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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공약이라고 했더니 진짜인줄 알더라

입력 2022-01-16 11:17업데이트 2022-01-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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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 무슨 말을 못 하겠느냐.” 이 말이 또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의 13일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공약 발표장에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에서 두 번째)가 13일 서울 노원구 한 빌딩 옥상에서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며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 후보는 재개발 재건축 용적률을 500%까지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동아일보DB


문재인 정부 정책과 딴판이라는 지적이 안 나올 수 없다. 작년 말 재건축·재개발 신속 추진을 공약한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과도 비교됐다. 기자들 지적에 이재명은 “정책엔 저작권이 없고 결국 실천이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고?


“국민의힘은 과거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대통령 되신 분께서 ‘선거 때 무슨 말을 못 하느냐’는 말과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께서 ‘선거 때 한 약속 다 지키면 망한다’는 말을 했다. 국민의힘이 지금까지 그렇게 국민들을 속여 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책공약을 잘 안 믿는 경향이 있다.”

이 말만 들으면, 국민의힘은 ‘아무 말 대잔치’나 벌이는 당 같다. 그래서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대통령 되신 분’이 이명박 전 대통령인 건 맞다. 하지만 전후맥락이 중요하다. 이명박이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당선인에 대해 한 말이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미국 방문 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관해 오바마가 자동차 분야를 놓고 반대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명박은 말했다.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자동차 노조의 절대적 지지로 당선됐는데…선거 때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

2009년 영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동아일보DB


● 문 대통령 선거공약 다 지키다 망해


“선거 때 한 약속 다 지키면 망한다”는 말도 이재명이 할 말은 못 된다. 2018년 1월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성태가 문 정권을 비판하며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16.4%나 인상해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김성태의 비판에 방송 진행자가 “최저임금 1만원은 홍준표의 공약”이라고 꼬집었다. 그러자 김성태는 말했던 거다. “대선 공약대로 실천하면 나라는 망한다고 그러잖아요.”

이재명의 ‘탈모 공약’도 700억 원 정도로 예상한다지만 진짜가 되면 달라진다.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던 탈모인들이 돌연 나도 약 먹겠다고 나서면 1조원도 모자란다. 비만인은 또 가만있을쏘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유튜브에 올린 탈모 건강보험 적용 공약 동영상. 유튜브 캡처


● “선거는 선수끼리 국민 속이기”


선거와 공약(空約)에 대해 꼭 말하고 싶다면 불후의 명언이 있다. 말로써 화끈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다. 2006년 2월 “선거는 선수들끼리 국민 속이는 게임”이라고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권 심판론이 무성한 때였다. 노무현은 “선거라는 게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비실비실 웃으면서 나가서 시비하고, 선수들끼리 알면서도 부분적으로 국민을 속이는 게임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말했다. 후보의 진정성과 공약을 믿었던 유권자에게 이건 거의 배신이었다!

안타깝게도 이재명은 이 명언에 들어맞을 말을 자기 입으로 해버렸다.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말하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고 스스로 밝힌 사람이 바로 그였다.

● 앞으로 어떤 공약도 믿을수 없다


차라리 가만있었으면, 그의 말대로 국민의 집단지성이 알아서 새겨들었을 거다. 그러나 굳이 아니라고 외치는 바람에 이재명의 얕고도 얍삽한 두뇌회로가 드러나고 말았다. 심지어 선대위에선 ‘존경하는’이란 정치인들이 크게 싸운 상대에 대해 통상적으로 붙이는 단순한 수사(修辭)라고 말도 안 되는 해명을 내놨다.

그렇게 치면 ‘존경하는’만 단순한 수사일 것이냐. ‘공약하는’ ‘철회하는’도 단순한 수사일 수 있다. 작년 10월 29일부터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장하더니 정부여당까지 반대하자 11월 18일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철회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철회한 적 없다. 철회가 아니고 기본적 원리를 말한 것”(12월 7일)이라고 했다가 올 들어선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원하는 지원은 전국민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의 소비쿠폰”이라고 또 말을 바꿨다.

이쯤 되면 이재명의 새 캐치프레이즈 ‘앞으로 제대로’도 못 믿는다. “앞으로 제대로, 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안다”는 소리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아들은 남이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안다” “규제 완화라고 공약했더니 진짜인줄 안다” 소리가 줄줄이 이어질 수도 있다.

1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대위 출범식에 걸린 캐치프레이즈. 동아일보DB


● ‘나를 위해’라니, 대통령이 애인이냐

‘나를 위해, 이재명’ 슬로건은 차원을 달리한다. MZ세대를 겨냥했다지만 남친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대통령후보가 ‘나를 위해’라니, 간지럽다 못해 심각해진다. 아파트 동대표 선거 때도 “우리 아파트를 위해”라고 하지 “나를 위해”라고는 안 한다. 대통령이 나만을 위한다면, 그럼 내 옆집은 외면할 건가.

그 합리적인 독일인들을 나치가 사로잡은 것은 거창한 독트린이 아니었다. “히틀러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줬다”는 것이 ‘비극의 불가피성; 헨리 키신저와 그의 세계’를 쓴 배리 그웬의 통찰이다. 무책임한 국민은 나치도, 공산당도 투표로 선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국민이 지금 여기, 대한민국이어야 하는가.

정치(politics)의 어원이 그리스어 폴리스(polis·도시국가)다. 폴리틱스는 폴리스로 간 자유인들이 폴리테이아(politeia·公的영역) 즉 공화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일이라고 함재봉은 최근 저서 ‘정치란 무엇인가?’에 썼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면 “나를 위해” 같은 유혹적 언사 말고, 사적(私的) 이기심을 자극하는 간사한 약속 말고, 최소한 공선사후(公先私後) 바라건대는 시대적 흐름과 세계를 파악하며 큰 그림과 국익을 말해야만 한다. 우씨, 아무리 선거가 선수끼리 국민 속이는 게임이래도 말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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