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군함 파견, 경제와 동맹의 시험대[기고/백범흠]

  • 동아일보

백범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전 한중일 3국협력사무국 사무차장
백범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전 한중일 3국협력사무국 사무차장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 확보를 위한 군함 파견 문제를 두고 우리 사회 내에 백가쟁명식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미국의 요청에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핵심을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석유의 70%, 가스의 20∼3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로 인해 중동산 석유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치명적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난방과 취사, 교통, 산업 등 우리의 일상생활과 경제가 중동산 석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곡물과 석유, 가스, 철광석 등 일상생활과 경제에 필수적인 원료 거의 전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품과 수출품 대부분을 해협과 해협으로 이어지는 해로를 통해 운송한다. 해로가 막히면 생필품조차 구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해로 안전을 동맹국 미국의 제해권에만 의존해 왔다.

동맹은 상호 신뢰와 협력의 기초 위에서만 원활히 작동할 수 있다. 한국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 타개를 위한 미국의 군함 파견 요청에 소극적 태도를 취한다면, 이란과의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이 강요할 외교·안보적 불이익을 넘어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군사 지원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신뢰 저하라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군사동맹국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경제·무역 파트너 중 하나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할 주력 산업이 글로벌 공급망을 매개로 미국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코스피를 견인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와 기아, 한화 등 많은 우리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목을 매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유라시아 대륙 동서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절감한 것이 하나 있다. 안타깝게도 정치인과 고위 관료를 포함한 우리 국민 대다수가 ‘국가’라는 거대한 운명공동체를 구성원의 권리 보호와 공동 번영의 관점이 아닌, 파편화된 개인 또는 집단 이익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 아닌 다른 나라의 결정에 의존하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6대 무역대국이다. 매년 수천만 명의 국민이 사업, 유학, 여행, 출장차 해외에서 활동한다. 사망과 같은 사건·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해외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마땅히 부담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정부를 향해 무한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장을 메우기도 한다. 책임질 줄 모르는 나약한 국민이 나약한 나라를 만든다.

위기에 처한 미국의 지원 요청을 외면하면서 한반도 유사시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추진하는 핵연료 주기 완성이나 원자력 추진 잠수함 확보와 같은 전략적 목표 역시 미국의 협력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다.

군함 파견은 우리 스스로의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것이자 동맹국 미국과의 상호 신뢰를 새롭게 하고, 경제·통상 관계 안정과 발전을 위한 전략적 투자라 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안보는 한국 경제의 안보인 동시에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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