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은 남자들의 ‘키드코어’ 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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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버질 아블로가 불 붙인 키드코어
수년째 남성패션 가장 핫한 주제
키치한 캐릭터에 형형색색 컬러
‘유년기 판타지’ 올해 맨즈 룩 대세

고 버질 아블로를 잇는 루이비통의 신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콤 딜레인은 2023 SS 루이비통 컬렉션에서 종이비행기를 모티브로 하는 키드코어 룩으로 동심을 자극했다. 루이비통 제공
고 버질 아블로를 잇는 루이비통의 신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콤 딜레인은 2023 SS 루이비통 컬렉션에서 종이비행기를 모티브로 하는 키드코어 룩으로 동심을 자극했다. 루이비통 제공
엔데믹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간 억눌린 소비 심리가 폭발한 것일까? 어릴적 갖고 놀았을 법한 장난감과 액션, 격투 만화 속 열광하던 캐릭터, 그라피티 같은 유년 시절의 취향과 감성이 묻어나는 ‘키드코어(Kidcore)’ 무드가 남성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과거 키드코어는 몸은 어른이나 어린아이이고 싶어하는 미성숙한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피터팬 증후군 또는 콤플렉스로 치부되며 대중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리게 사는 것이 미덕이 된 요즘 맨즈 컬렉션은 엄숙함을 깨고 더욱 과감하고 실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키드코어 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故) 버질 아블로가 이끌던 루이비통의 맨즈 컬렉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2021 SS 컬렉션에서 자신의 소년 시절을 투영한 루이비통 친구들, 일명 ‘LV 프렌즈’라 불리는 가상의 동물 캐릭터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델들은 다양한 캐릭터 인형을 어깨와 등에 짊어진 채 무대에 올랐다. 손뜨개 인형을 주렁주렁 매단 개구진 루이비통의 스웨트 셔츠와 슈트는 기발하다는 평과 함께 키드코어 트렌드에 불을 지피는 단초가 됐다. 같은 해 2021 FW 컬렉션에서는 프랑스 파리의 건축물을 옮겨 놓은 입체적인 아우터와 장난스러운 비행기 모양의 백을 선보이며 키드코어 무드를 이어갔다. 외로운 흑인 예술가였던 그는 마지막 유작이 된 2022 FW 컬렉션에서 힙합, 스케이트보드와 같은 하위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키드코어적 상상력이 총동원된 피스들로 유년기의 판타지를 펼쳐 보였다. 자동차 경주용 트랙을 배경으로 힘차게 시작된 2023 SS 컬렉션은 종이배, 종이비행기 같은 유년 시절의 즐거움이 가득한 모티프를 활용한 피스들로 버질의 빈자리를 채웠다.

이번 SS 시즌에도 키드코어 아이템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형형색색의 캐릭터와 로고 일러스트의 조합은 놓칠 수 없는 요소다. 젠더리스 패션을 추구하는 에곤랩은 어린이들의 환상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으로 동심을 자극했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캐릭터 톱에 마구 찢어진 데님 팬츠로 펑키한 무드를 연출하는가 하면, 팬츠 대신 스커트를 매치하는 식의 파격적인 스타일링으로 확고한 브랜드 철학을 드러냈다. 매 시즌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엠부쉬는 싱그러운 색감의 프린트 톱에 동물 귀가 달린 모자, 외계인 눈 모양의 선글라스 등의 액세서리를 더해 키드코어 무드를 이어갔으며, 우아한 테일러링의 대명사 겐조는 일러스트 톱을 곁들인 간결한 슈트 차림으로 리얼웨이에서 적용할 법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영원한 젊음의 상징, 스트라이프 패턴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셔츠와 재킷에 쇼츠, 니하이 삭스까지, 보이스카우트를 연상시키는 프레피 룩 차림의 모델들은 컬렉션에 경쾌한 에너지를 수혈했다. 톰브라운은 핀 스트라이프 슈트에 메신저 백 대신 앙증맞은 강아지 미니 백을 들어 분방한 매력을 드러냈다. 드리스 반 노튼과 보디는 한층 더 나아가 직선의 단조로움을 넘어 기하학적인 그래픽 패턴을 믹스한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쿠튀르적인 터치를 가미했다.

뉴욕 예술가 집단으로 이뤄진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미스치프는 빅 레드 부츠, 일명 ‘아톰 부츠’를 발매하며 국내외 인플루언서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왼쪽 사진). 아이들의 장난감을 곁들인 것 같은 발렌시아가의 이번 시즌 맨즈 컬렉션은 키드코어 무드의 정수를 
보인 컬렉션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인스타그램 캡처·발렌시아가 제공
뉴욕 예술가 집단으로 이뤄진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미스치프는 빅 레드 부츠, 일명 ‘아톰 부츠’를 발매하며 국내외 인플루언서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왼쪽 사진). 아이들의 장난감을 곁들인 것 같은 발렌시아가의 이번 시즌 맨즈 컬렉션은 키드코어 무드의 정수를 보인 컬렉션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인스타그램 캡처·발렌시아가 제공
패션인지 장난감인지 모를 키치한 액세서리는 올 시즌 키드코어 무드를 더욱 확연히 증명한다. 사자 모양 핸드백과 뱀을 연상케 하는 형형색색의 머플러를 선보인 발렌시아가, 개구리 형상을 본뜬 JW 앤더슨의 클러치 백, 큼직한 카툰을 프린팅한 루이비통의 귀돌이 모자….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핀잔이 나올 정도로 일차원적이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액세서리들이 하이 패션계에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만화 캐릭터 ‘우주소년 아톰’의 발을 그대로 떼다 붙인 듯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미스치프의 빨간 고무 부츠는 SNS상에서 크게 회자되며 350달러(약 46만 원)가 웃도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완판됐다. 현재 리셀 가격은 정가의 3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키드코어는 단순히 어린 시절을 복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유년기의 자신과 어른이 된 현재의 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023년 남성 패션계는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키드코어 룩을 목도할 수 있는 즐거운 한 해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안미은 패션 칼럼니스트
#故버질 아블로#키드코어#남성패션#유년기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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