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의 “결혼은? 취직은?“ 한마디가 상처뿐인 귀향 만들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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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명절 가족끼리 스트레스 줄이려면

“한 번만 더 결혼 이야기 꺼내면 명절 때마다 해외로 도망갈 거야.”

회계사 김모 씨(30·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 소리를 꽥 질렀다. 최근 오빠가 결혼한 뒤 부모가 결혼을 독촉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연봉 7000만 원을 받으며 휴가철마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독신의 즐거움을 당장 포기하고 싶지 않다. 결국 부모와 친척 어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올해 추석에는 ‘귀향 거부’를 선언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8일 트위터에는 ‘명절 잔소리’를 걱정하는 글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트위터리안 ‘east_******’는 “추석이구나. 잔소리에 배불러 오는 명절”이라고 썼다. ‘MySI*****’는 “명절=꼰대들이 충고니 뭐니 하는 명목으로 꼰대질을 장마 때 댐 수문 열듯 콸콸콸 쏟아내는 기간을 이르는 말”이라고 적었다.

반가운 가족 친척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 명절. 하지만 아끼는 마음에 건넨 덕담,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뱉은 한마디가 듣는 사람에겐 상처를 주는 비수가 되곤 한다. 추석 때 살을 맞대고 시간을 보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50, 60대와 연휴를 그저 푹 쉬고 싶은 20, 30대 간 세대 갈등도 있다.

미혼 남녀에게 결혼과 연애에 대한 친지들의 언급은 고마운 충고가 아닌 명절 귀향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간섭’이 된다. ‘살 좀 빼라’ ‘돈 많이 벌어라’도 듣기 싫은 잔소리다. 예전처럼 꾹 참는 대신 아예 귀향을 거부하는 젊은이가 많아지다 보니 그런 청춘남녀를 대상으로 한 추석 맞선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 이웅진 대표는 “추석 연휴 기간 열리는 맞선 행사에 100여 명으로 잡은 정원이 3일 만에 찰 정도로 인기였다”고 말했다.

명절 잔소리 스트레스에 시달린 누리꾼들은 대처법을 공유하고 있다. ‘kitty******’는 “명절 잔소리는 ‘몇 살이냐’는 질문에서 시작되니 친지가 나이를 물으면 ‘몇 살이게∼요’라고 외치고 도망가라”고 썼다.

시댁 식구들이 며느리에게 하는 별것 아닌 충고도 당사자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 주부 이모 씨(41)는 “명절마다 남편과 자녀를 위해 희생하라는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며 “동서지간에 아이들 학교 성적을 비교하는 스트레스까지 받는다”고 호소했다.

명절에 내려온 자식의 푸념이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양모 씨(60·여)는 “명절 때마다 생활이 힘들다고 불평하는 자식들을 보면 내가 못해 줘서 그런가 하는 마음에 속으로 남몰래 눈물도 흘린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오랜만에 모인 가족은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다 보니 잔소리 같은 사소한 갈등도 잘 해소되지 않아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며 “특히 친지들 앞에서 잔소리를 들으면 듣는 사람은 굴욕감을 더 크게 느낀다”고 분석했다.

한창희 전 충북 충주시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가족끼리 비교는 절대 금물”이라며 “남하고는 물론이고 가족끼리도 비교를 하게 되면 열등의식이 생겨 관계가 불편해진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상대방이 말하고 싶지 않은 걸 화두로 올리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아들이 대학에 낙방하여 속상한데 자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간 형제가 ‘조카 아무개는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짜증이 나게 된다. 묻는 사람은 우월의식을 느껴 기분이 좋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명절에 오랜만에 친척들이 만나 안부를 물을 때 상대방이 편하게 대답할 수 있는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다”며 “충고보다는 칭찬을 위주로 하라”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추석#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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