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여전한데 ‘계획’이 사라졌다[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동아일보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학생 감소로 지난 2023년 폐교된 뒤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서울 광진구 서울화양초등학교. 뉴시스
학생 감소로 지난 2023년 폐교된 뒤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서울 광진구 서울화양초등학교. 뉴시스

출생아 수가 연일 전년 또는 전월 대비 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중장기적으로 이끌어야 할 정책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해를 넘기고도 발표되지 못했다.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수립돼 온 이 계획은 지난해로 제4차 계획이 마무리됐고, 올해부터 제5차 계획이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연말까지 윤곽조차 나오지 않았다.

통상 연말까지 기본계획이 확정돼야 다음 해 관련 예산 편성과 집행이 가능하다. 계획 수립이 지연되면 범부처 정책의 추진 동력이 약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출생아 수와 출산율이 반등 조짐을 보이자 저출산 대응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가 여전히 현재진행형 위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려스러운 일이다.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열린 한 베이비페어 행사에서 아이를 안은 여성이 육아용품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열린 한 베이비페어 행사에서 아이를 안은 여성이 육아용품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 출산장려금, 육아휴직, 무상보육, 아동수당…기본계획 거치며 자리잡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근거해 5년 단위로 수립된다. 1차 계획은 2005년 확정돼 2006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당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08명으로 이미 저출산을 넘어 초저출산 단계에 진입한 상태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출산율 급락과 출생아 수 감소 경고가 이어졌지만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하지 않았고, 뒤늦게 이를 물리며 대응에 들어갔다.

1차 기본계획의 핵심은 출산·양육 부담 완화와 보육 인프라 확충, 일·가정 양립 기반 마련이었다.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출산장려금 도입, 육아휴직 제도 정비 등이 이때 본격화됐다. 목표는 출산을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2차·3차 계획을 거치며 무상 보육, 아동수당, 맞벌이 지원, 여성 고용 유지 정책 등이 우리가 현재 아는 많은 저출산 대응 정책들이 확립됐다. 기본계획이 없었다면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출산·육아 정책이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기본계획의 존재 이유는 각 부처가 제각각 추진하던 정책을 하나의 큰 틀로 묶어 방향성과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있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해 연말까지 발표했어야 할 제5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발표하지 못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실 앞에 달린 간판 모습. 뉴시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해 연말까지 발표했어야 할 제5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발표하지 못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실 앞에 달린 간판 모습. 뉴시스

● 올해부터 5차 계획 시작인데 기본 얼개도 안 나와

그러나 제5차 계획이 시작돼야 할 2026년인데 기본계획은 아직 얼개조차 나오지 않았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은 정부가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확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상 전년도에 계획을 확정해 예산과 인력, 관련 법·제도 정비를 마친 뒤 다음 해부터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될 때까지 계획은커녕 그 방향성이나 주요 목표조차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계획 수립을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2024년부터 범부처 논의를 진행해 왔으나, 정권 교체를 전후로 대통령 주재 공식 회의는 열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처 간 실무 협의는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지만, 법에 근거한 공식 조정·의사결정 절차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기본계획이 지연되면 세부 정책 역시 연쇄적으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큰 틀의 목표와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각 부처가 역할을 나누고, 그에 맞춰 예산과 인력을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본계획이 확정되지 않으면 범부처 정책은 단기·단발성 대응으로 흩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법이 정한 계획 수립 의무를 사실상 이행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정책 공백에 대한 책임 논란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인구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주 부위원장은 지난달 사임했다. 뉴시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인구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주 부위원장은 지난달 사임했다. 뉴시스

● 저출산 정책 관심 빠르게 식어…인구비서관도 공석

사실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출생아 수와 출산율이 반등세를 보이면서 저출산 문제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한 발 물러난 분위기다. 2024년 하반기부터 출생아 수는 전년 대비 증가 흐름을 이어가고 있고, 최근 몇 달간 출산율 역시 전년 동월 대비 반등을 기록했다.

2023년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던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5명 수준으로 소폭 상승했고, 2025년에는 0.8명대 진입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한다.

이 같은 지표 변화와 맞물려 저출산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정권 교체 이후 대통령 주재 회의를 단 한 차례도 열지 못했다. 그동안 저고위가 실질적인 힘이 없는 조직이라는 비판과 함께 인구부 신설 등 조직 개편 논의가 제기됐지만, 이 역시 새 정부 출범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통령실 인구정책비서관 자리도 여전히 공석이다.

한 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를 안아서 들어올리고 있다. 뉴시스
한 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를 안아서 들어올리고 있다. 뉴시스

● 출산율 반등한대도 부모 수가 줄어 인구 감소는 불가피

그러나 출산율 반등을 이유로 안도하기에는 상황이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이미 세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여서, 수치가 다소 오르더라도 구조적 위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0.72명이 0.78명이나 0.8명으로 올라간다 해도 ‘초저출산 국가’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출생아 수 자체가 이미 크게 줄어 합계출산율이 반등하더라도 인구 감소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순한 계산만 해봐도 인구가 얼마나 줄어들지 알 수 있다. 남녀 각 10명씩 20명이 평균 0.7명을 낳으면 출생아 수는 7명이지만, 부모 세대가 10명으로 줄어든 뒤 평균 1.0명을 낳아도 출생아 수는 5명에 그친다.

2010년대 중반 연간 40만 명에 달하던 출생아 수는 현재 20만 명대로 반토막이 났다. 부모 세대 자체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출산율이 소폭 반등해도 출생아 수는 구조적으로 늘기 어렵다. 지금 줄어든 아이들은 20~30년 뒤 부모 세대가 될 것이다.

지난해 5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나주=뉴스1
지난해 5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나주=뉴스1

● 현재의 반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지금의 반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우리는 여전히 출생아 수를 늘리고, 보육 환경과 육아 인프라를 개선해야 하는 ‘과정’에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기저효과로 반등이 나타났을 뿐, 출산율이 언제 다시 정체하거나 하락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청년 다수는 여전히 출산을 부담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아이를 둘 이상 낳기를 원하는 비율도 높지 않다. 부부 두 명이 평균 두 명 이상을 낳지 않는 한 저출산은 구조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정부가 너무 늦기 전에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처한 그 어떠한 위험보다도 큰 위험을 간과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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