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IS 수장 알 바그다디, 미군 특수부대 작전 중 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7일 2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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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8)가 미군의 공격 과정에서 숨졌다. 2014년 6월 바그다디가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 건설을 발표한 후부터 5년 4개월간 이어진 미국의 IS 격퇴전도 마침표를 찍었다. 시리아 미군 철군에 대한 비판 및 탄핵 위기에 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자살폭탄 조끼로 폭사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바그다디 생포 혹은 사살은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 우선 순위였다. 미 특수부대가 위험하고도 과감한 야간 급습작전을 벌였고, 그를 쫓아가자 그는 죽음의 터널 끝에 이르러 자폭했다”고 설명했다. 바그다디를 ‘야만스러운 괴물’로 규정한 그는 “미국이 전 세계의 최고 테러리스트에게 정의를 가져다주었다. 어젯밤은 미국과 전 세계에 위대한 날”이라며 “그는 잔혹한 짐승이었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5월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 사살 사실을 발표하며 “정의가 구현됐다”는 표현을 썼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겁쟁이’ ‘개’ ‘괴물’ ‘짐승’ 등 시종일관 격정적 언어를 사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헬기 8대가 작전에 투입됐을 때 폭탄이 설치됐을 가능성에 대비해 정문을 피해 진입했다. 작전에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과정이 위험했기 때문에 작전이 모두 끝난 뒤 지금 발표한다”고 덧붙였다. 또 바그다디의 DNA 등 생물학적 증거를 통해 그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바그다디가 군견들에게 쫓겨 막다른 터널로 도망가다가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렸으며, 그의 자녀 14명 중 3명은 함께 폭사했고 11명은 안전하게 빼냈다고 밝혔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폭탄조끼를 입었던 아내 둘은 조끼를 터뜨리지는 않았으나 사망했다는 점에서 사살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이번 작전을 수행하기 전 러시아 영공에 머물렀다. 러시아, 터키, 시리아, 이라크, 시리아 쿠르드족이 이번 작전에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특히 시리아 쿠르드족은 미국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 줬다고도 언급했다.

이날 CNN은 사전 녹화했던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의 인터뷰도 공개했다. 에스퍼 장관은 “대통령이 지난주 작전을 승인했다. 가능하면 바그다디를 생포하되 생포가 어려우면 죽여도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바그다디를 불러내 항복하라고 했지만 그가 거부했다. 바그다디가 지하로 들어갔고 그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그가 스스로 폭탄조끼를 터뜨렸다”고도 했다. 에스퍼 장관은 “이번 작전에서 미군 2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지만 이미 군으로 복귀했다”고도 밝혔다.

●IS의 지난 5년

IS는 지난 5년간 석유 및 유물 밀거래, 인신매매 등으로 통치 자금을 모았다. 이를 통해 중동 전체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극단주의에 빠진 젊은이들을 모아 각종 테러, 암살, 공개 처형 등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샤리아’라는 이슬람교 율법에 따라 주민들을 엄격히 통치하고 이를 거부하면 여성과 어린이도 잔혹하게 죽였다. 같은 이슬람교도라도 시아파 신자나 정부군은 공개 장소에서 살해하고 그 과정을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올려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수법을 썼다.

기세등등하던 IS는 미국과 러시아 등의 대대적 공습, 지상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쿠르드족 민병대 등의 반격에 밀렸다. 시장조사회사 IHS 마킷에 따르면 2015년 1월 기준 포르투갈 면적에 맞먹는 9만800㎢를 통치했던 IS는 올해 2월 지배 면적이 50㎢로 줄어 사실상 궤멸됐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시리아 내 미군 철수를 공식화했다. 힘의 공백 상태가 생긴 시리아 북부를 터키 군이 이달 9~22일 침입해 쿠르드족을 공격하자 미국 내부와 국제 사회에서 거센 비판이 일었다.

바그다디의 사망으로 IS는 더 이상 그 세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9·11테러의 주동자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에서 IS로 극단 조직의 주도권이 넘어갔듯 그 뒤를 이을 ‘제2의 IS’ 탄생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양극화 등으로 중동 각국에서 기성 체제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넘쳐나는 데다 쿠르드족을 배신하며 역내 불안정을 키운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도 이런 기류를 뒷받침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IS는 바그다디의 사망으로 세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9·11테러의 주동자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에서 IS로 극단 조직의 주도권이 넘어갔듯 그 뒤를 이을 ‘제2의 IS’ 출현 가능성도 없지 않다.

● 트럼프, 정국 주도권 되찾기에 활용

트럼프 대통령의 2017년 1월 취임 후 첫 ‘중대 발표’가 하원의 탄핵 조사와 시리아 철군 결정의 후폭풍 속에서 이뤄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재선 승리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정적(政敵)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조사를 압박했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 의혹을 뒷받침할 증언들이 속속 쌓이면서 탄핵 가능성이 높아지자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백악관은 최근 탄핵 대응을 위한 정기 회의를 열기 시작했고 형사소송에 정통한 변호사들도 대거 법무팀에 투입했다. 대통령과의 견해차로 경질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의회 증언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최근 두 차례나 NBC 기자에게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를 헐뜯는 음성메시지를 남겼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궁지에 몰렸던 트럼프 대통령은 바그다디 사망을 통해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결정적인 승리를 챙긴 셈이다. 이번 바그다디 작전을 통해 통치력을 얼마나 회복할지, 이를 바탕으로 시리아 철군으로 입었던 상처에서 회복해 탄핵 조사에 정면 대응해 나갈지 주목된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발표에 세계 각국도 일제히 축하를 보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이 인상적인 성취를 이루고 바그다디를 제거한 것에 축하를 보낸다”고 밝혔다. 플로렌스 파를리 프랑스 국방장관도 트위터에 “바그다디의 죽음과 상관없이 IS 잔당 소탕을 계속하겠다. 우리의 파트너들과 새로운 중동 지역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썼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김예윤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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