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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300여 명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를 2일 촉구했다.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와 이시영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드 장비를 미국으로 돌려보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작가들’ 명의의 성명에서 “사드가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지만 그 효용성이 검증된 바도 없고 실제 상황에서 무용할 것”이라며 “사드가 지키는 건 지배자의 평화”라고 주장했다. 김종철 문학평론가, 정우영 김해자 황규관 박성우 시인, 백가흠 소설가 등이 대표 발의했으며 문인 353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또 북한에 대해서도 “한반도 비핵화 대의에 복귀하라”고 촉구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남북 학술교류가 정치·군사 상황에 관계없이 진전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공동위원장인 안병우 한신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학술대회 ‘남북한 민간 및 학술 교류의 현황과 미래 지향적 전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역사연구회와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등이 공동 주최한 이날 대회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안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 등을 이유로 남북 학술교류가 전반적으로 축소됐고, 지난해 4차 핵실험 뒤에는 모든 교류와 협력 사업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대표적 학술 교류 사례인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2015년 12월 중국 다롄에서 회의를 연 것이 남북 학자들의 마지막 공동 회의였다. 2007년 시작된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조사 사업도 일곱 차례 공동 발굴을 했지만 2015년 11월 사업단이 철수해 중단된 상태다. 안 교수는 학술 교류의 목표를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국한하지 말고 평화 정착의 수단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중국의 북한 지원 때문에 양국과 학술 교류를 중단하지 않는 것처럼 남북 학술 교류도 계속돼야 한다”며 “적극적인 교류협력의 의지를 담은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그들은 지쳐 있었고 가난하고 더러웠지만 패배하지는 않았다. 상인, 재봉사, 랍비와 성가대 선창자의 자식들이었으며 독일군에게 빼앗은 무기로 무장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이라면 보통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연기를 떠올리지만 ‘지금이 아니면…’은 독일군과 싸웠던 러시아와 폴란드계 유대인들의 빨치산 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수동적 희생자가 아니라 거악과 맞서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책에서는 마치 유격대원들과 함께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대원들의 고뇌도 그대로 드러난다. 주인공 ‘멘델’은 독일군에게 아내를 잃고 참상을 겪은 뒤 유대인의 신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그날 이후 난 사람을 죽이는 게 나쁜 일이지만 독일군은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내가 독일인을 한 명 죽여야만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른 독일인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어.” 반면 또 다른 낙오병 레오니드는 말한다. “차라리 독일인들 공장에 일하러 갈 거라고.…더 이상은 총을 쏘지 않을 거야.…당신도 나하고 똑같은 거 원하잖아. 집, 침대, 의미 있는 삶, 가족, 당신 고향 같은 마을.” 유격대 안에서도 유대인은 처지가 달랐다. 러시아인은 전쟁에서 이기면 돌아갈 집이 있었지만 유대인은 대학살로 마을이 사라지거나 잿더미가 돼 돌아갈 곳이 없었다. 멘델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격대 합류를 거절당하기도 한다. 대원들의 인간적인 한계도 가감 없이 묘사된다. 유격대장 울리빈은 작은 성공에 도취돼 대원을 잃거나 경험이 없는 대원에게 지뢰를 옮기라는 무모한 명령을 내린다. 열일곱 살 난 대원이 집에 갔다가 늦게 돌아오자 총살하기도 한다. 우리 빨치산 문학이 유격대를 다소 이상화하거나 영웅적인 모습 위주로 그린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의 작품이 분단 상황에서 억눌렸던 역사 속 패배자들의 기억을 되살린 것인 데 비해 이들은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이겼다는 차이도 아마 한 이유일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저자(1919∼1987)는 실제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가 살아남았고,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그린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현대 증언 문학의 대표적 작가다. ‘지금이 아니면…’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1982년 발표했다. 영역본을 저본으로 중역한 것이 한국에도 출간됐었지만 이번 번역본은 이탈리아어 원본을 저본으로 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난 인간의 여러 면모를 군더더기 없고 힘 있는 문장으로 깊이 파고든 걸작이다. 등장인물은 오늘날 주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다. 함께 발간된 ‘릴리트’는 저자의 아주 짧은 단편소설 36편이 담겼다. 표제작은 구전 유대신화 속 인물로 하와 이전에 창조된 인류 최초의 여성이지만 신의 저주로 끝없이 변신하며 사는 악마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집에는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다룬 작품뿐 아니라 환상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 미래 세계에 관한 소설들이 묶였다. 인간 본성의 양면성에 관한 통찰이 곳곳에서 번득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단원 수는 작년(1923년) 4월 초부터 그해 7월 말까지 조직된 것이 3만 명에 가까웠는데, 그 후 금년 2월 말까지 다시 2만 명의 단원이 증가되었다는 비밀 보고를 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의 아들 최동희(1890∼1927)가 1924년 4월 13일 러시아의 조선전권위원인 이델슨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최동희가 국내 천도교 비밀결사를 기반으로 소련에서 독립군 양성을 시도하며 소련 당국의 협조를 요청한 자료를 27일 공개했다. 최동희는 편지에서 천도교가 약 10만 명 규모의 비밀결사를 은밀히 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동희는 또 1924년 8월 25일 소련 외교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15개 여단 규모의 ‘고려국민혁명군’을 결성할 계획을 세우고 지원을 요청했다. 편지는 ‘고려 국민 혁명군’에게 총포, 폭발물, 탄환, 기병장비, 운반 용품, 군수품을 충분히 공급할 것, 혁명군의 근거지는 러시아 남동부 치타 부근 금광으로 할 것 등을 요청하고 있다. 최동희는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망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국편은 “이서행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이 기증한 자료”라며 “3·1운동 뒤 조직적 항일운동이 상당한 규모로 준비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작가가 쓰면서 재미있어야 작품도 재미있게 나오거든요. 이 소설은 제가 지금까지 쓴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을 겁니다.” 소설가 김주영 씨(78)가 ‘객주’(전 10권) 완간 이후 4년 만에 첫 장편 ‘뜻밖의 生(생)’(문학동네)을 출간했다.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내가 내 작품 갖고 말을 잘 안 한다”면서도 너스레를 떨었다. 소설은 천진한 소년이 파란만장한 삶 끝에 지혜로운 노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소년 박호구는 도박판에 목숨을 거는 ‘타짜’ 아버지와 무당을 신봉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자란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그는 노숙하며 지내다 곡예단에 들어가게 되고, 뜻하지 않게 딸을 얻고 행복을 느끼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작품에는 등단 47년이 된 작가의 통찰이 담겼다. 김 씨는 “주인공은 때리면 맞고, 밀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은 고귀한 이”라며 “‘(작은) 여울물이 흘러도 산그늘의 흔적은 남는다’는 긍정적인 철학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우리 나이로 여든 살을 목전에 둔 작가는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나이를 실감했다고 했다. “한참 열정이 쏟아져 나올 때는 단편 하나를 하룻밤에 쓰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1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작품이 마지막 장편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제가 쌍소리에도 능숙하고 정사(情事) 장면을 쓰는 데도 소질이 있거든요(웃음). 이번 작품도 하층민들의 이야기니 쌍소리도 많이 담고 아주 질퍽하게 쓰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망설여지더군요. 이 나이에 이런 것을 쓰면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요.” 작가는 5년 전부터는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어젯밤에도 잠을 못 이루다 TV에서 우연히 옛날 영화에서 활약했던 배우가 (나이 들어) 출연한 ‘스파이 게임’(2001년 영화로 로버트 레드퍼드가 주연으로 출연했다)을 봤습니다. 주인공이 옛날에는 굉장히 핸섬했는데 참 실망했어요. 사람이 늙으면 우선 나처럼 볼살이 밑으로 처집니다. 머리숱도 적어지고요. ‘그런 모습으로 이 사람이 아직도 총질을 하고 있구나, 저게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씨는 “그럼에도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며 10여 년 전 러시아 답사의 기억을 떠올렸다. “황제와 영웅의 웅장한 동상들이 있는 모스크바 붉은광장 한쪽 구석에 조그만 동상이 있습니다. 다른 동상 앞에는 다 조화(造花)가 있는데 그 동상 앞에는 생화가 놓여 있어요. 농부들이 시인 푸시킨의 동상 앞에 갖다 놓은 것이랍니다.” 김 씨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러시아 촌부들도 모두 암송한다”면서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 추위에 떠는 사람, 그래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30년대 동아일보가 벌인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의 문학적 대표작인 심훈(1901∼1936)의 ‘상록수’ 1회가 실린 신문 지면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도서관은 6월 18일까지 ‘매일 읽는 즐거움―독자가 열광한 신문소설’ 전시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1층에서 연다. ‘상록수’는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공모전에 당선돼 1935년 9월 10일부터 이듬해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됐다. 삽화는 청전 이상범 화백(1897∼1972)이 그렸다. 이 신문 지면은 국립중앙도서관 귀중본 서고에 보관된 것으로, 보존에 끼칠 영향을 고려해 28일까지는 당대 발행된 실제 지면이 전시되지만 이후에는 복사본이 전시된다. ‘혈의 누’(이인직·1906년) ‘무정’(이광수·1917년) ‘자유부인’(정비석·1954년) 등 근대 주요 소설의 상당수가 신문에서 탄생했다. 신문 연재로 인기를 모았던 최인호 소설가(1945∼2013)는 “신문은 작가들의 호흡을 길고 강한 체질로 만들어주는 하드 트레이닝의 무대이며, 무명의 가수들을 화려한 프리마돈나로 데뷔시키는 카네기홀”이라고 쓰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이 같은 신문소설 110여 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됐다. 신문소설에 들어간 삽화, 신문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등도 소개되며 관람객의 체험 활동도 마련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대선 공약으로 미세먼지 대책이 나오는 등 한국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요즘이다. 서구권에서는 환경운동의 역사가 깊다. 47년 전인 1970년 4월 22일 미국 전역에서 자원 낭비와 자연 파괴에 항의가 벌어진 것을 계기로 지구의 날이 제정됐고, 유럽 의회는 1970년을 ‘유럽 자연보전의 해’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인간과 자연이 상호 작용한 역사를 연구하는 ‘환경사(環境史)’도 발전해 왔다. 22일 한국생태환경사학회 참석차 방한한 독일 출신의 중견 환경사학자 프랑크 외쾨터 영국 버밍엄대 교수(47)를 19일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공해 물질은 국경을 모릅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 발생한 미세먼지도 한국인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하자 외쾨터 교수는 “유럽도 1970, 80년대 이산화황 문제가 국제 이슈로 떠올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산화황은 주로 석탄, 석유에 포함된 황화합물이 연소할 때 생긴다. 말하자면 영국의 공장이나 화력발전소에서 생긴 이산화황이 스웨덴에 산성비를 내리게 만든 것이다. 그는 유럽은 각국 시민들의 오랜 시위와 협력을 통해 이산화황 규제에 관한 국가 간 협정을 이끌어 냈다고 했다. “처음부터 문제 해결의 정교한 청사진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약한 수준의 협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협상은 가속됐습니다. 한국도 차근차근 시도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만 그는 역사적으로 이처럼 환경에 관한 초국가적 규제가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외쾨터 교수는 유럽의 대표적 환경사학자인 요아힘 라트카우의 제자로 독일 유수의 대학에서 환경학 교재로 쓰이는 ‘19∼21세기 환경사’를 비롯해 환경사 관련 저서 10여 권을 낸 중견 학자다. 단일 작물 재배(monoculture)가 토양에 미친 영향 등이 주요 연구 주제다. 그는 “많은 전근대 사회는 오늘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자원)의 한계와 불안정성에 대해 많이 느꼈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쾨터 교수의 스승인 라트카우는 저서 ‘자연과 권력’에서 “환경사는 너무 도덕적이 돼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죄의 고백이 돼서도 안 될 것”이라며 환경운동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환경사 연구와는 거리를 뒀다. 외쾨터 교수도 “환경사는 진보와 인간의 (자연) 지배에 대한 신화를 해체하려는 학문”이라며 “환경운동과 관심 분야가 비슷하지만 학자들은 정치적 주장을 마냥 받아들이지는 않는다(never fraternize with a political cause)”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서구의 환경사학계는 비서구의 문제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서구에서는 환경오염을 특정 기술이나 법의 필요성에 관한 문제로만 얘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남반구에서 이 문제는 차별과 소외라는 커다란 문제의 한 측면입니다.” 먼저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룬 북반구 국가들(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접근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환경 문제가 사회경제적 불만과 결합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환경사는 최근에야 태동하고 있다. 2010년 세계환경사대회가 한국에서 열렸고, 2015년 한국생태환경사학회가 만들어졌다. “인간이 환경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이상 우리가 이 주제의 역사 연구에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무관심했는지 의문입니다. 지구적 환경사는 ‘여러 방이 있는 집 한 채’와 같습니다. (환경사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합류하세요(Join the global trend)!”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삶의 가장 큰 목적은 ‘나눔’에 있어요. 연주자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죠.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나누어 주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어떻게 본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거울을 들여다보고 외쳐요. ‘잘생겼다!’(웃음) 그리곤 피아노 앞에 앉아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내가 피아노로부터 무엇을 끌어낼 수 있을까, 또 이것들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항상 질문하는 거죠. 피아노를 치는 이유가 곧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음악과 삶을 떼어놓지 마세요. 먼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더 나은 음악가가 될 수 있고, 비로소 남에게 아름다움을 나눠줄 수 있으니까요.” 오늘, 4월 24일은 미국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시모어(세이모어) 번스타인이 90세를 맞는 생일입니다. 1927년 태어났지요. 위의 말은 번스타인이 지난해 방한 당시 마스터 클래스(저명 음악가가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한 것으로 ‘월간 객석’이 보도한 것입니다. 번스타인은 최근 영화배우 에단 호크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번스타인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꼭 66년 전인 1951년 4월 24일, 그러니까 자신의 24세 생일에 인천에 도착합니다. 왜냐고요? 6·25전쟁에서 싸웠거든요.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케네스 고든과 함께 100회가 넘는 클래식 공연으로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병들을 위로했습니다. 지난해 6월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다시 방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홍보영상을 볼까요? 번스타인과 한국의 인연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1960년 4.19 혁명 당시에도 한국에 있었습니다. 지난해 6월 14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인터뷰를 볼까요? “저 스스로 ‘나와 한국의 인연은 정말 특별하다’고 느낍니다. 1960년 방한했을 때 4·19혁명이 터져 모든 공연이 취소됐어요. 저와 같이 공연하기로 했던 월터 매카너기 당시 주한 미국대사(클라리넷 담당)에게 ‘나를 데모하다가 부상당한 학생들이 있는 병실로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고 병원에서 그들을위해 연주했습니다. 우리(미국 시민)는 민주주의를 위해 항거하는 당신(학생)들의 편임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거든요.” 기자는 사실 클래식 음악에는 문외한입니다. 번스타인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지난 1월 18일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신춘문예 시상식에서였습니다. 은희경 소설가가 번스타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의 한 부분을 인용해서 당선자들을 위한 격려사를 해 주셨거든요. 사실 은희경 소설가는 격려사를 맡는 것을 거의 마지막까지 고사하셨는데, 기자가 청탁을 되풀이하자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헌데 일단 맡으시니, 구구절절 가슴을 울리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미세먼지도 어느 정도 가시고 모처럼 봄 같은 봄날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일 신춘문예 시상식 행사장에서 은희경 소설가의 격려사를 노트북으로 받아 적은 것은 기자밖에 없었기에 늦었지만 ‘은희경 소설가의 생애 첫 신문춘예 격려사’를 올려봅니다. 도전과 새로운 일의 시작을 꿈꾸고 있는 이들이 각오를 다지게 해 줄 겁니다. 봄은 해마다 새 봄이네요.◇은희경 소설가의 격려사―2017년 1월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안녕하세요. 1995년 신춘문예 당선자 은희경입니다. 정말 22년이나 지났네요. 지금 옆에 계신 오정희 선생님과 잠깐 말씀 나눴는데, 선생님은 신춘문예 당선 시기의 기억이 별로 없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선생님은 대학교 2학년 때 20대 초반에 그 때부터 문재를 빛내시고 일찍부터 시작하셨기 때문에 그러셨으려나요’하고 말씀드렸어요. 저는 35살에 작가가 돼서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서대문에 있는 (동아일보) 사옥에서 (시상)식이 있었고요, 소프라노가 와서 ‘꽃구름 속에’라는 노래를 불러주고…. 아까 수상자들 소감에도 있었지만, 정말 글로만 뵙던 선생님들이 제 시상에 박수를 쳐 주시고, 너무나 꿈만 같은 순간이었어요. 근데 가끔 그 때를 떠올리면 그 노래가 ‘꽃구름 속에’여야 했을까, ‘웰컴 투 정글’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물론 지금 받는 축하만큼이나 여러분이 앞으로 시작해야 할 시간 속에 너무나 많은 고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잘 썼는데, 왜 사람들이 못 알아보지 하는 고민도 있고, 이렇게 재미있고 중요한 글을 독자들은 왜 읽지 않는 거지 하는 고민도 있고, 평론가들은 또 내가 호랑이를 그렸는데 사자를 잘 그렸다거나 혹은 기린을 그리다 실패했다거나 이런 말을 하지, 이런 고민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나에게 재능이 있는 것일까, 작가로서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많은 순간 그런 고민에 시달려 왔고요. 작가가 된지 22년이 됐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두렵지요. 예전에 박완서 선생님 인터뷰를 보니까, 선생님도 그러셨다고 해요.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처음 하는 일이고, 그렇게 때문에 굉장히 두렵지만 그래서, 그래서… 계속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것이 문학의 매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제가 최근에 새해 결심으로 ‘지금까지 내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안 읽은 책들을 좀 읽자’ 이런 결심을 해서 첫 번째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마감을 앞두고 있는데, 역시 두려운 마음에 서사 연구를 새로 하겠다는 핑계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지금 모두가 이미 다 밝혀진 이야기를, 1800년대 쓰인 소설이니까 좀 너무 낡은 얘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중간 지나면서 굉장히 빨려 들어서 읽게 됐어요. 특히 안나가 특히 브론스키를 만나고 와서 기차에서 마중 나온 남편을 보는 순간에, 다른 남자를 알게 된 뒤에 자기 남편을 보니까 ‘저 사람이 저렇게 귀가 못생겼나’ 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 시대가 어떻든 간에, 1800년대 쓰인 소설이지만, 귀족으로 살아온 아저씨지만 톨스토이라는 사람이 작가일 때는 좀 다른 모습으로 인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제가 축사를 끝까지 사양했는데 그래도 한번 시키면 열심히 해서, 저도 그 중에서 몇 구절을 찍어왔습니다. 짧은 글이니까 읽어드릴게요. 이것은 여러분, 새로 작가로서 출발하는 분들을 톨스토이가 딱 통찰한 그런 글 같아요. 결혼을 곁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결혼한 사람의 그런 심정인데, 그냥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다가 실제로 작가가 된 여러분의 마음하고 공감이 될 것 같아서 짧은 글이니까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이 생활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매순간 그는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끄러져가는 작은 배의 매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람이, 자기가 그 작은 배에 탔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가만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서 갈 것인지를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발밑에는 물이 있고, 그 위를 노 저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것이 몹시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 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썩 즐겁기는 해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게 여러분 심정하고 같은가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면허증을 갖게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작가가 돼서 가장 좋은 게 이렇게 아름다운 배의 흐름을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배를 몰아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내 인생을 뭔가 나 주도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제가 작가가 된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최근에 영화에서 한 장면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는데, 세이모어(시모어)라는 피아니스트의 전기 영화였는데요. 거기서 ‘예술이란 재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자기 노력으로 되는 것’이라는 말은, 너무 단순한 것 같지만 20년도 더 된 소설가에게, 그리고 신춘문예 당선된 지 20년 된 소설가에게 그것은 너무나 항상 새로운 깨달음입니다. 방법이 있다는 게 다행이지 않은가요? 거기서는 피아니스트들에게 죽어라고 연습하라고 말하는데 작가에게 피아니스트의 훈련과 연습은 무조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쓸 때 행복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의 끝 장면에서 그런 게 나와요. ‘음악을 통해서, 예술을 통해서 내 손이 하늘을 만질 수 있다니’ 하고 환희에 젖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표정을 자주 짓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진짜 축하드립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탄생 100주년을 맞는 시인 윤동주(1917∼1945·사진)에게 독자들이 많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별’과 ‘부끄러움’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가 최근 ‘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단어나 이미지’를 설문조사(인터넷 이용자 1086명 대상)한 결과 312명이 ‘별’을 꼽았고, ‘부끄러움’(249명) ‘성찰’(7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교보빌딩에서 열리는 ‘2017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다. 대산문화재단은 27, 28일 ‘2017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연다. 2001년부터 열린 이 문학제의 올해 주제는 ‘시대의 폭력과 문학인의 길’이다. 윤동주뿐 아니라 ‘통일시인’으로 불린 시인 이기형(1917∼2013) 등 1917년에 태어난 작가들의 삶과 문학 세계를 되짚어볼 예정이다. 6·25전쟁 때 월북했다가 폭격으로 숨진 시인 최석두(1917∼1951), 모더니스트 시인 조향(1917∼1984), 한글 보급 운동에 헌신한 시조시인 박병순(1917∼2008), 여성 수난이라는 주제를 심화시킨 손소희(1917∼1986) 등이 조명된다. 27일 심포지엄에서 작가론이 발표되고, 28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문학의 밤 행사가 열린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정치사상 면에서 오늘날의 유교는 ‘잊힌 동네북’에 가깝다. 일제강점기 유교의 문약함이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유교 망국론’이 일었고, 1980년대 ‘유교 자본주의론’이 나왔지만 1997년 동아시아의 외환위기 이후에는 다시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유교는 전근대 사상으로 극복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유교인들이 해방정국의 건국 운동부터 1960년대 민주화운동까지 면면히 큰 역할을 수행했음을 논증한 책 ‘군자들의 행진’(아카넷·사진)이 최근 발간됐다. 21일 만난 저자 이황직 숙명여대 기초교양대 교수(48)는 “유교는 기독교나 사회주의 계열 못지않게 근현대 정치운동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망각됐다”고 말했다. 유교 정치운동에 대한 이해는 연구자들도 구한말의 위정척사운동과 항일 의병, ‘파리 장서운동’(1919년 유림이 파리강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을 청원한 운동)에서 멈추는 게 보통이다. 책은 이후의 과정을 추적해 나간다. 1947년 미 군정에 반대하며 임정 쿠데타를 시도한 ‘한국혁명위원회’ 사건의 주역이 유교계라는 점에 주목해 그 성격을 새로 밝히기도 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아나키스트 운동으로 이해됐다. 이 교수는 “참여한 인물과 단체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부위원장 위당 정인보를 비롯해 간부 전원이 유교계의 핵심 인물이고, 협력 세력에도 유교계의 참여가 현저하다”고 말했다. 해방정국에서 유교계 독립운동 세력과 아나키스트의 한 계열이 사실상 한 몸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책은 또 심산 김창숙 선생 등이 이승만 독재에 저항하며 유교계가 정권의 탄압을 받아 분열되지만 1960년 4·19혁명을 전후해 활성화돼 4·25 교수단 시위를 조직화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유교는 일제와 맞서는 과정에서 민본(民本)사상이 민주로, 대동사상이 평등으로, 폭군방벌론(인의를 버린 군주는 백성이 축출할 수 있다는 것)이 시민혁명론으로 발전했다”며 “이 모두 유학의 정명(正名)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책 제목은 청교도주의를 17세기 영국 시민혁명을 이끈 급진 정치학의 기원으로 분석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의 저서 ‘성자들의 혁명’에서 따왔다. 이 교수가 대학원생 시절인 20년 전부터 염두에 뒀던 것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박사 과정에서 정인보,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연구하며 ‘한국의 근대는 도덕적 혁신을 통해서 이뤄진 윤리적 근대’라는 결론을 냈다. 그는 유교의 ‘관계의 윤리’는 근대적 개인의 탄생을 저해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주목할 측면이 있다면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라는 말을 꺼냈다. “예컨대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문제에 대한 일종의 법가(法家)적인 접근이지요. 효과는 있겠지만 교원은 월급 받는 만큼만 가르치는 직장인으로, 사제 관계는 계약관계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게 정말 사회가 나아지는 것일까요?” 이 교수는 “시간이 걸려도 예를 갖추고, 믿음을 심고, 사람을 사랑하는 훈련이 근본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며 “유교는 다시금 현실 문제에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사회에 참여해야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기억은 역사의 본질적인 요소지만 역사 서술은 승리자의 기억이 되기 쉽다. 정치권력의 반대편에 선 이들에 관한 서술도 일상의 구조화된 권력관계에 일부러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역시 온전한 기억이 되기 어렵다. 책은 싸우고, 희생됐지만 거의 잊혀진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승만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히기 하루 전인 1960년 4월 25일 오후 마산에서는 ‘죽은 학생 책임지고 리 대통령 물러가라’라는 구호가 쓰인 플래카드를 든 할머니들의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역사는 비슷한 시간 대학교수들이 집회를 열고 시위에 가담한 것만 기억한다. 할머니 시위대의 구호가 더 명확한 정권 퇴진 요구를 내걸었음에도 그렇다. 1960년 4월 혁명이 ‘젊은 사자들의 항쟁’ 또는 뒤늦게 항쟁에 참여한 대학생과 교수단의 역할을 중심으로 기억되는 건 지식인들이 역사 서술의 재료가 되는 기록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엘리트는 기록을 많이 남기고, 당대 언론을 통해서도 주목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여성을 비롯한 주변부의 사람들은 스스로 기록을 남기기도 어렵고, 잘 기록되지도 않아 잊혀진다. 1978년 민주노조를 만들고 지키려던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이 경찰의 방관 아래 반대파 노동자들의 똥물 세례를 받은 건 상징적이다. 책은 “인간의 품위에 살인적인 타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폭력이 일어난 건 여성 노동자들이 보여준 지식에 대한 열망과 애정, 성취를 국가권력과 회사, 남성 노동자들이 인정할 수 없었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밖에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뒤 1983년 청송교도소에서 재소자의 권리를 주장하다 구타당해 사망한 박영두 씨, 1951년 겨울 경남 산청군 소정골에서 학살당한 이들의 이야기 등이 그려진다. 저자는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로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에서 방문연구원을 지냈으며 한국냉전학회 연구이사, 역사비평 등 학술지 편집위원을 지냈다. 마치 결과를 향해 단선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이해되기 쉬운 게 역사다. 책은 역사에서 다양한 갈림길과 가능성이 교차하고 경합하는 과정과 작은 개인, 집단의 선택이 맞물리며 어떤 커다란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추적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올해 10주년을 맞은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의 ‘해외 작가 레지던스 지원 사업’을 통해 쓰인 작품들의 수상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토지문화재단은 2007년부터 한국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과 재외 동포 등 해외 작가들이 토지문화관(강원 원주시 흥업면)에 두 달가량씩 머물며 창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토지문화재단은 지난해 스페인 작가 누리아 바리오스가 9∼10월 토지문화관에서 쓴 시를 토대로 만든 시집 ‘발전기 불빛’이 제7회 에르마노스 마차도 시문학상을 받았다고 최근 밝혔다. 바리오스는 장편소설 ‘병리학적 사랑’, 시집 ‘물길’ 등을 냈던 저명 작가다. 그는 토지문화재단 측에 “소설가 박경리에 관해 읽은 글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지금 내 책상에는 그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놓여 있다”고 수상 소감을 보냈다. 또 러시아 작가 드미트리 노비코프가 토지문화관에서 쓴 장편소설 ‘해양 불꽃’이 2017년 러시아 ‘국가 베스트셀러’로 선정됐다. 노비코프는 ‘신(新) 푸슈킨 상’ ‘체호프의 재능 상’ 등을 받았으며 ‘러시아연방 공훈 문화인’으로 선정된 소설가다. 토지문화재단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모두 86명의 해외 작가가 토지문화관에 머물며 작품을 썼다. 재미교포 작가인 크리스 리가 토지문화관 창작실에서 쓴 탈북자 소재 장편소설 ‘How I Became a North Korean’이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출간됐고, 싱가포르 작가 클래라 초우가 쓴 단편집 ‘Dream Storeys’도 지난해 11월 출간됐다. 토지문화관 창작실에서 머물렀던 국내 작가들의 수상 소식도 잇따랐다. 전윤호 시인은 2015년 토지문화관에서 집필한 시들이 담긴 시집 ‘천사들의 나라’(2016년)로 한국시인협회의 제12회 ‘젊은시인상’을 지난달 받았다. 지난해에만 토지문화관에서 창작된 작품 6개가 각종 문학상을 받았다. 혼불문학상 대상을 받은 박주영 작가의 ‘고요한 밤의 눈’을 비롯해 고진하 시집 ‘명랑의 눈물’(영랑시문학상), 김이정 소설 ‘유령의 시간’(대산문학상 소설부문),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동인문학상) 등이다.권오범 토지문화재단 사무국장은 “2015년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강원도, 원주시의 예산 지원이 20∼30%가량 줄어들어 창작실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문화행사처럼 성과가 바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창작 지원이 꾸준히 지속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지능은 뭘까? 지능지수(IQ)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일까? 책은 생명에서 지능은 왜 생겨났고, 어떻게 진화했나, 학습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답한다. 저자는 지능을 ‘다양한 환경에서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지능은 생명체가 자기 보존과 복제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다. 지구상에 등장한 최초의 동물의 신경계는 천연 스펀지로 이용되기도 하는 해면동물과 유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해면동물은 근육세포나 신경세포가 없었다. 현존 동물 중 가장 단순한 신경계는 해파리에서 볼 수 있다. 신경세포가 신체의 여러 부위에 분산된 상태에서 주위의 근육세포를 제어한다. 척추동물은 신경세포가 등 쪽에 집중돼 끈의 모습을 하게 되고 점차 머리에 집중돼 뇌를 형성하면서 생겨났다. 이는 머리에 집중된 감각기관에서 보내오는 정보를 가까운 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체의 주인은 무엇일까? 보통 ‘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유전자다. 뇌는 유전자의 안전을 지키고 복제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임무를 부여받은 생물학적 기계다. 일종의 대리인에 불과한 셈이다. 유전자는 뇌에게 특정한 자극에 대해 동일한 행동을 일으키는 대신 뇌 스스로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적절한 행동을 선택할 권한을 부여한다. 뇌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는 학습을 해야 한다. 책은 뇌의 다양한 학습을 소개한다. 뇌는 당장 생리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환경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지식이라면 학습을 한다. 언젠가는 유전자의 자기 복제에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의 탄생이다. ‘후회’와 ‘실망’ 모두 뇌의 학습의 일환이지만 서로 다르다. 실망은 행동으로 얻게 된 결과가 과거에 같은 행동에서 얻었던 결과보다 나빴을 때 생긴다. 반면 후회는 특정한 행동에서 얻은 보상이 다른 행동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상의 보상보다 작을 경우 생긴다. 인간이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후회를 되풀이하는 건 뇌가 학습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현상의 배후에 ‘천벌’과 같은 인간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모든 것을 의인화하려는 경향이 있는, 지극히 사회적인 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고도화된 뇌’로 보는 건 편협한 시각이다. 인공지능은 뇌처럼 생명을 보존하거나 복제하려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완전히 대체하는 일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사회적 지능’이나 ‘메타인지’(인지 과정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뇌와 유사한 기능도 미래에는 인공지능의 한 부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가 스스로를 복제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제한이 필요하다. 저자는 미국 예일대 신경과학과 석좌교수로 30년 이상 신경과학을 연구하며 국제적인 저널에 9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수십 년 전부터 최신의 것까지 과학자들의 실험과 연구를 소개하며 지능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유도한다. 흥미 위주로 쓰이지 않았는데도 흥미로운, 무게감 있는 책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출판사 창비는 시 전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시요일’(사진)을 11일 출시했다. ‘시요일’은 ‘창비시선’의 시인 220여 명이 쓴 시를 포함해 현대의 대표적 시들, 동시, 청소년시 등 시 3만3000여 편이 담긴 유료 플랫폼이다. 이 앱의 ‘오늘의 시’ 기능은 매주 월∼금요일 날씨와 계절, 절기 등에 맞는 좋은 시를 골라 푸시 알림으로 추천해준다. ‘테마별 추천 시’는 이별, 외로움, 봄날, 성찰 등 감정 상태와 상황에 맞는 시를 골라준다. 염종선 창비 이사는 “매체 환경의 변화로 시의 입지가 위협을 받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독자들이 스마트 기기로 시를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시요일’에는 시인의 시 낭송, 책 그림 음악 영화 여행 등에 관한 젊은 필자들의 글도 담겼다. 영어권의 시 앱들이 나와 있지만 감정 상태 상황에 맞는 큐레이션을 통해 시를 추천하는 앱은 세계적으로 처음일 것이라고 창비 측은 설명했다. 다른 출판사가 낸 시집에도 문호를 개방할 방침이다. 김사인 시인은 “시가 모바일이라는 신대륙에 상륙한 것과 같다”라며 “종이 위에서 행과 연이라는 형식을 가졌던 시가 새롭게 변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6일 세월호 참사 3주년을 앞두고 희생자 중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한윤지 씨(판응옥타인)와 유족을 소재로 한 중편소설 ‘세월’(아시아)이 출간됐다. 저자인 방현석 소설가(56·사진)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슬픔마저도 차별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작품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은 베트남전쟁에서 싸웠던 어부 쩌우의 딸 린이 한국인에게 시집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쩌우는 린의 결혼이 못마땅했지만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과 사위의 믿음직한 행동에 마음이 바뀐다. 그러나 감귤 농장을 운영하러 제주도로 귀농하던 딸네 가족이 탄 배가 침몰하고, 손녀만 살아남는다. 쩌우는 작은딸 로안과 함께 팽목항에서 린의 시신을 마주하고, 손자와 사위의 시신이 수습되면 함께 장례식을 치르려고 기다린다. 부녀는 다른 이들에게 신세지지 않고 생닭을 다듬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생활비와 차비를 번다. 방 씨는 “사실과 허구가 9 대 1 정도인 픽션”이라고 말했다. 소설에는 사실이 아니라 허구에 속하는 부분이었으면 싶은 내용이 적지 않다. 로안은 일하던 공장에서 “보상금을 얼마나 받아먹으려고 여기까지 와서 저러고 있냐”는 말을 듣는다. 베트남의 고향 사람들도 매정하기는 마찬가지인, ‘사람이 될 길이 없는 세월’이다. 방 씨는 “물질중심주의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베트남과 한국이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남은 아이가, 자기 가족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랑스럽게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자와 출판사는 인세와 수익금 전액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데 쓰이도록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해야 할 일은 못 했는데 축하를 받으니 겸연쩍을 따름입니다.” 1970년대 도시빈민의 처참한 현실을 정면으로 고발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의 300쇄가 10일 출간됐다.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발간된 뒤 39년 만으로 지금까지 모두 137만 부가 팔렸다. 문학과지성사에서는 4판 134쇄까지 발행됐고, 2000년 이후 조 씨의 아들 중협 씨가 운영하는 출판사 ‘이성과 힘’에서 166쇄를 냈다. 이날 동아일보의 전화를 받은 소설가 조세희 씨(75)는 “지금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며 “나중에 다른 좋은 일로 만나자”고만 했다. 작품별로 인쇄된 횟수를 종합하는 기관 등은 없지만 ‘난쏘공’의 300쇄는 한국 문학 사상 최다 기록일 것으로 보인다. 문학계의 작은 경사인 셈이다. 소설가 조정래 씨의 ‘태백산맥’(해냄)이 지금까지 253쇄를 찍었다. 그럼에도 조 작가의 마음이 무거운 건 오래 내지 못하고 있는 작품 탓이었다. 그는 오래전 쓴 장편 ‘하얀 저고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지금 작품을 쓰고 있지 못해요. 새롭게 손보려는 부분도 있는데…. 어떤 분들은 ‘만날 뒤로 미루고 못한다’고 그럴 거예요. 내 마음은 이래요. 실패하는 작가도 있지. 내가 실패해도 용서하고 그러십시오.” 중협 씨는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력이 떨어져 병원에 다니면서 걷기 운동을 하고 책을 보며 일상을 보낸다는 것이다. 조 작가는 통화를 여러 번 마치려다가도 기자의 몇 가지 물음에는 답을 했다. 그는 ‘난쏘공’을 쓴 건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맡아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 역사의 진행을 가만히 보면 작품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있어요. 난쏘공을 쓸 때도 그랬지요.” 그는 잠시 지난날을 회상했다. 몇 마디 안에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해공 신익희 선생이 돌아가신 1956년에 제가 중학생이었어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를 빠지고 책가방 메고 장례식장에 갔지요. 중학생이 뭐를 알았겠습니까. 그게(그 심정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4·19혁명 때 욱하는 마음으로 길거리로 뛰어나갔던 우리 동년배들이 긴 세월을 버텨왔는데, 요즘은 정작 우리가 원한 것은 얻지를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요.” 조 작가는 작금의 시국에 관해 “세상이 우리의 상상력을 월등히 뛰어넘으니, 왜 그런지 나도 기가 죽어 있고, 말할 수 없이 몸이 무겁다”고 말했다. 또 40년 동안 살아온 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집에서 이사를 나갈 예정이어서 착잡한 심정이 더하다고 한다. “기자도 나중에 못 한 일을 두고 후회될 때가 있을 겁니다. 내가 그래요. 아주 뼈 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못 쓰고 있어요. 기회가 주어지고 일할 능력이 다시 살아나면 한 편이라도 끝내야지 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으로 불리는 박남옥 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8일(현지 시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경북 경산 출신인 고인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영화 ‘미망인’(1955년 개봉)을 연출했다. 이화여전 가정과를 중퇴한 뒤 대구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던 중 조선영화사 촬영소에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촬영 당시 자신의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업고 다니던 모습이 자료로 남아 있다. 고인의 영화 인생은 2001년 임순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을 통해 조명되기도 했다. 부음을 전한 여성영화인모임 관계자는 “박 감독은 1957년부터 영화계를 떠나 출판사에서 일했고, 1980년 미국으로 이민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 딸 이경주 씨(재미)가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제 나이가 한국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중간보다 높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미국의 촬영 현장에서는 오히려 어린 쪽이죠.” 미국 드라마에 출연하다 ‘시간 위의 집’으로 한국 영화에 3년 만에 복귀한 배우 김윤진(44)이 최근 인터뷰 중 한 말이다. 그만큼 미국에는 나이 든 현장 스태프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메이크업 해주셨던 분은 제 아이라인 그릴 때 돋보기 쓰고 그려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이 잘 안 되죠. 미국에서 영화와 드라마 촬영 현장 스태프는 처우가 나쁘지 않아서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도 1996년 자신이 데뷔했을 때와 비교하면 처우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갈 길이 멀다는 말이다. 심지어 미국에는 은퇴할 때까지 조감독을 하거나 분장을 맡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스태프가 평생 직업이 되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노하우가 현장에 쌓이고, 우리 영화의 완성도도 더욱 높아지지 않겠어요? 그게 제일 부럽더라고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정호승 안치환 두 사람의 인연은 정호승의 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로 시작한다. 안치환이 대학교 4학년이던 1987년 노래패 친구의 결혼식에서 축가로 부르려고 시에 곡을 붙였다. “결혼식장도 아니고 선배 사무실에서 허름하게 하는 예식이었어요. 신랑 놈이 얼마나 울던지….”(안치환) 저작권 개념이 별로 없을 때라 시인의 허락도 따로 받지 않았다. 훗날 동창 모임에 참석한 정호승은 일행이 합창으로 ‘우리가…’를 불러줘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내 시를 갖고 만들었는데도 가슴이 다 뭉클하더라”고 회상했다. 안치환이 부른 ‘맹인 부부 가수’도 정 시인의 시집 ‘서울의 예수’에 실린 시에 다른 이가 곡을 붙인 것이다. 서울 광화문 근처 육교에서 노래하는 맹인 부부를 보고 쓴 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남편이 하드(아이스크림)를 사서 아내에게 주는데 둘 다 눈이 안 보이니 잘 받지를 못해요. 손으로 서로의 몸을 더듬다가 남편의 손이 아내의 손에 닿으니 그제야 하드를 쥐여 주더군요. 고통과 사랑이 동시에 있는, 그 시대의 상징적 모습이라고 생각했지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시대’였고, 우리 모두가 맹인 부부였던 거지요.” 시에서는 배경을 함박눈이 내리는 밤으로 바꿔 썼다. 시인은 “서정의 물기가 말라버리면 시라는 나무는 죽는다”고 했다. 안치환은 최근까지 정호승의 시에 곡을 붙이거나 시로 만든 노래를 불렀다. “저도 제 가사를 쓰지만 선생님 시보다 더 좋은 가사를 쓰지 못하니 그리 되는 거지요. 요즘은 ‘내 음악 인생에서 선생님 영역은 여기까지’라는 선이 있어야 뮤지션으로서 스스로에게 떳떳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들어요. 선생님은 이해해주실 것 같은데….”(안치환)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가수 안치환(52)은 시(詩)를 노래로 부르기를 즐긴다. 신동엽 김남주 나희덕 도종환 정호승 황지우의 시에 선율을 붙여 불렀다. 시인 정호승(67)의 작품은 가수들이 탐하는 운문이다. ‘부치지 않은 편지’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이별 노래’ ‘수선화에게’ 등 60편 넘는 그의 시가 김광석 안치환 양희은 이동원 등의 목청으로 불렸다. 정호승과 안치환을 한자리로 불러내기엔 지금이 적기였다. 둘이 ‘안치환, 정호승을 노래하다’ 콘서트 시리즈를 해온 게 올해로 10년째다. 밥 딜런이 1일 스웨덴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아 들었다. 시와 노래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안치환은 까칠한 진보주의자, 정호승은 따뜻한 보수주의자를 자처한다. 두 예술가가 본 요즘 시국은 어떤 풍경일까. 한 테이블 앞에 두 사람을 앉혔다. 짝짜꿍의 시작 “처음 뵌 건 젊은 출판인과 문인들이 모여 설악산 자락에서 연 모임에서였어요.”(안치환·이하 안) “내가 치환 씨를 본 건 그 전이에요. 후배 시인이 결혼하는데 치환 씨가 ‘우리가 어느 별에서’(정호승 시)를 축가로 불렀는데 신부가 그렇게 울더라고.”(정호승·이하 정) 시노래 모임 ‘나팔꽃’에 2003년 정 시인이 참여하면서 둘의 교류는 본격화됐다. 2008년 안치환이 9.5집 ‘안치환, 정호승을 노래하다’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지금껏 전국을 돌며 동명의 콘서트를 해왔다. “제 노래들 중간에 정 선생이 무대에 올라 시낭송을 하면 제가 대금 연주로 배경음악을 깝니다. 하하.” 밥 딜런과 블랙리스트 대중음악계는 환호했고 문단 일각은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노벨 문학상 이야기다. ―딜런의 수상을 어떻게 보는지….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살리려는 이벤트 아니었을까요. 부럽기도 했어요.”(안) “1970년대 김민기의 노랫말 중 참 좋은 게 많죠. 그런데 김민기에게 우리가 ‘한국문학상’을 준다면 어떨까요. 가사는 엄연히 멜로디를 위한 글이죠.”(정)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의외로 정호승은 있었고 안치환은 없었다. ―초기부터 사회성 짙은 노래를 불러 온 안치환 씨, 이건 ‘굴욕’ 아닌가요. “(정) 선생님은 노무현 시민학교 강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올랐을 거예요. 저는 왜 없는지. 류형선 작곡가는 고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에 참여해 올랐다는데, 그 앨범 심지어 저희 회사에서 나왔거든요.”(안) 옆에 앉은 그의 소속사 숨엔터테인먼트의 유수훈 대표가 부연한다. “치환 씨는 정부지원사업에 응모한 적이 없어서일 거예요.” “제가 치환 씨 앞길을 막은 건 아닌지, 미안해지네요. 하하.”(정) 까칠한 질문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이자 ‘광야에서’부터 ‘철의 노동자’까지 민중가수로 잘 알려진 안치환은 1993년 ‘소금인형’, 1995년 ‘내가 만일’, 1998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히트하며 어느새 KBS TV ‘열린음악회’와 친해졌다. ―왜 변했나요. “변한 적 없어요. 1980년대엔 격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직한 삶이었죠. 당시 제 노랜 오히려 ‘너무 말랑하고 서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는걸요. 1990년대에 사회가 변하면서 원래 갖고 있던 서정성이 더 드러나 보인 것뿐이죠. ‘내가 만일’로 알려진 4집만 해도 ‘너를 사랑한 이유’ ‘수풀을 헤치며’를 보세요.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는 비껴가지 않았어요.”(안) 혼란한 요즘 시국은 두 예술가의 심장을 다시 달군 듯했다. 지난해 11월 안치환은 날 선 싱글 ‘권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냈고, 정호승은 2월 낸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에 세월호 관련 시 두 편을 실었다. “‘평형수’와 동아일보에 기고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예요. 그 참사는 물신 숭상, 자본주의의 가장 썩은 부분이 결국 어떤 희생을 가져오는가를 보여줬죠. 절망조차 밑거름으로 삼아 진정한 희망을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시의 범위 안에서 하고자 했어요.”(정) ―대권 주자로는 누굴 지지하나요. 안치환 씨는 남경필 경기지사의 대학 동기죠? 정 시인은 최근 문재인 후보 지지자 명단에 오른 것 같던데…. “세 분 중 한 분이겠죠. 남경필 씨는 과 친구예요. 이 사람이 꼭 필요할 때만 저를…. 하하.”(안) “제가 특정 후보를 지지할 입장이 아니에요.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정) 인터뷰 후기 지난해 11월 이후 한숨 고른 ‘안치환, 정호승을 노래하다’ 공연은 6월 재개된다. 2014년 직장암 진단을 받은 안치환은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선생님, 요즘도 턱걸이 열두 번씩 하세요? 저도 그 얘기 듣고 요즘 열두 번씩 하는데 너무 힘들어요.”(안) “요즘은 좀 쉬었더니 근육이 다 빠져서…. 그래도 7, 8회는 하죠.”(정) 끓어오르는 활화산 같은 안치환의 노래, 깊지만 잔잔한 바다 같은 정호승의 서정시. 둘의 만남은 의외로 합(合)이 맞는다. 서로 치고 빠지며 주고받는 환담마저 가식 없이 매끄러웠다. “학창 시절 ‘음악 운동’ 할 때, 음악이 먼저냐 운동이 먼저냐로 매일 싸웠어요. 제 일관된 믿음은 음악이 좋아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겁니다.”(안) “서정이란 어려운 게 아니지. 날씨가 따뜻하다고 해도 꽃이 안 피면 봄이 오지 않은 거죠, 꽃이 안 피면….”(정) “시대를 얘기하시네요.”(안) 임희윤 imi@donga.com·조종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