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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면 알 만한 유명인사도 6명이나 왔다 갔다. 우리 카지노에만 매일 한국인 1000명 정도가 오고 그중 억대 판돈을 쓰고 가는 VIP 고객이 20∼30명 수준이다.” 하룻밤에도 판돈으로 수십억 원이 오간다는 카지노 VIP룸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본보 기자는 20일 ‘정킷방’을 운영하고 있는 30대 남성 A 씨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해외 원정 도박의 실체를 들어봤다. 한국인이 해외 원정 도박을 위해 주로 찾는 곳은 마카오와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이다. A 씨는 1년 전부터 필리핀 마닐라 S호텔 카지노 VIP룸에서 정킷방을 운영 중이다. 정킷방이란 개인 또는 단체가 카지노 측에 일정액의 보증금을 내고 VIP룸을 임차해 운영하는 곳. ‘정킷’은 원래 카지노 시설이 고객에게 여행 경비를 제공하는 단체여행을 의미한다. 실제 A 씨의 정킷방은 ‘시드머니’(최초 시작하는 금액)가 3000만 원 이상인 VIP 고객에게 항공 숙박 향응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A 씨는 “우리 카지노를 찾는 고객의 60%는 중국인, 30%는 한국인, 10%는 일본인”이라며 “한국에서 오는 VIP들은 대부분 전문 모집인을 통해 온다”고 말했다. 전문 모집인들은 국내 카지노나 골프장, 유흥주점 등에서 대상을 물색한다. 국내 도박 관련 커뮤니티 등에도 홍보 글을 남긴다. A 씨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해외 원정 후기의 10%만 진실”이라며 “‘돈을 얼마 땄다’는 글도 대부분 홍보 글”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모집한 고객이 게임에 참여할 때마다 쓰는 게임비의 통상 1∼3%는 ‘롤링비(수수료)’로 정킷방에서 전문 모집인에게 지급한다. A 씨의 정킷방이 있는 호텔 카지노에는 총 20개의 VIP룸이 있다고 한다. 규모에 따라 1년에 70억∼150억 원의 보증금을 내면 정킷방을 운영할 수 있다. A 씨는 10억 원을 내고 150억 원짜리 VIP룸을 중국인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카지노와 정킷방 업주는 고객이 게임에 참여해 이긴 금액은 반반씩 부담하고, 잃은 금액은 반반씩 나눠 갖는다. 고객이 1억 원을 잃었다면 카지노와 정킷방 운영자가 5000만 원씩 수익을 가져간다. 같은 VIP룸이라고 해도 룸에 따라 판돈 규모는 크게 차이가 난다. A 씨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정킷방이 ‘슈퍼마켓’이라면 중국인이 운영하는 정킷방은 ‘백화점’급”이라며 “중국인 정킷방에서 수십억 원을 잃은 한국인을 여럿 봤다”고 말했다. VIP룸에서는 90% 이상 ‘바카라’라는 카드게임을 한다. 바카라는 단숨에 승부가 나고 회전율이 빨라 딜러나 업주, 게임 참여자 모두 선호한다. 도박 자금은 현지에서 ‘환치기’(한국 계좌에 한국 돈을 입금하고 외국에서 달러나 현지 돈을 받는 것)를 통해 받는다. 정킷방 업주와 에이전트(전문 모집인)가 ‘환치기’를 해주고 금액의 2%를 수수료로 뗀다. A 씨에 따르면 국내 조직폭력배들은 보통 정킷방을 직접 소유하기보다는 중간에서 고객 모집 및 환치기 등을 통해 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A 씨는 “수사 대상에 오른 사람들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지금도 마카오나 필리핀에서 카지노에 수억 원을 쏟아붓는 한국 사람이 수두룩하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원정 도박을 오는 사람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우등생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대학 장학금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에게 주는 ‘특전’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학업 중단을 막는 ‘복지’로 변하는 중이다. 이런 변화가 공감대를 얻고 있지만 장학금 고유의 면학 인센티브 역할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14일 내후년부터 성적 장학금 제도를 폐지하고 저소득층 장학금을 늘려가겠다고 밝힌 가운데 최근 대학가 곳곳에서 비슷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이화여대는 올해 성적장학금 제도 가운데 일부를 폐지하기로 했고 서강대도 그동안 성적장학금 비중을 꾸준히 줄여왔다. 연간 3조 원이 넘는 국가장학금 역시 대부분 소득분위를 기준으로 지급되고 있다. ‘필요한 사람에게 준다’는 ‘니드 베이스(Need Based)’와 ‘성과의 보상으로 준다’는 ‘메리트 베이스(Merit Based)’는 예전부터 장학금의 중요한 두 축으로 팽팽하게 맞서왔지만 최근 들어 ‘니드 베이스’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여기에 찬성하고 있다. 고려대 재학생 강보라 씨(21·여)는 “성적장학금이 사라진다고 열심히 공부하던 사람이 공부를 그만두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며 찬성의 뜻을 밝혔다. 성적장학금 존폐 논란이 벌어진 고려대 재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부 학생들은 “가난한 학생에게 돈은 생존의 문제”라거나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공부에 시간을 쓸 수 있다면 저소득층이 아닐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찬성 의견을 냈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메리트 베이스 장학금’이 가진 장점을 포기하는 것에 따른 우려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국가나 기업 등에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성과에 따라 주는 곳은 대학이 거의 유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학금으로 우수한 성적의 신입생을 학교로 끌어들이고 뛰어난 성과를 낸 학생에게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이다. 이런 우려는 대학 대부분이 성적장학금 제도 폐지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각 가정의 재산과 소득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나”라거나 “소득이 비교적 높은 사람을 역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고려대 재학생 이가형 씨(21)는 “다양한 장학금이 있지만 소득과 상관없이 공평하게 주던 장학금은 성적장학금뿐이었다”며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이제 장학금 받을 기회가 박탈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런 흐름이 과거와는 달라진 대학의 위상 등으로 빚어진 결과라는 설명도 나온다. 대학은 ‘우골탑’이라 불릴 정도로 고비용을 요구하는 교육기관이었지만, 최근에는 사실상 누구나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됐고 이에 따라 대학의 장학금도 복지의 한 방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누구나 대학에 가는 반면 대학 졸업장은 취업과 임금에서 예전 같은 이점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대”라며 “이 때문에 ‘국가와 대학이 보편적으로 학비를 지원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김도형 dodo@donga.com·권오혁 기자}
대학교수와 지식인, 전직 중고교 교장들이 잇따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선언을 했다. 나승일 서울대 교수(전 교육부 차관),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 김희규 신라대 교수 등 102명으로 구성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은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책임지고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교수 모임은 “우리 역사 교육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이념 편향에 휩싸여 미래 세대에게 혼란을 주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며 “역사 교과서가 이념 대립과 정쟁의 논란에서 벗어나 바로 설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역사학계의 잇따른 국정 교과서 집필 거부 움직임에 대해 교수 모임 측은 “폐쇄적인 집단행동이 아닌 각계각층과 논의 및 협력을 통해 역사교육의 발전 방향을 공론화해야 한다”며 “이것이 미래 세대 교육을 책임지는 지성인으로서 진정한 역할이자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 중고교 교장 퇴직자 1589명으로 구성된 서울중등교장평생동지회는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교과서 정책은 미래 세대가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갖게 하기 위한 정책 대안”이라며 국정화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미래에 남북 대치 상황이 완화되는 등 상황이 변한다면 국정화에서 검정으로 전향적인 검토를 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우리의 헌법정신에 맞는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지금은 국정화에 따른 국론 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지양하고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해 중지를 모을 때”라며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한 교과서 만들기에 교육부와 교육계는 물론이고 학계, 사회단체 모두가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규탄도 잇따랐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정경대 학생회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정신인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며 “역사를 재단해 지배자가 되려는 음모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700여 명이 소속된 한국사 전문 연구자 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도 국정 교과서 제작과 관련된 모든 과정에 불참하기로 했다. 연구회는 16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15일 전·현직 회장 및 운영위원이 참석한 비상회의에서 이같이 결의했다”며 “교과서 국정화에 대비해 그동안 연구회가 준비해온 대안 한국사 도서의 편찬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유덕영 firedy@donga.com·권오혁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경마게임 기능이 있는 PC용 게임을 개발해 서울 등 7개 지역에서 불법 경마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및 도박장 개설 등)로 프로그래머 이모 씨(45) 등 3명을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조직폭력배 성모 씨(33) 등 다른 운영진 2명과 매장업주 허모 씨(34) 등 8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과거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개발 중이던 게임을 퇴사 이후 완성하면서 경마게임 기능을 추가했다. 이 씨가 개발한 ‘삼국천하’ 등의 게임은 일반적인 PC용 온라인게임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게임 중 특정한 기능을 선택하면 경마게임으로 연결된다. 이 씨가 개발한 게임들은 실제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정상적으로 등급 분류를 받았다. 이 씨는 폭력조직 부천신촌파 소속 성 씨 등과 성인 PC방 형태로 차려진 전국 매장 7곳에 게임을 공급했다. 이들은 2013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개발비와 PC설치비, 게임머니 판매비 등의 명목으로 70억여 원을 챙겼다. 경찰은 조직폭력배들이 운영하는 성인용 PC방에서 경마 게임물이 유통돼 도박이 벌어진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5개월 동안 추적한 끝에 이들을 모두 검거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통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분류 심의 과정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해 위원회에 ‘등급분류 심사 제도개선 요청’ 공문을 보냈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 서류를 위조해 대출을 받게 해주고 수수료를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위조 서류로 대부업체를 속여 대출금 2억2860만 원을 받아낸 뒤 수수료 6000여 만 원을 챙긴 혐의(사기 등)로 K 씨(32)를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같은 혐의로 K 씨의 공범 2명과 대출신청자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K 씨 등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대출신청자들을 모집해 이들에게 대출에 필요한 재직증명서와 계좌 입출금 거래내역서 등을 위조해줬다. 이들이 위조한 서류로 대출받은 금액만 2억2860만 원에 달했다. K 씨 일당은 총 47회에 걸쳐 대출을 받았고 대출금의 약 30~50%에 달하는 중개수수료를 받아 총 6000여만 원을 챙겼다. K 씨 일당은 대부업체가 최근 3개월 간 급여가 입금된 통장과 신청서에 작성한 전화번호로만 재직 사실을 확인한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들은 대출신청자들의 신청서에 지인 명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쓰도록 해 대부업체의 재직 여부 확인 전화가 오면 직접 응대했다. 경찰조사 결과 K 씨 등은 주로 대출에 어려움을 겪는 20~30대에게 접근해 대출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대출 상담 글을 올리거나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대부분 20대 무직자인 대출신청자들은 대출금을 생활비, 유흥비, 성형수술비 등에 썼다고 진술했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고려대가 내년부터 장학제도를 전면 개편한다. 성적 대신 가정형편 등을 고려해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장학금이 결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를 넓히고 장려하는 목적으로 쓰여야 한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하겠다”고 개편 취지를 밝혔다. 이에 따라 고려대는 2016년 1학기부터 학생 자치활동을 지원하는 ‘자유장학금’과 가계소득 수준 등을 고려해 지급하는 ‘정의장학금’, 학생 능력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진리장학금’ 등에 각각 35억 원, 200억 원, 100억 원을 지급한다. 장학금 이름은 대학 교훈인 자유, 정의, 진리에서 따온 것이다. 기존에 학생들에게 주어지던 성적 우수 장학금은 이미 확정된 내년분 24억 원까지 지급되고 점차 폐지될 예정이다. 이번 개편에서 가계소득 수준에 따라 지급되는 정의장학금은 전체 장학금의 48%로 가장 많다. 가정형편에 따라 0∼2분위에 속하는 학생 전원에게 등록금을 100% 지급하는 방식이다. 또 0분위(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학생에게는 월 30만 원의 생활장학금도 추가로 지원한다. 학교 측은 0분위 학생들을 근로장학생으로 우선 선발하고 시급도 1만 원으로 높여 지급할 계획이다. 한편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날 장학제도 개편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려대 총학생회 부회장 강민구 씨(23)는 “장학금은 모든 학생에게 영향을 주는 일인데 정작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치쇼’ 하듯이 발표했다”고 비판했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11일 오전 정모 씨(36)는 서울 성북구 장위동 주택가 골목길에 세워둔 자신의 검은색 올란도 차량의 왼쪽 앞부분이 파손된 것을 발견하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정 씨가 마지막으로 차량 상태를 확인한 것은 10일 오후 7시 30분. 이후 누군가 차를 망가뜨리고 도망간 것이다. 경찰은 10일 오후 7시부터 5시간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했으나 가해 차량을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정 씨는 자기차량손해(자차) 보험을 통해 수리비를 받아 차량을 수리했다. 상당수 운전자는 정 씨처럼 정체불명의 가해 차량이 자신의 차량과 부딪힌 뒤 달아나는 ‘물피(물적피해)도주’의 피해를 겪어 본 경험이 있다. 지난해 집계된 물피도주 피해 건수는 15만3000여 건에 달한다. 자차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거나 보험료 할증을 우려해 자비로 해결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임주혁 보험개발원 통계팀장은 “실제 물피도주 피해 건수는 25만 건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가해자를 찾지 못하면 수리 내용이 보험료에 반영돼 금전적 손실을 고스란히 피해자가 안게 된다”고 밝혔다. 현행 도로교통법상으론 타인의 자동차를 망가뜨린 뒤 도주했다 잡혀도 자동차 종합보험을 통해 보상만 해주면 대부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 교통 소통을 방해하거나 사고로 인해 다른 차량에 위험을 끼치는 경우에만 처벌 대상이 된다. 결국 피해자들만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경찰은 ‘물피도주 전담반’을 구성했다. 수원남부경찰서는 지난달 11일부터 전국 최초로 전담팀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전담팀이 꾸려지자 가해자 검거율이 크게 올라갔다. 올해 9월 11일부터 10월 10일까지 한 달간 접수된 170건 중 122건(71.7%)의 가해자를 찾아낸 것이다. 전년 같은 기간 검거율 44.4%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특히 블랙박스 등 증거자료가 없는 물피도주 사건 검거율은 지난해 10.8%에서 올해 56.7%로 늘어났다. 한 달간의 시범운영이 끝났지만 경찰은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전담팀을 계속 운영할 방침이다. 이철기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아무리 사소한 사고도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모든 운전자에게 심어줘야 한다”며 “물피도주 전담팀이 활성화되면 관련 피해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담팀을 전국으로 확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교통경찰의 인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인명피해가 난 사고가 아닌 물피 사고에 고정적으로 인력을 투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피도주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인명피해가 발생한 교통사고 처리가 더 우선”이라며 “교통경찰 인력이 늘어나지 않는 한 전담팀까지 꾸리는 건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근본적으로 “물피도주가 명백한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처벌 기준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고려대가 성적장학금을 폐지할 방침이다. 성적 우수 학생에게 주던 장학금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집중시킨다는 내용이다. 고려대는 이런 취지의 장학제도 세부 방안을 14일 염재호 고려대 총장의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정장헌 고려대 홍보팀장은 12일 “성적장학금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생활 형편에 따라 주는 장학금을 점차 늘려 갈 방침”이라며 “성적장학금 폐지 시기 등 세부적인 개편안은 14일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염 총장은 6일 직원 대상 강연에서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지급하던 성적장학금을 점차 폐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금 등을 확대하면 소득재분배 효과가 기대된다. 고려대 학생들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재학생 최모 씨(25)는 “장학금 규모 자체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밑돌 빼 윗돌 괴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국가 장학금은 소득이 낮은 학생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성적장학금은 소득이 아주 낮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됐는데 그 학생들에게는 상실감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소득재분배를 위한 취지 자체에 공감한다” “학업을 위한 동기부여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아파트단지에서 길고양이 집을 만들던 50대 여성이 벽돌에 맞아 숨진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추락하는 벽돌이 찍힌 폐쇄회로(CC)TV 자료를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벽돌이 수직 낙하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기 용인서부경찰서 관계자는 11일 “사건 현장을 비추는 CCTV에 벽돌이 위에서 똑바로 떨어지는 장면이 포착됐다”며 “현장과 바로 붙어있는 아파트 라인 쪽에서 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숨진 박모 씨(55·여)가 길고양이 집을 짓다가 변을 당한 지점은 해당 아파트 건물의 맨 끝 라인 뒤편이다. 건물과는 6∼7m 떨어진 곳으로 누군가가 박 씨를 겨냥해 던졌을 가능성이 높다. 범행에 사용된 벽돌은 뒷면이 습기를 머금은 채 짙게 변색돼 있어 장기간 물건의 받침대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아파트는 18층으로 높이가 약 48m에 이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파트 2, 3층에 불과한 5m 높이에서 떨어뜨린 벽돌도 땅바닥에 이르면 시속 35.6km의 속도로 충돌한다. 15층 높이에 해당하는 40m에서는 100.8km, 50m에서는 112.7km에 이른다. 이번에 발견된 1.8kg짜리 벽돌이 50m 높이에서 떨어지면 권총 탄환이 총구를 떠날 때 가지는 에너지(400∼500줄)의 2배에 육박한다. 박용근 KAIST 물리학과 교수는 “벽돌처럼 단단한 물체라면 불과 2, 3층 높이에서 던져도 지상에 있는 사람이 머리에 맞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해당 라인에 있는 18가구를 대상으로 1차 면접조사를 한 결과 사건 당시 약 13가구의 20여 명이 집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주민들은 “현장을 목격하거나 벽돌을 던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주민들의 진술만 믿을 수 없어 CCTV를 통해 당시에 누가 아파트에 있었고 없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주민들을 상대로 유전자(DNA)를 채취하고 있으며,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벽돌의 정밀감식을 의뢰할 계획이다. 경찰은 또 전단을 만들어 아파트단지 4개 동 입구 게시판과 엘리베이터, 관리사무소 등에 배포하고 제보를 받고 있다. 용인=남경현 bibulus@donga.com / 김도형·권오혁 기자}
어두운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원 논문 자료가 담겨 있는 컴퓨터는 물론이고 옷가지와 화장품까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중국인 유학생 우모 씨(30·여)는 올해 1월 2일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생생히 기억했다. 한 달간 중국 산둥(山東) 성 지닝(濟寧)에 사는 가족을 만나고 온 날이었다. 오후 11시가 넘어 서울 용산구 해방촌 근처 자취방에 도착한 우 씨는 방문을 연 순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세간이 모두 사라진 채 방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우 씨는 황급히 ‘집주인’ 김모 씨(53)에게 연락했다. 김 씨는 “방을 어지럽힌 채 계속 비워둬 중국으로 도망간 줄 알았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우 씨가 자신의 컴퓨터가 어디 있는지 묻자 김 씨는 “중국으로 가져간 것 아니냐”며 시치미를 뗐다. 우 씨는 출국 전 1월 7일까지의 월세를 미리 낸 상태였다. 알고 보니 김 씨는 집의 실제 소유주가 아니었다. 월세를 내고 빌린 집의 일부를 재임대하는 형식으로 여러 세입자에게서 보증금을 받아 주인 행세를 한 것이었다. 김 씨는 우 씨가 출국한 지 5일 만에 다른 세입자를 받아 ‘중복 계약’을 했다. 새로운 세입자 역시 이사 직후 이 사실을 알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 우 씨는 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김 씨는 우 씨에게 책임을 미루며 보증금 500만 원과 소지품의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버텼다. 보증금은 우 씨가 9개월 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 쉬지 않고 일해 모은 돈이었다. 한국 물정에 어둡고 말도 서툰 우 씨가 기댈 곳은 없었다. 사건 이후 5월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서를 찾아 하소연했지만 수사는 큰 진척이 없었다. 김 씨는 경찰의 출석 요구에도 “회의 중이다” “일이 생겨 지방에 와 있다” 등의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출석을 미뤘다. 5월에서야 우 씨는 한 이주민지원센터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소개받아 경찰에 정식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 씨는 8월 말 사기와 주거침입, 절도 등의 혐의가 인정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다급해진 김 씨는 지난달 말 “보증금을 돌려줄 테니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우 씨는 아직까지 보증금을 받지 못했다. 이 일을 겪은 뒤 한국을 바라보는 우 씨의 시선은 180도 달라졌다. 어려서부터 한류에 푹 빠져 직장까지 그만두고 한국 유학을 결심할 만큼 우 씨는 자타 공인의 ‘하한쭈(哈韓族·한류에 열광하는 사람)’였다. 2007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아 올해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졸업 후 한국 미디어업계에 종사할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몸도 마음도 지쳐 결국 졸업논문만 남겨둔 대학원 공부를 포기했다. 우 씨는 8월 중순 한 재한 중국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의 억울함과 실망감을 담은 글을 올렸다. 우 씨의 글에는 3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안타까움을 표하고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우 씨는 기자에게 “드라마 속에 비친 한국은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였는데 막상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낀 순간 도움을 청할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10개월 동안 한국이라는 나라에 실망만 더 커졌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외국에서 온 손님한테 적어도 식사는 제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식(朝食)도 안 주는 게스트하우스도 수두룩해요.”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남산의 한 게스트하우스. 지하주차장에 테이블과 조리시설을 갖추고 식당으로 쓰다가 경찰에 적발된 게스트하우스 관계자는 이렇게 억지를 부렸다. 단속 나온 서울지방경찰청 관광경찰대 윤지영 경장(31)이 “허가된 공간에 공용주방을 만드는 건 전혀 문제가 없지만 신고도 안 한 공간에서 조리하다가 불이라도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지적하자 게스트하우스 관계자는 곧바로 잘못을 시인했다. ○ ‘유커 바람’ 타고 불법 게스트하우스 난립 개별 여행을 즐기는 ‘3세대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의 한국 방문이 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는 이들을 제대로 맞을 인프라가 크게 부족하다. 특히 개별 여행객이 자주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일부 ‘기준 미달’ 숙소들이 난립하면서 여행객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동아일보와 채널A 취재팀은 지난달 25일 경찰의 불법 게스트하우스 단속 현장에 동행했다.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한 서울 명동, 남산 일대에서 이뤄진 이날 단속에서 4곳의 게스트하우스가 적발됐다. 한 곳은 주차장을 개조해 객실을 만들었고, 두 곳은 테이블과 조리시설을 설치해 주차장을 공용주방으로 사용했다. 한 게스트하우스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차를 몰고 오는 것도 아닌데 남는 공간을 활용하는 게 무엇이 문제냐”며 항변했다. 이 가운데 한 게스트하우스는 처음 1층 객실 5개만 신고하고 영업하다 2층에 5개를 추가했지만 1년간 신고하지 않고 영업을 해왔다. 이곳은 지하주차장까지 공용주방으로 쓰고 있었지만 안내데스크에는 ‘외국관광객을 맞이하기에 적합한 기준을 갖춘 코리아스테이 게스트하우스임을 인증합니다’라고 적힌 한국관광공사 인증서까지 놓여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게스트하우스 운영자 A 씨(45)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대거 몰리면서 간판조차 달지 않고 불법 영업을 하는 게스트하우스가 많다”며 “일부 양심불량 업체들 때문에 제대로 된 게스트하우스의 이미지까지 나빠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관광경찰대 김휴영 팀장(43)은 “지속적으로 불법 게스트하우스를 단속하지만 업주들의 ‘꼼수 영업’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며 “관광객이 이런 불법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다 사고가 날 경우 보상을 받기도 어렵기 때문에 국가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올해 1∼8월 무등록 게스트하우스 적발 건수는 304건에 달한다. ○ ‘3세대 유커’ 위한 맞춤형 인프라 절실 택시 바가지요금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 화폐에 익숙하지 않은 관광객을 상대로 거스름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미터기를 작동하지 않은 채 운행해 정상요금의 2∼10배를 요구하는 등 수법도 다양하다. 서울경찰청 관광경찰대는 지난달 14∼30일 특별단속을 벌여 택시 및 콜밴 운전사의 불법 행위 104건을 적발했다. 중국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Ctrip) 한국지사 장원 이사는 “중국인 개별 여행객이 늘면서 스스로 숙소를 잡고 교통수단을 예매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는데 택시 이용에 관련된 민원도 자주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인 관광객들의 관광불편 신고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불편 신고 현황 분석 결과 중국인들의 불편 접수는 2012년 406건, 2013년 528건, 2014년 602건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유로운 여행을 선호하는 ‘3세대 유커’들의 지속적인 유치를 위해 숙소 및 교통수단 등 관광 인프라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권태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박사는 “개별 여행자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고 뚜렷한 방문 목적을 갖고 재방문하는 성향을 보인다”며 “이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유커’들이 자주 찾는 면세점 백화점 등 쇼핑 환경은 물론이고 숙소 교통 등 관광 인프라가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권 호원대 호텔관광학부 교수는 “중국인 개별 여행객을 추적 조사해 그들의 행동 유형과 관심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이들이 선호하는 주요 방문지를 선정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관리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 곽정아 채널A 기자}
단체관광 대신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3세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시대가 오고 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00년 44만 명에서 지난해 612만 명으로 늘어났다. 초창기에는 소수 부유층(1세대 유커)의 전유물이었다. 이어 중국인의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저렴한 단체관광 중심의 2세대 유커가 주류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획일화된 일정을 거부하고 ‘나만의 여행’을 하려는 3세대 유커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30일 법무부에 따르면 2015년 1∼8월 개별관광(C-3-9)비자로 입국한 유커는 42만144명. 2014년 한 해 동안 해당 비자로 입국한 15만6459명을 이미 넘어섰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의 57.8%가 개별여행 형태로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여행업계의 비정상적 관행을 대폭 정비하는 취지의 중국 여유법(旅遊法)이 시행되면서 단체 일정과 개인 일정을 겸하는 ‘반(半) 자유여행’의 비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3세대 유커는 대부분 중국의 신세대인 ‘80허우(1980년대생)’ ‘90허우(1990년대생)’ 등 젊은 세대다. 이들은 고궁이나 박물관 등 과거의 한국보다는 서울 강남이나 홍익대 앞 같은 ‘핫 플레이스’에서 현재의 한국을 보길 원한다. 또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여행정보를 수집하고 서울의 뒷골목을 누비며 한국 젊은이들과 함께 먹거리와 놀거리를 즐긴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9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2가 네거리의 한 중식당. 중국인 관광객(유커·遊客) 리모시(李沫夕·26·여) 씨와 쑤페이린(蘇佩琳·19·여) 씨는 자장면 한 그릇과 짬뽕 한 그릇을 주문한 뒤 연신 인증샷을 찍었다. 리 씨는 “한국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랩이 씌워진 자장면을 막 흔들어 비벼 보고 싶었다. 처음 먹어 보는 짬뽕이 보기와 달리 맵지도 않고 입에 잘 맞아 다행”이라며 즐거워했다.○ 스마트폰으로 맛집 찾는 3세대 유커 베이징(北京)에 거주하는 리 씨와 홍콩에 거주하는 쑤 씨는 중국 여행사이트 ‘충유왕(窮游網)’ 게시판을 통해 처음 만난 ‘여행친구’다. 두 사람은 각자 일정에 맞춰 제주 부산 등을 따로 여행했고 23일부터 함께 서울을 둘러보고 있다. 가이드 깃발을 따라다니는 대신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이들 ‘3세대 유커’의 하루 일정을 따라가 봤다. 유커들이 자유여행을 선택한 이유는 획일적인 단체관광에서 벗어나 관심사에 맞는 장소를 찾아 여유 있게 즐기기 위해서다. 남성 아이돌그룹 ‘비스트’의 팬인 리 씨와 한국 패션에 관심이 많은 쑤 씨는 서로의 취향에 맞게 ‘나만의 서울 여행 코스’를 계획했다. ‘23일 한 방송인이 운영하는 홍익대 앞의 고깃집’ ‘24일 아이돌그룹 연예기획사가 모여 있는 청담동과 신사동 가로수길’ ‘25일 홍익대 클럽’ ‘27일 광장시장과 이화마을’ 등 리 씨의 스마트폰에 적힌 여행 일정에는 고궁이나 박물관 같은 곳이 아닌 서울에서 한창 뜨고 있는 핫플레이스가 빠짐없이 있었다. 기자와 함께한 28일에는 오전부터 북촌 한옥마을과 삼청동을 둘러본 뒤 청계천과 서울N타워를 찾았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손쉽게 길을 찾아갔다. 주요 관광지는 여전히 중국인 단체관광객들로 가득 찼지만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찾아낸 종로의 식당과 카페에는 한국 젊은이들이 주로 찾아 왔다. 리 씨는 이날 종로구 가회동의 한 인테리어가구 전문 매장에서 벽에 거는 옷걸이를 구입할 계획이었지만 추석 연휴로 문을 닫아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이날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뮤지컬 감상. 좋아하는 아이돌이 주연으로 나온다는 소식에 리 씨는 직접 인터넷을 통해 이날 치 공연 티켓을 예매했다. 공연을 마친 뒤 둘은 숙소인 홍익대 앞 게스트하우스 인근의 치킨집에서 가볍게 ‘치맥(치킨과 맥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쑤 씨는 “여행사가 정해 놓은 코스대로,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단체관광은 젊은층에 전혀 매력을 주지 못한다”며 “관광객이지만 현지인들이 놀고 즐기는 장소에서 현지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관광특수의 새로운 아이콘 중국인들의 해외여행 트렌드가 단체관광에서 개별여행으로 옮겨가면서 한국을 찾는 유커들의 여행 형태도 다양화되고 있다.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패키지형 관광에서 한국을 직접 체험하고 즐기는 현지 밀착형 여행으로 유커들의 여행 행태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개별여행객이 크게 늘면서 일부 관광지에 집중되던 ‘관광특수’가 서울의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고 있다. 동아일보와 채널A 취재팀이 23일 찾은 지하철 장한평역 일대에서는 어렵지 않게 유커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일대 숙소들은 명동 동대문 등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지하철로 김포공항이나 동대문 광화문 등 주요 관광지로 쉽게 이동할 수 있어 최근 유커들이 몰리고 있다. 이 덕분에 일대 마트까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장한평역 인근 H마트 관계자는 “1년 전부터 유커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올해는 작년에 비해 매출이 20% 이상 늘었다”며 “유커들이 선호하는 상품들만 따로 모아 진열대를 만들고 유커들을 응대할 수 있도록 중국어가 가능한 직원도 5명 채용했다”고 말했다. 이 마트는 SNS를 활용해 중국인들에게 상품 홍보를 하고 중국 온라인 오픈마켓을 통해 판매하는 등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시장 입구 옆 한 한우구이 전문점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유커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여행책자 및 SNS를 통해 급속도로 알려지면서 좌석의 절반 이상을 중국 등 아시아 관광객들이 채우고 있다. 유커 장메이웨이(張美薇·30·여) 씨는 “인터넷에서도 봤고, 이곳을 찾았던 친구의 소개로 오게 됐다”며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집에 꼭 가는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3세대 유커들은 주로 인터넷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다양한 여행 정보를 수집한다. 특히 중국 온라인 여행사 ‘시트립’이나 한국 여행 정보 사이트 ‘한유왕(韓游網)’, ‘한차오왕(韓巢網)’ 등에는 한국을 다녀간 개별여행자들의 여행 후기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한국관광공사는 중국인 유학생 기자단을 구성해 SNS에 한국 여행 관련 정보를 수시로 올리고 있다. 특히 공사가 운영하는 ‘한유왕’이나 중국의 ‘웨이보’ ‘위챗’ 등 SNS 계정을 통해서도 개별적으로 가보기 좋은 한국 여행정보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개별여행객들의 방문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서울이나 제주 등 주요 관광 도시에 국한돼 있다. 문체부가 지난해 유커의 방문 지역을 조사한 결과 서울권(77.8%)과 제주권(34.2%)에 집중돼 있었다. 유커의 지방 방문이 부진한 이유로는 언어 문제, 대중교통 및 안전 인프라 부족 등을 꼽았다. 서영충 한국관광공사 중국팀장은 “중국인의 개별 방문이 지방으로 확대되도록 인프라를 늘리는 중이다. 더 좋은 관광코스나 테마여행을 발굴해 많은 중국인에게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유커 방문을 창출하고 재방문율을 높이기 위해 단체관광객과 개별여행객 모두를 위한 맞춤형 관광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인들의 한국 방문 수요는 앞으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언어 장벽이나 비자 문제로 단체관광을 선호하는 기성세대와 자유로운 여행 스타일을 선호하는 신세대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유커 대응 방안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권오혁 hyuk@donga.com·곽정아 채널A 기자}

지난 주말 경기 안성시 탈북자 정착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흥겨운 남한 유행가가 울려 퍼졌다. 하나원을 졸업한 탈북자 60여 명이 참가한 ‘하나원 방문의 날’ 행사에서 탈북 예술단이 교육생 170명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졸업생이나 교육생이나, 추석을 앞두고 실향의 아픔을 서로 달래자는 행사였다. 이날 하나원은 1999년 개원 이래 두 번째로 외부인들에게 내부를 공개했다. 하지만 교육생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선배’ 탈북자들로 구성된 예술단 공연에 함께 웃으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도 공연 도중 눈물을 훔치거나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보였다. “한국에 와서 첫 추석을 이곳에서 맞으니 마음이 착잡하단 말입니다.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맞는 추석인데, 북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맘이 아픕니다. 북한 가족들도 저를 생각하면서 아파할 겝니다.” 고향이 함북 청진이라고 밝힌 여성 탈북자 김지원(가명) 씨가 이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교육생들도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리며 격한 목소리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들의 꿈은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헤어진 가족과 다시 만나고 싶다”였다. 하지만 이들의 꿈이 이뤄질 날은 점점 더 먼 미래로 잡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북한에서 사람 빼오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젠 한국까지 오는 데 한국 돈 1200만 원을 부른단 말입니다. 그 돈 언제 다 모으겠어요. 게다가 요즘엔 국경에다 철조망 다 둘러친단 말입니다. 중국에 나왔다 잡히면 가족이 한국에 있는 경우엔 무조건 정치범수용소행이지 뭡니까.” 함북 무산이 고향인 20대 여성 최수민(가명) 씨의 말이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고향에서 아버지와 오빠를 데려오고 싶어 했다. “8년 전 제가 탈북할 때는 북한 국경경비대에 중국돈 100위안만 주면 안전하게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안전한 루트가 없어요. 부모 형제를 영영 다시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됩니다.” 특히 2015년은 탈북자들에게 감회가 깊은 해다. 1995년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면서 탈북자가 급증했다. 북한을 빠져나와 중국으로 넘어가는 인원이 한 해 수만 명에 육박하던 대규모 탈북 사태였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란 말이 본격 사용된 시기도 바로 1995년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2010년 이후 탈북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추석을 앞둔 탈북자들의 팍팍한 현실과 최근 탈북 추세를 심층 취재했다. ▼ “달님 달님, 北에 두고온 어머니 소식 좀 전해주오” ▼그리움에 사무친 탈북자들, 일부는 “추석 쇠는 법도 잊어” 올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추석을 맞는 탈북자 김지선(가명·29·여) 씨와 박선아(가명·28·여) 씨는 추석 명절이 반갑지 않다. 22일 기자와 만난 김 씨는 “추석 연휴가 표시된 달력을 볼 때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요즘 들어 잠을 설친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씨와 박 씨는 먼 친척 사이. 지난해 여름 비슷한 시기에 탈북한 이들은 중국에서 우연히 만났다. 이들이 탈북을 결심한 계기는 가족의 억울한 죽음 때문이었다. 장사를 하던 김 씨의 어머니는 보위부에 잡혀 들어가 고초를 겪은 뒤 풀려난 지 3개월 만에 숨졌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2년 동안 남몰래 탈북을 준비하던 김 씨는 지난해 7월 당시 네 살배기 딸과 함께 압록강을 건넜다. 박 씨도 아버지가 사업 문제로 보위부에 끌려갔다가 숨진 직후 탈북을 준비하다가 김 씨와 비슷한 시기에 두만강을 건넜다. 추석을 앞둔 이들은 한결같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2년 전 북한에서 보낸 마지막 추석 때 모친 산소 앞에 새 비석을 세운 일을 떠올렸다. 그는 목멘 소리로 “어머니 산소에 갈 수 없어 너무 안타깝다”며 말을 이어갔다. 박 씨도 “병든 어머니를 북한에 남겨둔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형제들에게는 탈북 계획을 미리 귀띔했지만 어머니에게는 끝까지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행여 걱정을 끼쳐드려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박 씨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엄마 목소리를 꼭 듣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탈북자들은 요즘 가족을 그리워하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1999년 입국한 장인숙 씨(75·여)는 명절만 되면 북에서 사별한 남편과 탈북 과정에서 붙잡힌 둘째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1978년 세상을 떠난 장 씨 남편의 산소는 평양 인근 공동묘지에 있다. 장 씨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망가져 있을 남편의 산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아들들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간직했다가 통일 뒤 남편 묘에 같이 묻어 달라고 신산당부를 해놓았다”고 말했다. 1999년 함께 탈북하다가 보위부에 붙잡힌 둘째 아들은 아직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원에서 만난 한 탈북 여성은 “하나원은 그래도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 덜한데 사회에 나가서 혼자 쓸쓸히 추석을 맞으면 서러워 눈물이 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국경을 넘은 뒤 남한으로 입국하기까지 북한과 중국 당국의 눈길을 피해 장기간 접경지대에서 지낸 일부 탈북자는 추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지난주 하나원에서 만난 탈북 여성 4명은 “우린 추석 쇠는 법을 잊어버렸다”며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추석에도 특별히 마음이 아프지도 않고 그저 무덤덤하다”고 했다. 장기간 이국에서 숨어 지낸 결과 추석에 대한 기억이나 공동체 의식도 거의 사라졌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것도 점점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날이 갈수록 탈북자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격감하는 탈북자, 브로커도 일감 떨어져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는 614명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1397명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 규모는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계속 늘었다. 그야말로 대규모 탈북 사태였다. 2001년 1043명이 입국해 연간 입국 탈북자가 처음으로 1000명을 넘어섰다. 2006년 입국한 탈북자는 2028명이었고, 2009년엔 2914명에 이르렀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만간 연간 입국 탈북자가 5000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그렇지만 2009년 정점을 찍고 점차 하향 추세를 보이다가 최근에는 급작스레 줄었다. 탈북자 규모가 갑자기 줄자 이들의 정착교육을 맡은 하나원도 놀라는 기색이다. 9월 현재 안성시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받는 여성 탈북자는 17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강원 화천군에 있는 제2하나원에서 생활하는 남성 탈북자까지 다 포함해도 200명 남짓이다. 하나원 교육 일정을 감안하면 최근 3개월 동안 한국에 입국한 규모도 200명 수준으로 짐작할 수 있다. 9월에 하나원에 들어간 탈북자는 30명 정도다. 하나원 측은 몇 년 전 500명 이상 수용이 가능하도록 시설을 확장했다. 하지만 막상 확장하고 나니 탈북자가 크게 줄었다. 화천의 제2하나원은 더 난감한 표정이다. 통일부는 안성 하나원의 수용능력 500명이 부족하다고 보고 2009년 화천에다 새로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제2하나원 건물 건설에 들어가 2012년 12월 완공했다. 제2하나원은 7만7400m² 땅에 예산 349억 원을 투입했다. 그렇데 막상 시설 운영에 들어간 시점에서 이용률이 예상치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다. 현재 제2하나원에서 교육받는 남성 탈북자는 30∼40명 수준. 제2하나원은 요즘 사회에 정착한 일부 전문직 탈북자를 대상으로 직업교육 등 맞춤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시설을 착공했던 2009년 당시 탈북자 규모가 이렇게 급속히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요즘은 탈북자를 도와주며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 중에서도 “일감이 없다”며 다른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중국의 한 브로커는 “6년 전만 해도 탈북자가 워낙 많아 한꺼번에 8명 정도씩 데리고 3국 국경까지 가 돈을 벌 수 있었다”며 “최근 중국에서 1, 2명씩 움직이다 보니 수중에 남는 돈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탈북자 입국 증가세가 꺾인 2010년부터 북한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의문을 알아보기 위해 탈북자와 구출 활동가 50여 명을 만나거나 전화로 접촉했다.휴전선처럼 변해 가는 북-중 국경 흔적선, 대못 판, 무인카메라, 철조망, 비상벨…. 올해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김창민(가명·35) 씨는 이런 말을 나열하며 북-중 국경을 넘던 아찔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우선 철조망을 넘은 뒤 모래를 말끔하게 깔아놓은 ‘흔적선’을 건너뛰어야 한다. 땅에 묻어놓은 대못 판을 밟을 위험도 피해야 한다”며 말을 꺼냈다. 북한 철조망을 넘어도 안심할 수 없다. 강을 건너 중국에 도착해도 무인카메라가 달린 철책과 탈북자 신고 체계가 또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요즘에는 중국 철책을 넘어 국경의 중국 가옥에 들어가 도움을 청하기도 두렵다”며 “집집마다 중국 공안이나 변방 부대와 연결된 비상벨이 있는데, 주인이 몰래 누르면 체포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다중 경계는 모두 김정은 집권 이후 생겨난 것이다. 요즘도 북한과 중국은 국경의 감시망을 겹겹이 쳐놓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올해 3월 김정은이 국경경비대에 “국경연선의 ‘3대 장벽’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최근 보도했다. 3대 장벽은 ‘물리장벽’ ‘감시장벽’ ‘전파장벽’을 뜻한다. 물리장벽은 북-중 경계의 압록강과 두만강에 설치된 물리적 장애물이다. 전기철조망과 함정, 대못을 박은 판자 등이 포함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6월 초부터 러시아에서 철조망을 대량으로 수입했다. 높이 1.6m의 러시아산 철조망 위에 10cm 간격의 전기선 4개가 설치됐다고 한다. 물론 전력난 때문에 아직 전기는 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국경 철조망은 2006년부터 설치가 시작됐지만 그동안 진척이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러시아 철조망이 들어온 뒤 탈북이 가장 빈발한 압록강 상류 양강도 지역은 현재 철조망 공사가 끝났고, 지금은 함경북도 두만강 유역 공사가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역시 대규모 탈북 사태를 막는다는 목적에서 2009년경부터 국경 주요 탈북 및 밀수 루트를 철조망으로 차단하는 작업에 들어가 지금 대부분 마무리됐다. 북한은 국경 전역에 철조망과 함께 너비 4m, 깊이 3m의 함정을 파놓는 계획도 세워 뒀다. 하지만 함정 몇 곳에서 물이 자꾸 스며 나와 이 계획이 흐지부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목함지뢰 수만 개를 설치한다는 소문이 국경 지역에 퍼지고 있다. 감시장벽은 국경에 설치된 최신 감시 장비들이다. 복수의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탈북을 막기 위해 군사분계선에 설치했던 야간 감시 장비까지 뜯어 북-중 국경에 설치했다. 탈북이 주로 밤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과거 압록강과 두만강 옆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강에 나가 빨래도 하고 물도 길어 먹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미리 허가를 받은 뒤 정해진 통로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통행을 허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안전보위부, 보안서, 국경경비대, 지방 적위대, 인민반 등 각 기관과 조직에서 차출된 인원이 4중, 5중으로 국경을 순찰한다. 이들은 의심이 가는 사람을 단속해 탈북자인지 조사하고 있다. “몇 년 전 수입해 온 독일산 전파탐지기가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통화를 하다 붙잡혀 처형된 사람이 많다. 통화 위치가 잡히면 10분도 지나지 않아 수색대가 현장을 둘러싸기 때문에 무서워서 전화를 못하겠다.” 지난달 통화한 북한 주민의 말이다. 최근 북한은 외부 세계와의 휴대전화 통화나 대북 라디오 방송 수신을 막기 위해 전파장벽 구축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전파 방해 장비도 중국이나 독일에서 들여와 국경과 인접한 도시와 마을에선 중국과 통화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통화가 어려워지면 탈북도 쉽지 않아진다. 이제는 북-중 국경을 넘기가 남북 군사분계선을 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진 것이다.“북조선 최대 적은 남조선 아닌 탈북자” 지난해 탈북한 최준호(가명·36) 씨는 “김정은 체제 들어 달라진 것이라면 탈북하다 체포되면 무조건 민족 배반자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체포되면 무조건 한국으로의 도주를 기도한 것으로 여긴다. 본인이 정치범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정치범관리소로 끌려간다. 뇌물을 많이 주어 판결을 잘 받아내도 최소 3년은 교화소에 갇혀 있어야 한다”고 북한의 살벌한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만난 탈북자들도 탈북자 격감의 주요 요인으로, 과거에 비해 탈북자 처벌이 훨씬 가혹해진 점을 많이 꼽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탈북자들에게 내려지던 처벌과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대규모 아사 사태가 시작되자 최소 수십만 명의 탈북자가 중국으로 탈출했다.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된 사람도 수만 명에 이른다. 당시 북한은 북송된 탈북자를 조사한 뒤 정상을 참작하며 처벌 수위를 조절했다. 특히 경제난으로 인한 단순 탈북자에 대해선 처벌이 비교적 가벼웠다. 대다수 탈북자는 3∼6개월 노동교화형(강제노동) 판결을 받았다. ▼ 데려오고 싶어도… 강 건너는 비용 500배나 뛰어 ▼하지만 지금은 처벌 수위가 크게 올라갔다. 요즘 체포되는 일반 탈북자는 대개 정치범수용소에, 국경에서 떠도는 꽃제비의 경우도 교화소에 들어간다. 정치범수용소와 교화소엔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치범수용소의 경우 과거 1970, 80년대 수용됐던 정치범들이 거의 다 숨졌다. 최 씨는 “수용소 안에서 정치범이 줄다 보니 수용소 내 탄광이나 농장 등이 돌아갈 수 없다. 과거 정치범의 자리를 지금은 탈북을 기도했다가 체포된 사람들이 메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북한에선 “탈북하다가 잡히면 인생이 완전히 끝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목숨을 건다는 각오를 해야 탈북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2008년 11월경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은 김정일에게 “탈북자를 없애겠다”는 계획을 첫 약속으로 내걸었다. 그 후 김정은은 “우리 체제의 최대의 적은 미제나 남조선이 아니라 탈북자”라고 선언하고 “도주하는 탈북자를 즉각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 이후 북-중 국경에서 탈북자가 사살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지금도 김정은은 주요 탈북 사건에 대해 직접 보고를 받고 대책을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9일에도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2세대 8명이 집단 탈북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바로 다음 날 김정은이 “당장 무산 지역을 철조망으로 완전히 봉쇄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고 북한 전문 인터넷매체 ‘데일리NK’가 보도했다. 이 지시에 국경경비대가 하계훈련도 급히 단축하고 철조망 공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천정부지로 뛰는 탈북 비용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하태민(가명) 씨는 최근 북한에 있는 어머니를 모셔오기 위해 탈북 브로커에게 한국 돈 1000만 원을 건넸지만, 얼마 전 어머니가 탈북 도중 체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모은 돈인데, 돈이 모자라 어머니 목숨을 빼앗겼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탈북자에 대한 처벌 수위와 함께 탈북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 탈북 브로커는 “북-중 국경을 넘는 데만 700만 원 정도 써야 한다. 들키면 경비대원 자신들도 총살되기 때문에 웬만한 금액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비대가 돈을 받으면 자기만 아는 통로로 강을 건너게 해주는데, 우리가 중국 쪽에서 대기하다가 즉시 차에 태우고 번개같이 도시로 달아난다. 그런데 변수가 너무 많아 우리도 옛날보다 훨씬 더 몸을 사린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만 해도 탈북자들이 국경 경비대원에게 중국 돈 100위안(약 2만 원) 정도만 주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비용이 불과 6∼7년 사이 1000만 원 이상으로 올랐다. 500배 넘게 치솟은 것이다. 그런데도 탈북자들은 “정확한 탈북 비용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금은 성공을 장담하며 북한에서 사람을 빼오겠다는 브로커가 거의 없다고 했다. 가장 큰 불안 요인은 국경 경비대원에게 많은 돈을 주어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처음엔 국경경비대와 단속 초소를 몇 배로 늘리고 탈북자와 탈북 방조자를 엄벌에 처하는 등 고전적인 방지책에 매달렸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뇌물이 통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김정은은 2010년경 “경비대원이 탈북자를 신고하면 받은 뇌물을 절대 빼앗지 않고 오히려 노동당 입당과 승진, 대학 추천을 해준다”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조치는 근래의 북한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이 같은 파격적인 조치가 내려진 뒤부터 경비대원이 돈을 받고 나서 탈북자를 신고하는 현상이 빈발해졌다. 탈북자와 국경경비대원 사이에 불신이 팽배한 결과 돈 보따리를 싸들고 가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뇌물을 주고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니 국경경비대의 ‘소득’도 떨어졌다. 탈북자들은 “국경경비대도도 결국 손가락만 빨게 됐으니 자업자득인 셈”이라고 입을 모았다. 탈북자가 국경을 넘어 중국 도시로 가도 곳곳에 위험이 도사린다. 중국 당국자들은 최근 기차표를 살 때도 신분증을 검색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탈북자들은 승용차나 버스를 타고 중국 대륙을 횡단한다. 중국 당국은 최근 이슬람 위구르족이 중동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기 위해 중국을 탈출해 태국 등 동남아로 가는 일이 빈발하자 남쪽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위구르족의 탈출 루트는 탈북자들이 동남아로 이동하는 길과 겹친다. 지난해 3, 4월에도 중국은 남부 지역에서 350여 명의 밀입국 브로커를 체포했다. 이 중엔 탈북자들을 동남아 지역으로 넘겨주던 브로커가 대거 포함돼 있었다. 이 같은 사건도 탈북비용 상승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나원에서 만난 탈북자들은 “대다수 북한 주민은 탈북의 꿈을 점차 접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말 목숨을 내걸 만큼 위급한 상황에 처한 주민이나 남한에 사는 가족이 브로커 비용을 대줄 수 있을 때만 탈북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내년에도 탈북자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생계형’ 탈북에서 ‘이민형’으로 바뀔 조짐도 나타나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것은 포기했어요. 돈을 북에 보내 장사를 하도록 하는 게 훨씬 낫지요. 서로 얼굴을 못 보고 사는 건 안타깝지만, 그 편이 최선인 것 같아요.” 1년에 몇 차례씩 북에 있는 오빠에게 돈을 보낸다는 한 탈북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이어 “오빠가 와봐야 낯선 땅에서 외롭게 힘든 직업을 전전할 게 뻔한데, 차라리 내가 돈을 보내면 고향에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사업가로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매년 좋아지고 김정은 체제가 주민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를 대폭 완화한 것도 탈북자가 감소하는 이유로 꼽힌다. 최근 ‘돈주’라고 불리는 신흥 부유층이 소규모 기업 경영에 뛰어들면서 노동력만 팔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주민층이 두꺼워지고 있다. 죽을 각오로 탈북을 결심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탈북 비용을 댈 수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올해 탈북한 이종만(가명) 씨는 “1만 달러가 넘는 브로커 비용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왜 탈북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북한에선 1만 달러 정도의 자본이 있으면 여러 명을 고용해 사장이 될 수 있는데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월 30달러만 주면 인력은 얼마든지 고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도 북한의 가족에게 많은 돈을 들여 성공 확률이 낮은 탈북길에 오르게 하기보단 돈을 보내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 남한에 먼저 온 가족이 보내준 돈을 받고 중국에서 체류하지 않고 곧바로 남한으로 오는 ‘직행’ 탈북자도 거의 늘지 않고 있다. 하나원 관계자는 “하나원 입소자 중 직행 탈북자의 비율은 오래전부터 20∼30%로 고정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자식의 미래를 위해 탈북했다는 주민도 가끔 눈에 띈다. 지난 주말 하나원에서 만난 한 여성의 탈북 이유는 중학생 딸 때문이었다. “이 애가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데, 북에선 김일성대나 외국어대를 가고 싶어도 못 가지 않습니까. 또 배워도 쓸 데가 별로 없고요. 북에서 우리도 잘살았지만 고민 끝에 올봄 딸의 꿈을 위해 탈북했습니다.” 이는 과거 남한이 가난했던 시절 미국 등 선진국으로 자녀를 위해 가족 전체가 이민을 떠나던 상황과 흡사하기도 하다. 앞으로 탈북 양상이 ‘생계형 탈북’에서 가족의 미래를 위한 ‘이민형 탈북’으로 바뀔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주성하 zsh75@donga.com·김호경·권오혁 기자}
휴가 나온 군인이 가정집에 침입해 30대 여성을 살해한 뒤 여성의 동거남과 싸우다가 흉기에 찔려 숨졌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육군 모 부대 소속 상병 장모 씨(20)가 24일 오전 5시 28분경 서울 노원구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박모 씨(33·여)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뒤 박 씨의 동거남인 양모 씨(36)와 싸우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고 24일 밝혔다. 양 씨는 경찰 조사 중 “장 씨가 먼저 박 씨를 흉기로 찔렀고 내가 장 씨의 흉기를 빼앗아 장 씨를 찔렀다”며 “장 씨와는 모르는 관계”라고 진술했다. 양 씨는 장 씨와 싸우다 이마와 왼손을 흉기에 찔려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경찰은 양 씨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살인 혐의로 입건하고 정당방위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은 장 씨의 범행 동기에 대해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장 씨가 우발적으로 침입한 것인지, 의도적으로 침입해 박 씨와 양 씨를 살해하려 한 것인지 확인하고 있다”며 “장 씨가 숨져 동기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장 씨의 휴대전화 통화명세 등을 분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 씨는 강원 고성군에서 근무하는 현역 군인으로 9월 22일부터 9박 10일 휴가를 나온 상태였다. 경찰에 따르면 장 씨는 22일 노원구에 있는 큰아버지의 집에 들러 식사를 한 뒤 23일 오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장 씨가 군 생활 중 어려움은 없던 것으로 안다”며 “과거 우울증이나 전과 전력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숨진 장 씨와 박 씨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트렁크 살인 사건’ 피의자 김일곤(48)이 피해자 주모 씨(35·여)를 이용해 원한관계에 있던 남성을 유인한 뒤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일곤의 실제 살해 목표였던 남성은 김일곤의 ‘살생부’로 알려진 메모에 적힌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김일곤이 20대 남성 K 씨를 유인하기 위해 주 씨를 납치했으나 주 씨가 지속적으로 반항하자 살해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일곤은 올해 5월 초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K 씨와 시비가 붙은 뒤 쌍방폭행 혐의로 6월 벌금 50만 원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K 씨에게 불만을 품은 김일곤은 6월부터 지난달 초까지 7차례에 걸쳐 K 씨의 집과 근무하고 있는 노래방에 찾아가 “벌금을 대신 내라”고 요구했다. 지난달 초에는 칼을 보여주며 K 씨를 위협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일곤은 납치한 주 씨로 하여금 노래방 도우미인 척 가장해 노래방에서 일하는 K 씨를 유인하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일곤은 경찰 조사 중 “애초에 납치한 여성을 살해할 의도는 없었으나 계속 반항하고 차 안에서 창문을 두드리거나 살려달라고 소리쳐 목을 졸라 죽였다”고 진술했다. 피해 여성의 신체 일부를 훼손한 이유에 대해서 김일곤은 “납치 이후 (주 씨가) 본인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고 K 씨를 죽이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해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일곤은 K 씨와 시비가 붙은 뒤인 6월 초에 K 씨를 포함해 자신에게 피해를 줬다고 생각한 28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이들 중 실제로 김일곤에게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김일곤을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했으며 K 씨에 대한 살인예비 혐의도 추가할 예정이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트렁크 살인 사건’ 피의자 김일곤(48)이 피해자 주모 씨(35·여)를 이용해 원한관계에 있던 남성을 유인한 뒤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일곤의 실제 살해 목표였던 남성은 김일곤의 ‘살생부’로 알려진 메모에 적힌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김일곤이 20대 남성 K 씨를 유인하기 위해 주 씨를 납치했으나 주 씨가 지속적으로 반항하자 살해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일곤은 올해 5월 초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K 씨와 시비가 붙은 뒤 쌍방폭행 혐의로 6월 벌금 50만 원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K 씨에게 불만을 품은 김일곤은 6월부터 지난달 초까지 7차례에 걸쳐 K 씨의 집과 근무하고 있는 노래방에 찾아가 “벌금을 대신 내라”고 요구했다. 지난달 초에는 칼을 보여주며 K 씨를 위협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일곤은 납치한 주 씨로 하여금 노래방 도우미인 척 가장해 노래방에서 일하는 K 씨를 유인하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일곤은 경찰 조사 중 “애초에 납치한 여성을 살해할 의도는 없었으나 계속 반항하고 차 안에서 창문을 두드리거나 살려달라고 소리쳐 목을 졸라 죽였다”고 진술했다. 피해 여성의 신체 일부를 훼손한 이유에 대해서 김일곤은 “납치 이후 (주 씨가) 본인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고 K 씨를 죽이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해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일곤은 K 씨와 시비가 붙은 뒤인 6월 초에 K 씨를 포함해 자신에게 피해를 줬다고 생각한 28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이들 중 실제로 김일곤에게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김일곤을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했으며 K 씨에 대한 살인예비 혐의도 추가할 예정이다.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연봉 6000만 원 비정규직 노조원 광고판 무단 점거로 연봉 2000만 원 영세한 회사 도산한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건물 입구에 걸려 있는 현수막 내용이다. 현수막의 주인은 이 건물 옥상에 설치된 10m 높이의 광고판을 운영하는 광고업체 ‘명보애드넷’. 평소에는 환하게 빛을 내며 광고를 내보내는 전광판이지만 현재는 완전히 꺼져 있다. 6월 11일부터 지금까지 전국금속노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소속 비정규직인 최정명(45) 한규협 씨(41)가 정규직화를 주장하며 광고판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공 농성의 발단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아차 사내 하청업체 근로자가 기아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불복 의사를 밝히며 항소했다. 사안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근로자들은 고공 농성을 선택했다. 고공 농성은 노사 갈등 과정에서 자주 등장한다. 지난달 경남 창원시에서는 화물연대 동양파일분회 조합원 2명이 계약 만료된 조합원 7명의 복직을 요구하며 20m 높이의 송신탑에 올랐다. 15일간의 고공 농성 끝에 5명이 복직하고 2명이 운송 재계약을 하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최 씨 등과 기아차 측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20일 최 씨 등은 장기간 결근, 회사 복귀 명령 불이행을 이유로 소속사인 기아차 하청업체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3일 고공 농성 후 처음으로 정규직화 문제를 위한 특별 교섭이 진행됐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노조는 자신들의 요구 사항에 대한 명확한 방침을, 회사 측은 고공 농성 중단을 각각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농성이 길어지자 엉뚱하게도 광고판 관리 업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 명보애드넷의 연간 매출은 약 58억 원(2014년 기준). 인권위 건물에 있는 광고판은 매출의 10% 이상(연간 6억9000만 원)을 차지한다. 급기야 농성 중인 근로자들과 광고업체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명보애드넷은 6월 법원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이후 고공 농성이 마무리되면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할 방침이다. 현수막을 내건 이유도 마찬가지. 회사 관계자는 “기아차, 노조 측을 면담한 결과 근로자의 실질 연봉(수당 포함)은 5000만∼6000만 원대로 알려졌다”며 “평균 연봉 2000만 원대의 작은 회사가 이들의 분쟁에 휘말리는 상황”이라며 날을 세웠다. 한편 노조 측은 수당을 제외할 경우 하청 업체 근로자의 월급은 200만 원대라고 밝혔다. 명보 측은 노조 관계자의 건물 출입을 막고 있다. 노조 측은 “한 달 동안 현수막을 걸지 않는 등 광고업체가 광고를 재개할 수 있도록 충분히 협조했지만 업체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그동안 중간자 역할을 해 왔던 인권위가 다음 달 3일까지 사무실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업체의 거부로 그동안 인권위가 해오던 농성 근로자 도시락 배달 문제 등이 당장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고공 농성 100일째인 18일을 앞두고 금속노조, 참여연대 등이 릴레이 기자회견을 하고 근로자들이 광고판에 대형 현수막을 걸겠다고 예고해 충돌이 예상된다.권오혁 hyuk@donga.com·강홍구 기자}
5일 제주 추자도 인근 해역에서 전복된 돌고래호가 9일 인양됐다. 제주 해양경비안전본부는 150t 규모의 크레인을 동원해 추자도 청도 해안 갯바위에 묶어둔 돌고래호를 인양했다. 바지선인 동아150호(496t)에 실려 제주시 애월항에서 출발한 크레인은 이날 오후 현장에 도착해 뒤집힌 채로 묶여 있는 돌고래호를 끌어올린 뒤 3km가량 떨어진 신양항으로 옮겼다. 돌고래호를 인양한 결과 밑바닥 부분 오른쪽 측면에 2∼3m가량 파손되는 등 여러 곳에서 찢기거나 긁힌 흔적이 드러났다. 해경 측은 이 흔적이 사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인지, 전복 이후 암초 등에 부딪친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해경은 돌고래호 주변에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한 뒤 선체 충돌, 너울 파도에 의한 전복, 구조 변경 여부 등 사고 원인 조사를 시작했다. 어선위치식별장치(V-PASS), 무선통신장비 등의 작동 여부를 가리고 승선원 편의를 위한 시설물 추가 설치, 구명장비 비치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돌고래호는 길이 14.5m, 너비 3.3m로 2005년 11월 건조됐다. 해경은 탑승자 명부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돌고래호 선장의 아내 이모 씨(42)를 조사했지만 이 씨가 “남편이 불러주는 대로 적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진술해 허위 명부 작성 경위에 대한 조사는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해경은 생존자 3명의 상태가 호전되는 대로 승선 과정, 사고 당시 상황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한편 해경의 사고 조사와 실종자 수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거처를 전남 해남에서 제주로 옮기기로 했다. 사고수습본부가 해남과 제주로 나뉘면서 해남에 머물고 있는 가족들의 의견이 해경과 해양수산부 등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가족대책위원장 최영태 씨(60)는 해남군 다목적생활체육관에서 “희생자 시신과 가족들이 제주에 있었다면 해경이 더 빨리 나섰을 텐데 해남에서 가족들이 어떤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다”며 “오늘(9일)까지만 해남에 머문 뒤 제주도로 가겠다”고 말했다.제주=임재영 jy788@donga.com / 해남=권오혁 기자}
돌고래호 전복 사고의 실종자 수색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는 8일 오후 추자도 근해에 저인망어선 16척을 처음으로 투입했다. 실종자의 수중 표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다. 또 해경 122구조대 등을 투입해 일반인 접근이 어려운 주변 무인도의 정밀 수색도 시작했다. 전남 진도군과 완도군 등에도 해안 수색 협조를 요청했다. 실종자 수색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이날 오전 전남 해남군 다목적생활체육관에서 열린 수색 상황 브리핑에서 가족들은 해경의 초기 대응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돌고래호 사고 가족대책위원장 최영태 씨(60)는 “사고 직후 선박 28척이 열심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과장된 내용”이라며 “실제 사고 현장에서 수색·구조 작업을 펼친 배는 몇 척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모든 사망자에 대한 시신 부검도 요청했다. 시신 검안 후 사망자 모두 익사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부검을 통해 사인을 명확히 밝히자는 것이다. 이날 오후 체육관을 찾은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의 간담회에서 최 씨는 “사고 이후 몇 시간 동안 배에 매달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저체온증’으로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사인을 밝혀 해경의 초동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선체 인양도 늦어지고 있다. 해경은 8일 선체를 인양할 예정이었지만 제주도 등과의 협의가 이날에야 마무리된 데다 날씨 변동이 심해 크레인선이 전복 현장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해경은 선체 인양 뒤 충돌 여부와 구조 변경 여부 등을 조사해 원인을 규명할 방침이다.제주=임재영 jy788@donga.com / 해남=권오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