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슴까지 차오른 물…‘우린 죽지 않는다’ 말하며 공포 견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1일 22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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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레이호 마지막 구조된 선원 인터뷰

“‘우리는 죽지 않는다’…그 말만 계속했어요.”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 해안에서 전도된 자동차 운송선 골든레이호의 ‘마지막 구조자’인 선원 A 씨는 구조 다음 날인 10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 만나 극한의 공포를 견딜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퇴원 직후 브런즈윅 모처에서 만난 그는 수척했지만 안정을 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마지막에 구조된 A 씨와 나머지 3명 등 초기 실종자 4명은 가슴까지 차오른 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관실 파이프 위에 앉아서 65.5도까지 치솟는 열기와 싸우며 구조를 기다렸다. 구조작업에 참여한 인양업체 ‘디파이언트 마린’의 팀 페리스 대표는 이날 AP통신 인터뷰에서 “이들은 인간이 처한 상상 가능한 최악의 상태에 있었다”며 이런 상황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A 씨는 자신과 동료 3명이 90도로 기울어진 선체에서 2016년 리우데자이루 올림픽에서 기적의 드라마를 만든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 선수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당시 박 선수는 패색이 짙은 결승전에서 혼잣말로 ‘나는 할 수 있다’를 되뇌었고 막판 역전승을 거두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에게 전날 미 해양경비대(USCG)의 로이드 해프윈 중위가 “밖에서 선체를 밤새 두드렸던 건 결코 (생존자들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우리의 응답 메시지였다”고 밝혔다는 말을 전하자 잠시 목이 멘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해양수산부는 미 USGC 및 국가교통안전위원회와 공동으로 원인 규명에 착수할 일정을 남겨놓고 있다. 다음은 마지막 A 씨와의 일문일답.

―사고 직후 상황은….


“가슴까지 물이 차올랐고 칠흑 같은 어둠 속 시간의 흐름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인근 다른 공간에 있던 3명과는 큰 소리로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선내에서 우리가 벽을 두드리며 낸 생존 신호는 본능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려야 했다. 주변에서 뭐든 집히는 딱딱한 걸 잡고 밤새 선체 벽면을 두드리며 생존 신호를 보냈다.”

―구조대의 응답이 들려왔을 때 어떤 심경이었나.

“그전까지는 70% (확률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바뀌었다. 이제는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안도감이 들었다.”

―어떻게 견뎠나.

“‘우리는 죽지 않는다’, 그 말만 계속 서로 했다. 예전에 (박상영) 펜싱 선수가 ‘할 수 있다’라는 주문을 외지 않았나. 그 상황에서 서로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A 씨는 먼저 구출된 다른 선원 3명과 달리 홀로 강화유리벽 안에 갇혀 마지막까지 구조를 기다려야 했다. 구조대는 지름 7.6cm 구멍을 선체 위에 여러 개 뚫어 가로 61cm 세로 91cm의 큰 구멍을 만든 뒤 다른 3명을 먼저 구했다. 하지만 강화유리벽 안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그를 위해 구조대가 다시 35m 선체 밑까지 내려와야 했다. 그는 “여러 명의 구조대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밑으로 내려왔다. 망치를 써도 강화유리가 깨지지 않자 파이프를 자르는 특수 장비를 동원해 나를 꺼내 구출했다”며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고 후 처음 본 구조대원과는 무슨 말을 했나.

“나를 보자마자 생수병을 내밀며 ‘물부터 마시라’고 하더라(웃음). 사실 사고 직후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던 터라 심한 탈수 상태였고 이대로라면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 물은 내게 ‘생명수’였다.”

A 씨는 “구조대원의 안내로 선체 바깥으로 이동하는 거리 또한 상당했다”면서 “(구조대가) 절단하기 어려운 파이프를 자르고 새 길을 닦아 탈출구를 확보해 놨다”고 회상했다. 그는 구출 직후 손을 번쩍 들어 구조대에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옥 같은 환경에서 살아 돌아온 ‘마지막 구조자’로 불리며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것.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던 것뿐”이라며 “스포트라이트는 자신의 몫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조대에게 공을 돌렸다.

“우리는 갇혀서 가만히 밤을 새웠지만 구조대는 (파이프 등을) 자르고 없던 길을 만들고 우리를 찾기 위해 밤을 새웠다. 강도가 다르다.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브런즈윅=김정안 특파원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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