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경북 의성군 기룡산 일대 수목이 산불 피해를 입어 잿더미로 변해있다. 2025.03.27. 뉴시스
“올해 욕심을 내 대출까지 받아 모종을 2배로 더 심었는데…. 하늘도 참 야속합니다.”
27일 오전 11시경 경북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에서 만난 박현오 씨(74)는 산불 열기에 묵은 파김치처럼 시들어버린 마늘 모종을 쳐다보다가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박 씨는 “마늘 모종을 쓸 수 없게 돼 수익을 내지 못할 텐데, 어디서 또 돈을 빌려 대출금을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영남 지역을 덮친 역대 최악의 산불로 지역 대표 작물들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농민들이 실의에 빠졌다. 화마가 밭과 시설 대부분을 태워 복구조차 어려운 농가가 적지 않다. 경북 북부권은 의성 마늘, 영덕 송이버섯, 청송 사과, 영양 고추 등 전국적인 농산물 주산지다.
의성은 연간 마늘 생산량이 약 9700t에 달하는 전국 최대 마늘 산지다. 그러나 이번 산불로 피해 규모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의성체육관에서 만난 마늘 재배 농민 김모 씨(62)는 “마늘 모종은 물론이고 수천만 원을 주고 구입한 경운기와 트랙터도 형체만 남기고 다 타버렸다”며 “앞으로 생계는 어떡해야 하냐”고 호소했다.
국내 최대 송이버섯 산지인 영덕군도 직격탄을 맞았다. 군내 최대 송이 생산지인 지품면 국사봉 일대가 불길에 휩싸이며 사실상 초토화됐다. 영덕은 지난해 1만2178kg의 송이를 생산한 전국 1위 지역이며, 그중 60% 이상이 국사봉에서 채취됐다.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지품면 주민 김모 씨(65)는 “산불 지역에 송이가 다시 나기까지는 50년 이상 걸려 대를 이어 온 송이 채취를 못 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송군 상황도 다르지 않다. 주산지인 파천면 등 사과 과수원 상당수가 불길에 휘말려 큰 피해를 입었다. 청송군은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8만 t에 달했고, 향후 10만 t까지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이번 산불로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고추 산지로 유명한 영양군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석보면 화매리에서 고추 농사를 짓던 한호기 씨(67)는 “2000평 규모의 고추 농사 비닐하우스가 모두 불에 탔다”며 “한시라도 빨리 피해 지원을 해달라”고 말했다. 21일부터 이레째 이어지고 있는 경남 산청 산불로 특산물인 곶감으로 유명한 시천면 주민들도 망연자실하고 있다. 점동마을 배익선 이장(71)은 “마을 전체 감나무 중 절반가량이 불에 탔다”며 허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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