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햇살 품은 돌멩이가 포도를 익히는 곳[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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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아비뇽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는 알프스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가는 론강이 유유히 흐른다. 론강에 있는 바르텔라스섬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면 육중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교황청과 대성당, 생베네제 다리까지 아비뇽 역사지구의 건물이 강물 위로 비치는 풍광이 아름답다.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는 알프스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가는 론강이 유유히 흐른다. 론강에 있는 바르텔라스섬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면 육중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교황청과 대성당, 생베네제 다리까지 아비뇽 역사지구의 건물이 강물 위로 비치는 풍광이 아름답다.


프랑스 남부 아비뇽은 14세기에 로마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해 7명의 교황이 재위했던 도시다. 인근 론강 유역에는 교황의 와인을 만들던 포도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매년 7월이면 세계적인 연극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이 펼쳐지는 프로방스 도시로 와인 여행을 떠나 보자.》




●사냥 그림이 그려져 있는 교황청
7월의 아비뇽은 축제의 도시다. 건물 곳곳에는 오페라, 연극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길거리와 광장 곳곳에서 마임과 무용 공연이 펼쳐지는 아비뇽은 론 와인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비뇽이 세계사에 기록된 ‘아비뇽 유수’와 교황의 도시라는 점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로마 바티칸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아비뇽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경험도 색다를 수밖에 없다. 아비뇽을 둘러싸고 있는 성채 밑으로 들어가면 교황청 밑 도심에 대형 주차장이 있다. 차를 세우고 광장으로 올라오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딕 건물이 당당하게 서 있다. ‘팔레 데 파프(Palais des Papes·교황의 궁전)’. 면적 1만5000㎡에 이르는 육중한 석조 건물이다. 뾰족한 탑과 망루가 설치된 건물의 높이는 50m, 두께는 4m에 이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비뇽 교황청은 14세기 68년간(1309∼1377년) 7명의 교황이 살던 곳이다. 프랑스 왕권과 로마 교황권의 대립 끝에 가톨릭 교회가 로마와 아비뇽으로 대분열했던 시기의 중심 도시다. 아비뇽에 거주한 교황들은 클레멘스 5세에서 시작해 요한 22세, 베네딕토 12세, 클레멘스 6세, 이노센트 6세, 우르반 5세 그리고 그레고리오 11세까지 7대의 교황으로 이어졌다.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면 대연회실, 기도실, 예배실, 회랑, 주방 등 20개가 넘는 방을 관람할 수 있다. 교황청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병영으로 변모하고, 19세기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되면서 성상과 장식품 등이 대부분 파괴됐다. 그런데 입장할 때 주는 태블릿PC를 빈 벽에 비추면 중세시대 모습을 3D 증강현실 기술로 실감 나게 살펴볼 수 있다.

아비뇽 교황청에 사냥과 낚시 등의 모습을 그린 벽화.
아비뇽 교황청에 사냥과 낚시 등의 모습을 그린 벽화.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교황의 침실과 예배당, 대강당 등에 남아 있는 프레스코화가 눈길을 끈다. 이탈리아 화가 마테오 조바네티 등 13∼14세기 화가들의 작품이다. 특히 교황의 침실 벽을 장식하는 포도 덩굴과 떡갈나무 잎사귀 문양 속에는 다람쥐와 새들이 숨어 있고, 클레멘트 6세 교황의 서재로 연결되는 복도에는 사냥과 낚시, 꽃과 과일이 그려진 벽화가 있다. 바티칸의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성화에 비해 아비뇽 교황청에는 세속적인 즐거움이 담긴 현대적 벽화가 그려져 있어 사뭇 다른 느낌이다.

밖으로 나오면 교황의 정원이 펼쳐진다. 교황청 옆에 12세기에 세워진 아비뇽 대성당의 꼭대기에 4.5t 무게의 황금빛 성모상이 도시의 수호자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아비뇽 대성당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론강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면 ‘아비뇽 다리 위에서’라는 프랑스 민요로 유명한 다리가 나온다. ‘생베네제 다리’다. 12세기 양치기 소년 베네제가 천사의 도움으로 장정 서른 명의 힘으로도 들 수 없는 거대한 바위를 들어서 옮기는 기적을 보여준 후 사람들이 동참해서 놓은 다리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원래 길이 920m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였는데, 현재는 22개 아치 중 4개만 남아 있다.

느릿느릿 아비뇽 역사지구를 걷다가 지칠 즈음 교황청 바로 뒤편 골목에 있는 5성급 호텔 라 미랑드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쉬어가도 좋다. 14세기 추기경의 궁전이었던 곳을 새 단장한 호텔로,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과 살롱 스타일의 카페가 있다. 19세기풍의 키친에서는 호텔 셰프가 진행하는 쿠킹 클래스가 열린다.

아비뇽 구시가를 걷다 보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라 디빈 코메디(La Divine Comédy)’를 만난다. 프로방스의 명물인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거진 정원을 거닐며 산책할 수 있다. ‘라 디빈 코메디’는 이탈리아 대문호 단테의 ‘신곡(神曲)’이다. 이 정원을 걷다 보면 단테가 여행했던 천국과 지옥의 진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리라.

●교황의 와인, 샤토네프뒤파프
아비뇽 북쪽으로 12km 떨어진 언덕마을인 샤토뇌프뒤파프. 교황이 마시던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아비뇽 북쪽으로 12km 떨어진 언덕마을인 샤토뇌프뒤파프. 교황이 마시던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철커덩!”

아비뇽에서 북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언덕 마을인 ‘샤토네프뒤파프(Châteauneuf-du-Pape)’다. 절반쯤 무너져 내린 성 앞에서 만난 마리 조제 씨(오랑주 샤토네프뒤파프 관광사무소)는 손에 둥근 손잡이가 있는 고색창연한 열쇠를 들고 있었다. 그녀가 굳게 잠긴 성문 구멍에 열쇠를 밀어넣자 붉은색이 칠해진 나무 문이 열렸다. 14세기 교황의 별장 안으로 타임슬립을 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성은 원래 4개의 탑과 연회장, 화려한 장식이 있는 방이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교황이 여름에 이 성에 올 때는 100∼200여 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왔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했지요.”

론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인 ‘샤토네프뒤파프’는 교황(Pape)의 새로운(Neuf) 성(Château)이라는 뜻이다. 아비뇽에서 두 번째 교황인 요한 22세가 여름 별장으로 지은 궁전이었다. 주변의 포도밭은 교황 전용 포도주를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됐다. 그러나 교황의 별장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폭파시켜 북쪽 절반이 파괴된 채 텅빈 폐허로 남아 있다.

‘갈레 룰레’로 불리는 둥근 차돌이 가득 차 있는 샤토네프뒤파프의 포도밭.
‘갈레 룰레’로 불리는 둥근 차돌이 가득 차 있는 샤토네프뒤파프의 포도밭.

주변 포도밭을 걸어 보니 밭에 감자만 한 둥글둥글한 차돌이 가득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비뇽으로 유유히 흘러 지중해로 가는 론강을 따라 알프스에서 쪼개진 돌들이 이곳에서 자갈 마당을 이뤄 놓은 것이다. 작은 몽돌이 아니라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공룡알 해변’에서나 볼 수 있는 큼직한 차돌이었다. ‘갈레 룰레(Gallet Roulet)’라고 불리는 이 돌들은 낮에 품은 프로방스의 강렬한 햇볕을 한밤까지도 유지하며, 반사열을 나무에 전달한다고 한다. 이렇듯 샤토네프뒤파프는 돌멩이가 포도를 익히는 특이한 토양을 갖고 있는 셈이다.

샤토 드 라 가르딘 와인.
샤토 드 라 가르딘 와인.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시라 등 13가지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드는 샤토네프뒤파프 지역의 최고급 와인은 대를 이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샤토 드 라 가르딘(Château de la Gardine)’도 그중 하나다. 본래 교황청 소유였던 포도밭을 가스통 브루넬이 1945년 구입하면서 라 가르딘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초창기 선조들의 얼굴과 이름을 넣은 ‘가스통 필리프(Gaston Philippe)’와 ‘리모르텔(L’Immortelle)’은 수령 60년 이상의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엄선해서 만든다고 한다. 리모르텔의 라벨은 와인 메이커의 친구 예술가가 그려준 그림인데, 안타깝게도 이 화가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와인메이커 파트리크 브뤼넬 씨는 “완전 수작업으로 와인을 만드는 리모르텔은 친구를 기리기 위해 ‘불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고대 로마의 도시, 오랑주
오랑주 개선문.
오랑주 개선문.
샤토네프뒤파프에서 북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오랑주는 고대 로마 유적의 보고다. 오랑주에 진입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기원전 49년에 세워진 로마시대 개선문이다. 높이 18m, 폭 19m, 두께 9m의 이 개선문은 세 개의 아치로 구성돼 있다.

오랑주의 명물인 고대극장.
오랑주의 명물인 고대극장.
개선문에서 빅토르 위고 거리를 계속 걸어가 구시가지를 지나면, 오랑주의 명물인 고대극장이 나타난다. 이 고대극장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 지어진 것으로,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매년 7∼8월에 열리는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의 주요 무대다. 약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극장이다. 무대 전면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조상이 내려다보는 돌벽(높이 38m, 가로 103m)이 있어 객석 어디에서나 풍요한 반사 음향을 들려준다.


글·사진 아비뇽=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남부#아비뇽#오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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