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에 인권운동 여성3인]노벨 평화상 女權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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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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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운동 앞장서온 아프리카-중동 여걸 3인 공동수상

2000년대 초반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는 여성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면적 11만 km²의 이 작은 나라는 서로 죽이고 또 죽이는 오랜 내전으로 인구 300만 명 중 3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런 와중에 전체 여성의 75%가 성폭행을 당했으며 실업률은 85%에 육박했다. 사람들은 외국으로 탈출하기에 급급했다.

2003년 그런 암흑 속에서 한 여성이 분연히 일어섰다.

“여성들이여,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남자들과의 잠자리를 거부하자.” 이른바 라이베리아 ‘섹스파업’의 시작이었다. 섹스파업을 호소한 라이베리아 평화운동가 리머 보위 씨(39)는 장기 집권 중이던 찰스 테일러 당시 대통령을 직접 만나 가나에서 열리는 평화회담에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평화회담은 테일러 대통령의 사임과 민주선거로 이어졌다. 보위 씨의 노력으로 이뤄진 2005년 대선에서 라이베리아는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다. 라이베리아에 민주화를 정착시키고 연평균 6%가 넘는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는 엘런 존슨설리프 대통령(72)이다.  
▼ “성폭력-정치차별 방관말라”… 재스민혁명 지지도 ▼

존슨설리프 대통령은 두 번의 투옥과 두 번의 해외 망명 등 고초를 겪으면서도 조국의 민주화와 여성인권 향상에의 꿈을 버리지 않은 의지의 여성이다. 여성인권 불모의 땅 라이베리아에서 고통 받는 여성의 마음에 희망과 용기의 싹을 틔워준 이 두 여성, 그리고 ‘재스민혁명’의 격류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싸우고 있는 예멘의 여성 언론인이자 인권운동가인 타우왁쿨 카르만 씨(32) 등 3명이 올해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 “여성인권 탄압 방관 말자” 메시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7일 오슬로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이들 아프리카 및 중동의 여성운동가 3인을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 “평화 구축 활동에 헌신하면서 여성들의 안전 및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비폭력적으로 투쟁했다”고 밝혔다.

올해 노벨 평화상의 메시지는 매우 명료하다. 지구촌이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지역 여성들이 감내하고 있는 열악한 인권 상황을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사회 모든 계층의 여성이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와 세계의 지속적인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토르비에른 야글란 전 노르웨이 총리는 “이번 평화상 수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아프리카와 이슬람권 여성들의 영향력 확대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아프리카 및 무슬림권에서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여성의 역할에 관심이 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뒤집어 보면 아프리카 여성의 인권이 더는 방치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아프리카는 군인보다 여성이 더 위험한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난을 비롯한 성적 학대, 폭력, 질병 등에 여성들이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성폭력 문제는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특히 심각해 2002년 통계에 따르면 소녀 4명 중 1명이 16세 이전에 성폭행을 당했다. 2004년 통계에서는 에이즈에 걸린 15∼24세 아프리카 사람 중 4분의 3이 여성이었다.

조혼과 성기의 일부를 자르는 할례의식도 여전히 전통처럼 남아 있다. 유엔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여성 중 25.3%가 15세 전에 결혼한다. 특히 서북부 암하라 지역의 경우 이 비율이 52.4%에 달해 세계에서 조혼 비율이 가장 높다.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은 2000년 이후 속속 여성의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사우디는 현재까지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치 않고 있다.

○ 재스민 혁명에 대한 간접적 시상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자 후보에는 약 250명이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이집트 시민혁명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던 전 구글 간부 와엘 고님 씨,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청년단체인 ‘4·6 청년운동’, 튀니지의 유명 블로거 리나 벤 멤니 씨 등이 자주 거론됐다. 그러나 노벨위원회는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카르만 씨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아랍의 봄 혁명을 아우르는 지도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 시위를 촉구했던 수많은 블로거 중에서 찾기란 더욱 힘들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아직 이집트 튀니지 예멘 시리아 등의 정권교체가 미완으로 남은 상태에서 만약 아랍의 봄에 단독으로 상을 수여했을 경우 불확실성과 논란의 소지가 너무 크다는 점을 고려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예멘 민주화 시위의 촉발제 역할을 한 카르만 씨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함으로써 노벨위원회는 여성운동에 상을 주는 동시에 중동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노벨 평화상의 공적으로 간접 인정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카르만 씨는 아랍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혔던 고님 씨는 “카르만의 수상을 축하한다. 그녀는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축하를 보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각국의 여성운동은 노벨 평화상이라는 빛나는 영예를 안고 활동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한 ‘여성 인권의 불모지’ 아프리카가 가장 주목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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