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은 내게 주어졌던 숙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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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 39년 만에 300쇄 돌파… 조세희 작가 전화 인터뷰

10일 300쇄가 발간된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씨. 2007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모습이다. 이성과 힘 제공
10일 300쇄가 발간된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씨. 2007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모습이다. 이성과 힘 제공
“해야 할 일은 못 했는데 축하를 받으니 겸연쩍을 따름입니다.”

1970년대 도시빈민의 처참한 현실을 정면으로 고발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의 300쇄가 10일 출간됐다.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발간된 뒤 39년 만으로 지금까지 모두 137만 부가 팔렸다. 문학과지성사에서는 4판 134쇄까지 발행됐고, 2000년 이후 조 씨의 아들 중협 씨가 운영하는 출판사 ‘이성과 힘’에서 166쇄를 냈다.

이날 동아일보의 전화를 받은 소설가 조세희 씨(75)는 “지금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며 “나중에 다른 좋은 일로 만나자”고만 했다.

작품별로 인쇄된 횟수를 종합하는 기관 등은 없지만 ‘난쏘공’의 300쇄는 한국 문학 사상 최다 기록일 것으로 보인다. 문학계의 작은 경사인 셈이다. 소설가 조정래 씨의 ‘태백산맥’(해냄)이 지금까지 253쇄를 찍었다. 그럼에도 조 작가의 마음이 무거운 건 오래 내지 못하고 있는 작품 탓이었다. 그는 오래전 쓴 장편 ‘하얀 저고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지금 작품을 쓰고 있지 못해요. 새롭게 손보려는 부분도 있는데…. 어떤 분들은 ‘만날 뒤로 미루고 못한다’고 그럴 거예요. 내 마음은 이래요. 실패하는 작가도 있지. 내가 실패해도 용서하고 그러십시오.”

중협 씨는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력이 떨어져 병원에 다니면서 걷기 운동을 하고 책을 보며 일상을 보낸다는 것이다.

조 작가는 통화를 여러 번 마치려다가도 기자의 몇 가지 물음에는 답을 했다. 그는 ‘난쏘공’을 쓴 건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맡아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 역사의 진행을 가만히 보면 작품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있어요. 난쏘공을 쓸 때도 그랬지요.”

그는 잠시 지난날을 회상했다. 몇 마디 안에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해공 신익희 선생이 돌아가신 1956년에 제가 중학생이었어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를 빠지고 책가방 메고 장례식장에 갔지요. 중학생이 뭐를 알았겠습니까. 그게(그 심정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4·19혁명 때 욱하는 마음으로 길거리로 뛰어나갔던 우리 동년배들이 긴 세월을 버텨왔는데, 요즘은 정작 우리가 원한 것은 얻지를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요.”

조 작가는 작금의 시국에 관해 “세상이 우리의 상상력을 월등히 뛰어넘으니, 왜 그런지 나도 기가 죽어 있고, 말할 수 없이 몸이 무겁다”고 말했다. 또 40년 동안 살아온 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집에서 이사를 나갈 예정이어서 착잡한 심정이 더하다고 한다.

“기자도 나중에 못 한 일을 두고 후회될 때가 있을 겁니다. 내가 그래요. 아주 뼈 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못 쓰고 있어요. 기회가 주어지고 일할 능력이 다시 살아나면 한 편이라도 끝내야지 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난쏘공#조세희#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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