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의 노래가 된 정호승의 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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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느 별에서’ 노래패 친구 결혼식 축가로 작곡
‘맹인 부부 가수’ 도심 육교서 본 애틋한 정경 담아

정호승 안치환 두 사람의 인연은 정호승의 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로 시작한다. 안치환이 대학교 4학년이던 1987년 노래패 친구의 결혼식에서 축가로 부르려고 시에 곡을 붙였다. “결혼식장도 아니고 선배 사무실에서 허름하게 하는 예식이었어요. 신랑 놈이 얼마나 울던지….”(안치환) 저작권 개념이 별로 없을 때라 시인의 허락도 따로 받지 않았다.

훗날 동창 모임에 참석한 정호승은 일행이 합창으로 ‘우리가…’를 불러줘 처음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내 시를 갖고 만들었는데도 가슴이 다 뭉클하더라”고 회상했다.

안치환이 부른 ‘맹인 부부 가수’도 정 시인의 시집 ‘서울의 예수’에 실린 시에 다른 이가 곡을 붙인 것이다. 서울 광화문 근처 육교에서 노래하는 맹인 부부를 보고 쓴 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남편이 하드(아이스크림)를 사서 아내에게 주는데 둘 다 눈이 안 보이니 잘 받지를 못해요. 손으로 서로의 몸을 더듬다가 남편의 손이 아내의 손에 닿으니 그제야 하드를 쥐여 주더군요. 고통과 사랑이 동시에 있는, 그 시대의 상징적 모습이라고 생각했지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시대’였고, 우리 모두가 맹인 부부였던 거지요.”

시에서는 배경을 함박눈이 내리는 밤으로 바꿔 썼다. 시인은 “서정의 물기가 말라버리면 시라는 나무는 죽는다”고 했다.

안치환은 최근까지 정호승의 시에 곡을 붙이거나 시로 만든 노래를 불렀다. “저도 제 가사를 쓰지만 선생님 시보다 더 좋은 가사를 쓰지 못하니 그리 되는 거지요. 요즘은 ‘내 음악 인생에서 선생님 영역은 여기까지’라는 선이 있어야 뮤지션으로서 스스로에게 떳떳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들어요. 선생님은 이해해주실 것 같은데….”(안치환)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시인 정호승#가수 안치환#우리가 어느 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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