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율 前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청와대 사람들은 모럴이 없다, 집권386 다 퇴장해야”

  • 신동아
  • 입력 2019년 11월 23일 10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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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권력집단으로 변질됐다
●진보라는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는 균열
●참여연대가 범법자 가족까지 걱정하나
●권력형 비리 아니라는 건 억지
●정경심 WFM 사기 투자 모르고 할 수 없다
●조국 공직자윤리법 위반했다
●조국 사태 황당 주장 대표적인 게 유시민

‘조국 사태’가 여론을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랐지만 각 진영 내부에는 각각의 균열이 있다. 갈라진 보수우파 진영은 광화문에서 합쳐진 듯 보이지만 자유한국당에는 마음을 주고 있지 못하다.

더 큰 관심사는 좌파 진영 내 균열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분열 ‘트라우마’를 가진 친노·친문이 최대주주가 되면서 집권 여당 내 분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컸다. 단일대오는 굳건해 보였다. 간혹 다른 목소리가 불거져 나와도 금방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국’이라는 면도날로 갈라졌다.

작금의 좌파 진영 내 분열이 심각해 보이는 것은 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론적 입장 차이가 아니라 ‘정의냐 공정이냐’ ‘양심이냐 거짓이냐’는 진보의 정체성을 둘러싼 균열이라는 점에서다.

좌파 진영 내 균열의 중심

김경율 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 겸 경제금융센터장(회계사)은 이 균열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 저격수’로 재벌개혁에 앞장섰던, 참여연대의 얼굴이나 다름없었던 그는 ‘조국 사태’ 동안 내부 비판을 하다가 결국 참여연대를 떠났다.

그와 인터뷰 약속을 하고 나서 ‘얼마나 외롭고 허탈하고 마음고생이 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 만나보니 담담하고 차분해 보였다. “온갖 생각에 잠을 잘 못 잔다”고 했지만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그가 쓰는 페이스북에서는 가끔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욕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인터뷰 내내 분노나 공격의 언어보다는 내면을 향한 성찰의 언어가 많았다.

- 요즘 하루 일상은 어떤가.

“별로 다르지 않다. 재벌개혁과 관련해 수시로 튀어나오는 뉴스들을 분석하고 연구한다. 다만 옛날 같으면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원들과 함께 했을 텐데 지금은 두세 명 나와 뜻이 맞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따로 텔레그램 방에서 하고 있다. 조국 전 장관 펀드 관련 팔로업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연세대 철학과 88학번이라고 했다. 대표적 86세대라 할 만한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 어떻게 참여연대와 연(緣)을 맺었나.

“대학에서 사회과학 서클 활동을 했다. 졸업 대신 노동운동의 길을 택했다. 4학년 때 성남 노동 현장으로 가서 일했다. 1년 뒤 소련이 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현장에 있던 학출(대학생 출신)들이 일제히 빠져나가면서 각자 먹고살 길을 찾아 나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학 졸업장도 없고 이렇다 할 자격증도 없으니 막막했다. 학원 강사를 하다 1995년 복학해 졸업했고, 1998년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곧장 내 발로 참여연대를 찾아가 ‘일하고 싶다’고 했다. 소액주주 운동이 막 시작될 때였다.”

- 그때 참여연대 분위기는 어땠나.

“장하성·김기식 씨를 중심으로 서울 안국동 종로경찰서 앞에 사옥을 얻어 막 활동을 시작할 때였다. 이슈를 계속 만들면서 언론의 주목도 많이 받았다. 나는 상근자는 아니었다. 교수 변호사 회계사들이 중심이 된 전문 자문역으로 어떤 이슈가 터지면 재무적 문제 제기와 분석에서부터 자료 제공까지 비상근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주주총회장에도 많이 다녔다. 그러다 2007년인가, 2008년에 김상조 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끌던 경제개혁연대가 분리·독립해 나가면서 인력의 80%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참여연대가 타격을 많이 입었다.”

- 김 정책실장이 독립한 이유는?

“원래 참여연대 설립 때부터 경제개혁연대는 분리·독립 운영한다는 게 취지였다. 생각의 차이도 있었다. 장하성, 김상조 씨가 주주 자본주의 견해에서 재벌 개혁을 이야기했다면 참여연대는 주주뿐 아니라 노동자까지 생각하는 이른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견해로 사안을 넓게 봤다. 나는 김기식 선배가 ‘너는 남아’ 한마디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20명 중 16명이 나가버려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러다 론스타 ‘먹튀’ 논란, 쌍용차 회계분식,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삼성바이오 건으로 존재감을 되찾았고 다시 똘똘 뭉쳐 일했다.”

허술할 대로 허술했던 적폐청산

- 이 정권이 출범하면서 기대감이 컸을 텐데.

“4년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 될 때 ‘민주 세력이 국회 다수가 되고 정권을 잡는다는 것을 공약으로 삼겠다. 공약에 실패하면 연임하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뒤집어 말하면 ‘계속 일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탄핵 사태가 왔고 진보 진영 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민단체가 권력 감시 기능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권력을 창출하는 일에 일조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정권교체에 성공했을 때 문재인 정부의 개혁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도 당연히 있었다. 나도 물론 그런 생각들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집사람에게 ‘이제 우리 같은 시민단체가 할 수 있는 감시와 견제라는 게 뭐가 있을까’ 농담처럼 한 말이 기억난다. 돌이켜보면 방심일 수도 있는데 그때는 참여연대가 할 일이 정말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이번 조국 사태로 기대가 깨진 게 아니라 그전부터 실망했다는 말로 들린다. 구체적인 경험이 있었나.

“알다시피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처별로 적폐청산태스크포스(TF)팀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나는 산업자원부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 3군데를 뛰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선 게 아니라 제안이 왔다.

주로 활동한 산자부의 경우 부처와 청와대에서 동시 제안이 왔다. 내가 워낙 자원외교 문제에 시간을 많이 투입해 그 나름대로 전문가라는 평판이 있었고 나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신문에 난 TF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황당했다. 이름이 빠져서가 아니라 위원 12명 중 문제의식이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설상가상으로 대다수가 자원외교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압도적 지지로 출범한 정부가 이래도 되나”

하도 화가 나서 페이스북에 ‘성범죄자 조두순한테 성범죄 근절 위원을 맡긴 것과 뭐가 다르냐’고 썼다. 청와대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왜 이름이 빠졌느냐’는 거였다.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묻나, 나는 서운한 거 없고 내 생각은 페북에 다 썼으니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나를 뺀 사람이 민주당 모 의원인데 다시 넣으라고 했으니 다시 들어갈 것이라는 답이 왔다. 산자부에서도 전화가 왔다. 깜빡 실수로 까먹었다는 거였다. 어떻든 내가 뒤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가스공사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세 곳에 각각 4명씩 12명이던 위원이 13명이 됐다.”

- 이 정부가 거의 올인하다시피 한 적폐청산TF가 그렇게 허술하게 구성됐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막상 활동을 시작하니 더 가관이었다. 내게는 ‘가스공사가 제일 크니 거기 넣겠다’고 했다. 사실 가스공사가 제일 문제가 없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더 웃겼던 건 활동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현장 답사차 마다가스카르에 1주일 다녀오자는 거였다. 오고 가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리는 그 먼 곳에 가서 기껏 한다는 일도 대사 만찬 등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나는 안 간다고 했다. 꼭 가야 한다면 활동이 끝난 후 가는 게 맞지, 일도 하기 전에 해외부터 가느냐 따졌다. 초장부터 내가 이렇게 나오니 요주의 인물이 됐다. 산자부는 내가 지적하는 건건마다 반박 자료를 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국장급 간부가 아예 회의 전에 따로 만나자고 했다. 내가 만남을 거절하면 ‘편한 동선 어디든 말해주면 맞추겠다’며 집요하게 붙었다.”

- 그렇게 해서 만나면 무슨 대화를 나눴나.

“다음 회의에 다룰 안건이라며 미리 설명하면서 양해를 구한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멕시코 볼레오 광산’ 이야기를 할 건데 이런 점은 이러하니 내가 이해해줘야 한다는 식이었다. 이전 정부에서도 이런 식으로 공무원들이 일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개혁이란 것이 참으로 힘든 작업이겠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다. 어떻든 그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듣되, 내 생각을 바꾼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는 그러다 점점 회의에서 왕따가 되기 시작됐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내가 뭘 지적하면 반응 없이 진도를 쭉 뺐다(웃음).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면 자기들끼리 모여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언뜻 들리는 말들이 ‘자원외교는 꼭 해야 한다’ ‘김경율은 너무 현실을 모른다’는 거였다. 관료와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나를 왕따시키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급기야 내게 회의가 열리는 것조차 알리지 않았다. 이른바 물을 먹이는 전략이었다. 회의 시작 초중반까지만 해도 설득 모드였는데 아예 버리고 가자고 결정한 거였다. 마지막 보고서는 얼마나 또 그럴듯하게 포장돼 나왔는지 내용은 하나도 없는데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처럼 펴냈다. 하긴 관료라는 사람들이 보고서 내는 건 귀신 아닌가. 교육부나 중기부도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부 출범 후 6개월여가 지나면서부터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깨진 상태였다”고 했다.

“올 초 참여연대가 문재인 정부 2주년을 맞아 적폐청산 이슈 리포트를 세 권으로 발행했다. 열 몇 개 부분으로 나눠보았는데 모두 낙제점이었다. 내가 개입했던 부처뿐 아니라 모든 부처가 다 그랬다.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구나 나는 경제금융센터소장으로서 재벌개혁이나 경제민주화에서 진척이 전혀 없으니까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출범한 정부가 이래도 되나 하는 자괴감이 컸다.”

9월 2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모펀드에 관한 질문에 자료를 보여주며 답하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9월 2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모펀드에 관한 질문에 자료를 보여주며 답하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웅동학원은 어땠나? “정말 험했다”

- 적폐청산 컨트롤타워가 조국 전 장관 아니었나.

“맞다. 그에 대한 실망감은 이번 사태 전부터 이미 시민단체 안에서도 팽배했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 취임 1년 정도 됐을 때인가, 자신이 적폐청산 총괄 책임자로서 성과를 내겠다고 공식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막상 평가해보니 너무 형편없었다. 권력의 핵심으로 책임이 막중한데 한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그때부터 갖고 있었다.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회에서도 ‘형편없다. 실망이다’ 이런 평가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장관으로 지명됐다.”

- 그러다 사모펀드니, 웅동학원 문제가 터져 나왔는데.

“그때만 해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뉴스만 듣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가 (정경심 씨가 차명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WFM을 좀 들여다봐달라 해서 2017년 삼일회계법인이 낸 WFM 감사보고서를 보았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강조사항’ 항목에 보통 감사보고서라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내용이 있었다. (휴대전화 사진을 보여주며) 다 공개된 자료이니 누구라도 볼 수 있다.”

- 내용이 뭔가.

“2016년, 2015년 재무제표 모두 엉망이다, 최대주주 변경, 대표이사 변경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를 인수했다가 곧바로 처분하고 신규사업을 추진했다가 또 곧바로 처분하고 기계장치를 사겠다고 20억 원 내주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회수하고…. 일반 회사라면 있을 수 없는 거고 질이 매우 안 좋은 경우다. 감사보고서에 회사에 대한 나쁜 평가를 그대로 적시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얼마나 문제가 많으면 일일이 적어놓았겠나. 사람에 비교하면 ‘이 사람을 조사해보니 성범죄 전과가 있고 절도 혐의가 있으며 집 주변에서는 도난사고가 많이 났다’는 것을 적시해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 기자에게 그대로 말해줬나.

“조 전 장관이 참여연대 전직 임원(사법감시센터소장)이니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사퇴가 맞다고 본다’는 의견을 냈다. 사실 코스닥에는 WFM처럼 장난치는 사기꾼이 너무 많다. 정경심 교수가 이런 걸 모르고 투자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작전하는 사람들과 친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투자다. 코링크는 흔하디흔한 작전 세력으로 판단됐다. 당연히 조 전 장관 지명은 부적절해 보인다는 게 결론이었다.”

- 웅동학원은 어땠나.

“정말 험했다.”

- 무슨 말인가.

“긴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조 전 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은 오로지 공소시효 만료 때문이라고 본다. 학교법인이나 공익법인은 국세청 공시 사항이라 누구나 다 들여다볼 수 있다. 흔히 부채가 많은 걸로 알고 있지만 서류상으로 부채가 전혀 없다. 모두 동생을 위한 거짓 채무, 만들어진 채무라고 생각한다. 황당할 뿐이다.”

- 참여연대 내부에서 그런 부분에 관해 토론하지 않았나.

“당연히 문제 제기를 했다. ‘과거에 이런 의혹들이 나오면 100% 사퇴하지 않았느냐, 조 전 장관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처음엔 내 말에 수긍하는 듯하더니 어느 시점부터 엉뚱한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죄가 되냐’는 반응에서부터 심지어 ‘웅동학원은 자식에게만 채무를 남긴 거니 미담으로 소개될 만하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공개된 자료를 건성으로 봐도 앞뒤가 안 맞는데 의혹을 미담으로까지 바꿔 말하니 나중에는 열이 치받아 올랐다. 하기야 펀드도 ‘블라인드 펀드’라는 신개념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그가 혼잣말처럼 말하더니 목이 마른지 컵에 담긴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민정수석 일인데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고?

“주변 반응이 너무 어이없기도 하고 예상외여서 내가 뭘 잘못 봤나 하는 생각에 아예 작정하고 밤을 새워가며 펀드를 들여다봤다. 법인등기부등본, 전자공시시스템(금감원)은 물론 유료 기업신용정보까지 사서 다 뒤졌다. 4박5일 밤새워서 자금 흐름을 엑셀 파일로 만들었더니 흐름이 너무 불투명하다는 게 드러났다. 돈이 항상 중간에 사라졌다. 이런 근거 자료를 내세우며 참여연대 내부에서 문제 제기를 했다. 그랬더니 역시 또 ‘그게 뭐 어쨌다고?’ 하는 반응이었다.

그나마 물러선 반응들이 ‘설사 그렇다 해도 그게 권력이 개입한 권력형 범죄냐? 돈이 조 전 장관한테 갔다는 증거가 있냐. 참여연대는 권력형 비리, 재벌 관련 사안에만 개입한다.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거였다. 내가 아무리 ‘비정상적 거래로 보여 의심을 가져야 한다’고 해도 먹히지 않았다. 언뜻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정수석이 관련돼 있는데 권력형 범죄 아니면 뭐란 말인가. 과거 같으면 무조건 수긍했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반응을 보이는 걸까. 더구나 나 같은 회계 전문가가 지적하는데 말이다. 한마디로 의사가 ‘병이 있다’고 하는데 ‘몸속에 들어가 봤느냐, 암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 이런 식 아닌가.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들이 이상한 거였다.”

- 검찰 공소장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수사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내가 파악한 범죄적인 수단이 다 드러나 있었다. 조 전 장관 집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예우를 갖췄다고 본다. 11시간이라고 하지만 변호사 세 명이 입회했고 문제 제기도 다 받아들여졌다. 나는 이전부터 사모펀드를 이용한 증권 LBO(차입매수), 주가조작 등을 엄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 측면에서 보면 검찰이 수사 잘한 거다. 정 교수 녹취록도 나오지 않았나. WFM 주식 매입에 사용되는 걸 알았다는 게 다 드러났다. 이건 조 전 장관이 공직자윤리법을 어긴 거다. 명의 여하에 관련 없이 배우자 것도 신고해야 하는데 안 하지 않았나.”

“조국이 시원하게 말아 드셨다”

2006년 4월 6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김상조 당시 한성대 교수가 ‘38개 재벌 총수일가의 주식거래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병기 동아일보 기자]
2006년 4월 6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김상조 당시 한성대 교수가 ‘38개 재벌 총수일가의 주식거래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병기 동아일보 기자]
그는 이 대목에서 “사실 참여연대 내부가 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고 했다.

- 첫 번째는 뭔가.

“유선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국장급)이 김상조 위원장의 ‘위법행위 은폐 지시’ 의혹을 제기했을 때였다. 경제금융센터가 보기에 문제가 있으니 질의서를 작성해 보내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곧바로 실행됐을 텐데 집행부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질의서가 나가면 이른바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만 좋은 일 시킨다는 거였다. 황당했다. 내가 계속 주장하니까 ‘성명서 표현이 과하다, 단정적’이라며 자구 하나하나를 문제 삼았다. 너무 화가 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정도였다. 결국 완전히 톤다운된 상태에서 질의서가 나갔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권력과 재벌 감시를 잘 수행해왔기 때문에 이런 일이 없었다.”(신동아 2018년 12월호 유선주 국장 인터뷰 참조)

- 왜 그랬다고 보나.

“위원장이 김상조여서일 수 있다 생각했다.”

- 이 대목에서 묻고 싶다. 김상조는 어떤 사람인가.

“정말 존경했던 분이다. 그런데 5년 전부터 완전히 색채를 달리했다. 내 주관적 느낌이 아니라 공적인 칼럼이나 발언을 보면 친(親)재벌 성향이 강해졌다는 걸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2015년 3월 삼성SDS 상장으로 삼성 총수 일가와 전문경영인이 얻은 수조 원대 부당이득을 환수하기 위한 ‘이학수 특별법’을 반대하지 않았나. 이후 삼성 사람들을 여차저차 만나게 된 적이 있는데 김 교수 칼럼이 실린 파일을 보여주면서 나더러 ‘김상조 교수님도 이렇게 생각하신다. 사고를 유연하게 하셨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 왜 그가 변했을까.

“이유는 모르겠고. 5년 전쯤부터 참여연대와도 날을 세웠다. 2년 동안 공정위원장으로서, 정책실장으로서의 성과? 재벌개혁에 관한 한 가시적인 성과는 전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친기업 친재벌 행보를 노골화했다.”

- 다시 조국 사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9월 29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반 동안 조국은 민정수석 자리에서 시원하게 말아 드셨다”면서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세력에 대해 “위선자” “지저분한 X들” “구역질 난다”는 직설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바로 이튿날 징계위에 회부됐는데.

“범법자 가족까지 걱정하나”

“내가 ‘조국 펀드’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평을 내자고 했을 때 센터 10명 중 6~7명이 동의했는데 두 분이 극렬 반대해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언론에도 보도가 됐지만 이분들 논리가 ‘그럴 거면 (윤석열) 검찰총장 사생활 문제라든지, 모 검사의 처가 문제라든지 그런 것도 같이 논평에 넣을 때만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집행위에서도 처음엔 ‘사퇴가 맞다’가 7, ‘아니다’가 3 정도였다. 그러다 이틀 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반대 논평 나가면 참여연대 난리 난다. 회원 다 빠져나간다’는 거였다. 정말 전후 맥락이 없는 반대들이었다.”

- 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을까,

“문득 든 생각이 이 사람들 청와대에서 전화받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조 전 장관이 일했던 사법감시센터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맨 처음 논평(8월 22일)에선 ‘의혹에 대해 성실히 소명하라’고 하더니 며칠 뒤엔 검찰 비난 논평을 냈다. 이렇게 태도가 바뀌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느냐 말하니 ‘앞으로는 집행위를 거치겠다’ ‘청문회를 보고 논평을 내자’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법감시센터 한 관계자로부터 ‘평생 검찰개혁에 목을 매왔는데 당신 행동에 화가 많이 난다’는 문자를 받았다. 화가 난 사람은 누군데…. 정말 황당했다. 내년 2월까지인 집행위원장직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

- 그랬더니?

“‘회의는 안 나와도 좋으나 텔레그램 방에는 들어와라, 만약 조 전 장관이 기소되면 파면하라는 논평을 내자’고 했다. 일단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느 날 변호사 한 분이 ‘텔방’에 검찰개혁 에세이 비슷한 글을 쓴 뒤 마지막에 ‘조국과 조국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쓴 거다. 머리가 확 돌아버릴 정도로 불쾌했다. 내가 ‘이제 참여연대가 범법자 가족까지 걱정해줘야 하느냐’고 댓글을 달자 변호사 왈 ‘범법자 아니다. 기소도 안 됐다’고 했다. 나는 ‘경제금융센터는 재벌 문제에 관한 한 합리적 의심이 있으면 곧바로 논평을 내왔다. 여태 삼성을 문제 삼을 때 기소된 것 가지고 했냐. 제일모직,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작은 의혹에서 시작한 거다. 참여연대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권력 감시, 재벌 감시라는 본연의 업무를 잊어버렸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나도 부끄럽다’고 답했다. 이후 바로 회원 탈퇴했고 일요일이던 9월 29일 새벽, 페북에 ‘조국 장관이 말아 드셨다’는 글을 올린 거다.”

“참여연대가 권력집단으로 변질됐다”

- 자기가 책임지던 조직을 향해 공개적인 비판의 날을 세우기란 쉽지 않다. 이른바 정무적 판단이란 것도 있고 말이다. 하루이틀 참여연대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안에 있다 보면 내부 사람들의 생각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정무적 판단? 나 역시 존중한다. 하지만 그걸 내세울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거다. 최순실 국정농단 때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상당수도 탄핵에 찬성했다. 나 역시 집단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지만 조국 사태가 그런 사안인가. 이건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덮을 것이냐, 사실에 눈감을 것이냐 하는 문제다. 여기에 어떻게 정무적 판단이란 게 있을 수 있나. 뻔히 진실이 드러났는데 거짓을 말한다면 그건 은폐다. 조국 사태 때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대표적으로 유시민 전 장관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자기가 공개한 정경심 녹취록이 내 주장을 ‘빽업’하는 거였는데 억지를 부리는 모습에서 정말 어이가 없었다.”

- 참여연대를 비롯한 좌파 진영 내부가 왜 그런 비양심적 행동과 판단을 한다고 보나.

“권력과 자기를 동일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부 초기에 지지자들의 반응을 보며 걱정한 적이 있다. 어느 포털에서 ‘박근혜 정권 시절 19대 국회 때 민주당이 노동개혁 다 이뤄냈다’는 글을 읽었을 때였다.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자신들이 만든 세상만 보면 이렇게 모든 걸 자기식대로만 해석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이면 좀 과장해서 말하면 김일성이 나뭇잎 타고 압록강 건넜다는 말도 나올 수 있는 거 아닌가. 돌이켜 보면 결국 이념도 아니었고 권력 싸움이었다. 마침내 권력을 갖게 되자 그걸 자기 것으로 일체화한 거다.”

“지금 청와대 사람들은 모럴이 없다”

- 조혜경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도 10월 30일 지도부 총 사퇴를 요구하며 참여연대를 떠났다. 국민들이 이제는 참여연대를 감시해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참여연대가 경실련과 더불어 ‘운동’의 새 지평을 연 것은 분명하다. 지금은 권력의 한 축 혹은 보조축이 돼버린 모습이다. 본연의 임무인 ‘권력 감시’기능을 잃어버렸다. 나나 조혜경 박사님이나, 희망적인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뛰쳐나오지 않았겠나. 조국 사태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조차 ‘반성’이 없다는 건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나와 조 박사를 향해 사무처장이 ‘이견’이라고 하는데 이견이란 건 사실을 공유한 이후에 발생하는 ‘해석’의 문제이지 사실에 등 돌리는 게 어떻게 견해 차이인가. 진실 은폐지.”

그는 ‘죄송한 표현이지만’ ‘제가 절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란 말을 반복적으로 썼다. 담백하고 깔끔하면서도 겸손한 성격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 얼굴이나 표정이 밝아 보이고 차분해 의외다.

“원래 나는 혼자 싸웠다. 쌍용차도 혼자 시작한 거고. 현대건설, 제일모직, 삼바…. 처음부터 혼자였다. 하지만 힘들다. 고문을 심하게 받다 보면 물방울만 봐도 아프다고 하지 않나. 댓글 보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해온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여연대에도 나와 비슷한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큰 의지가 된다.”

- 정치 같은 것을 해볼 생각은?

“전혀 없다. 정치권이란 게 혼자 어떻게 한다고 움직이는 곳이 아님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이 너무 비참하게 변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영원하지 않은 권력 앞에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모습도 짠해 보이고. 의원 배지 달고 있는 동안에는 너무 좋아서 화장실 가서도 웃는다고 하던데(웃음) 배지 떨어지면 너무 비참하다. 나 같은 사람은 자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그는 “내 밥벌이를 갖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 나름대로 똑똑하고 정의감도 있었던 사람들이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정당으로, 서울시로, 재벌 기업으로 옮기면서 시민단체를 비난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다 ‘밥벌이’의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만 시민단체라면 시민단체의 본업이란 게 있지 않나. 어쩌다 정당 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이렇게 안 나올 수가 있는지, 청와대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곳인지, 시민단체는 왜 이렇게 됐는지, 지금은 모두 불타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반성은커녕 뭐라도 이익 거리를 찾아내려는 모습이 보인다. 정말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왜 이렇게들 뻔뻔해졌을까.

“나 역시 그런 비판에서 절대 자유로운 세대가 아닌데. 무엇이 저들을 저런 괴물로 만들었는지 이해는 간다.”

- 어떤 측면에서?

“1970년대 말 남민전이 자금 조달한다며 재벌 회장 집 담을 넘지 않았나. 혹여 목적만 옳다면 수단 방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그런 생각을 지금까지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80년대 운동권들은 주민등록증도 위조했다. 밖에 나가 데모한다는 이유로 커닝이나 대리출석에도 죄의식이 없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들을 깨지 않고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청와대 사람들을 보면 도덕적 법적 방비 면에서 너무 무방비 상태다. 한마디로 모럴이 없다. 출범 초기 노무현 정부와 달리 압도적 지지를 받았는데 의회 다수당, 지자체 싹쓸이했으면 더 남달랐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더 개혁적인 성과를 보여야 하는데 결과는 전혀 없다. 오히려 압도적 지지를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무조건 선(善)이구나, 세상 사람들이 다 받아줄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권력화된 86세대 퇴장해야”

그가 덧붙여 말했다.

“소련이 망했을 때 깊이 고민했다. 왜 그런 훌륭한 이상을 가진 나라가 민중의 적이 됐을까. 어떻게 보면 권력의 속성이란 게 원래 그런 건데 그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 아닌가. 지금 지지율이 반 토막 났고 향후 추세도 위험한데 잘못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 교만하다고 해야 하나,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지탄받아 마땅하다.

페북에서 ‘반성하자’ ‘되돌아보자’는 발언은 조국에 비판적인 사람들이다. 옹호자들 사이에선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일이면 또 새로운 태양이 뜰 텐데 무슨 반성이냐 이런 식이다. 이건 약자, 짓눌린 자들의 언어가 아니다. 아무 죄의식 없이 어떻게 새로운 얼굴, 새로운 발언을 할 수가 있나. 어떤 면에서는 ‘조국 사태’가 역설적으로 진보 진영에 천재일우의 기회를 줬다. 괴멸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변화를 가져올 기회 말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70년을 산다고 할 때 69년을 제대로 살았더라도 1년을 허투루 살면 말짱 도루묵이다. 86세대가 민주화 성과를 운위하는 것은 이미 휩쓸려갔다. 자신들의 공을 말할 때가 아니라 이제 다 물러날 때가 왔다.”

- 물러나야 할 사람들은 86세대가 아니라 ‘권력화된 86세대’다. 그 공급처가 참여연대 아니었나.

“퇴장할 이들이 권력화된 86세대란 점은 동의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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