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했다”

  • Array
  • 입력 2010년 6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손홍규 소설 ‘이슬람 정육점’… 다문화적 시각서 본 6·25

“제 소설의 주제는 늘 사랑입니다.” 손홍규 작가는 신작 장편에서 서울의 이슬람 사원 인근에 사는 다양한 인물 군상과 이들과 
부대끼며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사진 제공 문학과지성사
“제 소설의 주제는 늘 사랑입니다.” 손홍규 작가는 신작 장편에서 서울의 이슬람 사원 인근에 사는 다양한 인물 군상과 이들과 부대끼며 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사진 제공 문학과지성사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의 이슬람 사원으로 가는 오르막길. 길목 곳곳에 히잡을 쓴 무슬림 여인, 이국적인 간판과 상점들이 눈에 띈다. 나지막한 담장에 허름한 간판을 단 쌀집도 보인다. 가게 주인들은 문을 활짝 열어두고 마실 온 동네 사람들과 부채질을 하며 느긋이 이야기하고 있다.

28일 오후 이곳의 한 터키 음식점에서 소설가 손홍규 씨(35)를 만났다. 좁고 경사진 골목길과 다닥다닥 붙은 다가구주택, 영세한 규모의 상점들이 즐비한 이 거리가 그가 최근 펴낸 성장소설 ‘이슬람 정육점’(문학과지성사)의 주된 배경이다.

터키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하산 아저씨가 주인공 고아소년인 ‘나’를 입양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소설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국적 외모와 달리 그는 말끝마다 “거시기”를 붙이며 푸근한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소설 쓰다 보면 거시기 할 때 있잖습니까. 그럴 때마다 한 번씩 와서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무슬림들은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지, 일상적인 풍경과 골목길을 엿보고 가고 그랬어요.”

주인공이 살게 된 이 동네에는 정육점을 운영하는 독실한 무슬림 하산 아저씨 외에도 전쟁의 상처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는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쳐 나온 충남식당의 안나 아주머니 등이 등장한다. 일반적인 성장소설과 달리 이 책은 한국에 눌러앉게 된 다국적 인물들의 일상을 배경으로 6·25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색다르게 탐색한다.

“6·25전쟁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 자료를 찾다가 참전국인 터키와 그리스 역사를 접하게 됐는데, 두 나라가 엄청 거시기한 사이더라고요. 오스만제국 때는 그리스가 터키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는 또 그리스가 터키를 침략한 전쟁이 일어났고…. 그런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거시기한 상태로 6·25전쟁에서 만나 유엔군의 일원이 됐어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 같았습니다.”

이야기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이들 소수자를 향해 뻗어간다. 그는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지만 전쟁을 현시대 고통의 기원으로 느끼는 사람으로서 이전 선배들의 뼈아픈 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풀어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인공은 소설 마지막 대목에서 “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했다”고 말하며 성장통을 끝낸다. 작가는 “누구에게나 이 세상은 의붓 세계”라며 “민족, 나라, 핏줄도 다른 의붓아버지가 의붓아들을 품어 안았듯 우리도 이 세계와 어떻게 교감을 나눌지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