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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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선희 기자입니다.

teller@donga.com

취재분야

2026-01-09~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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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자본주의 명암 되돌아봐야 할때”

    서울 강남은 현대 한국 사회에 들끓는 욕망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타워팰리스로 대변되는 고급주택과 부동산 열풍, 소비문화의 첨병인 명품 거리, 극성스러운 사교육…. 우리 사회 안팎은 어떤 식으로든 ‘강남의 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계층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한국인 삶에 배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이 꿈의 기원은 무엇일까. 소설가 황석영 씨(67)가 ‘개밥바라기 별’ 이후 2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 ‘강남몽’(창비)에서 그 이면의 역사를 밝혀낸다. 무분별한 개발주의에 경종을 울렸던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소설 속의 ‘대성백화점’)를 주요 소재로 삼아 3·1운동 직후부터 6·25전쟁과 5·16군사정변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주요 등장인물의 삶 속에 녹여냈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작가는 “강남 형성사를 쓰겠다고 생각한 건 몇십 년 전인데 대하장편이나 정색한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 형식으로 쓸지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이제야 숙제를 풀게 됐다”며 “한국 자본주의의 그늘과 근대화의 상처를 되돌아보고 현재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봐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 군상이 등장한다. 대성백화점 회장의 후처로 강남 상류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화류계 출신의 박선녀, 시대에 따라 일본의 밀정, 미국의 정보원 등으로 활약하며 부를 거머쥐게 된 김진 회장, 정치권과 결탁했다 버림받은 폭력조직의 홍양태…. 이들의 개인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우울했던 여로와 고스란히 겹친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실존 모델의 이름, 행적에서 약간씩 변형을 가한 이들이며 박정희, 김구, 여운형 등은 실명 그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는 “뒤늦게 공개된 해외의 기밀문서들, 신문자료 등을 참고로 해 80%가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며 “인물의 일상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한 부분 외에는 모두 사실에 근거해서 썼으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스케일 큰 사건들을 인물을 통해 풀어낸 서사의 흡인력은 황석영 특유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삼풍백화점 붕괴 무렵이 중요한 시기라고 봤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출발, 경제적으로는 개발독재의 종언, 문화적으로는 소비사회의 도래 등 우리 사회의 새로운 변화가 등장하던 시대였거든요. 1990년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욕망, 좌절의 흔적들이 그 시간 속에도 그대로 있어요.” 소설에서 묘사되는 강남형성사와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야합과 분열, 상처로 얼룩져 있다. 그는 “어느 나라든 근대화 과정에는 상처와 분열이 있기 마련이다. 중립적으로 썼는데도 쓰고 보니 불온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인 것 같다”며 “하지만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는 한국 현대사와 개인의 일생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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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의 이슬람 사원으로 가는 오르막길. 길목 곳곳에 히잡을 쓴 무슬림 여인, 이국적인 간판과 상점들이 눈에 띈다. 나지막한 담장에 허름한 간판을 단 쌀집도 보인다. 가게 주인들은 문을 활짝 열어두고 마실 온 동네 사람들과 부채질을 하며 느긋이 이야기하고 있다. 28일 오후 이곳의 한 터키 음식점에서 소설가 손홍규 씨(35)를 만났다. 좁고 경사진 골목길과 다닥다닥 붙은 다가구주택, 영세한 규모의 상점들이 즐비한 이 거리가 그가 최근 펴낸 성장소설 ‘이슬람 정육점’(문학과지성사)의 주된 배경이다. 터키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하산 아저씨가 주인공 고아소년인 ‘나’를 입양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소설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국적 외모와 달리 그는 말끝마다 “거시기”를 붙이며 푸근한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소설 쓰다 보면 거시기 할 때 있잖습니까. 그럴 때마다 한 번씩 와서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무슬림들은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지, 일상적인 풍경과 골목길을 엿보고 가고 그랬어요.” 주인공이 살게 된 이 동네에는 정육점을 운영하는 독실한 무슬림 하산 아저씨 외에도 전쟁의 상처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는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쳐 나온 충남식당의 안나 아주머니 등이 등장한다. 일반적인 성장소설과 달리 이 책은 한국에 눌러앉게 된 다국적 인물들의 일상을 배경으로 6·25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색다르게 탐색한다. “6·25전쟁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 자료를 찾다가 참전국인 터키와 그리스 역사를 접하게 됐는데, 두 나라가 엄청 거시기한 사이더라고요. 오스만제국 때는 그리스가 터키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는 또 그리스가 터키를 침략한 전쟁이 일어났고…. 그런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거시기한 상태로 6·25전쟁에서 만나 유엔군의 일원이 됐어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 같았습니다.” 이야기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이들 소수자를 향해 뻗어간다. 그는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지만 전쟁을 현시대 고통의 기원으로 느끼는 사람으로서 이전 선배들의 뼈아픈 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풀어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인공은 소설 마지막 대목에서 “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했다”고 말하며 성장통을 끝낸다. 작가는 “누구에게나 이 세상은 의붓 세계”라며 “민족, 나라, 핏줄도 다른 의붓아버지가 의붓아들을 품어 안았듯 우리도 이 세계와 어떻게 교감을 나눌지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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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누군가의 글쓰기’ 엿보다

    ◇바셀린 붓다/정영문 지음/276쪽·1만2000원·자음과모음한밤중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잠 못 이루는 서술자가 자신이 쓰게 될 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이 소설은 메타텍스트적이다.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주변의 사소한 소리, 움직임에 관한 기록이거나 과거에 겪은 일들에 대한 회상이다. 하지만 소설에 언급되는 내용에 대한 신빙성은 서술자에 의해 부정되기도 하고 사실과 회상, 상상이 뒤섞이면서 이 글이 진행되고 있음을 스스로 밝히기도 한다. 서술자는 계속해서 ‘이 글의 구성’ ‘이 글의 형식’ ‘이 글을 쓰는 나’를 환기시킨다. 독자들은 글쓰기에 길을 잃은 누군가의 글쓰기, 진행 중이고 만들어져 가고 있는 누군가의 글쓰기를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국 소설에서는 이처럼 서사 자체를 실험하는 작품들이 늘고 있다. 줄거리도, 사건도, 캐릭터도 없는 이런 작품을 기존의 독법으로 읽으려고 해서는 머리 아프고 짜증만 날 것이다. 글 쓰는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작중 의도를 염두에 두고 감각적으로 감상한다면 좀 수월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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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한나 수녀는 왜 봉쇄된 수녀원에 들어갔을까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초록강/곽한나 지음/272쪽·1만 원·진명출판사이 에세이집의 저자인 한나 수녀님은 영국의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다. 봉쇄 또는 관상수도회라고 불리는 수도원은 세상과 격리돼 있는 곳이다. 6세기의 베네딕트 성인이 세운 규칙을 거의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간다. 수녀원 밖으로는 나가지 않고 하루 일곱 번 기도를 드리며 독서, 묵상, 대침묵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곳에서 지내는 수녀님들은 고작 아홉 명. 봉쇄 수녀원 울타리 안에서 심한 우울증을 갖게 된 한나 수녀님은 지금은 런던에 마련된 거처에서 지내며 수도원의 규율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영국에서의 생활을 비롯해 어린시절 전쟁 체험, 입교하고 수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일상 등을 산문으로 풀어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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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史·哲의 향기]황실에 원한 맺힌 ‘사기’ vs 황실에서 태어난 ‘한서’

    ◇사기와 한서/오키 야스시 지음·김성배 옮김/240쪽·1만8000원·천지인중국에서 정사(正史)로 다뤄지는 역사서는 ‘사기’ ‘한서’ ‘삼국지’ 등 총 24사(史)다. 이 중에서도 사기와 한서는 왕조의 권위에 의해 공인됐다는 점과 기전체 형식(본기와 열전으로 나뉘어 있는 형식)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후대 중국의 역사서를 정사냐 야사(野史)냐로 가르는 기준이 된 대표적인 역사서다. 오늘날에는 사기에 비해 한서는 덜 알려져 있지만 모든 시대에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唐) 초까지만 해도 한서가 우세했다. 판세가 뒤집어진 것은 중당부터이며 명(明)대에 이르러야 사기의 명성이 완성됐다. 사기는 태고에서 한대까지를 다룬 통사이며 한서는 한대의 역사만 정리한 단대사라는 차이가 있지만 시기가 겹치거나 중복되는 내용이 있어 두 역사서를 여러 면에서 비교하기 좋다. 어떤 책을 더 높이 평가했느냐에 따라 이후 시대의 정치상황과 학풍을 함께 파악할 수도 있다. 중문학자이자 도쿄대 교수인 저자는 ‘역대 정사의 맞수’로 불리는 두 역사서의 차이를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분석한다. 결론부터 요약하면 사기는 발분저서(發憤著書)이자 유교의 영향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반면 한서는 명철보신(明哲保身·밝고 지혜로워야 몸을 지킬 수 있다)의 책이자 엄격한 유교질서 아래서 쓰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문체 또한 각각 고문(글자 수에 구애받지 않음)과 변문(정형성을 띤 문장)적 특색을 지닌다. 이렇게 된 까닭은 집필 동기와 시대적 배경 등에서 참작해볼 수 있다. 조상 대대로 사관이었던 집안 출신이지만 흉노 정벌군으로 나갔다 포로가 된 옛 친구 이릉을 변호하다 궁형에 처해진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일화는 유명하다. 사마천은 집필 동기를 밝힌 ‘태사공자서’를 사기 끝에 배치했는데 이 글에서 그는 “이릉의 사건으로 화를 입었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탄하며 “굴원은 추방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가 시력을 잃자 ‘국어’가 나왔다…모두 마음에 맺힌 게 있었으나 자신의 뜻을 펼 길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일을 기록해 장래에 자신을 알아줄 자를 기다린 것이다”라고 썼다. 그래서인지 그는 역경에 처했던 비운의 인물들을 비중 있게 다룬다. 유방에게 패한 항우를 황제의 전기인 ‘본기’에 넣거나 떠돌이에 불과했던 공자를 제후의 전기인 ‘세가’에 수록한 것이 그런 예다. 학문의 명가에서 태어난 한서의 저자 반고는 황제의 지시를 받고 역사 집필을 시작했기 때문에 순조로운 과정을 밟았다. 반고는 사기의 상당 부분을 참고했으며 사마천의 필치 역시 높게 평가했지만 그가 유학의 오경을 소홀히 했으며 극형에 처해진 발분으로 사기를 저술했다는 점에서 불만을 드러냈다. 유교적 기풍이 확고해진 시대에 왕조는 세계의 중심이었으므로 반고는 왕조의 악한 일은 본기에서 기록하지 않고 열전으로 옮겨놓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미화에 애를 썼다. 예를 들어 도망치던 유방이 수레 속도가 느려질까 봐 자식들을 수레에서 떨어뜨리는 에피소드를 사기는 본기에서 다루지만 한서는 다른 곳에서 다룬다. 유방이 항우 군대에 쫓겨 달아나는 장면도 사기에서는 “한왕은 도망치다가…”로 쓰는 반면 한서에서는 “한왕은 뛰다가…”로 표현한다. 이렇다 보니 문벌귀족과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넉 자, 여섯 자로 글자수를 맞춘 글)이 성행할 때는 한서가 높이 평가받았지만 과거 관료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당, 진한의 문장을 높이 사고 정열적인 문학을 추구했던 고문사파가 우세한 명대에 이르러서는 사기가 추앙받을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역사서를 쓴다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행위”라고 강조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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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山처럼… 禪은 받는게 아니라 나누는 것”

    경북 문경시 산북면, 금강송이 빼곡한 해발 600m 산기슭. 녹음이 우거진 푸른 숲에 둘러싸인 대승사에선 20여 명의 스님이 하안거 중이다. 경내는 한적하다. 24일 오후 1시를 조금 넘겨 대승사에 도착하자 종무소 앞에 백구 한 마리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주지인 철산 스님은 내방객들에게 손수 끓인 차를 대접하고 있었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이들이 철산 스님을 방문해 차를 얻어 마시고 간다. 스님은 기자에게도 “마시고 나면 화끈거리면서 혈액순환이 잘될 겁니다”라며 세숫대야만 한 사발에 한가득 따뜻한 경옥고를 채워 내줬다. 주변 사람들이 “대승사의 물고문”이라며 웃었다. 대승사는 불자들의 시주에만 의존하지 않고 산사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절에 필요한 물품이나 운영 재원을 독자적으로 마련한다. 그 특징은 다실에서부터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스님이 내놓는 차와 경옥고, 민들레 조청은 모두 대승사에서 만들었다. 다양한 다기들도 스님이 가마에서 구웠다. 대승사의 하안거는 엄격한 정진으로 명성이 났지만 이곳은 몇 년 사이 참선이나 교학에 전념하는 스님들뿐 아니라 불자들과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사찰 내에는 템플스테이 공간을 비롯해 산에서 직접 재배한 도라지 더덕 버섯 차 장뇌삼 등을 가공하고 판매하는 공간,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구울 수 있는 도예장도 마련돼 있다. 한 해 7000여 명이 이곳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한다. 시주에만 의존해서는 사찰 운영이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런 시도는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받는다. 철산 스님은 “절에서 재배하고 판매한 수익금을 대부분 장학금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재정 자립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그뿐만 아니라 산사에서 얻을 수 있는 체험을 우리만 누리는 게 아니라 시민들에게 되돌려주자는 것이다. 종교가 다르든 같든 대승사에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그것이 무엇보다 좋다”고 말했다. 하안거 중인 스님들을 입선시킨 뒤 스님은 짚모자를 쓰고 사찰 인근의 산길 주변에 자란 삼을 직접 캤다. “산이란 것은 굉장한 자원인데 씨앗 하나 뿌리지 않고 채취만 하는 건 복을 감하는 일입니다. 올봄에도 주변 밭에 삼, 도라지, 더덕 씨를 한가득 뿌려뒀어요. 선이란 게 앉아 있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다니면서 움직이고 먹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다 선입니다.” 스님은 지난해부터 문경읍의 금우문화재단에서 불교와 관련된 수업뿐 아니라 도자기 다도 수묵화 등을 배울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민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사찰 한편에서는 뽕나무로 옹기를 굽는 가마의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10년 전 도예를 시작했다는 스님이 다완을 뚝딱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고 난 뒤 다실로 올라가자 10여 명의 불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은 “차 한 잔들 드시자”며 반갑게 맞았다. 참선과 정진의 공간에 소통과 재정 자립의 기틀을 함께 마련해온 철산 스님. 그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아낌없이 내줄 만큼 넉넉했다. “자립이 뭐 다른 것이겠습니까? 여기 오시는 분들이 좌선하고 참선하는 것뿐 아니라 산길을 따라 걸으며 삼도 캐고 반딧불이 구경도 하면서 산의 기운을 마음껏 다 가져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산에서 거두기만 하는 것은 복을 줄이는 일입니다… 수행과 정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 돼야지요”문경=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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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60주년]“요즘 전쟁이 어딨냐 하는데 6·25는 지난 사건이 아닌 현재”

    《분단문학의 대표작 ‘장마’의 작가 윤흥길 씨(68).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젊은 문학평론가 김나영 씨(27)와 함께 17일 서울 중구 황학동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았다. 윤 씨는 ‘장마’ 외에 ‘황혼의 집’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에미’ 등 유년 시절에 겪은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분단문학에 천착해 왔다. ‘장마’는 각각 국군과 인민군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눈 아들을 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갈등과 화해를 어린 화자의 눈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화자의 삼촌은 국군으로 싸우다가 전사했고 그 통지를 받은 친할머니가 빨치산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면서 외할머니와의 갈등이 고조되지만 두 할머니는 토속신앙을 토대로 이데올로기를 넘어 용서와 화합으로 나아간다. 이날 대담에서 문학평론가 김 씨는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가 관심을 두지 않는 전쟁의 참상과 분단 상황에서의 문학의 역할을 물었다. 윤 씨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쟁의 비극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곤 한다”며 2시간여에 걸쳐 전쟁 체험과 문학의 역할 등을 되짚었다.》 “파리똥만큼 작아보이던 폭탄 순식간에 참혹한 폐허 만들어 아홉살의 충격 날 오래 괴롭혀…6·25는 세계역사가 행한 오폭…그로 인해 우리 삶 전체가 굴곡참상 증언-분단전 동질성 확인…한권도 팔리지 않는다 해도 작가의 의무 계속해 갈것”김=반갑습니다. 근황이 어떠신가요. 윤=대학에서 정년퇴임한 뒤론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쓰고 싶은 게 많은데 시간이 한정돼 있어 집에서 꼼짝 않고 밤새워 작품을 씁니다. 김=여전히 밤새워 작품을 쓰신다니 열정이 놀랍습니다. 올해로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됐습니다. 분단문학의 대표 작가이신 선생님께서 느끼는 감회는 어떠신지요. 윤=1953년에 휴전이 된 뒤 7년 뒤인 1960년에 군대에 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내 아들대가 되면 징병제가 사라질 거고 통일도 돼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 상태 그대로 지속되고 있어요. 김=어린 시절 전쟁을 경험하셨는데 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아홉 살 때 6·25가 터졌습니다. 당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살던 전북 이리(현 익산시)의 시골 마을은 7월까지도 전쟁의 느낌은 없었어요. 그러다 수업 중에 이리역에 폭격사고가 났어요. 폭탄이 파리똥만큼 작게 내려오다 순식간에 커지면서 머리 위에 똑바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에 질렸던 느낌이 납니다. 참혹한 풍경이었어요. 역 건물이 무너지면서 철근이 휘어지고 거기에 몸뚱이가 꿰어 있는 사망자도 봤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미군이 인민군을 타격하려다 실수로 쏜 오폭이었어요. 전쟁 때문에 죽거나 고통 받은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어린 시절 처음 접했던 오폭의 충격과 혼란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습니다. 김=비극적인 체험이 선생님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요. 윤=오랜 시간에 걸쳐 문학을 통해 그 혼란에 답을 내릴 수 있게 됐지요. 사실은 6·25전쟁 자체가 이리역의 오폭사건처럼, 세계 역사가 한반도에 오폭을 한 것이란 생각이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 이에 응전한 남한 모두 세계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는 피해자입니다. 평론가들은 편의상 내 문학을 ‘장마’는 분단문학,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산업화 사회소설, 이런 식으로 나누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구분해본 적 없어요. 과거나 현재나 시종여일 우리 민족의 삶을 극성스럽게 간섭하고, 훼방하는 원인이 바로 6·25전쟁과 이후의 분단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이상 중요한 게 없다고 믿습니다. 내 모든 소설은 결국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김=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6·25전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고민하는 사회의 여러 부조리들도 상당 부분 전쟁과 연관돼 있다는 점도요.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6·25를 지나간 사건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윤=내 입장에서 놀라운 게 바로 그 점입니다. 우리 주변에 전쟁이 어디 있느냐고들 하는데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우리 삶 전체가 6·25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군부독재, 군비지출, 징병제, 국제관계, 이산가족…. 모두 전쟁이 남긴 것들입니다. 6·25는 역사에 편입된 적이 없는 현재의 일입니다. 경제 논리를 들며 통일을 반대하는 젊은 세대들도 안타까워요. 분단으로 인한 수많은 제약과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단견입니다. 김=그렇기 때문에 문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윤=이런 시대에 작가가 감당해야 할 역할은 두 가지가 있을 겁니다. 작품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적인 면을 증언하는 것, 그리고 이질화 돼가는 남북의 동질성을 확인해 나가는 것. 여기서의 동질성은 우리가 이데올로기로 인해 분단되기 이전 남북이 공유하던 전통과 관습 같은 것들이겠지요. 김=말씀을 듣고 보니 전쟁의 참상에 대한 증언, 한민족 동질성 회복의 노력들이 선생님의 여러 작품 속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쓰고 계신 작품이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윤=분단문학은 작가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이고 작가로서 의무라고 생각하는 주제입니다. 한 권도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작업을 계속 해나가려고 합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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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MB, 높은 지지 낮은 호감 왜? 外

    일은 열심히 잘하지만 친근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는 높지만 호감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청와대 참모들의 고민이 깊다. 심리분석 전문가들이 여권의 의뢰를 받아 50여 명의 시민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도 지지도와 선호도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 美출구전략 시기는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23일 금리를 현재의 0∼0.25% 수준에서 그대로 묶어두기로 했다. 경기가 나아지고는 있지만 부동산 부문 투자가 부진하고 유럽의 재정위기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다. 이에 따라 연내 출구전략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 절 자립경제 실험하는 스님사찰이 이제 수행과 정진의 공간인 것만은 아니다. 경북 문경의 대승사는 절을 찾는 방문객들과 함께 차, 버섯, 더덕, 삼 등을 재배하거나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워 판매한다. 사찰의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한편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절을 운영해 나가는 대승사의 철산 스님을 만났다. ■ 올 태풍, 센 놈이 오래 머문다최근 몇 년간 겪은 태풍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몇몇이 ‘매미’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벌써 7년 전 일. 최근 2, 3년간 한반도에 태풍다운 태풍은 없었다. 올해는 다르다. 예년과 같이 2, 3개가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센 놈’이 ‘오랫동안’ 머무른다는 분석이다. 몇 년 만에 태풍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올 성장률 전망 5.8%로 상향정부가 나라살림의 윤곽과 한국 경제의 좌표를 담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았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0%에서 5.8%로 크게 올리면서 하반기에 출구전략을 단행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일용 근로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등 서민생활 안정책도 펴나가기로 했다.}

    • 20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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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장의 공포는 소설이 되고… 상처의 치유는 詩가 되다

    《6·25전쟁은 전후(戰後) 한국문학의 주요 주제였다. 3년에 걸친 전쟁의 참상,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 적의 점령과 아군의 수복이 혼란스럽게 교차하는 와중에 힘없이 스러져간 민초들의 삶…. 6·25전쟁과 분단을 다룬 한국문학은 기본적인 인간 생존의 문제부터 사상의 문제까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양하게 비췄다.》박완서 ‘그많던…’ 김원일 ‘불의 제전’전쟁의 참상-체험 전하고조정래 ‘태백산맥’ 오상원 ‘유예’남북 갈등-이념대립 조명최인훈 ‘광장’ 하근찬 ‘수난이대’이데올로기의 허구성 고발황순원 ‘학’ 윤흥길 ‘장마’…화해와 극복과정 그려내○ 남침부터 휴전까지 6·25의 참상 “인민군이 삼팔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듣긴 했지만 전에도 삼팔선에선 충돌이 잦았고 그때마다 국군이 잘 물리쳐 왔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보다 했다…그러나 하학 길은 아침과 좀 달랐다…다음 날 아침에는 포 소리가 미아리고개 너머에서 쏘는 것처럼 가까이 들렸다…귀갓길은 시시각각으로 촉박한 전운이 감돌고 있었고, 간단없는 포 소리에 행인들은 무작정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박완서,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 남침 하루 만에 의정부를 점령한 북한군은 28일 서울을 장악했다. 6·25전쟁 체험에 문학적 뿌리를 두고 있는 소설가 박완서 씨의 작품 속에는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던 당시의 혼란상이 잘 드러나 있다. ‘엄마의 말뚝’(1982)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그의 여러 작품에서 싱그러웠던 6월 갑작스럽게 터진 전쟁과 그로 인한 공포, 위기감 등을 묘사해 놓았다. 인민군에게 서울을 침탈당했던 연합군과 국군은 3개월 만인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다. 유년 시절의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형상화해온 김원일 씨는 대하소설 ‘불의 제전’(1983)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전쟁의 전개과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했다. 1950년 1월부터 10월까지 6·25전쟁 과정을 그려낸 이 작품엔 당시 시가전의 참혹함이 생생하다. “석 달 전 하루 사이에 세상이 변했듯, 석 달 뒤 정말 하루 사이에 다시 변해버린 세상이다…세종로 쪽을 보니 광화문 앞 광장에 쓰레기 더미가 왕릉처럼 수북이 쌓였다. 국군들이 중앙청 안에서 연방 무언가를 날라 와 쓰레기 더미에 던져 보탠다. 시체다. 쌓인 시체의 걸친 옷은 흰색이 많아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다.” 전쟁의 아수라 속에서 잔혹하게 자행된 인명 살상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그것은 타 죽은 시체의 산이었다. 지붕을 했던 양철이라든지 가마니 따위로 대강은 가리어 놓았지만, 백구에 가까운 시체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장용학, ‘현대의 야’·1960).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1989)은 남한 내 좌익세력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1948년의 여순사건에서부터 1953년 휴전협정이 조인된 이후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을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삶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 ○ 파괴된 삶…휴머니즘으로 극복 전쟁으로 파괴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은 김동리의 ‘귀환장정’(1950), 최태응의 ‘동부전선 기행’(1953) 등 전쟁 당시인 1950년대 전시소설부터 최인훈의 ‘광장’(1960),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1964), 홍성원의 ‘남과 북’(1987)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기록됐다. 오상원의 ‘유예’(1955), 선우휘의 ‘불꽃’(1957)은 전쟁 상황에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손창섭의 ‘비오는 날’(1953), 이범선의 ‘오발탄’(1959) 등은 전후의 무기력과 좌절 등 후유증을 보여준다. “동무는 아직도 계급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소…다시 한 번 생각할 여유를 주겠소. 한 시간 후, 동무의 답변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거요…몽롱한 의식 속에 갓 지나간 대화가 오고 간다…사박사박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 부서지는 눈, 그리고 따발총구를 등 뒤에 느끼며 앞장서 가는 인민군 병사를 따라 무너진 초가집 뒷담을 끼고 이 움 속 감방으로 오던 자신이 마음속에 삼삼히 아른거린다.”(오상원 ‘유예’) 침략과 반격이 교차되는 접경지대에서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분열되거나 가족이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황순원의 ‘학’(1953)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윤흥길의 ‘장마’(1973), 하근찬의 ‘수난이대’(1957) 등의 작품들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황순원의 ‘학’은 전쟁의 와중에 국군과 인민군 편으로 갈릴 수밖에 없었던 두 친구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다.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고발하면서 휴머니즘, 민족의 동질성 회복 등을 통해 전쟁의 상처에 대한 문학적 처방을 제시한 것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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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복을 빕니다]학술원 회원 원로사회학자 이만갑 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자 1세대 사회학자인 이만갑 서울대 명예교수(사진)가 1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났으며 1944년 도쿄데이코쿠대 문학부 사회학과를 나왔다. 1949년 서울대 문리대 강사를 시작으로 1986년 정년퇴임 때까지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 사회학의 기초를 닦았다. 농촌사회 연구에 매진했으며 1977∼1981년 서울대 새마을운동종합연구소 소장으로 새마을운동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했다. 고인은 ‘주변집단의 의식’의 사회학적 의미를 연구하는 데에도 천착했다. 그는 “변혁을 주도하는 세력은 지배계급의 바로 밑에 있는 주변집단”이라는 사회학적 가설을 검증하고자 했으며 주변집단이 지닌 사회변혁적 에너지의 근거를 밝히기 위해 ‘의식’과 ‘자기’라는 두 주제를 오랫동안 탐구해 왔다. ‘의식에 대한 사회학자의 도전’ ‘자기와 자기의식’ ‘한국농촌사회연구’ 등의 저서를 남겼고 국민훈장 모란장, 국민훈장 동백장, 학술원상 등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정재룡 씨(85)와 아들 성진(재미·사업) 상섭 씨(재미·회사원), 딸 성자 은애 씨(덕성여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발인은 22일 오전 8시 40분. 02-3410-6912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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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분단소설 대표작가 육성고백

    ◇선유리, 이호철 소설 독회록/민병모 엮음/546쪽·2만 원·미뉴엣분단문학의 대표작가 소설가 이호철 씨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 고양시 선유리. 2006년부터 2년간 이곳에 매달 연구자, 작가, 제자, 동네 주민, 작가 지망생 등 30여 명이 모여 이 작가의 소설을 함께 읽어나갔다. 작가는 직접 선정한 ‘오돌할멈’ ‘서울은 만원이다’ ‘남녘사람 북녘사람’ 등 대표작 23편을 이들 앞에서 낭독한 뒤 창작 배경과 경험담을 참석자들과 함께 주고받았다. 이 책은 ‘문학 사중주’라 불리는 이 모임에서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이 책에는 작가의 육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소시민’을 독해하는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소시민의 작가’로 불렸던 것에 대해 “사회를 뒤집어엎어 놓을 만한 작가가 아니고, 그저 소시민, 그런 작가라고 폄하하는 시각이 담겨 있어 좀 섭섭했다”고 털어놓는다. 작품 속에 녹아든 전쟁 체험뿐 아니라 등단 비화, 황순원 김동리 이문구 등 교유했던 문인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한 이야기 등도 실려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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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惡의 塔에 갇혀 훔쳐야 사는 세상

    ◇쓰리/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양윤옥 옮김/247쪽·1만2000원·자음과모음이쪽 방면으로는 확실히 소질을 타고난 듯한 젊은 소매치기꾼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얼핏 이외수 작가의 ‘황금비늘’과 겹쳐진다. 부자들의 돈만 노린다는 나름의 원칙, 귀신같은 솜씨로 지갑을 빼내고 현금만 챙긴 뒤 태연히 다시 지갑을 원래 자리에 되돌려놓는 기술,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아이에게 비법을 전수해주는 과정 등이 그렇다. 신출귀몰의 소매치기 현장 이야기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선을 끈다. 그러나 의협심도 있고 제법 인간적이기도 한 홍길동식 소매치기의 활약상 같은 게 펼쳐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서스펜스적인 음울한 기조를 유지한다. ‘흙 속의 아이’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등에서 선악의 대립과 인간 내면의 폭력성, 삶과 죽음 등의 문제를 형상화해 왔던 작가는 소매치기라는 흥미로운 직업을 전면에 내세운 이 소설에서도 작가 특유의 문제의식을 심화시킨다. 일본 도쿄 지하철을 오가며 소매치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니시무라는 사실 일종의 좀도둑에 가깝다. 그와 동료 이시카와는 ‘10억 엔 가진 놈에게서 10만 엔쯤 훔쳐봐야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신조로 자신들의 소매치기를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낡은 재킷이나 다 닳은 운동화를 신고 있다면 지갑이 바지 뒤춤에 삐죽이 나와 있어도 절대 훔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그와 이시카와는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들게 된다. 하루하루 출퇴근길 부자들의 지갑에서 현금을 빼내는 것으로 살아가는 한량들로서는 실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조직이다. 그 어두운 세계의 중심에 기자키라는 인물이 있다. 소설 속에서 기자키는 순수 악을 상징하는 존재로 보인다. 니시무라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도, 거부할 수도 없게 된다. 기자키는 그에게 특정 인물의 소지품을 훔쳐오라는 몇 가지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니시무라는 그 일이 어떤 맥락에서 이뤄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니시무라는 감춰진 거대한 음모의 주변부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기자키의 지시에 따라 체스판의 말처럼 움직일 뿐이다. 그렇지 않았을 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시카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기자키에게 흔적도 없이 살해돼 세상에서 사라졌다. 어린 시절 니시무라가 처음 도둑질을 하게 됐을 때부터 끊임없이 허공에 나타났던 거대한 탑의 환영은 기자키와 그의 조직이 갖는 이미지와 흡사하다. 개인이 알 수 없는 어떤 압도적인 힘이 각자의 인생을 멋대로 조작하고 휘저어 버리는 데 대한 니시무라의 두려움과 공포감. 이것은 극도로 조직화된 동시에 파편화되어 버린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막연한 불안과 흡사하다. 기자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니시무라의 노력이 성공했을지 실패했을지에 대해 소설은 열린 결말을 유지한다. 어쩌면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성공했다 해도 세계가 비정하다는 사실을 조금도 바꿀 수 없을 가냘픈 몸짓이기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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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을 매혹의 장르로 끌어올린 지식거장”

    《“정치하고 섬세한 비평과 이론”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비평가.” 한국 문학비평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문학비평가 김현(1942∼1990). 그가 마흔 여덟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친 지 20년이 흘렀다. 문학과지성사는 18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동교동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개최하는 심포지엄 ‘말들의 풍경과 비평의 심연’을 통해 김현의 문학 비평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의 고향인 전남 목포시도 연말 개관을 목표로 ‘김현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김현 20주기를 맞아 문학평론가 이광호 씨(47)와 강유정 씨(35)가 16일 오전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김현 비평의 현재적 의미와 한국 문학 비평의 현주소에 대해 대담을 가졌다.》 ―세대가 다른 두 분은 김현을 어떻게 접하고 어떻게 읽었나. 이=김현 선생이 돌아가시기 몇 해 전인 1988년에 등단했기 때문에 가까이서 뵐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그런 것처럼 그의 글쓰기에서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김지하 시인의 ‘무화과’에 대한 평론 ‘속고 핀 열매의 꿈’이란 작품이 있는데, 시인의 무의식뿐 아니라 그 구절에 매료된 비평가 자신의 무의식까지 들여다본다. 주로 정치적으로 읽히는 김 시인의 시를 무의식을 갖고 읽어낸 것도 김현답지만 그 문장, 맥락에 매료돼 ‘시는 이렇게 읽는구나’ 하고 배웠던 것 같다. 강=그분의 전집이 발행되고 나서 그걸 읽으면서 공부했다. 비평가란 작가의 동반자이자 문학의 일부라는 것을 그분을 통해 배웠다. ‘매일 거울을 보며 자존과 자멸 사이를 오간다’처럼 인상적인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베껴놓으며 위안을 받기도 했다. ―김현이 한국 비평에 미친 영향에 대해 평가한다면…. 이=공감과 맥락의 비평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현 비평의 특징은 작품의 언어에 집중해 세심하게 텍스트를 읽어내고 작가뿐 아니라 비평가의 내면까지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불문학 전공자이자 대중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만큼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풍부한 맥락의 도서를 할 수 있었던 비평가이기도 했다. 강=그 이전에도 많은 비평가가 있었지만 주로 프랑스어권, 독일어권 문학이 원본 구실을 하고 한국문학은 비교 대상이 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김현은 한국문학의 가치를 살리는 문체의 힘을 발휘해 문예로서의 평론이 가지는 매력을 보여줬다. 작품에 대한 수려하고 정확한 평가뿐 아니라 이 글을 쓴 비평가가 누군지를 궁금하게 하는 거의 최초의 사례였던 것 같다. 이=김현 선생을 비롯한 4·19 세대의 등장으로 한국문학을 좀 더 주체적이고 본격적으로 읽어내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이후 ‘문지(문학과지성)’ ‘창비(창작과비평)’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국문학의 현장과 함께 활동하는 비평가 그룹이 생겼다. 김현이 그 그룹 속에서도 독보적이었던 것은 비평도 매혹적인 문학의 일부라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현이 활동했던 시대와 지금의 비평 환경은 차이가 많다. 김현 이후 한국문학 비평의 상황을 짚어본다면…. 강=김현의 시대는 문학을 한다는 것만으로 지식인의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오피니언 리더가 될 수 있었다. 문학이 곧 문예 비평일 수 있었던 행복한 시대였다. 이=김현 이후 20년간 많은 후배가 여전히 김현식 공감의 비평을 따라갔고 그게 압도적인 흐름이 됐다. 하지만 맥락의 비평에 있어선 후배들이 그를 넘어설 정도의 유연성을 보여주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문학이 문화산업의 일부인 다매체 시대로 진입하며 평론가가 전체 맥락을 짚어내는 게 더 힘들어져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평가로서 현재 고민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지. 그와 관련해 김현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강=폴 비릴리오가 ‘속도와 정치’에서 말하듯 문학이 생산·소비되는 속도는 현재 매체 환경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 속도의 변화상에 문학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 예단이 비평계 내에서 혼란스럽게 펼쳐지고 있는 과도기다. 김현 당대의 ‘훌륭한 발명품’이었던 문학계간지가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인지도 고민의 하나다. 이=트위터나 웹진의 시대다. 언어가 빠른 속도로 명멸해간다. 이 시대 문학의 언어가 과연 무엇인지가 우리의 고민일 것이다. 그때마다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김현 선생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김현 연보△1942년 전남 진도 출생 △1960년 서울대 문리대 불어불문학과 입학 △1962년 ‘자유문학’에 평론 ‘나르시스의 시론’을 발표하며 등단. 김치수 김승옥 최하림 등과 동인지 ‘산문시대’ 발행 △1964년 비평집 ‘존재와 언어’ △1970년 ‘문학과지성’ 창간 △1988년 ‘분석과 해석’ 발간 △1990년 지병으로 타계 ○ 김현 명문장항상 4·19세대로서 사유분석비평은 하나의 반성적 행위“내 육체적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1960년의 18세에 멈춰 있었다. 나는 거의 언제나 4·19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 그것은 씁쓸한 인식이지만 즐거운 인식이기도 하다.” 비평집 ‘분석과 해석’의 머리글에 실린 문장으로 문학평론가 김현을 떠올릴 때 빈번하게 등장하는 문구 중 하나다. 엄혹한 시대 상황에서도 한글로 사유하며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감수성을 발견해낸 4·19세대 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의 비평은 꼼꼼한 읽기, 예리한 분석뿐 아니라 ‘김현체’라고 불릴 만큼 독특한 체취를 보였던 명문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평은) 언어의 질감을 중시하며 타인의 사유의 뿌리를 만지고 싶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문학은 억압하지 않되,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비평은 심판이 아니라 비평가와 작가의 열린 대화의 장소” “문학은 꿈이다” 등은 평론가로서 그의 문학관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문장들로 꼽힌다. 지병으로 타계하기 전해에 수상한 팔봉비평상 수상 소감에서는 30년 비평 일생을 압축하듯 이렇게 썼다. “문학은 그 어떤 예술보다도 더 뜨겁게 인간의 모든 문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돌아봄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비평입니다. 비평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반성적 행위입니다.”}

    • 201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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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中소동파 글 선물의 속내는 外

    ‘해를 당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 추이톈카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지난주 중국을 방문한 천영우 외교통상부 제2차관에게 소동파의 저서 ‘유후론’의 일부 구절을 자필로 써서 액자에 담아 선물했다. 천안함 폭침사건 관련 대북제재 동참 요구와 관련해 미묘한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데….■ 중국인이 본 한국 패키지관광중국 관광객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한국 음식과 쇼핑에 관심이 많은 중국인들은 호기심을 갖고 한국을 찾지만 숙박과 음식이 기대보다 못하다. 그래도 중국에서 한국관광은 가격 대비 괜찮은 여행으로 꼽힌다는데…. 중국인의 한국 패키지관광에 동행했다.■ 문학평론가 김현 20주기 대담4·19세대 문인이자 한글 1세대로 한국문학 비평의 지평을 넓힌 김현(1942∼1990)의 20주기를 맞았다. ‘김현체’로 불리는 특유의 문장과 섬세하고 정치한 비평은 후대 문학인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그가 남긴 유산과 한국 비평의 현재를 점검해보는 대담을 마련했다.■ 어윤대의 KB금융 어디로금융권의 시선이 어윤대 KB금융그룹 회장 내정자의 행보에 집중되고 있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의 조직통합 문제부터 은행권 판도를 뒤흔들 인수합병(M&A) 전략까지 그의 구상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윤대 후폭풍’의 영향을 가늠해 봤다.}

    • 201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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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 작가 표절이 가능하다고?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는 ‘주홍글씨’로 잘 알려진 19세기 초 미국 작가 너대니얼 호손의 단편 상당수가 카프카적 특색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수수께끼 처럼 부조리한 상황,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유예의 지속 같은 카프카적 요소들이 호손의 단편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호손이 발표한 단편소설 속의 기이한 상황이 카프카가 쓴 단편에서 느껴지는 것과 동일한 맛을 낸다고 해도, 카프카적 맛은 카프카에 의해 창조됐음을 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카프카가 존재했기에 우리가 호손의 텍스트를 ‘카프카적’으로 독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예상표절’이란 다소 황당한 개념을 펼쳐 보이는 이 책의 논리는 “위대한 작가는 선구자들을 창조한다”는 보르헤스의 지적과 맥이 닿아 있다. 이 책의 분석 대상은 시대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유사점을 보이는 몇몇 작품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보르헤스의 논리에서 몇 발 더 나아가 이전 작가들이 다음 세대에 출현할 미래 작가들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표절’했다고 주장한다. 파리8대학 문학 교수인 저자는 ‘예상표절’이란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연대기적 예술사의 허점을 파고든다. 우선 몇 가지 예상표절의 사례를 보자. 계몽주의 시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기 작가 볼테르(1694∼1778)의 콩트 ‘자디그’에는 모래 위의 흔적, 나뭇가지가 부러진 정도를 보고 개나 말의 키를 추론해 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은 사소한 흔적에서 사실의 연결고리를 재구성해 결론을 끌어내는 코넌 도일(1859∼1930) 추리소설의 전범이다. 볼테르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추리소설 기법을 작품 속에 끌어들인 적이 없으며 이 에피소드는 작품 전체적인 맥락에서 완전히 따로 논다. 저자는 이런 증거들을 바탕으로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보더라도 여기서 볼테르가 추리소설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정인 셜록 홈스의 모험담을 예상표절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모파상(1850∼1893)과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파상의 ‘죽음처럼 강한’에는 “과거의 삶이 끓어 넘치듯 떠오르는 일”을 겪고 있는 주인공의 심경 묘사가 등장한다. 이 부분은 저자와 연대기를 가리고 본다면 시간, 기억에 관한 성찰을 문학적 주요 테마로 삼는 프루스트의 것과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이 지점이 되면 정말 궁금해진다. 어떻게 과거 작가가 미래 작가를 표절하는 게 가능한가. 저자는 예상표절이란 개념이 일종의 ‘회고적 영향’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일 수 있음을 일부 인정한다. 즉, 프루스트가 있었기에 모파상을 프루스트적으로 읽는 게 가능하다면, 그것은 독법의 차이일 뿐 표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회고적 영향에 과도한 자리를 부여하면 예상표절이란 개념 자체가 무색해질 있다. 때문에 저자는 실제로 미래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프리드리히 니체, 폴 발레리의 주요 개념을 바탕으로 차례대로 논증해 간다. 니체가 영원회귀를 통해 주장한 것처럼 시간이 순환적이며, 발레리의 인식처럼 문학사가 탈연대기적인 정신의 역사이고, 보르헤스가 말했듯 모든 작품이 이미 쓰인 작품이라면, 예상표절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방식으로. 이렇게 예상표절을 인정하고 나면, 문학사를 전부 다시 써야 한다. 소포클레스가 프로이트를 표절하고 프라 안젤리코가 잭슨 폴록을 표절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사의 지나치게 경직된 인식을 넘어선 탈연대기적 작업은 좀 더 풍요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저자의 이 같은 논증이 기대했던 것만큼 결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상표절’이란 독특한 개념을 통해 기존 예술사에 대한 발상 전환의 계기를 제공해 준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원제 ‘Le Plagiat par Anticipation’.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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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을 좇는 문학소년의 성장기

    한승원 작가의 이번 신작은 작가의 성장기가 그대로 녹아든 듯 자전적 색채가 짙다.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주인공이 첫사랑과의 이별, 아버지와의 불화, 방황의 시기 등을 거쳐 결국 작가로 등단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냈다. 주인공 이름도 ‘한승원’이다. 한 소년이 작가가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안에 잠복한 뿌리 깊은 열등감, 그에 대한 반동으로 솟구치는 오기가 지난하게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다. 막연하게 시와 소설을 쓰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조숙한 친구들은 그에게 감각이 예민하지도 않고 작가적 자질도 타고나지 못했다며 타박한다. 아버지 역시 그가 소설보다는 고시공부처럼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길 바란다. 모두가 성공을 향한 삶을 준비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작가는 문학이란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하지만 작가를 꿈꾸는 그에게 깃든 시커먼 영혼은 그에게 멈추지 말 것을 끊임없이 충동질한다. 심저에 잠복해 있던 문학이 마침내 발아하기까지의 과정을 작가는 큰 각색 없이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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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줄 한줄 막힐 때마다 사무쳐 뼈가 우는듯”

    온라인 글쓰기의 일상화로 어느 때보다 많은 활자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꼭 맞는 단어 하나를 찾느라 수년을 기다리고 쉰 번, 예순 번씩 문장을 고치며 언어를 벼리는 시인이 여전히 있다. 한 해에 발표하는 작품이 많아야 두서너 편, 5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20편 남짓. 서정춘 시인(69)이 최근 신작 시집 ‘물방울은 즐겁다’(천년의 시작)를 내놓았다. 2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자택을 찾았다. 연립주택가에 있는 양옥 이층집이 시인이 사는 곳이었다. 가구들이 정갈하게 놓인 집은 절제미가 흐르는 시인의 작품세계만큼이나 소박하면서도 염결한 듯했다. 그는 “이번 시집을 내고 보니 많이 가벼워지고 편해진 것 같다. 그동안 여백미, 절제미를 살리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부담이 훨씬 덜해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시인은 동화출판사 제작부에서 명예퇴직한 1996년 뒤늦게 등단 28년 만의 첫 시집 ‘죽편’을 펴냈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대학졸업장이 없는 학력이 번번이 문제가 돼 취업할 곳을 찾지 못했다. 동갑내기 문우인 소설가 김승옥 씨의 도움으로 출판사에 입사한 뒤 자기 숙성을 하는 데 20여 년을 보냈다. 그는 “사는 게 바쁘고 게을렀지, 뭐”라면서도 “어지간히 해서는 한 편도 못 건지겠다 싶어 계속 갈고닦고 했던 과정”이라고 했다. 그의 시는 대부분 10행 이내며 가장 긴 시도 20행을 넘지 않는다. 간결하고 응축된 언어가 담묵화(淡墨畵) 같은 서정성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하늘아래/처음 본 문자의 첫줄 같다/그것은, 하늘아래/이쪽과 저쪽에서/길게 당겨주는/힘줄 같은 것/이 한줄에 걸린 것은/빨래만이 아니다/봄바람이 걸리면/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비가 와서 걸리면/떨어질까 말까/물방울은 즐겁다/그러나, 하늘아래/이쪽과 저쪽에서/당겨주는 힘/그 첫 줄에 걸린 것은/바람이 옷벗는 소리/한줄 뿐이다”(‘빨랫줄’) “흰 꼬리 고양이 울음소리가/문지방에 희미하게 걸렸습니다”(‘새벽’) “바다 위, 거미줄 친 돛단배들/물거미 입에 물린 흰나비의 羽化(우화)들”(‘돛’)처럼 두세 행으로 이뤄진 시는 한시나 시조에서 느껴지는 고졸미가 특히 뚜렷하다. 시인은 “서당 훈장이셨던 백부님이 오언율시를 외며 몸을 흔드시는 모습이 어릴 때부터 그렇게 좋았다. 자라면서 처음 접하게 된 시도 시조 가락이 배어 있는 소월, 영랑의 시였기 때문에 내 시에도 시조 음수율의 느낌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도 시인은 하루를 글 쓰고 책 읽는 데 다 쓴다. “백수가 과로로 죽겠다”고 농담하는 서 씨. 그는 “이번 시집을 쓰다 보니 동심이나 동화적인 것이 내 속에 많이 어려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며 “아동문학은 일흔 즈음의 장르라고 했던 영국의 한 문호의 말처럼 앞으로 이쪽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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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과 휴전선은 현실의 이야기… 분단문학은 맥 끊겨 전설이 된 느낌”

    《소설가 김원일 씨(68)의 서재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연립주택의 아담한 옥탑방이었다. 8일 오후 작업실로 들어서던 그는 “사는 게 누추하다”고 말했다. 곳곳에 걸린 대나무발, 나무 책장과 창틀 위까지 가지런히 꽂힌 오래된 책들 곳곳에서 작가의 손때 묻은 정취가 느껴졌다. 2006년 무렵 뇌중풍으로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지만 이날 작가의 안색은 좋아보였다. 그는 “약을 수시로 먹어야 하지만 건강이 많이 나아졌다. 오전까지도 여기 앉아 새 소설 ‘지푸라기의 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며 널찍한 나무책상을 가리켰다.》 김 씨는 ‘어둠의 혼’ ‘노을’ ‘마당 깊은 집’ 등 일평생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의 아픔을 문학을 통해 천착해온 한국 분단문학의 대표 작가다. 전쟁이 일어나던 당시 1950년 경남 진영과 서울 등지를 주무대로 6·25전쟁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낸 ‘불의 제전’(1983년)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총체적이고 밀도 있게 동족상잔의 비극을 그린 수작으로 꼽힌다. 그가 최근 이 작품의 개작을 마쳤다. 작가는 “7권으로 된 원작을 5권 분량으로 덜어냈고 산만한 묘사, 부정확한 문장을 다듬었다. 정리 정돈이 훨씬 잘돼 목욕재계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원일문학전집’을 출간 중인 강출판사에서 18일경 개정판을 낼 예정이다. 그는 2002년 ‘늘푸른 소나무’(1993년) 개정판을 출간한 적이 있다.내겐 아직 그 시절이 문학적 화두6·25 60년에 개정해 소회 남달라 “작년부터 본격적인 개정판 준비에 들어갔어요. 병고를 치른 뒤부터 생전에 좀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남겨야 한다는 결벽증이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불의 제전’은 반드시 고쳐놓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작품입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6·25전쟁 60주년을 맞으면서 개정판을 내게 되니 (소회가) 남다르네요.” 그는 “여덟 살 때 6·25를 처음 겪은 이후 지금까지 1950년대 시점으로 소설을 쓰고 있으니 어쩌면 내 인생이 거의 다 그 시대 문제에 매달려 있는 셈”이라고 했다. 특히 ‘불의 제전’은 전쟁 당시 남로당 간부였으며 가족과 헤어져 단신으로 월북한 작가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유년시절, 가족사의 애환을 담아낸 자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선 정말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그렸습니다. (작품 속 ‘조민세’란 등장인물로 나온다) 당시엔 쓰지 못했지만 개정판 서문에는 ‘이 책을 6·25전쟁에서 희생된 많은 영혼들과 그 시대 가파르게 현실 가운데 서서 살았던 아버지께 바친다’는 내용을 넣었어요.” 인터뷰 도중 작가는 탁자 위에 올려둔 6·25전쟁 당시 사진집을 보여줬다. 동족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참혹한 장면을 한 장씩 넘겨가며 사진 속 정황, 당시의 체험을 설명하던 그는 전쟁의 상처와 비극에 무관심한 세태에 대해 우려감을 내비쳤다. “우리는 아직 분단 상태이고 휴전선이 있습니다. 자라나는 이들은 의무복무를 해야 하죠. 젊은 세대와는 거리가 먼 것 같지만 사실 6·25전쟁과 분단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요즘 작가들에게 현장성 강한 무거운 주제로 글을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소설가 이문열 임철우 씨 정도까지 명맥을 유지한 이후로는 전쟁과 분단을 다룬 문학이 역사 속에 편입되고 전설이 돼버린 감이 있어요.” 근황을 묻자 “저녁이면 손주를 수레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건너편 재래시장에서 오이 같은 것 사오는 할아버지인걸, 뭐…”라며 웃었다. “쓸 만큼 썼고 나이 일흔이 됐으니, 보통 평범한 시민들이 이 나이에 사회 일선에서부터 사라지는 세대가 되듯 나도 그렇게 지낸다”고도 했다. 하지만 휴전 직후 이념 충돌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지푸라기의 길’은 계속 쓰려고 한다. “우리가 사는 현재도 중요하지만 그건 젊은이들의 몫이죠. 내겐 여전히 그 시절의 삶이 문학적 화두입니다. 독자들을 의식한다면 이런 작품은 쓸 수 없겠지만… 내 몫은 결국 그때예요.” ‘내 몫은 결국 그때’란 노작가의 마지막 말에 그의 문학 인생이 압축된 듯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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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진화하는 구글 검색의 신천지 ‘검색 없는 검색’이란 外

    세계 최대의 인터넷기업 구글이 앞으로 다가올 검색의 미래를 제시했다. 이른바 ‘검색이 사라진 검색’이다. 사용자가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는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구글이 ‘사용자에게 필요할 것 같은 정보’를 알아서 찾아내 추천해 주는 방식이다. 조건이 있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구글이 들여다보는 데 동의해야 한다. 과연 구글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 ‘스폰서 검사’ 진상조사 결과 징계 수위가… 검사 향응·접대 의혹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10명의 검사를 중징계 권고하는 선에서 50일간의 활동을 마쳤다. 성 접대를 받은 것으로 인정된 부장검사 1명은 형사처벌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스폰서 검사 사건 파문은 특검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낮에 학교서… 성범죄자 관리 구멍학교 주변 아동성범죄 예방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 대낮에 학교에서 8세 여아가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 아동은 6시간 동안 수술을 받을 정도로 큰 외상을 입었다. 가족들의 마음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국민들의 분노와 불안은 커져만 간다. ■ 유로존 붕괴 위기 예견한 독학 60대 영국인 위기가 닥친 뒤에야 일찍이 위기를 예언했던 이들의 혜안이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유로존 위기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 등이 줄줄이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세계경제가 흔들리자 유로존의 붕괴 가능성을 줄곧 경고해온 한 블로거의 주장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데…. ■ 소설가 김원일 ‘불의 제전’ 개작한 까닭은 분단문학의 대표적인 소설가 김원일 씨가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27년 만에 ‘불의 제전’ 개정판을 펴낸다. 일평생 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의 아픔과 그 시대를 견뎌온 민초들의 삶에 천착해온 노작가를 만나 개정판을 내게 된 이유와 소회를 들었다. ■ 6월 공연무대엔 6·25 포연이 자욱 올해 60주년을 맞은 6·25전쟁을 다각도에서 조명하는 공연이 관객을 기다린다. 비무장지대(DMZ)를 무대로 환경과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내 사랑 DMZ’,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조명하는 ‘6·25전쟁과 이승만’, 흥남 철수 작전을 극화한 뮤지컬 ‘생명의 항해’ 등을 살펴본다. ■ ‘도전 골든벨’ 출신 직장인들의 교육봉사저소득층 아이들의 꿈을 위해 퀴즈의 달인들이 뭉쳤다. KBS 1TV ‘도전 골든벨’ 출신의 골맺사(골든벨이 맺어준 사람들) 회원들이 서울의 한 사회복지관에서 초등학생들의 공부 도우미를 자청했다. 이들은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고 공부하면서 멘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201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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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꽉막힌 글쟁이 이미지 벗자” 음악으로 소통 나선 작가들

    5일 오후 서울 한강 여의나루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에서는 출판사 자음과모음, 인터파크도서가 주관하는 ‘젊은 작가들과 함께하는 한강 선상파티’가 열렸다. 소설가 김태용, 해이수, 이지민, 안보윤 씨 등 젊은 작가 50여 명과 독자 200여 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환호성과 함께 걸그룹 ‘티아라’의 ‘처음처럼’을 록버전으로 바꾼 리메이크곡이 라이브로 울려 퍼졌다. 무대 매너와 의상, 공연에 대한 열정만큼은 어느 프로 밴드에 뒤지지 않는 이 아마추어 밴드는 국내 문단에서 처음으로 젊은 소설가들이 합심해 구성한 문인밴드 ‘말도안돼’다. 올 4월에 결성된 ‘말도안돼’는 이날 심수봉 ‘그때 그 사람’, ‘부활’의 ‘사랑이라는 건’ 등을 부르며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말도안돼’는 5인조 밴드로 소설가 노희준, 박상, 하재영 씨가 각각 보컬, 기타, 베이스를 맡고 있다. 키보드는 자음과모음 편집자이자 소설가 황석영 씨의 딸인 황여정 씨가, 드럼은 국문학 석사과정 중인 독자 박범준 씨가 맡았다. 한국 문단에는 뮤지션 출신 작가들이 드물지 않다. 시인 성기완, 강정 씨 등은 밴드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다. 하지만 문인들로 밴드를 구성해 활동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은 밴드 활동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젊은 작가들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몇몇 중견 및 원로 작가 외에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이 사실상 무명으로 살면서 독자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소설가들은 골방에서 글만 쓰는 경향이 강한데 이제는 우리도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를 드러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작가는 독자가 보기에도 답답해 보일 거예요.”(박상) 밴드 이름으로 ‘안어울려’ ‘밀란 쿠데타’ 등이 물망에 올랐다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저항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말도안돼’로 정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승산이 없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일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부터 따지거든요. 하지만 문학이야말로 불가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저희 밴드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는 거죠.”(노희준) 이 밴드 구성원들의 이력은 독특하다. ‘킬러리스트’ ‘X형 남자친구’ 등을 발표한 노 씨는 소설을 쓰기 전 미술학도였고, ‘이원식씨의 타격폼’ ‘말이 되냐’ 등을 쓴 박 씨는 홍익대 앞 삼겹살집 사장이었다. 경장편 ‘스캔들’ 출간을 앞두고 있는 하 씨는 발레 전공자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좋다는 이유만으로 소설을 쓴 것처럼, “이대로 살긴 너무 지겹다”는 생각으로 밴드도 만들었다. 이들은 “록도 저항, 문학도 저항”이라며 “문학이든 밴드든 타인을 감동시키기 위해 내가 노력하는 과정이며 자신이 내는 소리를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학과 달리 퇴고가 안 된다는 게 음악의 어려움”이라고 덧붙였다. 이 밴드가 다른 직장인 밴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뒤풀이 때 음악 이야기보다 문학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뒤풀이 술자리를 합평으로 대체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들은 “젊은 작가들이 생각만큼 고루하지 않다는 걸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용기를 갖고 뭉치게 됐다”며 “앞으로 불러주시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벌써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 행사, 이음책방 등에서 공연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망설임이 없었다. “저희요? 끝까지 한번 가볼 생각인걸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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