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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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zsh75@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남북한 관계64%
칼럼23%
경제일반10%
사회일반3%
  • ‘美 400대 부자’ 빌 게이츠 19년째 美 부자 1위, 스티브 잡스 부인 28위로 점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56)가 19년째 미국 최고 부자의 자리를 고수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19일 발표한 ‘2012년 미국 400대 부자’에서 게이츠는 순자산 660억 달러(약 74조1200억 원)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82)이 460억 달러(약 51조6600억 원)로 그 뒤를 이었다. 3위인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의 재산은 410억 달러였다. 에너지기업 코크인더스트리의 찰스 코크 회장과 데이비드 코크 부회장 형제가 각각 310억 달러로 공동 4위에 올랐다. 6위부터 9위는 월마트 창업자 가족들이 차지했다. 월마트 창업자 샘 월턴의 둘째 며느리 크리스티(279억 달러)가 6위, 창업자의 셋째 아들 짐(268억 달러)이 7위, 막내딸 앨리스(263억 달러)가 8위, 장남 롭슨(261억 달러)이 9위를 기록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250억 달러)은 10위였다. 지난해 10위권 안에 들었던 카지노 거물 셸던 아델슨과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각각 12위와 15위로 순위가 내려갔다. 올해 400대 부자 순위에 새로 진입한 사람은 모두 20명.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런 파월 잡스(110억 달러·28위)였다. 지난해까지 부자 순위 앞부분에 있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 창업주들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14위였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36위로 내려앉았고, 작년 293위였던 그루폰 공동 설립자 에릭 레프코프스키와 작년 212위였던 마크 핑커스 징가 회장은 4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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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 다이제스트]탈북 영화 ‘48M’ 美의회 상영

    삶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북한 주민들의 탈북 과정을 다룬 영화 ‘48M’(감독 민백두)이 19일 미국 의회에서 특별 시사회를 연다. 영화제작사인 ㈜48M은 특별 시사회에 다수의 미 상하원 의원들이 참가하며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영화제목 ‘48M’은 북한 양강도 혜산과 중국 창바이(長白) 현 사이를 흐르는 압록강의 최단거리를 뜻한다. 탈북자 100여 명의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짧고도 먼 거리 위에서 좌절해야 했던 탈북자들의 꿈과 희망,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 출신인 안혁 씨가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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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동까모 관련 90여명 수용소行-오지 추방”

    김일성 동상 폭파를 시도했다는 이른바 ‘전영철 사건’과 연관된 혐의로 함북 회령시 주민 90여 명이 북한 공안당국에 체포돼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거나 깊은 산골로 추방됐다고 대북소식통들이 11일 전했다. 북한인권개선모임 김희태 사무총장은 “북한이 전영철 사건 관련자 1차 색출을 마감하고 3일까지 28가구 90여 명을 수용소로 보내거나 오지로 추방했다”고 말했다. 전 씨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정치범수용소로, 간접적으로 관계있는 사람은 유배시켰다는 것. 또 다른 대북소식통도 회령에서 전영철 사건에 연루된 많은 주민이 추방됐다고 전했다.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람 가운데는 회령 주민들에게 ‘손도’라는 별명의 재력가로 알려진 김성도 씨(47)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2년 전 회령 ‘삐라사건’에 연루된 혐의까지 받아 모친과 부인, 아들 딸 등 가족 5명이 함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회령 삐라사건은 2010년 6월 25일 반체제 구호가 적힌 북한 5000원권 지폐가 ‘망명구국행동대’의 명의로 살포된 사건을 말한다. 전 씨는 과거 북한 당국에 체포돼 있다 탈북해 중국에 머무는 동안 이 사건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삐라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국가안전보위부 고위 간부가 총살되는 등 많은 북한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올해 5월 국내 모 종합편성TV 취재진과 함께 중국에 간 전 씨가 북한 내부 상황을 촬영하라며 북한에 들여보낸 카메라 5대를 전달받았거나 전달해 준 사람들도 이번에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것으로 전해졌다. 전 씨는 지금까지도 북한 보위부에서 취조를 받고 있으며 현지에선 그가 기자회견을 한 것과 상관없이 극형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의 자백에 따라 새로운 피해자들이 생겨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중앙TV는 7월 19일 전 씨가 “남조선 정보기관과 미국의 사주로 김일성 동상을 폭파하려 했다”고 폭로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한 시간 넘게 방영했다. 북한 당국은 탈북 후 남한에 정착했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박인숙 씨와 전 씨의 기자회견을 기록영화로 만들어 국경지역 주민들에게 의무적으로 관람시켰다. 또 이들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한국의 탈북자 출신 활동가들에 대한 살해 협박도 했다. 전 씨는 5월 말 중국에서 공안당국에 체포됐으며 그가 북한 주요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음을 확인한 중국 측은 체포 약 20일 뒤 한국 국적의 전 씨를 북한 당국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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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주성하]‘김정은 동지가 만져 본 문어다리’

    김정은 부부가 평양 중심부 창전거리 새 아파트를 방문한 사진이 며칠 전 한국 언론에 실렸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들이 대학 교원, 노동자, 신혼부부 가정 등을 찾아 생활 애로를 들었고 각종 선물도 전달했다고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김정은 부부가 전달한 선물은 42인치 LCD 텔레비전, 그릇세트, 성냥, 술, 음식, 세계명작동화세트 등 다양했다. 교원 가정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은 방석을 깔려는 집주인에게 나이 많은 할머니에게 깔아 주라며 제지했다고 한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설주가 부엌 싱크대에서 컵을 직접 물로 닦는 사진도 공개하면서 그가 집주인들에게 음료수도 직접 따라 주었다고 보도했다. 친근하고 인민적인 지도자 부부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히 드러나긴 했어도 어쨌든 오케이. 내가 보기엔 그 나름대로 연출은 괜찮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자기가 떠난 뒤 벌어질 일들에 대해선 과연 알고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전통’처럼 이어져 내려온, 북한 주민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을 말이다. 북한 전통에 따르면 김정은과 만난 사람들에겐 ‘접견자’라는 ‘성은(聖恩)’이 하사된다. 아무나 접견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김정은과 악수를 했거나 5분 이상 대화한 자만 인정한다는 식의 내부 규정이 있다. 일단 접견자가 되면 승진에서 파격적 대우를 받고 웬만한 죄를 저질러도 무마가 된다. 거기까진 가문의 영광이다. 하지만 전통에 따르면 다음 날 저 집 출입문 위에는 ‘위대한 김정은 원수님이 다녀가신 집. 주체 101(2012)년 9월 5일’이라고 적힌 간판이 내걸린다. 붉은 바탕에 금색 글씨로. 그때부터 집주인은 자기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혁명 사적지’에서 사는 것이다. 선물 받은 TV에도 역시 ‘위대한 김정은 원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러면 저 TV는 이제부터 고장 나면 안 되는 성물(聖物)이 되는 것이다. 그릇도 금조차 가면 안 된다. 소파 방석 식탁 컵 등 수많은 성물을 보관하게 된 저 집 주인은 이제부터 혁명 사적지에서 조심조심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100권이 넘는 명작 동화 세트를 받고 즐거워하는 사진 속 아이는 어린 나이에 이미 혁명사적 관리인으로 당첨된 것이다. 원수님이 하사한 선물이니 분실은커녕 낙서나 훼손도 절대 안 되게 관리해야 한다. 흔히 남쪽 사람들은 북한은 김일성 부자 동상이나 혁명사적지, 영생탑 같은 우상화물에만 돈을 쏟는 줄 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앉으셨던 의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보아 주신 기계’ 등의 간판이 걸려 있는 소위 ‘혁명 사적물’은 그보다 몇십 배 더 많고 전국 어딜 가나 흔하다. 김정은이 공원에서 문어 조형물의 다리를 만지며 웃는 사진이 나오면 나는 궁금해진다. 저 문어다리에는 ‘김정은 동지께서 만져 보신 문어다리’라는 간판이 걸릴까. 그렇다면 저 문어다리는 유리박스에 들어갈까, 울타리 안에 들어갈까. 김정은이 놀이기구를 타고 즐거워하는 사진을 보면 “저 자리는 영영 공석이 됐군” 하는 생각이 들고 그가 탱크를 모는 사진을 보면 “앞으로 탱크 번쩍번쩍 닦느라 군인들이 고생하겠군” 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이 진정으로 인민의 지도자로 인정받는 간단한 길 중 하나는 수많은 사람을 성물 관리인에서 면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젠 하지 마라’라는 한마디면 된다. 그 한마디엔 나도 서울에서 진심으로 박수를 칠 것 같다.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201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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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결제화폐 유로화外 위안-루블화 추가 추진

    북한 서길복 무역성 부상이 6일 “중국 위안화와 러시아 루블화를 결제 화폐로 하기 위해 해당 은행 간의 협상을 적극 추진시키려 한다”고 밝혔다. 서 부상은 이날 지린(吉林) 성 창춘(長春)에서 개막한 제8회 동북아무역박람회에 참가해 나선경제무역지대 개발 상황을 설명하고 투자 유치를 호소하면서 이같이 언급했다. 공식적인 대외교역 결제 화폐로 현재의 유로화에 위안과 루블화를 추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위안과 루블을 결제 화폐에 추가하려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대외 교역 확대에 따른 지극히 현실적인 조치로 풀이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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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파일]정부, 독도 편향보도 뉴스위크에 반박서한 검토

    정부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아시아판 최신호(10일자)에 일본의 주장에 편향된 독도 관련 기사를 게재한 데 대한 공식 반박 서한을 보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조태영 대변인은 6일 “(독도를 다룬) 뉴스위크 기사는 잘못되고 대단히 편향된 시각에 입각한 것으로 그런 보도가 나온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적절한 방식으로 반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뉴스위크에 공식 서한을 보내 기사 내용에 항의하고 잘못된 내용과 표현을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위크는 최신호에서 ‘왜 일본과 한국은 바위무더기 때문에 다투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 201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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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 총재, 첫 해외방문은 코트디부아르

    7월 1일 취임한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자신의 첫 외국 방문지로 ‘코코아의 나라’ 코트디부아르를 선택했다. 그는 4일 이 나라의 경제수도 아비장을 방문해 알라산 우아타라 대통령을 예방했다. 김 총재는 “나는 이 나라와 국민, 그리고 지도자에게 강력한 지지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왔다”며 “국민이 평화를 선택하는 한 이 나라는 앞으로 크게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우아타라 대통령은 “올해 8%의 경제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14년까지 두 자릿수 성장을 달성할 것”이라면서 “현재 10억 달러 수준인 세계은행의 지원액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앞서 김 총재는 세계은행의 지원으로 설립된 청년 직업훈련센터를 찾아 청년들을 격려하는 것으로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김 총재는 “나도 매우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학업에 매진했고 결국 세계은행 총재까지 됐다”며 “여러분들도 세계은행 총재가 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웠다. 15∼35세 청년인구 가운데 60%가 실업자이거나 반실업자인 코트디부아르는 2010년 3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까지 터지면서 경제가 더욱 피폐해졌다. 훈련센터에는 내전 당시 총을 들었던 전사 출신도 있었다. 김 총재는 이 청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하이파이브(두 사람이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 김 총재는 코트디부아르 일정을 마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할 예정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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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주성하]사형제 폐지가 자랑스러운가

    우리나라는 15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이다. 이를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징표로 봐야 할까. 어떤가. 그래서 자랑스러운가. 내가 한국에 온 뒤로도 수십 번 죽여 마땅할 수많은 흉악범이 주기적으로 등장했다. 유영철 강호순 김길태. 수원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 오원춘. 지난달에도 제주 관광 여성 살해사건과 경남 통영 아동 살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저런 놈을 우리의 세금으로 평생 먹여 살릴 수 없다. 당장 사형시켜라”라는 여론이 고조됐지만 여전히 사형이 집행되지는 않고 있다. 2년 전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형제 찬성은 83.1%이고 반대는 11.1%였다고 한다. 압도적 다수가 사형제를 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집행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사형제 부활로 인권 후진국으로 찍혀 버릴 것 같은 공포가 우리를 휘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험상 외국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남과 북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어떤 기준과 세계관으로 접근하는가에 따라 사형제에 대한 찬반 견해는 갈릴 수 있다. 사형제를 범죄 예방적 차원으로 접근한다면 사형으로 인해 살인사건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목소리에 공감할 수도 있다. 반면 정의(正義)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남의 목숨을 뺏은 자는 자신의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단순한 해답에 동의할 수도 있다. 나는 앞으로 사형제 찬반을 고려할 때 통일 한국도 꼭 상상해 볼 것을 권고하고 싶다. 영원히 분단돼 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내 고향에선 도둑질을 한 30대 후반 남성이 공개 총살됐다. 그는 개 수십 마리를 훔쳐 잡아먹었다. 그러나 그가 사형에 처해진 진짜 이유는 증거품을 소각하다가 ‘실수’로 김일성 배지를 함께 불태웠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이유는 공개되지 않는다. 사형 집행일에 당국은 수백 명 관중의 맨 앞에 사형수의 아내와 10대 미만 자녀 두 명을 앉혔다.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을 똑똑히 지켜보라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사형이 집행되기 전 아내를 강요해 “동무는 당의 신임을 저버렸으니 목숨으로 그 대가를 갚아야 합니다”라는 연설까지 하게 만들었다. 이어 사형 집행인 3명이 사형수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그 이상 자세한 묘사가 필요한가. 이런 일이 내 고향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탈북자들은 누구나 끔찍했던 공개 처형의 악몽을 떠올린다. 소를 잡아먹었다고, 전기선을 훔쳤다고 공개 처형되고 있다. 이런 전근대적인 야만의 법이 지배하던 북한에 ‘사형제’를 폐지한 선진적인 남한법을 도입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도무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조선족 오원춘은 체포 직후 경찰에게 “많이 맞을 줄 알았는데 때리지 않아 고맙다”고 말했다. 통일 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북한 출신 흉악범에게서 “총살될 줄 알았는데, 평생 매끼 이밥을 챙겨 주셔서 노동당보다 훨씬 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어야 할까. 통일은 통일항아리가 가득하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형제 존폐 문제는 분명 통일 이후 커다란 이슈로 떠오를 문제 중 하나다. 아마 사형을 하지 않는다면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남북에 넘쳐날 것이다. 과연 그 여론을 감당할 수 있을까. 통일되면 그때 가서 이런 후회 하지 말길 바란다. “이리될 줄 알았으면 흉악범들은 진작 사형집행할걸.”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201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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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노병-한인 청년들, 6·25 정전 기념행사… 워싱턴서 5년째 개최

    재미교포 청년단체인 ‘리멤버7.27’이 주도하는 6·25전쟁 정전 기념행사가 22일 워싱턴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렸다. ‘리멤버7.27’은 2009년 미 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캠페인과 로비 활동을 벌여 정전협정 체결일을 미국의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올해로 5년째를 맞은 이날 행사에는 80대 참전 노병과 20대 한인 청년 100여 명이 함께 손을 잡고 전쟁과 종전의 의미를 되새겼다. 행사는 전쟁이 터진 날을 뜻하는 ‘오후 6시 25분’에 시작해 정전일을 상징하는 ‘오후 7시 27분’에 촛불을 켜는 순서로 진행됐다. 참전용사 대표로 나선 윌리엄 웨버 씨(86)는 “2차 세계대전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전쟁이라면, 한국전은 세계를 공산주의로부터 구했던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공수 낙하산 부대 대위로 참전해 적의 수류탄에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은 그는 6·25전쟁이 ‘잊혀진 전쟁’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청년 대표인 한나 김 씨는 “참전용사들이 속속 세상을 떠나면서 후세인 우리 젊은이들이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다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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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주택시장, 회복 사이클 진입했다”

    세계경제가 유럽발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고 있지만 미국의 주택시장은 견고한 회복세로 접어들었다고 미국 대형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23일 주장했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대략 20년가량의 장기 주택경기 사이클인 슈퍼 사이클이 시작됐다”며 향후 3∼7년 동안 상승 사이클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미국 주택시장의 상승 기미는 주택가격의 상승, 고용 증가, 정부 지원 정책, ‘그림자 재고’의 감소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 상무부가 집계한 6월 단독주택 건설은 전달보다 4.7% 늘어 연간 기준으로 53만9000채에 이르렀고 5월 말 현재 신규주택 판매도 2010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2009년 경제 침체가 진정되면서 연간 55만∼60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주택 수요가 커진 것도 주택시장 회복세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매물로 나온 주택이 시장에서 판매되는 데 걸리는 기간이 2년 전에는 10개월이었지만 이제는 6개월로 줄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그림자 재고’란 주택 소유자가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금융기관이 압류했거나 압류 절차에 들어간 주택을 말하는데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네바다 텍사스 주 등에서 그림자 재고가 15% 감소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미 정부가 금융기관에 압류된 주택을 임대사업자에게 일괄적으로 매각하고 주택 저금리 재융자 프로그램을 확대한 것도 시장의 매물 부담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됐다. 골드만삭스는 투자자들에게 주택시장에 관심을 두라고 권고하면서 주택업종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투자매력’으로 상향 조정했다. 올 들어 블룸버그 주택건설업종 지수가 55%나 급등하는 등 주택 관련주들이 급상승하고 있다. 거시지표 둔화에도 주택경기가 홀로 회복세를 지속하면서 건축자재 운반용 대형트럭 판매도 지난해 대비 13% 느는 등 미국 자동차업체들도 함께 수혜를 입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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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김정은 방중 조건으로 핵실험 중단 요구”

    중국이 김정은의 방중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핵실험 중단을 약속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도쿄신문이 15일 복수의 북-중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직후인 4월 20일 북한 김영일 노동당 국제비서가 중국을 방문하자 중국이 이 같은 요구를 했다고 전했다. 당시는 많은 전문가가 북한이 장거리로켓 발사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5월경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예상할 때였다. 이에 북한은 중국의 요구에 반발하면서도 김정은의 방중이 중요한 외교 과제라는 점을 고려해 당분간 핵실험을 미루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 대신 북한이 핵실험 시 어느 정도의 여유를 두고 사전에 알리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한 채 협의 중이라는 정보도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과 2009년 2차 핵실험 때 모두 핵실험 직전에야 중국에 통지해 최대 우방국인 중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신문은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6월 9일에 핵실험은 계획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한 것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을 향한 메시지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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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르시 만난 클린턴 “빚 10억달러 탕감”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14일 이집트 카이로 대통령궁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과 만나 “현재의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다”며 “미국은 이집트의 민주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클린턴 장관은 무르시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취임한 이후 만난 최고위 미국 관리다. 미국은 과거 60년가량의 이집트 군사정권을 지지했고 무르시 대통령이 몸담았던 무슬림형제단은 이에 비판적이었다. 클린턴 장관은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이집트는 이집트 국민의 것이며 이집트 국민 스스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장관은 10억 달러(약 1조1500억 원)의 빚 탕감, 2억5000만 달러의 대출 보증, 6000만 달러의 미-이집트 기업 간 펀드 조성 등도 약속했다. 다만 클린턴 장관은 무르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이집트의 모든 정치세력이 합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만 언급해 무르시 대통령과 권력 갈등을 빚고 있는 군부를 세차게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클린턴 장관은 이튿날인 15일 무함마드 후세인 탄타위 최고군사위원회(SACF) 의장과 만나 “군은 국가 안보의 본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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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 세계마술올림픽 챔피언십 유호진 씨 亞 최초 그랑프리

    15일 잉글랜드 블랙풀에서 막을 내린 제25차 세계마술올림픽(FISM) 월드챔피언십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던 마술사 유호진 씨(20·사진)가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회 최고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대회 최연소 출연자인 유 씨는 머니퓰레이션(손재주)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북유럽 마술계의 전설’로 불리는 마르코 카르보(핀란드)를 꺾는 등 대회 2관왕을 차지했다. 유 씨는 2010년 부산 국제매직페스티벌 2위 수상을 시작으로 2010년 이탈리아 세계마술대회 그랑프리, 2011년 일본 세계마술대회 우승 등을 통해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마술연맹이 주최하고 50개국 150여 명이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머니퓰레이션 부문 1∼3위를 휩쓸고, 국가별 최다 수상(8개)을 기록하는 등 마술 강국의 저력을 과시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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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주성하]운명을 바꾸는 말

    ‘태성할머니’라고 있다. 그를 모르면 북한에선 간첩이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실제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자도 모른다. 1957년 8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위해 남포시 강서구역 태성리를 찾은 김일성에게 마을의 한 할머니가 다가와 말했다. “수상님, 얼굴이 많이 축간 것 같은데 너무 근심 마십시오. 종파놈들이 인민생활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도 다 잘살게 되었으니 일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기지 종파놈들이 이기겠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우리는 수상님을 지지합니다.” 당시 소련파와 연안파의 도전으로 큰 정치적 위기에 처했던 김일성은 훗날 “그 말에 큰 힘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그 할머니는 이후 영화의 주인공이 됐고 노동당 강연에도 수없이 등장하며 교과서에도 올랐다. 덕분에 태성리 인근 협동농장 고위 간부는 그 할머니 자손들이 대대로 물려받아 맡고 있다. 태성리는 물론 인근 농가들도 2층짜리 호화 저택으로 바뀌었다. 김일성 시대에 태성할머니가 있었다면 김정일 시대엔 정성옥이 있다. 1999년 스페인 세계육상선수권 여자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은 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 “결승지점에서 장군님이 어서 오라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고 대답했다. 이 말에 감동한 김정일은 정성옥에게 ‘공화국영웅’ 칭호와 벤츠500, 평양의 고급주택을 하사했고 우승 상금 6만 달러도 모두 갖게 했다고 한다. 북한에선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선수에겐 공화국영웅보다 낮은 노력영웅 칭호와 우승 상금 일부만 준다.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5개나 딴 유도 스타 계순희도 노력영웅에 불과하다. 정성옥은 선군 시대의 영웅으로 정신적 풍모의 귀감으로 떠올랐다. 그런 정성옥이 몇 년 뒤 조선신보에 “애인이 직접 채워 준 손목시계를 보며 힘을 내 우승했다”고 털어놓았다. 어쨌거나 정성옥 이후 국제경기에 나온 북한 선수들은 “장군님을 생각하며 힘을 짜냈다”는 상투적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같은 말에 특허료가 두 번 지불될 리 만무하다. 태성할머니와 정성옥 외에도 북한엔 말 한마디로 가문의 운명이 완전히 바뀐 사례가 많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신세를 한탄할 때 “우리 집안에는 왜 말 잘한 사람도 없냐”고 푸념한다. 하지만 이들은 집안에 말 잘한 사람보단 말 잘못한 사람이 없는 걸 큰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말로 팔자 고친 사람보다 목숨 잃은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북에서 살 때 기자의 동창 중에 ‘말반동’의 손자가 있었다. 1970년대에 할아버지가 재혼할 때 결혼식장에서 술에 취해 “재간도 좋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수령님도 두 번 갔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 날 새벽 할아버지는 보위부 차에 실려 어디론가 영영 사라졌다. 자식들이 함께 끌려가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손자는 태어날 때 반동의 자손이라는 굴레를 쓰고 나와야 했다. 그런 북한을 탈출해 마음껏 말할 수 있는 남쪽에 오니 행복했다. 하지만 요샌 말 한마디에 운명이 뒤바뀌는 북한의 비정상을 마냥 비난하는 게 찜찜하다. “‘각하 빅엿’ 한마디로 꼴찌 판사가 국회의원이 되고, 지난 총선에서 저질 막말로 논란을 일으킨 한 후보가 44%를 넘는 지지를 받은 남쪽은 그럼 정상이냐”고 되물으면 할말이 없다. “그래도 죽이진 않잖아” 이렇게 대답해야 하나.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201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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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보다 작은 명왕성에 위성이 5개나… NASA 허블 ‘5번째’ 발견

    명왕성의 다섯 번째 위성이 발견됐다. 12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과학자들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허블 우주망원경을 이용해 명왕성에서 9만3000여 km 거리의 둘레를 도는 지름 10∼24km의 위성을 발견했다. 너무 작은 데다 둥근 모양이 아닌 삐죽삐죽한 형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돼 반사되는 빛만으로는 현재 정확한 크기를 추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과학자들은 새로 발견한 위성에 P5라는 이름을 달았다. 명왕성의 가장 큰 위성인 카론은 반지름이 603∼606km로 1978년에 발견됐다. 이어 2006년 허블 망원경으로 두 개의 작은 위성 닉스와 히드라를 발견했다. 지난해 발견된 네 번째 위성은 P4로 명명됐다. 명왕성에 가장 가까운 위성은 카론이며 이어 P5, 닉스, P4, 히드라 순으로 회전궤도가 자리 잡고 있다. 과학자들은 반지름이 달(1738km)보다 작은 1151km에 불과하고 질량도 달의 6분의 1밖에 안 되는 명왕성이 이처럼 많은 위성을 거느릴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또 과학자들은 “명왕성의 모든 위성은 명왕성이 수십억 년 전 다른 큰 천체와 충돌할 때 형성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P5는 이러한 명왕성의 형성과 진화 이론을 설명해줄 새로운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30년에 발견된 명왕성은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많은 연구의 대상이었지만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IAU)이 행성분류법을 바꾸면서 왜소행성으로 격하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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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생산물 수매, 시장가격으로”… 김정은체제 첫 경제개혁

    북한이 각종 생산단위의 생산물 정부 수매가격을 시장가격에 맞추고 협동농장의 말단 생산단위인 분조(分組)의 구성원을 기존 10∼25명의 3분의 1 수준인 4∼6명으로 줄이는 것을 뼈대로 하는 새로운 경제개혁 조치를 내부에 공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과 기업소의 경우에도 국가가 원자재와 기계 등을 먼저 투자하고 생산물이 나오면 판매수입을 국가와 생산단위가 일정 비율로 나눠 갖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전문인터넷매체인 ‘데일리NK’는 10일 북한이 지난달 말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이른바 ‘6·28방침’을 내놓고 10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올해 초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로 내각 산하 소조가 농업개혁을 중심으로 한 경제개혁 방안을 연구해 왔다. ‘6·28방침’은 북한이 2002년 7월 1일 시작했던 ‘7·1경제관리개선조치’만큼 획기적인 것은 아니지만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발표된 첫 개혁조치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부 수매가격을 시장가격에 맞추면 생산자들이 생산품을 몰래 시장에 내다 파는 대신 정부에 판매해 국영상점 등이 물품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분조 구성원을 줄이면 생산을 위한 의사소통이 빨라지고 추가 생산품에 대한 개인 분배 비율이 높아져 전반적으로 생산 의욕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북한은 군(郡) 밑에 바로 리(里)를 두고 있으며 리마다 보통 협동농장 하나가 있다. 농장 안에는 부락 단위로 작업반이 있다. 한 개 작업반은 다시 5, 6개의 분조로 구성된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경제난 이후 대부분의 생산 기반을 잃은 북한 당국이 수많은 공장 및 농장에 생산시설과 원자재를 공급할 능력이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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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런 버핏 올해 또 19억 달러 기부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사진)이 19억 달러(약 2조1707억 원)를 자선재단에 9일 기부했다. 2006년 자신의 재산 440억 달러 중 99%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한 약속에 따른 것이다. 기부 선언 이후 버핏 회장은 매년 7월 자신의 재산 중 5%를 기부해 왔다. 나머지 재산은 버핏 회장이 세상을 뜬 뒤 한꺼번에 기부된다. 버핏 회장은 버크셔해서웨이의 클래스B 주식 2240만 주(19억 달러)를 올해 기부금으로 내놓았다. 이 중 15억 달러(약 1조7137억 원) 상당의 1840만 주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자선 단체인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간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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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단 비극의 축소판’ 박인숙 씨의 굴곡진 삶]북송길 몰래 숨겨간 200위안… 앉았다섰다 50번 따라하면 은밀한 곳에 감춰도 다들 걸려

    수기에는 강제북송 당시 중국 돈 200위안(약 3만6000원)을 숨긴 사연이 여러 번 등장한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끝까지 돈을 챙겨야 했던 애착 때문인 듯하다.“조선말을 아는 중국 여군이 여자들의 옷을 몽땅 벗기고 수색했다. 내가 늙은이여서 그런지 몸수색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200원(위안)을 감출 수 있었다. 꼬깃꼬깃 접어 비닐에 싸서 언제나 손에 쥐고 다녔다.”“압송 도중 벌판에서 소변을 보다가 그만 떨어뜨렸다. 발로 밟았다. 여군이 보고 있었다. 신발을 고쳐 신는 척하면서 얼른 돈을 쥐었다. 밤에 여군이 나를 툭툭 건드렸다. 돈을 내놓으라는 눈치여서 하는 수 없이 돈을 주었다. 그는 다시 적당히 접더니 내 손에 쥐여주었다. 눈물이 났다. 북송시키는 중국 정부는 증오스러웠지만 그 여군의 인도주의적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죽을 때까지 나의 심장을 울려줄 것 같다.”“북한 보위부가 6명씩 불러 옷을 몽땅 벗기고 ‘앉았다 섰다’를 50회 시키면 무엇이든 빠져나온다. 은밀한 곳에 돈을 숨기는 것이 일반화되었다기에… (그대로) 따라 하지 않은 덕분에 돈을 살릴(챙길) 수 있었다.”“나는 이 돈을 마지막까지 살렸다. ○○집결소에서 찾아온 ○○가 옆을 슬며시 지나갈 때 던져 그 어려운 ‘보관’을 끝냈다. 그는 그 돈으로 쌀 10kg을 샀고 나에게도 밥을 지어 왔다.”}

    • 20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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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단 비극의 축소판’ 박인숙 씨의 굴곡진 삶]음악재능 물려받은 아들, 朴씨 탈북뒤 농민으로…

    박인숙 씨의 문학적 감수성과 다재다능한 면모는 수기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월남자의 딸에겐 이런 재능은 고뇌의 깊이만 더할 뿐이었다.“○○가 집에 왔었다. ‘걜 공부시켜 성공 못합니다. 체육을 시키시오.’ 나는 도(道) 스케이트 대회 인민학교(초등학교) 속도경기(스피드스케이팅) 500m 부문에서 공화국(북한) 기록을 세우며 1등을 했다. 친척들은 ‘신금단(북한 여자중거리육상 스타)이는 체육을 너무(많이) 해서 아이를 못 낳는다’며 (나에게도) 체육을 그만하라고 했다.”사실 박 씨의 천부적 재능은 음악 분야에 있었다. 그는 최승희무용학교 음악과에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출신 성분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그의 아들도 마찬가지 신세였다.“아들이 여섯 살 때 음악선생이 바이올린을 배워(가르쳐)주었다. 나는 말렸다. 나처럼 가슴 아프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닮아 청음 능력이 남다른 것이 선생으로 하여금 (아들 음악교육에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금성고등에 추천받았으나 외할아버지 문제로 불합격됐다.”박 씨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살리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았다. “군대에 보냈다. 제대군인증과 당원증이라도 있어야….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군에서 보내야 했다.” 그 덕분에 아들은 어머니의 꿈이었던 평양음악대학을 나온 뒤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박 씨 자신은 한국에 온 뒤에야 음악을 통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북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세계(정상)급 오페라단과 교향악단의 연주를 보면서 아들을 생각했다. 꿈만 같았다. 음악을 사랑하는 동료들과 외국 음악이 들어 있는 카세트를 듣다가 곤욕을 치렀던 나는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수기 앞부분에는 박 씨 필체의 노래 가사와 악보들이 적혀 있다. 한 음악전문가는 “음표 표기가 전문가 솜씨”라고 평가했다. 박 씨는 자신의 탈북으로 촉망받는 음악가에서 추방돼 농민이 된 아들에게 견디지 못할 죄책감을 느꼈다. 결국 박 씨는 아들을 살리려고 재입북을 선택했다. 그런 박 씨의 마음속엔 아들을 통해 음악가의 꿈을 대리 실현하려는 모성애가 깔려 있지 않았을까.}

    • 201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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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단 비극의 축소판’ 박인숙 씨의 굴곡진 삶]“월남쟁이 딸 손가락질… 郡 1등에게 돌아온건 불합격”

    아버지와 헤어진 후 박인숙 씨의 인생은 180도로 달라졌다. 월남자의 딸은 아무 기회도 얻을 수 없었다. “인민학교 5학년 때 군(郡) 수학 올림픽에서 1등을 하였지만 약속된 상품은 나오지 않았다. ‘월남쟁이’ 딸이 1등을 해 떠들썩한 게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게 이유였다. 다음 날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쟤는 아무리 잘해도 쓸데없다’라고.” “1957년 인민학교를 졸업하면서 최승희무용학교 음악과에 추천받았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보고 싶은 아버지였건만 나에게는 아버지란 존재가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내 맘대로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어머니에게 왜 아버지를 붙잡지 못하고 잃어버렸느냐고 철없이 엉엉 울었다.” 그런 박 씨에게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너는 알아야 한다. 남이 한 발자국 걸어갈 때 너는 열 발자국 뛰어야 한다는 것을….” “(중학교) 졸업식 날. 최우등생 호명과 상장 수여식이 있었다. 수상자 3명 중 나는 없었다. 나는 8학년까지 한 번도 최우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성분이 나쁘다고 억지로 빼놨던 것이다. 눈물이 났다. 눈물이 안 나는데 엉엉 운 적은 많았어도 눈물이 나는데 울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반동일지라도 (내가) 최우등이야. 그렇지 않은가.” “이사할 때 아이들이 기차를 따라오며 소리쳤다. ‘잘 가라. 다시 만나자. 인차(곧) 오너라.’ 며칠 뒤 ○○이가 왔다. 그날 밤 일로 학교 민청총회에서 두들겨 맞았다는 것이다. 열아홉 살까지 한마을에서 살던 죽마고우와 헤어지며 우는 것도 반당적 행위라니….” “졸업생 3분의 1이 대학에 갔지만 나는 1인자였어도 추천을 못 받았다. 어머니 몰래 울고 또 울었다. 어머니는 마치 자기가 죄지은 사람처럼 눈치를 살피곤 하였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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