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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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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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 추억을 남기고 떠난 시인 오규원 시인 10주기 행사 다채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라는 뜻)의 세계’를 추구했던 오규원 시인(1941∼2007)의 10주기를 맞아 추모시집이 발간되고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오 시인이 교수로 재직했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의 제자 등이 구성한 ‘오규원 10주기 준비위원회’는 시인의 기일인 2일 추모 시집 ‘노점의 빈 의자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를 발간한다. 이수명, 김행숙 씨를 비롯한 시인 48명이 ‘버스 정거장에서’ 등 오 시인의 시 4편 중 한 편을 모티브 삼아 쓴 시를 묶었다. 문학과지성사는 오 시인의 첫 시집 ‘분명한 사건’을 복간한다. 오 시인이 찍은 사진 56점을 모은 ‘무릉의 저녁’(눈빛)도 발간된다. 갤러리 류가헌(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은 26일까지 특별전 ‘봄은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에서 이 사진들과 오 시인의 육필 등을 전시한다. 2일 오후 6시에는 류가헌에서 시 낭독회를 연다. 오규원 시인은 경남 밀양 태생으로 1968년 ‘현대문학’에 시 ‘몇 개의 현상’이 추천완료돼 등단했다. ‘날(生·생)이미지’의 시 철학을 바탕으로 날것 그대로의 현상을 옮기는 시를 썼다. 문장사 대표를 지내면서 ‘김춘수 전집’ 등을 냈고, 1982년부터 20년 동안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로 일하며 많은 문인을 길러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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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망의 시대 극복할 희망의 메시지 던져”

     독일에서는 1770년을 ‘위대한 탄생의 해’라고 부른다. 베토벤과 헤겔, 그리고 프리드리히 횔덜린(∼1843)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횔덜린은 독일 현대시를 열어젖혔고, 유럽 현대시의 선구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난해함 탓에 대중적이진 않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1977년 낸 비평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의 제목을 횔덜린의 시구에서 따왔고 김지하 시인이 ‘횔덜린을 읽으며/운다’고 노래한 것을 비롯해 우리 현대시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줬다. “밤은 깜깜하지요. 그러나 다음 날이 새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게 밤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역사의 혼란도 미래를 예비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마라’ ‘고통은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가져라’. 횔덜린의 시는 이런 메시지를 던집니다.” 국내 횔덜린 연구의 선구자인 장영태 홍익대 명예교수(73·전 총장)가 그의 시 300여 편을 처음으로 모두 번역해 ‘횔덜린 시 전집 1·2’(책세상)를 냈다. 장 교수는 3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횔덜린의 시는 구절구절 번득이며 우리를 깨치게 만든다”고 했다. 독일 남부 라우펜의 수도원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난 횔덜린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와 나폴레옹 전쟁을 겪은 공화주의자였다. 당대에는 혹평을 받았지만 20세기 들어 주목받았다. “횔덜린은 하늘에서건 땅에서건, 집단이건 개인이건 간에 지배가 없는 세상을 바란 것 같아요. 알프스 산맥이나 라인 강처럼 거대한 자연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눈앞의 현실에 매이지 말라는 것, 역사조차도 자연에 의존해 진전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장 교수는 “최근에도 ‘위대한 시인은 수원(水源) 같은 이로, 역사가 바뀌고 요동치는 국면을 대변하고, 이름 짓는 사람’이라며 호머, 보들레르와 함께 횔덜린을 꼽는 한 시인의 글을 읽었다”고 말했다. 시 번역은 언어의 운율이 희생되는 탓에 ‘불가능한 작업’이라고들 한다. 장 교수는 ‘의역하고자 하는 욕망을 억제하고 원어에 순응한다’는 원칙을 지키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의 맛은 더욱 살아났다. 가령 ‘파트모스―홈부르크의 방백에게 바침’의 첫 구절은 ‘신은, 가까이 있지만 붙잡기 어렵다’라고 풀어쓰지 않고 원어의 순서를 살려 ‘가까이 있으면서/붙들기 어려워라, 신은.’이라고 옮겼다. 판독상의 학술적 논란을 정리한 ‘도이처 클라시커’사의 전집을 번역 저본으로 삼았고, 보통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과 해설을 담았다. 장 교수는 “횔덜린은 한때 ‘말하려는 것이 있어도 못 하는 이들을 대신해’ 썼지만 시를 선동의 도구로 삼은 것은 아니다”라며 “고대 그리스처럼 독일의 문화가 꽃피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았다”고 말했다. 횔덜린은 사랑하던 이가 갑자기 죽은 뒤 32세 때부터 정신착란 증세로 평생 고통받았다. 장 교수는 횔덜린 최후의 시들은 수묵화처럼 담백하다고 했다. “좋아하는 시구요? 너무 많은데…. ‘순수한 원천의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노래 역시 그 정체를 밝힐 수 없다. 왜냐하면/…’(‘라인강―이작 폰 징클레어에게 바침’에서) 어때요? 원천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은 궁극적으로 그에 도달할 수 없다는 얘기예요. 시도 마찬가지죠. 인간이 뭐든 다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오만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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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추→밤→배→감? 차례상 과일, 종류-순서 따로 없었다

    《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 밤 배 감)가 맞아, 조율시이가 맞아?” 하루 지나면 설이다. 누군가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차례상이지만 그 앞에서는 심심찮게 진설(陳設·제사 때 법식에 따라 상을 차리는 것)법에 대한 집안 어른들의 논쟁이 벌어진다. 가가례(家家禮)라고 해 ‘도랑을 건너면 다르다’는 게 진설법이다. 그중 가장 의견이 분분한 게 차리는 사람 입장에서 제일 앞줄인 ‘과(果)’다. 》  어떤 집은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놓지만 어떤 집은 감과 배가 바뀌고, 기타 과일을 그 뒤에 놓는 집이 있는가 하면 대추-밤과 배-감 사이에 잡과를 놓는 집도 있다. 물론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음)를 따르기도 한다. 국가장에 조언하기도 했던 관혼상제 전문가 김시덕 박사(55·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교육과장)로부터 차례상 차림에 관한 얘기를 20일 들어봤다. “과 줄을 순서대로 조율시이로 쓴 가장 오래된 기록은 언제 것일까요? 16세기? 18세기?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최고(最古)는 겨우 1919년 것이에요.” 김 박사는 지난해 ‘국학연구’에 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기록은 경북 경산의 유학자 정기연 선생(1877∼1952)이 1919년 놀이로 진설법을 익히도록 창안한 습례국(習禮局)의 진설도다. 그럼 조선의 유학자들이 펴낸 수많은 예서(禮書)에는 어떻게 돼 있을까? “고려 말 들어온 주자의 ‘가례(家禮)’ 이후 모든 예서가 ‘과, 과, 과, 과’입니다. 과일을 6종류 또는 4종류 올린다고 돼 있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떤 과일을 놓아야 할지 정하진 않았다는 얘기예요. 조선 후기 학파와 무관하게 사용된 예서 사례편람(四禮便覽)도 마찬가지죠.” 김 박사는 “19세기 중반 쓰인 ‘금곡선생 문집’에 집안 제사에 조율시이를 차린다고 나오지만 이게 늘어놓는 순서는 아니다”며 “이전까지는 이것저것 집에 있는 과일로 차리다가 19세기 들어 이 4종류 과일이 제사상, 차례상 차림으로 정착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단지 조선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대추, 밤, 감의 특징이 뭘까요. 말리거나 묻어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거예요. 쉽게 말해 벽장 속에서 꺼낼 수 있는 과일을 차린 거지요.” 좌포우해(左脯右해)니 두서미동(頭西尾東)이니 하는 방식이 집집마다 퍼진 것은 오히려 1970년대 이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김 박사는 본다. “1960년대부터 학자들이 전국을 돌며 제사 상차림을 조사했어요. ‘집안에 이러이러한 차림법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없어도 이후로는 그렇게 차릴 수 있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조사자로부터 ‘역전파’가 된 거죠.” 김 박사는 “주자의 가례도 기존 중국 예서의 논리를 과감히 뒤집은 책”이라며 “복잡한 진설법에 구애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조리된 음식을 사서 차례상에 올려도 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아요. 조선시대 종부(宗婦)들이라고 다 직접 음식을 했을까요? 하인들이 다 했죠. 음식을 주문해서 상에 올리는 것도 정성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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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은 우주와 삶에 대한 경외감 높여주는 최선의 대답”

    《최근 자서전이 번역 출간된 것을 계기로 내한한 세계적 석학 리처드 도킨스(76)가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진화심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46)와 공개 대담을 했다. ‘무신론의 기수’로 불리는 도킨스는 청중 200여 명 앞에서 장 교수의 물음에 유머를 섞어가며 답했다.》  ―지구 온난화나 생태계 파괴 등 과학기술로 생겨난 문제를 과학이 풀 수 있다고 보는지. “과학은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반대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도 알려준다. 진리 탐구를 멈춰서는 안 된다.” ―과학은 삶의 실존적 조건과 의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그처럼 근본적이고 심오한 질문에 답변하는 건 간단치 않다. 그러나 과학이 못 하면 다른 어떤 학문이나 종교도 답하지 못한다. 우주의 탄생에 대해 물리학은 최선의 질문과 답을 제공하고 있다. 도덕적 딜레마를 푸는 데도 과학적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알게 된다고 해서 사랑하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 감정을 이해하려는 과학의 노력이 사랑과 행복의 가치를 손상시킨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진화에서 감정이 갖는 의미를 이해한다고 감정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다. 수만 년을 날아온 별빛이나 화석을 통해 수백만 년 전의 생물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건 우주와 삶에 대한 경외감을 증폭시킨다.” ―당신의 여러 저서 중 찰스 다윈에게 딱 한 권 선물할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 텐가. “‘이기적 유전자’다. 다른 책은 사실 다윈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이기적…’은 (다윈이) ‘나의 이론이 다른 식으로 표현됐구나’ 하고 생각하실 게다.” 이날 청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도킨스는 어린 시절에 무슨 장난감을 갖고 놀았느냐는 주부의 질문에 “기차요! 그리고 꼭두각시 인형”이라고 답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자랐다는 청년이 “‘만들어진 신’을 읽고 무신론자가 된 이후 주변 (종교인과의) 관계가 멀어졌는데 (회복시킬) 방법이 있느냐”고 묻자 “매우 슬픈 질문”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특히 미국에서 ‘도킨스재단’(도킨스가 세운 재단으로 학교의 지적설계론(창조론) 교육을 반대하는 활동 등을 함)으로 그런 고민을 호소하는 편지가 많이 온다”며 “우주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의견의 차이가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손상시킨다는 건 비극이다. 관용이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동물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은…. “옥스퍼드대 학부생 시절 2학년부터 일대일 튜터링(개인지도) 시스템에 참여하게 됐다. 튜터(지도선생)가 매주 1시간 논문에 관해 학생과 논쟁하고 영감을 준다. 튜터가 준 논문 목록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 동안 읽는다. 그건 교과서에서 지식을 그냥 가져오는 것과 다르다. 노벨상을 받은 니콜라스 틴베르헌이 내 튜터였는데 그게 전환점이었다.” ―연구뿐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을 전파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도 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그런 노력을 폄훼하기도 하지 않나.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미국 국립과학자협회 회원이 못 된 것도 그런 질투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세이건이 (대중에게) ‘별을 보라’고 한 뒤 미국의 우주 탐험 계획이 나왔다. 대중과의 소통이 과학자의 책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종교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나. “더 나쁜 종교, 덜 나쁜 종교가 있지만 나는 종교가 없어지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내 생전이 아니라면 내 손자 세대에라도. 그러나 미국에서는 무신론에 반대하는 거센 역풍이 불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종교 관련 인사가 나한테 좋은 얘기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웃음)” ―과학자, 저술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청중)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쓰려고 한다. 밤낮, 계절, 지진 등에 대해 신화에서 과학으로 이어지며 답하는 책이다. 우주에서는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책도 쓰려 한다. 생명은 지구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이성의 결합에 의한 번식은 계속될까, 지능과 언어는 다른 행성에서도 독립적으로 진화해 발생할까…, 이런 것들이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리처드 도킨스는…1941년 영국의 식민지이던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에서 생물학 교수로 일하며 동물행동학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발생학을 두루 연구하고 성과를 냈다. 현재 같은 대학 ‘뉴칼리지’의 펠로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중적 과학 저술가다. 1976년 생명체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책 ‘이기적 유전자’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후에도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한 ‘만들어진 신’을 출간했다. ‘눈먼 시계공’ ‘지상 최대의 쇼’를 비롯해 저서 대부분이 국내에 번역돼 있다.}

    • 20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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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시인들은 시대의 그림자와 공습하듯 맞서 싸우며 새 시대 열었다”

      ‘네 검은 날개에 붉은 해를 싣고 올 날을 위하여’(백무산 시 ‘까마귀’에서)  ‘벌판 한군데 눈이 꿈틀거리더니/새가 움터 날아오른다/그 자리가 뻥 뚫린다/…/뻥/뻥/뻥/뚫린다’(황인숙 ‘봄’에서) 각각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1988년)와 ‘슬픔이 나를 깨운다’(1994년)에 실린 시다. 발간 시점은 불과 6년 차이지만 두 시구 사이의 거리는 아득하다. 새가 ‘붉은 해’를 내려놓고 ‘뻥뻥’ 자국을 남기며 발랄하게 날아오르는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1990년대 시 문학사를 처음으로 본격 조명한 ‘공습의 시대’(문학동네)를 최근 낸 시인이자 평론가 이수명 씨(52)를 2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1990년대 시는 단순히 앞뒤 시대 사이에 끼인 과도기가 아니다”라며 “당대 시인들은 이전 시대의 거대한 사유와 ‘공습하듯’ 맞서 싸우며 21세기의 자유로운 인식과 새로운 감각을 창출해 냈다”고 말했다. 1980년대는 민중시와 실천을 중시하는 리얼리즘 시가 지배적이었다. 이 씨에 따르면 억압적 세계와 맞서 시로 투쟁을 벌인 ‘거인’들의 시대다. 21세기는 정체성과 고정된 의미를 거부하는, 부유하는 ‘유령’들의 시대다. 1990년대는 거인과 유령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것으로 치부돼 왔다. 1990년대의 특정 시인이나 경향에 집중한 부분적 연구는 있었지만 주요 시인들을 통해 시대의 정수를 분석하고 제시한 책은 찾기 힘든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우체국 뒷길을 맴돌다/수채구멍 속에서 나온/개구리 한 마리를 밟아 죽이고/집으로 돌아왔습니다/…/그리고 나는 불을 질렀습니다”(박상순,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4년 뒤’에서) 책은 1990년대 초반 발표된 이 시가 개인과 공동체와의 긴장을 표현한 것이라고 봤다. 이 씨는 “정치적 해방으로 개인이 자연스레 출현했다는 인식은 2000년대의 상황을 근거로 막연히 역산한 것에 불과하다”며 “시인들은 공동체의 억압적 측면과 대결하면서 지금의 개인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자유로운 발화(진이정 시인), 세계나 체제로 묶이지 않는 발랄한 감각(황인숙), 중심에 복속되지 않는 인식(최정례) 등이 조명된다. 시인들은 점조직처럼 움직였고, 전투는 고독했다는 게 이 씨의 말이다. 실제로 책이 다루는 13권 시집의 시인들은 대체로 낯설다. 김기택 함성호 황인숙 시인을 제외하면 장경린 노태맹 김언희 함기석 강정 서정학 허연 등 지금까지 비교적 덜 주목받은, “그 가치만큼 평가받지 못했던”(이수명)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씨 자신도 1990년대에 시집 2권을 냈다. “그때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무엇과 대결하는지도 잘 몰랐었지요. 지금 와서 보니 그게 시대의 그림자였구나 싶은 게지요.” 이 씨는 기회가 닿는다면 2000년대 시문학사도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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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에 시집온 몽골공주들, 남편 편들어 元관리와 맞섰다

     고려 공민왕의 반원 정책을 지지했던 정치적 조력자이자 죽은 뒤에도 공민왕이 초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반면 1274년 10월 고려 왕실에 시집온 첫 번째 몽골 공주인 제국대장공주(1259∼1297·齊國大長公主)는 통상 몽골의 이익을 대변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고려 내에서 몽골 공주의 정치적 위치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명미 서울대 박사(사진)는 이화여대 사학과와 이화사학연구소가 24일 여는 학술대회 ‘13∼14세기 몽골과 동아시아 교류사’에서 이에 주목한 연구를 발표한다. ‘고려 왕실에 하가(下嫁)해 온 몽골 공주들: 그 정치적 위치와 고려-몽골 관계’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이 박사는 “몽골 공주와 몽골 조정을 대리하는 다루가치와의 갈등으로 볼 때 몽골 공주로서 갖는 권리와 권력은 상당 부분 남편이자 황제의 부마인 고려 왕에게 직결돼 있었다”고 밝혔다. 충렬왕과 혼인한 제국대장공주(몽골 이름 쿠틀룩케르미쉬·忽都魯揭里迷失) 역시 달리 볼 만한 점이 있다고 이 박사는 분석했다. 고려에 시집온 다른 몽골 공주들이 당시 몽골 황제와 3∼8촌이었던 데 비해 제국대장공주는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이어서 위세가 가장 강성했던 공주다. 이 박사는 몽골이 고려 내정에 간섭하기 위해 파견한 다루가치 흑적(黑的)과 제국대장공주의 갈등에 주목했다. 흑적은 고려 부임 7개월 만인 1275년 7월 몽골로 돌아가 황제에게 고려에 대해 이것저것 일러바쳤고, 이에 따라 원 세조는 제후국인 고려 왕자의 호칭, 관직명이 황제 국가와 같다는 문제 등을 지적하는 조서를 보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국대장공주는 흑적의 귀국을 만류했고, 그럼에도 흑적이 돌아가자 그가 황제에게 고려를 헐뜯는 걸 우려해 수하를 보내 흑적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몽골 공주지만 고려 왕실의 편에 선 듯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 박사는 “몽골 공주는 황제의 입장을 바로 대리한다기보다 몽골의 분봉(分封) 체제에서 제국에 대한 자기 몫의 권리와 권력을 갖는 존재였다”며 “고려 왕비가 된 공주 역시 몽골 중앙 조정과 부딪히면서 남편인 고려왕의 권력이 어그러지는 것을 막기도 했다”고 설명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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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한권에도 꽃 한송이 피우듯 심혈”

     22일 별세한 박맹호 회장의 주변인들은 그를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했다. 스마트폰이 노인들에게 대중화되기 전 박 회장은 “회장님이 이게 뭐가 필요하시느냐”는 말에도 고집을 부려 스마트폰을 산 뒤 매일 사용법을 익혔다고 한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흥행 영화, 오페라뿐 아니라 평소 즐기지 않는 드라마도 화제가 된다면 억지로 봤다는 것이다. 민음사에서 오래 일했던 직원은 “박 회장은 문화에서 항상 첨단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별세 소식에 평소 가깝게 지내온 문인 등 문화계 인사와 지인들은 이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며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영원한 청년은 항상 곁에서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큰형’이기도 했다.  ‘삼국지’를 민음사에서 냈던 소설가 이문열 씨(69)는 박 회장을 37년 전부터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꼭 만나며 교분을 나눴다고 했다. 이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잘 판단이 안 서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여러 번 박 회장께 충고를 구했다”며 “사려 깊고 생각이 반듯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출판계에 박 회장만 한 분이 다시 나오려면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영빈 KBS 교향악단 이사장(74·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민음사 사무실이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잡지 ‘세대’의 편집자였던 권 이사장은 ‘한국의 시인선’의 표지 장정을 거들면서 박 회장을 만났다. 권 이사장은 “당시 민음사 사무실은 고은 시인, 김승옥 소설가 등이 모이는 문인과 예술가의 사랑방이었다”고 했다.  그는 “박 회장은 책 한 권에도 기획부터 장정까지 심혈을 기울여 꽃을 한 송이 피우듯 냈다”고 했다. 민음사 계간지 ‘세계의 문학’ 창간 당시 편집위원으로 일했던 문학평론가 유종호 씨(82·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는 “기획력이 뛰어났고 디자인 감각이 있어서 책을 만드는 데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다”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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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정보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서양도 파발마와 전령으로 급한 소식을 전했고, 기껏해야 봉화 정도가 있던 시대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이미 북소리로 일상 언어를 전했다. 자음과 모음이 사라진 ‘둥둥둥’ 소리로 어떻게 말을 전했을까. 비밀은 성조의 등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아프리카인들의 언어에 있었다. 북소리의 고, 중, 저로 말의 성조를 표현하면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던 것이다. 다만 너무 짧게 표현하면 성조가 비슷한 다른 말과 헷갈리기 때문에 쉬운 말도 복잡하게 했다. ‘무서워하지 말라’ 대신 ‘입까지 올라온 심장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라’는 식이다. 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말로 전달하는 것보다 8배나 길어야 했다. 1949년 ‘아프리카의 북’을 펴낸 영국인 선교사 존 캐링턴은 같은 사실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하틀리의 공식’을 알게 된다. 일정한 양의 정보를 전달할 때 기호의 종류가 적을수록 더 많이 전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는 북’은 사실상 모스 부호와 원리가 동일하다. 모스 부호는 말이 아니라 알파벳을 표현한다는 점만 다르다. 점과 선, 즉 0과 1로 모든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보의 역사에서 분기점이 된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한 연결과 융합으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우리의 일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정보’는 여전히 전문가의 영역으로 느껴진다. 책은 정보의 역사를 대중적으로 다뤘다. 정보 이론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은 미국의 응용수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인 클로드 섀넌(1916∼2001)이다. 그는 1949년 논문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을 통해 정보의 양을 측정하는 단위로 ‘비트(bit)’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의 이론은 정보와 불확실성, 정보와 엔트로피, 정보와 카오스를 잇는 다리를 놓았다. 책의 부제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 히스토리’에서 알 수 있듯, 정보의 역사는 통신의 역사 이상이다. 수학, 암호, 언어, 심리, 철학, 유전, 진화, 양자역학을 정보라는 틀로 바라볼 수 있다. 우주가 정보로 해석되고, 생명도 DNA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보의 역사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인 셈이다. “바벨의 도서관이 모든 책을 소장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첫 느낌은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모든 개인적이거나 세계적인 문제의 명확한 해결책은 도서관에 있는 육각형 진열실들 중 어딘가에 있었다.” 저자는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을 인용하며 그에 관한 성찰로 책을 끝맺는다. 그 귀중한 책들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이미 모든 것이 쓰였다면 존재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모두 바벨의 도서관의 이용자이면서 사서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아직 쓰이지 않았고, 우리는 도서관의 서가를 뒤지거나 재배치할 것이다.” 저자는 ‘나비 효과’라는 말을 대중적으로 알린 저서 ‘카오스’를 썼던 미국의 저명 과학 저널리스트다. 방대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명료한 문장으로 풀었다. 번역 감수를 맡은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정보과학 대가들의 생각은 세상의 모든 사고와 논리는 정보 처리에 불과하며, 정보는 수로 나타낼 수 있으므로 사고와 논리는 곧 계산이라는 데 이른다”며 “책은 정보의 어떤 측면이 세상에 변화를 일으켰는지 보여준다”고 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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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과 부닥치며 내공 쌓은 50대, 기존정당 탈당해 대선 새판 짜야”

     “광장의 민의는 새로운 문법의 정치와 접속하는 걸 원하고 있다. 정치의 세대교체를 통해 시대를 바꿔야 한다.” 18일 한국정치학회·사회학회 주최 시국 대토론회에서 “60대 이상 정치인은 조건 없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9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50대 연합 기수론’을 다시 강조했다. 송 교수는 이날 “세대 경험은 정치인의 중대한 결단에 반드시 작용한다”며 “60대 이상의 세대는 감각의 한계 탓에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신세계를 열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대안으로 주장하는 50대 정치인들은 대부분 구(舊) ‘386세대’다. “그 세대는 청년기에 책을 덮고 현실을 몸으로 체험한 세대로 천둥벌거숭이처럼 원초적인 면이 있었고, 무르익지 않았는데 정권을 잡아 서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라면서도 “그로부터 10여 년 동안 현실과 부닥치며 내공을 쌓고 세련돼졌다”고 했다. 그는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로 60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출마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50대 주자들이 소속 정당을 뛰쳐나와 함께 기존 정당과 대적하는 신선함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을 제외한 정당들은 지향과 기반이 뚜렷하지 않은 ‘월세 정당’에 불과해 강자에 맞서 대선의 새로운 판을 짜야 승산이 있다는 설명이다. 송 교수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50대의 중심 인물로 꼽으면서 문 전 대표 중심의 판세를 바꾸지 않으면 세대교체가 어렵다고도 했다. “안 지사는 이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문 전 대표가 당내에 견고하게 다져놓은 ‘성곽’을 넘어설 수 없다.” 송 교수는 특히 문 전 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것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패(大敗)라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고, 야당에서 오래 생존한 조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언어에 머무르고 있어 갑갑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 전 대표의 말은 미래의 씨앗이 보이지 않는 ‘도라지 위스키 시대’의 말 같다”고도 했다. 세간의 말이 많아 판단 유보라고 했던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에 대해서는 “검증이 안 됐고, 포퓰리즘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송 교수는 전날 토론회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안 전 대표는 과거에 비해 정치력은 성장했지만 상징적 자원은 오히려 잃었다”며 “그 갭(격차)을 메울 설득력 있는 정책과 말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신랄한 촌평도 이어졌다. “정치력이 없다. 대선은 70, 80%는 자신의 힘으로 돌파해야 하는 것인데 지지자들이 열광할 만한 철학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있다. 설 전까지 새로운 언어를 들려주지 못한다면 반 전 총장은 사실상 끝이다.” 25일 기존 칼럼과 새로 쓴 글을 묶은 신간 ‘촛불의 시간’을 내는 그는 “‘군주의 시간’이 지나고 ‘시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50대 주자들이 무정형인 광장의 에너지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정치적 비전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학문 영역을 넘어 이례적으로 현실 대선 주자를 구체적으로 촌평한 것에 대해 “토론회에서 학자들이 원론적인 논의를 하는 건 당연하다”며 “하지만 지금 시국에서는 진짜 필요한 ‘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는 것도 학자와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조종엽 기자}

    •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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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새로운 글로 세상을 밝혀주길”

     “오늘의 영예는 시작점에 불과하고 앞으로 계속 시험대를 마주하겠지요. 그 앞에서 좌절하거나 회의에 빠지지 않고 문학의 소용(쓰임새)에 대한 답을 찾는 길을 계속 걷겠습니다.”(김녕 씨·문학평론) 글쓰기의 길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이정표를 세운 당선자들은 물이 가득 찬 큰 양동이를 안은 듯 기쁨과 포부가 출렁거리는 소감을 밝혔다.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김녕 씨를 비롯해 위수정(중편소설) 김홍(단편소설) 김기형(시) 정진희(시조) 김명진(희곡) 이인혜(시나리오) 박소정(동화) 김세나 씨(영화평론) 등 9명이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수상자들은 벅찬 기쁨을 전했다. 김명진 씨는 “문학은 저 멀리 있는 짝사랑의 대상이었는데 당선이 현실이 되니 혼란스럽고 흥분된다”고 말했다. 위수정 씨는 “어릴 적 오빠의 책장에 꽂힌 오정희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문학에 빠져들었는데 이분들이 심사위원이어서 더 기쁘다”고 밝혔다. 박소정 씨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아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일이 적은 곳은 어른들한테도 살기 어려운 세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글을 쓰면서 이곳(세상)을 더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각오도 다졌다. 김세나 씨는 “삶이 방향감각을 잃었을 때 책과 영화에서 길을 찾았다”며 “예민하고 날카로우면서도 폭넓은 시선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홍 씨는 “변화를 위해 김홍이라는 필명을 쓰기로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안다”며 “올바른 선택을 하며 열심히 쓰겠다”고 했다. 이인혜 씨도 “앞으로 좋은 글로 수상에 보답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시, 시조 부문 당선자는 소감도 시적이었다. 김기형 씨는 “무게도 형체도 없이 나의 시간에 나타난 시를 따라서, 징후처럼 감기는 감각을 믿고 계속해서 남아 있겠다”고 말했다. 정진희 씨는 “시인의 가슴을 통과하면 언어는 희망과 사랑, 따뜻한 길이 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닿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심사위원인 소설가 은희경 씨는 격려사에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22년 동안 ‘내 마음에 차는 글을 쓰고 있는가’ 하는 고민에 자주 시달렸다”며 “글 쓰는 일은 언제나 새롭고 그래서 두렵지만 그게 문학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축사에서 “수상자들은 글을 쓸 때 정말 사는 듯한 기분이 들고, 쓰지 않고는 못 사는 분들”이라며 “앞으로 가끔,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고통스러울 때 여러분은 동아일보가 찾아낸 보석이라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소설가 오정희 씨, 시조시인 이근배 이우걸 씨, 동화작가 황선미 씨, 극작가 배삼식 씨, 영화감독 이정향 씨와 문학평론가 황종연 동국대 교수,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장욱 씨를 비롯해 200여 명이 참석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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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학 “강력하고 민주주의 원칙 지키는 링컨 같은 지도자 필요”

     “작금의 한국 정치 상황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연습장’과 같습니다.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처럼 강력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가 나와야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통일의 심포니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 국제정치학자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69)가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고려대 출판문화원)을 최근 냈다. 강 교수는 2011년 영국에서 낸 ‘Korea's Foreign Policy Dilemmas’(한국의 외교 딜레마)가 지난해 중국 사회과학원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된 것을 비롯해 각종 저서가 일본과 중국, 영어권 국가에서 발간된 한국의 대표적 국제정치학자다. 2014년 정년퇴임하고 한국지정학연구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를 17일 서울 종로구의 지정학연구원에서 만났다. 강 교수는 “21세기 들어 지정학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지정학은 국제정치학이 성립되기 전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유행한 패러다임이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전략적 핵 경쟁 속에서는 의미가 축소됐지만 재래식 군비 경쟁의 귀환, 대륙국가 중국의 해양 진출로 인한 미국과의 긴장 고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물론 한반도가 그 복판에 있다. 책의 부제도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와 국가통일의 리더십’이다. “이전 책 ‘새우와 고래싸움’에서도 말했지만 새우였던 한국이 만약 돌고래가 됐다고 쳐도 범고래와 같은 강대국 앞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범고래를 만나면 돌고래보다 새우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지요.” 강 교수는 “대륙 강대국의 완충지대(buffer zone)면서 해양 강대국의 교두보(bridgehead)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임진왜란 이래 변한 적이 없다”면서 “장기적인 전쟁을 독자 수행하는 능력이 없는 한국은 대외정책에서 기본적으로 겸손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用)미’ ‘용중’ ‘용일’ ‘용러’와 같은 말은 환상이고 착각에 불과하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주변국을 바보로 아는 인식이지요. 진지하고 성실한 외교를 추구하면서도 국가의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데 과도하게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해 무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외교란 없습니다.” 강 교수는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미국을 단일한 연방국가로 지켜냈으며, 패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선거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킨 링컨의 리더십이 한국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링컨 대통령은 ‘무장한 예언자’ 같은 이였습니다. 국민에게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해 국민의 생각을 바꾼 ‘변환적 리더십’의 모범이지요.” 강 교수는 앞으로 1년 동안은 매달 심포지엄을 열어 윈스턴 처칠의 리더십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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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비 ‘문학3’ 창간… “문학에서 각자의 삶 발견할 수 있길”

     문학이 위기라지만 역설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블로그에는 문학적인 글이 넘쳐난다.  기존 문학의 형식에서 벗어나 감동을 준 글들이 여러 차례 출판을 거절당한 끝에 발간돼 독자의 사랑을 받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기성 문단과 대중의 괴리가 뚜렷해지는 요즘 ‘독자가 작가, 비평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문예지가 16일 창간됐다.  출판사 창비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창비 50주년을 맞아 공언했던 새 문학 플랫폼 ‘문학3’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문학3 기획위원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오늘날 문예지의 비평은 작품과 현실을 연결시키지 못했고, 광고 문구나 주례사식 해설에 그치기도 했다”며 “소비의 영역에 갇힌 독자가 문학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문학은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고 출범 이유를 설명했다. 문학3은 △매년 1, 5, 9월 3차례 동명의 종이잡지를 발간하고 △참여형 인터넷 홈페이지 ‘문학웹’() △오프라인 현장에서 활동하는 ‘문학몹’을 운영할 예정이다. 문학3은 계간 ‘창작과 비평’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문학웹은 19일부터 독자에게 개방된다. 기존 문학 장르를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그냥 올려본다’ 게시판, 단어 3개를 화두로 현안을 토론하는 ‘키워드 3’ 게시판, 자유로운 기획물을 200자 원고지 300장 분량으로 연재하는 ‘3×100’ 코너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문학웹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은 종이잡지에 실리게 되며, 신설 팟캐스트 ‘중계방송’에서도 다뤄진다. 문학3 종이잡지의 편집회의에도 독자가 참여한다. 문학웹이나 SNS를 통해 제안받은 의제 중 4, 5개 정도를 추린 뒤 제안한 독자 20명가량이 기획회의에 참여하게 된다. 첫 회의는 ‘문단 내 성폭력, 문학과 여성들’을 주제로 2월 17일 열린다. 종이잡지에는 ‘중계’라는 제목의 독자리뷰 좌담도 게재된다. 창간호에는 영화감독, 대안학교 학생, 국문학도 등이 같은 호에 게재된 소설과 시를 읽은 뒤 나눈 대화가 실렸다.  문학몹은 촛불집회 현장에서 낭독회 등 문학 관련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의 방식으로 각종 오프라인 현장에서 문학적 실천을 기획하고 벌일 예정이다. 문학3은 “문학은 고상한 성벽이 아니다”라며 “독자의 삶과 문학을 접목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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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짓밟힌 소수자들의 삶에서 길어올린 ‘詩情’

     신문을 읽는 것인지 소설을 읽는 것인지 헷갈리는, 소설 같은 현실을 마주하는 요즘이다. 현실을 드러내는 걸 목표로 하는 소설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책은 가난, 파업, 철거, 비정규직 등을 소재로 한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집이다. 주인공은 술에 의존해 살아가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10대 소녀(‘몽골 낙타’), 가족 간첩단 조작 사건 피해자(‘곡우’)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다. 그러나 1980년대 리얼리즘 소설 같은 작위적인 느낌은 한결 덜하다. 표제작을 보자. 노조 활동가인 내가 사는 연립주택 지하에 윤미희라는 여성이 세를 든다. 가난, 억울한 징역살이 등으로 짓밟힌 삶을 살아온 이다. 옛날 스타일이라면 ‘절벽에서 떨어진, 가시덩굴에 떨어져 온몸에 가시가 박힌’ 윤미희와 내가 연대해 투쟁의 대열에 서는 과정을 그렸을 법하지만 외려 윤미희는 ‘민폐 캐릭터’다. 나는 윤미희와의 인연을 끝내고 싶다. 마지막 이미지가 다소 식상한 느낌도 주지만 대체로 이념 과잉이나 ‘정신 승리’의 자세 같은 건 소설에 없다. 회사 측의 집회금지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날 아이들의 급식당번이라는 걸 잊었다가 유인물을 돌리며 알게 된 교회 전도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노조 지회장(‘가시’), 시장의 국수 가게를 반쯤 철거당했으면서도 철거 용역들에게 밤참을 파는 노인(‘마지막 손님’) 등 디테일한 캐릭터는 작가의 이력에서 나왔다.  저자는 1997년부터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와 인권단체 활동가로 일했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저자가 20년 가까이 소설을 써 온 듯한데, 이번이 첫 소설집이다. 2편은 문예지 ‘리얼리스트’에, 1편은 8년 전 인터넷 매체에 실렸지만 나머지 5편은 처음 발표하는 작품이다. 이성혁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우리 사회가 배제해버린 소수자의 삶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그 삶에 내재해 있는 ‘시적인 것’을 끌어올린다”고 했다. 1980년대와 유사한 소재의 소설이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현실을 바탕으로 쓰이고, 또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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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술∼술 이책]우리는 거짓말쟁이

    캐디는 ‘범죄자, 중독자, 실패자가 없는’ 부유한 백인 명문가 싱클레어 집안의 첫째 손녀다. 여름이면 가족과 사촌들과 비치우드 섬을 찾는다. 열다섯 살이 된 캐디는 여덟 살 때부터 함께 휴가를 보내던 이모 애인의 조카 갯에게 사랑을 느낀다. 캐디는 어느 날 수영을 하다 사고를 당하고, 사고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 채 외상성 뇌손상으로 편두통에 시달리며 지낸다. 2년 만에 다시금 섬을 찾지만 사촌들은 사고에 대해 입을 다문다. 찬란한 여름 해변 아래 이어지는 서스펜스와 반전이 담겼다. 1만2800원.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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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바라기]한쪽 눈 잃고 비로소 詩를 얻다

     시인 유희경 씨(37)는 2014년 여름 꼬박 2주 동안 고개를 숙이고 납작 엎드려 있어야 했다. 그래야 왼쪽 눈에 주입한 가스가 갑자기 떨어진 망막(급성 망막 박리)을 제대로 눌러 붙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책이나 TV도 보지 못했다. 병원을 오가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건 생각뿐이었다. 앞날의 두려움이 그를 조여 오자 마음도 납작 엎드렸다. ‘이대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수술에도 불구하고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안구만 간신히 살렸다. 2008년 등단하고 6년 만에 찾아온 육체의 시련이었다. “나를 깊이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20대 때 꿈꿨던 삶은 어디로 갔을까’ 싶었지요.” 10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 기차역사 건너편 건물 3층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만난 유 씨는 “전에 일하던 출판사 동료들이 서점에 놀러 와서 ‘너 얼굴 좋아졌다’고 한다”고 했다. 유 씨는 한쪽 시력을 잃고 나서야 그동안 시 쓰기와 직장 일 모두에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열심히는 살았는데, 잘하고 있다는 믿음이 깨졌던 거지요. 괄목할 만한 시를 쓰지 못했고, 편집자로서도 원하는 만큼 일이 진행되지 않았고…. 일에 집중하고 즐기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이도 저도 못하는 것 같았고요. 책임감만 있지 실력은 없는 거 아닐까 싶었죠.” 2014년 겨울 유 씨가 회사에 낸 사표는 반려됐고, 유 씨는 1년여 더 직장에 다니다 지난해 초 그만뒀다. 시집 전문 서점을 내겠다고 하자 아내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다. 지인들에게 계속 의견을 물었다. 동료 시인이자 은사인 김소연 시인이 말했다. “해 봐.” ‘내가 이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싶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위트 앤 시니컬’은 카페 파스텔과 공간을 공유한다. 널찍한 한쪽 벽면에 다른 장르의 책 없이 시집들만이 표지를 드러냈다. 시집들이 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대형 서점이 아니라면 서점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게 시집 아니던가. ‘위트 앤 시니컬’은 달마다 시집을 1000여 권씩 판다. 유 씨는 기고나 강연, 프로젝트 참여 등으로 버는 수입을 합치면 직장 다니던 만큼 번다고 했다. 서점을 열면서 시작(詩作)도 풀렸다. 공저 등을 통해 다른 책은 계속 내 왔지만 시집을 정식으로 낸 건 2011년 ‘오늘 아침 단어’가 마지막이다. “전에는 시를 써도 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0을 쓸 수 있다면 30, 40 정도 된다고 할까요. 요즘은 마음에 드는 시들이 좀 나와요.” 유 씨는 그동안 쌓인 시들에서 골라낸 것과 최근 시를 모아 6월 새 시집을 낼 예정이다. “첫 시집이 소년기였다면 이번에는 좀 성숙해지고 싶다”고 했다. 2013년 대림미술관 전시를 겸해 비매품으로 낸 시집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도 이달 복간할 예정이다.  ‘위트 앤 시니컬’ 2호점도 2월 서울 마포구 합정역 근처에 연다. “1호점의 안착은 많은 분의 관심과 도움 덕이 컸어요. 2호점을 통해 시집 전문 서점과 기획단체로 ‘위트 앤 시니컬’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인터뷰 도중에도 옆자리에는 유 씨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고, 손님들은 계산대에서 유 씨를 찾았다. “2016년은 기사회생의 해였고,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여전히 두렵기도 하지만 이제는 정말 시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유 씨는 오전 11시∼오후 9시 서점을 지킨다. 낭독회 등 서점의 각종 행사는 ‘위트 앤 시니컬’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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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생 100주년… 윤동주를 다시 주목한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 정책 속에서도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고 노래했던 시인 윤동주(1917∼1945·사진)의 마지막 작품 ‘쉽게 씌어진 시’ 중 일부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는 올해 풍성한 기념사업이 열린다. 연세대윤동주기념사업회(회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는 2월 16일 윤동주 시인 72주기 추모식을 시작으로 국제학술대회를 비롯한 여러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11일 밝혔다. 윤 시인은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기념사업회는 5월 18일 윤 시인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창작곡 등을 연주하는 ‘윤동주 기념 음악회’를 연다. 국학연구원, 중국 연변대와 공동으로 문학과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대회(5, 6월)와 윤동주 시인과 시의 정신적 지향이 현대 청년들의 삶에 미치는 의미를 조명하는 ‘윤동주 시인 탄신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12월 8, 9일)도 개최한다. 연세대 출신 문인이 윤동주 시인과 자신의 문학세계에 관해 강연하는 행사도 열린다. 기념사업회는 “미디어 자료 아카이빙을 통해 윤동주의 삶을 문학적, 시대적, 세계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를 윤동주 기념 공간이 있는 연세대 핀슨홀에서 열 예정”이라며 “또 이르면 올해 안에 핀슨홀 전체를 윤동주기념관으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5월이나 12월 중 열릴 예정이다. 윤 시인이 수학했던 일본 릿쿄대와 연세대 연극 동아리가 공동으로 관련 연극을 상연하고(5, 7월), 한중일 대학생이 중국과 일본을 답사하며 윤 시인의 삶과 행적을 살피는 행사(7, 8월)도 마련된다. 한편 서울시인협회(회장 유자효)도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윤동주 100년의 해’ 선포식을 열었다. 협회는 2월부터 일본 도쿄 릿쿄대 등을 방문하는 국내외 문학 기행을 주최하는 한편 윤 시인 관련 심포지엄과 세미나, 캘리그래피전,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이숭원 문학평론가(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날 선포식에서 “광복하고 시집이 간행된 뒤에야 우리는 윤동주 시인이 암흑의 시대를 밝힌 순결한 영혼의 불꽃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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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대 자연사에 대한 욕망이 유럽을 발전시켰다”

     근간 도서 ‘다윈의 정원’(장대익 지음·바다출판사) 초판에는 ‘Birds of John Gould(존 굴드의 새)’라는 흥미로운 책이 딸려 있다. 책에는 열대지방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 서식하는 새들의 화려한 색깔과 자태가 담긴 도판들이 실렸다. 도판을 그린 영국의 조류학자 존 굴드(1804∼1881)는 진화론 성립에 기여했지만 서구인들의 생물지리적인 탐험은 지식 탐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열대의 서구 조선(朝鮮)의 열대’(서강대출판부)를 최근 낸 이종찬 아주대 의대 및 열대학연구소 교수(59)로부터 열대지방과 서구적 근대의 관계를 들어 봤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지구적 열대 해양무역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 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집니다. 영국의 국력이 스페인 네덜란드를 넘어선 것도 카리브 해의 식물과 동물, 광물을 무역 상품으로 만든 덕분이었죠. 유럽 각국이 제국으로 도약한 힘은 열대 자연사(自然史)와의 ‘식민적 문화융합’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또 “유럽은 열대 자연사에 대한 지식을 경쟁적으로 공유하면서 열대를 식민화하려는 제국적 욕망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책은 한 장(章)을 할애해 열대와 한반도의 관계를 조명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와 열대지방의 해양 무역은 고려 시대까지 지속되다가 조선 시대 들어 단절됐다. 반면 일본은 난학자(蘭學者)들이 네덜란드를 통해 열대 동식물과 광물이 부의 증진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중화적 세계관과 결별했다. “조선의 여러 실학자들이 박물학에 관심을 뒀지만 저술을 찾아봐도 그림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유럽의 박물학 서적은 항상 도판이 등장하지요. 그건 생각보다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유럽은 도상학을 통해 인식이 확대되자 열대의 자원을 해양 무역 상품으로 만들고 자본을 축적했거든요.” 서구의 주요 사상도 열대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바탕이 된 루소를 봅시다. 그는 제임스 쿡 선장 등이 열대지방에서 데리고 돌아온 부족장을 만난 뒤 그들이 서구인보다 더 계몽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인간불평등 기원론’을 씁니다.” 의학사와 의료사회학, 의료인류학 등을 강의하는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학을 병원 치료 차원에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선진국은 주요 의대가 의학사(史)를 반드시 가르치는 등 질병을 전체 자연사의 한 분야로 연구한다”고 했다. “조류인플루엔자를 한국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담당하지요. 하지만 보건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서구는 열대를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열대의 질병을 방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적용했지만 한국은 그런 경험이 없으니 통합적 대응이 부족한 거지요. 열대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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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효서 “이번 상은 내가 아직 더 살(쓸) 수 있다는 의사의 선언”

     “맨손으로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씁니다.” 중편소설 ‘풍경소리’로 제41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구효서 씨(60)는 10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내다가 예순 즈음해 뜸해진 동료, 선배 작가들을 보며 위기감과 불안감을 느낀다”며 “이번 상은 ‘아직 더 살(쓸) 수 있어’라는 의사의 선언과 같다”고 말했다.  ‘풍경소리’는 과거의 기억에 붙들려 고양이 울음소리를 환청으로 듣는 미와가 시골 산사에서 영혼이 청정해지는 것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이상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인간의 삶과 운명의 의미를 불교적 인연의 끈에 연결시키면서 가을 산사의 풍경과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실험적 문체와 기법으로 절묘하게 결합시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우수작으로는 ‘스마일’(김중혁)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이기호)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윤고은) ‘눈 속의 사람’(조해진) ‘코드번호 1021’(한지수)이 선정됐다.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는 구 씨는 소설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장편 ‘비밀의 문’ ‘랩소디 인 베를린’ 등을 통해 전위적인 실험과 푸근한 고향의 정서를 오가는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풍경소리’의 모티브는 가곡으로도 만들어진 이은상의 시조 ‘성불사의 밤’에서 나왔다. 구 씨는 “시구 중 주인과 손님이 잠든 뒤 남은 것이 풍경 소리라는 걸 깨닫는 순간 ‘뎅’ 하고 머리가 울리면서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그가 구상한 ‘5감 연작’의 첫 편으로 ‘청각’을 다뤘다. 지난해 여름 발표한 ‘육두구향’은 후각, 집필 중인 작품은 시각을 다뤘으며 촉각과 미각에 관한 작품도 쓸 예정이다. 그는 6·25전쟁 중 한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을 소재로 한 장편도 집필할 계획이라면서, 이 작품을 “왼손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는 얘기다. “내 오른손은 세속화, 제도화돼 (글쓰기의) 반란을 일으키기가 어렵다”며 “왼손으로 쓰니 어색하고 비문도 나오지만 제정신으로는 끔찍한 얘기를 못 쓰겠더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등단했던 해에 이상문학상을 시상하는 문학사상사에 입사했다. 처음 맡은 일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만드는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내가 과연 이 상을 탈 수 있을까’ 생각했었죠. 이상문학상은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정말 드라마틱하네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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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잘나가는 소설가가 밝힌 소득 내역서

     소설가는 어떻게 먹고살까. 책 팔아서 수입이 얼마나 되나. 비록 일본 얘기지만 그에 관한 답이 A부터 Z까지 이 책에 들어 있다. 저자는 “일본에는 예로부터 ‘돈 얘기는 천박하다’고 보는 풍토가 있다”고 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소설가에게 얼마나 버느냐고 묻는 건 직장인에게 연봉을 묻는 것보다 왠지 더 실례가 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가인 저자는 자신이 19년 동안 작가로서 번 수입 명세서를 ‘다 까발렸다’. 인세는 어떻게 지급되는지, 잡지에 연재하면 얼마를 받는지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른 책의 추천사를 쓰거나 강연을 했을 때, 소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을 때, 해외에서 번역 출판됐을 때, 교과서나 문제집에 글이 지문으로 실렸을 때 얼마를 받는지가 세세히 나온다.  저자는 많이 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잘나가는’ 작가다. 1996년 이후 소설을 포함해 책을 278권 냈는데, 모두 1400만 부가 발행됐다. 2000∼2010년에는 해마다 거의 100만 부씩 팔렸다. 그가 지금까지 책으로 번 돈만 약 15억 엔(약 150억 원)이라고 한다. 작가 지망생에게 조언한 후반부 내용도 눈길이 간다. “자신의 감을 믿을 것, 늘 자유로울 것, 자기가 가진 논리를 믿고 ‘올바름’과 ‘아름다움’을 향해 전진할 것, 그리고 좌우지간 자신에게 ‘근면함’을 강제할 것.”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명언인 ‘Stay foolish, Stay hungry(항상 갈망하면서 굳건하게 나아가라)!’가 떠오른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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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훈 “한국 자본주의 발전엔 조선 소농사회 전통도 큰 역할”

     2월 정년퇴임을 앞둔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65)가 ‘한국 경제사’(전 2권·일조각)를 냈다. 낙성대경제연구소장을 지낸 이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대표적 이론가 중 한 사람으로 식민지 수탈론과 대립해 왔다. 1400쪽에 가까운 그의 이번 저서는 기원전 3세기부터 오늘날까지를 4개의 시대로 구분하면서 한국 경제의 역사적 기원과 변화를 설명한다. 고대 노예제, 중세 농노제 등이 아니라 △소규모 가족의 소비단위로서의 성립 △생산과 수취의 단위로 성립한 가족의 복합체 정(丁) △토지와 인구의 별개 체계 등록 △시장경제 체제의 정비 등으로 시대를 구분한다.  수탈-근대화 논쟁이 벌어지는 표면 아래서 그는 오랫동안 심해를 탐구하고 있었던 것일까. 최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평생의 연구를 집대성했다”고 말했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한국 경제의 역사를 충실한 인과의 연쇄로, 실증적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욕망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2003년 작업에 착수하고 서너 차례 개고와 확장을 거쳐 13년 만에 완성했다.” ―어떤 연쇄인가. “한국의 시장경제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한국인의 사회문화적 행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전근대와 근대는 연속적이다. 근대의 이식은 형식에 불과하며 근대를 우리 몸에 맞게 바꿔 뿌리내리고 열매 맺게 하는 구체적 원리는 전통에서 왔다.” ―이 교수는 역사에서 외부의 영향과 근대의 이식을 강조하는 편이 아니었나. “오해다. 내가 10, 20년 전에 했던 얘기를 단편만 확대해석하는 건 나를 화석으로 보는 일이다. 17∼19세기 한국은 소농사회였다. 소농은 합리적 계획과 엄격한 실천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경영단위다. 당시 한국인의 노동 규율, 저축, 미래 예측, 교육 투자 등이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토대를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의 경제와 사회가 있는 거다. 자유·평등·독립적인 근대적 인간형도 영미의 개인주의가 바로 도입된 게 아니라 다분히 호주제 가족의 창출과 함께 이뤄졌다. 친족집단의 사회적 지위를 계승, 발전하기 위한 소농사회의 전략이 20세기에도 한국인들의 사회 경제적 행동에 가장 중요한 원리였다.” ―언뜻 들으면 내재적 발전론자인 줄 알겠다. “서양적 고대, 중세, 근대를 모듈로 한국도 자본주의를 향해 발전했다는 한국 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과는 다르다. 그 같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인의 가족적, 사회적, 국가적 존재 형태가 내재적으로 발전한 걸 책에 썼다. 이론에 이름을 붙이는 건 후학이 할 일이다.”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일부 학계 등으로부터 ‘일본 우익의 논리를 대변한다’ ‘친일파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소회는….(그는 책에서 “일본은 정주형·定住型의 도둑”이라고 썼다.) “내가 지위, 명예를 추구했거나 정치적 욕심이 있었으면 동요됐겠지만 지난 10여 년간 자나 깨나 이 책 쓰는 일 말고 관심이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 책을 쉽게 요약해서 낼 것이다. 사람들이 자유주의 철학과 역사의식에 관심을 갖도록 대중적 활동도 할 생각이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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