 일하기 위해 에스페란자호에 올랐다”고 말했다.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송 씨는 한국에서 친구와 함께 시원한 맥주를 마시던 시간이 가장 그립다고 했다. 이곳에서도 가장 큰 힘은 동료다. 송 씨는 “활동가 32명이 그린피스에서 캠페인을 벌인 시간을 합치면 205년이나 된다”며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작은 참치캔 속에 담기는 많은 이야기를 한국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공정무역 (Definition of Fair Trade)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 주민에게 삶의 기반이 되는 어족자원이나 식량까지 가로채거나 자연환경을 파괴하며 생산한 상품 소비를 거부하는 운동을 말한다. 이러한 상품을 생산하느라 소외된 노동자에게 보다 좋은 조건을 제공해주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동통신업계가 100만 명을 돌파한 60대 이상 스마트폰 사용자를 겨냥해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내놓고 있다. 업계는 스마트폰 이용요금을 내리고 노인도 사용하기 편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스마트폰 사용 문턱을 낮추고 있다. SK텔레콤은 국내 처음으로 만 65세 이상 실버 고객을 위한 ‘실버스마트 15’ 요금제를 7일 선보인다. 이 요금제는 실버 고객이 별도 데이터요금제에 가입하지 않고도 월 1만5000원에 100MB 데이터를 기본으로 사용할 수 있다. SK텔레콤 장동현 마케팅부문장은 “날씨 확인, e메일, 뉴스보기 등 생활에 필요한 무선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면서 요금부담을 줄이려는 실버 고객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며 “실버 세대의 스마트폰 이용이 늘어나면 연령별 정보 격차를 대폭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실버 스마트족을 위한 쉽고 편리한 스마트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LG 스마트폰 전용 ‘이지 홈(Easy Home)’ 프로그램은 화면 구성을 단순화하고 아이콘 및 글자 크기를 확대해 스마트폰을 처음 접하는 실버 세대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메뉴 아이콘이 가로 3개, 세로 4개로 구성됐을 경우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는 자체 연구 결과에 따라 아이콘 배열도 새롭게 했다. LG전자 MC사업본부 나영배 전무는 “실버 스마트족이 빠르게 늘고 있어 쉽고 편리한 스마트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중장년층을 위해 기본 탑재 메뉴보다 아이콘 크기를 130%로 확대한 ‘큰 글씨 홈 기능’을 제공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 마포경찰서는 혼자 자던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훔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강간치상 등)로 입건된 미8군 제1통신여단 소속 R 이병(21)을 기소 의견으로 2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R 이병은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고시텔에서 자고 있던 A 양(18)을 성폭행하고 노트북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고시텔 폐쇄회로(CC)TV 화면과 현장에서 나온 유전자(DNA) 등을 통해 R 이병을 피의자로 특정하고 수차례 불러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R 이병이 노트북을 훔친 것은 인정했지만 성폭행 혐의에 대해선 계속 부인했다”며 “DNA 감정 결과와 피의자 진술의 모순점 등을 볼 때 R 이병의 혐의가 인정돼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동의안의 국회 처리에 대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여론이 시간이 갈수록 부정적 성향이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소셜미디어분석업체 ‘소셜메트릭스’가 10월 한 달간의 SNS 여론 동향을 분석한 결과 전체 26만606건의 한미 FTA 관련 트윗 중 16만6782건이 동의안 처리에 부정적인 내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적인 내용은 5만6982건, 중립적 내용은 3만2334건이었다. 소셜메트릭스에 따르면 올해 7월 넷째 주 1713건에 불과했던 한미 FTA 관련 트윗은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본격적인 FTA 논의가 이어진 지난달 셋째 주에는 17만6027건으로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특히 재·보궐선거가 치러진 지난달 26일 이후부터는 선거에 쏠렸던 관심까지 한미 FTA 이슈로 넘어와 25일 하루 1만4384건이던 관련 트윗 건수가 일주일 만인 지난달 31일에는 8만1916건을 기록했다. 한미 FTA와 함께 언급된 키워드를 보면 누리꾼들의 부정적 인식이 명백히 드러난다. 8월 이후 올라온 전체 한국어 트윗 내용 중 한미 FTA와 함께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반대’와 ‘문제’였다. ‘반대’는 8월 한 달간 946건의 한미 FTA 관련 트윗에 등장했다. 9월에는 1040건, 10월에는 4만8434건의 트윗에 함께 쓰였다. ‘문제’ 역시 8월 297건, 9월 831건, 10월 1만5717건으로 계속 늘었다. 8월 중에는 ‘이익’ ‘새로운’ ‘노력’ ‘좋다’ ‘대단한’ 등 긍정적인 키워드도 있었지만 9월 들어서는 ‘비상’ ‘분노’ ‘무섭다’ ‘비판’ 등의 부정적 단어가 순위권에 진입했다. 10월에는 ‘최악’ ‘강행’ ‘손해’ 등도 등장했다. 일부 누리꾼은 최근 SNS를 이용한 반FTA 시위도 벌이고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한미 FTA 체결을 막아달라는 단체 트윗을 날리는 방식이다. 이 명단 하단에는 ‘한나라당 의원에게는 회유하는 식으로 설득하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는 열심히 격려와 응원을 하자’는 가이드라인도 적혀 있다. 이 때문에 한미 FTA가 이슈로 떠오른 이후 좌파단체 등이 조직적으로 SNS를 통해 부정적인 여론을 확산시킨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위터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 있는 유명인의 발언은 트위터 여론의 향방에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다만 트위터를 쓰는 인구가 도시의 젊은 세대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실제 여론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레섬 피리리∼ 레섬 피리리∼.” 21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 인근 빈민촌 프리거티 마을 서로서티 학교 마당에서 이 나라의 전통 민요인 ‘레섬 피리리’가 울려 퍼졌다. 레섬 피리리는 네팔에서 한국의 전통민요 ‘아리랑’처럼 불리는 노래. 레섬은 네팔인들이 손님에게 환영의 표시로 주는 스카프이고 피리리는 레섬이 휘날리는 모습을 표현한 의태어다. 알록달록한 전통의상을 입은 학생들은 네팔 민속악기의 흥겨운 가락에 맞춰 전통춤 솜씨를 뽐냈다. ‘레섬 피리리’ 노래가 절정에 달하자 서르미나 구룽 양(14)은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무대 앞으로 이끌었다. 이 학교를 지원해 온 국내 인터넷 포털기업인 ‘NHN’ 직원들은 학생들을 따라 비록 낯선 노래와 춤동작이었지만 흥겹게 어울리며 하나가 됐다.○ 꿈이 자라는 곳, 드림아트 스쿨 올 1월 ‘NHN 2000원 클럽’은 네팔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AHRCDF)에 5500만 원을 지원했다. 2000원 클럽은 매달 2000원 이상의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NHN 직원 모임으로 120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NHN은 네팔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드림아트스쿨’과 ‘함로재봉센터’를 계획한 AHRCDF의 ‘사티 프로젝트’가 의미가 있다고 보고 지원을 결정한 것이다. 구룽 양은 서로서티 드림아트스쿨 학생이다. 5월에 개교한 이 학교는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운 6, 7학년 50여 명이 전통악기와 민속무용을 배워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예술직업학교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여섯 명의 동생을 돌보며 살고 있는 구룽 양에겐 드림아트스쿨이 희망이자 미래다. 네팔에서 전통춤을 배우려면 적지 않은 돈을 부담해야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유명 교사에게서 무료로 배울 수 있다. 구룽 양은 “수업 중에 선생님이 가르쳐 준 동작을 잊을까 봐 집에서도 늘 연습한다”며 “전통춤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나중에는 전통춤 교사가 돼서 어려운 아이들에게 무료로 가르쳐 주고 싶다”고 말했다.○ 네팔 여성들의 희망, 재봉기술 함로재봉센터는 네팔 여성들이 재봉기술을 배우고 직접 제작한 옷과 가방을 판매하는 공동창업 공간이다. 함로는 네팔어로 ‘우리’라는 의미다. NHN이 지원한 돈으로 재봉틀을 구입하고 강사도 초빙해 센터를 만들었다. 기성복보다 맞춤옷을 선호하는 네팔에서는 여성들이 옷을 제작할 능력이 있으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쉽다. 어린 딸을 옆에 두고 재봉틀로 아기 옷을 만드는 커비타 커날 씨(29·여)는 “처음에는 재봉틀에 실도 끼울 줄 몰랐지만 한 달 만에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재단까지 하게 돼 살림을 꾸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딸도 밖에서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시디 바랄 AHRCDF 대표(42)는 “맞춤옷을 선호하는 네팔에서 재봉기술은 수업료가 비싼 고급기술”이라며 “이곳에서 배운 기술로 센터에서 창업자금을 대출받아 작은 가게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22일에는 함로재봉센터 여성들이 만든 물건을 파는 매장도 문을 열었다. 네팔을 찾은 NHN 직원들은 드림아트스쿨과 함로재봉센터를 방문해 네팔인들과 우정을 나누며 꾸준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들은 또 네팔 학생과 함께 마을 청소를 하기도 했다. NHN 김선옥 사회공헌팀장은 “네팔인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NHN 이혜만 과장도 “어려운 환경에서도 보석같이 빛나는 미소를 가진 아이들의 얼굴을 잊지 못할 것 같다”며 “한국에 돌아가도 아이들의 꿈을 위해 계속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카트만두=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40대 젊은 유권자들은 정치 경험이 없는 무소속 박원순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동아일보는 이들이 기성 정치권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낸 이유를 알아본 데(28일자 A4, 5면 참조) 이어 국내 정치 전문가 3명에게 정치권이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 해석하고 반영해야 할지 들어봤다. 》○ 신뢰 회복이 관건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의 20∼40대는 역사적으로 이념화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세대”라고 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 역시 이념적 성향보다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취업난과 전세난 등 경제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것.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 문제나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1억 원짜리 피부 관리’ 논란은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불신을 불러일으켰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젊은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정치권이 이들을 정책협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에선 특정 유권자 집단을 ‘정책 패널’로 선정해 수시로 의견과 피드백을 구한다”며 “국내 정당도 공청회나 여론조사 외에 더 효과적으로 유권자 목소리를 듣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대는 취업난과 학자금 대출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고 30대는 출산과 결혼까지 포기하고 있다”며 “이미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어야 할 40대까지 불안해하는 실정”이라고 했다.그는 “경제난 해소에 온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네거티브 선거에만 몰입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해 일반 시민들은 큰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이를 함께 해결하려는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들의 민심을 다스리기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 유권자 네트워크 정당의 시대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원순 시장의 당선이 “푸근하지 못했던 정부와 여당의 실패를 증명한다”고 했다. 사회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취업난에 고통 받는 20대, 박봉과 명예퇴직의 압박에 시달리는 30대의 불안이 맞물린 결과라는 것. 그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거시적 경제 정책이나 정쟁만 거듭하는 정치인들의 행태에 젊은 유권자들은 지쳐버렸다”고 했다. 임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가 곧 기성 당원과 조직 중심으로 움직이던 기성 정당정치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고도 했다. 이제 정당 정치는 유권자와의 네트워크에 필수적으로 의존하는 ‘네트워크 정당’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국민의 불안과 요구를 그때그때 반영해 융통성 있게 행동하는 ‘가변 정당’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삼성전자가 한 대학원생에게 의뢰해 만든 김치냉장고 패턴 디자인을 해외 유명 디자이너 작품이라고 홍보했다가 이 대학원생이 제기한 저작인격권 침해 소송에서 져 3000만 원을 배상하게 됐다.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판사 박희승)는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생 이종길 씨(31)가 “삼성이 내가 디자인한 냉장고 패턴을 유명 디자이너 ‘카렌 리틀’이 디자인한 것처럼 홍보해 성명표시권을 침해당했다”며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씨의 기존 디자인을 기본으로 가공한 디자인은 이 씨의 창작물이므로 디자인에 관한 성명표시권은 원고에게 귀속된다”고 설명했다. 또 “삼성전자는 김치냉장고를 발표하며 이 씨의 성명을 표시하지 않은 것에 그치지 않고 제작자가 유명 디자이너 ‘카렌 리틀’이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며 “이 씨가 카렌 리틀이 제작한 것이라는 삼성의 발표와 카탈로그, 광고를 보면서 디자이너로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삼성이 김치냉장고 디자인을 유명 디자이너가 창작한 것처럼 홍보해 김치냉장고의 이미지를 고급화하고 판매량 등을 높이고자 하는 상업적인 의도가 있었다는 점도 고려했다.이 씨는 2009년 12월 가전제품에 쓰는 패턴 디자인을 제작해 제공하는 삼성전자와 디자인 협력업체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 따라 이 씨는 직접 디자인한 ‘바람꽃’ ‘퀸스가든’ ‘세잔느2’ 패턴을 삼성전자에 제공했지만 삼성전자가 지난해 8월 ‘2011년형 지펠 아삭 김치냉장고’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카렌 리틀의 이름을 딴 카탈로그를 제작해 배포하자 소송을 냈다.이 씨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 이름을 쓰지 않아도 좋지만 다른 유명 디자이너 이름으로 나가니 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며 “수십만 명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이런 사건을 더 이상 겪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향년 57세·사진)의 사랑이 담긴 카페가 문을 연다. 장애여성자활공동체 ‘맑음터’는 4월 장 교수 유족이 월간 ‘샘터’에 기부한 500만 원을 받아 경기 안성시 양성면 천주교 미리내성지 인근에 29일 ‘별 헤는 카페’를 열었다. 미리내성지는 김대건 신부(1821∼1846)의 묘가 있는 곳으로 성지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지적장애여성이 모여 사는 미리내공동체도 인근에 있다. 장 교수의 사랑이 담긴 500만 원은 작은 기적을 일으켰다. 덩그러니 세워진 기둥 위에 지붕만 올려져 있던 건물터가 하얀 벽에 원목 창틀을 단 16m²(5평) 넓이의 예쁜 카페로 변신했다. 봉사단체 좋은만남이 실내 인테리어를 맡았다. 수도원 수사들이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었다. 샘터사도 장 교수가 쓴 책을 카페에 기증해 손님들이 독서를 하며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도록 배려했다. 카페 옆에는 장 교수의 세례명을 딴 ‘마리아 서재’도 만들었다. 운영은 지적장애여성들이 도맡아 한다. 27일 오후에도 지적장애여성들이 직접 정원을 가꾸며 손님을 맞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손님이 직접 차를 내려 마시고 돈을 내고 가는 무인 카페지만 뒷정리는 지적장애여성들의 몫이다. 권원란 맑음터 원장은 “자립을 꿈꾸는 지적장애여성에게는 꿈을 이루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다”며 “비장애인이 시설에서 지적장애여성을 만나면 봉사자와 장애인 관계지만 이곳에서는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말했다. 장애는 달랐지만 장 교수와 맑음터 여성들은 사이좋은 자매였다. 장 교수는 1990년대 초 서강대 성당을 찾은 서울 맑음터 여성들과 인연을 맺은 뒤 맑음터가 여는 음악회와 바자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장 교수는 또 출판기념회 때면 맑음터 여성들이 만든 책갈피를 구입해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장 교수의 막내동생 순복 씨(49·여)는 “언니가 맑음터 여성들이 노래도 잘하고 수공예품을 만드는 솜씨도 좋다고 자주 자랑했다”며 “하늘에 있는 언니도 맑음터 여성들이 연 카페를 보면 흐뭇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5월 영면한 장 교수는 소아마비와 암투병 속에서도 삶의 희망과 의지를 잃지 않고 역경을 이겨낸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였다. 개소식은 29일 오후 3시 경기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로224 맑음터미리내공동체 성지길 입구 뜰에서 열린다.안성=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박원순 시장은 20∼40대 젊은층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박 시장은 20대 10명 중 7명(69.3%)의 지지를 받았다. 30대에선 75.8%, 40대에선 66.8%라는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민주당 등 야권의 지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박 시장을 당선시킨 동력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20∼40대의 냉정한 심판이었다는 평가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찍은 50, 60대 중 상당수도 대안 부재에 따른 선택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동아일보는 이번 선거에서 기존 정치권을 탄핵한 20∼40대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들어봤다. 》○ 20대 “취업난 - 등록금 고통 하소연 외면한 기성 정치권에 환멸”천정부지로 치솟는 대학 등록금,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에 잠 못 이루던 20대들은 그동안 억눌린 분노를 이번 보궐선거에서 표출했다. 기성세대에게 ‘정치의식이 없다’고 손가락질 받던 새내기 직장인은 출근길 짬을 내 투표장에 들렀고 중간고사 시험을 치르던 대학생은 줄을 서서 투표했다.27일 만난 20대 유권자들은 ‘소통이 가능할 것 같은 인물을 뽑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원순 후보가 기존 정치권 출신 인물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 방송인 김제동 씨 등 그동안 젊은 세대의 고민에 진지하게 귀 기울인 인물들이 지지하는 후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컸다는 설명이다. 취업준비생인 김지영 씨(27·여)는 “그동안 수많은 대학생이 등록금 부담에 따른 고통을 호소해 왔지만 피켓을 들고 길거리로 뛰어나갈 때까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며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역시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 소극적이라는 점은 정말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 출신 후보가 출마했더라면 선거 결과는 지금과 또 달라졌을 것”이라고도 했다. 공무원 이모 씨(27)는 “무상급식이나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면 무조건 좌파라고 규정하는 기성세대의 좌우 프레임이 지긋지긋했다”며 “현실에서 우러나오는 젊은이들의 하소연에 공감해줄 리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기성 정치권은 젊은 세대의 주요 소통 도구인 트위터 활용에서도 일방적으로 밀렸다. 박 후보 측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기존 언론보다는 트위터를 활용해 젊은 유권자들과 수시로 소통했다. 직장인 연승 씨(28)는 “20대는 그동안 SNS를 통해 꾸준히 자신들의 뜻을 전달해왔지만 기존 정치권은 정책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모 씨(28)는 “140자로 압축해 전달하는 트위터 메시지를 기존 정치인들은 그저 어린애들 말장난 정도로만 받아들인 게 패인”이라며 “변화하는 시대상을 빠르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도 중요한 정치 능력이 됐다”고 말했다.다만, 20대 가운데 이번 선거에서 큰 역할을 한 SNS의 부작용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미지’만 남고 정작 ‘정책’은 실종된 선거였다는 것이다. 신아영 씨(22·여·고려대 3년)는 “SNS상에선 박 후보를 지지하면 ‘착한 사람’이고 나경원 후보를 지지하면 ‘보수 꼴통’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며 “SNS만큼 정치인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효과적인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 후보를 지지했던 취업준비생 김미희 씨(24·여)는 “나 후보는 오세훈 전 시장의 긍정적인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박 후보는 모든 걸 다 바꾸겠다고 했다”며 “이런 정책적인 부분에 대한 토론이 이번 선거에선 없었다”고 지적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늘 한쪽 구석 갑갑한 마음… 세상 변화됐으면” ▼“20대는 변화와 소통을 원했습니다.”고려대 2학년 고대신문 학생기자 장용민 씨(21·사진)는 “나와 친구들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투표하며 변화와 소통의 바람을 담았다”고 말했다. 장 씨는 주변에서 권하는 안정된 직업도 갖고 싶고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창업도 하고 싶은 꿈 많은 대학생이다.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한다. 장 씨는 “친구들도 미래를 놓고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시원한 해결책이 없어 늘 한쪽 구석에 갑갑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낮은 취업률, 비싼 등록금을 생각하면 기운이 빠진다는 것이다. 장 씨는 “세상을 바꾸고 우리와 소통할 서울시장을 원했다”고 말했다.20대는 정치인이 자신들만 챙겨주길 바라는 ‘응석받이’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장 씨는 “20대가 기존 정당이 우리를 위한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등을 돌린 것이 아니다”라며 “시민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기존 정치권의 모습에 실망했다”고 지적했다. 박원순 시장에게도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장 씨는 “박원순 시장을 순수하게 지지했다기보다 기존 정치에 대한 싫증이 표로 나타났다”며 “박 시장이 선거운동 때 학교에 찾아와 우리 목소리를 들으며 받아 적은 수첩을 버리지 말고 꼭 소통에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30대 “삶은 팍팍하고 미래는 불안… 뾰족한 탈출구 안보여 분노”30대 유권자들이 이번 재·보궐선거를 통해 던진 메시지는 반칙과 특권에 대한 혐오였다. 이들은 통상 1990년대 초중반 대학에 입학해 1997년 ‘IMF 사태’라 일컬어지는 외환위기로 척박해진 취업시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어렵게 사회에 자리를 잡은 첫 세대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힘겹게 이룬 결실을 부당한 방법으로 손쉽게 취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어느 세대보다 강하다. 이런 정서를 전문가들은 ‘IMF 트라우마(정신적 충격)’라고 칭한다. 그로 인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무소속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년간 ‘취업재수’를 한 뒤 1998년 광고기획사에 입사한 14년차 직장인 이정환 씨(38)는 “나는 직장에서 아등바등하다 이제야 아이 둘 낳고 안정을 찾았는데 정치인들은 온갖 편법으로 제 밥그릇만 챙기고 있어 반드시 심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최근 저축은행 구조조정 사태로 전세금으로 쓸 5000만 원이 꼼짝없이 묶이게 됐다. 12월 이사를 앞두고 가지급금 2000만 원은 받았지만 나머지 3000만 원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 이 씨는 “저축은행 사태도 비리를 묵인해준 정부의 부실관리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기득권층의 ‘짜고 치는 고스톱’에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자동차 영업사원인 이용석 씨(35)는 “매일같이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데 이러다가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나경원 후보가 똑똑한 건 알겠지만 정작 서민을 위해선 그동안 무슨 일을 했느냐”고 반문했다.30대 직장인들에게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매력적인 롤모델로 인식되고 있었다. 안 교수 때문에 박원순 시장을 찍었다는 은행원 강현미 씨(33)는 “안 교수는 의사라는 안정적 지위를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해 성공했다”며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안 교수는 정신적 탈출구”라고 말했다.박 시장에 대해 “무늬만 서민을 표방한다”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30대도 적지 않았다. 중학교 교사인 신재웅 씨(36)는 “250만 원짜리 월세에 살고 백두대간 종단을 한다면서 대기업 ‘스폰’을 받고도 자신을 소박하고 깨끗한 사람처럼 홍보해 황당했다”며 “개혁성은 떨어져도 안정적인 나 후보가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사회복지사 김현민 씨(33)도 “박 시장이 선거 막판에 안 교수에게 손을 벌리는 것을 보고 기성 정치인과 다를 게 없다고 느껴 장애인 딸을 가진 나 후보를 찍었다”며 “박 시장은 본인이 표방했던 깨끗한 시정을 펼쳐 시민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정윤식 기자 jys@donga.com ▼ “특권의식 버리고 헌신해야 2030 마음을 얻을 것”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김현중 씨(31·사진)는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을 지지했다. 박 시장에 대한 호감이 높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나라당을 특권계층으로 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용지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결정적으로 여당에서 마음이 떠났다고 한다. 김 씨는 “수십억 원을 들여 땅을 매입한 과정이 불투명하고 아들 명의로 매입해 증여를 하려 한 의혹까지 있다”며 “결국 여당은 특권층이고 나경원 후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그는 학비용 대출금 1500만 원을 갚기 위해 대학 시절 레스토랑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나 막노동을 했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고 했다. 2004년 연 2%대였던 학자금 대출금리는 졸업 무렵에는 7%대까지 뛰었다. 김 씨는 “다행히 군 복무 뒤 곧바로 취직했지만 요즘 또 구조조정 얘기가 돌아 마음이 불안하다”며 “내 처지에는 평생직장도 없는데 특권층으로 비치는 행태를 보면 분노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는 “박 시장은 특권의식을 버리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지지를 얻었다고 본다”며 “정치인들은 앞으로도 20, 30대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겸허하고 진지한 자세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 40대 “학부모가 무상급식 막겠나”… “겉보기보다 실질 혜택”40대는 선거 때마다 당락을 결정짓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세대다. 과거 민주화의 아이콘인 ‘386세대’로 상징되던 40대는 노무현 정부를 출범시키며 절정을 맞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보수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이는 40대가 ‘생활 정치’를 중요시한 결과다. ‘민주화’ ‘진보’ 등의 가치를 강조하던 40대의 관심사가 ‘실용’으로 옮겨간 것이다. 보수화한 40대는 2007년 대선에서 실용주의를 내세운 현 정권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그랬던 40대가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다시 변화를 택했다. 보수화하던 40대가 전세난, 물가 상승 등 경제적 불안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기존 정치권을 향해 변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박양순 씨(44·여·세탁소 운영)는 지금까지 모든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찍어 왔지만 이번에 박 시장을 찍었다고 했다. 그는 “서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후보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며 “초등학생 아들이 무상급식을 받고 있어 참 좋은데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한나라당과 나경원 후보는 서민생활을 이해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나 후보를 지지한 40대도 기존 정치권에 반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뜻은 비슷했다. 박모 씨(40·증권회사 직원)는 “정책이나 시정 능력에서 나 후보가 낫다고 판단했다”라면서도 “똑똑한 사람보다는 서민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한나라당과 나 후보는 서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던 40대들도 이번에는 변화를 갈망하며 적극적인 투표에 나섰다.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안철수 서울대 교수도 40대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박모 씨(48·대기업 간부)는 “기존 정치권에 물들지 않은 박 시장과 안 교수는 뭔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며 “특히 안 교수에게는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는 믿음이 있었고 나같이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선거에 참여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생활 정치’를 갈망하는 40대는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정책을 원했다. 오세훈 전 시장이 강력히 추진했던 한강르네상스사업과 디자인 서울 정책 등이 40대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 후보 역시 오 전 시장과의 차별화에 실패했고, 40대는 이런 나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한세종 씨(41·자영업)는 “이명박 정부와 오 전 시장은 중산층의 붕괴와 복지문제에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며 “아이디어가 많은 박 시장이 이런 일들을 해주길 기대했다”고 말했다.40대가 박 시장을 완전히 지지한 것은 아니다. 최모 씨(49·건축업)는 “세금을 내는 입장에서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박 시장의 공약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게 적지 않았다”며 “기득권 세력을 물리치고 당선된 박 시장이 다른 정치인처럼 표만 쫓는다면 민심은 금방 이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민주화의 주역인 40대는 머리는 진보적이지만 삶 자체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번 선거는 경제적 안정을 기대했던 현 정권의 4년에 대한 ‘응징 투표’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분위기가 컸다”고 분석했다.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아이 사교육비 허리 휘는데… 헐뜯기 정치 실망” ▼“수박 겉핥기식 사업들은 이제 정말 그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이번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을 찍었다는 안경주 씨(44·여·정수기 관리업·사진)는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반문했다. 오세훈 전 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들이 서민들에겐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세빛둥둥섬’을 만드는 게 우리 삶이 나아지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서민이 실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시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박 시장을 찍은 이유를 설명했다.요즘 안 씨의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 사교육비다. 매달 100여만 원을 들여 자녀 2명을 4년간 꾸준히 학원에 보냈던 안 씨는 최근 학원을 보내지 못한다. 그는 “학교에서도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라고 부추긴다”며 “보여주기 사업에만 치중하고 공교육 붕괴 같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기존 정치권에 너무 실망했다”고 말했다. ‘헐뜯기 정치’도 안 씨가 기존 정치권에 등을 돌린 이유다. 그는 “이번 선거처럼 네거티브 선거는 제발 하지 않았으면 한다. 민심은 그런 작전에 휘둘리지 않는다”며 “각자의 정책을 정확히 전달하고 정확히 검증받는 선거가 돼야 민심이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21일 발생한 인천 조직폭력배들의 유혈 난투극 당시 경찰의 초동대응과 상황보고가 미숙했던 데에는 있으나 마나 한 경찰의 ‘조폭 대응 매뉴얼’이 한몫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조직폭력배 130여 명이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 운집해 서로 위협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상황에서도 공포탄조차 쏘지 않았다. 매뉴얼에 집단폭력 시 총기 사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구체적으로 없기 때문이었다. 칼부림이 나 조직원 1명이 중상을 입을 때까지 경찰이 한 조치는 순찰차 안에서 한 경고방송이 전부였다.○ 총기 사용은 현장 지휘관이 알아서?경찰의 조폭 대응 매뉴얼인 ‘집단폭력 사건 신고 시 조치요령’을 보면 ‘평소에 조직원들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집단폭력 사태가 있을 경우 신속히 보고해 추가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원론적 내용에 그치고 있다. 언제 단순 집단폭행이 아닌 조폭 사건으로 간주하는지, 공포탄이나 가스총 등 총기는 어느 경우에 사용하는지 등 현장에서 긴급히 판단해야 할 핵심 요소에 대해선 아무 규정이 없다. 경찰 관계자는 “조폭 사건 현장에서 언제 어느 정도 규모의 추가 병력을 요청하고, 총기를 언제 사용할지는 현장 지휘관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고 설명했다.하지만 일선 경찰관들은 “마땅한 기준도 없는데 괜히 총을 사용했다간 과잉대응으로 징계를 받을까 봐 총 쏠 생각은 아예 못 한다”고 말했다. 총을 쏜 경찰관은 총기 사용이 적합했는지 감찰 조사를 받도록 돼 있어 경찰관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실제로 이번 인천 조폭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총기를 전혀 휴대하지 않았고 흉기를 휘두른 신간석파 조직원 K 씨를 검거할 때도 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이번 난투극에 투입된 경찰관들은 이 같은 ‘부실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매뉴얼에는 ‘집단폭력 사건은 발생 초기 경력을 집중 투입해 현장에서 전원 검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단폭력 사건은 관련자들이 많으므로 관할 서장에게 상황을 즉각 보고해 가용 경력을 총출동시켜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사건 현장에 기동타격대가 투입된 것은 사건 발생 3시간 20분이 지난 후였다. 관할 경찰서장은 칼부림이 난 지 1시간 10분 뒤에야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당시 현장에는 양측 조직원 100여 명이 남아 있었고 200여 명의 경찰이 현장에 대기 중이었지만 경찰은 조직원들을 검거하지 않고 해산 명령만 내렸다. ○ 조폭, 합법 가장한 사업으로 세력 확장인천 사건 이후 경찰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이 일자 경찰은 조직폭력배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최근 조폭들이 건설업이나 부동산 임대업 등 합법적인 사업을 벌이면서도 은밀하게 폭력과 협박을 일삼으며 부당이득을 챙기는 것으로 보고 있다.경찰에 따르면 대형 호텔이나 카지노 등을 직접 운영해 돈을 버는 미국 갱단이나 일본 야쿠자 조직과 달리 국내 조폭들은 고정 수입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유흥업소 운영이나 사채놀이, 용역 등 돈이 되는 분야라면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특히 이른바 ‘꼬맹이’(조폭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 조폭을 부르는 경찰 은어)의 경우 목숨을 걸고 일하고도 양복 한 벌 값, 또는 한 차례 회식 기회만이 대가로 주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때문에 꼬맹이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일반 시민에게 큰 위협이 된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서울지역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A 경감은 “꼬맹이들이 자구책 마련 차원에서 동네에 불법 게임장을 차리거나 사채업체와 손잡고 채무자를 협박해 돈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에는 차량 보험사기에도 많이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흥 조폭’이 늘어나는 것도 경찰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신흥 조폭이란 전년도 말까지 미처 파악하지 못해 관리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범죄를 수사하면서 그해 파악한 폭력조직을 말한다. 결국 이들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들 신흥 조폭은 주로 관리 대상 조폭 아래 기생하며 세력을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검거된 조폭 중 신흥 조폭 출신은 2017명으로 관리 대상 조폭 1864명보다 많았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도 신흥 조폭을 더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흥 폭력조직들은 은밀하게 세를 확장하기 때문에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이번 인천의 조직폭력 사건에 연루된 신간석파와 크라운파도 인천지역 관리 조폭인 꼴망파 아래 있던 신흥 조직이라 상대적으로 경찰 감시망 밖에 있었다”고 말했다.인천청장 징계… 총경급 4명 경질한편 경찰은 최근 불거진 장례식장 유착비리와 인천 조폭 칼부림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총경급 간부 4명을 25일 전격 경질했다. 경찰청은 이날 뒷돈을 받고 장례식장에 시신을 인도한 유착비리 사건에 소속 경찰관들이 연루된 영등포경찰서와 구로경찰서의 이주민, 이봉행 서장을 각각 지휘, 감독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기발령했다고 밝혔다. 올 초 장례식장 유착비리 사건의 제보를 받고 감찰을 했지만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내사 종결한 서울경찰청 유현철 청문감사관도 교체됐다. 또 경찰은 21일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조직폭력배들의 유혈 난투극 사건과 관련해 지휘 감독 및 축소 보고 등의 책임을 물어 신두호 인천지방경찰청장에 대해 견책이나 감봉 등 경징계를 내리고 정해룡 차장도 경고 조치했다. 본청 이상원 수사국장과 정지효 형사과장도 경고를 받았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관할한 안영수 인천 남동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고 형사과장과 강력팀장, 상황실장, 관할 지구대 순찰팀장을 중징계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고 박술음 전 한국외국어대 학장(사진)의 동상이 캠퍼스에 세워진다. 한국외국어대와 박 선생 추모사업 추진위원회는 17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서울캠퍼스에서 300여 명이 모여 동상 제막식을 연다고 16일 밝혔다.}
실업과 자본주의의 병폐, 금융권과 부유층의 탐욕에 대한 반감과 항의를 표출하는 ‘반(反)월가 시위’가 15일 전 세계 80여 개국 900개 이상의 도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열린다. 이에 따라 시위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각국의 주요 도시들은 대규모 집회에 대비해 경찰 병력을 배치하면서 시위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국의 시위 주최 측에 따르면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앞에서 15일 낮 12시(현지 시간)에 열릴 시위에는 지금까지 약 4000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미국에서도 뉴욕 월가를 비롯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주요 도시에서 집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싱가포르 경찰은 14일 성명을 통해 누리꾼이 월가 시위와 유사한 시위를 사주하면서 금융중심가인 래플스플레이스에서 시위를 열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이에 동참하면 불법활동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뉴욕 시는 월가 시위대에 한 달 가까이 시위 장소로 활용해 온 주코티 공원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가 다시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12일 시위대를 방문해 청소를 위해 잠시 공원을 비워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공원 소유주인 부동산업체 ‘브룩필드 오피스 프로퍼티(BOP)’가 시위대가 공원을 비위생적으로 만들었다며 뉴욕 시에 항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17일부터 이곳에 진을 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대원들은 매트리스와 침낭, 음식물을 가져와 철야농성을 벌였으며 주코티 공원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뉴욕 시는 이틀 만에 이 계획을 철회했다. 시위대는 뉴욕 시의 청소계획 철회가 자신들의 승리를 의미한다며 환호했다.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 한국경찰 “엄정 대응” ▼15일 국내 시민단체들이 미국 뉴욕 월가에서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금융자본 규탄 시위에 맞춰 ‘Occupy(점령하라) 서울 국제 공동 행동의 날’ 시위와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반대 시위 등 대대적인 집회를 연다. 금융자본 규탄 집회를 계기로 좌파 진영 시민단체들이 대대적으로 궐기하는 것이다.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3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99% 행동 준비위원회’는 이날 오후 6시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1박 2일간 열 계획이다. 이들은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라(Occupy 서울)’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광장에서 밤새 강연회와 토론회, 문화제를 개최한다. 서울광장 외에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집회가 열린다. 오후 2시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1% 금융수탈에 반대하는 99% 행동’이 열리고 같은 시각 서울역광장에서는 ‘빈곤철폐를 위한 행동’ 집회가 개최된다. 또 오후 4시 종로구 미국대사관 앞에서는 미군 성폭력에 항의하는 피켓 점령행동이, 오후 5시에는 한미 FTA 국회 비준 저지를 위한 집회가 중구 정동 대한문 앞에서 열린다. 이날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집회로 도심은 극심한 교통 혼잡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30여 개 시민단체 800여 명이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추진 중”이라며 “서울광장에서 미신고 집회가 열릴 경우에는 불법으로 간주하고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좌파 진영의 이번 집회를 정면 비판하는 주장도 나왔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14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개최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 주제 발표자로 나서 “나라마다 상황이 다른데 외국의 움직임을 따라 시위를 벌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또 “미국은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이어지면서 대공황 이후 태어난 세대가 처음으로 위기를 겪고 있고 미국의 대외적 위상도 추락해 불안과 불만이 큰 상황”이라며 “한국은 2008년 위기를 상대적으로 잘 극복했고 최근에도 금융 부문에 위기가 발생하지 않아 시위의 근거가 약하다”고 분석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우리는 한국 정부의 일에 단순히 반대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이론과 노하우로 설득하겠습니다.” 지난달 1일 문을 연 국제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Green Peace)’ 서울사무소를 이끄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인 라시드 강 조직개발매니저는 10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사무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서울사무소가 문을 연 뒤 국내 언론과 가진 첫 인터뷰다. 이날 인터뷰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본부에서 서울사무소에 지원을 나온 얀 베르나에크 핵에너지 캠페인 책임자와 게빈 에드워즈 조직전략 고문도 함께했다. 서울사무소는 1971년 그린피스가 설립된 지 40년 만에 차려졌다. 세계적으로 41번째고 동아시아에선 일본 중국 홍콩 대만에 이어 5번째다. 그린피스 한국지부는 한국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반대’와 ‘해양 보호’ 활동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한국은 원자력 발전량으로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이자 원양어업 강국이다. 강 매니저는 “탈핵과 해양보호는 1971년 핵실험을 막으려고 바다에 배를 띄운 때부터 품어온 그린피스 DNA와 같은 가치”라며 “쉽지 않은 과제지만 꼭 해내야 할 도전이다”고 말했다. 한국의 원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그린피스 본부에서 파견된 베르나에크 씨는 “인류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지속가능하게 공급하는 데 원자력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한국 정부만 정신을 못 차리고 원자력개발과 수출에 몰두하다간 국제적으로 뒤처지고 말 것이다”고 주장했다. 해양보호 캠페인은 ‘참치 남획 반대’ 문제를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강 매니저는 “지속 가능한 어업이 유지되려면 원양어업 강국인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한국은 오히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해양자원을 보호하려는 국제적 협력에 반대해왔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유명 브랜드 의류 제품의 독성 화학물질을 고발하는 ‘더러운 빨래’와 같은 해외 캠페인도 한국인들과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그린피스 본부에서 일하는 환경보호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회도 열고 환경보호와 관련된 다양한 뉴스와 출판물도 한국어로 번역해 제공한다. 강 매니저는 “서울사무소 설립을 계기로 국제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한국인의 목소리가 세계로 전달되고 국제 환경 이슈가 한국에 알려져 글로벌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며 “탈핵, 해양보호 같은 거대한 도전 앞에 한국 시민들이 용기를 가지고 함께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와 산업계에선 그린피스의 한국 상륙에 긴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그린피스’가 과격한 행동으로 한국 정부와 기업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그린피어(Green Fear)’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이들은 서울사무소 개소에 앞서 첫 활동으로 올 6월 ‘레인보 워리어’호를 타고 한국 원전 지역을 돌며 핵 반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강 매니저는 “그린피스의 핵심적 가치는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활동”이라며 “단순한 반대가 아닌 철저한 조사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는 실용적인 운동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린피스가 서울에 둥지를 틀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강 매니저는 “10여 년 전부터 한국 그린피스 지지자들이 본부와 40개 지역 사무소에 한국에 사무소를 열어달라고 메일을 보내왔다”며 “해외에 머물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현지에서 그린피스 서포터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세워지기 전에도 이미 국내에선 ‘그린피스코리아’ ‘그린피스를 사랑하는 모임’ 등이 그린피스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기도 했다. 강 매니저는 “이들은 그린피스와 공식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모임이지만 장기적으로 그린피스 서포터로 흡수할 생각이다”라며 “한국인들의 열망이 서울사무소를 개설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양아버지의 죽음에 수양딸이 땅을 치며 오열했다. 그 울음은 죽은 양아버지를 그리는 사부곡(思父哭)이 아니었다. 29년 동안 자신을 성폭행한 아버지를 법정에 세우지 못한 한이 서린 눈물이었다.8월 20일 강원 횡성군 작은 시골마을에서 A 씨(38·여)의 양아버지 전모 씨(61)가 자신의 집 뒤 옥수수 밭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수양딸을 29년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지 이틀 만이었다. 소식을 들은 A 씨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법정에서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희망이 산산조각 난 것이었다.사건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형편이 어려운 친아버지를 떠나 전 씨 집에 수양딸로 맡겨졌다. 그 뒤 친아버지는 연락이 두절됐고 A 씨는 그때부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농사를 짓던 전 씨는 A 씨에게 논밭일도 돕게 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A 씨는 자신을 돌봐주는 전 씨 부부가 고마웠다. 2년이 지난 1982년 어느 날 악몽이 시작됐다. 양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전 씨가 A 씨를 안방으로 불렀다. 어린 A 씨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걱정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양아버지는 곧바로 야수로 돌변했다. A 씨는 그 일이 양아버지에게 단순히 혼난 것이라고 여겼다. 다만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악몽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전 씨는 아내가 집을 비울 때마다 A 씨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양아버지의 성폭행은 A 씨가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됐다. 전 씨는 1993년 집을 떠나 강원 원주시의 한 공장에 취직했지만 전 씨는 A 씨가 머물던 숙소까지 찾아와 성폭행했다.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전 씨의 마수는 더 그를 옥죄었다. 전 씨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던 A 씨를 야산으로 끌고 가 나무에 묶고 허벅지를 칼로 찌르며 위협까지 했다. 그러면서 A 씨의 의지도 서서히 꺾여갔다.악마와도 같은 전 씨는 주변에 한없이 따뜻한 사람으로 행세했다. 전 씨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딸을 좋은 곳에 시집보내야 한다, 선 자리를 주선해 달라”고 했다. 실제 A 씨는 몇 차례 선도 봤다. 그러나 선을 본 날 밤이면 어김없이 전 씨가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지옥 같은 삶을 살던 A 씨에게 구원의 손길은 없었다. A 씨는 29년 동안 성폭행을 당하면서 수차례 임신과 낙태를 반복했다. 임신 때문에 배가 불러 올 때도 주변 사람은 그를 외면했다. 양어머니 역시 A 씨를 성폭행하고 속옷 차림으로 나오는 남편과 마주치고도 남편의 외도만 탓했다. A 씨는 관심 밖이었다. 양아버지의 동네 친구도, 남동생의 친구도 양아버지가 A 씨를 추행하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모른 척했다. 경찰 관계자는 “작은 마을이다 보니 두 사람의 일을 누구나 아는 비밀로 여겼다”며 “A 씨가 성인이 된 뒤에는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A 씨의 품행을 의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A 씨는 올해 친구들과 생애 처음으로 1박2일로 여행을 갔다가 양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죽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던 기억을 처음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친구는 양아버지를 피해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A 씨를 데려온 뒤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 전화’ 성폭력상담소를 소개해 줬다. A 씨는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서울 서부경찰서에 양아버지 전 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29년 만에 낸 ‘용기’였다. 양아버지 전 씨는 횡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 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딸이 스무 살이 넘은 뒤로 서로 좋아서 했다”며 부인하기도 했다. A 씨는 결국 아버지 전 씨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여성의 전화 관계자는 “주변에서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졌다면 배가 불러온 A 씨를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We′ve gotta go! f×××!(우리 이제 가야 해. 씨×!)”잇따른 범죄로 주한미군 야간통행금지 명령이 부활한 첫날인 8일 오전 3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역 인근에서 미군 중 한 명이 시계를 보더니 “부대에 복귀하기 싫다”며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맥주를 마시던 미군도 “주말 밤인데 오전 3시 이전에 돌아가야 해 억울하다”며 “우린 영외 야간외출 제한이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외출금지에도 거리엔 만취한 미군들주한미군은 최근 동두천시에서 주한미군이 10대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고 서울에서도 주한미군이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7일부터 주말에는 오전 3시부터 5시까지, 평일에는 밤 12시부터 오전 5시까지 야간외출을 제한하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하지만 동아일보 취재팀이 8, 9일 밤 주한미군이 주로 몰리는 이태원과 홍익대 앞, 강남구 압구정동 등에서 확인한 결과 만취한 미군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지나가던 시민들을 희롱하는 등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거리에서 만난 미군들은 동료 군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반성보다는 외출제한 조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에 바빴다. 한 미군 병사는 주한미군의 여고생 성폭행 사건에 대해 묻자 “그냥 성에 미친 사이코 괴물이다. 어딜 가든 그런 사람은 있는 것이고 규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부대 복귀시간인 오전 3시가 되자 대다수 미군이 택시를 타고 사라져 거리는 다소 한산해졌다. 7일부터 미군 헌병대가 순찰을 강화한 것도 분위기에 영향을 줬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미군들에게 통행금지시간을 알려주고 복귀시간을 맞춰야 한다고 안내했다. 7일 밤에는 존 존슨 미8군 사령관이, 8일에는 데이비드 콘보이 부사령관이 함께 순찰을 했다. 콘보이 부사령관은 “다수의 미군은 군인과 정부의 가치에 맞는 삶을 살고 있다. 이번 30일 통행금지조치는 전부가 아닌 소수를 교육하는 기간”이라며 “현재 정해진 기간은 30일이지만 상황에 따라 사령부의 판단하에 연장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전 3시 이후에도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미군 병사들이 눈에 띄었다. 오전 3시 10분경 압구정동의 한 클럽에서 만난 미군은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면 괜찮다”며 “2시간만 버티면 끝이다”라고 말했다. 미군 헌병대 관계자는 “제 시간에 복귀하지 않더라도 ‘택시가 고의로 멀리 돌아가는 바람에 늦었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면 처벌을 내리기 힘들다”며 “다만 사건사고에 연루되면 본보기로 엄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출제한 해제 이후 범죄 늘어2001년 9·11테러 이후 시작됐던 주한미군의 야간외출제한 조치가 지난해 7월 해제된 이후 미군 범죄는 증가했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외교통상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4년 298건 324명에 이르던 주한미군 범죄는 2006년 207건 242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점차 증가해 지난해엔 316건 380명까지 급증했다. 2006년 미군 121.8명당 1명이 범죄를 저질렀던 것에 비해 2009년에는 80.9명당 1명으로 늘어난 것. 이태원 주변의 한 술집 종업원은 “지난해 통행금지가 풀린 뒤 술에 취한 미군들이 오전 8, 9시까지 돌아다니며 한국인을 위협하는 일이 많았다”며 “임시 외출제한 조치가 끝나면 거리는 또다시 난장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잇따라 일어난 동두천과 서울 마포 여고생 성폭행사건 역시 새벽시간대에 일어난 일이다. 이 외에도 2일 오전 2시경 이태원에서는 주한미군 J 병장(29) 등 미군 3명이 한국인 곽모 씨(28)와 김모 씨(27·여) 등 4명과 길에서 시비가 붙자 얼굴에 피멍이 들도록 이들을 때려 J 병장이 입건된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와 미군기지 주변 주민들 사이에선 주한미군 야간통행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북부진보연대 황왕택 집행위원장은 “주한미군 범죄는 거의 다 야간에 일어난다”며 “앞으로 미군부대 앞에서 ‘미군은 밤 12시가 넘으면 부대로 돌아가라’는 내용의 피케팅 시위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

중국 최대 여행 성수기 ‘국경절’ 연휴를 맞아 1일부터 5일까지 중국인 관광객 5만여 명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늘어난 숫자다. 한국관광공사는 7일까지 7만여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아 1200억 원 안팎의 돈을 쓸 것으로 보고 있다.동아일보는 지난해 6월 ‘13억을 한국으로…중국 관광객 마음을 잡아라’ 기획을 연재하며 중국인 관광객의 국내 관광 실태를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1년 4개월 만인 이달 3, 4일 본보 취재진은 중국인 단체관광객과 동행해 그사이 뭐가 달라졌는지를 점검해 봤다.“환잉광린(歡迎光臨·어서오세요).”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거리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을 판매하는 아리따움 매장 입구에는 중국 국경절을 축하하는 빨간 풍선이 달려 있었다. 환영의 메시지가 적힌 중국어 안내판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눈길을 잡고 있었다. 매장 안에서는 직원이 유창한 중국어로 상품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간 중구 장충동 신라면세점 곳곳에도 중국어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직원들은 유창한 중국어와 밝은 미소로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중국인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국인 1년 만에 많이 친절해졌어요.”이날 기자와 함께 명동 일대를 둘러본 중국인 유학생 추이리메이(崔麗梅·28·여) 씨는 “지난해 동아일보와 함께 취재했을 때보다 중국인의 관광 환경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특히 가장 크게 개선된 것은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추이 씨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한국인이 중국인 관광객을 무시하고 불친절하게 대한다. 한국 관광의 큰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추이 씨는 “한국인이 이제는 중국인 관광객을 손님으로 대우하고 있다”며 “화장품 가게에 중국어 안내원이 생긴 것만 해도 큰 발전”이라고 말했다. 명동, 동대문 상가에 국한됐던 쇼핑 장소도 명품 아웃렛, 면세점, 대형마트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3일 신라면세점에서 1시간 만에 화장품 37만 원어치를 구매한 저우링(周(능,릉)) 씨(25·여)는 “중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인롄(銀聯)카드를 한국에서도 편하게 쓸 수 있어 좋았다”며 “쇼핑 시간이 적은 게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게 어떤 뜻이죠?”중국어가 유창한 상품 판매원, 친절한 서비스, 선택의 폭이 넓어진 쇼핑 장소가 중국인 관광객이 1년 만에 느끼는 개선점이라면 여전히 불편하다고 지적되는 부분도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외국인 관광객 1만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해 올해 2월 내놓은 결과에서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 여행의 가장 불편한 점으로 언어 소통(65.7%·복수응답)을 꼽았다. 상품 판매원을 제외하면 어느 관광지에서도 중국어로 소통하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안내문 역시 중국어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추이 씨는 “중국 젊은이들은 홍익대 앞이나 신사동 가로수길, 에버랜드 등 한국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에 관심이 많다”며 “이런 지역에도 중국어 안내판이 늘어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일부 관광객은 줄을 서서 기다리다 놀이기구가 어린이용인 것을 탑승 직전에야 알고 돌아 나와야 했다. 중국인이 쓰는 간체자가 아닌 번체자로 안내 문구를 적어놓은 곳도 적지 않았다. 명동을 걷던 중 번체자로 ‘폐업(閉業) 대방출’이란 안내판을 적은 화장품 가게를 발견한 추이 씨는 “일반 중국인은 번체로 써놓으면 읽지 못한다”고 말했다. ‘공짜’ 관람코스도 개선되지 않았다. 4일 오후 중국인 관광객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전시관을 찾았다. 안내를 맡은 가이드는 “입장료가 무료인 코스를 많이 집어넣어 여행코스가 다양하게 보이는 효과를 노린다”며 “정작 전시관은 한국어와 영어로만 돼 있어 중국인들은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개별 여행객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 특히 버스 지하철에 중국어 안내가 전무했다. 좡잉(莊塋·26·여) 씨는 “단체 일정이 끝난 뒤 홍익대 앞에 가려고 했더니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에 중국어 안내판이 없어 애를 먹었다”며 “대중교통 이용이 더 편리해지면 젊은 중국인의 지갑도 더 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는 것도 중국인 관광객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 저우 씨는 “쇼핑 장소마다 1∼2시간만 주어져 충분히 쇼핑을 못하는데 밤에 다시 가면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부족한 숙박 시설로 인한 불편도 여전했다. 이번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에 서울 시내 숙박 시설은 모두 동이 났다. 이 때문에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인천과 경기 수원 등지에 숙소를 잡아야 했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서울 밖에 숙소를 잡으면 한 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고 관광 일정은 한 시간 일찍 끝난다”며 “외곽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아 밤이면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야 해 불평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폭탄을 설치했다. 밤에 폭발할 테니….”3일 오후 1시 15분경 ‘술에 취한’ 남성이 외교통상부 당직실에 폭발물 설치 협박전화를 걸었다. 만취한 목소리에 정확한 시간과 장소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군과 경찰 150여 명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 출동했다.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와 군 폭발물처리반은 병원 구석구석을 수색했다. 경찰은 면회객의 반찬통까지 열어 보며 출입을 통제했다. 병원도 “병원 내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제보가 들어와 군과 경찰이 수색 중”이라는 방송을 내보내고 수색에 협조했다.정작 입원 중인 환자와 가족들은 느긋했다. 환자들은 스마트폰으로 ‘만취한 남성이 전화를 걸었다’는 기사를 읽고 트위터로 이 사실을 주변에 알렸다. 군과 경찰도 5시간 동안 폭발물 수색을 마친 다음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돌아갔다. 경찰은 발신자번호를 추적해 장난 전화를 건 유모 씨(46)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자택에서 검거했다. 유 씨는 경찰 조사에서 말을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직업이 없는 유 씨가 얼마 전 중국동포 아내까지 가출하자 화를 참지 못하고 전화를 했다”며 “유 씨도 왜 외교부에 전화해 세브란스병원을 지목했는지 모르고 있다”고 전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지난달 28일 오전 5시경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문공원 인근 도로에서 신호를 무시한 채 달리던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오토바이 운전자 김모 씨(44·여)는 차량에 부딪힌 뒤 10여 m를 굴렀다. 그랜저 운전자는 그대로 차를 몰고 달아났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차량 행방은 오리무중. 경찰은 인근 아파트 단지로 도주했다는 목격자 말에 따라 뒤를 쫓았지만 이미 후문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그때 경찰관의 눈에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엔진오일 방울이 들어왔다. 오일 방울은 1m가량의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다. 경찰은 오일 자국을 따라 약 1.5km를 따라가 다세대주택 주차장 안쪽에 주차하고 숨어 있던 운전자 김모 씨(40)를 붙잡았다. 인적이 드문 곳에 주차장이 보이자 시간을 벌려고 일단 숨은 것이다. 한숨 돌리던 김 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부서진 보닛 안쪽에서 흘러내린 엔진오일 자국이었다. 빵조각을 따라가 길을 찾는 동화 ‘헨젤과 그레텔’ 속의 이야기처럼 범인을 잡은 것이다. 경찰은 “김 씨는 다른 사람 명의의 일명 ‘대포차’를 운전하고 있어 도주한 것 같다”며 “오일 자국을 못 봤다면 놓칠 뻔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김 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혐의로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경쟁업체 직원에게 돈을 주고 회원정보를 빼돌린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임모 씨(62) 등 H상조 임직원 3명과 이들에게 회원정보를 넘긴 혐의(배임수재 등)로 A상조 전 직원 김모 씨(51·여)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임 씨 등은 2월부터 최근까지 A사 전 지역 본부장 김 씨 등에게 모두 3억여 원을 주고 이들이 관리하던 회원 3만6000여 명의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집주소 계좌번호가 담긴 개인정보를 입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 등은 회원정보를 넘긴 뒤 H사로 이직했다. 또 자신이 관리하던 회원 530여 명을 H사에 등록시켰다.}
영화 ‘도가니’의 흥행으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이 국가적 논란이 되면서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추진된다. 대다수 사회복지법인이 이사회를 친인척과 지인으로 구성해 ‘족벌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관리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가 감독할 수 있는 근거를 법에 명문화하려는 것이다. 1996년 ‘에바다 사건’, 2006년 ‘성람재단 성추행 사건’, 2009년 ‘목포농아원 성폭력 사건’ 등이 터질 때마다 법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무산돼 이번에 법 개정이 마무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도가니 방지법’ 나온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28일 복지재단 투명성 확보 및 족벌경영 방지를 위한 ‘도가니 방지법’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복지재단 투명성 확보 및 족벌경영 방지를 위한 회계·결산·후원금 상세보고 의무화, 공익이사 선임 등 법인 임원제도 개선,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감독기능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진 의원은 “사회복지법인 운영이 사회적 취약계층 보호라는 본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당 박민식 의원은 이날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뿐 아니라 선고유예도 배제토록 했으며, 이 같은 성폭력 범죄에 형법상 법관의 재량으로 행해지는 형의 감경이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도록 했다. 광주시교육청은 인화학교를 폐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위탁 교육을 취소하고 학생들은 전학을 가도록 해 폐교 수순을 밟겠다는 것이다. 한편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은 이날 도심 영화관에서 직접 이 영화를 관람한 뒤 “오랜만에 보는 영화였는데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충격적이면서 감동적이었다”며 “더는 우리 사회에 이 영화에서와 같은 장애아동에 대한 인권 유린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대법원 관계자가 전했다.○ 성폭력 폭행 횡령으로 얼룩진 특수시설 영화 ‘도가니’의 배경이 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과 비슷한 사례는 그동안 꾸준히 있었다. 1996년 11월에 터진 ‘에바다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기 평택시 에바다복지회는 농아원과 학교, 장애인종합복지관을 갖추고 정부로부터 운영비 전액을 보조 받아 시설을 운영했다. 하지만 인권침해와 재단비리를 견디지 못한 청각장애아들의 집단 농성으로 세상에 알려진 실태는 충격적이었다. 재단 이사회는 모두 3억여 원의 국고 지원금을 횡령했고 장애 아동을 제본공장에 보내 새벽까지 강제 노역을 시키고 임금까지 빼돌렸다. 또 평택 미군들이 봉사활동 명목으로 시설에 찾아와 장애아동을 성추행했지만 시설은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법인 성람재단에서도 2006년 6월 장애여성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장애인들이 2006년 140여 일 동안 노숙 농성까지 벌이며 투쟁한 끝에 이사장이 수십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고 100여 건의 위법사항과 인권침해 사례가 드러났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