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꼬지 말라’ 범시민예절의 탄생, 신분사회를 허물다[설혜심의 매너·에티켓의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3일 22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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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
궁정인 아닌 모든 시민 대상으로 몸가짐 예법서 펴내자 폭발적 반응
학교 교육과정으로 채택되기도
신분제 경계 무너지던 흐름 가속

16∼19세기 영국 어린이 교육시설을 그린 그림. 16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가 저서 ‘소년들의 예절론’에서 
주창한 새로운 시민예절은 유럽 학교 교육과정의 근간이 되었다. 에라스뮈스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내면(마음가짐)과 외양(몸가짐)이
 하나 된 새로운 매너를 강조했는데, 이는 중세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예법을 변화시킴으로써 신분사회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6∼19세기 영국 어린이 교육시설을 그린 그림. 16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가 저서 ‘소년들의 예절론’에서 주창한 새로운 시민예절은 유럽 학교 교육과정의 근간이 되었다. 에라스뮈스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내면(마음가짐)과 외양(몸가짐)이 하나 된 새로운 매너를 강조했는데, 이는 중세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예법을 변화시킴으로써 신분사회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
에라스뮈스 ‘소년들의 예절론’





‘용변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하지 마라.’ 16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1466∼1536)가 쓴 ‘소년들의 예절론(De Civilitate Morum Puerilium)’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말년에 접어든 1530년 오랫동안 교류했던 아돌프 공의 열한 살 아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예법서는 출간되자마자 곧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16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의 초상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6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의 초상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그 반응은 학자들의 평가와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칼뱅의 멘토로 유명한 기욤 뷔데는 에라스뮈스가 ‘이런 하찮은 글’로 마지막 남은 기력을 낭비하고 자신의 명성을 추락시켰다고 혹평했다. 에라스뮈스 자신도 책의 헌사에서 “철학에서 가장 고상하지 못한 분야인 매너에 대한 글”이라면서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소년들의 예절론’은 매너의 역사에서 혁명적인 저작으로 평가된다. 그가 내세운 매너의 이상을 ‘시빌리테(civilite)’라고 부른다.

무엇보다도 에라스뮈스는 내면과 외양의 일치라는 고대의 원칙을 부활시켰다. 주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기 자신까지 속일 만큼의 숙련을 강조했던 궁정인의 매너에서 벗어난 것이다. 내적 도덕성은 외적 행동으로 나타나기에 몸가짐에 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펼쳐진다. 가장 먼저 다룬 주제는 ‘마음의 창’이라 불린 눈이었다.

‘눈은 고요하여야 한다. 존경스럽고 침착하게 떠야 한다. 냉혹하게 뜨지 마라. 이는 잔인함의 표지다. 뻔뻔하게 뜨면 안 된다. 불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쏘아 보거나 눈동자를 굴리지 마라. 이는 미친 자의 특징이다. 마치 반역자나 모반자처럼 흘낏흘낏 보아서도 안 된다. 입을 딱 벌리고 정신없이 보아서도 안 된다. 이는 바보나 하는 짓이다. 끊임없이 눈을 깜박거리는 일도 좋지 않다. 변덕스럽다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자세도 매우 중요했다. 특히 다리에 관한 내용은 후대의 예법서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강조되었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거나 서 있는 것, 다리를 꼬고 앉는 일은 스스로가 허풍선이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앉을 때는 무릎을 붙여 다리를 모으고 서 있을 때는 살짝 다리를 벌리는 정도여야 한다.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은 불안함의 표지이고 서 있을 때 꼬고 있는 것은 어리석음을 표시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 과정’에서 에라스뮈스로 인해 시빌리테라는 용어가 고유한 특징을 얻었고 그것은 봉건사회 이후의 특수한 한 단계를 표현하는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시빌리테는 궁정이 아닌 시민과 관련이 있었다. 시비타스(civitas)에서 비롯한 시빌리테는 조직화한 정치적 커뮤니티라는 고전적 개념과 관련이 있었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독립된 도시국가들이 발흥하자 이 말은 문명화된 도시적 삶과 연결되었다. 그 후 점차로 시빌리테는 질서가 잘 잡힌 정치적 공동체의 시민에게 기대되는 적절한 행동, 즉 시민적 예절이라는 의미를 띠게 되었다.

이처럼 에라스뮈스의 시빌리테는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중세의 매너가 상류층의 자산으로 기능했다는 점에 비추어 혁명적인 변화였다. 나아가 그가 주창한 예의범절은 학교의 교육과정이 되었다. ‘소년들의 예절론’이 유럽에서 이른바 ‘바른생활’ 과목을 탄생시킨 주역이었던 셈이다. 특히 종교개혁을 성공시킨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는 그야말로 ‘지나칠 정도로’ 이 텍스트를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 그런 지역들의 학교는 교육과정이 매우 엄격했는데, 예절 교육은 그런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에라스뮈스의 혁명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매너에 시대와 공간, 사회상에 따라 변화하는 유동성을 부여한 것이다. 중세에는 왕이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에 올리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 유행이 지나갔으며, 한때는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모습이 중용의 표시였으나 이제는 졸린 것처럼 보이고, 과거에는 꽉 다문 입이 정직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이제는 마치 다른 사람의 숨을 들이마시기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품이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이고 그것을 사람들은 곧장 알아보게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변화를 긍정하는 일은 에라스뮈스가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르네상스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대로, 공동체나 신분제 같은 중세사회의 견고한 경계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사회적 배경이 다른 개인들이 함께 뒤섞였고, 집단적 또 개인적으로 상승과 하강의 사회적 순환이 가속화되었다.

이런 변화의 시대는 새로운 의사소통 양식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소년들의 예절론’의 엄청난 성공은 그 사회적 필요에 에라스뮈스가 매우 시기적절하게 대응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회적 개인’을 만들어내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훈련이 예절 교육이라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


#16세기#최고의 인문주의자#에라스뮈스#소년들의 예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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