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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을 요구하는 학생시위가 3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25일 시위에 참가했던 10대 청소년이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목격자들은 “경찰이 쏜 총에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칠레 시위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26일 외신들에 따르면 전날 산티아고 시내에서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던 10대가 가슴에 총격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이날 아침 사망했다. 사망자는 14세 마누엘 구티에레스 레이노소 군이며 경찰의 바리케이드 근처에서 총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 가족과 친구들은 “경찰 쪽에서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했으며 변호인을 통해 경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레이노소 군과 함께 시위에 참가했던 마리오 파라게스 핀토 군(18)도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 칠레 학생들은 5월부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1973∼1990년) 시절 제정된 교육법에 따라 지방 정부가 공립학교를 운영하는 바람에 교육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며 중앙정부가 공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강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보수우파 성향의 피녜라 대통령 지지율은 칠레에서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1990년 이래 가장 낮은 26%까지 추락했다. 24, 25일에는 칠레 최대 노조단체인 중앙노동자연맹(CUT) 등 80여 개 단체 주도로 20만 명이 참여한 48시간 총파업이 벌어졌다. 이 시위에는 브라질 최대 학생조직인 전국학생연합(UNE)의 다니엘 일리에스쿠 회장까지 산티아고 집회에 참석해 브라질 학생조직까지 연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한편 경찰 당국은 이틀간 이어진 대규모 시위로 경찰 153명과 시민 53명이 부상했으며 1394명이 연행됐다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 있는 유엔 건물에서 26일 자살 폭탄 테러 가 발생해 최소 18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당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나이지리아 보안당국은 “오전 11시경 혼다 어코드 승용차를 탄 자살 폭탄 테러범이 유엔 건물에 돌진해 폭탄을 터뜨렸다”고 밝혔다. 거대한 폭발로 4층짜리 유엔 건물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특히 1, 2층이 가장 크게 피해를 보았다. 이 빌딩에는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아동기금(UNICEF), 유엔인구기금(UNPF) 등 유엔 산하 26개 부처의 직원 4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가까스로 살아나온 마이클 오필라제 UNICEF 직원은 “탈출 과정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AP통신에 증언했다. 아부자 유엔 건물은 미국대사관 등 서방 공관들이 밀집한 지역에 있어 보안이 비교적 잘돼 있는 편이다. 이번 폭탄 테러의 배후가 어디인지는 즉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알카에다와 연결된 나이지리아 과격 테러조직 ‘보코 하람’의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보코 하람은 나이지리아 전역에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서양식 학교 교육에도 반대해 왔으며 수많은 폭탄 테러 공격의 배후로 지목돼 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리비아의 반(反)카다피군은 21일 트리폴리에 입성한 후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관저가 있는 밥알아지지아 요새 500m 앞까지 진격했다. 카다피 측의 격렬한 저항으로 장기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공군력과 반군의 기세 앞에 카다피의 철옹성은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반군은 23일 공격을 시작한 지 불과 5시간 만에 42년 철권통치의 상징인 요새를 함락했다.○ 결정적 장면‘카다피의 펜타곤’으로 비유되는 밥알아지지아 요새는 카디피군 최후의 보루라는 명성에 걸맞게 견고했다. ‘요새 함락 전투’는 초기에는 흡사 중세 공성(攻城)전을 연상케 했다. 두께 0.9m, 높이 3.7m의 견고한 콘크리트벽 뒤에 몸을 숨긴 카다피군은 탱크포 등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반군의 진격을 가로막았다. 박격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반군은 쉽게 요새를 점령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토의 폭격기가 서쪽 벽을 무너뜨리자 이날 오후 3시경 반군 수백 명이 한꺼번에 요새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이로부터 불과 2시간 남짓 지난 오후 5시 15분 요새에 반군 깃발이 올라갔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반군은 벙커와 터널 등을 말 그대로 ‘이 잡듯’ 뒤졌지만 카다피를 찾을 수 없었다. 생포된 카다피 호위병이 반군에게 총 개머리판과 발로 마구 구타당하는 장면이 알자지라 카메라에 잡혔다. 카다피 동상이 있던 지점에는 머리에 총을 맞은 시신이 담요에 대충 싸여 방치돼 있는 등 여기저기서 카다피군 시신이 목격됐다. 무스타파 압둘 잘릴 과도국가위원회(NTC) 위원장은 요새 함락 직후 “21일 트리폴리 입성 후 사흘간의 전투로 400여 명의 카다피군이 전사하고, 2000여 명이 다쳤으며 600여 명이 생포됐다”고 밝혔다. 요새 안에서는 카다피군이 급히 도망가면서 버리고 간 무기도 대량으로 발견됐다. 흰색 건물 두 채에서 권총과 소총 기관총 등이 무더기로 나왔으며 수천 정은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였다. ○ 마지막 격전지 ‘수르트’밥알아지지아 요새 함락에도 불구하고 카다피 원수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 그는 23일 요새 함락 수시간 뒤 친카다피 성향의 알라이TV에서 “나는 트리폴리에 있다”고 밝히고 반군을 “쥐새끼들” “악마”로 지칭하며 주민들에게 반군들을 “쓸어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흡사 승자와 패자의 표정이 뒤바뀐 듯한 형국이다.그가 거점을 내주고도 호기를 부리는 이유는 반군에 잡히지 않고 은신생활을 지속하며 시간을 번 뒤 다시 세력을 규합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이에 호응하듯 트리폴리에서는 여전히 카다피군이 활개치고 있다. 트리폴리에 들어간 외신기자 대다수는 수도 한복판 릭소스 호텔에서 요새 함락 하루 뒤인 24일까지 카다피 친위대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났다. 호텔 입구를 막고 있는 카다피군의 저항에 반군의 진입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요새 안에 있던 반군도 카다피 지지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저격과 포탄 공격을 받고 있다. 정치범들이 수감돼 있는 악명 높은 아부살림 교도소는 24일까지 정부군 통제하에 있으며 공항으로 가는 도로는 카다피군 저격수에 의해 봉쇄됐다. 리비아 국민도 카다피의 광기 어린 육성연설을 듣고 카다피가 보복을 위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이날 트리폴리에서는 카다피군이 정수처리장에 독극물을 살포했다는 소문이 돌아 주민들이 수도꼭지를 잠그고 물을 마시지 못하며 공포에 떨기도 했다.반군에 밀린 카다피군 주력은 수르트로 이동해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수르트는 트리폴리 동쪽 373km, 반군 거점인 벵가지에서 서쪽으로 344km 떨어진 리비아 중심부의 지중해 연안도시로 인구 15만 명의 대다수가 카다피가 부족장인 카다파 부족이다.수르트가 리비아 사태의 최후 격전지가 될 개연성이 큰 가운데 도시에선 어린아이들까지 무기를 들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한편 반군도 무력을 수르트로 이동시켜 결전을 벼르고 있다. 벵가지에서도 지원군이 이 도시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군 측은 수르트를 48시간 안에 점령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다.○ 대량살상무기 우려 증폭리비아 사태가 반군의 승리로 굳어져 가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의 정보기관들은 리비아에 있는 화학무기와 재래식 대량살상무기의 행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카다피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해 최후의 항전을 하거나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이 이 무기를 입수할 여지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비아에는 겨자가스와 스커드미사일, 대전차로켓 등 재래식 무기와 핵 원료 물질 등이 상당량 비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화학무기는 노후화돼 심각한 군사적 위기가 아니라고 평가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특정 다수에게 심각한 위해를 입힐 수 있다. 리비아에 240여 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스커드미사일도 우려되는 대량살상무기다. 카다피군은 22일 수르트에서 스커드미사일 3발을 반군이 장악한 도시에 쏘았다. 이 밖에 대량살상무기를 장악한 테러조직원들이 유럽을 상대로 보복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마사우드 알 갈리 주한 리비아대사(사진)는 2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대사관은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를 대표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대사관 접견실 깃대에는 카다피 체제를 상징하는 녹색기 대신에 반군 세력인 NTC의 삼색기가 태극기 옆에 걸려 있었다. 갈리 대사는 삼색기를 가리키며 “새로운 리비아의 국기”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리비아 반군은 23일 카다피 진영의 핵심 거점인 밥알아지지아 요새를 장악한 뒤 트리폴리 전투 승리를 공식 선언했다. 압둘 하킴 벨하지 반군 사령관은 치열한 전투 끝에 반군이 요새에 진입한 이날 오후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카다피와 그의 친구들은 쥐 떼처럼 도주했다. 우리는 트리폴리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밝혔다. 카다피 관저와 막사, 통신센터 등이 있는 밥알아지지아 요새는 규모가 600만 m²에 이르는 곳으로 카다피가 은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추정돼 왔다. 그러나 반군은 요새 안에서 카다피를 발견하지 못했다. 요새 함락 몇 시간 뒤 카다피는 한 지역 라디오방송을 통해 “요새에서 철수한 것은 전술적 이동일 뿐”이라며 “승리가 아니면 순교할 것”이라고 밝혔다. 탱크와 미사일까지 동원한 카다피군의 저항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트리폴리에서 패배한 카다피군 주력은 카다피의 고향인 수르트를 향해 철수를 시작했고, 반군도 이곳으로 무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아직 리비아 상황이 안정되지 않은 만큼 갈리 대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리비아와 한국의 관계는 미래에 더욱 강해질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리비아를 재건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리비아 국민을 지지해준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현재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새로운 리비아 정부가) 앞으로 한국 정부, 기업, 한국인들과 관계를 잘 맺는 것이다.” ▼ “과도국가委 삼색기가 새로운 리비아의 국기” ▼―한국 정부는 NTC를 정통성을 가진 통치기구로 인정했다. 주한 리비아대사관도 NTC를 대표하나. “그렇다. 앞으로 모든 리비아-한국 관계에 대해 NTC의 훈령을 받아 임무를 부여받고 한국 외교통상부와 협의할 것이다. 언론 보도와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 정부가 NTC를 인정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NTC를 받아들인 한국 정부의 결정을 인정한다. 한국 정부의 결정은 NTC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나도) 앞으로 한국 정부 당국자들을 만날 것이다.” 갈리 대사는 3월 리비아가 내전으로 치닫기 시작한 이후 공개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외교부에 따르면 리비아 내전의 종식이 임박한 최근에도 한국 정부와 접촉하지 않았다. ―리비아 내 한국인들은…. “한국인들은 NTC의 보호를 받을 것이고 안전할 것이다. 따라서 리비아에 머물고 있는 한국 시민들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 한국인을 존경한다. 한국과 리비아 국민은 친구와 같은 사이다. 리비아와 한국은 전통과 관습 면에서 공통적인 측면이 많다. 우리는 서로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매우 가까운 사이다.” ―삼색기는 어떻게 구했나. “(미소를 지으며) 리비아에서 구해온 건 아니다. 대사관에서 직접 제작해 22일부터 대사관 안팎에 게양했다. 전 세계 리비아대사관에서 독립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1951년 이탈리아에서 리비아왕국으로 독립했을 때 쓰였던 깃발이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 뉴욕타임스(NYT)는 21일 “반군이 픽업트럭을 타고 트리폴리로 진군하는 데 정부군 측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았다. 정부군이 녹아 없어진 듯하다”고 전했다. 군사력이 열세였던 반군이 트리폴리에 무혈입성한 배경은 무엇일까. 》[1] 트리폴리 6개월 잠복 ‘슬리퍼 셀’이 반군 승리 일등공신우선 트리폴리 곳곳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잠복요원(sleeper cells)’들의 공이 컸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22일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6개월간 트리폴리 구석구석에서 카다피군의 저격수와 총잡이로 위장 잠입하며 결전의 날을 손꼽아 온 비밀조직. 트리폴리 근처 해안과 미스라타를 통해 들어와 잠입했으며 규모는 2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언론은 20일 밤(현지 시간) 트리폴리 내 사원들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신은 위대하다(Allahu Akbar)’는 메시지가 이 비밀 조직의 행동을 깨우는 ‘큐 사인’이었다고 전했다.이튿날 21일 요원들은 트리폴리 동쪽에 있는 타주라에서 온 반군들과 합세해 트리폴리 진입을 도왔다. 자위야 자다임 마야 등 서쪽에서 온 반군들의 기습 공격은 이들에게 힘을 보탰다. 22일 반군이 카다피 정권의 최정예 부대인 ‘카미스 여단’과 무기창고를 접수하자 전세는 반군 쪽으로 돌아섰다. 카미스 여단은 트리폴리에서 약 27km 떨어진 곳에 주둔한 부대로 카다피의 7남 카미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22일 AP통신은 반군이 이 부대를 급습하자 잠깐 동안 총격전이 있었지만 잠시 후 카다피군이 기지를 도망갔다고 전했다. 이처럼 카다피 측의 주요 인사가 하나 둘 떠난 트리폴리는 반군에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압델 하피즈 고가 과도국가위원회(NTC) 부의장은 이번 공격에 대해 “트리폴리 내 잠복요원들과 동부 남부에서 온 반군들 간의 협조가 있었으며 오랫동안 준비해온, 사전에 계획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여름 내내 트리폴리 내 잠복요원들은 도시 내에서 비밀스럽게 훈련하고 반군과 무기를 모았으며 다른 지역 반군들과 연락했다. 오랫동안 이 작전을 기다리고 계획하고 희망해 왔다”고 보도했다. [2] 카다피 돈줄 마르자 軍 전투의지도 고갈이와 함께 반군 스스로도 깜짝 놀랄 승전이 현실화된 이유는 말라버린 ‘카다피의 돈줄’이 병사들의 전투의지를 크게 하락시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지금까지 카다피 병력은 친위부대와 용병이라는 양대 버팀목으로 유지돼 왔다. 막내아들 카미스가 지휘하는 친위부대는 리비아 최정예 부대이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그래서 카다피 원수는 내전이 시작되자 하루 1000달러를 주겠다면서 이웃 국가들에서 대대적으로 용병을 모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반군에 투항한 용병들의 진술을 들어보면 참전 일당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미국 등 국제사회는 리비아에서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한 초기에 카다피 일가의 재산을 동결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2월 한 달 동안에만 미국 300억 달러를 비롯해 캐나다 24억 달러, 호주 17억 달러, 오스트리아 12억 달러, 영국 10억 달러, 스위스 6억5000만 달러 등 300억 달러가 넘는 카다피 일가 재산이 동결됐다. 특히 각국은 카다피 일가의 유동자산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워 수상한 현금 흐름이 나타나면 즉시 이를 차단했다. 결국 카다피 가문은 용병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힘들 수밖에 없게 됐다.몇 달 동안 약속된 돈을 받지 못한 데다 카다피 정권의 몰락이 명백해진 상황에 처하자 용병들은 목숨을 내걸고 싸우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면 돈을 받을 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트리폴리에서 시가전이 벌어지자 대다수 친카다피 병력이 싸워볼 생각도 않고 도주했다고 보도했다. 용병이 아닌 리비아 국적 군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몇 달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 정규군 200여 명이 지난달 트리폴리 인근 전투장에서 총 한 방 쏘지 않고 반군에게 투항한 사례도 있다. 카미스 휘하의 ‘32여단’도 21일 별다른 저항 없이 반군에게 투항했다. [3] 측근부대 배신… 美-나토 측면지원 주효외신들은 카미스 여단 내의 배신과 반군의 적절한 작전방향 선택 그리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습 등 측면 지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징집병이 아닌 카다피에게 직접 충성을 맹세한 청년들로 구성 ‘카미스 여단(32여단)’이 특별한 저항 없이 반군에 접수된 것은 카다피 측 내부의 배신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한 반군 고위 간부는 “카미스 부대의 지휘관 중 한 명이 몇 년 전 카다피가 자신의 형을 숙청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반군에 투항했다”고 말했다.반군의 진격 방향도 중요했다. 반군의 주력인 동부 반군은 그동안 동쪽 벵가지에서 시작해 제3의 도시인 미스라타 등 항구도시와 주요 시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전투를 벌였다. 카다피 세력도 동부 반군을 대항하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카다피 세력이 서쪽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식으로 활동하던 서부 반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탓에 이날 서쪽에서 진격해 들어오는 반군에 트리폴리를 쉽게 내줬을지 모른다고 미국 LA타임스는 분석했다.나토는 지속적인 공급으로 정부군의 대규모 이동을 불가능하게 했으며 미국이 트리폴리와 주변에 대한 항공 감시를 대폭 강화한 것도 트리폴리 점령의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22일 전했다.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지난달 9일 독립한 남수단에서 무정부 상태를 틈탄 최악의 대량 학살극이 벌어져 독립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남수단 동부 종글레이 주 우로르 지역에서는 부족 간 갈등으로 18일 하루에만 최소 640명이 사망하고 861명이 부상했으며 어린이 208명이 납치됐다고 현지 일간 수단트리뷴이 남수단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19일 보도했다. 이날 참사는 로켓추진총유탄(RPG)과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무를레 부족 청년들이 다수 부족인 로우누어 마을을 기습공격하면서 벌어졌다. 1700여 명의 인명피해와 함께 가옥 7924채가 불에 타고 소 3만8000여 마리가 약탈당했다. 현장을 둘러본 툿 푸크 우로르 행정관은 “여성과 아이, 노인 구분 없이 무자비하게 살해되고 모든 것이 깡그리 파괴됐다”면서 “이는 전형적인 대량학살”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격은 두 달 전 로우누어 부족이 무를레 마을을 공격해 수백 명이 죽고 수천 가구가 약탈당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쿠올 마니앙 종글레이 주지사는 “이번 충돌은 가축을 노린 공격이며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라고 말했다. 남수단에서는 소를 비롯한 가축이 부를 상징한다. BBC는 남수단에서 소 한 마리가 350달러(약 38만 원)에 거래되며 신부 측이 젖소 200마리를 결혼식 지참금으로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20일 보도했다. 각 부족은 재산을 지키기 위한 무기 확보에 혈안이며 마을마다 사령부까지 갖추고 있다. 남수단 부족 간의 반목은 독립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갓 독립한 허약한 남수단 정부는 부족 간 약탈을 막을 힘도 없다. 더구나 분쟁지역들은 병력을 이동시킬 도로도 변변히 없는 오지가 대부분이다. 남수단 곳곳에서는 이런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BBC방송은 올해 상반기에만 330여 건의 유혈충돌로 2368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최다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던 2009년 아프가니스탄의 사망자 기록(2421명)을 불과 6개월 만에 따라잡은 셈이다. 아프간 인구가 남수단의 3.5배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남수단에서 목숨을 잃을 확률은 전쟁 중인 아프간보다 7배 이상 높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올해로 건립 125주년을 맞는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앞으로 1년간 잠정 폐쇄된다. 켄 살라사르 미 내무장관은 자유의 여신상 건립 125주년 다음 날인 10월 29일부터 1년간 화재 등에 대비해 비상계단 확충 공사를 벌인다고 밝혔다. 여신상 내부 출입은 금지되며 여신상이 있는 섬 관광은 계속 허용된다. 현재 여신상 꼭대기인 왕관 부분에서 비상시 관광객들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지상으로 연결된 나선형 계단(354계단)뿐이다. 따라서 화재 등이 일어나면 아래로 뛰어 내려오는 관광객들과 위로 올라가는 소방관들이 뒤엉켜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 2725만 달러(약 294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하는 이번 내부 공사는 이 나선형 계단의 안전시설을 확충하는 것이다.매년 500만 명이 찾아 테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건축물로 꼽히는 여신상의 내부 안전문제는 2001년 9·11테러 발생 후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미 정부는 테러 발생 후 여신상 내부 참관을 금지하고 3년간 공사를 벌인 끝에 2004년부터 박물관과 기단부 전망대까지만 일반에 공개했다. 2009년부터는 여신상 몸통을 거쳐 왕관 부분 전망대까지 추첨을 통해 시간당 30명씩 관광을 허용해 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0세기 후반 이래 최악의 폭동 기폭지인 영국 런던 북부 토트넘은 11일 불에 타거나 유리창이 깨진 건물들로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비까지 내리면서 거리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폭동은 멈췄지만 폭동에 놀란 주민들의 마음은 아직 평온을 되찾지 못한 듯했다. 폭동이 일어났던 하이로드에만 복구공사를 벌이는 트럭 수십 대와 인부들로 붐볐다. 대로변의 쓰레기통에는 ‘우리의 거리와 지역사회에 평화를 되돌려 달라’고 쓴 A4 종이들이 붙어 있었다. 하이로드 한중간의 식료품 상점 앞에서 만난 20대 아랍계 타릴 씨는 “토트넘은 이제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면서 “조만간 도로공사가 끝나고 피해를 본 가게들이 수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면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차량이 공격받고 상가가 약탈을 당한 런던 남부의 브릭스턴도 평온은 찾았지만 폭동의 상흔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흑인이 몰려 사는 이곳의 지하철역 주변에는 경찰 20여 명이 2, 3인조로 나뉘어 순찰을 하고 있었다. 역전 브릭스턴로드 오른쪽에 늘어선 환전소와 은행 지점들은 해가 지기 전에 셔터를 내렸다. 한 레스토랑 관계자는 “유리가 깨지는 피해를 봤지만 다음 날 바로 문을 열었다”면서 “정신적인 충격만 가라앉으면 다시 활기찬 브릭스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6일 저녁 토트넘에서 시작돼 마구잡이로 번지며 영국 전역을 공포와 충격에 몰아넣었던 폭동과 약탈 행위는 발생 닷새째인 10일 밤 전국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에 따라 폭동 사태가 물대포 사용과 경찰의 고무탄 발사 검토 등 정부의 강경대책에 밀려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8일 약탈과 방화가 벌어진 런던 북부 해크니 지역에서는 상가를 운영하는 터키인 수십 명이 10일 저녁부터 스스로 자경단을 조직해 시설 보호에 나섰다. 탄탄한 이민자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인들도 카레 레스토랑이 많기로 유명한 런던 동부 브릭레인에서 집단으로 가게를 지켰다. 7일 폭도의 습격을 받은 런던 북부 엔필드에선 지역민 200여 명으로 구성된 자경단이 거리 곳곳에 배치됐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1일 의회 연설에서 “마스크나 복면 착용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 부여하고 비상시에는 SNS 사이트나 메신저 서비스를 중단시킬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10일 폭동에 가담해 체포된 피의자들의 법정 심리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10, 20대가 중심이었을 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다양한 계층과 인종, 연령대가 폭도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폭동 혐의로 체포된 1000여 명 중 처음으로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교사, 요리사, 관리인 등 직업도 다양했다. 전자용품점을 약탈하다 체포된 알렉스 베일리 씨(31)는 초등학교 교사로 형편이 힘든 아이들을 담당했다. 해당 학교 홈페이지에는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면서 환하게 웃는 그의 사진이 올라 있다. 상점을 약탈한 혐의로 체포돼 법정에 나선 배리 나인 씨(42)는 런던 루이 섬 노숙인 쉼터의 자원봉사자다. 50파운드 정도의 개사료 통조림을 훔쳐 나오다 체포된 열한 살 소년, 매니큐어 제품 6개를 훔쳐 체포된 28세 여성도 법정에 나왔다. 가디언지는 “누가 폭도냐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없다”고 지적했다. 런던=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러시아가 북한에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식량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가 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나탈리야 티마코바 대통령 공보실장은 “대통령이 북한에 밀가루 5만 t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정부에 전달했으며 이와 관련한 모든 필요한 조치가 거의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북한에 1만 t 이상의 식량을 지원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번 식량 지원은 지난달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장관 회담에 참가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러시아 국내 시장의 밀가루 가격을 기준으로 환산할 때 러시아가 지원할 5만 t의 밀가루는 약 1770만 달러(약 191억 원)어치에 이른다. 신문은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키우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이번 지원을 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모스크바 국립대 한국학 센터의 파벨 레샤코프 소장은 “2001년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입지는 튼튼했지만 이후 10년 동안 계속 영향력을 거의 잃어버렸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북한 대학생 10만여 명이 수업을 중단하고 10개월 가까이 평양 10만 채의 살림집 건설에 동원되고 있다는 소식이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해 전해져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이나 서방세계의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사실 북한 사람들에겐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북에선 비효율적 동원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이 된 지 벌써 수십 년째다. 》 1990년대 평양에서 김일성대를 다녔던 기자 역시 그랬고 선후배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대학생들이 아파트 건설에 총동원됐다는 소식을 접하니 대학시절 체험했던 숱한 동원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평양의 한 강하천 정비에 동원됐던 때가 떠오른다. 학년별로 석 달씩 교대로 수업을 중단하고 동원됐는데 우리 학년 100여 명은 겨울에 차출됐다. 담당 구간은 지하철에서 내려서도 한 시간 넘게 걸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우리가 가진 작업도구는 집에서 갖고 나온 정 해머 삽 곡괭이 따위가 전부였다.허허벌판에서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하루 종일 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먼저 휴식공간으로 쓸 움막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꽁꽁 언 땅에 정을 박고 교대로 해머를 휘둘러봐야 겨우 밤톨만 한 흙이 떨어져 나왔다. 갖은 고생 끝에 열흘 만에 겨우 기둥을 몇 개 세우고 수십 명이 빼곡히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움막을 만들었다.이어 강바닥에서 흙을 파내기 시작했는데, 흙 한 담가(들것)를 담는 데 네댓 명이 달라붙어 한나절씩 걸렸다. 학생간부라서 안 하고, 여자라서 봐주고 하다 보니 실제 일하는 사람은 반밖에 되지 않았다. 작업인원들도 열심히 일할 리 만무했다. 석 달 동안 일했지만 겨우 강에 가로세로가 5m가량 되고 깊이가 사람 키만 한 웅덩이를 하나 파놓았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장관급인 노동당 중앙위 교육비서가 벤츠를 타고 직접 격려하러 오기도 했다.철수 기한이 점점 다가오자 작업장 책임자로 나와 있던 교수의 얼굴엔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이유야 어떻든 당이 할당한 작업량에 턱없이 미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 대학 입학한 첫날부터 잔디밭 잡초 뽑아… ▼평양 남포 고속道 공사땐 몇달동안 등짐교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어느 날 환한 얼굴로 돌아왔다. 작업장에서 몇 km 떨어진 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던 인민무력부 공병국(건설전담부대)에서 굴착기 1대를 반나절 빌려 쓰기로 교섭했다는 것. 중장비가 매우 귀한 북한에선 성사되기 힘든 교섭이다. 조건은 디젤유 100L와 굴착기 ‘바가지(버킷)’에 담배와 술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 그것도 외제 담배여야 하며 술도 밀주가 아닌 공장술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교수는 학생들을 불러 모아 비용을 분담시켰다. 그나마 김일성대여서 잘사는 학생이 많아 집에서 돈을 가져왔다.철수하기 3일 전쯤에 드디어 군관 1명과 병사 1명이 굴착기를 몰고 나타났다. 그날 우리는 제방에 앉아 굴착기의 작업모습을 지켜보았다. 불과 다섯 시간 만에 우리가 석 달 동안 파놓은 웅덩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큰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바가지에 술과 담배 막대기를 가득 채우고 돌아가는 굴착기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극심한 허탈감을 느꼈다. 북한 최고 엘리트라고 하는 김일성대 학생 100여 명이 3개월 동안 한 일이 굴착기 반나절 작업량보다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이외에도 대학 시절 수많은 노력동원과 행사에 나가야 했다. 북한 대학생들은 매년 봄가을 합쳐서 약 두 달간 농촌동원을 나간다. 이때는 농민의 지시 아래 농작물을 손으로 심고 베고 해야 한다. 농촌동원은 농촌 학교인 경우 남한의 소학교 5학년에 해당하는 중학교 1학년경부터, 도시 학교는 중학교 4학년부터 나가는데 늙어서 직장을 은퇴할 때까지 매년 나가야 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겐 습관화된 일이다.북에선 대학생들의 노력동원을 시간낭비 인력낭비로 보지 않는다. 대학생들을 혁명가로 키우기 위한 필수 코스쯤으로 간주한다. 기자가 김일성대에 입학한 첫 3일간은 대학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아야 했다.평양시내 통일거리 아파트 공사장에 나가 폐기물을 삽으로 차에 담았던 일도 기억이 난다. 수백 명이 동원됐지만 사실 그때도 굴착기 한두 대면 충분할 일이었다. 삽질하는 것보다는 공사장까지 왕복 4시간 가까이 걸어 다니는 일이 더 힘들었다. 우리가 일했던 곳은 완공 직전의 고층아파트가 붕괴해 군인 1개 대대가 몰살당한 현장 옆이었다.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수백 명이 인해전술로 달라붙어 시멘트가 미처 굳기도 전에 층고를 올리다 붕괴되는 바람에 전원 몰살당했다. 당시 평양에 살던 사람들은 누구나 이 일을 알고 있다. 몇 년 뒤 후배들은 평양 남포 고속도로 건설장에 나가 흙 마대를 몇 달 동안 등짐으로 날랐다. 공사뿐 아니라 명절 때마다 각종 행사에 동원되는 일도 고역이었다. 일반적인 광장 행사는 훈련하는 데만 석 달 넘게 걸리며 열병식에 차출되면 반년 넘게 수업을 빠졌다. 받지 못한 반년 치 수업은 열병식이 끝난 뒤 방학하기 전에 열흘 정도 속성으로 가르친다. 말이 속성이지 그냥 교수들이 알아서 점수를 잘 준다.최근 탈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은 각종 노력동원의 고된 작업은 가난한 학생들 몫이다. 잘사는 학생들은 후방공급 또는 병가를 구실로 그 기간에 집에서 논다. 그 대신 돈을 내면 된다. 그 돈으로 가난한 학생들의 식량이나 부식물 또는 공사 자재를 대는 것이다. 돈 있는 집 자식은 놀아서 좋고 가난한 집 자식은 일을 하는 대신에 배를 곯지 않아 좋다. 현재 진행되는 평양 10만 채 건설장에서도 간부 집 자식들은 각종 핑계로 다 빠지고 가난한 학생들만 남아 대충 삽질하는 척 흉내만 내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것이다. 수백 명이 달라붙어봐야 굴착기 한 대 작업량에도 못 미치는 그런 종류의 일들이지만 중장비, 연료, 부속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없는 북한에선 그나마 인력이 가장 싸고 유일한 해결책이다. 인력마저 동원하지 않았다면 당의 방침을 집행하려는 태도가 부족하다고 여러 고위급 간부의 목이 날아갈 일이다.만일 누군가가 북한에 가서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두뇌들을 어떻게 이런 단순노동에 허무하게 허비할 수 있느냐”고 대학생들에게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마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는 것 중에 아까운 지식이 몇 %나 될까요”라든지 “배운 지식을 활용할 만한 곳을 공화국에서 제발 좀 찾아주세요”라며 씁쓸하게 대답하지 않을까.어찌됐든 때가 되면 대학졸업증은 나온다. 동년배의 약 15%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어차피 북에선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가 고려될 뿐 실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선호되는 권력기관에 들어가기 위해선 출신성분과 부모의 직위, 재산, 대학 간판이 결정적인 요소이다. 실력이나 학점은 좋은 직장에 들어갈 때에도, 들어가서도 쓸모가 없다. 건설장에 동원된 북한 대학생들의 유일한 위안은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가는 대학시계’일 뿐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중동 반체제 운동 수난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저항도시인 시리아 중부의 하마 시가 3일 정부 보안군에 끝내 점령됐다. 시리아 보안군은 100여 대의 탱크를 앞세워 지난 주말부터 하마 시에 진입해 200여 명에 이르는 시민을 학살한 후 시내 중심부 아시 광장과 인근 오론테스 광장을 3일 점령했다. 외신들은 6월 초부터 두 달간 시리아 반정부 시위의 거점이었던 아시 광장에 여러 대의 탱크가 배치돼 있다고 3일 전했다.보안군 탱크들은 시내를 향해 포사격을 한 뒤 진입했고 시내 곳곳에 저격수가 배치돼 조준사격을 하고 있으며 터지면 산산조각이 나는 폭탄(집속탄으로 추정)으로 공격했다고 시민들은 외신에 전했다.인권운동가로 자신을 소개한 오마르 하마위 씨는 AP와의 통화에서 “탱크 포격, 기관총 사격, 저격수의 조준사격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BBC방송은 “시내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으며 곳곳에 시신 더미가 널브러져 있다”고 전했다. CNN방송도 “옥상에 배치된 저격수 때문에 시신을 수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외출도 못한다”고 전했다.하마 시에선 1982년 이슬람형제단 주도의 반란이 일어났고 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인 당시 하페즈 대통령은 주민 2만여 명이 숨지는 대학살 끝에 사태를 진압했다. 하마 시는 인구 80여만 명으로 주민 대다수가 수니파 무슬림인데, 현 집권세력은 시아파다. 현재 하마 시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상태다. 보안군이 몇 달간 시내를 봉쇄하고 외신 기자들의 출입을 차단했으며 며칠 전부터는 전기와 수도, 전화선도 차단됐다. 대다수 휴대전화는 충전이 불가능해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주민들은 탈출을 시도하고 있으나 보안군의 포격과 사격으로 탈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압둘 파타 유네스 리비아 반군 최고사령관(67·사진)이 28일 총에 맞아 숨졌다.반(反)카다피 진영의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 무스타파 압둘 잘릴 위원장은 이날 반군 거점인 서부 벵가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네스 사령관과 그의 보좌관 두 명이 사살됐다고 밝혔다. 유네스 사령관은 이날 오전 그의 가족이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과 연계돼 있다는 의혹을 받고 보좌관 두 명과 함께 리비아 중부 브레가에서 NTC 보안군에 체포됐다. 이어 NTC 사법위원회에서 조사받기 위해 벵가지로 압송되던 중 괴한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군 내부자에 의한 암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 정권 2인자인 내무장관을 지냈던 유네스 사령관은 2월 카다피 정권과 결별하고 반군에 합세한 뒤 최고사령관을 지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이 여전히 카다피 측과 관계를 맺고 비밀회담을 했다는 등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동안 반군 내부에서 유네스 사령관을 둘러싼 갈등이 커져 왔다. 카다피 정권의 법무장관 출신으로 평소 유네스 사령관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잘릴 NTC 위원장이 이번 살해의 배후라는 설도 떠돌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노르웨이 연쇄테러 참사가 ‘외로운 극단주의자(lone extremist)’의 증오범죄로 드러나면서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한 테러’ 대응만 강조하다 보니 이슬람과 무관한 나라들은 테러를 남의 일처럼 생각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자생적인 극우 극단주의자의 증오범죄가 시간과 장소, 인종을 가리지 않고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7년 4월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1995년 4월 미 오클라호마 주정부 청사 폭탄테러 사건 등도 모두 증오에서 비롯된 범죄였다. 특히 이번 테러는 그 나라에서 자라난 자생적 테러범이 불특정 다수의 자국민을 겨냥해 주도면밀하게 테러를 계획했다는 점에서 오클라호마 폭탄테러와 여러모로 유사하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예측할 수 없는 ‘묻지 마 테러’의 위험성에 더욱 취약하다.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여러 이유로 불만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문제의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게 되는 것. 특히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이웃에게 소외된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사회적 박탈감과 불신불만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계획적이고 가학적인 범행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총기 소유가 합법화된 나라들일수록 대형 테러가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이러한 증오범죄를 막을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 노르웨이 연쇄테러는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생애 최초로 저지른 범행이었다. 조승희와 티머시 맥베이의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최초의 범행이기 때문에 예방하기가 어렵다.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사회가 증오를 낳을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없애거나 관리하느냐에 달렸다. 또 평소 욕구불만을 보이거나 반사회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구성원들이 소외된 이웃의 친구가 돼주기 위해 적극 노력을 한다면 증오범죄는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2일 오후 4시 50분경 우퇴위아 섬 입구에 건장한 체격의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나타났다. 오슬로 정부청사에서 자동차 폭탄테러가 발생한 지 1시간 반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경찰관 복장을 한 그는 캠프 경비 시멘 모르텐센 씨에게 경찰관 신분증을 보인 뒤 “오슬로에서 발생한 테러 때문에 보안 문제를 검사하기 위해 파견됐다”고 말했다.캠프장으로 바로 향한 그는 캠프 주변 곳곳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던 청소년들에게 손짓을 하며 “오슬로 테러 문제 때문에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모여 달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경찰관 복장에 안심한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더 가까이 밀집해 달라”고까지 말했다.잠시 후 브레이비크는 가져온 가방에서 자동소총을 꺼내 청소년들을 향해 무차별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먼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뒤쪽에 서 있던 청소년들은 비명을 지르며 숲 속으로 도망가거나 인근 건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일부는 물가로 달려가 뛰어들었다. 생존자 엘리세 양(15)은 “범인이 서 있던 바위 뒤에 숨어 있었는데 그는 ‘숨어도 소용없어. 나는 경찰이야. 어서 나와’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브레이비크는 총을 맞고 쓰러진 청소년들을 향해 확인 사살까지 했다. 목격자들은 “깜짝 놀란 사람들은 죽은 척하며 엎드려 있었지만 테러범은 총을 바꿔 쓰러진 사람들의 머리에 다시 총을 쐈다”고 말했다. 브레이비크는 침착한 모습으로 발견하는 사람마다 총을 쏘면서 물가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500m가량 떨어진 가까운 육지나 섬의 다른 쪽으로 헤엄쳐 가는 사람들을 조준 사격했다.헤엄쳐 섬을 탈출한 한 소녀는 “그는 너무나 침착했다. 기괴할 정도였다”며 “확신에 찬 태도로 천천히 섬을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보이는 족족 총을 쐈다”고 현지 방송에 말했다.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은 아드리안 프라콘 씨는 “범인이 ‘나치 영화’의 등장인물 같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섬 안에 있는 작은 학교 건물에 숨어 있던 이들은 목숨을 건졌다.참혹한 테러 와중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생존자들을 구출한 의인(義人)들이 있었다. 섬에서 약 2km 떨어진 스트로야 섬 여름 별장에 있던 카스페르 아일라우그 씨(53)는 길이 5.5m의 낚싯배를 타고 우퇴위아 섬에 들어가 해변으로 도망친 청소년들을 3번이나 육지를 오가며 구해냈다.총기 난사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난 오후 5시 25분에 언론들은 총격에 관한 보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 특별기동대(SWAT)는 헬리콥터를 구하지 못해 육로를 이용해 오후 5시 38분이나 돼서야 우퇴위아 섬으로 가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마저 구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경찰은 결국 6시 20분이 돼서야 섬에 상륙했다. 경찰이 브레이비크를 체포한 것은 희대의 1인 학살극이 벌어진 지 1시간 30여 분이 지난 오후 6시 35분이었다. 당시 헬리콥터에서 촬영된 영상은 범인이 달아나는 청소년들을 쫓아 물을 향해 발사하는 장면을 담고 있어 경찰이 30분만 일찍 도착했더라도 희생자 중 상당수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란 탄식이 터져 나왔다.오슬로·우퇴위아=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오늘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날입니다.” 19일 영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이 의원들의 추궁에 앞서 깊이 머리를 숙였다. 머독 회장이 영국에서 40년 넘게 언론을 소유해 오면서 의회 청문회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원 문화위원회는 이날 머독 회장과 그의 아들 제임스 머독 뉴스인터내셔널 회장, 레베카 브룩스 뉴스오브더월드(NoW) 전 편집장을 불러 휴대전화 메시지 해킹 사건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캐물었다. 특히 뉴스코퍼레이션 최고경영진이 기자들의 해킹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사실을 알고 은폐를 기도했는지, 유명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대가로 경찰들에게 금전을 지급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하지만 머독 부자는 해킹이 벌어진 사실에 대해선 깊은 유감을 표하지만 기자들의 해킹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머독 회장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뉴스코퍼레이션 내에서 NoW의 비중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머독 회장은 청문회가 회사에 끼칠 파장을 고려해 예상 답변을 미리 만들어 연습했다고 일간 데일리메일이 보도했다. 한편 NoW 기자들이 휴대전화 해킹을 자행하고 있다고 폭로했던 NoW의 전직 기자가 18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18일 오전 런던 북부 하트퍼드셔 웟퍼드 자택에서 숀 호어 씨(47·사진)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부검을 진행한 결과 타살 가능성은 없으며 호어 씨가 평소 알코올의존증과 과대망상 등을 겪어 왔다는 주변 인물들의 말에 따라 자살 또는 단순 변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NoW와 ‘더 선’에서 쇼비즈니스 부문 기자로 활동했던 호어 씨는 지난해 뉴욕타임스 및 BBC와의 인터뷰에서 “NoW 전직 편집장이던 앤디 쿨슨 씨가 해킹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자신을 포함한 기자들에게 해킹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고 털어놓았던 인물. 호어 씨는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2005년 회사에서 해고당한 후에도 오랫동안 병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언론인 동료들은 트위터에 “항상 술집에 앉아 기삿거리에 대해 얘기하던 영국 기자의 전형” “항상 솔직해지려고 노력했으며 약물 중독을 극복하려 했다”는 글을 올리며 그를 추모했다. 하원 내무위원회는 이날 별도로 폴 스티븐슨 전 경찰청장과 존 예이츠 치안감을 출석시켜 신문사 간부들과의 관계를 물었다. 이들 경찰 수뇌부는 NoW의 간부를 지낸 닐 윌리스를 경찰 홍보 자문관으로 채용하고 신문사 고위 인사들과 자주 만나는 등 유착 의혹이 제기돼 모두 사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 중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일 열리는 하원 청문회를 준비하기 위해 당초 일정을 앞당겨 귀국하기로 했다.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호텔 여종업원 성폭행 혐의로 재판 중인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62·사진)가 사건 전날 밤부터 당일 오전 사이에 문제의 호텔 여종업원 외에도 2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17일 보도했다.보도에 따르면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부인인 안 생클레르 씨(62)의 친구는 프랑스 유력주간지 르 푸앵과의 인터뷰에서 “스트로스칸이 자신이 강제로 성폭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부인에게 온밤 ‘섹스파티’를 벌였다고 고백했다”며 이 같은 사실을 털어놨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이 같은 고백은 여종업원을 성폭행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이처럼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한 이유에 대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압감을 덜기 위해서였다고 부인에게 설명했다고 주간지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텔레그래프는 사건 당일인 5월 14일 오전 1시경 한 여성이 스트로스칸 전 총재와 함께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2시간 뒤 나오는 모습이 호텔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고 보도했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이날 정오경 청소하러 온 호텔 여종업원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 신문은 스트로스칸 전 총재가 하루 전인 13일 호텔 안내데스크에 있던 여직원을 포함해 최소한 2명의 호텔 직원에게 ‘방에 가서 한잔하자’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전했다.생클레르 씨의 친구는 “스트로스칸은 20년 전 생클레르와의 결혼식 전날 밤 그녀에게 ‘나는 구제불능의 바람둥이니 나와 결혼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에 생클레르 씨는 “난 당신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는 결혼 후 다른 여성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부인에게 발각될 때마다 “그러게 내가 이미 경고했잖소”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생클레르 씨의 친구는 “나는 스트로스칸이 성폭행했다고 절대 생각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든 여성을 유혹하는 스타일이지 절대로 폭력으로 해결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에 대한 공판은 다음 달 1일 열린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군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적대세력을 색출하기 위해 현지인 수백만 명의 생체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 미군이 아프간인 150만여 명과 이라크인 약 220만 명의 생체정보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전투원이 될 수 있는 15∼64세의 남성 인구를 감안할 때 아프간에서 6명 중 1명, 이라크에선 4명 중 1명의 생체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억류자와 재소자뿐 아니라 공무원이나 군인, 경찰, 미군 시설에 지원하는 현지인들이 모두 생체정보 기록 및 조사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미군은 국가 신분증을 위조하는 암시장이 성행하는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생체정보는 범죄자 색출에 큰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 4월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의 한 교도소에서 탈레반 재소자 475명이 320m의 지하터널을 파고 탈출했을 때 아프간 경찰은 미군이 갖고 있는 생체정보를 이용해 탈출 당일에만 국경 검문소에서 35명을 체포했다. 디지털화된 생체정보는 작은 휴대용 소형기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다. 미 국방부는 2015년까지 생체정보 프로그램 개발에 35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한편 미국은 생체정보 활용기술을 미국 내에서도 활용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사법당국은 스마트폰에 부착 가능한 생체인식 기기를 9월부터 경찰에 지급해 범죄용의자 단속과 테러 예방에 활용할 계획이다. 1.5m 떨어진 사람의 얼굴을 찍은 사진이나 15cm 거리에서 스캔한 홍채를 이 기기에 입력하면 저장된 범죄기록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범죄 용의자 여부를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얼굴과 홍채를 스캔하는 것은 영장이 필요한 ‘수색’에 해당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일본 연구팀이 쥐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완전한 치아를 만들어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12일 보도했다. 일본 도쿄이과대 쓰지 다카시 박사팀은 쥐의 어금니에서 추출한 두 종류의 치아생성 줄기세포를 화학물질과 비타민 혼합액에 배양해 5일 만에 아주 작은 ‘치아의 싹’을 얻어냈다. 이 치아의 싹을 치열 모형의 플라스틱 상자에 심어 그 쥐의 신장 피막에 이식했더니 두 달 뒤 사기질, 치관, 치근, 신경섬유 등을 갖춘 완전한 치아로 자랐다. 연구팀은 이 치아를 다른 쥐의 아래턱뼈에 이식한 결과 치아들은 40일 뒤 턱뼈와 완전히 융합됐다고 밝혔다. 이식된 치아는 음식을 씹는 데 아무 지장이 없고 신경과 혈관까지 생겨나 자극이 뇌로 전달되는 등 완벽한 자연치아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가 하얗지 않고 약간 누런색을 띠는 것은 단점이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아생성은 임플란트나 의치를 대신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이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기술적 문제들이 남아 있다. 이미 성장기가 지난 어른의 경우 쥐와는 달리 치아의 싹을 만들 수 있는 치아생성 줄기세포가 없을 뿐더러 치아를 신장에 이식해 성장시키는 방법도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다른 줄기세포를 변형해 싹을 만들어 내거나 체외에서 치아를 기르는 방법이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연구되고 있어 10년 뒤에는 사람의 치아를 길러내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전망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9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1957년 독립 이후 54년간 집권하고 있는 국민전선(BN)의 장기 통치에 금이 가고 있다. 이날 선거법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베리시(청결) 2.0’의 주도로 5만 명(경찰 추산 1만 명)의 시민들이 시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를 벌여 도심이 혼란에 빠졌다. 그동안 말레이시아에서는 도심을 마비시킬 규모의 대규모 집회는 거의 일어난 적이 없다. 이번 시위 사태가 아프리카와 중동에 불고 있는 재스민혁명 열풍의 동남아시아 상륙 신호탄이 될지 주목되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원천 봉쇄하고 1667명을 체포하는 등 강경진압을 했지만 게릴라식 집회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퍼부은 최루탄과 물대포, 헬기를 동원한 물폭탄으로 1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시위를 주도했던 야당 지도자 완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도 부상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모나시대 제임스 친 교수는 “경찰이 쿠알라룸푸르 중심가를 봉쇄한 것은 1969년 인종폭동 이래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밝힌 체포자 명단에는 베리시 2.0 지도자들인 암비가 스리니 바산 의장과 마리아 친 압둘라 시민운동가, 야당인 PAS의 압둘 하디 아왕 대표도 포함돼 있다. 베리시 2.0은 성명을 통해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을 비난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국민이 정부의 방해와 탄압을 극복하고 시위에 참가해 국가와 정의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야권과 6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베리시 2.0은 “말레이국민기구(UMNO)를 주축으로 한 14개 정당연합인 국민전선(BN)이 불공정 선거제도를 이용해 50여 년간 장기 집권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리시 2.0은 투표자를 식별할 수 있는 지워지지 않는 잉크 사용, 매표행위 방지, 선거운동 기간 연장 등 선거법 관련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9일을 대규모 시위의 날로 정한 이 단체는 당초 경기장 집회는 허용할 수 있다는 정부 측 제안을 받아들여 쿠알라룸푸르 메르데카 경기장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정부가 지방 경기장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자 도심 집회를 강행했다. 시위대는 노란색 셔츠를 입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말레이시아에서는 2007년에도 조기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여당이 1969년 이후 처음으로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바 있다. 당시 시위에는 2만 명이 참가해 이번 시위보다 규모가 작았다. 말레이시아의 다음 총선은 2013년으로 예상돼 있지만 전문가들은 나집 라작 총리가 50% 이상의 지지율과 최근 10년래 최고를 기록한 2010년 경제 실적을 내세워 조기 총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금껏 총리가 자신에게 유리한 때를 선택해 총선 시기를 개인적으로 결정해왔다. 집권 여당은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말레이족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독립 후 10여 차례의 선거에서 계속 승리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남수단은 유엔의 193번째 회원국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남수단이 세계 193번째 국가는 아니다. 바티칸시티나 코소보처럼 사실상 독립국이지만 유엔 회원국이 아닌 국가도 있기 때문이다. 대만처럼 사실상 독립국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나라도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에는 208개 회원국이 소속돼 있다. 영국처럼 하나의 국가에서 4개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이 나뉘어 가입돼 있는가 하면 팔레스타인, 푸에르토리코, 버뮤다처럼 독립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법적 지위가 자치령인 나라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비독립국까지 포함해 세계은행 통계는 229개, 세계지도정보는 237개국을 포함하고 있으며 일부 국제법은 242개국까지 인정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