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도체학과 4곳, 정원 1.5배 이탈… “상당수 의대 간듯”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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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7명 모집에 추가합격 73명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취업이 보장된 고려대, 서강대, 연세대, 한양대 반도체 계약학과에 올해 합격한 학생들이 대거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 포기율이 정원의 150%를 넘었다. 전문가들은 “이탈한 학생들 상당수가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17일 종로학원은 고려대, 서강대, 연세대, 한양대 등 4개 대학 반도체 학과의 정시 등록 포기율을 분석한 결과 모집 정원 대비 155.3%가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 학과는 정시에서 총 47명을 모집했는데, 추가 합격자만 73명이 나왔다. 정원의 1.5배가량이 합격한 뒤 등록을 포기한 것이다.

종로학원은 “고려대와 연세대는 80∼90%가, 서강대와 한양대는 절반 이상이 의대 진학을 위해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나머지는 더 상위권 대학의 이공계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삼성-SK 취업 보장에도 의대로 떠나”


반도체학과 등록포기

한양대 모집정원의 3배 이탈 ‘최다’
‘평생 자격증’ 의대에 학생들 몰려
“반도체인력 8년후 5만여명 부족”



한양대 반도체공학과는 모집 정원(16명)의 약 3배인 44명이 등록을 포기해 가장 타격이 컸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0명 모집에 13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이 학과들은 추가 합격자마저도 등록을 포기한 것이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11명 정원에 8명이,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10명 정원에 8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앞서 서울 주요 대학 반도체 학과 ‘수시’에서도 총 136명을 뽑는데 199명의 추가 합격자가 발생한 바 있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삼성전자와 취업이 연계돼 있어 졸업 뒤 기본 요건만 갖추면 삼성전자에 입사한다. 나머지 세 학과는 SK하이닉스와 취업이 연계돼 있다. 학점 등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것. 반도체 분야는 인력 수요도 많고, 글로벌 기업 이직이나 창업 등 다양한 진로 확장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하지만 이런 학과들조차 ‘안정적인 고수익’ ‘사회적 지위’ ‘평생 자격증’을 내세운 의대에 학생을 빼앗기고 있다. 입시업계에서는 등록 포기자 중 상당수가 다른 대학 의대를 선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전문직 면허증이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의 차이는 수험생 입장에서 매우 크기 때문에 직업적 안정성 측면에서 반도체 학과들이 의대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KAIST 학생들도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의대에 갈 정도이니 수험생들은 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계에서 학생들이 선망할 만한 ‘이공계 영웅’ ‘반도체 전문가 성공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현 사태의 이유로 거론된다.

지난해 12월 산업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분야는 1752명의 인력이 부족하다. 김기남 삼성전자 종합학술원 회장은 15일 한림대 도헌학술원 학술 심포지엄에서 “저희도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어 봤지만 잘 안 된다”며 “국가와 학계, 산업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도 “최근 반도체 학과 입학 예정 학생들의 이탈 소식에 안타까웠다”며 “2031년에는 학사, 석사, 박사 등 약 5만4000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이과 최상위권 학생들에겐 안정적 미래 수익뿐 아니라, 최고의 인재로 성장한다는 만족감도 중요하다”며 “민간 최고 전문가를 교수로 데려오는 등 대학의 적극적인 투자와, 반도체 학과 커리큘럼을 고도화시킬 수 있는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서울 반도체학과#정원 1.5배 이탈#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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