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노벨 화학상 기타가와 스스무 日 교토대 교수
“日 과학 노벨상 27명 받았지만… 과거 투자의 성과, 향후 지원 절실
빠른 성과 요구하면 기초과학 사라져
韓도 올바른 지원 풍토 만들어야… 高大서 석좌교수로 활동 예정
젊은이, 좋아하는 것부터 일단 시작해야… 흥미 우선 탐구, 내 연구 인생도 그랬다”
2025년 노벨 화학상을 탄 기타가와 스스무 일본 교토대 교수가 지난해 12월 22일 교토대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국 언론과 처음 인터뷰한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성공하면 거기서 얻는 경험치가 굉장히 크다. 내 연구 인생도 그랬다”고 강조했다. 교토=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
《“기초과학은 얼핏 보면 ‘무용(無用·쓸모없는 것)’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안 하는 것을 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분야에서 연구할 때 창조가 가능하다.” 2025년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기타가와 스스무(北川進·75) 일본 교토대 교수가 지난해 12월 22일 교토대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만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문화에선, 결국 기초과학은 사라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건 처음이다. 기타가와 교수는 ‘금속-유기 골격체(MOF)’라는 새로운 분자 구조를 개발한 공로로 리처드 롭슨 호주 멜버른대 교수, 오마르 야기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와 함께 지난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사카구치 시몬(坂口志文) 오사카대 석좌교수 또한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해 일본은 한 해에만 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누적 노벨 과학상 수상자도 27명에 이른다. 다만 그는 일본 과학계가 과거의 영광에 매몰돼선 안 된다며 앞날에 대한 우려도 쏟아냈다. 아직까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지 못한 한국에는 “기초과학을 제대로 지원하는 사회적 풍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타가와 교수, 야기 교수는 올해부터 고려대 KU-KIST 융합대학원 석좌교수로 임용돼 활동한다. 장래를 고민하는 젊은 세대에겐 “우선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일단 먼저 시작하라”고 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의 잇따른 노벨 과학상 수상의 비결은 무엇인가.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고 싶다. 나는 1979년 박사 학위를 받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1980년대 일본은 지금처럼 물가가 높지 않았고 기초 연구비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경쟁적으로 연구비를 크게 따내려 하지 않아도 차분히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 1980∼90년대에 연구를 진행했던 과학자들 사이에서 큰 성과와 혁신이 나왔다. 이에 노벨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지금에야 받는 것이다.”
―일본 기초과학이 지금은 위기라는 말도 있다.
“연구 환경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물가가 크게 올랐고 기본으로 지급되던 연구비가 크게 줄었다. 연구자들은 시간과 자금이 모두 부족하다. 자유로운 발상으로 연구를 추진하기가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다. 특히 젊은 연구자들의 고용 불안이 심각하다. 정규직보다는 3∼5년짜리 기간제 고용이 늘었다. 그래서 ‘젊은 연구자들을 더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정부에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올해부터 고려대 석좌교수로 활동한다.
“(2025년) 10월에 노벨상이 발표됐는데 그 몇 달 전부터 고려대에서 석좌교수로 와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2년 정도 활동하고 젊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라는 내용이었다. 좋은 제안이라고 여겨 수락했다. 고려대에 가서 강연을 하고, 여러 연구자와 토론도 나눌 예정이다. 한국에 뛰어난 인재가 많다. 제 연구 분야에서도 한국 연구자들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한국에서는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일본도 의학이나 법조계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의대는 수준이 높고 들어가기 어렵다. 한국 인구는 5000만 명 정도인데 일본의 절반 이하다. 일본 인구가 1억 명이 넘는다는 것은 학문적으로 좋은 상황이다. 대부분의 연구 분야에서 각각의 영역을 담당할 인재층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특정 연구 분야의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인구 규모가 작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는 듯하다. 단정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학자로 살아가기 위한 선택지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선 지방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서울 출신이냐, 아니냐’가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라는 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꽤 놀랐다. 일본은 그렇지 않다. 도쿄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다. 도쿄대에 가든, 교토대에 가든, 어떤 대학에 들어가든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해 왔는지가 중요하다. 결국은 개인의 능력이 평가의 기준이다. 한국은 엘리트를 길러내는 구조가 서울로 모두 집중된 게 아닌가 싶다. 다만 일본 또한 도쿄대, 교토대, 오사카대 등 대도시 일부 대학에 연구비와 지원이 집중되는 경향은 있다.” ―교토대에서 연구 추진 부총장 역할을 맡고 있다.
“대학 전체를 조망하면서 정책을 추진하는 자리다. ‘WPI(World Premier International Research Center Initiative·세계 최고 수준 연구 거점)’ 프로그램에서 10년 동안 거점장으로 참여했다. WPI에는 네 가지 미션이 있다. 첫째는 최상위 수준의 과학 연구인데, 두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둘째는 융합 연구다. 예를 들어 세포생물학과 재료과학을 결합해서 완전히 새로운 연구 분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셋째는 국제화다. 이메일도 영어를 먼저 쓰고, 일본어를 나중에 덧붙일 정도로 국제화에 열심이다. 네 번째가 가장 중요한데, 바로 새로운 제도다.”
―어떤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나.
“일본 대학은 학부나 학과 같은 조직 단위 문화가 강하고 비교적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총장이 아무리 ‘톱다운’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쉽고 빠르게 되지 않는다. WPI에서는 거점장이 톱다운 방식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과거 방식으로 신규 교수를 채용하려면 모두가 논의하고 심사를 같이 하느라 최소 1년이 걸린다. 그렇게 공을 들여도 지원자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톱다운 제도에서는 원칙적으로 하루면 가능하다. 거점장이 ‘이 연구를 하자’고 결정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2, 3개월 정도 걸렸지만 기존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빨라졌다.”
기타가와 교수가 공동 개발한 ‘금속-유기 골격체(Metal-Organic Frameworks·MOF)’는 금속과 유기물을 이용해 만든 신소재다. 특정 기체 분자를 선택적으로 흡착하거나 저장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기후 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을 발전시킬 것이란 기대가 크다.
―MOF는 활용성이 높은 신소재로 주목받는다.
“지금까지 있던 것들을 더 정교하게 만들거나 더 저렴하게 만드는 기술은 이미 어느 정도 다 나와 있다. 완전히 새로운 걸 하려면 기초과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초라는 건 성과가 눈에 보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정부가 돈을 투자하더라도 20년, 30년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 정부든, 한국 정부든 5년 안에 성과를 내라고 압박한다.”
―연구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나.
“MOF를 처음 발표했을 때 ‘그런 유기물로는 안전한 구조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공동 연구자들과 생각했다. 돌로 지은 집은 안정적이고, 나무로 지은 집도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종이, 즉 골판지로 만든 집도 안정적일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 바로 그 원리(기체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를 이용해서 ‘안정성’을 만들었다. ‘금방 무너지지 않느냐’는 말도 들었지만 과학자라는 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내놓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제시한 데이터의 신뢰성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연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평소 ‘무용의 용(쓸모없는 것이 되레 더 쓸모 있다)’을 강조했다.
“일본 최초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1949년 노벨 물리학상)를 보자. 그는 장자의 철학을 굉장히 좋아했고 만년에는 관련 책도 썼다. 거기에 나오는 개념이 바로 ‘무용의 용’이다. ‘쓸모 있는 것’은 이미 다 보인다. 다들 ‘이건 도움이 되니까 조금만 고쳐보자’는 식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에서 새로운 발상이 나오고 새로운 길이 열린다. ‘무용의 용’은 창의성의 핵심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지금까지도 그 자세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노벨상 수상 행사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수상식 날 무대에 올라가서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메달과 증명서를 직접 받는 순간 ‘아, 내가 하고 있는 분야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구나’라는 실감이 처음으로 들었다.”
―한국은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다.
“기초과학을 제대로 지원하는 사회적 풍토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기초과학은 ‘저게 무슨 쓸모가 있냐’는 말을 듣기 쉬운 분야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대우해줘야 한다. ‘그걸 도대체 어디에 쓰냐’, ‘그게 세계적으로 통하겠느냐’ 이런 말을 하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물론 과학계의 유행을 빠르게 잡아내서 크게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독창적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우대해야 한다. 이들은 남 눈치 안 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런 사람들을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
―장래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수학이든 운동이든 젊을 때부터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키워가야 한다. 중요한 건, 우선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거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성공하는 경험을 쌓으면 그때 얻는 경험치가 굉장히 크다. 그게 또 다른 분야로 확장될 수도 있다. 원래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영역에도 의외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사례도 생긴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이걸 해라, 저걸 해라”, “싫어도 해라, 안 하면 안 된다”는 식이었다. 이제 그런 방식으로는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았나.
“그렇다. 내 연구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흥미가 있는 것에 깊이 빠져들었고, 거기에서 길을 만들고 내 왔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그다음은 도전이다. 조금은 무리하더라도 목표를 세우고, ‘여기까지 가보자’고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타가와 스스무 일본 교토대 교수
△1951년 일본 교토 출생 △1974년 교토대 공학부 졸업 △1976년 교토대 대학원 공학연구과 석사과정 수료 △1979년 교토대 대학원 공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1988년 긴키대 이공학부 부교수 △1992년 도쿄도립대 이학부 교수 △1998년 교토대 대학원 공학연구과 교수 △2013년 교토대 물질-세포 통합시스템 거점 거점장 및 교수 △2016년 교토대 고등연구원 부원장 △2024년 교토대 이사 및 부총장 △2025년 노벨 화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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