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은 조금 불편한 질환… ‘정신병’ 편견 더 힘들어”[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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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조울증 박창현 씨
조울증, 극단 오가는 양극성 장애… 약한 우울 증세 땐 인지 못할 수도
박 씨 2회 입원 후 적극 치료받아… 조증 심하면 주변과 다툼 잦아져
임의로 약 끊으면 1년 내 재발 우려… 가족-동료의 적극적 지지가 큰 힘

10년 전 조울증 진단을 처음 받은 박창현 씨(왼쪽)는 초기에는 두 차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이후 7년 동안 위기를 잘 
극복하며 병을 이겨내고 있다. 박 씨의 주치의인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박 씨는 병을 인정하면서도 맞서 싸우는 
가장 모범적 사례”라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10년 전 조울증 진단을 처음 받은 박창현 씨(왼쪽)는 초기에는 두 차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이후 7년 동안 위기를 잘 극복하며 병을 이겨내고 있다. 박 씨의 주치의인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박 씨는 병을 인정하면서도 맞서 싸우는 가장 모범적 사례”라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2013년 9월 박창현 씨(30)는 군에 입대했다. 탄약 다루는 업무를 맡았는데 썩 내키지는 않았다. 의기소침해지더니 우울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던 중 다른 부대로 파견 갈 일이 생겼다. 군대 홍보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박 씨가 좋아하는 분야였다. 돌파구가 생긴 느낌이었다. 덕분에 우울감도 사라졌다.

3개월 후 부대에 복귀한 후 문제가 생겼다. 예민해졌고 짜증이 늘었다. 혈압도 높아졌다. 감정 통제가 쉽지 않아 부대원들과 자주 다퉜다. 군 병원은 박 씨에게 조울증 진단을 내렸다. 박 씨는 40일 동안 군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박 씨는 퇴원한 후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부대원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 덕분에 2015년 9월 무사히 전역했다. 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조증일 때 입원 치료 필요”
전역하고 한 달이 지나자 군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떨어졌다. 박 씨는 이상 증세가 없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약이 떨어지면 다시 병원에 가라는 의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2016년 3월 조울증이 재발했다. 횡설수설했다. 환청이 들렸다. 익숙한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환시 증세도 드물게 나타났다. 박 씨는 가족의 손에 이끌려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입원 치료를 권했다. 결국 박 씨는 조울증으로 두 번째 입원했다.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다가 우울해지며 가라앉았다가 흥분하는 양극성 기분장애다. 국내 유병률이 인구의 1.0∼2.5% 정도다. 50만∼130만 명이 평생에 걸쳐 한 번 정도는 발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짐은 물론 뇌의 구조적 변화로 인지기능 장애까지 생길 수 있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울증일 때는 축축 처지는 게 특징이다. 박 씨 또한 군 생활 초기에는 식사도 잘 못 하고 말수도 적었으며 무기력했다. 다만 우울증 강도가 약할 때는 병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조증일 때 주변 사람과 불화를 일으키거나 지나치게 흥분하는 식의 문제 행동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조증이 심한 환자라면 입원 치료를 많이 한다. 하지만 박 씨가 그랬듯이 환자 대부분은 자신이 조금 예민한 정도라고만 생각한다. 노 교수는 “들뜨거나 의욕이 넘치는 환자도 많지만 그보다는 예민하고, 짜증을 많이 내며, 주변 사람들과 자주 충돌하는 환자가 더 많다”고 말했다.

●“약 끊으면 1년 내 재발 많아”
조울증은 발병하면 일단 첫 1년 동안은 약물을 투입하면서 환자 상태를 살핀다. 결과가 좋다면 투입 약물의 개수나 용량을 줄인다. 일반적으로 약을 완전히 끊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재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박 씨 재발 사례는 조울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진단했다. 스스로 증세가 개선됐다고 판단한 뒤 약을 먹지 않으며, 그 결과 1년 이내에 재발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환청이 가장 흔하고 환시, 환각 증세까지 나타날 수 있다.

재발하면 완전히 2, 3일 만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물론 당사자는 증세가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족이나 친구가 지적하면 다툼으로 번진다. 스스로 병원에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박 씨도 그랬다. 박 씨의 부모가 목적지를 속이고는 승용차를 몰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노 교수는 “이 또한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했다. 자발적으로 치료하지 않기에 대부분은 병원 응급실을 거쳐 입원한다는 것이다.

박 씨는 의료진에게 폭력적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 교수에 따르면 적잖은 환자들이 의료진에게 화를 내거나 위협적으로 행동한다. 특히 조증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도 대화의 맥락을 잡지 못하거나 산만하며 집중도가 떨어진다. 노 교수는 “환자 대부분은 목소리 톤이 높고, 하나를 묻는데 대여섯 개를 대답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돌이켜보면 나 또한 의료진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빙빙 겉돌거나 검사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입원 치료를 하면서 이런 점들을 고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 폐쇄 병동에 주로 입원한다. 박 씨가 입원한 곳 또한 폐쇄 병동이다.

●적응 훈련 마치고 35일 만에 퇴원
폐쇄 병동에서는 조울증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까. 노 교수는 박 씨에게 항정신병약물, 항불안제, 기분안정제를 투입했다. 이런 약물 치료와 함께 지속적으로 상담하면서 행동 변화를 관찰했다.

환자들은 대체로 처음에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상태가 호전된 후에야 과거의 자신이 보인다. 박 씨 또한 “입원 치료를 하고 증세가 개선되니 나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며 “그제야 내가 심했었고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입원 후 박 씨의 정서는 안정적으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노 교수는 박 씨에게 병원 내부에서 의료진과 동반해 산책할 것을 처방했다. 외부 자극에 대한 일종의 ‘적응 훈련’인 셈이다. 다음 과정은 병원 밖으로 산책 나가는 ‘외출’이다. 환청도 사라지고 조증 증세도 거의 없어지자 박 씨는 이 과정을 건너뛰고 귀가한 뒤 하루 후에 돌아오는 ‘외박’ 과정으로 이행했다. 노 교수는 “약을 잘 먹고 있으며, 기분 상태가 안정적이고, 나중에도 외래 진료를 빠뜨리지 않을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평가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박 씨는 35일 만에 퇴원했다. 박 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박 씨는 “퇴원할 무렵 정말로 내가 좋아졌다는 생각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평생 관리하면 일상생활 지장 없어
퇴원은 일상생활에 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반드시 완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 교수는 “이 병은 평생 다스려야 한다. 중단하는 순간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퇴원한 후로도 한 달 동안은 매주 노 교수를 만났다. 이후 진료 간격을 2주, 4주, 6주로 서서히 늘려 나갔다. 현재는 치료 방침에서 최대 기간으로 정한 2개월마다 진료를 받는다. 노 교수는 “7년째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말했다.

조울증이 생기는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입시, 연애, 군 복무 등 여러 분야에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같은 위기가 닥치면 재발의 위기를 맞닥뜨리게 된다.

박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프리랜서 PD 생활을 잠시 했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난관이 그를 힘들게 했다. 강박증, 불안증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방치하지 않았다. 노 교수를 찾아가 상담을 자처했다. 비상약을 처방받아놓고 증세가 심해지면 먹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고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박 씨는 올해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동시에 대학 실습조교 업무도 맡았다. 물론 동료들과도 잘 지낸다.

노 교수는 “조울증은 약을 먹으면서 관리만 하면 평생 큰 탈 없이 잘 살 수 있는 병”이라며 “문제는 정신 질환이라는 편견 때문에 약 복용을 중단하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배우자에게도 자신의 투병 사실을 숨기는 환자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박 씨는 주변에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굳이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내 병을 알면 더 이해해주는 측면도 있다”며 웃었다. 노 교수 또한 “스스로 병을 인정하고 적극 투병하는 것, 주변 사람들이 적극 지지하는 것이 이 병을 이기는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박 씨야말로 조울증의 가장 모범적인 투병 사례이며 앞으로도 잘 이겨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양극성 장애 자가진단
최근에 다음과 같은 증세가 같은 시기에 나타났고, 이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면 양극성 장애일 가능성이 있다. 13개 문항 중 7개 이상이 해당된다면 의사와 상담하는 게 좋다.

①기분이 너무 좋거나 들떠 다른 사람들이 평소의 당신 모습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

②지나치게 흥분해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싸우거나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③평소보다 더욱 자신감에 찬 적이 있다.

④평소보다 잠을 덜 잤거나 잠잘 필요를 느끼지 않은 적이 있다.

⑤평소보다 말이 더 많았거나 말이 매우 빨라졌던 적이 있다.

⑥생각이 머릿속을 빨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꼈거나 마음을 차분하게 하지 못한 적이 있다.

⑦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로 쉽게 방해받아 일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중단한 적이 있다.

⑧평소보다 더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⑨평소보다 더 활동적이거나 더 많은 일을 했다.

⑩평소보다 사교적이거나 늦은 밤에 친구에게 전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⑪평소보다 더욱 성행위에 관심이 갔다.

⑫남들이 생각하기에 지나치거나 바보 같거나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한 적이 있다.

⑬돈 쓰는 문제로 자신이나 가족을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다.

자료: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양극성 장애#정신병 편견#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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